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없음2017.08.19 07:08


착한 사람이 가장 좋은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던 시절... 나는 그 때 주일만 잘 지키고 십일조만 잘 내면 천당가는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살다 잘못을 저지르면 교회에 나가서 잘못했다고 빌면 죄가 씻겨지고 또 잘못하면 속죄하면 용서받고 ...이렇게 사는게 기독교인인 줄 알았습니다. 내가 다니는 교회 그러니까 다른 종파는 가짜요, 우리 목사님이 하나님이 선택한 유일한 분이요, 다른 종교는 마귀요, 적그리스도라고 알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성경책을 펴 눈에 들어 오는 성경 귀절이 하나님이 오늘 내게 주시는 말씀이라고 알고 읽으며 살았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세상과 만나면서 그렇게 사는 것이 이중인격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지만 그것은 마귀가 나를 시험하는 줄 알아 하나님께 용서를 빌면서 살던 때가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였으니 목사님이 가르쳐 주는 것은 모두 진리다고 믿지 않을 수 없었지요. 신학이라는 게 있고 해방식한이나 민중신학이라는 것도 있고 종교가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은 한 참 후에나 알았습니다.

그 후 내가 다니는 교회 장로님이기도 한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전교조 탈퇴각서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당시 감리고 권사였던 나를 제명처분시키고 학교에서도 직권면직당하면서 마취에서ㅗ 깨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성직자가 성경대로 살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것 그 때 깨달았으니까요. 그 후 종교는 신학이라는 걸 알고 믿어야 한다는것, 그리고 종교나 돈, 권력과 손잡으면 부패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 후 한참의 세월이 지난 후 였습니다. 지금은 교회고 성당에도 나가지 않고 있습니다. 이 글은 교회를 다니지 않던 시절 오마니 뉴스에 썼던 글입니다. .     


참회할 줄 모르는 한국교회

평신도의 눈으로 본 기독교

07.07.27 09 : 25 김용택(kyongtt)

 

몇 년 전 퇴근길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께 띠를 두른 교인들이 아래 구호와 함께 행인들에게 홍보물을 나눠주고 있었다. 

"예수 믿고 천당 가십시오, 예수 천당, 불신 지옥." 

그런데 홍보지를 받아 지나가려는 데 건장한 남자 한 분이 필자를 보는 순간 "! 선생님!"하고 아는 체를 했다. 필자도 몇 십 년 만에 만난 옛 교우(?)가 반가워 "아이구 오랜만입니다"라고 악수를 했다. 

10여 년 동안 같은 감리교에서 권사직을 맡아 일했던 분이다. 그런데 이분, 다음 말씀이 "선생님도 이제 교회 나와 천당 갈 준비나 하셔야지요?" 였다. 신호가 바뀌어 급히 인사를 하고 건너오기는 했지만 말을 어떻게 저렇게 할까 섭섭한 생각이 가시지 않았다. 

'당신도 이제 나이께나 먹었으니 죽을 준비나 하라는 뜻인가? 같은 말이라도 '' 다르고 '' 다른데 어떻게 60도 안 된 사람에게.' 

<기독교와의 맺은 묘한 인연>

필자와 기독교는 묘한 인연이 있다. 사립학교에 근무했는데, 학교설립자인 교장이 장로였고, 어쩌다 같은 교회에 다니게 됐다. 주일학교 부장까지 맡아 일하던 필자는 그 뒤 전교조 관련으로 해직되면서 몰라도 될 여러 가지를 알게 되고 개인적인 존경심이 바뀌어 감정적인 앙금까지 남은 채 직권 면직 당한다. 

순진하게도 평소 존경하던 교장 선생님(장로님)은 우리가 요구하는 '참교육의 열정을 이해해 주시고 오히려 함께 하지 않을까?' 할 정도로 교장 선생님을 평소 존경해 왔다. 그러나 결국은 참교육이라는 갈림길에서 서로 각각의 길을 걷게 됐다. 그 후 기독교에 대한 상처는 쉽게 회복되지 못하고 그 때의 감정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다. 

개인적인 감정 때문만이 아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전혀 민족적이지도 못하고 민주적이지도 못하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기독교 한 종파는 군수산업을 해 돈벌이를 하고 있지만 여기선 그 얘긴 덮어 두자. 그 외에도 최근 사립학교법이며 기독교인이 경영하는 이랜드의 파업사태를 보면서 기독교가 이렇게 막나가도 될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멀지 않은 지난 역사에 황사영의 백서사건을 보자. 1801년 천주교 신자였던 황사영(1775-1801)이 신유박해를 피해 충북 제천의 한 토굴에 숨어 지내던 중 한국 천주교의 위기와 이 땅을 천주교의 나라로 만들기 위해 청나라와 서구 열강에 도움을 청하기 위해 장문의 편지를 작성한다. 

신앙의 자유도 좋고 천주교선교도 좋다. 그러나 백서에는 '청이 조선 조정에 압력을 가하거나 조선을 아예 한 성으로 편입시켜 천주교를 공인하거나, 프랑스 등 서양의 천주교 국가들에게 호소하여 군사 수만과 군함으로 조선을 협박하거나 정복해서 천주의 나라를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 담겨 있다. 

자신이 믿는 종교를 위해 나라를 외국에 바치는 행위를 어떻게 봐야 할까? 백성들이야 전장에서 죽든 말든 천주교만 전파된다면 나라고 역사고 필요 없다는 종교가 과연 옳다고 할 수 있을까? 

종교재단이 운영하는 사립학교 부정과 비리를 두둔하기 위해 '사학법 개악을 막자'는 사람들을 마귀로 규정하는 기독교인들은 천사인가 악마인가? 부패한 사학 편에 서서 사학을 바로 세우자는 시민들을 마귀로 단정할 권리는 누구 한테 받은 것일가? 

그들 교회는 식민지시대에는 또 무슨 짓을 했는가? 19366월 감리교 총리사 양주삼 목사는 총독부에서 신사 참배에 응할 것을 밝히자 성결교 구세군 성공회 등이 신사참배를 결의했다. 장로교도 이에 뒤질세라 19389월 제27차 총회(총회장:홍택기 목사)에서 신사참배를 가결했다. 

"신사가 종교가 아니요 신사참배가 애국적 국가의식임을 자각하며 이 에 신사참배를 솔선 여행(勵行)하고 추히 국민정신 동원에 참가하여 비상 시국 하에서 총후(銃後) 황국신민으로서 적성(赤 誠 )을 다하기로 함." 

십계명을 금과옥조로 생각하는 저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도 십계명도 헌신짝처럼 버리는 것이 진정한 예수의 제자의 모습일까? 

황국신민화정책을 실시하기 위해 조선여성을 동원했을 때 고황경, 김활란, 이숙종, 조기홍 등 대표적인 기독교 여성 지도자들은 대세순응론을 들고 나와 미나미 총독이 추진하는 어용단체에 협력해 동족을 내선일체, 황국신민을 만드는데 앞장섰다. 

일제 때만 아니다. 광주시들이 전두환 부하들의 총칼에 무참히 난도질당할 때, 전두환을 위한 용비어천가를 불렀던 목사님들은 아직도 눈이 시퍼렇게 살아 있다. 198086일 원한을 품고 죽어간 무고한 시민들의 피가 채 마르기 전, 롯데호텔에서 기독교 지도자라는 분은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한 조찬 기도회'를 열었다. 이 기도회에서 문만필 목사가 사회를 맡고 설교는 한경직 목사, 기도에 정진경 조향록 김지길 목사와 김인득 장로가 참여했다. 

이들이 하나님께 "이 어려운 시기에 막중한 직책을 맡아서 사회 구석구석에 존재하는 악을 제거하고 정화할 수 있게 해준 데 대해 감사한다"고 기도했다. 이 조찬기도회는 KBSMBC를 통해 현장 중계됐으며 다음날 두 번에 걸쳐 녹화 중계방송됐다. 

한경직 목사는 박정희 대통령을 위한 조찬기도회에서 '박정희 = 모세'라고 찬양했던 바로 그분이다. 양의 탈을 쓴 종교지도자들은 회개해야 한다. 교회지도층의 카멜레온 같은 삶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1972년에는 <대한기독교연합회> 등에서 유신헌법을 지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국가보안법수호 국민대회를 열고, 2001부터 연이어 3년 동안 세 차례에 걸친 미군철수반대와 숭미집회를 열기도 했다. 

1년간 약 11300여만원의 십일조를 낸다는 한 목사의 경우 연간 약 113000만원의 소득있다는 말인데, 이 목사에게 국가는 세금 한 푼도 매기지 않고 있다.

 '종교법인법 제정추진 시민연대' 이드(52) 사무처장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종교인이 세금을 내지 않는 나라가 한국 뿐"이라며 "한국 종교계는 헌법 11조 국민평등권을 위배하고 있고 헌법 38조에 납세의 의무까지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오마이뉴스 2007711)

 종교와 자본, 종교와 권력이 손잡으면 어떻게 될까? 멀쩡한 사람도 권력의 맛을 보면 '맛이 간다'고들 한다. 역사적으로 불교가 권력화 됐던 지난날을 우리는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물론 사람이나 종교도 시행착오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종교인이나 단체가 개인이나 국민 앞에 저지른 죄악을 회개할 줄 모르고서 어떻게 신자들을 천국으로 안내할 것이며 본인은 천국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

2000년 전에 예수님은 말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회개 없이 천국은 없다. 한국교회가 살 수 있는 길은 회개를 통한 양심회복에서 시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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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을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가족들의 아픔에 함께 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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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종교2015.06.04 06:59


나는 기독교 신자인가? 누가 내게 물으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사실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예수교 장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해 기독교 감리교 권사직분까지 받고 초등부 부장, 청년부부장을 지내다 개종, 천주교에서 견진 성사까지 받았다. 그런 내가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고 대답하는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전두환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 9월 30일 신라호텔에서 1,300여 명의 각계 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된 대통령취임 축하 조찬기도회를 통하여 한국기독교는 다시 한번 전두환을 축복해 주었다-출처 : 길목>

 

 

1989. 나는 지금도 그 때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민주화의 바람이 온통 나라를 뒤흔들던 그때를.... 7910·26사태로 박정희가 그의 심복 김재규의 총에 맞아 죽자, 전두환을 비롯한 정치군인들이 제 2의 쿠데타인 12·12를 일으켰다. 쿠데타를 반대하는 국민들의 열망을 광주항쟁으로 진압하고 등장한 전두환정권. 이를 지지한 세력들 중 대통령을 위한 조찬 기도를 주도한 단체가 기독교다. 광주시민을 학살한 전두환이 집권한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니..? 그렇다면 그들의 손에 죽어간 사람은 무엇인가? 

 

그들이 말한다. 권력은 위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느니라’라고... 이런 주장은 일제시대 신사참배를 정당화하고, 유신시대는 유신을 찬양, 지지하고, 전두환이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집권한 정권조차 하느님의 뜻이라며 조찬기도회를 통해 축복했다. 나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저런게 기독교라면 나는 차라리 기독교를 버리겠다고 마음 먹었다. 어떻게 불의를 찬양하고 살인집단에게 꼬리를 흔드는 종교가 하느님의 뜻일 될 수 있는가?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처럼 하라는 사랑의 하느님이 어떻게 나라를 빼앗은 철천지 원수 왜놈들의 황국신민이 되어야 하고, 그들을 위해 총알받이가 되라고 목청을 높이고, 어린 처녀들을 정신대에 나가라고 할 수 있는가? 주권을 도둑질한 박정희를 위해 하느님의 축복을 빌고 백주에 무고한 시민을 학살한 전두환을 위한 기도를 바칠 수 있는가?

 

그래서 나는 기독교를 버렸다. 그런 교회에는 예수도 사랑도 없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마침 전교조에 가입해 활동하던 나를 못마땅해 빌미를 찾고 있던 교장이 장로였던 교회에서 몇차례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고 제명 당하고... 그 후 개종을 한 이유는 아내의 뇌수술과 회복과정에서 붙잡은 게 천주교였으니 아내의 간절한 청을 뿌리치지 못하고 천주교로 개종...그리고는 이름만 붙어 있는 교인이다.

 

 

<이미지 출쳐 : 민중의 소리, 휴심정>

 

 

예수냐 바울이냐문동환 목사님이 졸수(卒壽)에 책을 냈다는 소식이다. 아직 읽지 못했지만 내가 맘 속에 품고 있던 의문이 제목만 봐도 채증이 내려가는 기분이다. 삼인출판사가 펴낸 이 책은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에게는 충격이다. 모르긴 하지만 아마 보수적인 고려신학을 비롯한 근본주의 교파에서는 판매중지 가처분 신청이라도 내지 않을까? 문목사의 표현을 빌리면 생전에 예수를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바울이 신약 27권 중 13권을 썼다니 예수님의 가르침이 그대로 전해 졌을까?

 

책 제목을 보고 내가 느낀 생각은 기독교가 왜 이 모양(?)이 됐는지 알만하다, 기독교가 바울교가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로마지배하의 교회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권력은 위로부터 나지 않은 이 없다는 바울의 변절 덕분이 아니었을까? 하긴 종교개혁이라는 이름이 붙은 후 개신교는 자본주의와 공생관계를 맺으면부터 그런 개연성을 안고 있었다. 공유사상의 예수정신이 사유사상의 자본주의와 동거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가 아니라 바울이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가?

 

예수는 누군가? 신인가, 인간인가? 예수가 누군가를 탐구하는 게 신학이다. 신을 믿는 사람들은 신학없이 성경이나 불경만 보고 빠지다보면 샤머니즘이나 구복신앙으로 흐르게 된다. 종교가 생겨난 이유는 죽음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하면서 생겨난 것이다. 그런 종교가 죽음이 아니라 이승에서 축복받고 즐기기 위해 전능한 신에게 빌면 복을 얻는다는 기복으로 흐르게 됐다.

 

예수가 신인가 인간인가를 놓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해방신학과 민중신학이 등장한다. 근본주의자들은 성서의 일점 일획도 하느님의 뜻으로 기록돼 달리해석할 수 없다면서 귀에 걸면 귀거리 코에 걸면 코거리를 만들어 놓는다. 이웃사랑하기를 네 몸처럼..하라고 가르치고, 왼뺨을 치거든 오른뺨도 내놓아라는 가르침이 없다면 기독교가 다른 구복신앙과 다를 게 무엇인가? 신을 팔아 이승의 권력과 부귀영화를 누리겠다는 인간들에 의해 기독교는 피의 역사를 만들어 놓았다.

 

예수를 닮지 않은 기독교는 가짜다. 사랑이 없는 교회,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처럼 하지 않는 교괴는 가짜다. 권력의 비위나 맞추고 불의한 부를 쌓아 가난한 사름들을 착취하는 교회에는 예수가 없다. 부를 쌓아 문을 잠그고 재물을 땅에 쌓아두는 교회에 어떻게 하느님이 함께 하리라고 생각하는가? 권력화한 예수는 진짜가 아니다. 사랑이 없는 예수는 가짜다. 잔인한 예수, 살상과 억압과 소외와 소름끼치는 전쟁이나 부추기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불의와 동거하는 무리들과 함께 하는 예수라면 그런 예수는 가짜다. 선과 악이 빛과 어둠이, 밤과 낯이 어떻게 동거할 수 있겠는가?

 

 

☞ 관련 글

 - 기독교 하나님은 야훼인가 예수인가??

 - 사람들은 왜 예수 없는 교회에 열광할까? 

 - 내가 만난 하느님

 - 내가 만난 성직자(2) 하느님 자리를 차지하는 성직자들

 - 내가 만난 기독교인들(3).. 교인들은 聖徒인가?

  - 교회비판 글 삭제요구, 회개가 먼저 아닌가? (다음 티스토리 블로그에서 삭제당한 글입니다) 

 - 조용기 목사님! 왜 그렇게 돈을 좋아하세요? (다음 티스토리 블로그에서 삭제당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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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지났다. 아이들은 아직도 9명이나 차디찬 바다속에 잠겨 있는데 정부가, 우리가, 내가 한 일이 없다. 부끄럽고 미안하다.

 

진상규명....!

 

정부는 진상규명을 할 의지가 있는가? 마지 못해 특별법을 만들었지만 그 시행령에는 조사대상자가 참여하게 만들어 놓았다. 유가족들은 삭발로 울분을 토하고 부모된 사람들은 가슴을 치지만 대통령은 마이동풍이다. 이런 비참한 현실을 두고 대통령은 경제를 살리겠다고 남미로  떠났다.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살리겠다는 경제' 그 경제로 누가 살기 좋은 세상이 될까?  

 

세월호 참사 진실은 반드시 밝혀야 합니다. 그것이 억울하게 숨져간 아이들에게 속죄하는 길이요 제 2, 제 3의의 세월호참사를 막을 수 있는 길입니다.

 

4.16...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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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종교2015.05.26 06:58


종교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던 사람이 성경을 처음 읽으면 무슨 생각이 들까? 예수에 대한 존경과 경외감...? 천국백성이 됐다는 자부김과 선민의식..? 자신이 살아 온 삶에 대한 반성과 함께 느끼는 죄의식...? 불신자에 대한 연민과 전교에 대한 열망...? 죄사함 받음에 대한 고마움과 거듭남에 대한 감사... 중 어떤 마음일까?

 

 

 

신학을 공부하지 않은 기독교인들의 일반적인 정서가 그렇다. 그러나 세상에서 살다보면 성경의 가르침 대로 살기가 너무 힘에 벅차다. 예수의 가르침대로 산다는 게 현실과는 너무나 큰 괴리감을 회의에 빠질 때가 많다. 뿐만 아니라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십계명이며 헌금의 부담과 같은 현실의 벽 앞에 좌절하거나 죄의식에 빠지기도 하지만 하느님이 두려워 울며 겨자먹기로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들도 없지 않다.

 

생선장수에게는 생선 냄새가 나듯이 예수쟁이에게는 예수냄새가 나야 한다. 그렇지 않은 신자는 가짜다.’

 

80년대 말, 당시 들불처럼 번져나가는 민주화의 바람은 하느님의 선택받은 백성... 천국을 보장받은 신자로서 감사하며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또 다른 세상을 만나게 해 준다. 전태일열사의 분신으로 시작되는 이 거대한 민주화의 바람은 공순이 공돌이가 노예가 아니라 노동자도 사람이라는 의식개혁의 바람이 불어 닥친다. 언론계에서 한겨레신문이 창간되고, 교육계에서는 교사도 노동자라는 전교조의 출범과 함께 종교계에서도 해방신학이나 민주신학의 거센 바람이 불어닥친다.

 

신학이 없는 종교인이란 목회자들의 신앙 수준을 넘지 못한다. 더구나 성경이란 성령의 은혜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일점 일획도 달리 해석해석 안 된다는 성경무오류설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이러한 종교계에 나타난 민중신학의 바람은 고통받는 이웃에게 선행을 베푸는 것이 곧 하느님께 베푸는 것이요,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신앙관으로 민중신학의 바람이 불어닥친다. 민중신학은 천국이란 전지전능한 절대자가 인간의 사후세계를 위해 만들어 놓은 공간이 아니리 이땅에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야 할 곳이라는 신앙고백을 하게 된다.

 

노동계에 불어닥친 거대한 노동운동이 언론계와 교육계 그리고 종교계에도 들불처럼 터저나온 변혁도 잠간, 수구세력들의 총공세가 시자괴고 그들에 의해 처참하게 침탈당하게 된다. 전두환일당들이 광주시민들을 학살하고 정권을 잡으면서 언론계를 비롯한 진보세력들에 대한 철퇴가 내려졌기 때문이다. 수구세력에 점령당한 변혁의 바람은 또다시 꽁꽁 얼어붙는 겨울공화국을 만든다. 노동탄압과 전교조교사 학살 그리고 사회전역에 공안바람은 또다시 수구세력의 세상을 만들고 종교계에도 예외없이 수구세력들이 장악하게 된다.

 

 

 

역사는 승자의 역사. 종교개혁은 토마스 뮌쯔가 아니라 마르틴 루터와 장 칼뱅이, 흑인해방은 맬컴 X가 아니라 미틴 루터 킹이 흑인해방운동가로 기록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최근 예수냐 바울이냐라는 책을 펴낸 문동환목사는 한국 기독교인들이 믿는 것은 예수가 아니라 바울이 전교한 유대교라고 질타한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금과 옥조인 성서는 메시아와 왕조, 절대권력, 권위주의, 선민의식 등을 거부한 예수와는 정반대의 신학을 정립한 바울에 의해 씌여졌기 때문이라 것이 그의 지적이다.

 

지옥을 강조하고 돈을 사랑하는 기독교. ‘권력은 위로부터 나자 않음이 없다며 불의한 권력에 복종하라고 가르치는 기독교는 예수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멀다. 오늘날 기독교의 부패와 타락을 말하면 이단이 되고 기독교를 비판하는 글만 쓰면 예외없이 삭제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하는 세상.

 

종교인들 중에는 왜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을까?

당신이 믿는 예수는 짝퉁이야

조용기 목사가 만들겠다는 천국은 어떤 것일까?

오세훈의 눈물, 사랑의 눈물인가 악어의 눈물인가?

김홍도목사, 박원순이 마귀면 당신은...?

 

 

필자가 썼던 이런 글들은 하나같이 다음 클린센터에서 권리침해신고 (명예훼손)’로 삭제를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예수보다 돈을 사랑하는 교회, 가난한자와 병든자 그리고 고아와 과부를 못살게 구는 기독교에는 예수님이 없다. 일찍이 신동엽시인은 껍데기는 가라고 했지만 껍데기가 판치는 교계에는 아직도 예수님을 팔아 호의호식하는 자들이 주인 노릇을 하고 이다. 짝퉁 예수를 팔아 배를 채우는 가짜 선지자가 사라지지 않는 한 예수님이 아닌 바울을 믿는 탕자들의 적그리스도가 판을 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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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지났다. 아이들은 아직도 9명이나 차디찬 바다속에 잠겨 있는데 정부가, 우리가, 내가 한 일이 없다. 부끄럽고 미안하다.

 

진상규명....!

 

정부는 진상규명을 할 의지가 있는가? 마지 못해 특별법을 만들었지만 그 시행령에는 조사대상자가 참여하게 만들어 놓았다. 유가족들은 삭발로 울분을 토하고 부모된 사람들은 가슴을 치지만 대통령은 마이동풍이다. 이런 비참한 현실을 두고 대통령은 경제를 살리겠다고 남미로  떠났다.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살리겠다는 경제' 그 경제로 누가 살기 좋은 세상이 될까?  

 

세월호 참사 진실은 반드시 밝혀야 합니다. 그것이 억울하게 숨져간 아이들에게 속죄하는 길이요 제 2, 제 3의의 세월호참사를 막을 수 있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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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2012.06.12 06:30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떤 사람, 어떤 책을 만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품이나 삶의 질까지도 달라진다. 그런 의미에서 해방둥이 우리또래 사람들은 참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 온 불행한 사람들이다. TV는 물론 라디오도 제대로 듣기 어려운 시대... 시골 학교에는 도서관은 말할 것도 없고 신문조차 구해 보기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 왔다.

 

성경을 처음 만난 사람들이 다 그렇겠지만 진로에 대한 안내나 멘토도 없는 가난한 독학생이 만난 문고판 신약성경 한 권. 그것은 나에게 충격 그 이상이었다. 교양서적 몇 권도 제대로 읽지 못한 청소년이 읽은 신약성경은 종교서적이기 이전에 윤리서요, 교양서요, 철학서이기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에는 순진한 청소년들에게 삶을 가르치기에는 너무나 빈약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정치며 경제며 사회를 보는 안목은 물론 시비를 가리며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판단력을 길러주기는 역부족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적 가치도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데 지녀야할 품성도야에는 아예 작은 도움조차 주지 못한다.

 

청소년이 만난 성서는 죽음을 넘어 내세를 준비하는 종교의 의미보다 예수라는 분의 삶을 통해 내가 가야할 길, 설 자리, 삶의 방향을 안내해 주는 인생의 안내자였다. 참과 거짓이 무엇이며 사랑과 인내, 관용과 소망을 가르쳐 준 내 삶의 안내자이기도 했다. 그런데 신학이 없는 성경, 그 성경 속에 숨겨 있는 이데올로기를 발견할 수 있는 안목은 어린 나에게는 생각도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문제였다.

 

 

 

교과서에 담긴 이데올로기를 모르고 금과옥조로 배운 사람들은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간, 자본이 필요로 하는 인간 그 이상의 사람이 되기는 어렵다. 도구교과의 경우는 예외겠지만 윤리니 사회, 국사와 같은 교과서에는 그 내용 속에 체제 이데올로기며 자본이 필요로 하는 가치관을 가진 이데올로기가 담겨 있다.

 

성경도 예외는 아니다. 내가 성경을 신학 없이 순진한 눈으로 이해한 것이 성경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은 나이 40이 가까워서였다. 70년대 후반 감리교 속회모임에서 고만고만한 청년들이 성경을 공부하면서부터 전통신학 외에도 예수님을 보는 다른 시각도 있다는 걸 깨우치게 된 것이다. 이 모임에서 전통신학 이외에 민중신학이며 해방신학도 있다는 것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성경을 처음 만나 받은 충격만큼이나 성경 속에 담긴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의 일이다. 미친듯이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찾아 읽은 철학 서적이며 민중 신학과 해방 신학 서적속에 만난 예수님은 전통신학의 예수님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으로 내게 다가 온 것이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나니..(누가복음 6장 17- 20)’라는 성구가 왜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마태복음 5장 3~5절)’라는 기록으로 남게 됐는지,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처럼 하라’는 말씀의 ‘이웃’이 옆집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도움이 없으면 생명을 이어가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것을 깨우치게 된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참 많은 사람들,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면서 살아간다. 특히 기독교인들... 교회 안에서 양처럼 순하고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사람들이 교회 밖에서 만나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충격을 받게 된다.

 

죄를 아무리 많이 지어도 교회에 가서 용서를 받으면 씻김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일까? 직장에서 만나는 교인들이며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서 그들의 삶이 교회에서 만난 사람과는 너무나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물론 문익환 목사님이나 문규현, 문정현 신부님, 그리고 이태석신부님과 같은 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보고 교회에 다니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신자 한 두 사람을 보고 특정 종교를 평가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종교가 체제 순응 이데올로기나 불의한 권력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가 되면 그 후유증은 예상 외로 심각하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희망을 주는 종교가 또 다른 수많은 사람들을 운명론적 세계관을 갖도록 만드는 독약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종교가 약자의 고통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한 기독교는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만드는 마취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종교2010.12.28 08:56


<삶이 종교에 종속된 사람들>

기독교 신문에 따르면 현재 한국 교회의 71%이상이 10%도 안되는 봉사활동 지출을 하고 있다. 20% 이상 사회봉사 비용을 지출하는 교회는 8.9%에 불과하다. "일부 목사들의 월수입이 수천만원으로 전체 예산의 3.8%가 교역자들의 생활비로 쓰여 왔고, 일부 대 사찰의 승려들이 외제 고급승용차를 타고 일년내내 특급호텔에서 지낸다"는 보도는 일반 상식으로서는 이해하지 못할 일이다.

1993.10.28. 24:00에 예수가 이 땅에 재림할 것이라고 예언한 종교는 신도들이 집을 팔고 학업을 포기하고 예수의 재림을 준비하고 있다가 예언이 빗나가자 가정파탄으로 자살까지 한 사람도 있었다. 몇년전 미국에서는 수백명의 사이비 종교인들이 집단자살한 일도 있었고, 우리나라에서도 가끔 예수의 재림을 예언했다가 빗나간 사건이 있었다.


도대체 종교가 무엇이기에 하나 뿐인 생명이나 전 재산 까지 바쳐 가면서 빠져 들 수 밖에 없을까?

종교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하여 좀더 상세히 알아보자.

어떤 철학자는 종교를 "무지와 공포의 소산"이라 표현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종교를 지배이데올로기로서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통치 수단으로 기능하며 피지배자의 억압 수단이 된다고 비난하고 있다.

<원시종교>

단군(제사장) 왕검(지배자)의 명칭에서도 볼 수 있드시 원시시대는 종교의 수장인 무당이 정치의 우두머리로 군림하던 때를 제정일치시대라고 했다.

이 시대는 특정 동식물이 특정 부족의 수호신으로 신앙하던 토테미즘이 발달하기도 하였고, 지배자의 야망이 인민의 지배수단으로서 종교를 권장하기도 하고 국교로 인정하여 현실의 고통은 내세의 영생복락을 위해 현실을 희생하라고 가르치기도 하였다.

민중의 정치의식이 낮은 시대는 원시종교나 샤머니즘이 지배수단으로서 이데올로기 역할을 했으나 점차 민중의 정치의식 수준이 높아지고 비판의식의 향상 되면서 체계적인 신앙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삼국시대 불교는 민중의 정치의식을 마비시키고 현실세계에 대한 혐오감을 갖게 하여 내세의 준비를 위해 끝없는 희생과 인내를 강요하게 했다.

<불교는 어떤 종교인가>

불교의 교의를 한번 살펴 보자. 불교에서 붓다(Buddha)는 한자어로서 진리를 깨달는 자를 가리키는데,불교에서는 불타,즉 카필라국 정반왕과 마야부인의 사이에서 태어난 고다마 싯달타의 도움을 받아 깨닫는자(부처)가 되는 것이 신앙의 목표이다. 신앙의 대상은 국보(불,법,승)인데, 부처가 되기 위한 과정인 3법인(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숙정)과 사성제(고성제, 집성제, 멸성제, 도성제)와 8정도(정어, 정사유, 정정, 정명, 정정진, 정염, 정견 정업)가 있다.

사람들은 누구든지 불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노력여하에 따라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불교가 사회와 문화 전체에 미친 영향은 거의 절대적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지만 고난에 찬 삶을 살면서 창조적인 세계관을 갖지 못하고 운명론적인 세계관을 갖도록 하는 것은 현실의 질서를 유지 존족하기를 바라는 지배 논리에 기여했던 이데올로기로서의 역할을 부인할 수 없다.

인간의 의식수준과 민중의 각성은 불교가 지배이데올로기의 한계를 노정(露呈)하자 시, 서, 악, 역, 예, 춘추 등 6가지 경전사상을 기초로 한 인(仁)의 도를 가르치는 유교가 등장하게 된다.

<유교는 종교인가?>

유교에서 논어는 공자의 교훈과 행동을 기록한 책으로 모든 경전의 근본사상인 인(仁)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다.

인(仁)이란 극기복례(克己復禮)로 극기는 이기심을 이기는 것이요, 복례는 예법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인의 실천강령을 삼강오륜(三綱 - 군의신강, 부의자강, 부의부강. 五倫 - 군신유의(임금과 신하간), 부부유별(부부간), 부자유친(부자간), 붕우유신(친구간), 장유유서(노소간)이라고 하는데, 상호간의 예의를 기본으로 한다. 특히, 임금과 부모를 동일시하여(군사부일체) 봉건지배 질서를 정당화하고 충효사상(忠孝思想)을 고취하였다.
 

이성적이고 전통적인 공자사상에 대립하여 나타난 삶의 현실을 의미한 도(道)의 실천을 주장한 도교는 노자와 장자가 대성시킨 종교이다. 우주의 본체가 도요, 상대 세계를 초월한 절대 평등과 무차별의 본체를 인정하는 것을 기본원리로 하고 가르치고 있다. 도교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가르침으로 하는 노장철학을 받아들이고 음양오행설과 신선사상을 가미하면서 불로장생의 술(術)을 구하고 주술기도 등을 행하는 종교이다.

<도교와 샤머니즘>

민중의 입장을 강조하는 도교는 지배이데올로기로서의 역할이 유교에 비할 수 없다는 약점때문에 크게 번성하지 못하고 소수의 양심적인 지식인이나 민중에서 받아들인 종교이다.

그 후 서구의 민주주의가 유입되면서 봉건적인 지배질서가 붕괴되고 그 공백을 채워주는 또하나의 지배이데올로기로서 기독교가 들어 온다.

<기독교의 본질>

유태민족의 민족종교인 유대교에 뿌리를 둔 기독교는 예수를 구세주로 받아 들이는 개신교와 천주교로 분리되어 수많은 종파가 들어 온다.

기독교의 교의는 전통윤리가 미개문화로 매도되면서 문화라는 가면을 쓰고 침투한다.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한 절대자인 여호와 하나님과 구세주로 세상에 왔다가 인간에 배척당하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예수와 성령의 3위 일체신을 믿는 종교가 기기독교다. 

기독교는 예수를 구세주로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아들로 천국을 보장받고 영생을 누릴 수 있다는 교리를 전한다.


                   <사진 : 원불교>

세상의 끝날 예수가 재림할 때 알곡과 죽정이를 구분하듯 죄인과 의인을 분류하고 죄인은 지옥불에 영원한 고통을, 의인은 천국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면서 살 수 있는데, 그날(재림)은 하나님 외에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항상 준비하고 살라고 가르친다. '권세는 위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느니라'와 같은 성구에서 보듯, 지배자에게 순종하는 운명론적인 삶이 곧 하나님의 뜻이요, 현실은 내세의 준비과정으로 보고 현실 긍정적인 순응적 삶을 강요한다.

<힌두교와 조르아스트교 그리고...>

그 외의 힌두교는 인도의 굽타왕조때 범서, 비서 등을 기초로 한 바라문교의 사상을 고치고 변경하여 고유한 인도 민족신앙과 결부시켜 발전한 종교로서 범신론, 다신론, 유신론, 무신론을 수용하면서 원시적인 경배와 요가를 통해 인간의 참된 자아를 추구하는 종교이다.

조르아스트교는 기원전 60년경 조르아스트가 창시한 종교로서 젠드 아베스트란 경전을 갖고 있다. 조르아스트교의 교의는 이 세상은 선(善)과 악(惡)이 싸우는 전쟁 마당이며, 아후라 마즈다라는 선신(善神)과 앙화 마이뉴라는 악신(惡神)이 대립하고 있는데, 근검 역행의 노력으로 악신을 이기고 선신이 승리한다는 내용을 가르치고 있다.

<이슬람교>

이슬람교는 회교라고도 하며, 마호메트에 의해 창시된 종교이다.

이슬람은 복종이란 뜻이며, 인간은 신에게 절대 복종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슬람교라 명명했다. 이슬람교는 아라비아 고유의 민족신앙, 그리스트교, 유대교의 교의를 흡수하여 알라를 믿는 신앙을 말한다.                                                                                     <사진 : 힌두교 신 '새미골 (toogoo12)'에서>
 
그들의 경전인 코란에 의하면 알라, 천사, 예언자, 경전, 내세 심판, 예정에 대한 신앙 등 6신과 5행(다섯가지 의무, 즉 알라예배, 모하멧트 믿음, 1일 5회 기도, 자선, 9월 단식, 메카순례)을 요구하는 종로서 4억 5천의 신도가 있다.

<유대교는 기독교의 모태>

유대교는 기원전 15세기경 모세가 애굽을 탈출하여 40년간 광야에서 생활하면서 종교적 체험에서 비롯된 종교로 모세 율법을 기초로 하여 유대인은 하나님의 선민이며, 천국이 지상에 이루어진다고 믿고 있는 종교이다.

유대교가 모태이면서 예수를 크리스도(구세주)로 믿는 개신교와 이땅에 다른 크리스도가 나타날 것이라고 믿는 유대교는 구약 성서만을 믿는다.

이제 개략적으로 살펴본 종교의 공통점은 개인의 영생과 축복에 초점을 두고 개인의 수련과 반성, 도덕적 인격의 완성 등에 관심을 둔다. 특히, 대부분의 종교는 운명론적인 세계관을 갖는 것이 특색이다. 절대자에게 복종하고 순응하며 현실 질서에 복종하는 세게관은 강자의 논리로서 창조적이고 개척의욕을 마비시키고 신의 의도를 추종하는 삶을 강제받는다.

<종교는 약인가 독인가>

종교의 현실 감각의 마비가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여 진취적이고 주체적인 삶의 저해 요소가 된다는 점에서 민중중심의 종교가 양심적인 신앙인에 의해 제기되고 있다.

해방신학이나 민중교회나 민중불교 등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는데, 이들은 지배권력에 의해 반체제 세력 또는 전통에 대한 도전세력이라는 이단(異端)으로 분류되어 탄압을 받는다.

기독교 발생 당시의 이스라엘 상황을 신학의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관점에서 총체적으로 인식하고 해석하려는 시도 없이 전통신학이란 이름으로 다른 해석을 거부하는것은 종교의 경직성을 보여 주는 또하나의 예가 될 것이다.

<사진:힌두교 신 '소망노트' 블로그에서>

전통신학에 대한 도전은 식민지적인 상황에서 예수의 정신을 오늘날 다시 살려 내야 한다는 시도로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데 해방신학이나 민중불교와 같이 신의 본성을 현실에 맞게 재해석하여 지배논리가 아닌 민중시각에서 신앙화하려는 시도가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민중종교의 공통점은 내세를 위한 준비단계로서의 현실이 아닌 이 땅이 하나님의 나라요, 극락으로서 구현시키려는 노력이 종교의 당면한 과제로 받아 들이고 있다.

이제 신의 노예로서 현실 감각의 마비나 지배이데올로기로서의 종교의 역할은 당연히 거부되어야 하고, 사회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의 해방과 인간의 주체적인 삶을 위한 인격 수양의 과정으로서 재정립할 단계에 있다.

목사나 승려의 교세확장이나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자기논리는 상대종교를 적대시 함으로서 또 하나의 38선을 긋는 민족의 비극을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종교2010.11.16 00:13



교회가 사회 봉사비로 쓰는 자금이 한해 예산의 6.2%에 불과하다(한겨례신문 1993.7.4.)고 한다. "일부 목사들의 월수입이 수천만원으로 전체 예산의 3.8%가 교역자들의 생활비로 쓰여 왔고, 일부 대 사찰의 승려들이 외제 고급승용차를 타고 일년내내 특급호텔에서 지낸다"는 한겨레신문의 보도는 신앙인이 아닌 사람들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다.

1993.10.28. 24:00에 예수가 이 땅에 재림할 것이라고 예언하여 성인 남녀는 물론 청년학생들까지 집을 팔고 학업을 포기하고 예수의 재림을 준비하고 있다가 예언이 빗나가자 가정파탄과 충격으로 자살까지 한 사람도 있었다. 몇년전 미국에서는 수백명의 사이비 종교인들이 집단자살한 일도 있었고, 우리나라에서도 가끔 예수의 재림을 예언했다가 빗나간 사건이 있었다.

도대체 종교가 무엇이기에 하나 뿐인 생명이나 전 재산 까지 바쳐 가면서 빠져 들 수 밖에 없을까?
종교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하여 좀더 상세히 알아보자.

종교가 인간세계에 나타난 것은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초기 종교는 자연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나타났다. 그 후 죽음이나 공포를 해결하기 위해 자연이나 절대자를 찾게 된 것이다. 어떤 철학자는 종교를 "무지와 공포의 소산"이라 표현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종교를 지배이데올로기로서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통치 수단으로 기능하며 피지배자의 억압 수단이 된다고 비난하는 학자도 있다.

단군(제사장) 왕검(지배자)의 명칭에서도 볼 수 있듯이 원시시대는 종교의 수장인 무당이 정치의 우두머리로 군림하던 때가 있었다. 이를 제정일치시대라고 한다.
이 시대는 호랑이, 곰과 같은 동물, 오래된 고목이 특정 부족의 수호신으로 숭배하는 토테미즘이 종교의 기능을 했다. 계급이 생기면서 지배자의 야망은 인민의 지배수단으로서 종교를 권장하기도 하고 국교로 인정하여 현실의 고통은 내세의 영생복락을 위해 현실을 희생하라고 가르치기도 하였다.

민중의 정치의식이 낮은 시대는 원시종교나 샤머니즘이 지배수단으로서 이데올로기 역할을 했으나 점차 민중의 정치의식 수준이 높아지고 비판의식의 향상 되면서 체계적인 신앙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삼국시대 불교는 민중의 정치의식을 마비시키고 현실세계에 대한 혐오감을 갖게 하여 내세의 준비를 위해 끝없는 희생과 인내를 강요하게 했다.


불교의 교의를 한번 살펴보자. 불교에서 붓다(Buddha)는 한자어로서 진리를 깨달는 자를 가리키는데, 불교에서는 불타, 즉 카필라국 정반왕과 마야부인의 사이에서 태어난 고다마 싯달타의 도움을 받아 깨닫는자(부처)가 된다. 오늘날 불교도는 이 깨닫는자(부처)가 되는 게 신앙의 목표다.

신앙의 대상은 국보(불,법,승)인데, 부처가 되기 위한 과정인 3법인(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숙정)과 사성제(고성제, 집성제, 멸성제, 도성제)와 8정도(정어, 정사유, 정정, 정명, 정정진, 정염, 정견 정업)를 통해 부처가 되기 위해 수행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든지 불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노력여하에 따라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불교가 사회와 문화 전체에 미친 영향은 거의 절대적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지만 고난에 찬 삶을 살면서 창조적인 세계관을 갖지 못하고 운명론적인 세계관을 갖도록 하는 것은 현실의 질서를 유지 존족하기를 바라는 지배자의 논리에 일정정도 기여했던 이데올로기로서의 역할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의식수준과 민중의 각성은 불교가 지배이데올로기의 한계를 노정(露呈)하자 시, 서, 악, 역, 예, 춘추 등 6가지 경전사상을 기초로 한 인(仁)의 도를 가르치는 유교가 등장하게 된다. 유교에서 논어는 공자의 교훈과 행동을 기록한 책으로 모든 경전의 근본사상인 인(仁)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다.

인(仁)이란 극기복례(克己復禮)로 극기는 이기심을 이기는 것이요, 복례는 예법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인의 실천강령을 삼강오륜(三綱 - 군의신강, 부의자강, 부의부강. 五倫 - 군신유의(임금과 신하간), 부부유별(부부간), 부자유친(부자간), 붕우유신(친구간), 장유유서(노소간)이라고 하는데, 상호간의 예의를 기본으로 한다. 특히, 임금과 부모를 동일시하여(군사부일체) 봉건지배 질서를 정당화하고 충효사상(忠孝思想)을 고취하였다.

                                                   <사진자료 : 한중일전통정원홈에서>

이성적이고 전통적인 공자사상에 대립하여 나타난 삶의 현실을 의미한 도(道)의 실천을 주장한 도교는 노자와 장자가 대성시킨 종교이다. 우주의 본체가 도요, 상대 세계를 초월한 절대 평등과 무차별의 본체를 인정하는 것을 기본원리로 가르친다. 도교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가르침으로 하는 노장철학을 받아들이고 음양오행설과 신선사상을 가미하면서 불로장생의 술(術)을 구하고 주술기도 등을 행하는 종교로 자리 잡는다.


민중의 입장을 강조하는 도교는 지배이데올로기로서의 역할이 유교에 비할 수 없다는 약점 때문에 크게 번성하지 못하고 소수의 양심적인 지식인이나 소수의 민중들에게 초라하게 살아남는다.
그 후 서구의 민주주의가 유입되면서 봉건적인 지배질서가 붕괴되고 그 공백을 채워주는 또 하나의 지배이데올로기로서 기독교가 들어 온다.


유태민족의 민족종교인 유대교에 뿌리를 둔 기독교는 우리나라에 예수를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개신교와 천주교로 각각 다른 경로를 통해 유입된다. 기독교의 교의는 전통윤리가 미개문화로 매도되면서 문화 혹은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뿌리내린다.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한 절대자인 여호와 하나님과 구세주로 세상에 왔다가 인간에 배척당하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예수와 성령의 3위 일체 신을 믿는 기독교는 예수를 구세주로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아들로 천국을 보장받고 영생을 누리는 구원을 받는다는 종교다.

세상의 끝날 예수가 재림할 때 알곡과 쭉정이로 구분해 쭉정이인 죄인은 지옥 불에, 알곡인 의인은 천국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면서 살 수 있다는 가르친다. 그날(재림)은 하나님 외에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항상 준비하고 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기독교는 '권세는 위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다'와 같은 성구에서 보듯, 지배자에게 순종하는 운명론적인 삶을 강요하는 운명론적 세계관이라고 비판하는 학자도 있다. 기독교를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학자들은 현실의 모순을 ‘하나님의 뜻이요, 현실은 내세의 준비과정’으로 가르쳐 현실 긍정적이고 순응적 삶을 강요한다고 비판한다.

그 외의 힌두교는 인도의 굽타왕조때 범서, 비서 등을 기초로 한 바라문교의 사상을 고치고 변경하여 고유한 인도 민족신앙과 결부시켜 발전한 종교로서 범신론, 다신론, 유신론, 무신론을 수용하면서 원시적인 경배와 요가를 통해 인간의 참된 자아를 추구하는 종교이다.

조르아스트교는 기원전 60년경 조르아스트가 창시한 종교로서 젠드 아베스트란 경전을 갖고 있다. 조르아스트교의 교의는 이 세상은 선(善)과 악(惡)이 싸우는 전쟁 마당이며, 아후라 마즈다라는 선신(善神)과 앙화 마이뉴라는 악신(惡神)이 대립하고 있는데, 근검 역행의 노력으로 악신을 이기고 선신이 승리한다는 내용을 가르치고 있다.


이슬람교는 회교라고도 하며, 마호메트에 의해 창시된 종교이다.
이슬람은 복종이란 뜻이며, 인간은 신에게 절대 복종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슬람교라 명명했다. 이슬람교는 아라비아 고유의 민족신앙, 그리스트교, 유대교의 교의를 흡수하여 알라를 믿는 신앙을 말한다.

그들의 경전인 코란에 의하면 알라, 천사, 예언자, 경전, 내세 심판, 예정에 대한 신앙 등 6신과 5행(다
섯가지 의무, 즉 알라예배, 모하멧 
트 믿음, 1일 5회 기도, 자선, 9월 단식, 메카순례)을 요구하는 종로서 4억 5천의 신도가 있다.

유대교는 기원전 15세기경 모세가 애굽을 탈출하여 40년간 광야에서 생활하면서 종교적 체험에서 비롯된 종교로 모세 율법을 기초로 하여 유대인은 하나님의 선민이며, 천국이 지상에 이루어진다고 믿고 있는 종교이다.

유대교가 모태이면서 예수를 
                                                                   <이슬람교도의 예배모습>

크리스도(구세주)로 믿는 개신교와 이땅에 다른 크리스도가 나타날 것이라고 믿는 유대교는 구약 성서만을 믿는다.

이제 개략적으로 살펴본 종교의 공통점은 개인의 영생과 축복에 초점을 두고 개인의 수련과 반성, 도덕적 인격의 완성 등에 관심을 둔다. 특히, 대부분의 종교는 운명론적인 세계관을 갖는 것이 특색이다. 절대자에게 복종하고 순응하며 현실 질서에 복종하는 세게관은 강자의 논리로서 창조적이고 개척의욕을 마비시키고 신의 의도를 추종하는 삶을 강제받는다.

종교의 현실 감각의 마비가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여 진취적이고 주체적인 삶의 저해 요소가 된다는 점에서 민중중심의 종교가 양심적인 신앙인에 의해 제기되고 있다.
해방신학이나 민중교회나 민중불교 등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는데, 이들은 지배권력에 의해 반체제 세력 또는 전통에 대한 도전세력이라는 이단(異端)으로 분류되어 탄압을 받는다.

기독교 발생 당시의 이스라엘 상황을 신학의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관점에서 총체적으로 인식하고 해석하려는 시도 없이 전통신학이란 이름으로 다른 해석을 거부하는 것은 종교의 경직성을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예가 될 것이다.

전통신학에 대한 도전은 식민지적인 상황에서 예수의 정신을 오늘날 다시 살려 내야 한다는 시도로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데 해방신학이나 민중불교와 같이 신의 본성을 현실에 맞게 재해석하여 지배논리가 아닌 민중시각에서 신앙화하려는 시도가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민중종교의 공통점은 내세를 위한 준비단계로서의 현실이 아닌 이 땅이 하나님의 나라요, 극락으로서 구현시키려는 노력이 종교의 당면한 과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인간이 신의 노예로서 현실 감각을 마비시키는 이데올로기의 희생자가 되거나 지배 논리로서의 종교의 역할은 당연히 거부되어야 한다. 이제 종교는 사회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의 해방과 인간의 주체적인 삶을 위한 인격 수양의 과정으로서 재정립되어야 한다.

목사나 승려의 교세확장이나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자기논리로 상대종교를 적대시 하거나 폐쇄적인 사고방식은 분단시대에 또 하나의 38선을 긋는 민족의 비극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게 됨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종교2009.04.25 22:55



아내가 수녀 동생이 근무하는 병원에서 뇌수술을 받고 난 후 나는 개신교 신자에서 천주교로 개종했다. 아내를 쫓아 천주교에 나가면서 기절초풍(?)하게 놀랐던 일(신부님이 예수님 자리를 차지했다는 느낌 때문에...)이 있다. ‘영명축일’이라고 했던가? 영명축일이란 기독교인들이 ‘세례를 받을 때 세속의 이름과 달리 따로 영적인 이름을 받게 되는 기념일이다. 세례명이란 보통 성인의 이름을 따서 지어주는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남‘을 의미한다. 가톨릭 신자들은 세례를 받으면 누구나 세례명을 갖게 되며, 세례명은 ‘그 성인의 덕성을 본받고, 그분의 도움을 전구(轉求)하며, 일생동안 자신의 수호성인(守護聖人)으로 공경하고 보호를 받으며, 그분의 뜻을 기리도록 하기 위해 지어주는 이름이다.

본당 신부님 영명축일 때였던가? 개신교에서는 이러한 행사가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미사가 끝난 후 “지금부터 신부님 영명축일 행사를 하겠습니다.” 하고선 축가를 부르고 꽃다발을 전달하더니 행사 마지막에 “신부님께 물적 선물을 준비한 사람들은 앞으로 나오셔서 전달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회자의 안내가 있자 신부님은 강대상 위에 의자를 놓고 앉아 신자들이 가져온 봉투를 차례로 받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내가 기절초풍하게 놀랐다는 이유는 현금봉투를 받는 것도 놀랍지만 나이가 많은 신자들이 내미는 봉투를 높은 자리에서 젊은 신부님이 태연히 받고 있는 모습 때문이었다. 후에 신부님이 받은 봉투는 정말 좋은 일에 씌어 진다는 말을 듣고 다소 마음이 풀리기는 했지만 수십명의 신자들이 바치는 꽃다발도 아닌 현금을 받는 모습에 아연했던 것이다. 뒤에 안 일이지만 ‘세례 때 새로운 이름을 받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남’을 의미하는 것이라는데 이런 식의 행사가 ‘예수님의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남의 의미를 살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지워지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사회는 어느 한 분야라도 건강한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성직자들은 교회는 물론 우리사회가 이지경이 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라고 가르치고 있는 목회자는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이 땅에 하늘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개인만 도덕적인 인간이 되면 가능할까? 예수님은 분명히 가르치기를 ‘너희는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유순하라고 가르치셨다. ’제탓이오, 제탓이오, 제 큰 탓이옵니다‘는 순진한 신자들을 운명론으로 이끄는 이데올로기는 아닐까? 예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뤄지기 위해서는 운명론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불의를 보고 외면하지 말고 싸워서 승리하는...’ 삶이 필요하다고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목회자들은 신자들에게 ‘쉬지말고 기도하라’고 가르친다. 하느님은 그러나 우리가족의 건강이나 남편의 사업이 잘되게... 아들이 무슨 대학에 합격하게.... 병고에 시달리고 있는 가족의 쾌유를 비는.... 이런 기도를 원하실까? ‘너희가 구하기 전에 너희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다 알고 계신다고...’ 했는데 불의를 저지르는 정치인들을 위해 ‘조찬기도’를... 사랑의 하느님을 ‘공포의 하느님’으로, 가르치고 있는 건 아닐까? 이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구복기도가 아니라 하느님 뜻을 이 땅에 이루는 기도, 즉 ‘불의를 보고 참지 않게 하소서... 이웃의 고통을 함께 아파할 수 있게 하소서... 나의 이익을 위해 침묵하는 비겁함에서 이길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소서....’라고 기도해야 하지 않을까?

교회는 왜 타락하는가? 단언컨대 역사의식이 없이 ‘무오류설’을 가르치는 목회자가 있고 지옥을 강조하는 성직자가 있는 한 이 땅에 하느님 나라 건설은 꿈이다. 제정일치시대 세금제도인 ‘십일조’를 강조하기 위해 ‘하나님의 재산을 도둑질하지 말라’고 강조하는 성직자가 있고 교회를 ‘죄 세탁소’쯤 해석하는 목회자가 있는 한 이 땅의 천국건설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성직자들은 왜 성서를 왜곡하는가? 아직도 많은 목회자들은 성서해석을 성직자만이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아닐까?

모든 기록은 진실일까? 사실(事實)이 아닌 사실(史實)은 객관적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의식이 없는 사람들은 사실(史實)을 사실(事實)이라고 믿고 있다. 가치문제가 담겨진 모든 기록은 그렇다. 그래서 사관(史觀)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성서는 어떨까? 성서는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한 기록이기도 하지만 이스라엘의 역사다. 역사란 사관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다. 민중신학이나 해방신학은 이단이고 전통신학만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해석은 누구의 판단일까? 성서의 진위를 논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성서가 역사라면 역사 속의 기록을 전달하는 사람. 예수라는 분을 대중과 만나게 하고 제사를 집전하는 사람. 이런 직분을 맡은 성직자가 성서를 어떻게 가르치는가에 따라 종교의 교의(敎義)는 신자들에게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전달될 수 있다.

전쟁영화가 재미있는 이유는 전쟁에서 ‘죽음의 공포나 배고픔’과 같은 아픔은 증발되고 ‘스릴과 서스펜스’만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종교가 전쟁영화처럼 관념화 되면 교의(敎義)는 실종되고 형식만 남는다. 교의는 실종되고 형식만 남은 교회. 모든 집단이 그렇치만 과정은 필요 없고 결과만 평가되는 집단은 건강할 수 없다. 더구나 목자가 무지하거나 이기심에 눈이 어두워 양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지 못한다면 어떤 결과를 가져 올까? 오늘날 교회가 또 사회가 막가파식으로 치닫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가 성직자들의 책임은 아닐까?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의인 열 명만 있어도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오늘날 한국 교회의 성직자들은 몇 명이나 예수의 모습으로 살까?

(다음은 ‘내가 만난 기독교인’을 이어 쓰겠습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