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사진게재로 피해 입은 분께 사과드립니다.
‘9월 1일자 A1면에 잘못 게재된 사진 서울 일부 지역에 배달된 조선일보 9월1일자 A1면 나주 초등학생 성폭행 사건 '병든사회가 아이를 범했다' 제하의 사진 중 '범인 고종석의 얼굴(위 사진)'은 범인이 아닌 다른 사람의 사진으로 밝혀져 바로 잡습니다. 잘못된 사진을 게재해 피해를 입은 분께 깊이 사과드립니다.’
자칭 ‘일등신문 조선일보’의 오보 사과다. 다른 오보도 아닌 무고한 시민의 얼굴을 성폭행범으로 몰아 신문 1면에 생얼을 그대로 게재한 것이다.
조선일보의 오보는 엊그제 처음이 아니다. 진실을 감추고 왜곡편파보도에 일력이 난 신문이 조선일보다. 일제시대 누가 더 황국신민으로서 천황(일왕)에 충성심이 강한가를 경쟁을 하던 신문이 조선일보다. 웃기게도 1985년 봄에는 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사이에 ‘민족지 논쟁'을 벌였던 일이 코미디보다 더 코믹한 사건이 벌어졌다.
1932년 1월 8일 히로히토에게 수류탄을 던졌으나 실패한 사건을 두고 쓴 동아일보의 기사다.
손기정 선수 사진의 ‘일장기를 삭제’했다가 복간되면서 이런 기사도 썼다.
1938년 4월 3일자 조선 총독 남차랑(미나미 지로)이 발표한 조선인도 병사로 뽑아 전선에 내보내겠다는 법안인 '지원병제도'를 두고 썼던 동아일보 기사다.
이런 신문이 동아일보다. 동아일보가 민족지라고 우길만한가? 동아일보의 설립자인 김성수는 해방정국의 부통령을 지내고 죽은 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기도 했다.
광주학생의거에 대한 조선일보의 시각이다.
자칭 ‘1등 신문 조선일보'는 일제시대에도 수많은 1등 기록을 남겼다. 조선 신문으로는 최초로 새해 첫날 신문 1면에 일왕 부부의 초상을 대문짝만하게 싣기 시작했으며(1936년 1월 1일자), 가장 먼저 일본군을 ‘아군’ 혹은 ‘황군’으로 표기하기도 했다.(1937년 7월 19일자)
이런 친일행적의 역사를 가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지금까지 자신들의 반민족적 행위에 대해 단 한 번도 시인하거나 사죄한 적이 없다. 이런 신문이 민족지 타령이라니... 해방 후에는 이들 친일 신문은 자신들의 과거를 은폐한 채 10월유신을 지지하고 독재자와 광주학살 수괴를 입이 침이 마르도록 찬양한 신문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다.
정부 수립 후 1960년 4월까지 즉 이승만 정권 12년간의 각료는 국무총리 이하 115명이다. 재임 장관들을 제외하면 96명인데 이중 독립 운동가는 단 4명, 국내 민족 투사 8명을 합해서 그 비율은 12.5%이다. 반면, 부일 협력 전력자는 34.4%인 33명이나 된다.
이런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한 이가 누굴까?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친일의 역사는 필설로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다. 해방 후 이승만 독재와 10월 유신을 찬양하고 광주학살수괴가 대통령노릇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들의 충견노릇 때문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멀쩡한 시민을 파렴치한 성폭행범으로 몰아가는 것 이상의 추악한 과거를 숨긴 조선일보. 자칭 일등신문이라면서 선거 때만 되면 편파왜곡방송으로 추악한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조중동의 개과천선은 정년 꿈일까?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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