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철학2018.11.07 06:20


헛똑똑이라는 말이 있다. ‘겉으로는 아는 것이 많아 보이나, 정작 알아야 하는 것은 모르거나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다. 지금 우리나라 학교교육을 보면 헛똑똑이를 키우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유치원에서부터 초등, 중등학교, 대학을 졸업하기 까지 참 많은 지식을 배운다. 힘겹게 공부해 성공한 사람들이 순간의 판단잘못으로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사람들이 있기에 하는 말이다.



고등학교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목은 국민윤리, 국어, 국사, 사회, 지리, 세계사, 수학,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체육, 교련, 음악 , 미술, 한문, 영어. 외국어, 기술, 가정, 특별활동...등이다. 인류가 찾아낸 자연의 법칙이며 사람들이 사회생활에 필요한 수많은 지식과 기술, 원리와 법칙을 배운다. 사람들이 한평생 살아가는데 정말 이렇게 많은 지식이 다 필요할까? 설사 이 많은 지식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시험을 위해 배운 지식은 시험이 끝나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인생의 황금기라는 청소년기를 이렇게 교실에 가두어 시험을 위한 지식을 암기하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교육일까?

오랜 세월 동안 동양사회에서는 인물을 평가할 때 적용하던 기준이 신언서판(身言書判)이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마지막 기준인 이다. ··를 보는 이유도 최종적으로 판단력을 보기 위해서였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를 보면 저 사람 좋은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를 곧잘 묻는다. 시비를 가리고 호불호의 판단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호기심을 학교에만 가면 무시당하고 지식이나 원리, 법칙을 외워 암기시키기에 바쁘다. 시비를 가리고 판단할 기회를 빼앗아 가 버리는 것이다. 가치혼란의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시비를 가리로 옳고 그름을 분멸할 수 있는 판단력이 더 필요한 것이 아닐까?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로 만든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교육이었다. 순진한 국민을 교육을 통해 일본은 위대하고 조선이라는 나라는 미개하다는 것을 가르칠 필요가 있어서다. 이른바 우민화교육이다. 우리가 못난 민족이니 똑똑한 일본에게 배워 일본의 노예로 만들기 위한 황국신민화교육이 그것이다. 독재자들은 똑똑하기는 하지만 비판능력을 소거된 순종형 인간을 기르려고 했다. 그래서 일제의 영향을 받은 학교는 정직, 근면, 성실한 인간을 길러내려고 했던 것이다.

내가 소중한 존재라는 것, 그 소중한 하나밖에 없는 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길을 안내 받아야 할 학교가 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교육이 아니라 일등지상주의, 출세주의로 자신의 소중함을 깨우칠 기회를 앗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정의 소중함을 불의에 분노하는 정의감을 자연과 공존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적인 존재로 길러내지 못하고 소중한 청소년기를 교실에 가두어 서열화교육으로 실패와 열등감을 기르고 있는 것이다. 수요자 중심의 7차 교육과정은 교육을 상품으로 보는 철학이다. 돈이 되는 것, 이익이 되는 것이 선이 되는... 과정을 생략되고 결과로 승패를 가리는 무한경쟁으로 암기한 지식의 양으로 사람의 가치를 서열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교육을 상품으로 보는 경쟁교육은 우민화교육이다. 박정희는 국민교육헌장을 만들어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수행하는 인간을 길러 내려고 했다. 교육을 시장에 맡기겠다는 수월성교육은 자본주의형 인간을 길러내고 싶어 한다. 내가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 자본이 필요로 하는 사람을 길러내고 있는 것이다. 교육의 목표는 홍익인간이지만 교실에서는 친구를 적으로 만드는 무한경쟁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이기적인 인간을 길러내고 있는 것이다.

철학이 없는 교육은 우민화교육이다. 일제가 그랬고 유신정권, 독재정권이 그랬다. 민주주의가 실종된 학교에는 시비를 가리고 판단력이 있는 인간을 길러내려고 하지 않는다. 수요자중심 교육이란 수익자 부담으로 개인이 필요로 하는 교육을 받아야 하지만 학교는 자본이 필요로 하는 인간을 길러내고 있는 것이다. 철학이 외면당하는 교실에는 암기한 지식으로 사람의 가치까지 등수 매기는 반교육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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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철학2015.12.08 06:55


네모난 침대에서 일어나 눈을 떠보면

네모난 창문으로 보이는 똑같은 풍경
네모난 문을 열고 네모난 테이블에 앉아
네모난 조간신문 본 뒤
네모난 책가방에 네모난 책들을 넣고
네모난 버스를 타고 네모난 건물 지나
네모난 학교에 들어서면 또 네모난 교실
네모난 칠판과 책상들....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 네모난 것들뿐인데
우린 언제나 듣지 잘난 어른의 멋진 이말
세상은 둥글게 살아야해
지구본을 보면 우리 사는 지군 둥근데
부속품들은 왜 다 온통 네모난 건지 몰라

어쩌면 그건 네모의 꿈일지 몰라...


가수 화이트가 부른 네모의 꿈가사 중의 일부다.

 

 


이 노래를 들으면 우리나라 학생들이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똑같은 교과서로 똑같은 생각을 갖도록 만드는 교육... 과연 이런 교육으로 창의 지성의 시대, 개성과 소질이 있는 창의적인 인간을 길러낼 수 있을까?


나는 누구인지 왜 사는지 어떻게 사는 게 바르게 사는 것인지도 모르고 오직 국어, 영어, 수학문제만 풀이 하는게 올바른 교육일까?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 해야 할 일인지 아닌지, 옳은 일인지 그런 일인지 분별할 수 없다면,,, 그 많은 지식을 어떻게 쓸 수 있을까? 옳고 그른 것은 분별하고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지 못한다면 그게 과연 올바른 교육일까?


초등학교 쉬는 시간을 10분에서 5분으로 단축 운영하는 학교가 있다고 한다. 점심시간도 50분에서 40분으로 단축해 밥 먹고 친구들과 좋아하는 축구 한 번 할 시간적인 여유도 없다는 보도를 보면 네모난 생각을 갖도록 하는 교육이 폭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계나 컴퓨터도 계속해서 사용하면 과열돼 휴식이 필요한데, 하물며 어린학생들이 쉬는 시간도 주지 않고 배우도록 하는게 올바른 교육일까?


신문을 보면 정치며 경제, 사회면에 수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정치란 무엇이며 왜 그렇게 복잡한지, 경제란 학교에서 배운 교과서와는 왜 그렇게 다른지, 사회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들이 왜 그렇게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 있는지.... 학생들은 잘 알지 못한다. 물론 학교에서 정치도 배우고 경제도 배우고 사회문화며 역사도 공부한다. 그런데 학교는 원론만 그르쳐줄 뿐 현실은 가르쳐 주지 않는다.


원칙이나 기준이 없는 시각으로 난마처럼 얽힌 현실을 알 수 있을까? 온통 이해관계로 얽인 현상을 본질을 볼 수 있는 안목을 일깨워주지 못하면 지혜롭게 살 수 있을까? 농업사회는 농사짓는 법만 배우면 자연의 섭리에 따라 김매고 추수하면 끝난다. 그러나 산업사회로 이행하면서 우리사회는 현상과 본질이 다른 세상으로 바뀌게 됐다. 공산품의 가치는 농산물과 다르게 겉보기로 가치를 알 수 없다.



농산물을 겉으로 보면 그 가치를 알 수 있지만 공산품은 아무리 지혜로운 소비자들이라고 겉으로 보고 그 가치의 크기를 분별하기 어렵다. 먹거리 속에 들어 있는 첨가물이 얼마나 유해한지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도 그렇다. 이해관계가 얽혀 본질을 파악하거나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세상에 있는 수많은 기계 이름을 다 외운다고 유능한 기사 취급을 받지 않는다. 기술자는 기계의 원리나 구조를 이해하고 문제가 생기면 적절한 대처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유능한 기사로 인정받는다.


교육도 그렇다. 지식은 많은 데 그 지식을 어떻게 활용할 지 모르는 사람은 '우둔한 사람'이다. 학교는 왜 원론만 가르치고 현실을 가르쳐 주지 않을까? 내용과 형식, 현상과 본질을 가르쳐 주지 않는 교육. 원론만 가르쳐 주고 현실을 가르쳐 주지 않는 교육은 우민화교육이다. 가르쳐 주는 것만 외우는 교육으로는 어떻게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진실을 판단하지 못하게 가르치는 교육으로 어떻게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 갈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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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오늘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을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가족들의 아픔에 함께 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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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나는 곧 18세가 된다, 하지만 세금, 집세, 보험 등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독일 쾰른의 한 김나지움(인문계 중등교육기관)에 재학 중인 17세 여학생이 학교 교육을 비판하는 글이 화제다. 조금만 지나면 어른이 되는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데,... 세상에 대해 아는게 없다...? 독일어로 단 22자를 트위트에 올려 '트위터 스타'가 된 문제의 학생은 '나이나 K'라는 소녀다. 어디 이 소녀만 그럴까?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어떨까?

 

<베를린의 한 김나지움에서 일일 수업을 하는 메르켈 독일 총리 - 출처 : 시사인>

 

# 사례 1 : “나 학교 선배인데○○씨는 대학교 등록금 납입고지서를 받고 나오던 학교선배라 사칭한 영업사원의 권유로 396천원에 어학교재 세트를 계약함. 실제로 배달된 교재를 보고 부모님이 취소를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발송했지만 해약을 거부하고 있음.

 

# 사례 2 : “방송국에서 설문조사 나왔습니다대학 정문 앞에서 ○○문화정보센터의 판매원이 MBC 라디오의 설문조사에 응해달라는 요구에 승합차에 유인되어 토플교재의 구입을 권유받고 432천원에 할부 계약을 함. 가정 사정으로 어학교재가 필요없어 계약 취소를 판매처에 요구하니 1회납입금 36천원을 내야 해약이 가능하다고 통보해옴.

 

# 사례 3 : “국가○○연구 기관으로 조사 자료에 필요한데○○씨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나오던 중 국가○○연구원 직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마치 공공기관 직원처럼 행세하는 사람이 설문지 작성을 부탁함. 그는 리포트를 작성할 때 필요한 자료나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우표 값과 발송비만 내면 자료 우송이 가능하다고 유혹함. 회원가입 신청서를 쓰고 난 후 사은품이라며 토플 테이프 한 개를 보내주었는데 20일 정도 지나 대금청구서가 날아옴. 확인해본 결과 국가기관도 아니었음. 납입금 36천원을 내야 해약이 가능하다고 통보해옴.

 

한국소비자원에 신고, 접수된 사례다. 이런 사례는 부지기수다. 특히 대학에 합격한 신입생들을 노리는 상인들이 미성년자들을 상대로 한 계약은 취소가 가능하지만 그런 법조문 하나도 제대로 모르고 당하는 경우가 수없이 많다. 어려운 형편에 계약을 하고 난 후 부모에게 말씀도 못 드리고 죽고 싶었다는 제자의 말을 들으면 학교의 우등생이 사회의 열등생이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알만하지 않은가? 주구장창 국,,수 문제풀이만 하는 학교, 그런 학생이 세상에 나오면 어떻게 되나? ‘세금, 집세, 보험...’ 등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뭐가 있을까?

 

(이미지 출처 : 초등경제교육연구소>

 

가정에서도 경제문제를 가르치지 않는다. 어려운 살림살이에 너는 집안 걱정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는 부모의 배려가 오히려 에 대한 기초상식도 알지 못하는 청맹과니로 만든다. 어머니가 맘만 먹으면 아이 손을 잡고 시장에 데리고 다니면서 돈에 대한 기초교육이 기능하다. 살아가는데 돈이 꼭 필요하다는 것과 돈이 없으면 얼마나 불편한지, 돈을 잘못 쓰면 어떻게 패가망신을 하는지.... 상품에 대해 물가에 대해 허욕에 대해... 그리고 가정에서 돈이 어디에 얼마나 들어가는지.... 기본적인 상식을 이해시키는 이해 시켜야 하고 그런 교육은 어렵지 않다.

 

학교는 또 어떤가? 목적이야 거창하게 체계적인 경제 지식과 사고력 및 가치관을 토대로 하여 소비자, 생산자로서 책임 있는 민주 시민의 구실을 수행할 수 있는 인간을 기른다고 하면서 리카도의 비교우위이론이니 효용가치가 어떻고 그래프를 그려주고 그래프 해석을 묻거나 X, Y축을 바꿔놓고 상승곡선이나 가르치면 졸업 후 학생들이 경제생활에 절실하게 필요한 삶의 안내서가 될까? 경제교과서는 실제로 총론 격인 경제생활과 경제 문제의 이해, 경제 주체의 역할과 의사 결정, 시장과 경제 활동, 국민 경제의 이해, 세계 시장과 한국 경제, 경제 생활과 금융...‘ 이런 내용을 가르친다.

 

당장 대학에 들어가면 원룸이나 달셋방에서 집세 부담을 져야 하는데 교통비와 등록금 그리고 용돈관리를 지혜롭게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안목이 없어 피해를 입는 사례가 수없이 많다. 삶과 괴리된 지식 그리고 국제무역과 리카도의 비교우위이나 환율... 보다 알바를 할 때 필요한 최저 임금이나 일바생이 알아야 할 기본적인 법률상식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물론 학교에서 모든 것을 전부 가르쳐 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최소한 노동현장으로 진출하거나 대학생활을 시작하는 젊은이들에게 당장 피부로 느끼고 겪어야 할 현실 문제를 주제로 토론 한 번 해 보지 못한 학교교육이 제대로 된 교육일 수 있는가? 언제까지 현실을 외면하고 뜬구름 잡는 교육을 계속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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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정치2015.01.21 07:00


아이들이 태어나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이 엄마. 엄마에게서 태어나고 엄마의 젖을 빨면서 엄마의 표정을 보고 자란다. 뜰에 자라는 이름 모를 풀꽃도 충분한 햇볕과 수분을 섭취하지 못하면 튼실하게 자라지 못하거늘, 하물며 사람이 어머니로부터 젖과 사랑을 넘치도록 받지 못하고, 남의 손에 의해 길러지면 건강하게 자랄까?

 

 

엄마의 다른 이름은 사랑이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교사도 엄마다. 엄마는 아이에게 사랑을 나눠주는 주면서 사람으로 키운다. 아이들은 밥만 먹고 자라는 게 아니라 엄마의 사랑, 가족의 사랑, 이웃의 사랑을 먹고 자란다. 사랑하고 미워하고 좋아하고, 싫어하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성내고,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하고.... 이런 정서는 풀이 성장하기 물과 공기기가 필요한 것처럼 엄마와 가족으로부터 사랑을 배우고 느끼면서 자란다. 물과 공기와 햇볕이 부족하면 제대로 자라지 못하듯,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사람으로서 기본적으로 갖춰야할 정서 중에서 가장 중요한 정서는 사랑이다. 그런데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학교에서도 그런 정서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있다면 우리 아이들은 어떤 모습으로 자랄까? 키는 허우대처럼 크고 겉은 멀쩡하지만 사랑이 메마른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나약한 사람으로 자란다. 잠도 들 깬 아이를 들쳐 엎고 어린이집에 맡기고 돈벌이 나가는 부모들, 햇볕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풀처럼 아이들은 그렇게 자라고 있는 것이다.

 

학교가 가장 먼저 가르쳐야할 것은 무엇일까? 자신을 사랑하는 것, 내 부모를 사랑하는 것, 친구와 이웃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모든 교육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 사랑이 없는 사람의 머릿속에 담긴 지식은 인간미 넘치는 자신이 맡은 이레 대해 책임과 역할을 다 할 수 있을까? 나를 사랑할 줄 모르는 데, 자긍심도 자아존중감도 없는데 그런 마음에 담긴 지식이나 기술로 어떻게 사랑을 실천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겠는가? 안타깝게도 사랑을 가르쳐야할 학교는 아이들을 경쟁으로 내몰아 하루가 다르게 지쳐가고 있다.

 

사랑받지 못한 사람은 남을 사랑할 수 없다. 아이들은 유치원이나 학교에 입학하기 바쁘게 받아쓰기 시험을 치르고 낱말 한두 개 틀리면 열등아로 만들어 아이의 마음 속 깊이 상처를 심어놓는다. 서로 아끼고 사랑해야할 친구가 경쟁의 대상으로 만드는 학교는 참으로 반인간적이고 반 교육적이다. 천사 같은 아이들은 이렇게 사랑을 받지도 베풀 줄도 모르고 이기심과 열등감을 배우면서 자라고 있는 것이다.

 

 

마음속에 사랑을 간직한 이는 자신이 소중한 줄을 알 듯, 남도 소중하게 생각할 줄 안다. 이웃을 배려하고 서로 존중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사랑에서 나온다. 사랑이 없으면 참을성도 인내심도 부족해 작은 일에 분노하고 미워하고 짜증을 낸다. 사랑은 자신을 이기는 힘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낮추는 겸손이기도 하다. 사랑은 내 부모를 섬길 줄 아는 마음이요, 불행한 사람을 보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다. 내 배만 부르면 그만이 아니라 남의 배고픔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이요, 불의를 보고 미워하는 마음이다.

 

사랑이 없는 사람의 마음에 담긴 지식은 교만과 이기심으로 가득 찬 폭발물이다. 겉으로 아무리 화려한 외피로 치장을 하지만 그 속은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다. 지고의 사랑은 자유에 대한 갈망이요, 불의를 보고 침묵하지 않는 마음이요, 평화를 위해 자신을 던질 줄 아는 용기다, 남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사랑을 말하는 자는 위선이요 거짓 도덕군자다. 가난한 이웃을 위해 자신의 한 몸 던지지 못하면서 어떻게 사랑을 노래할 수 있겠는가?

 

이제 가면을 벗어야 할 때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가하는 폭력의 탈은 벗어야 한다. ‘다 너를 위해서...’라는 얄팍한 이기심의 가면, 이해타산하면서 권력주변을 기웃거리던 지식인이라는 가면,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을 전체로 착각는 천박한 가면을 벗어던져야 한다, 그래서 하늘과 땅이 아이와 어른이, 남자와 여자가 강자와 약자가 함께 손잡고 살아 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사랑이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만물의 영장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가정에서는 아버지 어머니가,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사회에서는 지식인들이 나서서 사랑을 실천하고 가르치지 못 한다면 어떻게 아이들에게 희망을 말하겠는가? 이제 우리 위선의 탈을 벗고 사랑을 가르치며 실천하자, 그것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갖춰야할 기본적인 도리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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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교육정책2013.06.14 07:00


 

1800년 1월 9일 프랑스의 생세랭이라는 마을에서 11~12세 정도로 보이는 한 소년이 발견됐다. 겉모습은 분명히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행동거지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늑대와 흡사했다. 옷은 물론 입었을 리 없고 사람이 가까이 가면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이 소년을 늑대소년이라고 불렀다.

 

이 '늑대소년'은 정부의 지원 아래 정신과 의사와 언어학자들의 손에 넘겨져 인간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유전인자는 사람의 것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밤이면 네 다리로 기어 다니고 늑대처럼 울부짖으며 날고기를 씹어 먹는 그를 사람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어떤 사연인지는 모르지만 어릴 때부터 인간 사회에서 격리된 환경에서 늑대의 젖을 먹고 자라 인간화가 아닌 늑대화 된 사람이다.

 

인간의 사회화를 말할 때 흔히 이 일화를 예로 들곤 한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해야 할 행동이나 가치관, 도덕이나 이성이 없이 본능대로 산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일컬어 '사회적인 존재(zoon plitikon)'라고 규정했다. 사람이 사람다워진다는 것은 본능대로 살도록 내버려둘 것이 아니라 '사회화'를 통해 사람의 모습을 갖추게 해야 한다는 얘기다.

 

사회화란 '개인이 타인과의 사회적 관계를 통해 사회나 문화에 대한 적절하고 바람직한 가치 규범을 내면화하여, 자신이 속한 사회·문화 또는 조직·집단에 알맞은 행동양식을 취할 수 있게 되는 과정'이라 정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람이 사람다워질 수 있는 이 사회화란 어떤 과정을 거쳐 가능하게 되는가?

 

 

 

사람이 사람다워지는 것은 교육을 통해서 가능하다. 앞의 생세랭이라는 마을에서 발견한 늑대소년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람은 의도적이든 무의도적이든 태어나면서부터 사회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직도 유전에 의한 영향을 더 많이 받는지 아니면 후천적인 학습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지는 학자들간에 논쟁이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학습을 통해 사람의 행동과 가치관을 학습하게 되고 사람으로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전통적인 방법으로서 인간의 사회화는 주로 부모가 전수해 왔다. 그러나 산업사회로 이행하면서 사회화의 기능은 전문기구인 학원이나 학교 또는 매스 미디어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사회적인 존재로서 인간이 갖추어야할 기본적 행동이나 습관, 가치기준은 주로 의도적인 교육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런데 오늘날 가정은 어떤가? 지난해 한국교육개발원이 전국 4, 5, 6학년 초등학생 4,34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국 초등학생의 생활 및 문화실태 분석 연구' 결과를 보면, '초등학생들이 부모와 하루 평균 대화시간은 30분 이내가 34.5%였으며 부모와 대화를 거의 하지 않는 경우도 어머니 19.8%, 아버지 30.9%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한다.

 

 

고학년으로 갈수록 더욱 심각해진다. 중·고등학생의 경우는 40.6%가 부모와 대화시간이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화가 단절된 가정에서 아이들은 어떤 모습으로 자랄까? 학교와 학원을 전전하면서 부모와 대화도 없는 아이들은 기초적인 생활습관이나 행동양식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학원에 가지 않으면 놀 친구가 없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초등학교 입학 전 어린이는 부모의 과욕으로 하루 5~6개 학원을 전전하기까지 한다. 아이가 놀면 불안한 어머니. 어린이는 학원에서 피아노나 미술, 컴퓨터와 같은 지식과 기능만 익히면 인간으로서 사회화 될 수 있을까?

 

어린이는 놀이를 통해 사회화된다. 또래집단이 인간의 사회화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가는 전술한 늑대소년의 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어린이는 놀이를 통해 질서를 배운다. 타협과 양보는 말할 것도 없고 자의식이나 사회성, 협동심, 인내심, 상대방을 배려하고 상호존중하는 마음과 질서의식은 물론 민주의식...등과 같은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품성을 사회화할 수 있는 기회다.

아이들에게 놀이의 기회를 빼앗는다는 것은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을 만들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학원이나 학교에서 관념적인 지식교육으로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인간으로서 품성을 체화하는 기회가 바로 놀이라는 것은 수많은 학자들이 주장한 지 오래다.

 

사회화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 가정은 어떤가?

 

학교교육을 일컬어 위기라고들 한다. 그렇다면 가정은 어떨까? 부부가 함께 일터나 나가면서부터 가정에서의 사회화는 기대할 수조차 없게 됐다. 잠도 들 깬 아이를 들쳐 업고 어린이집에 맡긴 채 종종걸음으로 작장으로 향하는 엄마아빠들... 정서적인 안정감이나 역할수행에 대한 사회화는 가정이 해야할 가장 중요한 사회화 과정이다. 그런데 가정이 실종된 아이는 무얼 보고 듣고 배울까?

 

아무리 훌륭한 선생님과 좋은 어린이 집에서 배운다고 하더라도 부모에게서 받는 사랑이나 정서적인 안정감을 대신해 줄만큼 좋은 기회는 없다. 부부가 출근시간이 달라 부모의 얼굴조차 모르고 자라는 아이들은 또 어떤 모습으로 자랄까? 여기다 이혼이나 혹은 사망으로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정서교육은 누가 채워 줄 것인가?

 

가정교육이 기능을 제대로 못하면 학교가 이를 보완해 줘야 한다. 그러나 학교까지 무너진 마당에 아이들은 방향감각을 잃고 방황할 수밖에 없다.

 

무너진 가정, 무너진 학교... 그렇다면 아이들이 자라는 사회는 어떨까? 산업사회에서 교육의 기능을 수행해야 할 가정이나 학교가 그 기능을 감당하지 못할 땐 상업주의에 내맡겨지게 된다. 게임방이며 오락실, 만화방 스마트폰 그리고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텔레비전이 교육의 기능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모든 매스미디어가 다 자본의 논리나 상업주의에 매몰돼 교육의 역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게 아니다. 사회적인 존재로서 인간이 의도적인 사회화 과정을 밟지 못한다면 결국 개인의 욕구충족에 만족하는 본능이 지배하는 인간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자본의 논리가 청소년들을 돈벌이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사회에서는 말이다.

 

 

사회화는 개인의 일생에서 일정기간에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사회변화나 환경이 달라지면서 재사회화나 예비사회화는 필연이다. 이러한 교육의 기능은 제도적인 차원에서 정책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마치 이민을 가기 위해서는 이민국의 문화를 미리 배워야하듯이 신랑 신부가 된다든지 며느리와 사위가 된다든지 하는 새로운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재사회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애기를 출산하는 엄마가 무조건 산달을 기다려 출산하지는 않는다. 통증을 줄이기 위한 과학적인 훈련이나 준비는 기본이요, 태아교육이며 안전한 출산을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은 상식이다.

 

부모가 부모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면 그 피해는 자녀들에게 돌아간다. 자녀의 성장과정에 따라 가정교육을 보다 과학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부모의 사랑만으로는 부족하다. 자녀가 성장함에 따라 심리적 특성이나 적절한 환경조건을 제공해 주기 위해서는 부모교육(재사회화)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텔레비전문화를 보자. 초등학교를 졸업한 주부나 대학을 졸업한 주부를 가리지 않고 텔레비전이라는 매체는 대중문화의 수용자로 쉽게 재편된다. '연속극 보는 재미로 사는 보통 사람'은 이렇게 길들여지고 가치관은 하향 평준화 되는 것이다.

 

인간은 생애를 통해 사회화된다. 사회변화에 적응하고 삶의 주체로서 자아정체성을 확립하면서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학창시절 교과서를 통해 얻은 지식으로 평생을 살아갈 수는 없다. 더구나 급변하는 산업사회에서 과거 어느 시점에서 얻은 낡은 지식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개인은 물론 사회 구성원으로서도 불행한 일이다.

 

-이비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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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는 학생들의 교육에는 관심이 없고 정치활동만 일삼으며 북한 앞잡이 양성 교육을 하고 있다.

 

 전교조를 비방하는 극우세력들의 시각이다. 

 

뉴라이트를 비롯한 수구세력들이 진보성향의 단체에 색깔 칠을 하는 ‘빨갱이 논리’야 대꾸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지만 ‘전교조 교사가 왜 정치적이냐?’는 억지논리에는 할 말이 많다.

 

학교폭력이 난무하고 학생이 교사에게 주먹질도 불사하는 무너진 교육현장을 보고 그 모든 책임을 전교조 교사들에게 뒤집어씌우는 게 맞는 말일까? 오늘날 우리교육이 이 지경이 된 모든 책임이 전교조 교사 때문일까?

 

유신정권 시절, ‘유신헌법을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가르치라는 교과서를 제자들에게 어떻게 가르치는 교사가 훌륭한 교사일까?

 

#. 1 교과서대로 유신헌법이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열심히 가르치는 교사

 

#. 2 어쩔 수 없이 가르치기는 하지만 객관적인 교과서를 만들어 줄 것을 교과부에 요구하는 교사

 

#. 3 유신헌법은 박정희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악법이라고 가르치고 이에 동조하는 교원들이 단합해 정치투쟁에 나선다.

 

전교조를 비방하는 극우세력들은 #.1의 교사들이 가장 훌륭한 교사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유신헌법이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박정희의 장기집권을 위한 시나리오라는 것이 밝혀진 후 #. 1의 교사가 과연 훌륭한 교사로 존경 받을 수 있을까? 황국신민화가 우리의 살길이라고 가르는 교사는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우리국민을 일본의 노예로 사는 게 옳다고 가르쳤다.

 

해방 후 학생들은 ‘일제의 한국지배를 정당화’하는 식민사관의 관점에서 저술한 역사교과서를 배웠다. 해방 후 서울대 문리대 교수와 문교부 장관을 지낸 이병도와 그 아류들이 만든 식민사학에 근거한 교과서가 국정 교과서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과서를 암기해 우수한 성적을 받도록 하는 교사는 훌륭한 교사인가?

 

교육의 중립성이 보장되지 않는 학교에서는 교육다운 교육이 불가능하다.

일류대학이 교육 목표가 된 학교에서 철학도 신념도 없이 진학을 위한 문제풀이에만 열심인 교사는 정말 훌륭한 교육자일까?

 

 

오는 대선에 출마한 후보 중 한사람은 ‘이과와 문과의 통합교육’을 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민주의식도 역사의식도 없는 정치인, 자연의 섭리와 법칙을 무시하고 돈이 가장 소중한 가치로 아는 과학자.... 의술은 능하지만 인간에 대한 애정도 없는 의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의 유혹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그래서 ‘이과와 문과의 통합교육’을 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겟지만 그것이 근본적인 교육을 바꿀 대안이 아니라는 걸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오늘날 지식인들의 타락을 보면서 사랑이 없는 지식인이 세상을 얼마나 삭막하게 만들고 있는가를 뼈저리게 느끼곤 한다. 교육이 목적가치가 아닌 수단가치로 키워 놓은 인간은 어떤 모습일까? 일류대학을 나오고 첨단의 기술로 세상을 선도하는 정치인, 과학자, 의사, 종교인, 교사, 예술가...

 

사람보다는 지위가, 양심보다 돈이, 철학보다는 현실에 안주하고 타협하는 계산적이고 이기적인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과연 살만한 세상일까?

 

교사가 왜 정치적이냐고요?

 

교과서는 교사가 바꿀 수 없다. 교과서가 국정제로 할 것인지 검인정제로 할 것인지, 자유발행제로 할 것인지는 정치인들이 결정한다. 권력지향적인 정치교과서, 민주의식이나 역사의식이 소거된 사회교과서, 자본의 시각에서 노동을 천시하는 경제 교과서를 교사들이 바꿀 수는 없다.

 

교사의 정치적인 중립을 보장해 유신헌법은 악법이라고 가르칠 수 있도록 보장해 주는 것은 정치만이 해결해 줄 수 있다. 그래서 노동조합이 필요하고 교원단체의 영향력이 필요한 것이다. 가장 정치적인 교사야 말로 가장 교육자다운 교육자가 아닐까?

 

정치는 정치인들이 하고 가르치는 교사는 교과서만 가르치라는 것은 기득권논리다. 노동자는 노동만 하고, 정치는 정치인들이 하고 노동은 노동자들이 하고 학생은 배우기만 하라는 논리는 민중의 저항을 거세하려는 기득권 세력들의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공부 잘하는 몇몇 제자를 출세시켜주기 위해 시험문제풀이에 몰두하는 교사보다 모든 제자들이 살아 갈 세상을 상식이 통하는 세상,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대접받는 세상, 정의가 강같이 흐르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안위를 무릅쓰고 투쟁하는 교사야 말로 진정 아름다운 교육자가 아닐까?

 

-이미지 출처 다음 검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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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다음 검색에서>

교육자. 그는 누구인가?

교육자란 어떤 사람인가?


교사들은 ‘내가 지금과 같이 가르치면... 지금처럼 학교를 경영하고, 지금처럼 장학을 하면 피교육자들이 훌륭한 인격자로 성장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는 왜 이렇게 많은 지식을 가르쳐야 하는가?’, ‘제자들에게 열심히 문제풀이를 해주어 일류대학에 하나라도 더 보내는 게 교육자로서 할 일을 다 하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을까?

현행 교육과정이 길러내고자 하는 인간상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교육자는 과연 얼마나 될까?
고위공직자 청문회를 보면 교직에 평생 몸담았던 사람이라면 자괴감을 느끼게 된다. ‘왜 학교에서 우등생이었던 사람이.. 사회 지도층인사들이 저렇게 부정부패를 밥 먹듯이 할까?’

자회지도층 인사 중에는 왜 부도덕한 사람이 많은가?  

‘왜 학교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저렇게 이기적이고 파렴치한 사람이 많을까? 왜 병역기피, 탈세, 부동산투기, 위장전입, 이중국적소유자...들이 많을까?..., 일류대학을 나와 고위공직자나 재벌이 되면 도덕결핍증환자(?)가 되는 것일까?…. 그들은 분명히 학교에서 모범생이었고 우등생이었을텐데... 학교교육을 많이 받으면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했는데... 훌륭한 사람과 출세한 사람은 다른 사람일까...?’


교사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전공과목을 이수하고 자격증을 취득해 교단에서 자신이 전공한 교과서를 금과옥조로 가르치는 사람일까? 교사가 ‘교육에 대한 본질적민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나 자신이 가르치는 교과서에 기득권자의 논리, 자본의 논리인 이데올로기가 숨어 있지 않을까 고민해 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교사는 교과서만 잘 가르쳐야 하는 사람이어야 하는가? 내가 교사이니까, 내가 전공한 과목을... 교과서에 담긴 내용을... 학생들에게 주지시키는 것이 교사가 할 일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훌륭한 교사일까?

부모들은 학교교육이 제대로 된 인격자를 길러내고 있다고 믿는가? 

부모들은 어떤가? 자녀 교육에 대해, 학교 교육에 대해 얼마나 생각하고 고민했을까? 이 세상의 부모들 중에서도 ‘내 아이가 지금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을 그대로 배우면 어떤 인격자로 자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학교에만 보내면...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해 하면... 좋은 성적만 받으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을까? 아니면 내 아이만 일류대학에 갈 수 있다면.... 경쟁에서 이길 수만 있다면 어떤 인격자로 길러질 것인가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학교가 길러내고자 하는 인간상은 어떤 모습일까? 학교교육을 일컬어 의도적인 교육이라고 한다. 대통령령으로 ‘교육과정’이라는 걸 만들어 교과목을 정하고 내용을 담아 연간 시수를 정해 교육법이 규정한 목적을 달성하는 게 학교교육이다. 목표치에 도달한 정도를 성취도에 따라 우열을 매긴다. 교사들은 ‘성취도 평가를 잘 받은 학생이 교육의 목표를 달성했다고 믿고 있다.

내가 열심히 가르치면 나의 제자가 훌륭한 인격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교사... 자녀를 학교에만 맡겨 놓으면 바람직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학부모들... 이런 교사와 학부모의 믿음처럼 학교는 기대하는 인간을 길러내고 있는가?

자본주의 교육이 길러내고 있는 인간상은 어떤 모습인가?

교육이란 피교육자의 필요나 요구보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간을 양성한다. 봉건제 사회에서는 봉건제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간을...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자본주의가 필요로 하는 인간을... 사회주의에서는 사회주의가 필요로 하는 인간을... 그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양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가 원하는 인간상은 어떤 인간일까? 학교교육의 목표는 '홍익인간(홍익인간의 핵심은 '이타주의')의 이념' 아래 '지덕체를 겸비한 조화로운 인간 양성'(교육법 제1조)이다. 오늘날 한국교육이 이타주의적인 인간,  홍익인간을 길러내고 있는가? (계속)

- 이 기사는 '경남민족예술 예술 IN 예술 人(제 4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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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교육과학기술부(장관 이주호)는 2012년 3월 1일부터 초·중·고등학생의 학교생활기록부에 학교폭력 가해 사실을 기재한다고 밝혔다.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되는 학교폭력 행위는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제2조에 따른 ‘학교 내외에서 학생 간에 발생한 상해, 폭행, 감금, 협박, 약취·유인, 명예훼손·모욕, 공갈, 강요 및 성폭력, 따돌림,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음란·폭력 정보 등에 의하여 신체·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이다.

학생부에 기록된 가해학생에 학생생활기록부는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요구할 경우 입시 전형 자료로 제공되며 학생부에 기록된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 사항은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졸업 후 5년간, 고등학교는 10년간 보존된다.

YTN 보도에 따르면 초중등 학생 중 연간 2만4천800명이 경찰의 학교폭력단속에 검거됐다고 한다. 연간 200여명의 학생들이 자살하고 2008년에서 2010년까지 전국 초중고교에서 학교를 그만둔 학생은 20만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현실을 두고 학생들만 나무랄 수 있는가?

자살한 학생을
두고 그들의 자살은 자살이 아니라 사회적 타살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가 뭔가? 날이 갈수록 연령이 낮아지고 잔인해지고 흉포해지는 학교폭력을 처벌로 해결할 수 있는가? 



폭력을 폭력으로 해결하겠다는 대책은 해결책이 아니다. 교과부는 폭력이 사회문제만 되면 대책위원회를 만들고 형사처벌 대상(형사 미성년자) 연령을 낮추고 스쿨폴리스를 확대하고 학교 폭력 전담팀을 설치한다. 가해학생을 강제 전학시키고 학부모를 소환해 시말서를 쓰고, 학교폭력 제로 만들기 기반 조성, 예방교육, 교원의 책무성 역량 강화, 안전망 구축한다.

가해자와 피해자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관련 법 개정 등 수없이 반복해오던 대책을 반복한다. 달라진 게 있다면 남교사 비율을 늘려야 한다느니 30~40대 무술 유단자를 '배움터 지킴이'로 일선 학교에 배치해야 한다는 웃기는 대책까지 나오고 있다.


폭력의 잔인성이나 흉포화에 비추어 가해학생에 대한 처벌강화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런데 열이 나는 환자라고 무조건 해열제를 처방하는 게 근본적인 치유책일 수 있는가? 유능한 의사라면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원인을 분석해 근본적인 치료를 할 수 있는 처방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나 교과부의 폭력대책을 보면 한결같이 처벌 일변도다.

폭력가해학생의 행위를 학생생활기록부 기재하겠다는 방안만 해도 그렇다. 처벌을 강화하면 순간적인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학교폭력의 원인은 처벌이 가벼워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학교폭력은 가정환경과 사회적인 요인 그리고 학교교육의 실종 등 우리사회의 총체적인 모순이 낳은 결과다.


학교폭력을 발본색원하기 위해서는 무너진 가정을 복원해야하고 학교의 교육과정을 정상 운영해 인성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청소년을 대상으로 돈벌이를 하겠다는 게임이나 영화, 드라마와 같은 퇴폐적이고 잔인한 폭력성에 대한 재점검부터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사회의 얼짱, 몸짱과 같은 퇴폐적인 문화에 대한 반성과 가치관의 재정립이 우선 점검해야 한다.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다. 폭력은 재생산된다. 배우지 않은 폭력이 양산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청소년들의 폭력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폭력의 반영이다. 교과부의 생활기록부 기재라는 대책은 폭력을 폭력으로 해결하겠다는 잔인성에 근거하고 있다. 연간 2만4천 800명의 학생들을 낙인찍어 전과자를 만들어 놓으면 그들이 갈 곳은 어딘가? 해마다 2만4천800명씩 폭력 전과자로 만들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위스쿨을 만들어 격리하고 폭력전과자라는 낙인까지 찍어 사회로부터 축출시키면 그들이 자라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죄는 밉지만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다. 학교폭력의 가해자는 우리사회가 저질러놓은 사회적 모순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학교인권조례를 만들어 선도하겠다는 진보세력들의 대책을 막아보겠다는 꼼수로 가해학생을 폭력범으로 만드는 '학교생활기록부 가해 사실 기록대책'은 중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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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2011.11.26 06:30




"서울대 법대에 가라면 가라. 모두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다", "전국 1등을 해야 한다"

"어머니가 '학부모 방문의 날'인 다음날 학교에 오기로 돼 있었는데 모의고사 성적표에 전국 4천등을 한 것을 62등으로 고쳐놓은 게 들통 나면 무서운 체벌을 받게 될까 봐 겁이나 어머니를 살해한 아들. 어머니의 시신을 8개월간 안방에 두고 아무 일 없는 듯 학교를 다닌 아들... 별거 중이었던 아버지가 아들을 찾아왔다가,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경찰에 신고하면서 범행이 들통 났단다.

성적이 떨어졌다고 자살하는 학생 소식을 들으면 “성적 나쁜 놈이 자살하면 우리나라 학생 대부분이 자살하게...?”라고 비아냥거리거나 “인내심이 없어서 그렇지... 제 혼자만 학교 다니나...” 하며 자살한 학생을 나무란다.

                                         <이미지 출처 ; 세계 일보>

학교폭력 문제가 발생하면 폭력을 행사한 학생은 타교로 전학하거나 퇴학처분을 받는다. 정황이 좀 더 심각하면 법적인 처벌을 받아 일찌감치 폭력범으로 전과자라는 낙인을 찍힌다. 교사를 폭행했다는 뉴스라도 들으면 “말세다 말세야! 옛날에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고 했는데, 세상이 어쩌자고...”하며 한탄한다.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돼 가고 있다. 아무리 힘들기로 서니 어떻게 어머니를 살해하고, 어떻게 친구를 왕따 시키거나 폭력을 행사하고 선생님의 머리채를 잡고...?

폭력을 미화하거나 어머니를 살해한 학생을 두둔하자는 말이 아니다.

과연 이런 사태...  어머니를 칼로 찔러 죽이고 폭력을 행사하는 학생, 선생님을 폭행하는 학생... 친구를 왕따시키는 학생... 그런 학생들 개인만의 잘못일까?

                                     <이미지 출처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눈을 돌려 학교 밖을 보자. 가정에서 텔레비전 전원을 켜면 언제든지 볼 수 있는 드라마를 비롯한 사극들...  텔레비전은 아이들에게 올바를 가치관을 길러 줄 수 있는 교육적인 프로그램으로 채워져 있는가? 예능에서부터 퀴즈며 음악프로그램조차 온통 서바이벌 게임투성이다. 드라마는 또 어떤가? 하나같이 요행을 바라는 왕자병 공주병을 부추기는 내용투성이다. 결혼 후 바람피워 숨겨놓은 자식으로 인한 가정불화 이야기, 이혼녀와 재벌 아들간의 애절한(?) 사랑이야기... 첫 키스가 어쩌니 어른들이 들어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이야기들을 박장대소해가며 얘기를 나누는 출연자들이 나오는 프로그램들은 과연 교육적인가?

인터넷이며 성인방송은 부모의 주민등록번호만 넣으면 언제든지 볼 수 있는 포르노가 있고, 사람을 재미삼아 죽이는 서바이벌 게임, 사람을 파리 목숨처럼 죽이는 사극이며 영화며... 게임방에 가면 얼마든지 접하는 음란물이녀 폭력이며... 돈이 되는 일이라면 어린 아이까지 돈벌이의 대상이 되는 상업주의가 아이들을 병들게 하고 있다. 언제든지 달려가면 볼 수 있는 만화방이며 게임방은 과연 교육적인 내용물로 채워져 있을까?

놓으면 꺼질 새라, 불면 날아갈 새라 고이고이 키우는 자녀들도 가정에만 벗어나면 그들에게 안전지대는 없다. 학교에만 보내 놓으면 안심할 수 있다고? 천만에 말씀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학교에서는 고급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고급 아파트 아이들끼리, 부잣집 아이들은 부잣집 아이들끼리, 공부 잘하는 학생은 공부 잘하는 학생끼리, 힘깨나 스는 아이들은 그들끼리 친구가 된다. 얼굴이 못생겼다는 이유로 혹은 가난하다는 이유로, 메이커 옷을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성적이 나쁘다는 이유로... 왕따당하는 학교는 정말 교육을 하고 있는 곳이 맞는가?

 


아이들에게 교육적인 환경은 없다. 학교가 교육적이지 못하다는 것은 군대의 위병소를 방불케 하는 교문을 봐도 알 수 있다. 인성교육은 포기하고 점수 올리기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는 학교에는 인간교육이 가능할 수 없다. 기중고사, 기말고사 혹은 전국단위 학력고사로 서열을 매겨 점수 몇 점 차이로 사람대접 못 받는 아이들이 상처받는 학교를 교육적이라고 강변하지 말라.

오죽하면 학교를 거부하는 학생이 일 년에 10만명이나 될까? 교육내용을 들여다보면 더 기가 찬다. 교육과정은 수요자인 학생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내용들로만 채워져 있을까? 시비를 가리고 사람답게 사는 방법을 가르쳐 줘야 하는데 철학을 가르치지 않는 않는 학교는 교육다운 교육을 하고 있다고 믿어도 좋은가?

부모가 이산가족이 되어 교대로 주야간을 근무하는 가정에서는 아이들은 만화방이 아니면 학원에서 학원으로 전전한다. 학원에 가지 않으면 놀 친구가 없는 아이들... 결국 게임방이나 만화방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만화가 얼마나 교육적인지는 몰라도 아이들은 좋은 만화를 고를 능력도 안내도 없다. 결국 보고 배우는 것은 폭력물이 아니면 음란물에 철 이른 눈을 뜨게 된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죽어간 사람을 왜 살아남지 않았느냐고 힐난(詰難) 할 수 있는가? 자살하는 아이. 부적응하는 아이. 그들은 그들 개인의 인내심이 부족한 이유만으로 타락하거나 적응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우리 부모들, 학교 그리고 사회는 내일의 주인공인 아이들에게 얼마나 인간적으로 대하고 가슴 따뜻하게 이끌어 줬다고 할 수 있는가? 돈벌이만 된다면 아이들까지 막무가내로 이용해 먹는 잔인한 상업주의는 이들에게 책임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모든 아이들이 다 서울대에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이 사람다워 지도록 이끌어 주기보다 서울대 졸업장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보모는 아이들에게 잘못이 없는가? 내가 못 이룬 꿈을 자식이 이뤄줄 것이라고 믿고 그들을 인격적인 존재가 아닌 소유물로 생각하는 부모는 이들의 타락으로부터 자유로운가?

판사, 검사, 의사만 사는 세상은 없다, 농사짓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청소는 하는 사람도 있어야하고 장사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왜 의사와 판사만 소중하고 농부는 덜 소중한가? 잘못된 사회적 가치를 배분한 정치인에게 향해야 할 분노를 왜 죄없는 아이들에게 몽둥이 질인가? 반성 없는 어른들로 하여금 지금도 아이들은 상처받고 방황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누가 저 아이들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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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 넌 그런 거 몰라도 된다. 공부나 잘해라!”

어쩌다 부모가 집안 살림살이 걱정을 하다 자녀가 듣고 궁금해 하면 하는 소리다. 민주주의와 경제개념을 심어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지만 부모들은 그런 걸 알게 되면 ‘공부에 방해 된다’고 생각한다. 가정사를 논의하고 구성원으로서 소속감과 민주의식을 길러주는 소중한 기회를 ‘공부’ 때문에 다 ‘쓸데없는 짓’이 되고 마는 것이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학교에 입학 전까지는 하나같이 일일이 가르치고 깨우쳐주면서 일단 학교만 입학시키면 모든 걸 다 가르쳐 주는 줄 안다. 학교에만 다니면... 선생님이 가르쳐 주는 대로만 하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학교교육은 믿을만한가? 
학교교육으로 학생들의 인성이며 인간 됨됨이가 제대로 된 교육이 가능하다고 믿어도 좋을까?
교육은 의도적인 교육기관과 무의도적인 교육기관이 있다. 학교는 의도적의 교육기관이다. 학교는 무의도적인 가정이나 사회와는 달리 교육과정(커리큘럼, curriculum)에 따라 교육한다. ‘교육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하여 선택된 교육내용과 학습활동을 체계적으로 편성·조직한 계획’인 교육과정(커리큘럼, curriculum)은 초등학교의 경우, 국어는 1주일에 몇 시간, 수학은 몇 시간 등 모든 학습내용이나 현장학습·수학여행·친구와의 토론 등 생활경험 조직을 체계화한 틀이다.

실제로 교실을 들여다보면 대부분의 교육은 지식교육 즉 교과서를 중심으로 한 읽기, 쓰기, 계산, 수리력, 사고력... 이런 걸 길러주는데 주력하고 있다. 교육과정에 따라 학기 초에 만든 시간표대로 교과서를 배우고 목표를 얼마나 도달했는지 평가하고... 그래서 중간고사며 기말고사며 전국단위 학력평가로 점수를 내고 개인별 성취도... 학급별, 학교별 지역별 점수로 우열을 가리고... 그게 전부다.

체육, 음악, 미술과 같은 예체능과목이 없는 게 아니다. 그런데 입시위주 교육은 그런 쪽에 소질이나 특기가 있는 학생은 기량을 길러주는 데 역부족이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국,영,수,사,과에 혼신의 노력을 하다보면 예체능교과는 아예 수능교과의 자습시간이 되기도 한다. 교육지원청에서 입만열면 ‘교육과정 정상화’를 외치지만 일류대학 입학생 수로 서열이 매겨지는 현실에서 그런 걸 따지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하다.


형식적으로는 특별활동(C.A) 시간이나 학급회의(H.R)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시간에는 바쁜 업무에 쫓기는 선생님들의 잡무처리 시간이 되기 일쑤다. 특별활동 시간은 학습부이니 환경부니 체육부니 하는 형식적인 분류와 가입을 하고 학년이 끝날 때 ‘적극적임’. ‘보통임’, 혹은 ‘소극적임’ 하는 평가로 끝이다.

수련회며 소풍 같은 야외활동도 있다. 그런데 그 시간에 학생들이 인간관계나 교우관계가 교육적으로 지도할 수 있을까? 학교생화를 해 본 사람들은 다 안다. 교과서를 통해 배우는 지식이란 실천을 통한 체화가 아니다. 관념적으로 ‘안다’는 것, 즉 인지하게 하는 것이다. 인지하는 것과 체화해 가치 내면화하는 것은 다르다. 이MB가 ‘내가 해봐서 아는데... ’ 이게 바로 관념적인 인지다.

그렇다면 살아가면서 정말 필요한 인간관계나 이해심, 협동심, 정의감, 신의, 상호존중, 배려... 이런 덕목은 어떻게 길러질까? 관념적인 지식을 인지한다는 것과 불의한 것을 보면 참지 못하고 남을 배려하고 옳은 일이라면 희생을 감수해가면서까지 동참하고... 이런 체화된 행동은 어떻게 배우는가? 학교가 관념적인 지식위주의 교육으로  ‘머리는 있어도 가슴이 없는 사람’을 키우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대로 된 인성교육은 어릴 때 가정교육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건강한 생활을 위한 습관, 규칙을 정하고 지키는 훈련, 약속을 어기면 안 된다는 습관, 남에게 피해는 왜 주면 안 되는지, 휴지를 버리는 것이 왜 나쁜지, 자신이 얼마나 소중하고 친구와 친하게 지내는 방법과 지혜를 일깨워 줘야 한다. 지식은 배우지 않고도 깨닫지만 경험으로 얻어지는 인간성은 스스로 깨닫기 어렵다.


다음 단계가 또래들과의 놀이문화를 통한 사회학습이다. ‘학원에 가지 않으면 놀 친구가 없다’는 얘기는 불행한 일이다. 친구가 무엇인지, 믿음이나 의리나 질서의식, 인내심, 양보와 타협... 이러한 정서는 또래집단에만 체화가 가능한 중요한 학습 기회다. 놀이를 통해 규칙과 질서의식을 배우고 약속의 소중함과 상대방을 배려하고 양보하는 마음은 또래집단을 통해만 가능한 학습이다. 학교에서 경쟁상대만 친구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진정한 우정을 알기나 할까?

실천과는 거리가 먼 삶... 머리는 가득 차 있지만 정서는 메마른 아이들. 세상의 이치를 지식으로 꿰뚫고 있는 사람이라도 가슴이 없는 사람의 삶은 기계적인 능력을 갖췄을 뿐 인간적인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관념적인 인간이 가정에서 또 직장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겉으로는 멀쩡한 마마보이가 그렇고 애지중지해 키운 자식이 부모의 은혜를 모르는 망나니가 되는 이유도 그렇다.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보모님들... 우리아이들이 어떻게 자라고 있는 지 객관적으로 한 번 살펴본 일이 있는지 궁금하다.

학교교육으로 길러내는 인간형은 사회적인 존재가 아닌 이기적이고 관념적인 인간이다. 학교교육은 개인이 행복하게 사는 법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자본이 필요한 인간, 국가가 필요한 인간을 키우고 있는 건 아닐까? 교육목표는 분명히 ‘홍익인간’을 길러낸다고 하지만 그런 교육을 하는 학교는 눈 닦고 찾아봐도 없다. 그러니까 교육목표 따로 교육 따로다. 해마다 입시철이 되면 ‘우리학교를 빛낸 학생과 선배’가 교문의 플랙카드에 나붙지만 학교의 명예를 빛냈는지는 몰라도 교육이 지향하는 인간상을 길러냈다고 자랑하는 학교는 보기는 어렵다.

학교는 교육하는 곳으로 바뀌어야 한다. 학교가 교육하는 곳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가정교육부터 달라져야 한다. 내 아이가 공부를 제일 잘하는 학생이기 보다 어른이 돼서 가장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한다. 놀이문화조차 빼앗기고 학원에서 학교로 개미 쳇바퀴 돌듯 하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살아가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어도 좋은가?

어머니들이 경쟁에 매몰돼 ‘커면 다 철들고 잘 할 것’이라는 기대로 키운 아이가 어른이 돼서 성숙한 인격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좋은 직장, 월급 많이 받는 직장. 교양 있고 잘 생긴 아내와 남편, 그리고 고급 아파트에서 사회적 지위를 보장받으면 행복한 삶일까? 그게 삶의 목표가 된다면 그런 모습의 삶이 행복한 삶을 산다고 믿어도 좋을까? 부모의 잘못된 욕심이 아이도 사회도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한 교육도 학교도 달라질 게 없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교육정책2011.06.27 05:00



사람이 태어나서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고 혼자서 자라면 어떤 모습이 될까? 당연히 사람 짓을 할 수 없는 망나니가 되고 말 것이다. 한 인격체가 제대로 된 인간으로 성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은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배우지 않으면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한다. 그걸 사회학에서는 ‘사회화’라고 한다. 인간으로서 사회화하면 인간이 되고 동물로서 사회화하면 동물이 되는 것이다.

학교가 무너졌다고 야단이다. 교육학을 했다는 학자님들, 평생을 교육을 한다는 교육자들, 교육정책을 입안하는 교육 관료들... 무너진 교육을 살리겠다고 온갖 이론을 개발하고 도입하고, 시범학교, 연구학교를 만들고 법석을 떠는 연구자들... 그 많은 전문가들이 엄청난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 공들이는 교육, 그런 학교는 아직도 살아날 가능성을 보이기는커녕 점점 더 위기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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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 무너지는 이유는 뭘까? 그 이유란 간단하다. 가르치지 않는데... 배우지도 않는데 어떻게 사람이 되기를 기대하는가? 아니 가르치기는 가르치는데 사회적인 존재인 개인을 개인적인 존재로 키우고 있는데 교육이 교육의 기능을 제대로 할 리가 없다. 가정은 어떤가?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부모와 대화시간조차 없이 새벽같이 등교해 12시가 가까워서야 집으로 돌아온다. 자기 자녀와 대화조차 단절된 가정에서 어떻게 가정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배울 수 있는가?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청소년 자녀를 둔 전국의 2,500가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아버지와 대화가 부족하다"고 답한 청소년은 33.5%, "어머니와 대화가 부족하다"고 말한 자녀는 11.7%(YTN)나 된다. 가정에서 교육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가정에서 머무는 시간이 있어야 하고 구성원들 간에 만나 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상호작용이 없는 가정은 생물학적인 욕구충족의 기능 외에 교육의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사회적인 존재로 자라야할 아이들이 가족간의 대화시간이며 놀이문화까지 빼앗겨 학원으로 또 학원으로 내몰고 있는 상황에서 가정교육을 기대할 수 없다. 학교나 학원에만 많이 다니면 사회적인 존재로 성장할 수 있는가? 학원이나 학교는 유능한 개인. 개인적인 능력을 길러 줄뿐 사회적인 존재로서 역할을 가르치지 않는다.

사회는 어떤가? 가정이나 학교 밖을 한 발 짝만 나가도 만화방이며 오락실, 게임방이 기다리고 있다. 교육은 학교에서만 하는 게 아니다. 성장기의 아이들은 버스에서, 시장에서, 관공서에서, 도서실에서... 눈에 보이는 것, 만나는 게 모두가 교육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청소년들에게 교육적인 배려를 하는 곳은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청소년을 대상으로 돈벌이를 하겠다는 상업주의가 시퍼렇게 기다리고 있다.     


인간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사회적인 존재로서 개인이 할 일을 가르치는 것이 올바른 교육이다. 그러나 오늘날 학교교육은 더불어 살아가는 역할이나 공존의 윤리를 가르치지 않고 경쟁 속에서 개인이 살아가는 길,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서바이벌 식 경쟁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천국에 못갈 사람은 모두 지옥에 가야할 사람‘이라는 이분법적 논리로 ’승자가 아니면 모두가 패자가 되는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식만 가르쳐 승자만이 살아남도록 가르치는 사회에서 교육의 위기는 사필귀정이다. 교육은 학교에서만 하는 게 아니다. 가장 기본적인 사회화는 가정에서 맡아야 한다. 다음 학교와 지역사회 그리고 미디어를 통한 다양한 측면에서 입체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교육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학교에서 옳은 일이 사회에서 틀리면 학교교육은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피교육자로 하여금 이중인격자로 만든다. 남편의 역할, 아내의 역할, 시부모의 역할을 모르는데 어떻게 훌륭한 아내 훌륭한 시어머니가 될 수 있겠는가? 성인교육의 필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좋은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준비한 청소년기의 지식으로 평생 동안 살아가는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니다. 비싼 가구들만 잔뜩 모아 두었다고 살기 좋은 집이 아니듯, 판단의 기준(철학)이 없는 지식만으로는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없다. 더구나 오늘날과 같이 급변하는 사회에서 수십년 전의 지식으로 변화에 적응하며 살기란 쉽지 않다. 목적이 없는 경쟁이 공허하듯 시험을 위해 준비한 지식은 시험이 끝나면 폐기 처분해야할 대상이다.

사회적인 존재인 인간을 개인적인 존재로 키우는 교육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학교가 가정이나 사회와 괴리된 곳으로 남아 있는 한 학교의 위기를 극복하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 격변하는 사회에서는 가정과 학교와 지역 사회와 메스 미디어가 함께 하는 교육, 교육 대상자가 어린이와 청소년만이 아니라 성인들도 교육으로 대상으로 하는 그런 교육이 필요한 때다. 교육적이지 못한 환경에서 상업논리의 대상이 된 피해자들에게 삶의 길을 안내해주지 못하는 교육은 피교육자로 하여금 피해자가 되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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