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원단체/전교조

전교조, 법외노조로 바뀌면 해체될까?

by 참교육 2013. 10. 29.

“선생님!”

선생님이라니? 여기가 어딘데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다니... 수갑을 채우고 그것도 모자라 포승줄에 칭칭 묶여 검사실에 조사를 받으러 간 나에게 느닷없이 젊은 여성이 나를 보고 한 말이다.

 

그 곳에는 나와 같이 수갑에 포승줄까지 묶인 또 한명의 여성이 조사를 받다 머리가 허연 남자가 들어오는 걸 보고 힐끗 쳐다보다 마찬가지로 “선생님!”하며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며 어쩔 줄 몰라 한다.

 

 

검사실에서 타이피스트로 일하고 있던 여성도 또 수갑에 채워 조사를 받고 있던 여성도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졸업생이었다. 자신이 졸업한 학교 선생님이 그것도 수갑에 포승줄까지 묶여 나타났으니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검사실에서 타이피스트로 취업해 있는 제자는 울며 어쩔 줄 모르다 사무실을 뛰쳐나가고 수갑에 포승줄까지 묶인 제자는 나를 쳐다보고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뒤에 안일이지지만 이 제자는 노동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미제침략사’라는 책 소지를 ‘이적찬양고무죄’로 끌려와 조사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벚꽃이 한창 흐드러지게 피던 4월 어느 날. 당시 전교조 경남지부장 이영주선생님과 부지부장을 맡았던 안족복 그리고 사무국장을 맡고 있던 이인식, 그리고 김용택은 창원경찰서 지하 유치장에서 끌려가 알몸수색까지 당하고 교도소에 수감된 사연은 전교조 간부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새학기가 시작된 1990년 3월. 경남의 67명 해직교사를 비롯한 전교조 교사들은 고영진교육감에게 산적한 교육문제와 비리척결을 주장하며 경남도교육청에 대화를 하자며 찾아 갔다.

 

박정석 당시경남교육감은 찾아간 선생님들과의 대화는커녕 교사들이 마치 파렴치범이나 폭력배라도 된다는 듯 경찰을 불러 폭압적으로 끌고 가 고발까지 했다.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 앞에 맨손으로 찾아간 우리들을 팔을 비틀리고 허리를 꺾여 끌려가 창원경찰서 지하실에 처넣었다. 3월이라고는 하지만 경찰서 지하실에는 냉기가 서렸지만 잡혀간 선생님들은 누구하나 두려워하거나 의기소침한 사람이 없었다. 교도소로 이감된 우리 네사람들은 그렇게 포승줄에 묶여 중죄인이 되어 조사를 받으면서 제자들을 울렸던 것이다.

 

전교조 출범 비사를 말하려면 밤을 세워가며 해도 다 못한다. 1989년 여름. 전교조에 가입해 탈퇴 각서에 도장을 찍지 않는다는 이유로 해직된 교사들.... 전교조를 지켜야 한다는 선생님들의 열정은 그 뜨거운 열기보다 더 뜨거운 분노가 되어 명동단식농성장으로 몰려들었다. 더 이상 아이들 앞에서 10월 유신은 한국적민주주의며 불의한 사회에 침묵하는 게 미덕이며 민족의 반쪽을 적으로 취급하는 반교육, 반통일 교육을 할 수 없다며 그렇게 전교조는 결성됐고 전교조는 그래서 지켜냈다.

 

 

빛은 어둠과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일까?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정권을 장악한 노태우군사정권은 전교조라면 이를 갈았다. 옳은 것은 옳다하고 틀린 것은 틀렸다고 가르치겠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전교조는 군사정권에게 눈에 가시였다. 1600여명의 조합원 교사들은 정당한 절차도 없이 혹은 중죄인이 되어 끌려가고 짓밟히고 그렇게 교단에서 쫓겨나 거리의 교사가 되어 학교민주화, 사회민주화를 뛰어 다녔다.

 

폭력을 당하면 두려워하고 물러서는 게 인간의 보편적 심리다. 그런데 전교조 교사들은 두려움이 없었다. 교단에서 파면당하고 감옥에 갇히고 짓밟혀도 물러설 수 없었던 것은 아이들에 대한 믿음과 사랑 때문이었다. 교사이기 때문에 양심을 지켜야 하고 교사이기 때문에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신념, 그것이 우리들을 지키는 힘이요, 신앙이었다.

 

참으로 순진했던 선생님들이었다. 정직과 근면, 성실을 가르치던 선생님들이었기에 권력을 부당하게 행사하면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옳은 일이기에 물러설 수 없었고 부끄럽지 않은 일이기에 당당했던 것이다.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권력을 장악한 군사정권은 제자들 앞에서 정의를 가르치고 진실을 말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교사들의 요구를 파면과 직권면직을 맞섰다. 온갖 탄압과 억압에도 불구하고 지켜 낸 전교조는 1999년 합법화된 후에도 참교육의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전교조가 걸어 온 길...

 

참교육 실현이라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전교조는 온갖 탄압을 무릅쓰고 일어나 학교운영의 투명화와 민주화 실현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경쟁과 통제위주의 교육정책에 맞서 교육관계법 개정과 정책개발, 사학민주화투쟁 그리고 교육 대안을 마련하며 오직 한길을 걸어왔다. 이러한 전교조의 노력으로 지금 학교 현장에는 촌지문화가 사라지고 채용기부금 근절운동을 벌여 사립학교법 개정을 이루어내기도 했다.

 

 

또한 수업 혁신을 추구하는 혁신학교도 전교조 교사들이 주축이 돼 나온 최근의 성과다. '입시위주, 획일적인 교육에서 벗어나자'는 취지로 도입한 혁신학교는 현재 전국적으로 총 575곳이 운영되고 있다. 그밖에도 학교현장의 권위주의 척결을 비롯해 '심야자율학습 금지' 등 강제적인 보충ㆍ자율학습 폐지도 전교조가 노력해 이룩한 성과다.

 

빛과 어둠은 공존할 수 없다고 했던가? 태생적인 한계를 안고 있는 새누리당과 박근혜정부는 처음부터 전교조와는 공생할 수 없는 관계일 수밖에 없었다. 1999년 교원노조가 합법화 된 지 14년. 25년을 지켜 온 전교조. 그것이 교사로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길이기에 전교조는 그 길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 박근혜정부는 이러한 전교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이해관계에 배치된다는 이율 또 다시 불법딱지를 붙여 거리로 내몰았다.

 

처음부터 조합원 9명을 조합원 자격 운운한 것은 전교조를 해체하기 위한 명분 쌓기에 불과했다. 박근혜대통령이 전교조를 거리를 내 몬 것은 그의 아버지 박정희가 못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일까? 4.19혁명 정부를 무너뜨리고 집권한 박정희정권은 영구집권을 꿈꾸던 유신헌법제정과 12.12를 맞기까지 전교조의 민주화투쟁이 곱게 보일 리 없다. 결국 태생적인 한계를 갖고 있는 박근혜정부는 ‘법외노조’라는 선물을 전교조에게 안겨 준 것이다.

 

다시 법외노조를 선택한 전교조. 전교조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명박정부도 감히 못한 전교조 축출을 박근혜는 해냈다. 그들은 승리에 취해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까? 착각은 자유다. 전교조 법외노조화 통보 후 극우에 가까운 신문을 비롯해 비교적 온건한 보수성향의 신문까지 학교운영의 투명화ㆍ민주화와 촌지 추방·체벌 금지·사학비리 근절 등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하고 정부의 정책에 경고를 하는 등 비판하고 있다.

 

전교조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1600여명의 교사들이 해직까지 당하면서 지켜낸 전교조가 박근혜정부의 탄압으로 무너지지 말 것인가? 단언컨대 전교조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합법이면하고 불법이면 하지 않는 참교육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는 상근 조합원의 현장복귀며 사무실 임대철회라는 경제적인 탄압까지 가하겠지만 전교조는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사랑하는 아이들 곁으로 한 발 더 다가서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교육자의 길이요, 제자사랑의 실천이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어제(10. 28일 17:00) 경남교육청 가자실에서 '전교조를 사랑하는 원로교사 일동 명의로 발표한 기자회견문'입니다.)

 

- 이미지 출처: 구글검색에서...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 10점
김용택 지음/생각비행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