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없음2012.08.01 06:30


 

나라가 올림픽열기로 뜨겁습니다. 아니 펄펄 끓고 있습니다. 

세계인의 축제 올림픽도 중요하지만 나라를 경영할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자들의 자질을 검증해야할 중요한 시기에 방송 3사와 종편들은 오직 올림픽 소식 뿐입니다.

 

올림픽에 정치도 실종되고 경제도 관심이 없습니다.

이런 기회를 타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거액을 받은 혐의로 유죄를 선고 받고 복역 중이던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이 지난 30일 슬그머니 가석방 됐습니다. 대통령 친인척 비리도 모두 뭍혀가고 있습니다. 분규 중인 자동차부품업체인 에스제이엠(SJM)과 만도(문막·평택·익산 공장)에는 대규모 용역 인력이 쇠파이프와 곤봉 등으로 중무장을 하고 공장을 급습해 집단폭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올림픽 열기로 대선후보가 역사조치 왜곡하고 있지만 이를 검증할 기회도 올림픽 열기로 뭍혀가고 있습니다.  역사왜곡은 어디 5·16뿐이겠습니까? 친일잔재청산문제며 정신대문제도 아직 그대로 있습니다.  

 

오늘은 왜곡된 우리역사문제를 짚어볼까 합니다. 아무도 말하기를 꺼려하는 문제. 신탁통치 문제입니다. 이 원고는 졸고 '현대사 자료집'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역사가 왜곡되는 현실을 어떻게 하면 진실을 밝힐까 하는 마음에서 1994년에 틈틈히 썼던 글입니다.

 

앞으로 시간 나는대로 '현대사 자료집'을 소개하겠습다. 

 

 

‘찬탁=친소=매국, 반탁=친미=애국’

 

건국과정에서 첨예하게 대립된 신탁통치찬반논쟁이다. 신탁통치는 ‘36년간 일본의 종살이를 하다 우리민족이 스스로 자주독립 국가를 세워야지 왜 또 강대국의 통치를 받아야하나’하는 백성들의 정서가 반영되어 처절한 찬반논쟁이 한반도를 뒤덮었다. 

 

이승만은 이러한 백성들의 정서를 이요,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이끌어 자신의 지지기반은 물론 미국이 원하는 반탁여론을 이끌어 내는데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승만과 미국의 의도는 '반탁- 6·25전쟁-분단'이라는 역사를 만들어 놓고 말았다.

 

 

5·16을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쿠데타로 인정할 수 없다는 사람들이 기고만장하고 있다. 4·19혁명을 부정하고 5·16을 혁명이라는 사람들... 신탁통치 찬반 논쟁은 어떤가? 신탁통치 찬반논쟁 64년이란 세월이 지난 오늘, '만약 한반도를 유엔이 신탁통치를 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6·25전쟁과 같은 동족상잔의 비극과 64년간의 분단이 있었을까?

 

6·25전쟁과 분단이라는 문제를 신탁통치문제와 연관선상에서 보자. 

 

신탁통치란 ‘국제평화와 안전 촉진, 신탁통치지역의 자치와 독립 도모, 인권과 UN 회원국의 평등 보장’하기 위해 ① 종래의 위임통치지역, ②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 후 패전국에서 분리된 지역, ③ 자발적으로 신탁통치를 원하는 지역을 ‘국제연합(UN)의 대리통치를 일정 기간 받는 것을 말한다.(백과서전)

 

우리나라는 8·15해방 후, 1945년 12월 27일 모스크바3상회의의 결의로 ‘일본의 식민지로부터 해방된 한반도는 '앞으로 5년 동안 4개국(미국·영국·중국·소련)에 의한 신탁통치를 한다’는 결정이 발표된다. 이를 계기로 국내에서 찬반논쟁이 격렬하게 전개된다.

 

 

 

이 논쟁에 참가한 수많은 백성들은 신탁통치를 반대하는 것이 자주독립으로 가는 길이라고 알고 있었다. 사실이 그럴까? 찬탁이나 반탁에 참가한 백성들은 신탁통치가 어떤 내용인지 ‘신탁통치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고 있었을까? 신탁통치를 제안한 나라가 어느 나라인지, 신탁통치가 시행되면 정말 독립국가를 건설할 수 없는지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나 판단을 할 능력도 겨를도 없었다.

 

역사에 가정(假定)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만약 당시 한반도에서 신탁통치가 이루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민족의 비극인 동족상잔의 6·25전쟁이 일어났을까? 만약 6·25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64년간 동족분단의 비극이 계속되고 있을까?

 

신탁통치에 얽힌 진실을 보자.

 

신탁통치를 처음 제안한 나라는 소련이 아닌 미국이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2차세계 대전 중, 1943년 3월 27일 워싱턴 회담에서 한국의 신탁통치 구상을 처음으로 발표했다. 미국이 구상했던 신탁통치 안은 ‘미, 중, 소 3국이 향후 20~30년간 한반도를 신탁통치한다’는 내용이다. 이 안은 얄타회담(1945.2.11)에서 재확인되었다.

 

그 후 1945년 7월 17일 포츠담 회담에서는 미국이 수정 제안한 ‘신탁통치가 합의될 때까지 북위 38도선 이북에는 소련이, 이남에는 미국이 일본군의 항복을 접수함으로써 38도선이 확정’되었다. (1945.9.2 극동 사령관 일반 명령 제 1호)

 

 

 

미국보다 뒤늦게 제안한 소련의 신탁통치 안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었을까? 소련은 미․영․중․소 4개국에 의해 “최고 5년 기한의 신탁통치로서 한국의 독립을 준비하고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 조선인민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하고 이를 원조하기 위한 미․소 공동위원회를 설치 운영한다”는 내용이다. 소련은 이 안을 모스크바 삼상회담(1945.12.27)에 제출, 최종 확정되었다.

 

건국 초기에는 좌우익을 막론하고 거국적인 반탁운동을 전개하였으나 소련의 신탁통치 안이 제출 된 후 ‘즉시 독립’과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민주적 통일전선의 형성’이라는 노선의 차이로 격렬한 좌우 대립을 초래하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1차 미소 공동위원회(194.3.20)가 서울에서 열렸으나 임시정부 수립을 위해 협의할 정당, 사회단체 선택에서부터 난관에 부딪혀 결렬되고 2차 미소 공동위원회(1945.5.21)가 서울(덕수궁 석조전)에서 열렸으나 끝내 결렬되고 한국 문제는 미국 측에 의해 유엔에 이관하게 되었다.

 

※ 참고글 및 자료

 

【모스크바 삼상 결정 전문】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박세길, 돌베개, p.53),

(분단자료집, 편집실, 한백사, p.49~50)

 

모스크바 삼상 결정 전문

 

1. 조선을 독립국으로 부흥시키고 조선이 민주주의 원칙 위에서 발전하게 하며 장시간에 걸친 일본 통치의 악독한 결과를 쾌속히 청산할 제 조건을 창조할 목적으로 조선민주주의 임시정부가 창건되는데 임시정부는 조선의 산업, 운수, 농촌 경제 및 조선 인민의 민족문화의 발전을 위하여 모든 필요한 방책을 강구할 것이다.

 

2. 조선 임시정부 조직에 협력하여 이에 적응할 제 방책을 예비 작성하기 위한 남조선민군사령부 대표들과 북조선 소련 사령부 대표들로써 공동위원회를 조직한다. 위원회는 자기의 제안을 작성할 때에 조선민주주의 제정당 및 사회단체와 반드시 협의할 것이다. 위원회가 작성한 건의문은 공동위원회의 대표로 되어 있는 양국 정부의 최종적 결정이 있기 전에 미․영․중․소 제국 정부의 심의를 받아야 한다.

 

3. 공동위원회는 조선민주주의 임시정부를 참가시키고 조선민주주의 제 단체를 인입하여 조선 인민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진보와 민주주의적 자치 발전과 조선 독립의 확립을 원조 협력(후견)하는 제방책도 작성할 것이다. 공동위원회의 제안은 조선 임시정부와 협의 후 5년 이내의 기한으로 하는 조선에 대한 4개국 후견의 협정을 작성하기 위하여 미․영․중․소 제국 정부의 공동 심의를 받아야 한다.

 

4. 남북 조선과 관련된 긴급한 제 문제를 심의하기 위하여 그리고 남조선 미군 사령부와 북조선 소련 사령부의 행정 및 경제 부문에 있어서의 일상적 조정을 확립하는 제방책을 작성하기 위하여 2주일 이내에 조선에 주둔하는 미․소 양국 사령부 대표로써 회의를 소집할 것이다.

 

【미 국무장관 번즈가 제출한 한국 신탁통치 원안】

 

(우리는 결코 둘일 수 없다, 남풍신서, p.36)

 

1. 미·영·중·소 4개국이 신탁통치 체제의 최고 권한자가 되어 유엔헌장 79조에 규정된 기본 목적에 따라 행동한다.

2. 1인 공통 판무관과 4개 신탁통치의 대표로 구성되는 집행위원회를 통해서 통치권한과 기능을 수행한다.

3. 한국의 통일 행정 체제 즉 신탁통치 체제에는 한국인을 행정관 상담역 고문으로 사용한다.

4. 신탁통치 기한은 5년으로 하되, 필요하면 4개 통치국간의 협정으로 다시 5년을 연장할 수 있다.

 

미국측 안에 대한 소련이 제출한 대안】

 

1. 조선은 독립국가로서 재건하는 것을 전체로 하고 조선 임시 민주정부를 수립한다.

 

2. 이 정부의 수립을 원조하고 일정한 조처를 미리 정해두기 위해서 미․소 양군의 대표에 의해 구성되는 공동위원회를 설치한다. 이 위원회는 이 제안을 준비하는데 있어서 조선의 민주주의적 제 정당 및 사회단체와 협의한다. 이 위원회 권고는 미·영·중·소 4국 정부 앞으로 제출된다.

 

3. 공동위원회는 임시조선민주정부와 조선의 민주주의 단체들의 참가 하에 조선 개혁안을 마련한다. 공동위원회는 또한 5개년간의 조선에 대한 4개국 신탁통치에 관한 협정안을 임시 조선 정부와 협의한 후 결정하여 4개국 정부에 제출한다.

 

4. 미․소 양군의 대표자 회의를 2주 이내에 한번씩 개최한다.

 

【미소 공동위원회에 참가를 신청한 단체】

 

(한국현대사, 창작과 비평, p.172)

∙남 한 : 425개

∙북 한 : 36개

∙등록된 회원 총수 : 7천만명(전체 인구의 2배)

 

【미국의 한반도 신탁통치 구상】

 

(해방전후사의 인식2, 한길사, p.84)

얄타회담에서 루즈벨트는 20년 내지 30년간의 조선에 대한 신탁통치를 제안하여 스탈린으로부터 “기간은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는 단서가 붙은 구두 동의를 얻어내는 데 성공하였다.

 

【남북 사회단체 지도자 협의회 공동성명서】

1948년 4월 30일

남조선 단독 선거에 반대하는 전조선 사단체 대표 연석 회의에 뒤이어 평양에서 4월 30일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 지도자들의 협의회가 진행되었다.

 

이 협의회에서는 상정된 문제를 충분히 토의한 결과 다음과 같이 제문제에 대하여 협의가 성립되었다.

 

1. 소련이 제의한 바와 같이 우리 강토에서 외국군대가 즉시 철거는 것은 우리 조국에서 조성된 곤란한 상태 하에서 조선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정당하고 유일한 방법이다. 미국은 이 정당한 제의를 수락하고 자기 군대를 남조선에서 철퇴시킴으로써 조선 독립을 실지로 원조하지 않으면 안된다. 일제가 우리 조국에서 구축된 이후 우리 조선 인민은 자력으로 외국의 간섭 없이 우리 문제를 우리 민족의 힘으로 능히 해결할 수 있을 만큼 장성되었으며 우리 조국에는 이것을 해결하기에 충분한 간부들이 다수 있다.

 

2. 남북 정당 사회단체 지도자들은 우리 강토에서 외국 군대가 철퇴한 후에 내전이 발생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며 또 그들은 통일에 대한 조선 인민 지망에 배치하는 여하한 무질서의 발생도 용허하지 않을 것이다. 남북 정당 사회단체들 간에 전취 약속은 우리 조국의 완전한 질서를 확보하는 튼튼한 담보이다.

 

3. 외국 군대가 철퇴한 이후 하기 제 정당 단체들은 공동 명의로써 전조선 정치 회의를 소집하여 조선 인민 각층 각계를 대표하는 민주주의 임시정부가 즉시 수립될 것이며 국가의 일체 정권은 정치 경제 문화생활의 일체 책임을 갖게 될 것이다. 이 정부는 그 첫 과업으로 일반적 직접적 평등적 비밀투표로써 통일적 조선 입법기관을 선거할 것이며 선거된 입법 기관은 조선 헌법을 제정하여 통일적 민주 정부를 수립하여야 할 것이다.

 

4. 상기 사실에 의거하여 본 성명서에 서명한 제정당 사회 단체들은 남조선 단독 선거의 결과를 결코 인정하지 않으며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1948년 4월 30일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2.03.28 07:00


 

 

"△전국의 토지와 대생산기관의 국유화(國有化) △전국 학령아동(學齡兒童)의 전수가 고등교육의 면비수학(免費修學=무상교육)과 교과서 무상공급 △전국 각 동·리·촌과 면·읍과 도(島)·군·부(府)와 도(道)의 지방자치실현 △적산(敵産=일본 재산) 몰수와 국유화 △몰수 재산을 빈공(貧工=가난한 노동자)·빈농·무산자(생산수단이 없는 사람)를 위한 국영·공영 집단 생산기관으로 충당"한다.

 

사회주의 북한의 얘기가 아니다.

 

대한민국건국강령에 나와 있는 건국세력들이 만들고자했던 건국얼개다.

이 뿐만이 아니다. 건국강령에는 "△노공(老工=늙은 노동자)·유공(幼工=어린 노동자)·여인의 야간노동 금지 △고리대금업과 사인(私人)의 고용농업의 금지 △농공인(=노동자·농민) 면비의료(免費醫療=무상의료)로 질병 소멸·건강 보장" △18세 이상 남녀 선거권보장, 20세 이상 남녀 피선거권...까지 보장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 건국강령은 사회주의자들의 주장이 아니라 좌·우를 넘어서 당시 독립운동세력 대부분이 합의해 만들고자 했던 해방된 대한민국의 이상적인 국가상이다.

 

 

부모의 유지(有志)를 받들지 못하면 불효라고 했던가?

 

‘쏘련식 민주주의가 아모리 좋다 하여도 공산독재정권을 세우는 것은 싫다..... 미국식 민주주의가 아모리 좋다 하여도 독점자본주의의 발호로 인하여 무산자를 괴롭게 할 뿐 아니라, 낙후한 국가를 상품시장화 하는 데는 악질(惡疾)이다.’

 

이 말씀은 1949년 김구선생님의 신년사다. 2002년 권영길대통령후보가 ‘무상급식, 무상의료’를 공약으로 내놓았을 때 빨갱이들이 주장하는 수법이라고 많이도 매도(罵倒)당했다. 그런데 1949년 김구선생님을 비롯한 당시의 임시정부요인을 비롯한 독립운동세력들이 세우고자 했던 나라의 강령에는 무상교육, 무상의료뿐만 아니라 토지의 국유화와 노동자, 농민들의 무상교육까지 실현하려 하지 않았는가?

 

누가 감히 사회주의자도 아닌 김구선생님의 주장을 빨갱이들의 상투적인 수법이라고 폄하할 수 있을까?

 

 

건국강령 발표 후 7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대한민국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아직도 ‘무상의료, 무상교육’이 포퓰리즘으로, 18세 이상 선거권 보장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고등학교의 무상교육은 空約을 남발하는 새누리당의 4·11총선에 구색 맞추기로 나와 있을 정도다. 식민지시대 적산(일본인 재산) 몰수는커녕 친일분자의 후예들이 재산 찾기 소송을 하고 있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독립운동의 후손들은 아직도 달동네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가 하면 친일세력에 학살자의 후예와 그들과 한통속이 된 공모자들이 함께 만든 정당이 집권당이 되어 해방 70년의 대한민국의 주인노릇을 하고 있다.

 

일찍이 김구선생님이 우려했던... 북한은 독재정권이, 남한은 미국식 독점 재벌에 의해 가난한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해방 70년이 가까워 오는 독립국가 대한민국은 분단의 상태에서 우리가 부르는 애국가조차 친일분자들이 작곡, 작사한 노래를 부르고 친일분자가 된 자가 만든 태극기를 게양하고 살고 있다.

 

 

국민의 주권을 도둑질하고 10월 유신으로 민주주의를 말살하려 했던 쿠데타의 주역 박정희의 딸이 대통령선거에서 유력한 후보로 거명되고 있다. 유신을 찬양하던 언론인도 밀수를 하던 재벌도 민주화운동을 때려잡던 사법부 인사도 권력이 되어 민주주의를 말하면 빨갱이로 매도당하는 나라.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현행 대한민국의 헌법도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가겠다고 했다. 건국선현들이 강령으로 만들고 싶어했던 세상은 아직도 우리들에게는 꿈이다. 무상교육, 무상의료는커녕 나라는 온통 재벌 공화국으로 만들어 놓고 정의가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 가난한사람들이 숨죽이며 살아야 하는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 

 

일제의 강점을 온몸으로 저항했던 독립운동가들이 그렇게도 원하던 조국 대한민국의 건국강령은 언제쯤 실현될 수 있을까? 건국강령으로 만들고저 싶어했던 이상적인 나라는 언제쯤 가능할까? 

 

건국강령 원문을 보시려면...

대한민국 건국강령-2.hwp☜ 클릭하십시오

 

* 위의 이미지는 다음 검색에서 거져왔습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선생님! 저는 지금도 국민교육헌장을 외울 수 있습니다. 한번 외워 볼까요?”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안으로 자주국방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일류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40년 전 제자들과 선운사에 갔다 오면서 나온 얘기다. 50이 넘은 제자에게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감출 수 없었다.

암울했던 시절. 4.18 혁명을 총칼로 무너뜨린 5·16쿠데타가 일어난 후 학교 교실 벽에 필수 환경으로 국기에 대한 맹세와 국민교육헌장을 게시하도록 했다. 공무원이나 군인은 물론 코흘리게 초등학생들에게까지 의무적으로 외우게 했던 게 혁명공약이다.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로 삼고... 전국토를 병영화하고 전국민을 사병화한 쿠데타도 모자라 장기집권을 위한 시나리오가 유신헌법이다.

1972년 10월17일 드디어 유신헌법이 선포되고 주권자들은 권력의 폭압에 숨죽이며 살아야했다. 유신 철조망 속에 갇힌 나라에는 초등학생들 머릿속에 까지 ’혁명공약‘으로 세뇌시키던 시절. 그 시절. 학교 교실마다 '국민교육헌장'을 붙여놓고 달달 외우도록하고 모든 공무원들이 그랬듯이 나는 이 학교에서 박정희 군사정권의 하수인이 되어 학부모를 찾아다니며 유신 홍보사 노릇을 해야 했다.

 


#. 부끄러운 이야기. 하나. 유신헌법 홍보사 역할을 해야했던 교사.

유신헌법이 선포된 1972년. 경북칠곡군약목면 ‘약동초등학교’에서 근무했던 부끄러운 교사시절....

까까머리 소년, 단반머리 소녀들이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지켜보는 교실 전면 흑판 왼쪽에는 태극기가 걸려 있고 정면에는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라는  ‘국기에 대한 맹세’가 붙어 있었다. 전면 벽에는 전지 한 장 크기의 백지에 ‘국민교육헌장’이 괴물처럼 교실을 감시하고 있었던 시절. 나는 국사정권이 만든 반공교과서를 금과옥조처럼 가르치고 혁명공약을 암기시켜야 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났다. 안으로 자주국방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박정희는 1962년 4·19혁명을 총칼로 뒤집고 ‘혁명공약’을 발표. 철권정치를 시작했다. 집권 영구집권을 꿈꾸던 박정희는 1972년 유신헌법을 선포. 교사들까지 동원해 마을 단위로 책임구역을 배정해 유신헌법 홍보를 강요했다.

학교에서는 가정방문 계획을 수립 ‘유신헙법은 한국적 민주주의를 이 땅에 뿌리내리게 하는 헌법’이라는 사전 교육을 받고 순박한 시골사람에게 세계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악법 홍보사로 역할을 담당하게 했다. 그 시절 1972~4년까지 근무했던 학교.. 그 학교가 경북칠곡군약목면에 있는 ‘약동초등학교’였다.이런 교육을 받은 제자들이 40년이 지난 지금도 국민교육헌장을 암기하고 있어 부끄러운 지난날을 떠올리게 했다.


#. 부끄러운 이야기 둘. 아이들에게 민주의식도 역사의식도 심어주지 못하는 지식전달자였다.

지금은 50이 넘어 장년이 된 제자들... 당시 그들의 눈에 비친 나는 어떤 선생이었을까?

의식이 없는 교사... 그런 교사는 제자들에게 지식전달을 하는 판매상이나 다름없다. 초등학생에게 민주의식이니 역사의식... 그런 교육이 가능할까라고 의아해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교사의 능력만 있으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내가 입시위주의 교육으로 찌들대로 찌든 교실에서 수업 전 5~6분간 ‘세상읽기’ 시간을 활용 시사문제를 통한 논술지도를 하며 지냈다. 5분만 삶을 얘기하면 ‘선생님 공부합시다’ 하는 아이들에게도 나는 삶을 눈뜨게 하는 의식화 교육을 포기 하지 않았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 나는 학생들에게 묻는다. 

‘어떤 여자가 아름다운 여자일까?’

이성에 호기심이 큰 고등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금방 눈이 반짝반짝해 진다.

“얼굴이 잘 생긴 여자요!”
“몸매가 늘씬한 여자요!”
“돈이 많은 여자요!” 온갖 소리가 다 나온다.
“얼굴이 예쁘다고 마음씨도 예쁠까?”
조용해진다.

“겉으로 보이는 건 현상이야! 아무리 얼굴이 예뻐도 도벽성이 있으나 사회성이 좋지 못하면 남편되는 사람은 평생 힘들게 살아야 하는거야!”
이렇게 ‘현상과 본질’에 대한 얘기를 하고 부분과 전체에 대해 내용과 형식에 대해... 얘기하곤 했다.

교육자란 제자들에게 세상을 볼 수 있는 안목을 키워주는 거다. 해서 될 일과 하면 안 되는 일을 분별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게 교육이다.

초등학교라고 못할 리 없다. 그것은 교사의 척학이요, 신념의 문제다. 그런데 부끄럽게도 나는 40년 전 초등학교 제자들에게 그런 교육을 하지 못했다. 다만 인간적으로 다정하게 그리고 편애하지 않고 많은 지식을 전달자 정도의 교사였고 그런 교사가 좋은 교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 부끄러운 이야기 셋.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걸 가르치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게 무엇일까?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건 바로 자기 자신이다. 자신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 가족도 이웃도 소중하다는 걸 깨닫지 못한다. 내가 소중하다는 것을 알면 내 이웃, 내 나라, 우리 문화, 우리 역사가 소중하다는 것을 깨우쳐 후회스런 삶을 살지 않는다.

아무리 유신시절이라도... 아무리 교과서를 암기시키는 지식 전달자라도 기본적인 철학을 가진 교사라면 아이들에게 삶을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나는 부끄럽게도 제자들에게 삶의 안내자가 아닌 지식전달자로서 역할밖에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초등학교 시절 제자들을 만나면 선생으로서 할 일을 다 하지 못한 부끄러운 교사라는 미안함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물론 인간적인 교사... 편애하지 않고 다정다감한 교사도 좋다. 그러나 교사는 지식을 가르치는 교사이기 이전에 삶을 가르치는 사람이어야 한다. 지식이 아니라 삶의 안내자, 사랑을 실천하는 모범을 보이는 사람이다. 

말썽을 피우고 비뚤어진 행동을 하더라도 그들의 가능성에 대한 무한한 믿음과 인내로 그들을 지켜주는 교사. 그런 역할을 다 감당하지 못했기에 이들을 만나면 미안하고 부끄럽다. 아무리 유신시절. 권력의 눈치를 보며 움추리며 살았던 교사였을지라도....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