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2·28 대구 학생의거2 기억하세요? 민주화의 성지였던 대구를...‘2·28 대구 학생의거’ 3·15 마산 의거와 4·19 혁명의 도화선 대구 학생의거오늘은 2·28 대구 학생의거 65주년을 맞는 날이다. 2·28 대구 학생의거는 이승만 정권 시절인 1960년 2월 28일 3.15 대선을 앞두고 이승만 정부와 자유당의 독재에 항거하여 대구시의 8개 고등학교 학생들이 자유당 독재와 불의에 항거해 일어난 학생의거로, 이후 3·15 마산 의거와 4·19 혁명으로 이어진 민주화운동이다. ■ 2·28 대구 학생의거의 발단1960년 2월 28일은 일요일이었지만 경북고등학교는 민주당 정·부통령 후보인 장면 박사의 유세장에 학생들이 못나가도록 등교 지시를 내린다. 사유는 3월에 있을 중간고사를 앞당겨 친다는 이유였다. 대구 시내에 있던 다른 국공립 고등학교 7개 역시 일요 등교를 지시한다. 사유는 토끼 사냥,.. 2025. 2. 28. 2·28 대구 학생의거 기억하세요? "백만 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하여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 학도들의 붉은 피가 지금 이 순간에도 뛰놀고 있으며, 정의에 배반되는 불의를 쳐부수기 위해 이 목숨 다할 때까지 투쟁하는 것이 우리의 기백이며, 정의감에 입각한 이성의 호소인 것이다." 1960년 2월 28일 오후 12시 55분 경북고등학교 이대우 학생부 위원장이 조회단에 올라 읽은 결의문이다. 8개 학교 총 1200여 명의 학생들이 참여했고 그 중 120여 명이 경찰에 체포된 반독재의 횃불은 이렇게 정부 수림 후 대구에서 처음 불타올랐다. 1960년 2월 28일 오후 12시 55분, 경북고등학교 이대우 학생부 위원장등이 조회단에 올라가 격앙된 목소리로 결의문을 읽자 흥분이 고조된 학생들은 함성을 지르고 박수를 쳤다. 2·2.. 2020. 2. 28.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