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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변증법으로 세상 읽기

by 참교육 2009.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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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붕 두 가족’으로 지내오던 민주노동당이 창당 8년 만에 결국 딴 살림을 차렸다. 보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분분하겠지만 이념정당을 지향하는 두 정파의 성향으로 볼 때 갈 길을 갔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며 나선 진보세력들이 왜 분당이라는 최악의 사태로까지 치닫게 됐을까? 민주노동당 안에는 크게 자주파를 분류되는 민족해방(NL)계열과 평등파로 분류되는 민중민주(PD) 계열이 공존해 왔다. ‘평등세상을 만들자’는 목적은 같지만 NL계열은 한국 사회의 모순은 분단에, PD 계열은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에 있다고 보는 시각의 차이 때문에 분당이라는 수순을 밟게 된 것이다.

 ‘겉 다르고 속 다르다’는 말이 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철학이나 신념 따위는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는 기성 정치인에 비하면 민주노동당의 분당은 신선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왜 유권자들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이념정당을 선호하지 않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치뿐만  아니라 사회현상을 본질이 아닌 현상을 두고 해석하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판단의 근거를 ‘모든 현상들은 서로 연관되어 있고 변화 한다’는 관점이 아니라 현상과 본질을 혼돈하거나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주관적으로 해석하려 한다.

 신자유주의라는 광풍이 세상을 뒤덮고 있다. 시장질서에 따르자는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다 보니 도덕이나 윤리 같은 것은 뒷전이 되고 ‘나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선’이라는 가치관이 판을 치고 있다. 자유니 효율이니 하는 이름으로 포장된 이러한 가치관은 겉으로는 공정한 경쟁을 표방하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강자의 논리, 힘의 논리가 숨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국제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혹은 자본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고 있는 것이다. 정경유착으로 탈세를 일삼거나, 혹은 부동산 투기로 치부를 하거나 남의 논문을 표절해 명망가가 되건 상관없이 결과만 선(善)이면 승자가 되는 풍토다.

 원칙과 기준이 없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사리를 판단하려 한다. 나에게 이익에 되면 상대방에게 손해를 줄 수도 있고 내가 편하면 상대방에게 불편을 줄 수도 있지만 변화와 연관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그런 건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사회화 기관인 학교는 이렇게 이기적인 사람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가치관을 갖도록 변화시켜야 하지만 판단의 기준이 되는 철학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 나에게 이익이 되면 선(善)이요, 불이익이면 악(惡)이 되는 가치관. 나와 경쟁상대는 적이 되도록 가르치는 학교는 지금 어떤 인간을 양성하고 있는가?

 경직된 눈으로는 객관적인 세상을 볼 수 없다. 사회 양극화가 왜 생기는지. 복지정책을 포기한 나라에서 약자는 왜 운명론자가 되는지... 신자유주의 바람 앞에는 교육도 언론도 침묵을 미덕으로 포장한다. 강자가 만든 질서를 정당화하고 현실에 순응하는 것만이 안정이 아니다. 동물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막가파식 힘’이 정당화되고 그것이 ‘능력’으로 평가되는 사회에서는 약자는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다. 사회양극화조차 변화와 대세로 인정하는 사회분위기에서는 자본의 논리만이 정당성을 가지게 된다. 이제 탈이념의 시대를 사는 현대인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변화와 연관이라는 변증법으로 세상을 보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 이 기사는 2008년 3월 창원대 학보 479호 '세상읽기'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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