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는 이야기2018.10.24 06:30


서울 강서구 PC방 아르바이트생 피살 사건 피의자를 엄벌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참여 인원이 국민청원이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었다. PC방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청년을 흉기로 잔인하게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이 피의자를 우울증, 정신질환, 심신미약자라는 이유로 감형하지 말고 엄벌에 처해달라는 청원이다. PC방에서 다른 손님이 남긴 음식물을 치워달라는 요구로 말다툼하다 사람을 죽이고 죽어야 할 정도로 사람이 가치 없고 허망한 존재일까?



궁금한게 있다. 언론이 온통 100만명을 넘기느냐가 관심의 대상처럼 보도하는 이 사건은 피해자를 엄벌하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상식적으로 이해하지 못할 일은 이런 엽기적인 살인사건뿐만 아니다. 얼마 전 서울 세종대로 교보빌딩 앞에서는 보수단체들이 '평양공동선언 무효 촉구 및 문재인 정권 규탄' 집회에서 "종전선언은 한미동맹의 근간을 뒤흔들고 한반도 주둔 미군의 감축이나 철수를 야기할 수 있다"며 절대로 종전선언을 해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이들의 주장이 진정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소리일까?

평양공동선언이란 남북이 지금까지 대립과 불신으로 동족끼리 서로 죽이겠다고 살상무기를 만드는 시대를 마감하고 평화의 시대로 가자는 남·북간의 약속이다. 어떻게 하든 정전(停戰)이 아닌 종전(終戰)으로 다시는 한반도에 동족끼리 서로 죽이는 전쟁만은 없어야 한다는 평화를 위한 염원이다. 그런데 평화협정 반대라니... 그렇다면 한반도에 전쟁이 다시 일어나도 좋다는 말인가?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동족을 죽이는 살상무기를 만들고 전쟁준비로 살얼음판을 계속 살겠다는 것인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일은 우리생활 속에도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문제의 본질을 덮어두고 현상에 분노하는 사람들, 눈앞에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사람의 인격이나 됨됨이가 아니라 외모로 스펙으로 혹은 사회적 지위나 경제력으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권력 앞에 혹은 권력을 잡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 완장을 차기만 하면 언제 내가 그런 말을 했느냐는 듯 안면을 바꾸고 배신이 부끄럽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어쩌다 우리 사는 세상이 이 지경이 되고 있을까? 정상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 비정상 대접받는 이상한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나만 있고 남에 대한 배려나 공존의식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이런 현상은 어제 오늘 갑자기 나타난 일이 아니다. 내 아이만 생각하는 부모들, 어릴 때부터 총이나 칼과 같은 살상용 무기가 장난감이 되고 경쟁이라는 이름의 이기적인 인간을 길러내는 학교교육, 공중파를 통해 안방 깊숙이 파고든 폭력적인 드라마와 애니메이션, 개임...등으로 폭력을 배우는 아이들....


<사진출처 : 오마이뉴스>


겉으로는 화려하게 가꾸고 다듬은 도시, 정치는 복지를 말하고 도시 곳곳에는 CCTV를 설치해 국민의 안전을 지켜주고 있다. 국민들의 학력 수준은 높아지고 정의사회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정치인, 법조인, 언론인, 교육자들이 나서서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모든 국민들이 행복한 세상으로 바뀌고 있는가? 국민소득 3만불시대, 다가 올 제 4차산업혁명시대, 알파고 시대는 모든 국민이 복지를 누리며 불안과 불신이 없는 그헌 세상에 살아갈 수 있을까?

나만 있고 우리가 없는 세상에는 소수의 행복은 있을망정 국민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되기는 어렵다. 내가 편하기 위해 먹고 버린 스티로폼이 바다로 흘러들어가 어패류가 오염되면 나의 건강을 지켜낼 수 있는가? 내가, 우리가족이 보다 안전하고 행복하기 위해 나만 만족하고 행복하게 살면 끝일까? 나의 만족을 위해 내가 버린 쓰레기는 결국 나의 사랑하는 후손들의 건강을 해치는 독이 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눈앞의 나의 이익, 작은 것에 분노하는... 그래서 이기주의, 외모 지상주의 황금만능주의가 만드는 세상. 우리가 만든 이런 세상을 우리 후손들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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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나는 20081110일 경남도민일보 사설에 민주교육 할 수 없는 학교라는 주제의 글을 썼던 일이 있다. 2008년에는 17대 국회에서 권영길의원이 발의한 두발·복장 자유화, 강제 자율학습 금지등의 내용이 담긴 교육법개정안이 통과돼 학교를 민주화 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이다. 그러나 권영길의원이 발의한 교육법개정안이 지나치게 구체적이라는 이유로 학생인권 내용을 몽땅 뺀 상태로 국회를 통과해 1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반헌법적이고 반민주적인 학교를 못 면하고 있다.



학생인권에 대한 법안을 최초로 발의한 국회의원은 민주노동당 최순영의원이다. 최순영의원은 2006년 두발·복장 자유화, 강제 자율학습 금지라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가 부결 당하고 2008년 권영길의원이 이를 보완해 강제야간 보충수업, 자율학습 금지, 두발과 복장 단속 금지, 소지품, 가방, 일기 등 소지품 검열 금지, 가정환경, 성적, 외모, 성별, 국적, 종교, 장애, 신념, 성 정체성 등의 이유로 차별하는 것도 금지하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 했지만 마찬가지로 부결되고 말았다.

벌써 10년 전 얘기다. 학생이라는 이유로 헌법 제 10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11조 평등권이, 12항의 신체의 자유를 비롯한, 17조의 사생활의 비밀과 18조 통신의 자유, 21조 표현의 자유...등 국민으로서 기본권인 자유권을 침해당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보다 못한 진보교육감들이 민주적인 교육, 인권교육을 해 보자고 학생인권조례를 제안했지만 그 조례안조차 통과된 시·도는 서울특별시(2012), 경기도(2010), 광주광역시(2012), 전라북도(2013)이 전부다.

촛불시민이 일궈낸 민주주의는 경기, 전북, 광주, 충북..등에서 교육가족 모두가 참여하는 자율·자치 시대를 열기 위해 학생회, 학부모회, 교사회를 학교 운영의 공식 기구로 만들 근거인 학교자치조례를 준비 중이다. 학교는 내일의 주인공이 될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곳이다. 반헌법적인 학교, 반민주적인 학교에서 어떻게 민주시민을 길러낼 수 있는가? 학교폭력이나 청소년범죄가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학부모를 비롯한 교육에 관심 있는 국민들은 청소년들의 폭력과 탈선을 걱정하고 있다.

교육이란 다른 이름의 사회화다. 폭력을 보지 못한 아이들은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청소년의 폭력은 폭력적인 게임, 애니메이션, 드라마, 소설, 영화...를 통해 사회화 한다. 사람들은 청소년 폭력을 보고 분노하지만 솔직히 말해 청소년 폭력은 청소년들의 잘못만이 아니다. 모든 청소년들이 다 잘 적응하고 있다고 하지만 개성이나 정서가 모두 똑 같을 수가 없다. 폭력에 무방비상태에 던져진 아이들이 희생자로 만드는 반인권적인 교육을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

인간은 순치(馴致)의 대상이 아니다. 인간의 가치관이란 동물처럼 순치시키는게 아니라 가치내면화를 통해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학생인권조례뿐만 아니라 학생들 스스로가 학생자치활동을 통해 민주주의를 배우고 실천하며 학교장 혼자서 학교를 운영할 것이 아니라 학교의 구성원인 교사들의 지혜를 모아 운영 되어야 한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부모들이 학교경영에 참여해 의사를 반영함으로써 보다 건강한 민주적인 교육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법전에만 있는 인권, 이제 민주주적인 교육으로 전근대적인 반인권교육은 마감해야 하지 않을까?

 

[사설]민주교육 할 수 없는 학교

(클릭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

 

경남도민일보 20081110일 월요일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이 0교시 수업 금지와 두발 규정 철폐 등을 담은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권영길 의원은 지난 3일 두발·복장 자유화, 체벌금지 등의 내용을 담은 학생인권법안을 공개했다.

현재의 '초중등교육법'을 고치는 형태다. 구체적으로 보면 제185 조항을 새로 만들어 0교시 등을 이유로 정규수업 시작 이전에 등교시키거나 학생의 동의 없이 강제로 야간 보충수업, 자율학습 등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또 두발과 복장을 포함한 소지품, 가방, 일기 등 학생 개인의 사적 생활에 속하는 물품들을 검사하는 것도 금지하고 가정환경, 성적, 외모, 성별, 국적, 종교, 장애, 신념, 성 정체성 등의 이유로 차별하는 것도 금지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학생인권에 대한 문제제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동안 아이들 살리기 운동본부를 비롯한 시민사회 단체나 학생들은 학생인권법의 국회통과를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 등 다양한 방법으로 학생인권 찾기 노력을 계속해 왔다. 지난 17대 국회에서도 두발·복장 자유화, 강제 자율학습 금지 등의 내용이 담긴 교육법개정안이 지나치게 구체적이라는 이유로 학생인권 내용을 몽땅 뺀 상태로 국회를 통과해 시행 중이다.

국가인권위윈회에서도 학생들의 학내 집회 금지, 휴대전화 소지 금지, 0교시 강요 등은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학생들의 의사결정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재검토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학생을 교화와 통제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강제해 오던 시대는 마감해야 한다. 개성이나 창의성이 아니라 권력의 코드에 맞는 인간을 양성하겠다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으로는 인권교육도 창의성 교육도 불가능하다. 학생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인간의 기본권까지 저당 잡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가둬놓고 어떻게 민주적인 교육을 하겠다는 것인가? 학생의 동의 없는 강제 야간 보충수업, 자율학습을 포함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반인격적인 그 어떤 규제도 자율화되어야 한다. 18대 국회에서는 학생인권법안이 반드시 통과돼 인간의 기본권까지 억압하는 학교가 교육하는 학교로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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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1인당 수학여행경비가 4465000...! 세종시의 특수목적고 '세종과학예술영재학교는 전국에서 제일 비싼 수학여행경비로 회외여행을 다녀왔다. 또 세종국제고는 지난 해 1678천원을 사용했고, 금호중학교는 올해 1433000원의 고액수학여행을 다녀왔다. 더불어민주당 김해영 의원이 교육부에서 받은 ‘2016~ 2018 수학여행 학생 1인당 경비 100만원 이상 학교 명단자료에 따르면 전국 초··고교 가운데 학생 1인당 100만원 이상 수학여행 경비로 다녀 온 학교가 최근 3년간 총 97개 학교로 횟수는 184회나 된다.




수학여행 하면 사람들은 무슨 생각이 들까? 학창시절의 아름다운 추억? 아니면 세월호 참사를 기억할까? 지금 나이가 6~70이 된 노인들은 가난했던 시절, 돈이 없어 친구들이 가는 수학여행을 함께 가지 못해 밤새 몰래 눈물을 흘리던 아픔 기억을 떠올릴 것이다.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수학여행의 추억은 세월이 지나도 잊지 못하는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평생에 한번 뿐인 수학여행을 꼭 이렇게 비싼 돈을 들여 외국에까지 다녀 올 필요가 있을까?

수학여행(修學旅行, School Excursion)이란 체험을 통해 지식을 넓히기 위한 학습 활동의 하나다. 교실에서 배운 지식을 학생들이 특정한 지역을 직접 답사함으로써 그 지역의 문화 등을 직접 익히며 견문을 넓히는 학습활동이다. 그런데 현재 초등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수학여행은 이런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을까? 우리나라 초중등학교시절 수학여행을 가장 많이 찾는 곳이 경주나 제주도다. 경주는 신라의 고도를 다니면서 조상들이 남긴 문화유산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심어줄 수 있어 의미 있는 답사지라는 데 이의가 없다.

그런데 제주도를 다녀오는 이유가 무엇일까? 학교가 제주를 수학여행지로 선택하는 이유는 정말 교실에서 배운 지식을 학생들이 특정한 지역을 직접 답사함으로써 그 지역의 문화 등을 직접 익히며 견문을 넓히기 위해서...’일까? 견문을 넓히기 위해서라면 우리역사가 숨 쉬고 있는 천년고도 서울이나 500년 조선의 서울이었던 지금의 서울이 더 폭넓은 역사를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학교와 집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아 온 청소년들에게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사회의 역사조차 제대로 모른다.

몇 년 전 마산의 중앙고등학교에서는 봄 소풍을 시장으로 다녀 와 화제가 됐던 일이 있다. 매일같이 등굣길에서 만나는 3,15탑이며 몽고정을 지나다니지만 3,15의 역사나 몽고정에 대한 내력을 잘 모르고 산다. 4.19가 시작된 민주주의 발상지 마산의 역사는 우리나라의 역사요, 민주주의 산 현장이다. 김주열의 시신에 최루탄을 박아 몰래 바다에 수장시킨 바다를 지나오면서도 역사를 알지 못하는 학생들은 교실에서 칠판을 통해서만 민주주의를 배운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담임선생님이 마산시장과 일제강점기의 수탈의 잔재가 남은 시장을 소풍지로 다녀와 학부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던 일이 있다.

세월호 참사를 생각하면 나는 지금도 이해가 안되는 게 있다. 희생된 학생들이 살던 안산시 단원고등학교는 바로 곁에 대부도라는 천혜의 절경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제주도를 수학여행지로 삼는 이유가 4.3제주 항쟁의 역사를 눈으로 보고 공부하기 위해서라면 제주도가 학생들의 수학여행지로 선택하는 것은 크게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수학여행을 다녀 온 학생치고 제주도의 처절한 학살의 현장, 정방폭포에 숨어 있는 역사조차 공부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관광을 위해 비행기를 처음 타 보는 호기심으로 다녀오는 수학여행이라면 교육적은 목적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

자연경관을 즐기기 위해 여행이란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자기 거주지를 떠나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이다. 현대인들이 일에 지쳐 휴양을 목적으로 잠간 떠나는 여행도 목적이 있는데 학생들이 12일 혹은 33일의 여행은 놀이나 유흥이 아닌 교육의 연장선상에 있는 학습이다. 교육의 장이 교실이 아닌 자연이나 역사의 현장이다. 차라리 수험공부로 지친 아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라면 제주가 적격지일수도 있다.

내가 제주를 적격지라고 한 이유는 비극의 땅 제주를 직접 답사함으로서 다시는 이 땅에 제 2의 제주항쟁과 같은 비극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반면교사로서 수학여행은 권장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관광지로서 제주는 수학을 해야 할 학생들에게 소비문화를 조장하는 자본주의 문화를 체험케 하는 반 교육이다. 현재 학생들이 제주에 수학여행은 다녀오는 경우는 전자가 아니라 후자다. 내가 후자가 수학목적지로서 적격지가 아니라고 단정하는 이유는 제주로 수학여행을 다녀 온 학생치고 제주항쟁에 대해 단 한미디도 들었다는 학생을 만나 본 일이 없다.

더구나 100만원에서 400만원이 훨씬 넘는 고액을 들여 해외에 수학여행을 다녀오는 이유는 정말 교육적인 목적으로 선택한 것일까? 학생들끼리 친구를 소외시키거나 학교폭력을 범죄로 단정한다. 그런데 가난하다는 이유로 수학여행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학교가 가난한 학생을 왕따시키는 일이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수학여행이 소비문화를 조장하고 가난한 학생에게 상처를 주는 이런 반교육을 수학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연례행사를 치르는 행위는 중단해야한다. 평생에 단한 번... 관광이 아닌 학습의 연장에서 교육적인 목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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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정치2015.01.21 07:00


아이들이 태어나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이 엄마. 엄마에게서 태어나고 엄마의 젖을 빨면서 엄마의 표정을 보고 자란다. 뜰에 자라는 이름 모를 풀꽃도 충분한 햇볕과 수분을 섭취하지 못하면 튼실하게 자라지 못하거늘, 하물며 사람이 어머니로부터 젖과 사랑을 넘치도록 받지 못하고, 남의 손에 의해 길러지면 건강하게 자랄까?

 

 

엄마의 다른 이름은 사랑이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교사도 엄마다. 엄마는 아이에게 사랑을 나눠주는 주면서 사람으로 키운다. 아이들은 밥만 먹고 자라는 게 아니라 엄마의 사랑, 가족의 사랑, 이웃의 사랑을 먹고 자란다. 사랑하고 미워하고 좋아하고, 싫어하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성내고,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하고.... 이런 정서는 풀이 성장하기 물과 공기기가 필요한 것처럼 엄마와 가족으로부터 사랑을 배우고 느끼면서 자란다. 물과 공기와 햇볕이 부족하면 제대로 자라지 못하듯,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사람으로서 기본적으로 갖춰야할 정서 중에서 가장 중요한 정서는 사랑이다. 그런데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학교에서도 그런 정서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있다면 우리 아이들은 어떤 모습으로 자랄까? 키는 허우대처럼 크고 겉은 멀쩡하지만 사랑이 메마른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나약한 사람으로 자란다. 잠도 들 깬 아이를 들쳐 엎고 어린이집에 맡기고 돈벌이 나가는 부모들, 햇볕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풀처럼 아이들은 그렇게 자라고 있는 것이다.

 

학교가 가장 먼저 가르쳐야할 것은 무엇일까? 자신을 사랑하는 것, 내 부모를 사랑하는 것, 친구와 이웃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모든 교육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 사랑이 없는 사람의 머릿속에 담긴 지식은 인간미 넘치는 자신이 맡은 이레 대해 책임과 역할을 다 할 수 있을까? 나를 사랑할 줄 모르는 데, 자긍심도 자아존중감도 없는데 그런 마음에 담긴 지식이나 기술로 어떻게 사랑을 실천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겠는가? 안타깝게도 사랑을 가르쳐야할 학교는 아이들을 경쟁으로 내몰아 하루가 다르게 지쳐가고 있다.

 

사랑받지 못한 사람은 남을 사랑할 수 없다. 아이들은 유치원이나 학교에 입학하기 바쁘게 받아쓰기 시험을 치르고 낱말 한두 개 틀리면 열등아로 만들어 아이의 마음 속 깊이 상처를 심어놓는다. 서로 아끼고 사랑해야할 친구가 경쟁의 대상으로 만드는 학교는 참으로 반인간적이고 반 교육적이다. 천사 같은 아이들은 이렇게 사랑을 받지도 베풀 줄도 모르고 이기심과 열등감을 배우면서 자라고 있는 것이다.

 

 

마음속에 사랑을 간직한 이는 자신이 소중한 줄을 알 듯, 남도 소중하게 생각할 줄 안다. 이웃을 배려하고 서로 존중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사랑에서 나온다. 사랑이 없으면 참을성도 인내심도 부족해 작은 일에 분노하고 미워하고 짜증을 낸다. 사랑은 자신을 이기는 힘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낮추는 겸손이기도 하다. 사랑은 내 부모를 섬길 줄 아는 마음이요, 불행한 사람을 보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다. 내 배만 부르면 그만이 아니라 남의 배고픔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이요, 불의를 보고 미워하는 마음이다.

 

사랑이 없는 사람의 마음에 담긴 지식은 교만과 이기심으로 가득 찬 폭발물이다. 겉으로 아무리 화려한 외피로 치장을 하지만 그 속은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다. 지고의 사랑은 자유에 대한 갈망이요, 불의를 보고 침묵하지 않는 마음이요, 평화를 위해 자신을 던질 줄 아는 용기다, 남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사랑을 말하는 자는 위선이요 거짓 도덕군자다. 가난한 이웃을 위해 자신의 한 몸 던지지 못하면서 어떻게 사랑을 노래할 수 있겠는가?

 

이제 가면을 벗어야 할 때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가하는 폭력의 탈은 벗어야 한다. ‘다 너를 위해서...’라는 얄팍한 이기심의 가면, 이해타산하면서 권력주변을 기웃거리던 지식인이라는 가면,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을 전체로 착각는 천박한 가면을 벗어던져야 한다, 그래서 하늘과 땅이 아이와 어른이, 남자와 여자가 강자와 약자가 함께 손잡고 살아 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사랑이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만물의 영장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가정에서는 아버지 어머니가,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사회에서는 지식인들이 나서서 사랑을 실천하고 가르치지 못 한다면 어떻게 아이들에게 희망을 말하겠는가? 이제 우리 위선의 탈을 벗고 사랑을 가르치며 실천하자, 그것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갖춰야할 기본적인 도리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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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4.08.05 06:57


사람이 얼마만큼 잔인해 질 수 있을까? 최근 28사단 윤일병 폭행 사망 사건을 보면 인두껍을 쓰고 차마 인간으로서 못할 천인공노할 잔인한 폭행에 소름이 끼친다. 윤일병 폭행 사망 사건뿐만 아니다. 지난 5월, 김행의 여고 1년생 윤모(15)양을 유인, 성매매와 폭행·살해한 뒤 범행을 은폐하려고 시신을 콘크리트로 암매장한 사건을 보면 분노를 너머 허탈감을 감출 수 없다.

 

 

<이미지 출처 : 헤럴드경제>

 

국민소득은 2만 4천불, 총 무역규모가 1조 달러를 넘는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또 다른 얼굴이다. 선진국대열에 들어섰다고 자랑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최근 일어나고 있는 야만적인 사건들을 보면 이게 5천년 문화민족이 사는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믿어지지가 않는다.

 

세계 12위의 경제대국 대한민국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4대강 사업으로 아름다운 산천이 오염지대로 바뀌고 사람들은 고물가, 고등록금, 고실업, 고유가, 고실업, 저임금으로 삶에 지쳐 가고 있다. 강도, 강간, 살인, 자살, 납치, 성폭행과 조직폭력, 부모살인, 자녀살인... 차마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일상들이 계속되고 있다.

 

공교육은 실종 되고, 공직자들의 뇌물 수수행위와 부정부패는 날이 갈수록 늘고 있다.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은 도박, 살인, 마약밀매, 불륜 등의 범죄를 저지르는가 하면 권력의 시녀가 된 검찰은 떡찰과 스폰서 검찰이라는 불명예도 모자라 대선에 개입해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최근 세월호 참사를 두고 온 국민이 패닉상태에 빠져 있는데 새누리당의원을 비롯한 일부 몰지각한 부모단체들의 막말을 듣고 있노라면 그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게 부끄럽고 수치스럽다.

 

 

국민의 생존권을 지켜줘야 할 정부는 다수의 국민들이 반대하는 의료 민영화와 철도민영화를 밀어 붙이고 농민들의 피땀 흘려 지은 농사조차 제값을 받지 못하게 쌀시장을 개방해 놓았다. 세월호 참사를 겪고도 설계수명이 지나 언제 제 2의 후쿠시마 원전의 비극을 불러 올 핵발전소를 재가동하고 현재 가동 중인 26기의 핵발전소도 모자라 . 7기의 원전이 건설 중이며 6기의 원전을 더 건설할 계획까지 세워놓고 있다.

 

 

<이미지 출처 : 오마이뉴스, Ajji.net >

 

사람들이 사는 이유가 뭘까? 내가 이런 유치한 자문자답을 하는 이유는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 우리가 지금대로 살면 되는가? 우리가 원하는 세상이 오가나 할까? 궁금해진다. 정치를 한다는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무얼 하는 사람인지... 교육부도 학교도 교사는 있어도 교육은 무너질대로 무너지고 있는 이상한 나라. 법이 시퍼렇게 살아 있어도 유전무죄, 무전 유죄요,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사람에게는 경제정책이란 도대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폭력은 군대나 학교뿐만 아니다. 정당하게 행사하지 못하는 권력은 폭력이다. 폭력을 권력으로 위장한 나라에서는 가난하다는 이유로, 학력이 낮다는 이유로,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힘이 없다는 이유로, 못생겼다는 이유로, 촌사람이라는 이유로... 홀대받고 차별 받고 살아야 하는 비극이 그치지 않는다.

 

법이 무너진 사회, 인권이 실종된 사회에서 정의는 학자들의 책 속에서나 존재할 뿐이다. 힘의 진리요 정의가 되는 사회에서는 약자는 일상적으로 폭력을 경험하고 살아야한다. 그 폭력이 좀 더 크거나 적은 차이일 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양심이 실종된 지식인, 정치인, 종교인, 교육자... 그들의 침묵으로 약자의 설 곳은 나날이 위축되고 좁아지고 있다. 언제까지 껍데기뿐인 윤리와 도덕과 법으로 약자를 침묵시킬 것인가?

 

군인과 학생폭력에 분노하는 사람들... 우리 사회에서 하루도 그치지 않고 계속되는 권력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직시하자. 그래서 사람이 사람대접 받는 세상, 주인이 주인 되는 세상,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사람대접 받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윤일병 폭행사망소식과 김해여고생 암매장 사건을 보면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왜 필요한지를 절감한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군대 갔다 오면 사람 된다’는 말이 있다. ‘말썽 부리고 반발하고 부모 알기를 우습게 알던 아들이 군대 가더니 딴 사람이 되어 돌아왔다’고 좋아하는 부모들이 있다. 과연 그럴까? ‘군대’갔다 오면 사람‘된다’는 말은 고생을 모르고 자란 자녀가 부모와 헤어져 살아보니 철이 든 것이지 군에 갔기 때문에 달라진 게 아니다. 달라졌다면 순진한 젊은이가 ‘폭력에 순종하는 인간성으로 바뀌었다면 그게 달라졌을 뿐이다.

 

 

그래서일까? 군사문화의 향수를 버리지 못한 나이든 어른들이 ‘사람은 고생을 해봐야 사람이 된다’느니 ‘맞아봐야 남의 사정을 안다느니...’ 하면서 군사문화를 동경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박근혜대통령의 정체성 때문일까? 박근혜정부 출범 후 병영체험켐프가 성행이다. 중고생에 이어 어린 초등학생까지 병영체험을 시키다 못해 교사들까지 병영체험을 시키겠다고 안달이다.

 

한겨레신문이 보도한 ‘…교사들까지 ‘반강제 병영 캠프’ 기사에 따르면 ‘교직원의 국가 안보관 확립과 나라사랑 의식 함양을 위한 나라 사랑캠프를 추진한다”며 1박2일의 캠프를 운영한다며 충주지역 교육청 산하 유·초등학교 40곳, 중학교 19곳에 60명의 교사를 모집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학교에 보냈다.

 

말로는 ‘학교별 1~4명씩 참가를 권유’한다는 내용이지만 ‘교육청이 학교에 인원수를 정한 공문을 보낸 것은 사실상 학교별 인원을 할당’한 것이나 다름없다.

 

초중고학생들에게 병영켐프를 개설해 '특공무술 시범, 장비견학, 레펠(하강훈련) 등 공수지상 훈련, 야간 행군, 낙하산 끌기, 화생방, 나라사랑 프로그램(태극기 그리기, 애국가 4절 쓰기 등), 은거 훈련' 등 군사훈련과 병영체험도 모자라 교사들까지 반 강제적인 병영체험 교육을 시키면 애국심이 생겨날까?

 

 

공주사대부고생 사망사고로 숨진 학생의 장례식도 치르기 전 충남지역 산하 교육청에서는 학교폭력 가해자까지 병영 체험 교육을 시키겠다고 한다.

 

충남교육청에서는 ‘충남지역 중·고교에서 학교폭력 등으로 징계를 받은 150여 명의 학생들에게 "학교폭력 가해학생 해병캠프 보내라"는 공문을 보내 삼청교육대가 부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충남 교육청은 ‘학교폭력 미 이수 학생과 학교폭력 개선 반성 실적을 확보하고자 하는 학생, 학교징계로 벌점이 누적된 학생...’을 대상으로 각급 중고등학교에서는 대상학생이 누락되지 않도록 협조 공문까지 보냈다.

 

초·중·고교생들의 병영체험캠프 참가나 군부대 체험행사는 충북 충주교육지원청 일부지역뿐만 아니다. 대구시교육청 산하 각급학교도 “여름방학을 맞아 초등학교 7개, 중학교 20개, 고등학교 3개 등 모두 30개교가 참가했거나 참가할 예정이다. 제주도에서는 일부 학교가 극기훈련 차원에서 제주지역 해병부대에 학생과 인솔교사들을 입소시켜 병영체험을 실시하고 있다.

 

 

부산시교육청은 “ ‘병영체험학습’ 프로그램에 올해 20개(9개교 1학기 완료, 11개교 2학기 예정)가 경남도교육청도 해군진해기지사령부와 육군 39사단, 공군교육사령부, 진해해군교육사령부에 학생들을 보내 안보교육을 시키고 있으며 전북 익산시에서는 지난해부터 750명의 학생들을 4기로 나눠 병영학교에 입교시키고 있다.

 

‘군대 갔다 와야 사람이 된다?’ 정말일까?

 

군사문화는 폭력을 바탕으로 한다. 적과 아군, 사느냐 죽느냐 생존을 놓고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형성되는 문화란 지배와 복종, 상명 하복의 권위주의로 평화 시에는 무사 안일주의, 요령주의, 형식주의....가 지배하는 문화다. 학교를 다니며 배운 민주주의는 훈련소에 입소하기 전 반납하고 훈련소에서부터 군사문화를 재사회화해야 한다. 군사문화는 상식이 통하는 문화가 아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지배와 복종, 상명 하복의 권위주의문화는 생사를 좌우하는 전장에서나 통하는 문화다.

 

 

개성이니 창의성이니 소통과 비판과 같은 민주주의란 군사문화와는 거리가 멀다. 명령과 복종이 필요할 뿐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적과의 대치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인한 체력과 인내심이 기본이요,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복종만이 살 길이다. 생존을 위해 체력연마와 강인한 훈련의 반복으로 살아남기를 배우는 게 군대의 생리요, 군사문화다.

 

반면 학교는 공동체문화, 더불어 사는 문화를 배우고 체화하는 곳이다. 민주주의와 자유와 평화를 배우며 실천하는 곳이다. 현실은 비록 모순 덩어리지만 다가 올 미래는 평화가 강같이 흐르는 세상을 꿈꾸며 그런 세상에 적응할 수 있는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곳이 학교다. 상식이 통하지 않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살아남는 훈련을 하는 군사문화와 민주시민으로 자라도록 가르치는 학교에서 배우는 학생들에게 군사문화를 주입시킨다는 것은 반민주주의요, 반교육이다.

 

국제연합 헌장은 어린이들이 ‘평화, 존엄, 관용, 자유, 평등, 연대의 정신 속에서 양육되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전쟁지역에서는 ‘특별한 보호를 받아야 하며 15세 미만일 때에는 절대 군대에 들어가거나 전투행위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고 유엔아동권리협약은 말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에게, 민주주의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지배와 복종, 상명 하복, 권위주의문화를 가르쳐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가?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 10점
김용택 지음/생각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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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정치2013.05.18 07:12


 

 

국가보훈처가 16일 "'임을 위한 행진곡'은 노동·진보단체 '민중의례' 때 애국가 대신 불리는 노래로, 정부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일어나 주먹을 쥐고 흔들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의견 등이 제기돼 '제창'의 형태로 수용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밝혀 논란이 되고 있다.

 

보훈처가 이런 결정을 하게 된 이유는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 기념행사의 공식 기념곡으로 지정되어 있지 않고, 일부 노동·진보단체에서 '민중의례' 때 애국가 대신 불리는 노래"기 때문이라고 한다.

 

보훈처의 이러한 결정에 대해 5·18 단체와 광주지역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5·18 민중항쟁 33주년 기념행사위원회'(이하 행사위)는 기념식 불참을 선언하고 국립 5·18 민주묘지 앞에서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의 사퇴와 '임을 위한 행진곡' 공식 기념곡 지정을 촉구하는 천막 농성과 침묵시위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시쳇말로 블랙코미디다. 기념식이란 ‘뜻깊은 일이나 사건을 잊지 않고 마음에 되새기기 위해 행하는 의식’이다. 5·18은 광주민중항쟁의 진저리나는 국가폭력의 역사를 기억해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의 의미를 다짐하는 날이다. 당연히 희생자의 가족과 관련단체들의 의사가 반영돼 그들의 고통에 동참하고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결의의 장이 되어야 한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어떤 노래인가?

 

사망자 163명, 행방불명자 166명, 부상 뒤 숨진 사람이 101명, 부상자가 3,139명, 구속 및 구금 등의 기타 피해자 1,589명, 아직 연고가 확인되지 않아 묘비명도 없이 묻혀 있는 희생자 5명 등 총 5,189명의 억울한 사람들이 희생된 아픈 역사가 바로 5·18이다.

 

자식을 잃고 혹은 남편과 아내를 혹은 부모를 잃고 통한의 33년을 살아 온 그들에게 무슨 말로 의로한들 그들의 아픔이 다 치유될 수 있겠는가? 희생자 중 아직도 병원에서 고통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합창은 되고 제장을 안된다’는 꼼수를 부릴 수 있는가?

 

국가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아픔을 당사자들이 원하는데 국가가 무슨 염치로 반대하겠다는 것인가? 더구나 보훈처가? 솔직히 말해 이날만은 국가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돈 몇 푼으로 혹은 기념식을 하기 때문에.. 혹은 대통령이 참석하는 것으로 보상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당사자의 입장에서 혹은 가족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임을 위한 행진곡이란 바로 그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광주의 정서요, 희생자들과 관련단체들의 절절한 요구이기도 하다. 5·18기념식장은 당연히 희생자들의 정서가 담긴 아픈 추억 하나나도 소중하게 되살려 후손들에게 알리고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게 도리다.

 

 

그런데, 제창은 되고 합창은 안 된다...?

 

도대체 제항이란 무엇이고 합창이란 무엇인가?

무식한 사람이 국어사전을 뒤졌더니 ‘합창은 여러 사람이 서로 화성을 이루면서 다른 선율로 노래’요 ‘제창은 여러 사람이 다 같이 큰 소리로 동시에 노래를 하는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무슨 뜻인지 몰라 다시 지식검색을 하고나서야 '합창은 행사에 참여한 합창단이 부르는 것’이고 ‘제창은 참석자 모두가 함께 부르는 노래’라는 뜻을 겨우 알게 되었다. 국가는 분명히 깨우쳐야 한다. 전두확일당이 계엄령을 선포하자 겁을 집어먹은 다른 도시의 사람들은 숨죽이며 침묵하고 있을 때 오직 광주만은 혼자 불의와 맞섰다. 권력의 눈이 어두운 정치군인들은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권력을 도둑질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로 시작되는 ‘임을 위한 행진곡’ 은 소설가 황석영씨가 백기완씨의 시 '묏비나리'를 개작한 노랫말에 전남대생 김종률씨가 곡을 붙여 완성된 노래다. 80~90년대 이 노래는 기타와 꽹과리 반주가 어우러져 투쟁 분위기를 북돋운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운동권에서 상징적인 노래로 사랑을 받아 온 역사가 담겨 있다.

 

보훈처는 지금이라도 권력의 눈치를 볼 것이 아니라 이 노래에 담긴 정서를 되살려 그들의 요구를 겸허히 수용해야 한다. 잘못을 사과하겠다는 국가가 희생자들이 원하는 정서를 무시하겠다는 것은 또 다른 국가의 폭력이다

 

-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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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책임감이 있는 사람. 정직하고 성실하며 인간관계가 좋은 사람. 약속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시간관념이 투철한 사람. 양보하고 타협할 줄 아는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 객관적인 사고와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세계관이 분명한 사람. 건강하고 생활습관이 좋은 사람.....'

 

'주관적이고 고집이 세며 자기중심적인 사람. 자신이 판단의 기준으로 착각하고 사사건건 불평을 하는 사람. 욕심이 많고 이해타산이 심해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사람. 공사를 구별하지 못하고 부모나 친척을 우습게 아는 사람.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매사에 신용이 없는 사람. 낭비벽이 심하고 절약할 줄 몰라 경제관념이 희박한 사람....

 

'고된 시집살이한 며느리가 더 엄청난 시어머니가 된다던가?' 폭력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는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고 한다. 폭력만이 아니다. 몇년 전 '밀양의 고교생들의 집단 성폭행 사건'도 텔레비전에서 음란문화를 보고자란 아이들이기에 그런 폭력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학교에서의 체벌을 교육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체벌로 무너지는 아이들의 인격에 대해 얼마나 진지한 고민을 해 봤을까?

 

인격의 형성이 유전의 영향이 더 큰가 아니면 환경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느냐를 놓고 재론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회는 젖먹이 아이 때부터 안방을 차지하고 앉은 텔레비전의 영향을 받고 자란다. 아니 부모나 교사의 영향보다 텔레비전의 영향을 더 많이 받고 자란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사고나 가치관에 거의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텔레비전은 과연 교육적인가? 물론 텔레비전이 부정적인 기능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EBS와 같은 교육적 기능을 하는 방송도 있지만 상업방송과 공영방송은 시청률이라는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텔레비전이 음란한 내용이나 폭력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갈수록 낮 뜨거운 장면까지 마다 않는 텔레비전뿐만 아니라 사회는 날이 갈수록 상업주의 저질문화에 깊숙이 빠져들고 있다, 돈벌이가 되는 일이면 청소년들의 교육에 악영향을 미친다든가 하는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 뿐만 아니라 산업화가 급속히 진전되면서 가정교육이 무너지고 학교가 교육적인 기능을 감당하지 못하고 계급상승의 수단으로서 작용하게 된다.

 

흔히들 교육은 학교에서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진정한 교육이란 학교와 가정과 사회가 삼위일체가 되어 가치 내면화로 이어질 때 그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런 여유를 기대한다는 것은 사치다. 가정교육이 무너지면서 학교가 경쟁을 하는 곳이 되다보니 가치관교육은 기대조차 할 수 없게 됐다. 여기다 청소년들을 돈벌이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앏팍한 상업주의가 청소년들을 벼랑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세상 모든 공기가 더러워져도 '내 방문만 잘 잠그면 우리아이는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우리 아이는 방안에서만 사는 게 아니다. 어느날 갑자기 부모에게 반항하는 자녀를 본 아버지는 허탈감에 빠지지만 그게 부모나 학교교육의 잘못만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안방을 차지한 상업주의와 일등만을 바라는 부모, 그리고 내 제자 출세시켜줘야겠다는 선생님의 근시안적인 사랑이 아이들의 정서를 좀먹고 있는 것이다.

 

교육이 실종된 사회에서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책임감이 있는 사람. 불의를 보면 분노할 줄 알고 친구간에 신의를 지킬 줄 아는...' 그런 아이로 자라기를 기대할 수 없다. 삭막한 경쟁에서 이겨야 산다는 가치가 우선하는 사회에서는 '기회주의적이고 이기적이며 주관적이고 고집이 세며 자기중심적인 사람...' 으로 자란다.

 

부모도 몰라보고 내게 좋으면 선이요 내게 나쁘면 악이 되는.. 그런 가치관을 가진 아이들로 자라고 있는 것이다. 2세 국민을 이렇게 자라도록 방치하면서 '우리는 교육을 하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교육이 없는 사회는 부모도 교사도 모두가 죄인이요, 방관자다.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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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처방전으로 호전되지 않는 병을 약의 단위만 높인다고 병세를 잡을 수 있는가? 원인진단이 잘못되면 백약이 무효다. 아무리 폭력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좋다는 온갖 처방을 다했지만 줄어들 기색은 보이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한다’

잠언에 있는 말씀이다.

 

지혜로운 자는 실수를 하면 그 원인을 분석해서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지만 어리석은 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뜻일게다.

 

학교폭력이 그렇다. 원인진단을 잘못해놓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수위만 높인다고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심산유곡에 핀 꽃과 도시 도로변에 핀 꽃은 색깔부터가 다르다.

 

등산을 해 본 경험이 있는 분들은 안다. 심산유곡에 핀 꽃. 도시 도로에 장식용으로 심어 놓은 꽃과 같은 꽃인데 색깔이 다르다는 걸... 왜 같은 꽃의 색깔이 다를까?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를 들으며 자라는 꽃과 도시의 온갖 매연과 소음을 들으면서 자라는 꽃이 같은 색깔로 피어날 리 없다.

 

사람은 어떨까? 건강한 어머니와 온갖 잔병치레를 하는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다르다. 건강에 어머니의 몸에서 계획적인 태교를 받고 자라 교육적인 환경에서 고이 자란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는 지능부터 다르다는 걸 생물학자들의 연구결과로 밝혀진바 있다.

 

모유가 아니라 소젖을 비닐젖꼭지를 빨며 자라는 아이들... 걸음마를 겨우 시작한 아이는 휴대폰 전자파를 안고 자란다. 전자레인지에 데워진 음식이 아이 건강에 얼마나 좋은지 장난감의 환경호르몬이 얼마나 심각한지, 과자의 색소며 방부제가 얼마나 아이 건강을 해치고 있는지 엄마는 잘 모르고 키운다.

 

폭력게임에 중독되는 아이들....

 

학교 앞 문방구를 지나다 보면 유치원에 겨우 다닐까 말까한 아이가 혼자서 게임기 앞에 앉아 게임에 열심이다. 무슨 게임을 하고 있는가 봤더니 상대방을 죽이는 게임이다. 부지런히 키보드를 두들겨 적군을 죽이는 재미에 폭 빠졌다. 집에서는 아빠와 총놀이를 즐긴다.

 

“빵!” 아빠나 엄마가 총에 맞아 죽는 시늉을 한다. 사람을 죽이는 끔찍한 총이 놀이기구라는 이름으로 장남감이 된다. 아빠와 엄마를 죽이는 훈련을 시키고 있는 것일까? 어떻게 사람을 죽이는 총이 놀이 기구가 되는가? 아빠가 죽은 채 스러지면 좋아서 박수를 치는 가족들....

 

아이들이 자라는 환경은 교육적인가?

 

눈만 뜨면 시도 때도 없이 켜놓는 텔레비전. 아이들이 어른들이 부르는 노래와 유희에 쉽게 길들여진다. 노래 가사에 담긴 내용이 어떤 것인지 알지도 못하고 온갖 국적불명의 춤과 언어에 오염되어 가는 아이들... "이 프로그램은 15세 이상 관람가입니다. 15세 미만의 청소년이나 어린이는 부모의 지도 아래 시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걸 가려서 보여주는 부모는 몇이나 될까?

 

잔인한 내용, 불륜, 폭력... 눈으로 귀로 듣고 배우고 익혀 체화된 아이들... 초등학생 5명 중 1명은 인터넷 등을 통해 음란물을 본 경험이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국내 웹하드·P2P 사이트 등에서 연간 약 420만 개의 아동 포르노가 다운로드 되는 것으로 추정한다.’(중앙일보)

 

시청률을 높인다는 이유로 폭력물이든 음란한 내용이든 안방으로 파고 든 상업주의가 무방비상태로 아이들에게 노출되어 있다. 건강한 문화가 아니라 먹고 즐기고 노래하고 춤추고... 노동과 땀의 소중함을 모르고 향락문화에 길들여지는 아이들은 건강한 정신문화를 배울 기회를 상실하고 만다.(계속)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2.04.26 06:30


 

 

 

“이번 시험 잘 치려고 엄청 노력했지만 뜻대로 안 됐다. 성적 때문에 비인간적인 대접을 받는 이 세상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지난 해 10월, 평소에 핸드폰을 갖고 싶어 하던 중학생이 ‘성적이 오르면 사주겠다’는 부모의 약속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원하던 결과를 얻지 못하자 자기가 살고 있던 아파트 20층에서 몸을 던졌다는 안타까운 얘기다. 이 학생이 자살을 하기 전날 성적이 나빠 부모로부터 심한 꾸중을 들었다고 한다.

 

세상에서 목숨보다 소중한 게 있을까?

 

“학교를 왜 다녀야 하는가? 공부는 왜 하지?” 학생들에게 라고 물어보면 한결같은 대답이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고 한다. “어떤 사람이 훌륭한가?”라고 물어보면 의사, 변호사, 국회의원 판사, 검사... 이런 사람들이란다.

 

사회적 지위가 높으면 훌륭한 사람인가? 우리사회는 그 사람이 ‘어떤 인격의 소유자인가?’가 아니라 ‘어느 대학을 졸업했는가?’ 혹은 ‘직업이 무엇인가?’에 따라 사람의 가치를 평가 받는다. 결혼을 할 때도, 취업을 할 때도, 선거에 출마할 때도... 한결같이 따라 다니는 게 ‘어느 학교를 나왔는가?’다.

 

 

 

 

지난 4·11총선 때 선거문화를 바꾸겠다며 진보신당의 비례대표 후보 7명이 학력을 기재하지 않았던 일이 있다. 진보신당은 홍세화, 박노자 등 한국사회를 대표하는 지식인들이 비례대표 후보 명단에 포함됐지만 후보 학력기재 란에 진보신당의 '탈(脫)학벌' 정책에 따라 '학벌 철폐'라는 방향에 맞지 않다고 판단, 학벌사항을 기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학벌과 인격은 비례하는가? 유명브랜드 옷을 입은 사람은 다 부자일까? 고급승용차를 타고 다닌다고 다 유명인사인가? 외모가 잘 생긴 사람은 모두 성격이 좋은가? 일류대학을 나온 사람은 다 인격자인가? 형식과 내용은 같을 수도 있지만 다를 수도 있다.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그것은 의복이든, 외모든, 학벌이든 마찬가지다. 일류대학 졸업장이 그 사람의 인격이 될 수 없듯이 외모나 형식이 내용과 동일하다는 것은 결정적인 판단의 오류다.

 

 

 

교육이 무너졌다고 야단이다. ‘난 일등 같은 것은 싫은데, 앉아서 공부만 하는 그런 학생은 싫은데, 난 꿈이 따로 있는데....’ 성적으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학교사회가 싫다고 절규하다 목숨을 끊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연간 200명의 학생들이 성적 때문에 목숨을 끊고 있는데 어른들은 말한다. ‘우리도 다 그런 세월을 겪어 왔다고... 그 정도를 견디지 못하는 ×이 무슨 큰일을 하겠느냐’며 윽박지른다. ’성적이 뒤졌다고 자살한다면 모든 학생들이 다 자살하게...’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성적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성적을 잘 받아야 하는데 성적이 좋지 못하다고 자살한다면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 목적전치다. 성적뿐만 아니다. 왕따와 폭력으로 고통을 당하던 학생이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해 자살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통계청의 청소년 사망원인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09년까지 미성년자, 10대, 20세 이상 청소년 및 대학생까지 아우르는 1세부터 24세 인구의 사망원인 1위는 자살로 꼽혔다.

 

 

 

청소년들에게 죽음을 선택하도록 하는 원인이 소외와 폭력, 그리고 성적과 진학문제 때문이라면 이는 자살이 아니라 사회적 타살이다. 사회적 타살을 두고 교육위기니 학교폭력만 문제 삼을 수 잇는가? 학교가 인격을 도야하는 곳이 아니라 경쟁을 통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남는 방법을 배우는 곳이라면 그런 학교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인간은 상품이 아니다. 건강한 사회란 학벌이나 외모보다, 사람의 ‘사람 됨됨이로 평가 받는 게 정상이다. 내용은 없고 형식만 중시하는 사회는 병든 사회다. 형식보다 내용, 학벌보다 인격으로 평가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학교가 학벌이 아닌 교육하는 곳으로 바뀔 때 가능한 일이다.

 

 

* 이미지 출처 : 위의 이미지는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가져왔습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사례 #.1

키가 2m가 넘고 몸무게도 100Kg이 넘을 정도의 거구의 선생님. 수업에 들어갈 때면 손에는 언제나 출석부와 길이가 1m 정도 되는 몽둥이를 들고 들어가신다.

인상도 정말 무섭게 생겼다. 수업시작하기 전에 한 사람이라도 교실에 없거나 엎드려 자면 예의 그 몽둥이로 교탁을 한 두 번 치면서 눈만 부릅뜨면 아이들은 완전히 얼어 버린다.

수업시간에 떠들거나 자는 아이는 눈 닦고 찾아봐도 없다. 그렇다고 선생님이 몽둥이로 아이들을 때리는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실업계 학교에서 60명의 교실에 열 명도 채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잠을 자거나 잡담을 하는 다른 선생님의 수업시간에 비하면 기적 같은 모습이다.

                                                        <이미지출처 :  EBS에서>

사례 #.2

수업에 들어 올 때는 늘 ‘훈화자료’라는 선생님이 직접 만든 자료집을 들고 다닌다. 그렇다고 덩치가 커서 위압적이거나 ‘야 임마!’ ‘이 자식 저 자식...’ 그런 말은 입 밖에도 내지 않지만 학생들은 선생님을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목소리도 크지 않고 다정다감하다. 이 선생님이 들어와 수업을 시작할 때 자고 있는 친구가 있으면 깨워주기도 한다.

교실에 들어 와 수업을 시작하기 전 흑판에 ‘인내’ 혹은 ‘채무자’... 이렇게 쓰고 삶에 대한 얘기로 수업을 시작한다. 어떤 날은 ‘자성예언’ 또 어떤 날은 ‘연단’... 이렇게 흑판에 쓰고 난 다음 얘기를 시작한다. 선생님의 수업시간에는 당연히 그런 훈화로 시작한다는 걸 학생들은 다 안다. 어떤 날을 시를 읽어주기도 하고 어떤 날은 자신이 감동 깊게 읽었던 고전을 들려주기도 한다.

그러다 교과서 단원을 흑판에 적고 “공부합시다” 하면 여기저기서 “선생님~ 계속해요!” 이렇게 나오면 못이기는 척 학생들에게 지고 한 시간 내내 얘기를 할 때도 있다.



학생인권조례가 말썽이다. 학생들에게 인권을 찾아주자고 시의회에서 ‘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되자 보수적인 교사단체인 교총이나 조중동같은 수구언론들이 야단이다. 교사들에게 권위가 무너지면 교사들이 설 곳이 없다는 것이다. 수업을 진행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학생들을 어떻게 지도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 교육희망에서>

학생도 학생이기 전에 한 사람의 국민이니까 당연히 국민으로서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권리를 인정해줘야 한다는 주장과 그렇게 학생들에게 권리를 주면 어떻게 학생들이 교사의 통제를 받아들이겠느냐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학생들을 어떻게 보느냐는 하는 ‘학생관’의 차이다.

학생들을 ‘통제의 대상, 또는 단속의 대상으로 보는가?’ 아니면 '인격적인 만남을 통한 가치 내면화의 대상으로 보느냐?'의 차이다.

교사에게 권위가 없어지면 교육이 불가능하다는 논리다. 권위란 무엇인가? 사전에 찾아보니 권위란 ‘다른 사람을 통솔하여 이끄는 힘’이라고 적어놓았다. 교육현장에서 학생들을 통솔하여 이끌기 위해 필요한 힘이라는 뜻이다.

                                                      <이미지 출처 : 교육희망에서>

그런 힘이 어디서 나오는가? 앞의 사례#.1의 선생님 같은 모습에서 나오는 게 권위일까 아니면 사례 #.2의 선생님 모습에서 나오는 것일까?

권력과 폭력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다. 다만 행사를 정당하게 하는가 아니면 부당하게 하는가의 차이다. 권위도 마찬가지다. 미숙한 인격자를 교사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끄는가, 그렇지 않는가의 차이다. 힘으로 이끄는가 아니면 학습자 스스로 마음을 열고 변화를 하도록 도와는 주는가의 차이다.

교육은 순치(馴致)가 아니라 스스로 잘못을 깨우치거나 시행착오를 통해 바람직한 방향으로 행동을 수정하는 과정이다. 폭력이나 강제로 행동을 수정하려면 이중인격자를 만들어 놓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감동이나 각성을 통해 변화하도록 이끌어 피교육자는 스스로 자기수정을 통한 행동의 변화가 가능한 것이다.

아무리 수확이 급해도 벼 포기를 뽑아 올려서는 못쓴다. 좋은 결실을 맺게 하려면 김을 매주고 거름을 주어 스스로 자라게 해줘야한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자라게 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불신과 통제와 억압으로 단 한 거루의 벼도 열매를 맺게 할 수 없다.

- 이 기사는 충남도청인터넷신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http://news.chungnam.net/news/articleView.html?idxno=78344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11.26 06:30




"서울대 법대에 가라면 가라. 모두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다", "전국 1등을 해야 한다"

"어머니가 '학부모 방문의 날'인 다음날 학교에 오기로 돼 있었는데 모의고사 성적표에 전국 4천등을 한 것을 62등으로 고쳐놓은 게 들통 나면 무서운 체벌을 받게 될까 봐 겁이나 어머니를 살해한 아들. 어머니의 시신을 8개월간 안방에 두고 아무 일 없는 듯 학교를 다닌 아들... 별거 중이었던 아버지가 아들을 찾아왔다가,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경찰에 신고하면서 범행이 들통 났단다.

성적이 떨어졌다고 자살하는 학생 소식을 들으면 “성적 나쁜 놈이 자살하면 우리나라 학생 대부분이 자살하게...?”라고 비아냥거리거나 “인내심이 없어서 그렇지... 제 혼자만 학교 다니나...” 하며 자살한 학생을 나무란다.

                                         <이미지 출처 ; 세계 일보>

학교폭력 문제가 발생하면 폭력을 행사한 학생은 타교로 전학하거나 퇴학처분을 받는다. 정황이 좀 더 심각하면 법적인 처벌을 받아 일찌감치 폭력범으로 전과자라는 낙인을 찍힌다. 교사를 폭행했다는 뉴스라도 들으면 “말세다 말세야! 옛날에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고 했는데, 세상이 어쩌자고...”하며 한탄한다.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돼 가고 있다. 아무리 힘들기로 서니 어떻게 어머니를 살해하고, 어떻게 친구를 왕따 시키거나 폭력을 행사하고 선생님의 머리채를 잡고...?

폭력을 미화하거나 어머니를 살해한 학생을 두둔하자는 말이 아니다.

과연 이런 사태...  어머니를 칼로 찔러 죽이고 폭력을 행사하는 학생, 선생님을 폭행하는 학생... 친구를 왕따시키는 학생... 그런 학생들 개인만의 잘못일까?

                                     <이미지 출처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눈을 돌려 학교 밖을 보자. 가정에서 텔레비전 전원을 켜면 언제든지 볼 수 있는 드라마를 비롯한 사극들...  텔레비전은 아이들에게 올바를 가치관을 길러 줄 수 있는 교육적인 프로그램으로 채워져 있는가? 예능에서부터 퀴즈며 음악프로그램조차 온통 서바이벌 게임투성이다. 드라마는 또 어떤가? 하나같이 요행을 바라는 왕자병 공주병을 부추기는 내용투성이다. 결혼 후 바람피워 숨겨놓은 자식으로 인한 가정불화 이야기, 이혼녀와 재벌 아들간의 애절한(?) 사랑이야기... 첫 키스가 어쩌니 어른들이 들어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이야기들을 박장대소해가며 얘기를 나누는 출연자들이 나오는 프로그램들은 과연 교육적인가?

인터넷이며 성인방송은 부모의 주민등록번호만 넣으면 언제든지 볼 수 있는 포르노가 있고, 사람을 재미삼아 죽이는 서바이벌 게임, 사람을 파리 목숨처럼 죽이는 사극이며 영화며... 게임방에 가면 얼마든지 접하는 음란물이녀 폭력이며... 돈이 되는 일이라면 어린 아이까지 돈벌이의 대상이 되는 상업주의가 아이들을 병들게 하고 있다. 언제든지 달려가면 볼 수 있는 만화방이며 게임방은 과연 교육적인 내용물로 채워져 있을까?

놓으면 꺼질 새라, 불면 날아갈 새라 고이고이 키우는 자녀들도 가정에만 벗어나면 그들에게 안전지대는 없다. 학교에만 보내 놓으면 안심할 수 있다고? 천만에 말씀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학교에서는 고급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고급 아파트 아이들끼리, 부잣집 아이들은 부잣집 아이들끼리, 공부 잘하는 학생은 공부 잘하는 학생끼리, 힘깨나 스는 아이들은 그들끼리 친구가 된다. 얼굴이 못생겼다는 이유로 혹은 가난하다는 이유로, 메이커 옷을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성적이 나쁘다는 이유로... 왕따당하는 학교는 정말 교육을 하고 있는 곳이 맞는가?

 


아이들에게 교육적인 환경은 없다. 학교가 교육적이지 못하다는 것은 군대의 위병소를 방불케 하는 교문을 봐도 알 수 있다. 인성교육은 포기하고 점수 올리기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는 학교에는 인간교육이 가능할 수 없다. 기중고사, 기말고사 혹은 전국단위 학력고사로 서열을 매겨 점수 몇 점 차이로 사람대접 못 받는 아이들이 상처받는 학교를 교육적이라고 강변하지 말라.

오죽하면 학교를 거부하는 학생이 일 년에 10만명이나 될까? 교육내용을 들여다보면 더 기가 찬다. 교육과정은 수요자인 학생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내용들로만 채워져 있을까? 시비를 가리고 사람답게 사는 방법을 가르쳐 줘야 하는데 철학을 가르치지 않는 않는 학교는 교육다운 교육을 하고 있다고 믿어도 좋은가?

부모가 이산가족이 되어 교대로 주야간을 근무하는 가정에서는 아이들은 만화방이 아니면 학원에서 학원으로 전전한다. 학원에 가지 않으면 놀 친구가 없는 아이들... 결국 게임방이나 만화방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만화가 얼마나 교육적인지는 몰라도 아이들은 좋은 만화를 고를 능력도 안내도 없다. 결국 보고 배우는 것은 폭력물이 아니면 음란물에 철 이른 눈을 뜨게 된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죽어간 사람을 왜 살아남지 않았느냐고 힐난(詰難) 할 수 있는가? 자살하는 아이. 부적응하는 아이. 그들은 그들 개인의 인내심이 부족한 이유만으로 타락하거나 적응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우리 부모들, 학교 그리고 사회는 내일의 주인공인 아이들에게 얼마나 인간적으로 대하고 가슴 따뜻하게 이끌어 줬다고 할 수 있는가? 돈벌이만 된다면 아이들까지 막무가내로 이용해 먹는 잔인한 상업주의는 이들에게 책임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모든 아이들이 다 서울대에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이 사람다워 지도록 이끌어 주기보다 서울대 졸업장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보모는 아이들에게 잘못이 없는가? 내가 못 이룬 꿈을 자식이 이뤄줄 것이라고 믿고 그들을 인격적인 존재가 아닌 소유물로 생각하는 부모는 이들의 타락으로부터 자유로운가?

판사, 검사, 의사만 사는 세상은 없다, 농사짓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청소는 하는 사람도 있어야하고 장사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왜 의사와 판사만 소중하고 농부는 덜 소중한가? 잘못된 사회적 가치를 배분한 정치인에게 향해야 할 분노를 왜 죄없는 아이들에게 몽둥이 질인가? 반성 없는 어른들로 하여금 지금도 아이들은 상처받고 방황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누가 저 아이들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9.22 06:04


                                   <모든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일교차가 무려 10도이상이나 나는데 크레인 위에서 260일 동안 목숨을 건 투쟁을 하고 있는 김진숙위원님!, 그리고 그 아래에서 목숨건 단식을 38일째 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모른 채 하는 조남호사장이 행사하는 권력은 권력이 아니라 폭력이다.

‘명예훼손의 죄책을 물을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PD수첩 제작진에게 중징계처분을 내린 김재철사장은 권력의 행사가 아니라 폭력을 행사한 것이다.

개인정보를 보호해야할 행정안전부가 국가행정전산망에 들어 있는 개인정보(주민등록번호 전사자료)를 채권추심위원회와 금융회사 등에 건당 30원씩 17억8000만원을 받고 5,935만건을 팔아넘긴 정부의 행위는 권력의 행사가 아니라 폭력을 행사한 것이다.


우리나라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배워야할 교과서에 ‘민주주의’를 반공과 시장만능주의 이념에 사로잡힌 권력의 시각에 맞춘 ‘자유민주주의’로 바꿔 교과서를 개악하려는 이배용 국가브랜드위원회위원장은 권력의 행사가 아니라 폭력을 행사한 것이다.

 GDP 1조원 시대라면 4인가계소득 기준이 가계당 4500만원을 벌어야 옳다. 그런데 가계소득이 4500만원은커녕 최저임금(2012년)이 95만7천220원(최저임금 시간당 4,580원)으로 이 최저 임금도 못받는 임금 근로자가 198만명이라니... 국민소득 4만불시대에 예산삭감으로 방학중 굶는아이만 43만명인 부끄러운 나라. 이를 두고 경제선진국이니 복지국가니 친서민정책 운운하는 소리는 폭력이다.      

권력이란 무엇인가? 권력의 본질은 강제력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정당성’이라는 강제력을 권력이라고 한다. 여기서 ‘정당성’이란 백성이 그 권위를 인정하고 자발적으로 인정할 때만 권력이지 권위를 인정하지 못하면 폭력이 되는 것이다.


검찰고위 간부들의 스폰서에의한 돈과 성상납 사건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독도 관련발언(이명박의 독도관련 발언)
경찰의 무리한 진압으로 5명의 사망자를 낸 용산참사 사건
영부인 사촌언니의 한나라당 공천헌금 비리사건
이명박 친구인 천신일 회장의 한나라당 수억 당비 대납의혹 사건
수출입은행.. 이명박 대통령 형 회사 "다스" 특혜의혹
조중동의 종편 진출 내막
........................
..........................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이명박대통령 주변 인물들의 비리, 의혹은 권력의 정당한 행사가 아닌 폭력이다.

정치란 무엇인가? 정치란 ‘나라를 다스리는 일’.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이라고 국어사전은 정리하고 있다.

고등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천재교육)에는 ‘여러 가지 사회적 희소가치를 둘러싸고 나타나는 개인이나 집단간의 갈등을 규칙에 따라서 조정하는 활동’을 정치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니까 ‘일정한 권리를 가지고 유한한 사회적 가치(희소가치)를 공평하고 합리적으로 배분하는 활동’을 정치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위의 조남호사장이나 행정 안전부의 권력행사,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배워야할 교과서에 객관적 진실이 아닌 반공과 시장만능주의 이념에 사로잡힌 권력의 시각을 반영한 이배용 국가브랜드위원회위원장이 행사한 권력은 권력이 아니라 명백한 폭력행사다.


권력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에 서는 학자들 중에는 ‘권력이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기 계급을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한 이유를 알만 하지 않은가?

임금의 57%에 불과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7~8백만 명(전체노동자의 33.8%)을 외면하는 정부,  4,300명의 노숙자가 거리를 헤매고, 추석을 하루 앞두고 자녀들에게 먹이려고 삼겹살을 훔쳤다가 현행범으로 잡힌 두 자녀를 둔 어머니가 사는 세상. 200년에 한번 찾아올까말까 한 홍수를 예방한다면서 22조원, 매년 5~6조원을 쏟아 부으면서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목숨을 잃고, 졸업 후에는 대출금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를 만드는 세상. 4조9천억원의 예산만 있으면 무상등록금도 가능한데 예산편성에서 내년도 예산에서는 아예 삭제해버린 한나라당과 정부는 정당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가?

이명박 정부 4년만에 나라가 '빚더미 공화국'이 되고 있다. 소득은 줄고 부채와 이자는 늘어 민생경제를 파탄으로 내몰고 있는 정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 금융부채가 3283조원이나 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납북관계, 외교, 국방, 언론, 교육, 종교.... 등 멀쩡한 곳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대한민국을 총체적인 위기상황으로 내몰고 있는 정부....

기득권자와 지지계층의 이익을 대변하고 사회적 약자가 소외받는 사람들을 억압하는 권력은 폭력이다. 말로는 사회정의니 복지를 외치면서 최저임금 인상에는 자린고비 역할도 마다하지 않고 의무교육기간의 학생들에게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정부와 한나라당, 소득양극화문제, 대ㆍ중소기업 간 격차, 비정규직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 사회안전망으로부터 소외된 취약한 노동자의 보호를 외면하는 권력... 화훼와 협력의 남북관계를 긴장과 대립의 관계로 만들어 천문학적인 국방예산을 투입하는 정부. ‘법과 원칙을 말하면서 법이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정치폭력을 언제까지 당하고 살아야할까?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7.22 21:04



“안중근이라는 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애국잡니다.”
“독립투사입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일본사람들도 안중근을 애국자나 의사로 볼까요?”

내가 무슨 말을 할까 잠잠해진다.

“일본 사람들은 안중근을 의사나 독립투사라 보지 않고 테러리스트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애국자를 일본에서는 테러리스트라고 합니다. 똑같은 이토오히로부미가 안중근의 저격으로 살해됐는데 한국에서는 살인자가 아니라 애국자가 되고 일본에서는 살인자요 테러리스트가 되는 이유가 뭘까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현상)은 관점(觀點)에 따라 다르게 보입니다. 현상을 어떤 관점(觀點), 즉 어떤 기준(가치관)에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려워요?”

 

                             <모든 이미지출처 : 다음이미지검색에서>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 조금만 더 들어 봅시다.”
"관점(가치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타난 현상(문제)이 사실문제인지 가치문제인지부터 구별할 수 있어야합니다.

흑판에 크게 ‘가치문제’, ‘사실문제’라고 적었다.

“가치관에 대해서는 나중에 공부하기로 하고 오늘은 ‘사실문제와 가치문제’에 대해 알아봅시다.”


“사실문제와 가치문제란 어떻게 다를까요?

사실문제란 증거를 통해 입증할 수 있는 문제, 사실이 확인되면 문제가 해결되는 문제로 확실한 통계자료나 분석표 등 객관적인 답이 나올 수 있는 문제를 말합니다.

경험적 증명이 가능하면 사실 문제가 되겠죠?
예를 들면 2011년의 70세 이상의 노인인구수가 증가하였는가 하락하였는가?

이와같이 통계적으로 수치 확인이 가능한 문제가 사실문제랍니다.

이에 반해 가치문제는...
사실문제와 달리 주관적입니다.
개인의 주관적인 가치를 나타내는 의지나 희망, 감정이 들어가는 문제가 가치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실버타운을 많이 건설하는 것이 노인들의 복지에 도움이 될까?
이 문제는 사실문제가 될까요? 가치문제가 될까요?
정답은 가치문제입니다.

사실문제는 객관적인 답, 가치문제는 주관적인 답이 나오는 문제라고 하면 되겠네요..
가끔 헷갈릴 수가 있는데요..
문제의 답에서 객관적인 통계자료가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
경험적증명이 가능하면 사실문제, 아니면 가치문제라는것 잊지 마세요..
가치문제는 종교문제를 떠올리시면 될거예요..(다음 지시검색에서...)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치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 어떤 사람은 기독교를 어떤 사람은 불교를 믿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가치관(종교관)의 차이 때문이랍니다.

사실문제는 논쟁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가치문제는 사람들의 관점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갈등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사회문제는 이 가치문제의 차이 즉 가치관의 차이로 갈등과 논쟁이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가치관(價値觀)이란 ①가치에 관한 견해 ②가치를 중심으로 보는 관점 ③어떤 사물이나 대상이 지니고 있는 중요성 ④의의, 역할 등에 대한 사람에 따른 평가(네이버백과사전)를 말합니다.

좀 더 쉽게 풀이하면 가치관은 자신이 어떤 것에 대하여 ‘이렇게 생각한다’ 또는 말 그대로 ‘자신의 기준에 맞춰서 가치를 매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가치관에 따라 삶의 방향이나 질이 달라질 수도 있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앞에서 말한 가치문제는 자신의 기준(가치판단의...)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가치관에 대해서는 앞으로 천천히 더 공부하기로 하고 오늘은 가치문제에 대해서 공부해 보기로 합시다.

가치에는 일반적으로
기본적 가치, 보편적 가치, 사회적 가치, 개인적 가치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 가치란 ‘사람들이 같이 인식하고 그럴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와 평등 같은 가치를 말합니다.
기본적 가치의 하위가치인
보편적 가치란 모든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정직, 근면과 같은 가치를 말합니다.
사회적 가치란 ‘공공의 이익을 중시’하는 질서와 같은 공익적인 가치요, 개인적 가치란 개인적인 성향을 기준으로 한 기호와 취미와 같은 가치를 말합니다.
상위가치 우선의 원칙에 비추어 개인적 가치보다는 사회적 가치가 보편적 가치보다는 기본적 가치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권력과 폭력은 본질이 폭력이라는 사실과 가치가 뭔지... 논쟁과 갈등문제를 구별하기 위해 사실문제와 가치문제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가치문제는 어떤 가치가 우선적인 가치인가를 앎으로서 판단을 할 수 있는 근거(기준)을 공부했습니다.

이제 정리해 봅시다.
앞에서도 예를 들었지만 모든 폭력은 악일까요? 안중근의사의 예를 들었지만 폭력 중에도 여성을 성폭력하려는 사람을 칼로 찔러 죽였다면 살인자가 될까요? 이 경우는 정당방위라고 합니다. 
폭력 중에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하는 정당방위도 있고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폭력도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모든 폭력이 악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권력 또한 선이 아닙니다. 경찰이 권총을 가지고 변심한 애인을 쏴죽였다면 그것은 권력의 행사가 아니라 폭력의 행사입니다. 대통령이 소수보다 다수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행사해야하는데 소수의 재벌을 위해 세금을 낮춰주고 금리를 줄여주는 정책은 권력의 행사라기 보다 폭력에 가깝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모든 폭력은 악이 아니듯 모든 권력 또한 선이 아닙니다. 비록 유권자의 선택으로 당선된 대통령이기는 하지만 대통령이 특정계급의 이익을 위해 행사하는 권력은 권력의 행사라고 할 수 없습니다. 권력을 가진자가 권력을 행사하지 않고 폭력을 행사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들에게 돌아갑니다.
그래서 탄핵소추라는 장치도 만들어 둔게지요. 우리는 역사적으로 박정희나 전두환처럼 주권자인 민중으로부터 위탁받지 않고 권력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고 이를 저항하는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죽이거나 감옥에 보내는 만행을 자행하기더 했답니다. 

학교를 떠난 지 어언 6년이 가까워 옵니다. 지금까지 아이들과 수업을 하고 싶어 꾸며본 얘기였습니다. 이런 수업을 다시할 수 있을지...?

우리사회는 아직도 권력과 폭력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이유는 학교가 권력의 본질에 대해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권력과 야합한 언론도 이러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민주의식이 없는 민주시민, 역사의식이 없는 서민이 사는 사회는 폭력을 행사하는 독재자와 그들의 비위를 맞추는 세력들이 기고만장할 뿐입니다. 그 결과 선량한 민중은 수탈과 빈곤으로부터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끝)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7.22 05:00



“권력과 폭력은 어떻게 다를까요?”

학생들에게 물었다. 대답을 하는 학생이 없다.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경찰이 차고 있는 몽둥이와 강도가 들고 있는 몽둥이는 똑같은 몽둥이입니다. 그런데 경찰이 차고 있는 몽둥이는 겁이 나지 않는데 강도가 들고 있는 몽둥이는 왜 두려울까요?”

“저요!, 저요!”

저마다 자신 있다는 듯 손을 든다.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그 정도 대답을 못할 리 없지.’ 그 중 한 학생에게 발언권을 줬더니....
“경찰은 몽둥이로 사람을 때려잡지 않지만 강도는 몽둥이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교실이 갑자기 웃음바다가 된다.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또 다른 사람...?” 했더니 아까와는 다르게 손드는 학생이 몇이 없다.

“경찰은 도둑이나 강도가 위협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 몽둥이를 차고 다니지만 강도는 나쁜 짓을 하기 위해 차고 다니다가 반항하면 몽둥이로 사람을 해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저기서 킥킥하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야 임마, 앉아! 아까와 똑같은 소리잖아?”

여기저기서 야유하는 소리가 들린다.

“또 다른 사람?” 했더니 손드는 학생이 없다. 대신 앉아서
‘남자에게 참 좋은데 뭐라고 설명할 방법이 없네...!’

침묵이 흐르는 교실에 TV광고 아저씨 목소리와 똑같은 말로 젊잖게... 학생들이 그게 무슨 소 린지 못 알아들을 리 없다.

폭소가 터져나왔다. 발로 교실바닥을 굴리며 웃는 학생... 손바닥으로 책상을 두드리고 웃는 학생.... 옆에 앉은 친구 등짝을 두들기며 웃는 학생...

옆반에서 수업을 하시던 선생님이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뒷문으로 들여다본다.
겨우 진정시키고 수업을 진행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경찰이 가지고 있는 몽둥이나 강도가 가지고 있는 몽둥이는 다같이 폭력의 도구랍니다. 그런데 이 몽둥이는 경찰이 사용할 수도 있고 강도가 사용할 수도 있
습니다. 경찰이 강도를 잡는 데 몽둥이를 사용했다면 폭력일까요?”


“아닙니다!”


“왜 아니지?”


“...?..?”




“경찰이 행사하든 강도가 행사하든 몽둥이로 사람을 구타했다면 그것은 똑 같은 폭력이 잖아요? 그런데 왜 경찰이 행사한 구타는 폭력이아니라고 하지?”


역시 대답이 없다. 뭐라고 할 말이 입안에서 가득한데 선 듯 나서서 명확하게 답변할 자신이 없다는 태도다.


“같은 폭력이기는 하지만 정당성이 있으면 권력의 행사가 되고 정당성이 없으면 폭력이 되는 거랍니다.”


이제 의문이 풀렸는가 보다. 모두들 알아들었다는 표정이다.

내친김에 마무리를 한다.

“권력과 폭력은 형식은 권력이나 폭력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본질은 폭력'이랍니다.”


이 말을 알아듣는 학생이 몇이나 될지...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볼까요?"
요즈음 김진숙 민주노총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47m 높이의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 위에서 200일 가까이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여기저기서 ‘알아요’ '뉴스에 나왔어요'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김진숙민주노총지도위원을 지지하기 위해 전국에서 ‘희망버스’를 타고 '한진중공업 앞에서 ‘정리해고 철회’를 외치며 농성하는 시위대에게 몽둥이를 휘둘렀다면 권력일까? 폭력일까?”


“권력입니다!”

“아닙니다. 폭력입니다”


대부분 권력의 행사라는데 유독 한 학생이 ‘폭력’이라고 말해 지명해 발언하게 했다,


“너는 왜 폭력의 행사라고 생각하느냐?”


“데모는 나쁩니다. 노동자와 사용자는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합니다!”


너무나 자신 있게 대답한다.


“야, 임마! 김진숙이라는 사람이 평화적으로 해결하자고 요구해도 안 들어주니까 크레인에 위에 올라간 거야!”

“너거 아부지 경찰 아니랄까 봐! 자식, 그만 앉아!”


여기저기서 야유하는 소리가 들린다.

“잠간만 조용해 봐요, 내 생각과 다르면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독선이고 주관적인 판단입니다. 근거를 대고 논리적으로 말해봅시다."

학생들이 잠잠해지자


“그래, 김00, 넌 왜 그렇게 생각한 거지?”


어디서 듣긴 들었는데 논리적으로 설명을 못한다.


..............................
..............................

"세상에는 보이는 것도 있고 보이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현상은 보이지만 본질은 보이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현상은 '경찰의 몽둥이, 강도가 쥔 몽둥이'라는 모습의 차이지만 보이지 않는 '본질이 폭력'이라는 걸 알아야 객관적인 이해가 가능하답니다. 
'현상과 본질'을 이해하는 사람을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상을 보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면 객관적 진실을 알 수 없습니다. 현상을 어디까지나 현상이지 본질이 아닙니다. 부분을 보고 전체라고 판단하면 객관적인 진실을 알 수 없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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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마산 YMCA 시민사업위원회 ‘아침논단’에 강의를 했던 일이 있다. 강의가 끝나고 질의 응답시간에 참가했던 사람 중 한 분이 ‘선생님은 근본주의자’라고 해 웃었던 일이 있다.

근본주의란 ‘성서의 완전한 무오류성과 육체를 가진 예수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 동정녀 탄생, 부활, 대속(구속행위) 등 그리스도교의 근본으로 강조’한 신앙을 일컫는 말이다.

에둘러 말하면 기독교인으로서가 아니라 내기 살아 온 삶이 늘푼수 없이 원칙밖에 모르고 고지식하게 살아 왔다는 뜻이다.

                              <모든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교회나 학교에서 가르쳐 준 대로 사는 사람은 도덕적인 사람, 근본주의자와 같은 삶을 살게 마련이다. 원칙주의자나 근본주의자는 학교에서 말하는 범생이, 고지식한 사람을 일컫는다. 범생이는 칭찬이 아니라 ‘모범생의 낮춤말’이다. 학교에서 모범생이 사회에서 열등생이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학교가 길러낸 범생이는 늘푼수도 없고 민주적이지도 못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경계해야할 인간형은 선입견이나 편견, 아집, 흑백논리, 고정관념, 표리부동...과 같은 비민주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이다. 학교가 길러낸 범생이는 이런 이중인격의 소유자를 길러내는 것은 아닐까?


‘군대갔다오면 사람 된다’는 말이 있다. “철딱서니 없이 망나니 같은 아들이 군대 갔다 오더니 사람 됐더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듣는 얘기다. 여기서 ‘사람이 됐다’는 뜻은 사람으로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도리나 예의를 지킨다는 뜻이다. 왜 그런 얘기가 나올까?

군대에서 인성교육을 잘했다는 뜻인가? 사실은 군 생활에서 고생을 해보니 부모의 심정도 알고 나이도 두서너 살 더 먹어 철이 들었다는 얘긴데, 군대가 사람 만드는 곳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군대생활을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힘 앞에 복종하거나 알아서 기는 폭력에 길들여진 인간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군대만 그럴까? 학교는 어떤가? 학교는 피교육자로 하여금 가치 내면화를 통해 바람직한 인간을 키워내는 곳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아직도 학생들이 등교하는 교문에는 군대 위병소를 방불케 하는 군기(?)가 시퍼렇게 살아 있다.

교문에는 복장이나 두발이 교칙을 위반했거나 지각생을 단속하는 곳으로 서슬 퍼렇게 남아 있다. 똑같은 옷을 입히고 똑같은 교과서로 똑같은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학교. 교칙을 정하고 위반하면 체벌이나 벌점으로 규제하고 규칙을 자주 위반하면 문제아로 취급하는 학교는 민주적인 학교도 행복을 배우는 학교도 아니다.

교는 규칙을 잘 지키는 학생을 모범생이라고 한다. 학교가 기르고자 하는 인간상, 도덕적인 사람 은 어떤 모습일까? 학생들을 통제하고 단속하는 규칙이니 윤리니 하는 규범이란 무엇일까? 도덕(道德, morality)이란 원래 ‘자연환경의 특성에 순응하고 각기 그 집단과 더불어 생활하여 온 인간이 한 구성원으로서 살아간 방식과 습속’이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도덕은 ‘구성원들이 양심, 사회적 여론, 관습 따위에 비추어 스스로 마땅히 지켜야 할 행동 준칙이나 규범’이 됐다. 이러한 도덕은 ‘계급사회의 성립과 함께 정치지배의 유력한 수단’으로 ‘법이 국가권력을 지배하고, 도덕이 보편적 원리를 지배하는 영역’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학교는 왜 ‘행복한 개인’ 보다 ‘도덕적인 인간’을 양성하는가? 사전에서 풀이한 것처럼 도덕적인 사람은 내가 아닌 사회구성원으로서 ‘인간 상호 관계’나 ‘규범’을 잘 지키는 인간. 즉 피교육자들로 하여금 ‘도덕적인 인간’을 길러내는 곳이 됐다. 도덕이란 개인의 삶을 윤택하게 하거나 행복하게 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다. 도덕이나 법은 통치계급이 자기네들이 필요해 만든 ‘질서’라는 것을 유지하기 위해 민중들에게 강제규범으로 만들어놓은 이데올로기다.

도덕이나 법이 없었던 사회는 구성원들이 살기 위험한 곳이었을까?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법을 모르고 산다. ‘법이 없으면 법망을 피해 사람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어쩔 것인가?’라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법이 문제가 아니라 제도가 문제다. 돈이나 재화가 사람의 인격보다 소중한 사회에서는 도덕이나 법망을 피해 얼마든지 나쁜 짓을 할 수 있다. 그런 식의 법이라면 법전을 사람 수보다 더 많이 만들어도 법을 어기는 사람이 안 나오라는 보장이 없다.


학교가 기르고자 하는 인간상은 ‘정직한 인간’, ‘성실한 인간’, ‘근면한 인간’ 상이다. 정직, 성실, 근면이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실천할 덕목이 아니다. 학교는 개인이 행복한 삶을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나 사회가 필요한 인간을 길러내고 있는 것이다. 학교가 진정 인격적인 인간, 행복한 삶을 살아 갈 수 있는 안내자역할을 하겠다면 통제와 단속으로 길들이는 강압적인 교육을 중단해야한다. 학교가 ‘행복한 인간, 정의롭고 민주적인 인간’을 길러내지 못하고 통제와 단속으로 복종을 길들이고 있다는 것은 국가나 자본이 필요한 인간을 길러 내고 있다는 증거다.


로마시대 도덕은 ‘법과 정의’였고, 박정희, 전두환 군사정권시대 도덕은 ‘법과 질서’였다. 오늘날 억울한 일을 당해 시위라도 벌이면 경찰은 어김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처벌하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법과 질서란 개인의 행복을 위한 덕목이 아니라 지배집단이 피지배자인 민중을 통치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수단이다. 인도의 카스트제도나 신라시대 골품제며 두품제가 그렇고 봉건제 사회의 반상제도가 그렇다.

조선시대는 삼강오륜이 도덕이요,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왕의 충성스러운 신민을 길러내기 위한 질서와 복종이 도덕이다. 역대 독재정권이나 군사정권은 질서가 도덕이다. 학교가 왜 교칙을 강조하고 통제와 단속으로 학생들을 지도하는 지 알만하지 않은가? ‘학교는 불행한가?’의 저자 전성은씨는
‘질서는 복종’이라고 정의한다. 자유보다 질서를 강요하는 학교는 민주주의 학교가 아니다. 자율보다 질서를 강조하는 정부는 민주정부가 아니라 독재정부다. 통제와 단속이 아닌 자율과 인격을 존중하는 학교, 사랑과 평등을 가르치지 않는 학교에는 인격적인 인간양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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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2008.12.22 13:21



“여성과 남성은 사람이라는 면에서 같지만 현상으로는 남녀로 보이듯, 권력과 폭력도 본질적으로는 같은 것이다. 다만 어떻게 행사되는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뿐이다.” 정치수업 중에 이런 얘기를 자주 했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는 학생들은 많지 않아 보였다. 18일 한미FTA국회상정을 과정에서 나타난 여야의 모습을 보면 권력의 본질을 알 수 있다. 입만 열면 ‘동포여!, 애국이여!’하면서 한미 FTA가 국가와 민족에 재앙을 가져 올 것이라는 걸 알 만한사람들은 다 안다. 그런 한미FTA를 백주 대낮에 문을 잠그고 통과시키는 모습을 보면 국민의 대표로서 또 이성적인 인간으로서 양식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전교조 소속 조합원으로 구성된 몸짓패가 집회 속에서 율동을 하고 있다.

군인이든 경찰이든 재벌이든 혹은 정치인이든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아무리 고상한 외피를 쓰더라도 언젠가는 그 본질이나 속성은 나타나기 마련이다. 평소에는 늘 인자한 웃음으로 혹은 관대한 지성인으로 비치지만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일 경우 예외없이 속성을 드러내고 만다. 12·18사태에서 보듯 정당이나 사적 이익 앞에 최소한의 양식마저 포기한다면 권력의 본질이 적나라한 추태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평소에는 권력의 본질이 보이지 않는다. 불의한 사이비지성인이나 타락한 언론의 비호를 받을 경우 폭력이 정당성의 외피를 입고 서민들의 지지를 받아왔던 것이다.

12·18국회파동을 보면서 학교에서 왜 시비를 가리거나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간을 양성하지 않은가를 알 수 있다. 역사적으로 불의한 권력이 자신의 본질을 볼 수 있는 국민을 양성했을 경우 자신이 설 곳이 없어진다는 것은 너무나 명약관하한 일이다. 예를 들어 광주시민들을 학살하고 권력을 강탈한 전두환 무리들을 보자. 언론이 살아 있거나 지식인들이 침묵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전두환무리들은 역적으로 단두대에 서야 한다. 그러나 불의한 권력을 비호해 준 대가로 나름대로 나눠먹기에 참여한 세력들이 존재한다면 폭력이 권력으로 둔갑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시비를 가릴 수 없도록 양성한 교육의 덕분에 살인자일당은 전직대통령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12·18파동도 예외가 아니다. 언론들은 한미 FTA가 국회를 통과했을 때 불어 닥칠 국민들의 고통이나 국익에 대해서는 사실을 사실대로 적나라하게 보도한 언론은 많지 않다. 아니 오히려 불의의 편에 서서 반사이익을 챙기는데 이력이 난 세력들은 영악스럽게 어느 쪽에 서야 이익이 된다는 걸 동물적 본능적으로 인지한다. 더구나 미국식 가치관으로 무장된 친미파들은 미국이 구세주요, 미국에 의존하는 것이 살아남는 길이라는 걸 알고 미국보다 더 미국적인 사고와 판단으로 미국을 봅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양상은 분야별로 나타나지만 특히 교육부문에서는 반민중적인 추악한 마취제 공법을 동원된다.

‘개인이 출세하는 게 성공이다.’ 교육의 이데올로기는 이러한 신화를 현실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를 의도적이고 조직적인 투입, 노력해 왔다. 바보가 아니라면 상식적으로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식도 필요하고 양심도 필요하다. ‘한라산의 높이가 얼만가“ 또는 ’우리나라 연간 예산총액이 얼마인가?‘라는 따위의 지식을 암기하는 건 관념이다. 이러한 관ㄴ며적 지식이 금과옥조로 대접받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정보화사회에서는 전자사전 하나면 수십 수백만 단편적인 지식은 언제든지 꺼내 볼 수 있어 관념적 지식은 이미 박물관에 갈 때가 지났다.

거창하게 공자, 맹자까지 거론할 생각은 없다. 사람은 사람다워야 한다. 그러나 학교가 나의 이익을 위해 남의 목에 칼을 꼽아도 된다는 식의 막가파식 사고를 가진 인간을 길러낸다면 그건 교육기관이라 할 수 없다. 사람이라면 사람으로서 부끄러워하고 고마워하고 미안해할 줄은 알아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 중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게 문제다. 결혼 상대를 찾는데도 그 사람의 인품이나 가치관이 아니라 ‘어느 대학을 나왔는가? 무슨 학위를 가졌는가? 작장이나 소득이 얼마인가?’ 그게 기준이다.

내 부모 내 민족 우리문화가 뭐 대수냐? 나에게 이익이 된다면 양심을 포기하든 변절을 하든, 민족을 배신하든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다. 사람되기를 가르쳐 주지 않고 교육이 무너졌다고 방정을 떠는 언론들.... 개 눈에 ×밖에 안 보인다고 제 수준에서 판단한 것이다. ‘사람은 사회적인 존재다.’ 너무나 상식적인 명제조차 부인하고 사회적인 존재로 키우지 않고 어떻게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가?

단 하나. ‘모든 것은 변화하고 서로 연관되어 있다.’ 변증법의 기본원리만 가르쳐 준다면 사람들이(지식인이나 정치인들이...) 저렇게 본색을 드러내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이기를 포기하고도 뻔뻔스럽게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정치인들을 보면 권력의 본질뿐만 아니라 사악한 인간의 본질까지 보인다. 잠시 후면 드러날 거짓말을 입술에 침도 바르지 않고 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철면피다. 물론 역사의식(역사에 대한 부채의식)이 없으니 그렇겠지만 최소한 국민들은 저희들보다 무지와 폭거에 대한 시비를 가를 줄 아는 판단럭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저런 후안무치한 짓을 하지는 못할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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