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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1.13 비암사가 왜 비암사인지 아세요? (13)
  2. 2010.11.16 종교! 객관적으로 보기 (3)
정치/정치2013.11.13 07:05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全義面) 다방리에 있는 천년고찰. 비암사...!
11월 3일. 세종시 제 1기 블로그 기자단이 찾은 비암사는 천년 고찰답게 화려한 가을 옷으로 갈아 입고 있었습니다.
 
옛날 우리 선조들은 왜 절을 짓고 부처님을 모셨을까요?
 
불교가 이땅에 들어 오게 된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재위 371~384) 2년인 372년으로, 전진(前秦: 315~394)의 왕 부견(符堅: 재위 357~385)이 사신과 승려 순도(順道)를 보내어 불상과 불경을 전하면서 부터라는 건 다 아는 사실입니다.    
 

                                                             <비암사 전경>

 

종교가 생겨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불교가 이땅에 들어 오기 전에도 자연을 숭배하고 태양신이나 조상신을 모시는 원시종교가 있었지요. 

 

종교란 자연의 위대함에 비추어 인간의 나약함을 극복하려는 마음에서 부터 비롯된 것임을 모르는 이가 없습니다.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욕망, 영원히 살고 싶은 욕망이 오늘날 불교를 비롯한 종교가 뿌리 내린 계기가 된 것이지요.  

 

'죽음'을 이기기 위해... 영원히 살고 싶은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영원히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는 원초적인 욕망일 것입니다.  모든 종교가 그렇듯이 불교도 교주인 부처님의 가르침과는 다르게 이 세상에서도 행복하게 살고  내세에도 극락왕생하고 싶은 욕구가 불교라는 형식을 빌어 뿌리 내리게 됩니다. 오늘날의 불교는 구복신앙과 접목되면서 전성기를 맞게 되었지요.    

 

 

<비암사를 지키고 있는 800년 묵은 느티나무 - 이 거대한 느티나무는 수령이 800년이나 됐습니다. 800년 전이면 서기 1200년 경, 서기1200년경이면 최충헌의 집권시기 정도가 아닐까요? 몽고군이 침입한 게 1231년이니까 그 때부터 살았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런데 오늘날 분교를 보면 부처님의 가르침과 다른 길로 가고 있다는 감을 지울 수 없습니다.

 

불교의 핵심 사상은 3법인 4성제이지요. 삼법인이란 “모든 존재는 변하고 있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과 “모든 사물은 실체가 없다”는 제법무아(諸法無我)와 “열반의 세계만이 고통이 없는 진리의 세계이다”라는 열반적정(涅槃寂靜)의 세 가지 명제로 되어 있습니다. 이 가운데 열반적정은 “모든 것은 괴롭다”라는 「일체개고」(一切皆苦)로 대체되어 말해지기도 합니다.


 

4성제란 《란아함경(阿含經)》에 나오는 원시 불교 가르침으로 불교 기본 교의 가운데 하나입니다. "제(諦 · Satya)"는 진리 또는 깨우침을 뜻하지요. 사성제는 "네 가지 높은 깨우침(Ārya: 높은, Satya: 깨우침)" 또는 "네 가지 고귀한 진리(Four Noble Truths)"라는 뜻인데, 고제(苦諦) · 집제(集諦) · 멸제(滅諦) · 도제(道諦)의 4가지 진리 또는 깨우침을 의미합니다. 흔히 이 네 가지를 간단히 고집멸도(苦集滅道)라고 부르지요.

 

이러한 진리를 깨우치는 방법이 8정도지요. 깨달은 자, 부처가 되는 길이 이 8가지 실천덕목입니다.

  1. 정견(正見): 바르게 보기
  2. 정사유(正思惟) · 정사(正思): 바르게 생각하기
  3. 정어(正語): 바르게 말하기
  4. 정업(正業): 바르게 행동하기
  5. 정명(正命): 바르게 생활하기
  6. 정정진(正精進) · 정근(正勤): 바르게 정진하기
  7. 정념(正念): 바르게 깨어 있기
  8. 정정(正定): 바르게 삼매(집중)하기 

 


 <사진 설명: 탑이란 거칠게 말하면 부처님의 무덤이지요. 아니 사리를 모셔놓은 곳입니다. 탑파는 시대에 따라 다얀한 양식으로 나타나게 되지요. 흔히 통일신라시대 탑의 모양은 3층석탑이랍니다. 비암사 3층석탑은 신라양식을 빌려 고려 때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탑은 1960년 3층석탑 꼭데기에서 계유명전씨 아미타불 3존불상이 발견되어 국보 106호로 지정되었답니다.>  

 

욕망이 고통을 만들어 그 업보로 3도 6계를 윤회하는 세계.. 그 세계를 벗어나는 게 부처가 되는 길이거늘... 욕망에 눈이 어두운 중생들은 스스로 죄의 업보에서 벗어자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처가 되는 길... 8정도를 통해 6계를 벗어나도록 수도를 하는 게 부처님의 가르침인데... 오늘날 불교는 '세상이 헛되고 헛되다'는 진리를 잊고 그 반대로 고의 원인이 되는 욕망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찰은 화려하게 짓는 것도 고집멸도에 역행하는 길이 아닐까요?

 

부처님의 모습도 목불에서 철불, 금동불, 금불로... 자비로운 모습에서 근엄하고 위엄서린 모습으로 바뀌게 된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것은 종교가 권력과 결탁하면서 민간신앙인 구복신앙과 접목하면서 부터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권력이 필요로하는 종교. 그래서 종교는 종교가 가지는 본질적인 목적보다 권력이 필요로 하는 지배이데올로기로 이용되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 증거가 바로 고려시대에 나타난 승과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 현실이란 영생을 위한 수도의 과정이어야 하고 그래서 부처가 되기 위한 끊임없는 수행의 과정이어야 하지만 승려들에게 국사니 선사와 같은 품계를 주게 된 것이지요. 이러한 불교의 변질은 민간신앙에서는 토속신앙과 결함함으로써 구복신앙으로 나타나게 되기도 했고요. 


 

 

인간의 욕망과 결합한 종교...!

 

그것은 전술한 바와 같이 불상의 모습에서도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증거로서 백제후기의 작품으로 얼굴 가득히 자애로운 미소를 띄고 있는 서산의 마애삼존불상의 경우와 오늘날 일반 사찰에서 볼 수 있는 부처님의 모습과는 너무 다른 모습입니다. 

 

특히 거대한 부처님상을 만들고 서민들의 정서에 영합해 구복신앙을 조장하는 모습은 부처님이 원하는 불상의 모습이 아닌 것입니다.

 

 

오늘날 불교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않는 부처님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먼 모습으로, 겉으로는 날이 갈수록 하려한 모습으로 변해가는 가람 배치도에서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서론이 너무 길었습니다.

 

제기 이런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찰에서 볼 수 있는 구복신앙. 특히 상업주의와 결합한 현세 구복적인 신앙을 부추기는 사찰과는 다르게 비암사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니 유명사찰에서 볼 수 있는 그런 모습이 아닌 천년고찰을 그대로 보존하고싶어하는 스님들의 순수한 마음이 예스러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비암사 얘기를 해야겠네요.

비암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입니다. 이 절의 뚜렷한 역사는 전하지 않으나, 극락전 앞뜰에 있는 높이 3m의 고려시대 3층 석탑 정상 부분에서 사면군상(四面群像)이 발견되어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석상 중 계유명전씨아미타불삼존석상(癸酉銘全氏阿彌陀佛三尊石像)은 국보 제106호이고, 기축명아미타여래제불보살석상(己丑銘阿彌陀如來諸佛菩薩石像)과 미륵보살반가석상(彌勒菩薩半迦石像)은 각각 보물 제367호, 제368호로 지정되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비암사는 국보 1점, 보물 2점이 발견된 절로도 유명하지만.... 


 

                                              <사진 설명 :괘불탱화함입니다>


 

                                 <사진출처 : 문화재청 -- 괘불탱화(486×863㎝)입니다>

 

비암사에는 일년에 한번씩(매년 4월 15일)만 공개합니다. 그러나  괘불탱화(486×863㎝) 사본을 따로 만날 수 있습니다.

 

비암사 괘불은 석가모니의  영축산 설법을 듣기 위해 모여든 청중들을 함께 묘사한 그림으로 석가모니의 설법 장면을 장엄하게 표현한 탱화입니다.

 

이 괘불탱화는 17세기 충청도지역의 대표적인 화승인 신겸이 여러 명의 화승들과 함께 그린 것입니다. 비록 화면의 상단부 일부가 없어져 다시 제작한 것이지만 남아있는 부분의 뛰어난 필치와 안정된 색감, 상승감을 유도하는 인물의 배치 등에서 17세기 괘불을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화기를 통해 조성연대와 시주자, 화승, 봉안사찰 등을 확인할 수 있어 동 시기 괘불 및 불화 양식의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리를 해야겠습니다.

 

비암사라는 절 이름이 왜 비암사라 부르게 됐는지 아세요?

 

옛날 이 절에는 비구니들이 거처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해질 무렵, 낯선 청년이 찾아와 밤새 탑돌이를 하다가 아침에 돌아갔습니다. 보통 방문객들은 아침에 찾아와 저녁이 되면 돌아가는데 이 청년은 저녁에 왔다가 새벽에 돌아가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이 청년은 탑돌이를 끝내고 비구니에게 물한잔을 청했답니다. 

 

궁금했던 비구니가 다른 사람과 다르게 저녁에 와서 밤새 탑돌이를 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사연은 있지만 말을 할 수 없다는 듯 빙그레 웃기만하고 돌아갔습니다.

 

궁금해 진 비구니가 이 청년이 가는 길을 미행을 했더니 산 속 커다란 바위 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비구니가 따라 들어갔더니 갑자기 청년은 간곳이 없어지고 청년이 사라진 자리에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청년이 사라진 그 자리에는 커다란 구렁이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놀라서 바라보고 있는 비구니를 향해 구렁이는 "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소원인데 100일동안 탑돌이를 하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탑돌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당신이 나의 모습을 보았으니 사람이 될 수 없어 평생동안 구렁이로 살아야 합니다"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더라는 것입니다. 

 

그 후 비구니는 자기 때문에 평생동안 구렁이로 살아야 하는 비운의 구렁이를 위해 수발을 들며 함께 지냈다는 전설이 전해내려오고 있습니다. 이 절 이름이  비암사가 된 사연은 '뱀의 사투리' 즉 '비암'이 사는 절이라는 뜻에서 비암사라고 불리게 됐다고 합니다.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 10점
김용택 지음/생각비행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종교2010.11.16 00:13



교회가 사회 봉사비로 쓰는 자금이 한해 예산의 6.2%에 불과하다(한겨례신문 1993.7.4.)고 한다. "일부 목사들의 월수입이 수천만원으로 전체 예산의 3.8%가 교역자들의 생활비로 쓰여 왔고, 일부 대 사찰의 승려들이 외제 고급승용차를 타고 일년내내 특급호텔에서 지낸다"는 한겨레신문의 보도는 신앙인이 아닌 사람들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다.

1993.10.28. 24:00에 예수가 이 땅에 재림할 것이라고 예언하여 성인 남녀는 물론 청년학생들까지 집을 팔고 학업을 포기하고 예수의 재림을 준비하고 있다가 예언이 빗나가자 가정파탄과 충격으로 자살까지 한 사람도 있었다. 몇년전 미국에서는 수백명의 사이비 종교인들이 집단자살한 일도 있었고, 우리나라에서도 가끔 예수의 재림을 예언했다가 빗나간 사건이 있었다.

도대체 종교가 무엇이기에 하나 뿐인 생명이나 전 재산 까지 바쳐 가면서 빠져 들 수 밖에 없을까?
종교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하여 좀더 상세히 알아보자.

종교가 인간세계에 나타난 것은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초기 종교는 자연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나타났다. 그 후 죽음이나 공포를 해결하기 위해 자연이나 절대자를 찾게 된 것이다. 어떤 철학자는 종교를 "무지와 공포의 소산"이라 표현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종교를 지배이데올로기로서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통치 수단으로 기능하며 피지배자의 억압 수단이 된다고 비난하는 학자도 있다.

단군(제사장) 왕검(지배자)의 명칭에서도 볼 수 있듯이 원시시대는 종교의 수장인 무당이 정치의 우두머리로 군림하던 때가 있었다. 이를 제정일치시대라고 한다.
이 시대는 호랑이, 곰과 같은 동물, 오래된 고목이 특정 부족의 수호신으로 숭배하는 토테미즘이 종교의 기능을 했다. 계급이 생기면서 지배자의 야망은 인민의 지배수단으로서 종교를 권장하기도 하고 국교로 인정하여 현실의 고통은 내세의 영생복락을 위해 현실을 희생하라고 가르치기도 하였다.

민중의 정치의식이 낮은 시대는 원시종교나 샤머니즘이 지배수단으로서 이데올로기 역할을 했으나 점차 민중의 정치의식 수준이 높아지고 비판의식의 향상 되면서 체계적인 신앙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삼국시대 불교는 민중의 정치의식을 마비시키고 현실세계에 대한 혐오감을 갖게 하여 내세의 준비를 위해 끝없는 희생과 인내를 강요하게 했다.


불교의 교의를 한번 살펴보자. 불교에서 붓다(Buddha)는 한자어로서 진리를 깨달는 자를 가리키는데, 불교에서는 불타, 즉 카필라국 정반왕과 마야부인의 사이에서 태어난 고다마 싯달타의 도움을 받아 깨닫는자(부처)가 된다. 오늘날 불교도는 이 깨닫는자(부처)가 되는 게 신앙의 목표다.

신앙의 대상은 국보(불,법,승)인데, 부처가 되기 위한 과정인 3법인(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숙정)과 사성제(고성제, 집성제, 멸성제, 도성제)와 8정도(정어, 정사유, 정정, 정명, 정정진, 정염, 정견 정업)를 통해 부처가 되기 위해 수행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든지 불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노력여하에 따라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불교가 사회와 문화 전체에 미친 영향은 거의 절대적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지만 고난에 찬 삶을 살면서 창조적인 세계관을 갖지 못하고 운명론적인 세계관을 갖도록 하는 것은 현실의 질서를 유지 존족하기를 바라는 지배자의 논리에 일정정도 기여했던 이데올로기로서의 역할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의식수준과 민중의 각성은 불교가 지배이데올로기의 한계를 노정(露呈)하자 시, 서, 악, 역, 예, 춘추 등 6가지 경전사상을 기초로 한 인(仁)의 도를 가르치는 유교가 등장하게 된다. 유교에서 논어는 공자의 교훈과 행동을 기록한 책으로 모든 경전의 근본사상인 인(仁)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다.

인(仁)이란 극기복례(克己復禮)로 극기는 이기심을 이기는 것이요, 복례는 예법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인의 실천강령을 삼강오륜(三綱 - 군의신강, 부의자강, 부의부강. 五倫 - 군신유의(임금과 신하간), 부부유별(부부간), 부자유친(부자간), 붕우유신(친구간), 장유유서(노소간)이라고 하는데, 상호간의 예의를 기본으로 한다. 특히, 임금과 부모를 동일시하여(군사부일체) 봉건지배 질서를 정당화하고 충효사상(忠孝思想)을 고취하였다.

                                                   <사진자료 : 한중일전통정원홈에서>

이성적이고 전통적인 공자사상에 대립하여 나타난 삶의 현실을 의미한 도(道)의 실천을 주장한 도교는 노자와 장자가 대성시킨 종교이다. 우주의 본체가 도요, 상대 세계를 초월한 절대 평등과 무차별의 본체를 인정하는 것을 기본원리로 가르친다. 도교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가르침으로 하는 노장철학을 받아들이고 음양오행설과 신선사상을 가미하면서 불로장생의 술(術)을 구하고 주술기도 등을 행하는 종교로 자리 잡는다.


민중의 입장을 강조하는 도교는 지배이데올로기로서의 역할이 유교에 비할 수 없다는 약점 때문에 크게 번성하지 못하고 소수의 양심적인 지식인이나 소수의 민중들에게 초라하게 살아남는다.
그 후 서구의 민주주의가 유입되면서 봉건적인 지배질서가 붕괴되고 그 공백을 채워주는 또 하나의 지배이데올로기로서 기독교가 들어 온다.


유태민족의 민족종교인 유대교에 뿌리를 둔 기독교는 우리나라에 예수를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개신교와 천주교로 각각 다른 경로를 통해 유입된다. 기독교의 교의는 전통윤리가 미개문화로 매도되면서 문화 혹은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뿌리내린다.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한 절대자인 여호와 하나님과 구세주로 세상에 왔다가 인간에 배척당하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예수와 성령의 3위 일체 신을 믿는 기독교는 예수를 구세주로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아들로 천국을 보장받고 영생을 누리는 구원을 받는다는 종교다.

세상의 끝날 예수가 재림할 때 알곡과 쭉정이로 구분해 쭉정이인 죄인은 지옥 불에, 알곡인 의인은 천국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면서 살 수 있다는 가르친다. 그날(재림)은 하나님 외에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항상 준비하고 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기독교는 '권세는 위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다'와 같은 성구에서 보듯, 지배자에게 순종하는 운명론적인 삶을 강요하는 운명론적 세계관이라고 비판하는 학자도 있다. 기독교를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학자들은 현실의 모순을 ‘하나님의 뜻이요, 현실은 내세의 준비과정’으로 가르쳐 현실 긍정적이고 순응적 삶을 강요한다고 비판한다.

그 외의 힌두교는 인도의 굽타왕조때 범서, 비서 등을 기초로 한 바라문교의 사상을 고치고 변경하여 고유한 인도 민족신앙과 결부시켜 발전한 종교로서 범신론, 다신론, 유신론, 무신론을 수용하면서 원시적인 경배와 요가를 통해 인간의 참된 자아를 추구하는 종교이다.

조르아스트교는 기원전 60년경 조르아스트가 창시한 종교로서 젠드 아베스트란 경전을 갖고 있다. 조르아스트교의 교의는 이 세상은 선(善)과 악(惡)이 싸우는 전쟁 마당이며, 아후라 마즈다라는 선신(善神)과 앙화 마이뉴라는 악신(惡神)이 대립하고 있는데, 근검 역행의 노력으로 악신을 이기고 선신이 승리한다는 내용을 가르치고 있다.


이슬람교는 회교라고도 하며, 마호메트에 의해 창시된 종교이다.
이슬람은 복종이란 뜻이며, 인간은 신에게 절대 복종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슬람교라 명명했다. 이슬람교는 아라비아 고유의 민족신앙, 그리스트교, 유대교의 교의를 흡수하여 알라를 믿는 신앙을 말한다.

그들의 경전인 코란에 의하면 알라, 천사, 예언자, 경전, 내세 심판, 예정에 대한 신앙 등 6신과 5행(다
섯가지 의무, 즉 알라예배, 모하멧 
트 믿음, 1일 5회 기도, 자선, 9월 단식, 메카순례)을 요구하는 종로서 4억 5천의 신도가 있다.

유대교는 기원전 15세기경 모세가 애굽을 탈출하여 40년간 광야에서 생활하면서 종교적 체험에서 비롯된 종교로 모세 율법을 기초로 하여 유대인은 하나님의 선민이며, 천국이 지상에 이루어진다고 믿고 있는 종교이다.

유대교가 모태이면서 예수를 
                                                                   <이슬람교도의 예배모습>

크리스도(구세주)로 믿는 개신교와 이땅에 다른 크리스도가 나타날 것이라고 믿는 유대교는 구약 성서만을 믿는다.

이제 개략적으로 살펴본 종교의 공통점은 개인의 영생과 축복에 초점을 두고 개인의 수련과 반성, 도덕적 인격의 완성 등에 관심을 둔다. 특히, 대부분의 종교는 운명론적인 세계관을 갖는 것이 특색이다. 절대자에게 복종하고 순응하며 현실 질서에 복종하는 세게관은 강자의 논리로서 창조적이고 개척의욕을 마비시키고 신의 의도를 추종하는 삶을 강제받는다.

종교의 현실 감각의 마비가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여 진취적이고 주체적인 삶의 저해 요소가 된다는 점에서 민중중심의 종교가 양심적인 신앙인에 의해 제기되고 있다.
해방신학이나 민중교회나 민중불교 등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는데, 이들은 지배권력에 의해 반체제 세력 또는 전통에 대한 도전세력이라는 이단(異端)으로 분류되어 탄압을 받는다.

기독교 발생 당시의 이스라엘 상황을 신학의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관점에서 총체적으로 인식하고 해석하려는 시도 없이 전통신학이란 이름으로 다른 해석을 거부하는 것은 종교의 경직성을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예가 될 것이다.

전통신학에 대한 도전은 식민지적인 상황에서 예수의 정신을 오늘날 다시 살려 내야 한다는 시도로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데 해방신학이나 민중불교와 같이 신의 본성을 현실에 맞게 재해석하여 지배논리가 아닌 민중시각에서 신앙화하려는 시도가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민중종교의 공통점은 내세를 위한 준비단계로서의 현실이 아닌 이 땅이 하나님의 나라요, 극락으로서 구현시키려는 노력이 종교의 당면한 과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인간이 신의 노예로서 현실 감각을 마비시키는 이데올로기의 희생자가 되거나 지배 논리로서의 종교의 역할은 당연히 거부되어야 한다. 이제 종교는 사회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의 해방과 인간의 주체적인 삶을 위한 인격 수양의 과정으로서 재정립되어야 한다.

목사나 승려의 교세확장이나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자기논리로 상대종교를 적대시 하거나 폐쇄적인 사고방식은 분단시대에 또 하나의 38선을 긋는 민족의 비극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게 됨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