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정치2018.03.24 07:02


갑오농민전쟁이 일어난 곳은 곡창지대인 전라도였다. 수탈이 심한 곳에는 상대적으로 저항이 크다는 얘기다. 마산창원(이하 마창)도 그렇다. 창원공단과 수출자유지역이 있는 마산과 창원을 일컬어 노동운동의 메카라고도 한다. 역사적으로 3.15의거나 부마항쟁의 발상지가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아이러니 하게도 마창지역과 같은 탄압이 극심한 지역에서는 국회의원 권영길, 김두관의원 같은 정치인을 배출하기도 하고, ‘약자의 힘 경남도민일보와 같은 언론과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와 같은 학부모운동이 발상지이기도 하다.


<노동운동 여성운동에 앞장섰던 김경영씨>

탄압의 반작용은 저항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법이다. 울산과 경남이 행정구역이 분리되기 전 전두환, 노태우군사정정권의 탄압이 극에 달했던 시절, 전교조해 1600여명의 교사대학살이 있었다. 나는 그 학살의 현장 교육동지들과 함께 전교조에 가입했다가 해직되고 저항의 가장 선봉이었던 민주주의 민족통일경남연합상임의장을 맡기도 했다. 당시 나를 감시하고 다니던 사복경찰은 타협불가능한자로 분류당하고 원칙주의자라는 낙인이 찍히면서 지역에서 수많은 걸출한 노동운동가를 비롯한 민주주의를 위해 온몸을 던진 동지들을 만나기도 했다.

창원시장후보 블로거 간담회에 갔다가 이번 6·13선거에 도의원후보로 출사표를 던진 여성운동을 하던 김경영씨를 만났다. 김경영씨는 정권의 노동운동탄압이 극에 달하던 시절, 한국웨스트전기 노조위원장을 맡으면서 민주주의의 첨병으로 나서게 된다. 당시 ‘00위원장이니 대표를 맡는다는 것은 곧 잡혀갈 사람’, 구속의 대상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온 몸으로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사람이 아니면 대표이라는 직책을 맡지 못한다. 요즈음 노조위원장이니 무슨 시민단체의 대표를 맡겠다고 경선에 나서는 사람들을 보면 옛날 생각이 난다. 옛날 그 시절로 돌아가면 위원장이니 대표를 서로 맡겠다고 나설까? 

세월이 지나고 보면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길을 오직 한 길로 달려가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정치로 세상을 바꾸겠다고 정계로 뛰어드는 사람들이 있다. 가장 극심한 탄압을 받으면서 살아온 사람들의 공통된 느낌이 정치가 아니면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경험 때문이다. 정치계로 진출한 사람 중에는 적당히 타협하고 차기를 바라며 점수관리나 하며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처음처럼 한결같은 마음으로 일선에서 싸우는 사람도 있다. 홍준표가 경남도지사시절, 그와 맞서서 쓰레기’, ‘막말논란을 빚으며 8차례 고소·고발전을 벌이던 경남도의원 여영국 같은 사람도 있다.



6·13지자체 선거에 도의원이 되겠다고 출사표를 던진 김경영씨를 나는 아직도 그를 만나면 김위원장이라고 부른다. 노동운동으로 잔뼈가 굵은 그는 여성운동에 뛰어 든다. 경남여성회사무국장, 회장을 맡아 여성 운동에 앞장서면서 성희롱예방교육 전문강사 양성평등교육 전문강사, 성별영향분석평가교육 전문강사...로 경상남도 여성인권특별위원회 부위원장, 경남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등을 맡아 활동해 온 사람이다. 나의 욕심 같았으면 #미투운동이 한창인 지금과 같은 시국에 계속 그길로 나가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도의원을 맡아 제대로 된 여성운동, 여권신장을 위한 능력 있는 일꾼이 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정치인이 되는가? 지역에서 교육운동을 한다는 사람, 정치 일선에 나서겠다는 사람 중에는 남이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가지고 나타나는 사람도 있다.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보수와 진보의 눈치를 살피며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꽃길을 걷겠다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정치란 김경영씨같은 외길로 살아 온 사람이 걸어가기는 너무 힘들고 어려운 길이 아닐까 하는 마음에서다. 정치인이 가야할 길은 여영국 경남도의원 같은 싸움닭이라는 별명을 들으며 외길을 걷거나 아니면 양쪽에서 인사 듣고 적당히 타협하며 차기를 노리며 사는 두 길이 있다.

유권자는 어떤 사람을 원할까? 전력이 화려한 스펙의 소유자, 달변가, 외모가 출중한 호감이 가는 인상의 소유자...? 홍준표 도지사와 같은 사람이 어지렵혀 놓은 경남이 옛날 노동운동의 메카, 315의거의 도시, 정의의 도시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서는 가장 힘들고 어려운 외길을 마다않고 달려 온 김경영씨 같은 사람이 일꾼이 됐으면 좋겠다. 그 일을 감당하고도 남을 역량을 갖춘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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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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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의 투표권은 없지만 이번 선거에서 당선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2018.03.24 08:1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참 일꾼이 제대로 평가를 받는 선거가 되었으면 합니다.

    2018.03.24 14:1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이런분이 일꾼으로 뽑힌다면 변화가 오지 않을까요?

    2018.03.24 18:0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정치2013.05.05 07:00


 

                                            <이미지 출처 : 오마이 뉴스>

 

기차를 타고 마산역에 내리면 ‘내고향 남쪽바다...’로 시작하는 '가고파'라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학교 시절에 배웠던 노래에 대한 추억과 노랫말에 취해 마산이라는 정서가 피부로 와 닿게 하려는 마산역의 배려일까?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낙천적이고 단순하게 볼일만 아이다.

 

가고파라는 시의 작곡가 이은상이 누군가?

 

이은상은 이승만시대에는 이승만을 '이순신 장군 같은 분'이라며 칭송하고 3·15의거와 4·19항쟁을 '무모한 흥분' 내지 '지성을 잃어버린 데모', '불합리, 불합법이 빚어낸 불상사'라는 표현도 서슴지 않았던 인물이다.

 

"4·19혁명이 성공하자 수유리 묘지의 4·19학생혁명 기념비에 4·19를 찬양하는 비문을 쓰고 전두환이 군사쿠데타를 일으키자 '한국의 특수한 상황으로 보아 무엇보다도 강력한 지도자를 원하는 것이 거의 일반적인 여론'이라는 글을 쓰기도 했던 철저한 기회주의자다.

 

마산시민들은 마산이 4.19혁명의 단초가 된 3.15의거와 유신정권을 무너뜨린 부마항쟁의 숨결이 서린 곳이라는 긍지를 가지고 있다. 지금은 비록 새누리당의 아지트가 되고 말았지만 역사를 바꾼 긍지와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도시다. 이런 정서가 깔린 마산이라는 곳에 친일과 친독재의 인물이기도 한 이은상의 시비를 건립하자 논쟁이 시작된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산역을 찾는 사람들은 기차에 내려 엘리베이트를 타고 마산 역광장으로 내려서려는 순간 눈앞에 진귀한(?) 풍경이 펼쳐진다. 아름답게 꾸며진 역광장 정면에는 전에 없던 검은 페인트를 뒤집어 쓴 이은상의 가고파 시비가 세워져 있고 시비 위에는 서로 정반내의 주장을 한 현수막이 걸려 보는 이들로 하며금 어리둥절케 하고 있다.

 

‘시민 여러분 진실이 무엇입니까? 이것이 민주와 정의입니까?’ 라는 현수막 아래는 깨알같은 글씨로 '마산과 조국을 사랑한 노산선생은 3.15를 폄하하지 않았다.’로 시작하는 이은상의 공로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그 아래는 ‘ 3. 15가 통곡한다. 이은상 미화석 철거하라!’ 라는 현수막도 걸려 있다. 현수막 아래는 ‘내고향 남쪽바다 그파란 물 눈에 보이네...’로 시작하는 이은상의 시 가고파가 검은 페인트를 뒤집어 쓴채 얌전하게(?) 앉아 있다.

 

가끔 지나가는 행인들이 신기한 듯 쳐다보곤 한다.

지난 달에 마산에 갔을 때 기차에서 내리자말자 흘러나오는 가고파 노래가 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도 다른 노래와 함께 나오는 게 아니라 연달아 가고파 노래 한곡만 반복적으로 계속 흘러 나오는 것이었다. 이은상 시비문제가 마산의 시민단체와 시비를 세운 측과의 첨예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 노래가 아주 기분 좋게만 들리지 않았다.

 

                                            <이미지 출처 : 오마이 뉴스>

 

집으로 돌아오려고 역사를 다시 찾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합실에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시간에도 계속 가고파 노래만 흘러나오고 있었다. 기차시간이 바빠 그냥 돌아오기는 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마산 역사(驛舍)에 왜 논쟁의 주인공의 노래만 듣게 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생각으로 심란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그러고는 잊고 지냈다. 그러다 지난 2일 경남도민일보 독자권익위원회의에 참가하려고 다시 마산 역에 내렸을 때 일이다.

 

벌써 한 달이 지났는데 역시 똑같은 노래가 기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대로 둬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서 역장을 만나 항의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역장실로 찾아갔다. 마침 역장은 출타중이어서 부역장(서정길)을 만났다.

 

“부역장님! 마산 역에 내리는 손님들은 왜 가고파 노래만 들어야 합니까?”

부역장의 눈이 둥그레졌다. 머리가 허연 할아버지가 느닷없이 꺼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되는 모양이었다.

 

가고파시비문제로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을 부역장이 머리가 허연 사람이 이은상을 칭송은 못할망정 가고파 노래를 방송하는 문제를 따지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일까?

눈이 휘둥그래진 부역장을 향해 다시 말했다.

 

“마산역에는 가고파 노래 한 곡 뿐입니까? 그리고 지금 마산에는 이은상 시비문제로 논란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첨예한 문제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가고파 계속 반복해서 방송하는 저의가 무엇입니까? 시비건립에 찬성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는데 마산역은 왜 한쪽 편을 들어 논란의 중심에 서려고 하는게지요?”

가까스레 감을 잡은 부역장은 할 말이 없는 모양이다.

 

“어떻게 하라는 얘깁니까?”

 

“다른 노래를 들려주든지 방송을 하지 말아야지요. 논쟁이 끝나고 난 후 방송을 하든지 말든지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변명을 하려고 했다.

 

“민원입니다. 민원을 접수해야하지 않습니까?”

 

A4용지 한 장을 픽 던지다시피 책상위에 내놓았다.

 

“나보고 적으라는 겁니까?”

 

“민원 용지를 주세요!, 고객을 상대하는 공공기관에서 민원 문제가 발생하면 처리를 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게 없는데...!”

어처구니가 없다. 정말 없는지 있어도 없다고 하는 건지....

 

“인터넷에 직접하는 방법은 있긴 있는데....”

머리가 허연 사람이니까 인터넷에서 직접 민원 처리를 하라면 항복하리라고 생각했던 모양일까?

 

“좋습니다. 내가 쓰지요?”

부역장의 자리를 비켜주며 직접 민원을 작성하라는 것이었다.

 

                                         ‘가고파 노래 중지 요청건’

 

‘지난 달에 마산에 왔을 때도 그랬고 오늘 또 마산역에 도착하자말자 가고파 노래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습니다.

 

마산은 지금 이은상시비 건립문제로 심각한 갈등과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줄 압니다. 그런데 공공기관인 마산역은 왜 시비건립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이은상의 가고파 노래만 반복해서 보내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도 다른 노래와 함께 보내는 게 아니라 가고파 한곡만 계속해서 보내는게 옳은 일인지요?

 

앞으로 논쟁이 끝날 때까지 가고파 노래 방송을 중단해 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2013년  5월  2일  민원인 김 용 택

                                                                                마산역 부역장 서 정 길(인) 

 

민원을 접수하고 나오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마산 역을 지나갔을텐데 왜 아무도 이이제기를 하지 않았을까? 가고파를 들은 사람들 중에는 이은상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침묵하는 구성원들이 모인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니다.  이-메일로 처리결과를 알려주겠다는 확약을 받고 역사를 빠져 나왔다. 마산 역 앞에는 새순들이 펼치는 꽃보다 아름다운 봄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광장 앞에는 가고파 시비 건립에 대한 뜨거운 논쟁의 열기로 한여름을 방불케 하고 있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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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해바라기

    가고파 노래는 언제들어도 심금을 울려주는데
    그 지은이의 행적이 민족에 역행을 했군요.
    휴일 행복한 시간 되세요.^^

    2013.05.05 07:20 [ ADDR : EDIT/ DEL : REPLY ]
  2. 둘리

    아무리 훌륭한 문학작품이라도 사상검증이 먼저라는 참교육님 멋지십니다. 사상검증으로 문학을 탄압했던 독재자 박정희는 천하의 쌍놈이지만 참교육님은 떳떳하신거죠? ㅋㅋ 빨갱이 사상검증은 못된짓이지만 친일 독재 사상검증은 무조건 옳다는 참교육님. 흑백논리에 철두철미한 참교육님. 존경합니다.

    2013.05.05 08:47 [ ADDR : EDIT/ DEL : REPLY ]
  3. 학교 다닐 때 이은상을 얼마나 존경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친일파였고, 독재를 찬양했습니다

    2013.05.05 09:33 [ ADDR : EDIT/ DEL : REPLY ]
  4. 요즘 일본 아베총리의 역사왜곡과 극우 행보가 전세계인의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의 역사인식 또한 천박하기 그지없다는 것.....
    이은상...아마도 전국 초중고 교가 중 이은상 작사인 학교가 한둘이 아닐진대....
    자성의 시간이 필요한 때입니다.

    2013.05.05 10:2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5. 환이

    이은상은 대한민국 국보급 문인이자 시인입니다.
    친일은 한 적도 없고, 박정희대통령, 전두환대통령을 찬양한 것은 맞는 것 같은데
    이것은 자유대한에서 허용된 자기의사표시입니다.
    이 나라의 경제를 발전시킨점에서는 위의 두 대통령의 역할이 절대적입니다.
    브람스도 아인슈타인도 개인비리나 비인간성에 절어있었지만
    국가적으로 이를 덥고 훌륭한 음악가,과학자로 남게 했습니다.
    우리도 조금 마땅하지 않다고 매를 들고 흙으로 묻을 것이 아니라
    좋은 분으로 남게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인물을 타박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2013.05.05 15:09 [ ADDR : EDIT/ DEL : REPLY ]
    • 자유요?

      이은상이 박정희대통령, 전두환대통령을 찬양한 것은 맞는 것 이라고 인정하셨죠?
      이것은 자유대한에서 허용된 자기의사표시이라고 덧붙여서 설명하시는군요.
      근데 그건 아십니까? 환이님같이 두 군사 대통령을 추종하시는분들은
      자유 참 좋아하시고 민주주의 참좋아하시는데요. 자유 민주주의 그 두 글자는 두 대통령시대에 없던 말이였죠. 철저히 탄압했고 입막고
      감방보내고 확실한 증거없이 야당. 일반 시민을 빨갱이로 몰아 사형시킨건 불가피하다고 항변하실건가요?
      그 자유 .민주주의. 당신들이 그렇게 삿대질하던 시위꾼들이 되찾아온 권리죠.
      그렇게 삿대질 했으면 미안해서라도. 아무 댓가도 없이 무임승차 했으면 최소한 부끄러움을 아셔야죠.
      뉘우치셔야죠.

      이 나라의 경제를 발전시킨점에서는 위의 두 대통령의 역할이 절대적이라고요?
      경제 발전을 시킨건 국가 발전을 위해 희생했던 노동자와 국민이였지. 궁정동 안가에서 시바스리갈이나 땄던 그분 그리고 적군도 아니고
      국방 방위 업무에 충실했던 군인과 사령관을 체포하고 군인을 사살하며 반란을 주도했던 내란 정치범 그분이 그런건 아닙니다.
      경제발전을 해서 과정은 그렇다 쳐도
      결과는 합리적으로 개선했나요? 불합리하고 희생당해야했던 노동문제는 2013년 현재 세대를 이어 대물림 되고 있습니다.
      애국보수라는 분들. 박정희 전두환 두 군인들을 추종하시는 진영에서는 아예 노동문제는 커녕 기업편에 철저히 서서 권익을 보호하고.
      정경유착을 해도 경제발전을 하면 그만. 부실기업이 되더 그만.이시더군요.
      . 우리도 조금 마땅하지 않다고 매를 들고 흙으로 묻을 것이 아니라 좋은 분으로 남게할 의무가 있다구요? 그렇게 매번 조금 마땅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비판하지 않으니깐 똥인지 된장인지 모르시는거 아닙니까?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을 나쁜놈으로 매도하고 어느 개 돼지도 하지 않는 . 입에 담지도 못할 패륜아나 할짓인 무덤을 파는 흉내내고 관을 꺼내는 쇼를하며 고인을 욕되게 하는건 그쪽에선 정의인가요? 당연한건가요?
      우리나라처럼 인물을 타박하는 나라는 없다구요? 참 말 쉽게 하시네요.
      자유대한에서 허용된 자기의사표시라구요? 그 자유가 당신이 추종하고 찬양하는 반인반수의 지도자. 종교처럼 떠받들여졌던 전씨 시대엔 없었던 단어란걸 깨닫으시길바랍니다.

      2013.05.05 21:21 [ ADDR : EDIT/ DEL ]
  6. 마산역장이 친일파인가 봅니다....

    2013.05.05 15:1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7. 오 하룡

    편견이 너무 심하십니다. 노산 선생은 친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315를 폄하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인터넷에 올라있습니다. '노산 선생은 315를 폄하하지 않았다'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독재 부역이란 표현은 적당하지 않습니다. 그의 일생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단순하게 몰아가선 안됨을 알 수 있습니다. 양지를 지향함 삶을 살았다구요? 노산 선생이 고관대작을 지냈습니까. 그 정도의 인품이면 충분히 그런 유혹도 받았
    을텐데 초지일관 문사의 외로운 길을 걸었습니다. 마음에 들지않더라도 그의 글을 좀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마산역 당국의 소신있는 행동에 박수와 함께 뜨거운 격려를 보냅니다./;오하룡

    2013.05.05 15:37 [ ADDR : EDIT/ DEL : REPLY ]
  8. 결과가 과정을 덮어버리기 일쑤인 이 시대의 희생양이랄수도 있겠죠...

    2013.05.06 02:4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9. 이상한 관리를 하는 곳이 마산에도 있었군요. 하기야 일부러 찾아볼라치면 한두 군데가 아닐 듯도 합니다. 썩고 부패한 자리는 다른 흙으로 메꿔야 더 썩지 않습니다. 이상한 관리인에 이상한 문화들 깡그리 뿌리뽑히기를 희망합니다.

    2013.05.06 06:1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0. 잘하셨습니다
    님의 용기있는 행동에 박수 보냅니다

    2013.05.06 08:18 [ ADDR : EDIT/ DEL : REPLY ]
  11. 불만은 있을지라도 민원은 생각 못했을 것 같은데..대단하세요.
    이은상의 행적을 떠나서
    공기관이 논란이 있는 문제의 한 편을 드는 듯한 행동을 취하면 안되죠.
    오이밭에서 신발끈 묶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서 갓 끈 고쳐매지 말라는데 말이예요.

    2013.05.06 09:02 [ ADDR : EDIT/ DEL : REPLY ]
  12. 제가 초등학생 때 기념관 문제로 한바탕 난리를 쳤는데 여전히 그치지 않고 있으며, 그 목소리는 더 작아졌다는 사실입니다. 제 또래들이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대부분 과격한 어른들의 정치적 이념 분쟁정도로 보거나 아예 모르거나 정도입니다. 제가 걱정하는 바가 그것인데, 마산 곳곳에 뿌린 내린 이은상의 흔적이 그를 미화시키고 이것이 정당한 인식으로 바뀌는 것이 매우 두렵습니다. 논란이 된지 벌써 수십년이 지났음에도 제자리 걸음이고 이것이 결론 짓지 않은채 역사 속에 묻혀 그저 흘러가고만 있다는 사실이 두려운 겁니다. 도대체 친일에 대한 검증 문제를 아직까지 해결하지 않고 '공과 과는 다르니 그것을 언제 검증하더라도 작품을 내세우는 건 문제없다'만 주장을 하니 참.....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 나눠져있습니다. 아직은요. 문제는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이 사라지고, 이용하려는 사람만 남아간다는 사실입니다. 끈을 놓지 않고 붙들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했지만, 지나다니면서 마산역에 민원 넣을 생각은 하진 못했었네요.

    2013.05.06 10:3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렌즈에 비췬 세상2012.09.27 07:00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마산시(馬山市)는 없다. 2010년 7월 1일 인근의 창원시·진해시와 합병하여, 2012년 현재 창원시 마산합포구와 마산회원구로 남아 있는 인구 30만의 초라한 도시로 바뀌었다. 마산은 한때 우리나라 7대 도시 가운데 하나로 꼽힐 만큼 번성했던 도시다. 역사적인 도시. 3.15민주성지의 땅이 오늘날 이름까지 창원시로 바뀐 도시로 바뀌었다.

 

마산하면 1960년 3.15의거나 1979년 박정희 유신체제에 저항했던 부마항쟁을 연상하게 된다. 경찰에 죽임을 당하고 눈에 최루탄이 박힌 김주열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 떠올라 4.19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던 도시 마산. 그 마산을 찾았다.

 

‘내 고향 남쪽바다~’ 라는 이은상작곡 노래로 혹은 물 좋은 마산으로 연상되기도 하는 지금은 이름조차 창원시에 빼앗겨 마산 살리기에 안간 힘을 쏱고 있다.

 

마산 하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총면적 953,576㎡의 규모의 정부에서 직접 관리하는 국가산업단지다. 현재 마산자유무역지역에는 외국인단독투자, 합작투자, 내국인업체 등 90여개사가 입주해 있으며 총생산의 98%를 수출 하고 있다. 

 

 

마산은 한때 한국에서 현금이 가장 많이 도는 도시로 1970년 5월 마산수출자유지역 착공 후 한일합섬을 비롯한 많은 기업들이 마산에 산재하고 있었다. 특히 외국인 기업가 투자유치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노동자 5만여 명이 일하는 전국 7대 도시이자 경남 제1의 도시이기도 했다.

 

그랬던 마산이 급속하게 진행되는 외국자본의 철수로 속수무책이 되고 한 때 노동운동의 메카로 알려져 있던 마산은 ‘모범사례 1위에서 실패사례 1위’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마산시청까지 창원에 뺏기고 한 때 50만이 넘던 인구가 30만으로 줄어든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옛날의 영화는 일장춘몽으로 사라지고 마는가?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마산은 수출자유지역이라는 경제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3.15와 부마항쟁의 민주주의 역사의 성지요 식민지시대 일제 수탈의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경제는 어려워지고 시라는 행정단위가 구로 바뀌기는 했지만 마산이 갖고 있는 역사적 의미는 결코 사라질 수 없다.

 

 

나는 경남대학교와 창원대학교 교수들과 함께 사라져 가는 마산의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1980년 초부터 ‘마산 창원 지역사 연구회’를 만들어 정치, 경제, 노동, 교육 등 각 분야의 역사 찾기와 ‘마산창원역사 읽기’(1989년 불휘출판사)를 출간하는 등 노력을 계속했던 일이 있다.

 

지역사 연구회는 서울문화가 표준문화가 된 현실에서 마산의 역사, 정치사, 경제사, 교육사, 종교사... 등을 발굴해 지역의 역사를 되찾겠다는 의지로 지금도 그 일을 계속해오고 있다.

 

마산의 역사를 찾아서

 

<몽고정>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고려시대 충렬왕 원년 (1281년) 원나라 세조가 여몽연합군에 의한 2차례의 일본 정벌에 실패한 뒤, 같은 해 10월에 남해안 방어를 위해 지금 마산시 정수장 일대의 환주산에 군사를 배치하고 진을 설치하였다. 이곳에 주둔한 군사들에게 마실 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우물이 몽고정이다.

 

원래는 고려정이라는 명칭으로 불려 왔으며, 우물 앞에 몽고정이라 쓰인 비석은 1932년 일본인 단체인 고적보존회가 세운 것이다.

 

<일제시대 교도소였던 한국은행 자리>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지금은 주식회사 부영이 매입해 유로 주차장으로 돈벌이를 하고 있는 자리는 옛 한국은행터다. 이 터는 일제치하에 부산감옥소 마산분감이 있었던 자리다. 1919년 기미독립운동 당시 8명의 희생자와 수많은 부상자를 냈고 삼진의거에 참여하였던 항일 민족지도자들과 독립운동 가이자 정치가였던 박순천과 정진업이 수감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승만의 부정선거와 3.15의거>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1948년 제헌국회에서 국회의장에 피선된 이승만은 초대 대통령을 지낸 후, 1952년 자유당을 창당하면서 2대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1954년에는 대통령의 3선 금지조항을 고쳐 실질적인 종신 대통령의 길을 마련하기 위한 개헌안을 내놓았으나 국회에서 부결되자, 사사오입 논리를 적용하여 부결을 번복하고 통과시킨다.

 

1956년 3선에 성공한 이승만은, 장기 독재에 대한 국민의 비판통로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1958년 8월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다. 야당과 언론의 거센 항의에도 불구하고 1959년 1.15일 신국가보안법발동, 3 · 15 부정선거를 획책한다.

 

1960년 5월 중에 실시하기로 되어있는 정·부통령 선거를 2개월 앞당겨 3월 15일 실시한다. 그것도 40%사전투표와 3인조 5일조로 구성된 관권선거는 급기야 마산의 민주당에서 선거무효를 선언하고 시위에 나서자 시민들이 동조, 결국 마산상고 입학생이었던 김주열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 떠오르자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대, 4.19혁명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부마항쟁의 역사>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1979년 10월 16일부터 10월 20일까지 대한민국의 부산광역시와 경상남도 창원시에서 유신 체제에 저항해 일어났던 민주화 운동이다. 부산에서는 10월 16일 오전 10시에 시작된 부산대생들의 교내시위가 순식간에 4,000여 명으로 불어나면서 거리로 진출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부산시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부상자는 16일 하루 동안에만 학생 5명, 일반시민 10명, 경찰 95명 등 도합 110명으로서 그 가운데 중상자는 18명이었다. 18일 부산 일원에 계엄령이, 마산에는 위수령이 선포되고, 전방 공수부대 2개 여단 5,000여 명이 부산에 투입되었다.

 

마산에서는 10월 18일 경남대 학생 1,000여 명이 기동 경찰 300여 명과 대치하다 투석전을 벌였고, 3·15의거탑에서 1,000여 명이 스크럼을 짜서 유신 철폐와 독재 타도 및 언론자유를 요구하는 시위를 전개하는 등 시내 곳곳에서 대규모 시위가 전개되었다.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부마항쟁은 단순히 '70년대 반유신운동의 귀결점으로만 머물지 않고 그 철옹성 같던 박정희의 유신정권을 붕괴시킨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는데 역사적인 이이가 있다고 할 것이다.

 

마산의 역사는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의 자취이기도 하다. 식민시대의 신마산은 아직도 일제시대의 집들이며 유적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구마산의 상가에는 옛 조창터와 일제시대 최초의 조선인 무역회사인 원동무역주식회사가 있었던 자리터도 남이 있다. 지금은 친일인사로 빛이 퇴락한 이은상과 이원수, 김혜랑이 마산사람이라는 걸 알만 한 사람들은 다 안다.

 

 

 

 

 

 

 

 

 

 

 

마산을 일컬어 민주성지라고도 한다. 지금은 새누리당의 텃밭이요, 감자바위라는 소리를 듣는 도시가 됐지만 과거 3. 15의거가 부마항쟁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일제 식민지시대는 물론 독재 권력에 저항했던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 그 역사를 살려내는 노력은 창동 예술촌 100일기념 축제를 계기로 지속적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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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어릴적 외가댁과 외가친적분들이 다 이곳에 살고 있어 종종 갔었습니다.
    마산이 앞으로 더욱 발전하는 도시가 되었음 좋겠어요~

    2012.09.27 09:4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잘 보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되셔요~

    2012.09.27 10:4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빠박이

    마산도 우리나라 민주화에 커다란 기여를 한 곳이네요
    곳곳에 마산 역사의 흔적이 있군요 ^^

    2012.09.27 10:48 [ ADDR : EDIT/ DEL : REPLY ]
  5. 좋은 정보 잘 보고 갑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2012.09.27 10:5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6. 지역마다 다 특색과 역사가 따로 있는 것 같아요.
    부마항쟁...들어봤어요^

    2012.09.27 11:0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7. 마산은 광주와 함께
    한국 현대사에서 누구나 한번쯤 기억해봐야 할 도시이지요...

    2012.09.27 11:2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8. 잘보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2012.09.27 11:3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9. 마산의 역사에 선생님의 역할이 대단하셨군요.
    참, 제 메일은 jong5629@hanmail.net입니다.
    잘 보고 갑니다.

    2012.09.27 11:3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0. 마산도 아픔이 많은 도시군요.
    민주의 성지

    2012.09.27 11:50 [ ADDR : EDIT/ DEL : REPLY ]
  11. 마산이 민주성지라는 것 잊고 있었네요.
    그런 아픔이 다시는 이땅에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2012.09.27 14:4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2. 참교육님 잘보고갑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2012.09.27 15:2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3. 선생님, 답변 메일로 보냈습니다.

    2012.09.27 18:5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4. 타향살이

    지금 마산합포구와 마산회원구의 인구는 30만이 아니고 42만명입니다...잘못기재 되었네요..너무 초라하게 보지 마세요...마산은 그래도 역사와 전통와 문화가 있는 도시입니다. 마산의 발전과 마산의 이름이 회복되어야 하겠지요..

    2012.09.27 21:01 [ ADDR : EDIT/ DEL : REPLY ]
    • 죄송해요. 제가 확인을 멋했습니다. 마산에 30년이 넘게 살면서 조도 마산에 대한 애정이 남보다 못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인구통계를 확인하지 못했군요.
      다시 확인 해보겠습니다.

      2012.09.27 21:34 신고 [ ADDR : EDIT/ DEL ]
  15. 3.15

    한나라당 새누리당 지역 정치 기득권 토호들이 마산이란 저항과 민주도시 지명과 역사성을
    지우기 위해 정치꾼들이 나서 행정통합을 한 것 아닌가 음모가 아닌가 싶다.

    현시대 최고의 권력자 박근혜 아버지의 부끄러운 과거가 부마항쟁 저항의 도시 마산 부산이 아닌가.
    한때는 저항의 도시 마산이 움직이면 한국 역사가 바뀐다고도 했다.

    결국 이것도 역사왜곡 앞장 서는 뉴라이트 정치성을 기반으로 하는 친일 매국 군부독재 유신독재
    수구세력의 숨기고 싶은 역사왜곡의 일환이 아닐까?
    결국 이명박 박근혜 유신독재 친일 세력의 2-3세가 권력의 정점에 있는 시기에 마산이란 지명은
    창원에 묻혀 사라졌다.


    역사성 지명도를 보더라도 창원 보다는 마산이란 지명이 전국에 더 알려졌는데 겨우 공단도시
    창원에 마산이 먹히다니 말이 안 된다.

    그런 의미로 보면 광주라는 민주 저항의 도시가 이런식으로 행정통합 편의적으로 소수 정치세력으
    농간에 여론화 되어 묶이면 나주에 행정통합으로 지명을 묶어버려 광주라는 지역성과 역사성을
    없애려고 할 것이다.

    그나마 광주 호남에는 수구 매국세력 텃밭이 아니란 것이 다행.

    2012.09.28 00:52 [ ADDR : EDIT/ DEL : REPLY ]
  16. 자등명

    마산은 역사와 예술이 녹아있는 도시죠. 천상병시인도 마산출신이죠 지금은 경제논리에 밀려 창원시에 예속되었지만 역사적으로 본다면 마산시로 통합되어야 합니다.

    2012.09.28 13:08 [ ADDR : EDIT/ DEL : REPLY ]
  17. 앞으로 창원시가 마산에게 해주어야할 일이 참 많습니다

    2012.09.28 17:2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8. ㅎ..저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담으셨습니다. 대단하시네요. 많은 준비를 하신 흔적이 엿보입니다. ^^

    2012.09.28 21:05 [ ADDR : EDIT/ DEL : REPLY ]
  19. 역시 선생님은 마산의 역사 교과서이십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

    2012.10.02 22:3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0. 선생님, 답변 메일로 보냈습니다.

    2012.11.24 13:16 [ ADDR : EDIT/ DEL : REPLY ]
  21. 강어진

    마산은 경제발전의 진원지요, 민주정치의 성지입니다.
    호수같은 바다를 안고 있는 아름다운 마산, 수많은 인재를 잉태시킨 강직한 마산,
    경남의 마산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마산입니다.
    인구10만이면 어떻습니까, 경제가 어렵다해도 마산이 왜 사라져야 합니까?
    살아 남아야 합니다. 마산되살리기 전국민운동을 펼칩시다.

    2013.04.14 10:26 [ ADDR : EDIT/ DEL : REPLY ]

정치2012.04.19 06:39


 

 

 

오늘은 4·19혁명이 일어난 지 52주년 째 되는 날이다. 나라의 헌법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라고 명시하고 있지만 나라는 4·19혁명을 총칼로 뒤엎은 5·16쿠데타 세력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다.

 

헌법을 부정하는 세력들이 주인이 되어 노동자 농민의 주권은 자본이나 권력에게 저당잡혀 노예가 되어 살고 있는 나라. 52년 전 오늘 우리의 선배들은 이승만정권의 부정선거에 분연히 떨쳐 일어나 목숨을 걸고 자유와 정의를 지켰다.

 

노동자와 농민은 물론 초등학생들까지 거리로 뛰쳐나가 자유를 지키겠다는 의거의 정신은 간곳도 없이 사라지고 권력 앞에 혹은 돈 앞에 정의도 헌신짝처럼 팽개치고 살아가는 사람들...

 

 

 

 

신동엽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껍데기는 가라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다시 맞는 4·19혁명... 껍데기는 청산 되었을까? 독재자 이승만은 쫓겨났지만 이승만보다 더한 박정희가 나타나 헌법을 유린하고 합법적인 제 2공화국을 짓밟았다. 내일의 주인공이 될 이 땅의 청소년들을 지도하는 교사들은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4월 혁명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학생들에게 혁명전개 과정이라도 알려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혁명 일지를 올려 본다.

 

 

4·19혁명일지>

 

2. 28. 민주혁명의 도화선 대구 경북고교생 수백명이 학원의 정치도구화에 반대하여 최초의 가두시위. 여기에 대구고등학교, 대구사대부고생 합류

 

3. 1. 3․1절 기념식에서 “3․1정신 받들어 대구학생 성원하자”는 유인물 배포

3. 10. 수원농고, 대전상고, 충주고 학생 “학원 자유”를 외치며 시위

3. 12. 부산 해동고교, 동래고, 혜화여고, 청주고 “공명선거” 외치며 시위

3. 14. 서울 환일, 용문, 중동, 배재, 선린, 경기, 대동상고생 공명선거 요구 시위

3. 15. 마산사태 발생. 자유당 표가 유권자 수보다 많이 나오는 부정선거 폭로됨

 

3. 17. 진해고교, 서울 성남고교생 부정선거 항의 시위

3. 24. 부산고교생 900명 조회시간에 전단 뿌리고 거리 시위

3. 25. 부산 동성중고, 혜화여고, 경남공고 거리 시위, 경찰과 육박전

4. 4. 전북대생 300명 전국 최초의 대학생 시위

 

4. 6. 서울 재야․정치 단체, 시민, 학생 4천명 시위

4. 11. 마산 김주열 학생 주검 발견. 시민 2만명 시위. 2명 사망, 14명 중상

4. 12. 마산상고생이 중심이 되어 시민 3만명 시위

4. 16. 청주공고생 전원 “불법 선거 무효”, “경찰 만행을 쳐부수자”며 시위

4. 18. 부산 동래고, 경남공고, 부산공고, 항도고, 청주공고생 시위

 

서울 고려대생 4천여명 국회의사당까지 시위, 귀교길에 정치깡패에게 폭행

4. 19. 서울대, 경희대, 동국대, 건대, 연세대 ,단국대, 국민대, 성대, 경기대, 한양대, 성신여 대, 서라벌예대, 홍익대, 강문중고, 동국중고, 대광중고, 동성고, 양정중고, 휘문중 고, 용문중고, 등 서울시내 대부분 중고대학생 거리 시위.

광주, 청주, 인천, 대구, 대전 등 전국적으로 부정선거 규탄 시위

 

4. 21. 소요사태 책임지고 국무위원 총사퇴

4. 22. “부정선거 다시하라”에서 “이승만 물러가라”로 구호 바뀌며 전국적 시위

4. 25. 서울시내 대학교수 258명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며 가두시위

4. 26. 서울시민 3만명 이승만 하야 요구하며 시위. 수송국민학교생 시위

이승만 하야 담화 발표

국회 3․15 선거 무효, 재선거 실시, 내각제 개헌, 총선거 실시 결의

 

4. 27. 남녀 63개 고교대표 257명 계엄사령부 방문하여 7개 요구 조건 합의

전국 대학생 대표 학교 복귀 결의, 질서유지반 편성 후 경찰에 배치

4. 28. 이기붕 일가 집단 자살

 

5. 03. 대학생들 학도호국단 해체, 학생회 탄생. 학원 민주화 운동 전개

5. 19. 4․19 희생자 합동위령제 거행

7. 29. 민의원, 참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압승

8월 윤보선 대통령, 장면 총리로 제 2공화국 출범

 

 

 

 

<배경 및 전개과정 요약>

 

1. 배 경

 

4 ·19혁명이 일어난 근본원인은 종신 집권을 노린 이승만 대통령의 지나친 정권욕과 독재성 및 그를 추종하는 자유당의 부패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평불만이 누적된 데 있음.

 

2. 전개 과정

 

(2․28 대구 고교생 시위)

 

1960년 2월 28일은 일요일이었다. 그러나 그날 대구에서 열리는 야당 장면 부통령 후보의 유세에 고교생들이 참여하지 못하게 하려고 각 학교에서는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영화관람, 토끼사냥, 졸업생 환송회, 졸업고사 등의 명목으로 학생들을 등교시켰다. 그 음모를 간파한 고등학생들은 경북고생들을 선두로 “횃불을 밝혀라,

 

동방의 빛들아 ! 학원의 자유 보장 등”의 구호를 외치면서 시위를 벌였다. 자유당 정권의 암흑통치 하에서 대학생 등 지식인들이 침묵하는 시대에 최초로 고등학생들이 앞장서서 국민저항권을 발동한 4 19혁명의 시작으로 보는 것이 바로 대구 2 28 고교생 시위인 것이다.

 

(3․15 부정선거)

 

1960년 3월 15일의 제4대 대통령 선거와 5대 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정권은 상상을 초월한 부정들을 저질렀다. 조병옥 야당 대통령 후보가 급서한 이후 세인의 관심은 부통령 후보인 이기붕과 장면의 선거에 있었다. 그러나 이미 민심은 저 멀리 떠나갔고 부패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폭력과 부정부패 밖에는 다른 길이 없었던 정권으로서는 ‘부정선거’가 당연한 선택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당시 자유당은 사전 투표, 투표함 바꿔치기, 3인조-5인조 투표, 야당 참관인 매수 및 협박 등의 온갖 기상천외한 방법까지를 동원했다. 이같은 2중 3중의 부정선거로 개표 결과 이기붕 지지표가 무려 95-97%까지 나오는 사태가 발생하자 이에 스스로도 터무니없다고 느낀 이승만은 당시 내무장관 최인규에게 득표율을 하향 조정하라고 하기까지 했다.

 

(1차 마산 의거)

 

투쟁의 봉화는 항도 마산에서 타올랐다. 이미 투표함에 사전 투표용지가 차있는 것을 발견한 야당 민주당 마산지구당은 3월 15일 오전 10시경에 ‘투표무효’를 선언하고 거리에 나섰다.

이에 절대 다수의 시민과 학생들이 호응하면서 출동한 경찰이 발포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경찰은 발포 사실을 숨기면서 배후에 공산당이 있다고 하면서 갖은 조작을 일삼았다.

 

(2차 마산의거)

 

3월 15일 시위시 실종된 김주열 열사(마산상고 1년)의 참혹한 시체가 마산 중앙부두에 떠오르면서 민중들의 분노는 다시 폭발했다. 양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처참한 모습으로 경찰에 의해 바다에 버려졌던 김주열열사의 시체를 본 마산 시민들은 제2차 마산의거를 일으켰고, 이후 전국에서는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산발적인 시위들이 벌어졌다.

 

(4․18 고대생 시위)

 

드디어 침묵하던 대학생들 중에 제일 먼저 고려대생들이 일어섰다. 4월 18일 국회의사당 앞까지 진출하여 “마산사태 책임자 처벌, 행동없는 지식인을 배격한다” 등을 외치고 학교로 질서정연하게 돌아오던 고대생들을 경찰과 공모한 반공청년단 소속 깡패 유지광 등 100여명이 몽둥이, 갈고리 등으로 습격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비참하게 쓰러진 고대생들의 모습이 실린 4월 19일 조간신문은 마침내 전국민적인 저항의 불길을 당긴 것이다.

 

 

 

(혁명의 날, 4월 19일)

 

아침에 대광고생들이 동숭로에 모여들어 “대학생 형님들 뭐하냐?”며 한 이후 서울대, 동국대, 성균관대 등 대학생들이 앞장서고, 시민들이 합세하여 경무대 앞까지 진출하면서 경찰과 밀고 밀리는 공방을 벌였다. 경찰은 발포를 하였고 이승만정권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4․25 대학교수단 시위)

 

계엄령의 공포분위기 속에서 이승만은 이기붕을 퇴진시키는 선에서 사태를 마무리 짓고 정권을 계속 유지하려고 하였으나, 4월 25일 “학생의 피에 보답하자!”라며 백발이 성성한 노교수들을 앞세운 대학교수단 300여명의 시위가 그 야욕에 철퇴를 내렸다.

(이승만 하야 --- 민중의 승리!)

마침내 이승만은 이어지는 민중의 저항에 4월 26일 하야 성명을 내고 12년간 지켜온 권좌에서 쫓겨났다.

 

 

 

4·19혁명의 의의 >

 

0. 186명의 고귀한 희생과 수많은 부상자들의 투쟁에 힘입어 자유당 정권의 몰락과 이승만의 하야를 가져온 4․19혁명으로 인해 우리 사회는 제대로 된 민주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불과 1년만에 정권욕에 불타는 박정희 등 소수 정치군인들의 5 16 군사 쿠데타에 의해, 이후 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독재 정치 시대의 막이 열렸던 것이다.

 

0. 역대 독재자들은 4․19 정신이 널리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명칭도 “혁명에서 의거로 또 운동으로” 깍아내리는 데에 심혈을 기울였고 심지어 5공 헌법에서는 4․19정신이 헌법 전문에서조차 삭제되는 등 4․19는 숱한 수난을 겪기도 하였던 것이다.

 

0. 그러나 4․19때 시작된 불의의 지배에 대한 국민저항의 정신은 이후 면면히 이어져 박정희 유신독재 반대 투쟁, 5․18광주민중항쟁, 6월 민주항쟁 정신으로 나타나는 등 우리 사회 발전의 초석이 되어왔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0. 문민정부 들어 비로소 ‘혁명’으로 격상된 4․19 혁명기념일을 맞아 우리 모두 다시 한 번 4․19정신인 민주이념과 사회정의의 실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것이 그날의 의미를 되살리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4․19혁명은 완성된 게 아니다. 총칼로 무너진 미완의 혁명은 아직도 살아남은 자들에게 말한다. 백성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만드는 일은 ‘산자의 몫'이라고...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이요, 모든 권리는 국민에게 있고 권리는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정신을 살리는 길이라고.... 일제잔재청산을 못한 건국이 외세에 짓밟히듯 5·16쿠데타로 짓밟힌 4․19 정신을 살리지 못하는 한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이 아니라고....

 

<참고 웹 사이트>

 

1. 4·19혁명(http://100.naver.com/100.nhn?docid=84193) : 네이버에 올린 두산백과사전의 내용. ‘4 ·19혁명의 배경, 4 ·19혁명의 직접원인,  4 ·19혁명의 도화선, 4 ·19혁명의 전개과정, 4 ·19혁명의 의의’가 잘 정리되어 있음.

 

2. 국립4.19민주묘지(http://419.mpva.go.kr/) : 서울 강북구 수유동 위치. 묘역현황, 참배절차 및 4.19 민주혁명 소개, 안장자 검색

 

3. 4.19 민주혁명자료(http://library.419revolution.org/419/main.asp) : 4.19 민주혁명, 공식문, 사진자료, 동영상자료, 보도자료, 발간자료, 발췌자료, 공개자료 등이 있음

 

4. 4.19혁명기념도서관(http://library.419revolution.org/) : 도서관소개, 이용안내, 키워드, 일치 및 분류 등 도서검색 제공.

 

5. 역사다시보기- 하나, 4·19 혁명 (http://www.kdemocracy.or.kr/Minju/Minju2_PDS/minju2_MediaPDS_view.asp?bid=pds_vod&num=28&page=5&od=&ky=&sh=)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역사다시보기 일환으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영상물을  제작한 것. 이승만독재정권을  무너뜨린  4·19혁명에  관한  영상임. 기획-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작-MBC프로덕션, 상영시간- 20분

 

6. 4.19 민주 혁명회(http://www.419revolution.org/) : 4.19 혁명 부상자회, 희생자 유족회, 기념관, 국립묘지 등 관련 기관, 단체 안내

 

  이 기사는 '참교육마당'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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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해바라기

    당시 학생들의 희생으로 많은 독재가 물러갈 수있었는데 또 다른 독재가 이어지고...

    그날을 상기하고 갑니다.좋은 하루 되세요.^^

    2012.04.19 07:18 [ ADDR : EDIT/ DEL : REPLY ]
  2. 글로피스

    4.19는 부패와 부정선에 저항하는 의식있는 학생들이 촉발시킨 민주시민혁명 입니다.

    2012.04.19 07:28 [ ADDR : EDIT/ DEL : REPLY ]
  3. 4.19 혁명이 다시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암흑의 시대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ㅠㅠ

    2012.04.19 07:4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오늘 그 의미를 다시 한 번 더 생각해보아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2012.04.19 07:4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5. 오늘이 419군요.. 민주 항쟁의 정신을 다시금 새겨봅니다.
    그리고 이땅에 진정한 민주주의는 언제 올런지요??

    2012.04.19 08:0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6. 우린 해마다 연례 행사처럼 되뇌이나 정작 정치권은 아무런 고한심도 없지요.

    2012.04.19 08:2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7. 시대순으로 4.19가 앞선 일이니 '5.16 청산 못한 4.19' 는 맞지 않는 말 같습니다.
    독재정권, 군부정권, 박근혜, 새누리당은 오히려 5.16을 혁명이라고 칭하는 웃기지도 않은
    코미디를 하고있네요. 4.19혁명, 5.16군사 쿠데타라고 올바르게 가르치고, 역사는 기록해야
    할것입니다만 쿠데타 세력이 정권을 찬탈하고, 또 그 세력들이 수십년간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받고 정권을 잡고있으니 이러다간 정말 5.16이 혁명으로 둔갑되어 질까 무섭네요.

    2012.04.19 08:2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하모니

      ㅋ 저도 처음엔 제목에 무슨 심오한 의미가 있는거 아닌가하고 본문을 읽었는데 그냥 잘못쓴 제목인것 같습니다.

      2012.04.19 13:08 [ ADDR : EDIT/ DEL ]
  8. 5.16 쿠데타를 저지른 독재자 딸이 가장 강력한 대통령 후보라니 비극입니다. 4월 혁명 뜻을 반드시 이루어야 합니다

    2012.04.19 08:27 [ ADDR : EDIT/ DEL : REPLY ]
  9. 고양이 두 마리

    가슴이 먹먹합니다, 이래저래...

    2012.04.19 08:50 [ ADDR : EDIT/ DEL : REPLY ]
  10. 방법만 달랐지 아직도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완 거리가 있고
    정치인들이 주인인듯 합니다.

    2012.04.19 08:5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1. 지금은 민주주의의가 너무 넘쳐나서 큰일입니다

    2012.04.19 10:08 [ ADDR : EDIT/ DEL : REPLY ]
    • 아...

      넘처 난다구요???ㅋㅋ

      웃기네요 ㅋㅋ

      어딜봐서 대체??

      2012.04.19 13:16 [ ADDR : EDIT/ DEL ]
  12. 말없는 다수의 국민들을 가장 무서워해야죠.

    2012.04.19 11:2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3. 요즘과 별로 다르지 않은 듯..

    2012.04.19 11:4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4. 선거 직후라 4.19 혁명 의미가 더 강하게 전달는것 같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2012.04.19 13:4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5. 현실앞에

    먹고사는 것이 급하다고 민주주의를 잊어버리고 사는 세대는 다 사라졌나 싶었는데 이젠 구석구석 뿌리깊이 자리잡은 친미, 친일자본가 및 기득권의 세력하에서 문제 의식을 망각하며 살아가게되는 현실이...... 더 무서운 거지요.

    2012.04.19 14:01 [ ADDR : EDIT/ DEL : REPLY ]
  16. 민주주의가 역행하는 지금의 시대에 적절한 글이네요.

    2012.04.19 15:2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7. 음성 금왕 무기

    4.19혁명을 공부하다 보니, 최초엔 광주 금남로에서 발생했고 그 다음이 경남 진주, 그 다음이 마산시더군요. 외삼촌이 서울대 들어갔다고 동네에서 잔치까지 벌여줬는데 4.19혁명 때 총에 맞아 돌아가셨다고 하더군요. 국립민주묘지에 잠들어계시죠.

    2012.04.20 03:39 [ ADDR : EDIT/ DEL : REPLY ]
  18. 학생층이 주도한 미완성의 혁명 - 4.19
    선생님 좋은 잘보고 갑니다..
    그리고 이글 제가 옮겨가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2012.04.21 13:01 [ ADDR : EDIT/ DEL : REPLY ]
  19. 김서장

    올바롭고 숭구한 사료 잘 읽고 갑니다

    2013.05.18 02:12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