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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관련자료/교육칼럼

병영체험이 교육이라고... 정말?

by 참교육 2013.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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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아버지가 전쟁놀이를 하고 있다. 아들이 총을 들고 아버지를 향해 “팡팡...”하고 쏘면 아버지는 아들의 총에 맞아 넘어져 죽는 시늉을 한다. 이런 모습은 우리 가정 어디에서나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아버지를 총을 쏴 죽이는 아들, 아들의 총에 맞아 죽어가는 흉내를 내는 아버지....

 

 

북유럽의 경우에는 평화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아예 나라에서 장난감 무기를 제조 판매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어린아이에게 살상무기로 살인을 하는 훈련(?)을 하도록 허용하는 정부나 그런 장난감을 사주는 부모들도 있다.

 

장난감뿐만 아니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폭력 앞에 무방비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 시중에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볼 수 있는 게 현실이다. 휴먼 서바이벌, 가창력, 창의력, 재능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교육라는 이름으로 어린이들에게 무방비상태로 침투하고 있는 비디오 테이프나 CD 중에는 몸서리치는 경쟁과 살상, 증오와 살인의 서바이벌을 주제로 한 영화들까지 앞 다투어 등장하고 있다.

 

학교에 근무할 때 일이다. 수능이 끝난 고 3교실에는 수업이 어렵다. 그래서 좋은 영화를 몇 번 보여줬던 일이 있다. 어느날 수업에 들어갔더니 “선생님, 오늘은 저희들이 가져 온 CD를 보면 안 될까요?”한다.

 

학생의 제안에 내용도 모르고 그렇게 하자며 허락했던 게 화근이었다. 학생들이 가져온 영호를 보다가 나는 너무 놀라 보고 있던 영화를 중지시켰던 일이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영화는 2000년에 제작 시중에 상영돼 인기(?)를 누렸던 ‘배틀로얄’이라는 일본 영화였다.

 

이 영화는 ‘심각해지는 학급붕괴와 범죄에 노출된 청소년들에게 이런 혼란상을 극복할 수 있는 강력한 생존 능력의 소유자로 만들어 준다는 명분으로 제작된 영화다. 영화의 줄거리는 '신세기교육개혁법(BR법)'이 공표되면서 시작된다. 전국의 중학교 3학년 중에서 매년 한 학급을 행동범위가 제한된 일반인이 없는 장소에 이동하여 한 사람씩 지도와 일정의 음식, 그리고 여러 가지 무기 중 한가지씩을 나눠 주고, 마지막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서로 죽이게 한다는 법률이다.

 

제한시간 3일 동안, 위법 행위에 구애 받지 않고 서로를 죽이되, 규칙을 어길 경우에는 특수 목걸이가 폭파하여 목숨을 잃게 된다. 수학여행을 위장하여 무인도에 도착한 학생들은 마치 게임처럼 진행되는 상황에 경악하지만, 생존을 위해 결국 서로의 목숨을 빼앗기 시작해 마지막 한사람이 남을 때까지 친구를 모조리 죽여야만 살아남는 살인게임이다.

 

 

이런 영화를 만든 일본인들의 정신 상태도 문제지만 이런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해 준 문화체육관광부는 왜 이런 영화를 수입허가 해줬을까? 배틀로얄뿐만 아니다. 2008년에 제작, 수입된 데스 레이스, 10억(2009), 토너먼트(2009), 헝거 게임(2012)도 내용이 비슷하다. 청소년들이 이런 영화에 심취했을 때 어떤 심성을 가진 인간으로 성장할 것인지 생각해 봤을까?

 

이런 분위기 때문일까? 근래에는 초중고생들의 병영체험 캠프가 유행이다. 방학 때만 되면 가정이나 학교에서 아이들의 인내심을 키워 강인한 사람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의도로 군부대나 민간단체에서 하는 병영체험 캠프가 성황이다. 지난 7월 19일, 충남 태안 해병대 체험훈련장에 집단 입소한 공주사대부고 학생들 중 다섯명의 학생들이 사망한 사건 후 다소 주춤하긴 했지만 아직도 병영체험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강행하고 있는 것이다.

 

병영체험이 정말 교육적으로 필요한 행사일까? 병영체험교육이란 ‘애국심 고취’와 ‘건전한 통일·안보관 확립’ 혹은 ‘극기’, ‘체력단련’, ‘리더십 형성’이라는 명분으로 교육청과 학교, 그리고 부모가 함께 만든 행사다. 시행부대에서는 “학생들의 올바른 국가관 확립을 위한 시책”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초등학생이나 청소년들에게 이런 훈련이 과연 교육적이거나 건전한 통일관에 도움이 되기나 할까?

 

병영체험에 참여하는 대상은 어린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다. 군복을 입고 약간의 장비를 갖추고 참여하는 이들 학생들에게 하는 교육이란 어떤 내용일까? 주최하는 군에서는 지금까지 쉽게 접해 보지 못한 장비를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하자며 총검술, 각개전투 등 ‘재미있고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고 홍보하고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안보의식 및 건전한 국가관을 배양을 위한다면서 천안함 홍보동영상을 보여주기도 하고 전투기와 소총, 대포와 장갑차아 같은 군장비나 살상무기 체험을 시키기도 한다.

 

어떤 병영체험단체에서는 '특공무술 시범, 장비견학, 레펠(하강훈련) 등 공수지상 훈련, 야간행군, 낙하산 끌기, 화생방, 나라사랑 프로그램(태극기 그리기, 애국가 4절 쓰기 등), 은거 훈련'까지 받게 하고 있다. 페인트 총탄이지만 소총으로 사격훈련까지 하는 병영체험도 있다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어린 초등학생이 군복을 입고 군모나 방독면을 쓰고 총검술을 익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초등학생들이 군교관의 지시에 따라 ‘단결’과 ‘애국’을 외치면서 하는 극기 훈련이 정말 교육적일까? 군에서 일방적으로 만든 군 관련 홍보물을 정신훈련이라는 이름으로 상영해 어떤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가? 또 한가지 놀라운 사실은 군대에서 혹은 민간단체가 주관해 운영하고 있는 이 병영체험은 ‘사실보도’는 할 수 있어도 비평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군사기밀도 아니면서 언론통제까지 받는 병영체험을 꼭 받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유신정권시절 학교에서는 교련이라는 교과목이 있었다. 군복을 입은 교련교사들이 어린 여학생까지 연병장(운동장을 교련시간에는 그렇게 불렀다)에 집합시켜 제식훈련이며 방독면, 응급처치 훈련까지 시켰는가 하면, 경진대회를 열어 우수하교를 선정 표창하기도 했다. 군사정권이 끝나고 교련과목은 학교에서 사라졌지만 이제 교련대신 병영체험이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는 것이다.

 

 

진보정의당 정진후 의원이 최근 5년간 병영체험캠프 운영 현황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최근 5년간(2009∼2013학년도) 병영체험캠프에 참여한 학교는 총 1,375개교로, 참여한 학생 수는 20만 7,434명으로 나타났다. 연도별로 보면 병영체험캠프에 참여한 학교가 84개교(2009학년도)에서 515개교(2012학년도)로 6.1배(431개교) 증가했고, 참여한 학생은 16,947명(2009학년도)에서 67,129명(2012학년도)로 4배(50,182명)나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병영체험 캠프에 참여한 초·중·고등학생들은 유격훈련, 군장체험, 행군 등과 같이 일반 군인들이 군대에서 받는 훈련을 고스란히 재현해온 것이다. 재향군인회에서 실시하는 ‘나라사랑 병영 종합체험학습’과 군부대에서 실시하는 ‘나라사랑 현장견학’프로그램에는 유격훈련이나 행군, 제식훈련 등이 포함돼 있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와 같은 재향군인회의 ‘나라사랑 병영 종합체험학습’과 군부대에서 실시하는 ‘나라사랑 현장견학’프로그램을 교육부, 교육청 등 교육당국에서 일선 학교에 공문을 보내 참가를 권유해 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중 ‘나라사랑 병영 종합체험학습’의 경우, 지난 2년 동안 초등학생 3,973명, 중학생 1,629명 고등학생 874명 등 참여 학생이 무려 6천5백여 명에 이르렀다. 학생들에게 평화교육은 못할망정 군사교육을 시켜 어떤 인간을 만들겠다는 것인가?

 

군사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폭력’을 숭상하는 ‘군사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명령을 따르는 복종을 강요하는 군사문화는 합리적 판단과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마비시킨다. 군사문화는 군대의 가치와 원리가 병영을 벗어나 민간사회에 침투해 국가주의를 강요하고 개인의 판단이나 의사는 배제된 채 집단성과 충성만을 요구하게 된다. 폭력에 순종하는 가치관을 키워 줄 병영체험교육은 중단해야 한다. 평화보다는 전쟁을 지향하는 가치관을 심어 어떻게 민주적인 인간을 양성하겠다는 것인가?

 

< 이기사는 '맑고 향기롭게 11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 이미지 출처 : 오마이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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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지음/생각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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