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의 목적이 ‘자연 속에 숨겨진 비밀을 찾아내는 것’이라면 사회과학은 ‘사회 속에 숨겨진 비밀을 찾아내는 것’이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과학은 가치중립적이고 시공간적 보편성, 필연이나 인과의 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에 명확한 자료만 확보된다면 검증이 쉽다. 그러나 사회과학의 경우는 많이 다르다. 사화과학은 가치함축 적인데다 시공간의 특수성이나 개연성과 확률의 원리가 지배하기 때문에 명확한 결론을 도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사회과학에서 ‘연인의 사랑의 정도’를 측정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실증적 연구방법으로 접근할 경우 ‘일주일 간 전화 통화 횟수와 데이트의 빈도’를 조사한다. 통회횟수로 사랑의 깊이를 모두 알 수는 없지만 사회과학에서는 자료 수집 방법의 하나로 이렇게 수치로 나타내는 작업을 ‘개념의 조작적 정의’라고 한다. ‘개념의 조작적 정의’란 아무리 완벽하게 조사했다 치더라도 ‘연구자의 편견 개입 가능성’이나 ‘응답자의 불성실한 응답 가능성’, ‘통계처리의 문제점’을 완벽하게 극복하고 원하는 답을 얻어내기는 쉽지 않다.

‘잘산다, 못산다’든지 ‘교회의 신자들의 신앙심이 얼마나 깊은지...’ 또는 ‘학생의 성적이나 지능지수’와 같이 양적인 수치로 객관화시키기 위해 연구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개념의 조작정의다. 그러나 아무리 개념을 조작해 수치로 정의한다한들 완전무결할 수는 없다. 대표적인 예가 IQ와 같은 조작된 개념에 대해 오해와 편견이 그것이다.

사람의 두뇌를 수치로 개념 조작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한계를 가지고 있었지만 IQ Test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우수할 수 없다는 편견을 가진 ‘터먼’이 지능검사도에서 늘 여성이 남성보다 높은 점수를 보이자, 여성에게 이롭다는 느낌이 드는 항목을 빼버렸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미국의 물리학자 윌리엄 쇼클리가 벌인 해프닝에서 볼 수 있듯이 IQ는 결국 백인이 흑인보다 우세하다는 인종주의 이론을 정당화시키는 논리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IQ만능의 오해’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IQ만 그런 게 아니다. 소수점 몇 점 차이로 인생의 운명을 바꿔놓는 수능점수나 내신 성적은 어떤가?

교육의 목적이 암기한 지식의 양으로 서열화시킬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교육자는 물론 부모들까지 자식의 점수 몇 점에 명운을 거는 도박에 가까운 경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세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나나 학자들은 과연 점수라는 개념의 조작적 정의가 인간의 품성이나 인격의 척도를 가늠하는 절대적인 수치라고 믿고 있는 것일까?

전국 시ㆍ도교육감협의회에서 내년부터 중학교 1ㆍ2ㆍ3학년을 대상으로 내년부터 신학기초와 2학기 말 두 차례에 걸쳐 학력평가를 실시할 것을 결정했다고 한다. 교육감들이 진정으로 교육자적인 철학과 소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학력평가가 몰고 올 후폭풍을 한 번 쯤 생각해봤어야 옳다. 그러나 교육감을 비롯한 교육부장관은 그나마 정착하기 시작한 평준화를 포기하고 연합고사를 치르겠다고 나서는가하면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인구유출을 방지한다면서 공립학원까지 세우고 있다. 이들이 금과옥조로 생각하는 성적 지상주의는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연합고사가 시행되던 1974년 이전, 중학교는 밤 10시까지 경쟁적인 보충수업을 했는가 하면 개인별 학급별 학년별, 학교별 지역별로 서열을 매겼다. 사람의 가치도 담임의 능력도 학교나 지역의 가치조차 점수로 서열을 매겼던 것이다. 당연히 교육은 뒷전이 되고 점수 몇점을 더 올리기 위해 교실을 감옥으로 만들었던 지난날의 고통을 재현하자는 연합고사 부활은 올바른 판단인가?

성적 만능주의는 점수 몇 점 때문에 아파트에서 뛰어 내리는 학생이 있는가하면 교육목표는 뒷전이 되고 응시과목 문제풀이로 교육은 뒷전이 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초등학교에서부터 시험 준비에 매몰되고 일류 중학교, 일류고등학교가 생겨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백번 양보해 개념을 조작한 점수가 중요하다고 치자. 그러나 오늘날의 세계는 아날로그가 아닌 디지털시대다. 세계화를 주장하고 국제경쟁력을 위해 창의력을 말하면서 아날로시대로 회귀하자는 교육자들은 시대감각도 없는 청맹과니인가? 청년실업문제가 만연한데 대학을 나와 취업할 수 있는 길은 교사나 의사, 바늘구멍만한 재벌회사 정도다.

우수인재가 고시나 공무원 준비에 목숨을 거는(?) 기현상을 언제까지 두고 볼 것인가? SKY가 인생의 목표가 아니라 대학을 다양화해 적성과 소질에 맞는 일감을 만들어 줘야겠다는 생각도 못하는 교육자들 때문에 청년들의 방황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추신 : 2007년 9월 30일 썼던 글입니다.

전국단위 일제고사를 강행하고 이제는 전교조와 단협까지 폐지하겠답니다.
철학이 없는 정책!
일개 평교사도 예측할 수 있는 일을 교육부 관료들이 저지르고 있다니 ...
우리나라에서는 10년 후에 다시 읽을 수 있는 글이 아닐런지요?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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