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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례 없는 결혼식 보셨어요?

by 참교육 2009.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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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백도 않기로 했는데 주례도 없이 양가 어른들이 덕담으로 대신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막내 아들 결혼식을 의논하다가 아들이 내놓은 제안이었다. 신방과를 나온 덕택인지 아니면 애비의 비판적 사고를 닮았는지 가끔 엉뚱한 제안을 해 ‘그래도 대학을 헛 나온 게 아니구나.’ 하고 생각해 오던 터였다. 평소 은사들이 해주는 주례도 부담스럽다고 예식장에서 주례비 5만원을 주고 구색 맞추기 하는 주례를 탐탁지 않게 생각해온 나다.

                       <2월 14일 서울 중림동 '라운지 W'에서 결혼을 한 며느리와 아들 사진>
 

내가 먼저 제안했으면 오히려 거부반응을 보였을 텐데 아들이 먼저 제안해왔으니 한 마디로 ‘좋다'고 승낙해버렸다. 그러나 덕담을 주문하는 과정에서 사돈이 부담스러워 한다는 후문이었다. 고민을 하다 ’그렇다면 사돈은 아이들에게 성혼선언을 받기로 하고 가끔 남의 주례를 봐 주기도 했던 내가 하지 뭐!‘ 일은 생각보다 쉽게 진행됐다. ’주례 없는 결혼식!‘ 결혼식에 적게 참여하지도 않았던 나도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주례 없는 결혼식. 그래 한 번 해 보는 거야. 사람들은 형식에 얽매 그걸 금과옥조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걸 깨야지....

우리는 변혁을 추구하면서 거창한 정치운동이나 여성운동, 교육운동을 혼신의 노력을 다하지만 생활주면에서 고쳐야 할 일에 대해서는 관심에 소홀해 왔다. 헤어져 살고 있는 가족들이 만나기 위해 전체 인구의 3분의 1일이나 되는 인구가 고향을 찾는 민족 대이동(?) 문제가 그렇고, 산사람들의 공간조차 부족한 땅에 봉분을 하는 묘제며,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려는 장례문화가 그렇다. 겨우 일면식밖에 없는 사람까지 초청해 성대한 결혼식을 올려야 능력 있는 부모가 되는 혼례문화며 결혼 상대자를 찾는데 학벌이며 돈이 전제조건이 돼야하는 풍토 또한 그렇다.

생활주변에서 계속되고 있는 전근대적인 문화개선은 어쩌면 사소한 문제 같지만 이런 전근대적 문화를 빌미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사이비 정치인들의 숙주[宿主, host]가 되기도 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교육운동을 한다면서 살아온 내가 그런 사소한 전통에 연연할리 없다. 아예 바꾸는 김에 우리전통도 서양문화도 아닌 폐백까지도 없애자. 사돈끼리 주고받는 예물도 없애자... 이렇게 생략생략하다 보니 혹 사돈댁에서 ‘신랑이 무슨 약점이 있는 게 아닐까? 오해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으나 다행히 생각이 깊은 분들이라 양해를 해 주시기로 해 계획대로 추진할 수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아예 새로운 결혼 모델을 만들고 싶은 생각도 없지 않았으나 이정도로 잘못된 전통을 조금씩이라도 바꿔 나간다면 새로운 문화를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했다. 그런데 막상 덕담을 하기로 해놓고 보니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겼다. 아들에게 들려주는 덕담의 용어선택이며 하객들의 반응도 걱정이 안되는 게 아니었다. 그렇지만 어차피 시작한 일. '망서릴 이유가 없다' 생각하고 대충 준비 했는데 막상 덕담을 하면서는 버벅거려 아내로부터 핀잔을 받기도 했다.

결과는 예상 외로 좋은 편이었다. 서울에서 마산까지 여섯시간이나 걸려 돌아오면서 버스 안에서 자연스럽게 평가가 이뤄졌다. ‘나도 아이들 결혼 때 선생님처럼 그렇게 하고 싶다’ 그런 얘기도 나왔고 ‘주례 없는 결혼도 가능 하구나...’ 하는 게 여러 분들의 반응이었다. 신랑신부와 잘 알지도 못하는 사회적인 저명인사, 명망가를 주례로 세워야 권위 있는 결혼식(?)이 된다는 위선을 깰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인 셈이다. 허례허식으로 가장된 문화, 사구려 상업주의로 포장된 국적없는 문화가 전통의 가면을 쓰고 있는 잘못된 관행을 깨는 일. 작은 것부터 실천을 통해 변혁의 열매를 맺어 나가는 것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첩경이 아닐까?

<아버지가 아들과 며느리에게 들려 준 덕담>

봄기운에 만물이 약동하는 오늘 같이 좋은 날, 자리가 높습니다만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우리 아이들 성혼식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모든 부모들의 한결같은 소원이기도 하지만 자녀들이 무탈하게 자라서 이렇게 새 가정을 꾸리는 일은 부모로서 더 없는 행복이요,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별히 엄격하면서도 자상하고 사려 깊은 사돈어른의 가문과 혼약을 맺게 된 것을 저는 큰 기쁨으로 알고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그리고 오늘부터 새 식구가 된 아가야!

사람들은 누구나 나이가 차면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고 살아가는 게 삶의 과정이요, 절차라고 생각들 한단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어떤 가정을 꾸릴 것인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따라 삶의 질이나 양식은 천차만별의 차이가 나기 마련이란다. 생각해 보렴! 산과 들에 피는 이름 없는 꽃들도 나름의 색깔과 향기를 지니듯, 사람들도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냐? 그랬지? 사람들은 아는 만큼 보이고 자기 수준만큼 누릴 수 있다고....

어떤 가치관과 세계관과 철학을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 삶의 양식이나 삶의 질은 하늘과 땅 만큼 차이가 난단다. 별 의미도 없이 아무렇게나 살 수도 있고 한 차원 높은 고상하고 행복한 인생을 만들 수도 있다는 얘기이지. 겉보기는 똑 같은 인생을 사는 것 같지만 자기의 청학에 따라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거란다. 결국 부부가 만드는 가정이란 자기 수준만큼 행복해 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거라. 행복한 가정을 꾸릴려거든, 자기 색깔의 삶. 스스로 자기 인생에 책임을 지는 창조적인 삶을 살기를 바란다.

또 한 가지. 부부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부부란 각기 다른 환경과 조건에서 만나 다름을 조화시켜 나가는 사람보금자리를 만들어 나가는 주체요, 인격체의 만남이란다. 행여나 ‘오늘부터 우리는 부부가 됐으니 우리 똑같은 생각과 행동을 하며 살자’ ‘당신은 내 아내니까, 당신은 내 남편이니까 나와 같은 생각을 해야 한다고 착각하지 말거라. 다시 말하면 서로가 성이 다르고 살아 온 환경이나 전공하면서 살아온 분야도 가치관도 각각 다른데 하루아침에 똑같아 질 수는 없는 거란다. 부부란 모름지기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다름을 하나로 조화시켜 행복을 만드는 마술사와도 같은 거란다. 어쩌면 그런 진리를 터득하고 실천하는 것이 행복한 가정과 성공한 부부가 되는 비결이라는 걸 잊지 말거라. 남자가 여자다워지거나 여자가 남자다워지는 것이 아니라 여자는 더 여자다워지고 남자는 더 남자다워지는 것. 아내는 아내다워지고 남편은 남편다워지는 것. 그것이 보다 평등한 가정,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지름길이라는 걸 잊지 말거라.

마지막으로 사랑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평생 넉넉하게 사용해도 모자라지 않는 사랑을 선물로 주셨단다. 진정한 사랑이란 뭘까? 너희들이 살아가면서 느끼겠지만 사람들에게는 늘 즐겁고 행복한 일만 만나면서 사는 게 아니라 기쁜 일, 만나기 싫은 일도 만나면서 살아야 한단다. 성서에도 그랬지?

「사람이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나 다름 없다고...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않으며

자랑하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으며

무례하지 않고 자신의 유익한 것만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살다가 힘든 일을 만나거든 참고 견디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대신 아파해 주는 사랑과 지혜로 극복해 나가거라. 너희들 곁에는 오늘 이 자리를 빛내주기 위해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축복해 주러 오신 분들의 뜨거운 관심과 사랑이 있다는 것도 잊지 말거라.

애비는 오늘 이 자랑스러운 시간이 있기까지 단 한 번도 부모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달려온 대견스럽고 자랑스러운 너희들을 믿는다. 부디 주위의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아름다운 가정의 주인공이 되거라! 축하한다! 사랑하는 아들아 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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