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행정협정'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5.31 현대사를 알면 세상이 보인다 (29)
  2. 2011.05.23 미국은 아직도 우리의 수호천사인가? (23)
인성교육자료2011.05.31 05:30



공부를 하는 목적이 ‘나를 사랑하는 길이요, 나를 찾는 길’이라는 것은 학교에서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한 개인은 역사의 흐름에 조응(照應)한다.

학교는 역사를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는다. 특히 현대사의 경우는...  역사의 변혁은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지식을 주입하고 존경받기를 원하던 한 교사에게도 부끄러운 모습도 달라지는 계기가 됐다. 1970년11월13일 전태일 열사의 분신자살 사건은 우리 역사에 잠자던 양심을 깨우는 기폭제가 된다.

                                   <이미지 출처 : 다음 임미지 검색에서>

전태일열사의 분신사건은 지식인과 종교인의 양심선언과 노동운동의 거대한 변혁의 흐름으로 깊은 잠에 빠진 역사를 깨우기 시작한 것이다. 1985년 ‘말’지 창간에 이어 1989년 한겨레신문의 창간, 87년 노동자 대투쟁, 89년 민주화 대투쟁과정은 우리역사의 거대한 혁명기였다. 전두환 노태우의 군사정권이 민주주의 숨통을 조이고 있을 때 나타난 민주화운동은 정치적인 변혁뿐만 아니라 언론이며 교육 민중의 각성 등 거대한 변혁의 회오리바람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시 민중의 각성은 외부의 민주화바람에 발맞춰 이른바 의식화운동은 노동현장에서 혹은 민중교회에서 혹은 학교에서 들불처럼 일어났다. 당시 노동자의 성서로 불릴 만큼 많이 읽힌 책으로는 ‘민중의 함성. 들어라 역사의 외침을 못다 가르친 역사, 스스로 비둘기라고 믿는 까치에게... 등이었다.

같은 책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와 읽기고 또 읽혔다. 이 과정에서 역사, 철학, 정치경제, 경제사, 노동법과 갈은 류의 책들이 필독서였다.
당시 사회과교사였던 나는 광주민중운동에 충격을 받고 사회과학서적 특히 역사공부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네루의 세계사편력에서 충격을 받은 나는 현대사를 읽으면서 내가 얼마나 부끄러운 교사였던가를 절감한다.


오장 마쓰이를 위한 사모곡을 쓴 서정주를 비롯한 이광수, 최남선, 정비석, 모윤숙, 주요한, 유치진, 김동인, 노천명, 이인직, 유진오... 행적을 보며 분노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당시 마창지역에서 노동자교육(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 강사로 참여하면서 참여할 기회를 얻기도 했다.

미국을 알면 내가 보인다. 우리역사가 보이고 분단이 보이고 6·25가 보이고 동족이 보이고 내 아버지의 가난이 보인다. 우리역사를 공부하면 우리나라의 모순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보인다.

가쓰라·테프트밀약에서 미국의 음모가 시작되고 미국의 의지에 의해 38선이 그어지고 군정과정에서 미국의 의지에 따라 신탁통치반대와 분단이 영구화되는 과정이 보인다. 왜 그 많은 양민들이 미군에 의해 학살당했는지 왜 건국 후에도 미군이 이 땅의 주인노릇을 하게 되는 한미행정협정(SOFA)이 맺어지고 이 땅을 쓰레기와 맹독성 물질의 매립장으로, 비행기 사격장으로 영구대여 하는지를....


현대사를 알면 세상이 보인다. 해방 70년이 가까워 오지만 왜 친일청산이 안 되는지, 언론과 재벌이 왜 민중의 억압자가 되어 있는지, 주권자인 백성들이 왜 주권행사를 하지 못하고 노예근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안다. 학교가 현대사를 제대로 가르치기를 꺼려 하는지, 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가난하게 사는지, 통일 교육을 왜 안하는지, 통일이 방안이 왜 국가가 독점하고 있는지, 형법으로도 충분히 처벌할 수 있는 범법자를 왜 국가 보안법이 있어야 한다고 강변하는지를...

브루스커밍스의 저서 ‘한국전쟁’을 읽으며 분노해 보지 못한 사람은 우리민족의 분노와 애환을 알 수 없다. 못다 가르친 역사(김남선-석탑)에서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1, 2, 3 박세길-돌베개), 들어라 역사의 외침을(정인-거름) 읽으면서 분노의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은 민족의 비극과 슬픔을 이해하기 어렵다.


지금도 나의 책꽂이에는 그 당시 주먹을 쥐고 울먹이며 읽었던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는 책이 있다. 한국 민중사(1, 2 풀빛), 한국현대사(1, 2, 3, 4, 5-풀빛), 청년을 위한 한국현대사(소나무), 해방 전후사의 인식(1, 2 한길사) 분단시대의 한국사회((변형윤-까치), 사료로 보는 한국현대사(동아대학교출판사), 분단시대의 역사인식((강만길)...

사료국사(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청산하지 못한 역사(1, 2 청년사), 한국의 역사인식(이우성, 강만길-창작과비평사), 발굴한국현대사인물사료(한겨레신문), 한국현대사(강만길-창작과비평사), 항전별곡(거름), 우리역사 이야기(돌베게), 청산하지 못한 역사(1, 2, 3-청년사), 사료로 보는 우리역사(1, 2-동베개), 한국 현대사 연구(이성과 실천), 한국근대민중운동사(돌베개)...


그밖에도 직접 내 눈으로 직접 읽어보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했던 미제 침략사((남녘)며 수배 중에 대학교수가 제공해 준 골방에서 숨어서 읽었던 조선통사(오월), 조선문화사(오월)며 이름조차 꺼내기 두려운 근대조선역사(일송정), 현대 조선역사(일송정)는 우리역사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역사는 과거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는 작업이 아니다. 모든 학문이 그렇듯이 나의 삶을 얼마나 인간답게 보람 있게 가치 있는 삶을 살 것인가를 안내해주지 못하는 역사는 학문으로서 가치가 없다.

역사는 구경꾼을 좋아하지 않는다. 고대사, 중제사, 근대사, 현대사를 달달 외워 남보다 몇 가지를 더 암기해 등수를 앞서는 게 아니라 오늘의 내가 살고 있는 삶이 선조들의 투쟁의 결과라는 걸 아는 것이 진짜 역사공부다. 그것이 역사의식이다. 역사의식을 갖게 하지 못하는 역사공부는 낱말을 몇 개 더 아는가와 같은 지식 그 이상이 아니다. 이러한 역사의식은 역사의 방관자가 아니라 치열한 역사의 현장에서 불의에 맞서 정의를 위해 분노하고 처절하게 싸우지 못한다면 역사에서 나는 낙오자일 수밖에 없다. 현대사를 알면 내가 보이고 세상이 보인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5.23 05:00



경북 칠곡군 왜관읍의 미군기지 ‘캠프 캐럴’에 맹독성 고엽제인 ‘에이전트 오렌지’ 250드럼(5만2000여ℓ)을 극비리에 매립했다는 보도는 한·미간의 관계가 진정한 우방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고엽제란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독성을 가진 물질이라는 건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데, 그런 물질을 우방국의 식수원 근처에 매립했다는 것은 우방관계를 떠나 인도주의 차원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진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일본 수상 카쓰라와 미국 육군장관 테프트 사이에 미국의 필리핀 지배와 일본의 한국지배를 인정하는 ‘카쓰라-테프트 밀약’이 없었던들, 36년간 식민지시대와 동족상잔의 6·25전쟁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이 항복한 한반도는 미국의 손에 의해 38선이 그어지고 남한에서의 미군은 우리 땅에 점령군으로 나타났다. 해방 조국의 38도선 이남에 진주한 미군의 사령관, 맥아더는 이렇게 포고문을 발표한다.

‘본관의 지휘 하에 있는 승리에 빛나는 군대는 금일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 영토를 점령했다.제1조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 영토와 조선 인민에 대한 통치의 전 권한은 당분간 본관의 권한 하에 시행된다.... 제5조 군정 기간에 있어서는 영어를 모든 목적에 사용하는 공용어로 한다....

 



6.25전쟁 중 미군에 의해 학살당한 수많은 증언이 나왔으나 피해자는 있어도 가해자는 없는 미군에 의한 수많은 학살사건. 625전쟁 중 미군에 의해 자행된 학살사건은 노근리 뿐만 아니다. ‘피난민을 적으로 간주하라’ 전쟁 중 미군 25사단의 작전명령이다. 수십만명이 억울하게 죽어간 보도연맹사건을 비롯한 제주양민학살은 미군과 무관한 일일까?


한국과 미국은 대등한 국가간의 외교관계가 아니다. 불평등조약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한미행정협정(SOFA)을 보자. 주한미군이 한국영토 내에서 미군기지를 포함 미군 공여지를 사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SOFA이다. SOFA 제2조, 제4조 등 이른바 '시설과 구역'에 관련된 조항에 미군 기지와 시설에 대한 공여문제를 규정하고 있는데, 그 원천적인 불평등성이 미군 공여지 문제를 유발시켰다. 현재 대부분의 미군 공여지는 1967년 SOFA에 의해 미군측에게 사용권이 넘어간 것이다.


지난 2002년 미선이 효순은 미국이 우리의 진정한 우방인가를 확인케 해 준 대표적인 사례의 중의 하나다. 한·미간의 질곡의 역사는 해방정국에서부터 비롯된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국군 창설 후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 국방을 미군에 의존한다. 박정희정권 때부터 율곡사업이라는 자주국방 계획을 세웠지만 그 어떤 정권도 자주국방을 실현한 정권은 없다.

남의 나라가 우리 땅을 지켜줘야 안심할 수 있는 나라는 자주국가가 아니다. 5천만 백성의 목숨을 외국에 맡겨야 안심이 되는 국방의 노예근성은 해방 70년이 가까워도 바뀔 생각조차 않고 있다. 이제 한국의 국방은 한국이 책임지라며 돌려주겠다는 전시작전권(전작권)을 받지 않겠다며 미국을 붙잡고 애원하는 모습은 차라리 추태다.


미군의 폭격 후유증으로 죽음의 어장이 된 화성시 매향리는 여기서 거론하지 말자. 미군에 공여한 우리강토는 우방국의 양심으로 관리되고 환수되고 있는가? 이번 칠곡군 왜관의 미군부대에 매립된 고엽제 매립사건에서 보듯, 미군에 공여된 우리 땅은 불모지에 가깝다. 2007년까지 돌려받은 미군기지 23곳 중 16곳이 심각하게 오염돼 있었는가하면 2010년 돌려받은 사격장 6곳 중 4곳은 납 등 중금속이 기준치보다 무려 100배 이상 높은 곳도 있었다.

이번 칠곡군 왜관에 묻었다는 고엽제를 비롯한 오염은 한미행정협정에
‘...시설과 구역이 합중국 군대에 제공되었던 당시의 상태로 동시설과 구역을 원상회복하여야 할 의무를 지지 아니하며...(SOFA 제4조 시설과 구역)라고 명시하고 있어 우리 땅이 오염된 책임을 미군이 질 이유가 없도록 명문화 되어 있다.


해방 후 한반도 에 진주한 미군은 경제부분에서도 해방군은 아니었다. 1945년부터~1948년 까지 미군정기에는 ‘적산에 관한 입법’(군정법령 제2호)을 공포, 일제가 소유했던 재산(남한 지역 산업의 85%이상)을 미군에게 귀속했던 사실은 새삼스러운 얘기도 아니다. 자국국민들은 먹지 않는다는 미국산 광우병쇠고기 판매를 강요해 온 나라가 미국이다.

최근 재협상을 놓고 우여곡절을 겪고 있는 한·미FTA가 대등한 국가 간의 조약이 아닌 불평등조약이라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얘기다. 미국은 이제 더 이상 우리의 수호천사가 아니다. 불평등관계로 맺어진 한미관계를 청산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우방도 혈맹도 없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