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50년이 됐으니 역사적 재평가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우리 역사를 자긍심과 긍정적 사관을 가지고 (평가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국민 대통합이 되지 않겠나 생각한다"

우리 후손들은 그간 이승만 전 대통령의 역사적 공로를 인정하는 데 몹시 인색했다

이 전 대통령을 국부의 자리로 앉혀야 한다

 

 

 

 

새누리당대표 대표를 맡고 있는 김무성의원이 이승만기념사업회 관계자들과 환담하는 자리에서 나온 말이다. 집권당의 당대표라는 막중한 책임을 맡고 있는 사람이 할 말이 있고 안할 말이 따로 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말을 함부로 할 수 있을까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대한민국 헌법전문에 명시된 구절이다. ‘4·19민주이념을 계승이란 이승만정부의 부정이다. 비록 미완의 혁명이기는 하지만 이승만정부를 부인한 게 4·19혁명 아닌가? 또 대한민국이 1948년 건국했다면 고조선은 누구의 나라이고 삼국시대니 고려와 조선은 어느 나라인가? 

 

4·19이념을 계승한 대한민국이 이승만이 국부가 되고 역사를 재평가 하겠다니 그렇다면 김무성이 법학자이거나 헌법을 마음대로 해석할 수 있는 위치에라도 있는 사람이라는 뜻인가? 요즈음 정치인들을 보면 이 사람들이 헌법을 한 번이라도 읽어 본 사람들인지 의심이 든다. 우리헌법 어느 조항을 찾아봐도 대한민국이 한국이니 자유민주주의라고 표현한 단어를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입버릇처럼 국호인 대한민국한국이라고 하고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라고 마음대로 바꾸고 있다.

 

대한민국헌법은 헌법개정은 국회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제안된다.(헌법 제 10장 제128)’ 또 헌법개정안은 국회가 의결한 후 30일 이내에 국민투표에 붙여 국회의원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 대통령이 공포..할 때 비로소 효과를 발할 수 있다(130, )’ 그런데 어떻게 집권당의 대표가 헌법에 반하는 말을 함부로 하고 다닐 수가 있는가?

 

 

 

 

대한민국헌법 제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규정하고 있어 분명히 한국이 아니다. 헌법이 국호를 대한민국이라고 명시하고 있는데 '한국'은 어디서 나온 이름일까? 사람들 중에는 대한민국을 줄여서 '한국'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네덜란드를 줄여서 네란이라고 부르고 뉴질랜드뉴랜이라고 불러도 좋은가? 상식적으로 고유명사를 줄여서 부른다는 말은 일찍이 들어 본 일이 없다. 그런데 왜 대한민국이 한국이 됐는가?

 

헌법 개정은 국회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제안되고 그 제안된 헌법개정안은 대통령이 20일 이상의 기간 공고한 후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국회의 의결을 거친 후 국민투표에 붙여 국회의원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은 후, 대통령 공포함으로서 효력이 발생한다. 그런데 아무리 집권당 대표라고 하더라도 헌법에 반하는 말을 함부로 하고 다닐 수가 있는가? 특히 그는 언론들이 잠룡인 뭐니 하며 차기 대권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인물이 아닌가?

 

이승만 그는 누군가?

 

이승만 동상을 세우고 그를 국부로, 건국대통령으로 추앙하고 싶다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이승만이 저지른 소름끼치는 죄악상을 알고 있을까? SNS에는 이승만의 죄악상을 폭로한 이런 글이 사이버공간을 떠돌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이승만은 하와이와 미국 본토를 오가며 강대국에 청원하는 방식으로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람이다. 독립운동은커녕 가는 곳마다 불화를 일으켜 자신이 우두머리가 돼야만 직성이 풀렸던 사람, 해방 뒤 미국 도움으로 단독정부를 수립한 사람, 그래서 민족분단의 문을 연 사람, 한국전쟁이 터지자 제일 먼저 남으로 줄행랑친 뒤 한강철교를 폭파해 서울 시민의 피난을 막은 사람, 그러면서도 자신은 여전히 서울에 있고 국군은 북진하고 있다는 거짓 방송을 내보낸 사람...

 


전쟁 발발 앞뒤로 제주도에서 거창에서 또 다른 많은 곳에서 잔악한 민간인 학살을 저지른 사람, 공식적으로 전향한 이른바 보도연맹원들을 죄다 공산주의자로 몰아 학살한 사람, 제 정적이면 좌익이든 우익이든 사정없이 제거한 사람, 전쟁 중의 대통령 선거에서 자신의 세가 불리하자 계엄령을 내리고 헌법을 고쳐 다시 대통령이 된 사람...

 

전쟁이 끝나자 오직 저 한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중임 제한 철폐 개헌안을 발의해 국회 투표에서 한 표가 모자라자 '45'이라는 해괴한 논리로 헌법을 고쳐 종신 대통령이 되고자 한 사람, 수도 서울의 명칭을 제 호() '우남'으로 바꾸고 싶어 했던 사람, 독재와 부패와 부정선거에 맞선 전국적 시민항쟁으로 사람들이 죽어나가자 그제야 마지못해 권좌에서 물러나 하와이로 내뺀 사람, 자신이 대통령 자리에 있는 동안 서울 탑골공원과 남산에 제 동상을 세우고 환화()에 제 얼굴을 새긴 사람...!」(한률열풍)


이런 사람을 동상을 만들어 추앙하고 국부로 존경하도록 학생들에게 국정교과서를 만들어 가르치겠다고 한다. 대통령이 “역사교육을 통해 올바른 국가관과 균형 잡힌 역사의식을 길러주는 게 중요하다”는 말 한마디로 정부가 중고교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기로 확정했다는 보도다. 교과서가 잘못됐으면 잘못을 바로 잡으면 될 일을 검인정인 국사교과서를 국정제로 바꾸겠다는 저의가 무엇일까? 


집권당의 대표라는 사람이 정부정책이 잘못 됐으면 바로 잡지는 못할망정 정부가 결정한 일에 손뼉이나 치는 게 올바른 일인가? 차기 대통령후보로 책봉(?)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사사건건 청와대 눈치를 보고 역사까지 왜곡해 학생들에게 가르치겠다는 저의가 무엇일까? 친일을 미화하고 4·19혁명을 부인하고 유신을 정당화하겠다는 역사왜곡은 중단해야 한다. 민족을 배신하고 헌법을 부정하는 세력을 존경하는 나라에서 어떻게 애국을 말하고 정의를 논할 수 있는가? 선열과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가?

 


-----------------------------------------------------------------------------------------

 

 

2014년 4월 16일...

오늘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을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가족들의 아픔에 함께 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교보문고 
http://digital.kyobobook.co.kr/digital/ebook/ebookDetail.ink?selectedLargeCategory=001&barcode=4808994502151&orderClick=LEA&Kc=

예스24 
http://www.yes24.com/24/Goods/9265789?Acode=101

알라딘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899450215

북큐브 
http://www.bookcube.com/detail.asp?book_num=130900032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렌즈에 비췬 세상2012.09.27 07:00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마산시(馬山市)는 없다. 2010년 7월 1일 인근의 창원시·진해시와 합병하여, 2012년 현재 창원시 마산합포구와 마산회원구로 남아 있는 인구 30만의 초라한 도시로 바뀌었다. 마산은 한때 우리나라 7대 도시 가운데 하나로 꼽힐 만큼 번성했던 도시다. 역사적인 도시. 3.15민주성지의 땅이 오늘날 이름까지 창원시로 바뀐 도시로 바뀌었다.

 

마산하면 1960년 3.15의거나 1979년 박정희 유신체제에 저항했던 부마항쟁을 연상하게 된다. 경찰에 죽임을 당하고 눈에 최루탄이 박힌 김주열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 떠올라 4.19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던 도시 마산. 그 마산을 찾았다.

 

‘내 고향 남쪽바다~’ 라는 이은상작곡 노래로 혹은 물 좋은 마산으로 연상되기도 하는 지금은 이름조차 창원시에 빼앗겨 마산 살리기에 안간 힘을 쏱고 있다.

 

마산 하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총면적 953,576㎡의 규모의 정부에서 직접 관리하는 국가산업단지다. 현재 마산자유무역지역에는 외국인단독투자, 합작투자, 내국인업체 등 90여개사가 입주해 있으며 총생산의 98%를 수출 하고 있다. 

 

 

마산은 한때 한국에서 현금이 가장 많이 도는 도시로 1970년 5월 마산수출자유지역 착공 후 한일합섬을 비롯한 많은 기업들이 마산에 산재하고 있었다. 특히 외국인 기업가 투자유치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노동자 5만여 명이 일하는 전국 7대 도시이자 경남 제1의 도시이기도 했다.

 

그랬던 마산이 급속하게 진행되는 외국자본의 철수로 속수무책이 되고 한 때 노동운동의 메카로 알려져 있던 마산은 ‘모범사례 1위에서 실패사례 1위’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마산시청까지 창원에 뺏기고 한 때 50만이 넘던 인구가 30만으로 줄어든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옛날의 영화는 일장춘몽으로 사라지고 마는가?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마산은 수출자유지역이라는 경제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3.15와 부마항쟁의 민주주의 역사의 성지요 식민지시대 일제 수탈의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경제는 어려워지고 시라는 행정단위가 구로 바뀌기는 했지만 마산이 갖고 있는 역사적 의미는 결코 사라질 수 없다.

 

 

나는 경남대학교와 창원대학교 교수들과 함께 사라져 가는 마산의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1980년 초부터 ‘마산 창원 지역사 연구회’를 만들어 정치, 경제, 노동, 교육 등 각 분야의 역사 찾기와 ‘마산창원역사 읽기’(1989년 불휘출판사)를 출간하는 등 노력을 계속했던 일이 있다.

 

지역사 연구회는 서울문화가 표준문화가 된 현실에서 마산의 역사, 정치사, 경제사, 교육사, 종교사... 등을 발굴해 지역의 역사를 되찾겠다는 의지로 지금도 그 일을 계속해오고 있다.

 

마산의 역사를 찾아서

 

<몽고정>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고려시대 충렬왕 원년 (1281년) 원나라 세조가 여몽연합군에 의한 2차례의 일본 정벌에 실패한 뒤, 같은 해 10월에 남해안 방어를 위해 지금 마산시 정수장 일대의 환주산에 군사를 배치하고 진을 설치하였다. 이곳에 주둔한 군사들에게 마실 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우물이 몽고정이다.

 

원래는 고려정이라는 명칭으로 불려 왔으며, 우물 앞에 몽고정이라 쓰인 비석은 1932년 일본인 단체인 고적보존회가 세운 것이다.

 

<일제시대 교도소였던 한국은행 자리>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지금은 주식회사 부영이 매입해 유로 주차장으로 돈벌이를 하고 있는 자리는 옛 한국은행터다. 이 터는 일제치하에 부산감옥소 마산분감이 있었던 자리다. 1919년 기미독립운동 당시 8명의 희생자와 수많은 부상자를 냈고 삼진의거에 참여하였던 항일 민족지도자들과 독립운동 가이자 정치가였던 박순천과 정진업이 수감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승만의 부정선거와 3.15의거>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1948년 제헌국회에서 국회의장에 피선된 이승만은 초대 대통령을 지낸 후, 1952년 자유당을 창당하면서 2대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1954년에는 대통령의 3선 금지조항을 고쳐 실질적인 종신 대통령의 길을 마련하기 위한 개헌안을 내놓았으나 국회에서 부결되자, 사사오입 논리를 적용하여 부결을 번복하고 통과시킨다.

 

1956년 3선에 성공한 이승만은, 장기 독재에 대한 국민의 비판통로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1958년 8월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다. 야당과 언론의 거센 항의에도 불구하고 1959년 1.15일 신국가보안법발동, 3 · 15 부정선거를 획책한다.

 

1960년 5월 중에 실시하기로 되어있는 정·부통령 선거를 2개월 앞당겨 3월 15일 실시한다. 그것도 40%사전투표와 3인조 5일조로 구성된 관권선거는 급기야 마산의 민주당에서 선거무효를 선언하고 시위에 나서자 시민들이 동조, 결국 마산상고 입학생이었던 김주열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 떠오르자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대, 4.19혁명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부마항쟁의 역사>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1979년 10월 16일부터 10월 20일까지 대한민국의 부산광역시와 경상남도 창원시에서 유신 체제에 저항해 일어났던 민주화 운동이다. 부산에서는 10월 16일 오전 10시에 시작된 부산대생들의 교내시위가 순식간에 4,000여 명으로 불어나면서 거리로 진출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부산시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부상자는 16일 하루 동안에만 학생 5명, 일반시민 10명, 경찰 95명 등 도합 110명으로서 그 가운데 중상자는 18명이었다. 18일 부산 일원에 계엄령이, 마산에는 위수령이 선포되고, 전방 공수부대 2개 여단 5,000여 명이 부산에 투입되었다.

 

마산에서는 10월 18일 경남대 학생 1,000여 명이 기동 경찰 300여 명과 대치하다 투석전을 벌였고, 3·15의거탑에서 1,000여 명이 스크럼을 짜서 유신 철폐와 독재 타도 및 언론자유를 요구하는 시위를 전개하는 등 시내 곳곳에서 대규모 시위가 전개되었다.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부마항쟁은 단순히 '70년대 반유신운동의 귀결점으로만 머물지 않고 그 철옹성 같던 박정희의 유신정권을 붕괴시킨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는데 역사적인 이이가 있다고 할 것이다.

 

마산의 역사는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의 자취이기도 하다. 식민시대의 신마산은 아직도 일제시대의 집들이며 유적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구마산의 상가에는 옛 조창터와 일제시대 최초의 조선인 무역회사인 원동무역주식회사가 있었던 자리터도 남이 있다. 지금은 친일인사로 빛이 퇴락한 이은상과 이원수, 김혜랑이 마산사람이라는 걸 알만 한 사람들은 다 안다.

 

 

 

 

 

 

 

 

 

 

 

마산을 일컬어 민주성지라고도 한다. 지금은 새누리당의 텃밭이요, 감자바위라는 소리를 듣는 도시가 됐지만 과거 3. 15의거가 부마항쟁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일제 식민지시대는 물론 독재 권력에 저항했던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 그 역사를 살려내는 노력은 창동 예술촌 100일기념 축제를 계기로 지속적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9.05 05:00



 

                             <이미지 출처 : 아이엠피터님 블로그에서>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 ·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대한민국 헌법 전문의 일부다.

4·19민주이념을 부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대한민국 백성이 아니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국민의 방송’이니 ‘공영방송’이라고 하는 KBS가 3·1운동을 부정하고 친일파를 미화하는가 하면 독립군을 토벌하던 사람을 영웅으로 만들고 4·19 이념을 부정하는 방송을 하고 있어 시청자들을 헷갈리게 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KBS는 만주지역의 독립군을 토벌하던 일제의 특수부대 백선엽을 미화하는 내용의 방송도 모자라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라며 영웅으로 만드는 방송을 하겠다고 한다.

KBS는 지난 6월 24~25일에도 ‘백선엽 특집 다큐’를 방송한 바 있다. 백선엽이 누군가? 백선엽이 활약한 간도특설대란 만주지역의 독립군을 토벌하던 일제의 특수부대다.

‘나물을 뜯는 이들을 잡아다 불태워 죽이고, 전사한 항일부대원의 내장을 꺼내 자기들 충혼비에 제사를 지내고, 포로로 잡힌 항일부대원을 일본도로 참수하여 잘린 머리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항일부대원을 숨겨준 마을 원로를 살해해 그의 머리를 삶은 후 두개골을 장식으로 만드는 등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만행을 저지른 게 그들이었다.’(한겨레신문)

                                                  <이미지 출처 : 아이엠피터님 블로그>

이승만은 또 누군가? 4·19혁명으로 쫓겨난 독재자다. 민주주의와 부정부패에 항거하는 청년학생들을 수백명이나 살상하고 수많은 양민들을 학살한 자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KBS가 중단했던 광복절 기념특집 ‘대한민국을 움직인 사람들-이승만’ 편 다큐멘터리를 이달 중하순께 방영할 예정이라고 한다.

KBS만 그런게 아니다.
<조선> “이승만은 부정선거 몰라” “이승만과 4.19는 같다” 주장 부각
<중앙> “이승만과 4.19의 화해”, “이승만 재평가 움직임 활발”
<동아> <이승만 유족, 51년만의 ‘4.19 사죄’>
<조선> “아버지 이승만, 불의에 항거한 학생들 장하다 했다”
<‘이승만-4.19’ 역사적 화해 모색>(중앙, 1면)
<내일 4.19 51주년 - 활발해진 이승만 재평가>(중앙, 2면)
<건국과 이승만, 그리고 4.19>(중앙, 칼럼)
<이승만 유족, 51년만의 ‘4.19 사죄’>(동아, 2면) ....................(사)민주언론시민연합

역사적으로 검증된 사실을 애국단체들이 반발하는 이승만 특집에 혈안이 되어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역사청산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들의 노력으로 친일인명사전을 만들기도 하고 현대사 바로 세우기 운동을 벌이기도 했지만 아직도 우리사회의 기득권을 장악하고 있는 상당 수의 사람들은 친일 인사의 후손들이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이명박 대통령의 가계를 보자


조중동은 또 어떤가? 혈맥 또는 인맥으로 연결된 그들은 MB정권시절 언론을 장악하고 그 힘으로 역사 거꾸로 세우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나라를 팔아먹고 그것도 모자라 일제에 빌붙어 우리의 젊은이를 학병으로 혹은 정신대로 내몰고 나이든 사람들은 징용으로 보국대로 내몰아 죽인 장본인들. 만주에서 혹은 간도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애국지사를 잡아 잔인하게 죽이던 반민족 친일 인사들이 해방 정국에 주역으로 애국자로 변신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전 영역에서 권력을 장악했다. 그들은 역사의 고비마나 혹은 독재에 혹은 군사정권에 빌붙어 시혜를 받고 혼맥을 엮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이미지 출처 : '나만의 창고' 블로그에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보수언론, 뉴라이트 등 보수로 위장한 세력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설 곳이 좁아지자 민주세력을 빨갱이로 색깔 칠을 하고 보도연맹 사건으로 혹은 간첩사건을 조작해 수십만명을 학살했던 것이다. 이들이 전가의 보도로 사용하는 있는 종북 좌익이니 빨갱이란 이렇게 만들어져 선거 때마다 혹은 정적 제거용을 써 먹었던 것이다. 이제 MB 정권의 임기가 끝나기 전 ‘건국 대통령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서울 광화문 ~ 용산을 잇는 '역사 상징거리'에 동상을 세우자고 기염을 토하고 있는 것이다.

애국단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KBS가 백선엽을 미화하고 이승만을 찬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들은 내년 선거를 앞두고 수구세력의 재집권을 돕고자 우리 역사에서 독립운동의 역사를 지워 수구세력들의 어두운 과거를 세탁하려는 의도다. 뉴라이트를 비롯한  한나라당과 조중동 그리고 KBS는 수구세력들의 재집권을 위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헌법정신마저 부정하는 정치 쿠데타를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까지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는 수구세력들의 쿠데타를 구경만 하고 있어야할까?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