‘안녕하세요. 저는 부산시 00구에 위치한 H중학교에 2월 12일자로 졸업한 17살 이미정(가명)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선생님께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졸업을 앞둔 몇 일 전, 학교에서 정말 속상하고 힘든 일을 겪어서 도움을 청하기 위함입니다. 3년간 학생회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학교의 부당함과 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너무나도 많이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재작년 2월 중순 즈음에 신축강당에 화재가 나는 큰 사고가 있었는데 그때 학교의 행정실과 교장선생님은 학생들이 전화를 수십통을 함에도 8시간이나 연락이 두절된 후에야 연결이 되었고, 바다 근처인 학교가 비로 침수되었을 때 부산시 전역에 휴교령이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생들이 등교를 한 후에야 휴교 공지가 내려져 비를 흠뻑 젖어 다시 돌아오는 일도 있었습니다....‘
‘학교에는 민주주의가 없다’는 말은 아직도 유효하다.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이란 학생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표현될 수도 있다. 전교 학생회 부회장을 맡은 학생이 3년간 학교생활을 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생각들을 진솔하게 교지에 썼다면 학교는 오히려 그런 학생의 마음을 이해하고 격려해야 하는 게 학교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대부분의 단체가 그렇지만 학교도 내부현실의 비판을 수용할 만큼 여유도 없거니와 용납할 만큼 민주적이지도 못하다.
교지(校紙)란 ‘학생들이 펴내는 잡지’다. 대학은 예외지만 초·중·고의 교지는 학생들이 단독으로 펴내기 어렵기 때문에 교지편집을 하는 교사가 맡아서 만든다. 이렇다 보니 천편일률적으로 학교장이나 학교운영위원장 그리고 지자체 단체장의 교훈적인 내용이 담기고 그 다음 학교의 홍보를 위한 사진 혹은 학교자랑으로 채워져 정말 인기 없는 홍보성 책자로 만들어지곤 했다. 그래서일까? 최근에는 학교에 따라 학생들의 다양한 쓴소리나 앙케이트 혹은 색다른 경험도 가감 없이 담는 특색 있는 교지로 만들기도 하는 학교가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H중학교는 어떤가?
‘또 크고 작은 지진이 있을 당시 학교 학생은 물론 선생님들도 지진을 느끼고 재난문자가 발송이 되어 운동장으로 대피하려는 학생들을 막아서며 다시 교실로 올라가 방송이 나올 때 까지 대기하라고 지시를 한적도 있습니다. 이렇게 저를 비롯한 학생들의 학교에 대한 원망은 점점 쌓였고 저는 학생회 임원으로서 친구, 후배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었습니다.
이런 글이 학교를 망신시키는 문제학생이 쓴 글로 보일까? 시비를 가리고 비판의식이 생기는 학생의 성장을 오히려 칭찬하고 지원해 줘야 하는 것이 학교가 해야할 일이 아닌가? 학교는 이미정(가명)학생의 이런 글을 한마디의 상의도 없이 고치고 지웠다. 자기 글 같지 않은 글이 사진과 함께 올라간 교지를 본 학생은 학교에 항의을 하자 이번에는 또다시 말도 없이 학생의 글을 백지로 덮은 채로 발간해 학생들에게 배포하고 말았던 것이다.
학생의 글을 좀 더 보자. ‘처음 학생회에 몸담으며 학교를 바꿔보고 싶었고 정말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지만 학교에서는 좀처럼 저희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고 그로 인한 자괴감은 굉장히 컷습니다. 그렇게 허무했던 3년이 지나 졸업을 앞둔 12월, 학교에서는 학생 대표로 전교생에게 배부될 교지에 실을 글을 쓰라고 지시를 하였고, 그간 제가 앞서 말하였듯이 학생들에게 느낀 미안함과 학교를 떠나며 다음 학생들과 임원친구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들을 섰습니다.’
중학교 졸업하는 학생이 쓴 글 정도라면 학생의 주장이 학교의 시각에서 맘에 들지 않더라도 그 모습 그대로가 얼마나 대견스럽고 장한가? 중학교 졸업생이 학교를 사랑하는 맘에서 비판적으로 쓴 글이 맘에 들지 않는다면 글을 쓰기 전 사전 지도를 하는게 옳다. 또 학생이 쓴 글이 학교의 제작의도와 다르다면 학생과 상담을 통해 스스로 수정하도록 하는게 순리가 아닌가? 그런데 학생과 한마디의 상담도 없이 고친 글을 실었다고 항의하자 백지로 덮어 공백상태로 발행한 것은 저작권의 침해요 학생인권에 대한 폭력이다. 왜 당당하게 자기주장을 한 학생이 왜 문제아 취급을 받아야 하는가?
<원고를 수정했다고 항의하자 학생의 글을 삭제하고 발간한 교지>
‘하지만 배부 하루 전 본 교지에는 제가 메일로 발송한 저의 글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내용이 쓰여져 있었고 학교에 강한 항의를 하였으나 '사회부적응자처럼 왜 그러냐',' 다 널 위한 일이였다.',' 학교 이미지를 생각하여라.' 등등 이였으며 저는 너무 화난 나머지 그렇다면 우원본을 저의 개인 sns에 올리겠다고 하였고, 선생님은 저에게 ’입 다물어라‘ 같은 말도 하셨습니다.
세 분의 선생님과 이틀에 걸쳐 계속 실랑이를 한끝에 하얀 스티커종이로 가려 배부하게 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그냥 학교에 불만 많아 반항하는 학생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결코 이유 없는 반항은 아니었습니다. 항상 제 뜻을 지키고 싶었고 학생대표로서 책임감을 느꼈으며 미운털이 박히더라도 목소리를 내고 싶었습니다....’
‘가만있어라,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라는 것은 교육이 아니라 순치요, 폭력이다. 개성과 소질 그리고 특기를 살려 창의적인 사고와 가치관을 갖도록 이끌어 주는 교육. 그것이 4차산업혁명시대에 학교가 길러내야 할 인간상이 아닌가? 잘못은 학교가 저질러 놓고 학생을 문제아 취급하는 것이 교육하는 학교가 할 일인가? 학교는 이미정(가명)학생과 부모에게 진심어린 사과와 함께 부모와 학생이 납득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학생과 학부모의 인권을 짓밟고서야 어떻게 학교가 교육다운 교육을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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