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새 학기가 시작됩니다.

 

1학년에 처음 입학하는 입문기 초등학생들... 또 한 학년씩 올라가는 재학생들... 새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기대와 설래 임으로 다가 오곤 합니다. ‘올해는 우리 아이 담임이 어떤 사람이 될까? 남자선생님일까, 아니면 여선생님일까? 자상한 분일까, 아니면 무뚝뚝한 분일까? 이런 기대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학부모들도 한결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새 학기에는 새로운 맘으로 학교생활이 즐겁고 행복한 생활이 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학부모와 학생, 모두의 꿈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서 부모님들은 무슨 생각을 하실까요? 우리아이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 ?  일등짜리 아이...? 순종하는아이...? 똑똑한 아이....? 어떤 아이로 자라기를 바랄까요?

 

첫째, 점수와 학력을 혼동(混同)하지는 마십시오!

 

사람의 심리란 참 묘한 데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받아 오면 받아쓰기 점수 100점이 뭐 그리 대단해서 한번 경쟁에 매몰되기 시작하면 빠져나오기 어렵습니다. 00점만 받아오면.. 일등만하면... 이렇게 경쟁하다보면 멀쩡한 부모들이 자식바보가 되는 건 신간문젭니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는 걸 싫어하는 부모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공부란 무엇일까요?

 

시험을 칠 때마다 100점을 받는 아이.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 보십시오. 그 100점이라는 수치는 숫자로 표시된 성취수준으로 문제의 난이도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또 일등이라는 것도 상대적이어서 전체의 수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점수란 기억력이나 계산능력 혹은 지식, 이해, 태도 등과 같은 학습의 결과에 대한 평가를 나타내는 숫자에 불과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숫자로 표현되는 평가는 지적인 영역이지 정의적인 영역이나 체력이 아닙니다. 학생들의 점수는 지적인 능력과 정의적인 능력과 신체적인 능력을 총체적으로 표현한 평가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점수에 목매는 어머니들... 공부만 잘하면, 100점만 받아 오면 모든 게 용서되는 그런 사랑으로 아이들을 잘 못된 길로 이끌지는 말아야합니다.

 

 

 

결과를 중시하는 교육은 부모들로 하여금 사교육, 즉 선행학습을 시켜 학생들을 지적탐구에 대한 과정이나 호기심을 말살하는 교육위기의 주범이 되게 합니다. 경쟁교육은 정의적인 교육, 정서교육이나 신체적으로 건강한 생활습관을 빼앗아가는 주범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그래서 소질이나 특기도 망각하고 국어, 영어, 수학 점수로 서열을 매겨 교육을 황폐화시키는 병폐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제발 정답 좀 가르쳐 주지 마십시오!

 

우리교육의 맹점 중 가장 큰 오류는 결과만 중시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부모님들 과거 학창시절을 한번 떠 올려 보십시오, 2×1=2, 2×2=4, 2×3=6, 2×4=6.... 이렇게 구구단을 달달 외웠던 기억이 나지 않으세요? 2×1이 왜 2가 되는지, 2×2는 왜 4가 되는지 모르고 달달 외워서 답을 말하면 우수한 학생이 됐던 기억을 말입니다.

 

수학이란 개념을 이해해야 하는 대표적인 학문입니다. 2라는 건 개념이지 실체가 아닙니다. 그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과정이 중요합니다. 개념을 이해하는과정은 어렵지만 개념만 이해하면 그 뒤의 문제는 저절로 줄줄 풀립니다. 어디 수학만 그렇습니까? 사회과목 또한 암기과목이 아니라는 건 다 아는 얘깁니다.

 

원둘레를 구하는 방법은 ‘지름 X 3.14’라고 외웠지요? 만약 지름이 10cm라면 10X3.14=31.4라는 답이 나오지요. 답은 알지만 왜 그게 답이 됐는지 설명하라면 못하지요. 독일의 발도로프 교육방법이 생각납니다.

 

입문기 아이들은 야외로 데리고 나가 자기네들끼리 풀어놓는다더군요. 스스로 관찰하고 추론하고 대화를 통해 지식을 공유하고... 자연친화적인 관계, 자연과 인간의 관계, 사람과 사람의 관계, 그래서 스스로 자기를 발견하도록 놓아두는 교육.... 우리는 어떻습니까? 일정한 틀 안에 들어오지 않으면 문제아 취급하는 교육, 교칙이나 생활지도규정이라는 걸 만들고 교복이니 두발이니... 그런 틀을 만들어 놓고 그 틀 안에 들어오지 않으면 문제아가 되는.... 그런데 유럽의 선진국에서는 답이 아니라 과정을 중시하는.... 그런 교육을 한다지요?

 

 

결과란 과정의 결실입니다. 물론 정답이 좋긴 하지만 과정이 없는 결실은 있을 수 없습니다. 어느날의 행복을 위해 모든 날의 희생하는 삶이 어리석듯이 결과만 중시하는 교육은 올바른 교육이 아닙니다.

 

답을 가르쳐 주면 좋을 것 같지만 사실은 아이들에게 창의성을 말살하는 무서운 죄는 짓게 되는 셈이지요. 우리교육도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아직도 수학문제까지 외우는 입시생들을 보면 답만 가르쳐 주는 경쟁교육이 청소년들의 창의성을 말살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셋째, 학교교육에 함께 참여 하십시오!

 

학생과 학부모, 교사를 교육의 3주체라고 하지요? 아무리 우수한 교사라도 학생들이 선행학습으로 교사를 외면하면 좋은 교육이란 불가능합니다. 좋은 교육이란 지식만 주입해 일, 이등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이 자라오면서 가지고 있는 개성이나 장단점을 교사와 함께 고민하지 않는다면 교사의 할 일이란 지식주입밖에 할 수 없습니다.

 

한 학급 3~40명이 모여있는 학급에서 일일이 학생 개인의 성격이나 장단점을 발견해 안내하고 이끌어 주기란 교사의 역량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담임선생님과 혹은 교과담임과 만나 자녀의 희망과 기대 그리고 요구사항을 확실히 전해야 합니다. 담임선생님을 만나기 부끄럽다는 그런 얘기는 하지 마십시오. 교사란 학부모들이 세금을 내 고용한 일꾼입니다. 빈손으로 당당하게 가 만나 요구하고 상담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학교교육에 함께하시려면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하십시오. 학부모위원으로 참여해 학교급식이나 예산 그리고 운영에 관련된 모든 문제에 의견을 피력하고 학교를 바꿔나가는데 동참해야합니다. 학교는 이제 많이 열려 있습니다. 학부모들이 참여하지 않으므로 학교는 그 만큼 진보의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자녀가 귀하다면 학교매점에 아이들의 건강을 해치는 식품첨가물 투성이나 고카페인 상품을 판매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또 매일같이 먹는 학교급식의 식자재가 아이들의 건강을 해치거나 비만을 불러오는 식자재는 아닌지, 인체에 유해한 수입품이나 GMO식자재는 아닌지 학부모들이 지켜내야 합니다. 내가 낸 소중한 세금이 학교에서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지 예산 집행을 감시하는 건 이제 학교운영위원이 되어 학교를 바꿀 수 있는 건 학부모의 몫입니다.

 

개인의 삶이란 그 개인의 수준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학교의 수준도 그 학교의 구성원 즉 학생과 학부모, 교사의 주준을 능가하지 못합니다. 좋은 학교는 이제 구성원들이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성적에 매몰돼 우이아이만 일등이기를 바라는 학부모와 자기 제자 출세시켜주는 걸 좋은 교육이라고 착각하는 교사나 일류학교가 목표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모여 있는 학교는 어떤 학교가 될 것인지는 뻔합니다. 좋은 학교는 그 구성원들이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점수에만 열을 올리는 애들을 가르치느라 '진정한 교육'이라는 것은 할 수 없는 '무너진 교실'이라 교사는 허탈하다 하십니까?

 

그렇다면 그 점수조차 아무런 관심이 없는 아이들이 그득한 교실은 어찌해야 할까요?

 

지식이든 삶의 지혜이든 배울 생각은 전혀 없고, 오로지 놀 생각만 있는 아이들. 삶의 지혜나 도리 같은 것을 이야기하면 비웃기 바쁘고, 하다못해 교과지식 하나라도 가르치려 하면 이런 거 왜 배우냐며 빈정거리는 애들을 앞에 놓고 있노라면 '진정한 교육'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사치입니다.

 

점수에 목숨 걸고 점수 때문에라도 하나라도 더 들으려 집중하는 애들을 가르쳐봤으면 좋겠습니다.

 

며칠 전 제 블로그에 12년 전에 오마이뉴스에 썼던 ‘무너지는 교실, 교사는 허탈하다’는 글을 오려 오늘날 교육과 무엇이 달라졌느냐고 했더니 ‘어느 교사’라는 네티즌의 쓴 댓글이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점수 때문이라도 좋으니 공부하고 싶은 아이 한 번 가르치는 게 소원이라 했을까? 학교가 이 지경이 된 게 누구의 죄일까? 교사, 학생, 학부모, 교장을 비롯한 교육관료 정치인... 들 중 무너진 교육의 책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누굴까?

 

교육을 살린다고 난리다. 너도 나도 ‘내가 적임자’라며... 내가 대통령이 되면 교육을 살릴 수 있다고 화려한 공약을 내놓고 있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무너진 교육도 학교폭력문제도 공교육정상화도 문제없다며 교육으로 가난의 대물림을 끊고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부담을 없애겠다고 기염(氣焰)을 토하고 있다. 그런데 뭐가 좀 이상하다. 이런 얘기는 선거철만 되면 자주 듣던 얘기가 아닌가?

 

 

선거철만 되면 화려하게 등장했다가 선거가 끝나면 내가 언제 그런 말 했느냐는 듯 시치미를 떼고 모르쇠다. 그런데 정말 이해 못할 일은 그런 약속을 했던 사람이 소속된 정당 사람이 5년 전에 했던 말을 똑 같이 되풀이 하고 있다. 할 수 있었으면 임기 안에 하지 못하고 이제 와서 또 할 수 있다고 기고만장일까? 정치인의 거짓말, 양치기 소년 말에 속지 말아야 할 텐데 순진한 유권자들은 그런 말에 또 귀가 솔깃해진다.

 

입으로 못하는 게 없는 사람들! 교실에 가서 수업을 하는 모습을 한번이라도 본 일이 있을까? 유명인사가 출두(?)한다고 예고하지도 말고 방송국 카메라 대동해 준비된 쇼(?)를 보러 가지 말고, 소문 없이 찾아가서 한 시간만 이 허탈한 교실을 보고 난 후에도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을까?

 

상황 1. 씨×! 학교 안 다니면 그만 아닙니까?

 

책가방도 버려 둔 채 달아나는 학생을 따라 가 보지만 붙잡아 교실에 앉혀놔도 마음이 떠난 아이를 잡아 둘 재간이 없다. 20평도 안 되는 교실에 앉아 있는 학생과 교사와의 거리는 끝간데 없이 멀어만 진다.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학생들의 수업태도를 보면서 "힘들어서 못해 먹겠다"는 푸념을 하는 교사들이 늘어간다.... 최근 서울의 ㅁ중 김모교사(31·여)는 지난달 말 5교시 수업시간에 잠자는 학생을 깨웠다가 봉변을 당했다.

 

여러 번 채근한 뒤에야 고개를 겨우 든 남학생은 한동안 대꾸도 하지 않다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씨…』하고 내뱉더니 책상을 차고 일어났다. 한참 꾸지람을 들은 학생은 『교실 뒤쪽에 서 있으라』는 말에 벽과 문을 잇달아 발로 차면서 수업을 방해했다.

 

김교사는 『체벌을 하려 해도 중학생이면 덩치가 클 대로 큰데다 「왜 그래요」라며 달려들 것만 같아 그만두었다』고 털어놨다.(2000년 6월 경남도민일보에 필자가 썼던 "무너지는 교실, 좌절하는 교사!" 중 일부)

 

상황 2. 수업 시작 벨이 울리면 교사는 교과서와 수업 재료를 챙겨들고 교실로 향한다.

 

하지만 골마루엔 아직도 장난치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넘친다. 벨이 울렸는데도 교실에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장난 삼매경'에 빠지면 그럴 수도 있겠지 하며 교실 문을 연다.

 

책상 위를 뛰어 다니는 아이, 사물함 위에 드러누워 자는 아이, 교탁 주변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숨바꼭질 하는 아이. 참으로 다양한 아이들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창문이 꽁꽁 닫혀 먼지가 자욱한 가운데 선풍기와 에어컨으로 교실 열기를 식혀낸다.(2012년 7월 12일 경남도민일보 '사천 중학교 '멘붕 스쿨' 어떡하지...?'에서)

 

위의 사례를 보면 12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그 때는 실업계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일어나던 일이 지금은 중학교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게 다르다면 다를까? 학교는 멘붕상태다. 아니 멘붕학교다. 2009년 2963명이던 명예퇴직교사가 2010년에는 3660명, 2011년 4217명으로 계속 늘어 올해에는 지난 2월 신청자만 3517명에 이른다.

 

교사가 아이들을 감당 못해 떠나는 학교. 어쩌다 학교가 이 지경이 됐을까? 학교를 살리겠다던 정치인들은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으며 교육을 살리겠다고 기고만장하던 대통령, 교육감들은 다 어디 갔을까? 이 땅의 정치인들, 교육학자들, 교사, 학부모 교육관료들...

 

교육을 살리겠다는 사람들, ‘시험점수 때문이라도 좋으니 공부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을 한 번 가르쳐 볼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는 이 현장 교사의 처절한 목소리는 왜 들리지 않을까?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김용택선생님이시죠?”

 

“그런데요, 누구신지요?”

 

“저기억하실런지 모르겠습니다만. 7~8년 전에 OO고등학교 같이 근무했던 이××입니다”

 

“아~! 선생님이 웬 일로 제게 전화를 다하시고...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예, 선생님을 꼭 만나 뵈어야 할 일이 있어서요”

 

“저를요, 전화를 하시면 안 될 얘깁니까?”

 

“예 꼭 만나 뵙고 말씀드릴게 있어서요, 바쁘시겠지만 시간을 꼭 좀 내주십시오”

 

오래 전 얘기다. 전임지에서 특별히 친하게 지낸지도 않았던 선생님이다. 다인구 학교에서는 같은 학교에 근무해도 같은 과목, 같은 학년이 아니면 지나치면서 인사나 할 정도다. 나이차이도 있었지만 여선생님이라 특별히 가깝게 지낼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선생님이 좀 보자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냐며 전화로 말하면 안 되겠느냐고 했지만 기어코 저녁 약속을 하고 식당에서 마주 앉았다.

 

 

남편이 대학에 근무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교육자 집안에서 공부 잘하는 아들 하나 딸 하나... 남부러울 게 없는 행복한 가정이었다. 그런데 그 선생님 아들이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 다닌다고 했다. 현재 1학년 A반 반장이라고 했다. 공부도 잘하고 반장까지 맡아하는데... 중학교까지 반에서 줄곧 1, 2등을 도맡아놓고 했던 애란다. 고등학교에 들어오고 나서 차츰 성적이 떨어져 10등, 15등으로 밀려나더니 2학기 중간고사를 치고 나서는 아예 성적표조차 감춰놓고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말하기가 무척 힘들었던 모양이다. 아들의 성적에 대해 얘기하는 게 자존심 상해 쉽지 않은 듯 했다. 이성문제도 아니라고 했다. 남편에게 말도 못하고 혼자서 끙끙 앓다, 내가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 근무한다는 걸 알고 어렵게 전화를 한 것이다. 아들의 성적이 떨어지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단다.

 

놓으면 꺼질 새라, 불면 날아갈 새라 하자는 것 갖고 싶은 것 원하는 대로 다 해줬다. 엄마의 그런 사랑은 성민이(가명)로 하여금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능력을 앗아갔다. 공부도 시간표를 짜준대로 학원이며 학교를 개미쳇바퀴 돌듯 오갔다. 헛말로도 반항 한번 할 줄 모르는 모범생(?)이었다고 한다. 덩치는 훤칠하게 컸지만 마음은 자라지 못하고 엄마의 결정에 따라 움직이는 나약한 마마보이로 자랐다.

 

 

성민이가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어머니는 안절부절했다 그런 어머니의 눈치를 보고 아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안절부절했다. 학교도 가기 싫어 할뿐만 아니라 시험을 치는 날은 배가 아파 시험 도중에 병원으로 실려 가야 했다. 집안의 분위기가 어떨지 짐작이 가고 남았다.

 

나를 찿아 온 이유는 시험을 망쳤으니 병원에 간 날 시험성적을 구제할 수 있는 길이 없느냐는 것이다. 시험을 치지 않았으면 지난 번 친 시험 점수의 몇 %를 받을 수 있지만 중간에 병원에 갔으니 0점 처리가 되기 때문이다. 

 

이럴 수가....! 엄마라는 사람이, 아이 건강보다 점수걱정이라니... 이대로 가다가는 SKY는 물론 서울에 있는 대학에 보내기도 힘들겠다는 것이다. 차라리 만나지 말았으면 좋을 법한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운 얘길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이 차이도 있고 진정으로 아이를 위하는 길이 어떤 것인지 바른대로 말해주는 게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민이가 이렇게 된 건 엄마 책임이 더 크네요! 지금은 점수가 아니라 아들의 정서가 묹입니다. 이렇게 아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면 무슨 일이 생길지...”

 

성민이 엄마는 내가 자기 말에 동조해 시험을 치다 병원에 간 날 점수 걱정을 해줄 줄 알았던 모양이다. 내친김에 할 말을 다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말을 이어갔다.

 

“잘 아시겠지만 성민이는 지금 한계상황까지 와 있습니다. 아들의 인내심이 어디까지라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성민이가... 잘못되면....성민이 엄마의 생각부터 바꿔야 합니다!”

 

 

단호하게 말하고 끊었다. 더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성적이나 체면이 아니라 아들의 건강을 걱정한다면 당연히 자기성찰의 태도를 보여야 옳다. 그런데 선생님은 아들에 대한 지나친 기대, 자신의 사회적 체면, 남편이 알게 될까 그게 두렵고 무서은 것이다. 아들을 여기서 포기하면 자신이 믿고 기대했던 모든 것이 한꺼번에 다 무너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그 후 성민이와 여러 차례 상담을 했지만 엄마의 가정교육에 순치된 아들은 담임도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영향력에는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성민이 담임과 상담도 하고 할 수 있는 여러가지 시도를 다 해봤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결국 성훈이 엄마는 학년말 고사를 다 보지 못하고 자퇴를 시키고 말았다.

 

상대방이 싫다는 데 일방적으로 좋다고 속을 다 보이는 사람을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 진정으로 상대방을 사랑한다면 좋은 듯 안 좋은 듯, 적당히 애태우며 다가가는 게 성공의 비결이다. 상대방의 기분도 모르고 속을 다 드러내고 일방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은 상대방을 싫증나게 하는 어리석거나 모자라는 사람이다.

 

연인간의 사랑뿐만 아니다. 부부간의 사랑도, 부모의 자녀 사랑도 속을 다 보여주는 건 지혜롭지 못하다. 조상들의 자녀 사랑 법을 보자. 그들이라고 자식사랑이 요즘 사람과 다를 리 없겠지만 겉으로 드러내놓고 사랑표현을 하지 않았다. 아니 어른 들 앞에서 혹은 남 앞에서 그런 표현을 했다가는 여지없이 푼수취급을 받았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쁘다고 했던가? 세상에 자기 자식이 밉게 보이는 부모가 있을까? 밉기는커녕 자식을 키우다보면 가끔 '내 자식이 천재가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아무리 미운 짓을 해도 시간이 지나면 잊히게 되고 하는 짓이 하나같이 귀엽고 예쁘다. 사랑에 취하면 사물이 객관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더니... 그런 자식을 옛날 사람들은 겉으로 표현하지 않고 절재해가며 자식을 매로 키웠던 것이다.

 

사랑은 독이기도 하고 약이기도 하다. 잘못된 사랑은 자식을 망친다. 요즈음 젊은 분들 중에는 그런 사람들을 가끔 본다. 자식이 하자는 데로, 좋다는 건 뭐든지 다 해주고 행여나 남에게 뒤질 새라 좋다는 유치원이며 학원이며 고액과외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무슨 빚을 내서라도 자식을 위해서라면 기어코 하고 만다. 내 자식이니까, 내 욕심대로 키우겠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부모 때문에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힘들어 하고 지쳐가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랑은 다 선(善)이 아니다.

 

- 이미지 출처 :다음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라디오 선을 목에 휘감은 채 끌려 다니면서 (과자) 부스러기를 주워 먹어야 했고, 물로 고문당하고, 단소로 맞아가며 친구들의 온갖 심부름과 숙제를 대신해야했다.’

‘수업시간에는 공부하지 말고, 시험문제 다 찍고, 돈벌라 하고, 물로 고문하고, 모욕을 하고, 단소로 때리고, 우리가족을 욕하고, 문제집을 공부 못하도록 다 가져가고, 학교에서도 몰래 때리고, 온갖 심부름과 숙제를 시키는 등 그런 짓을 했어요.’

인터넷을 떠돌고 있는 자살한 학생의 유서의 일부다. 어쩌다 학교가 이 지경이 됐을까? 이런 자살이나 왕따 기사에 접하면 어떤 사람들은 ‘점수가 나쁘다고 자살한다면 우리나라에서 살아남을 학생이 몇 명이나 되겠어?“ 이렇게 자살한 연약한 의지를 탓하거나 ”폭력을 하는 가해자를 잡아 영원히 감옥에서 내놓지 말아야 한다’며 흥분하는 사람이 있다. 오늘은 학생 자살이나 왕따문제를 통해 교육문제를 생각하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너무나 상식적인 얘기. 우리나라 사람들치고 교육문제에 관한 한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정작 근본적인 문제, 교육이 무엇인지를 물어 보면 예상 외로 정답을 말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혹 교육을 시험점수로 생각하시는 분은 없을까요? 실제로 100점을 받아오면 ‘우리 아들최고...’라며 칭찬해 주시는 부모들이 많지요. 100점이란 학교교육이 지향하는 목표를 달성했다는 뜻일까요?

난이도라는 게 있습니다. 교과담당선생님이 자신이 가르치는 교과목의 점수가 평균 3~40점이 나오면 창피를 당하니까 평균점수를 7~80점 수준이 나오도록 조정할 수 있다는 얘기지요. 이렇게 어려운 수준을 조절하는 난이도를 고려한 점수가 교육목표를 달성한 수치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입니다. 출제자가 학생들의 인지도를 파악하기 위해 나타낸 수치 즉 평가 점수를 사회학에서는 ‘개념의 조작적정의’라고 한답니다. 개념 즉 ‘공부를 썩 잘 한다’를 ‘100’이라는 수자로 혹은 ‘보통이다’라는 표현을 ‘50’ 이렇게 나타내는 걸 ‘개념의 조작적 정의’라고 하지요.



옛날에는 교과점수는 ‘수우미양가..’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만 100점, 95점, 87점.. 이렇게 점수급간을 1점 단위로 차등화시켜 수자로 나타낼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100이라는 수치와 99라는 수치가 담고 있는 의미, 1등이라는 의미와 2등이라는 의미가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요? 교육이란 지적인 측면 정의적인 측면 그리고 체력적인 측면 등 여러 영역이 있습니다. 그런데 수치로 환산된 점수라는 건 지식교과일 때만 가능합니다. ‘인내심이 많다. 교우관계가 좋다. 성실하고 책임감이 있다...’ 이런 행동발달의 평가는 어떻게 할까요?

인성의 발달을 수치로 평가할 수 있을까요?
 
인내심이 90점, 사회성이 87점, 책임감이 85점... 이렇게... 옛날에는 행동발달을 ‘가나다’로 평가해 성적표나 생활기록부에 기록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평가를 하기 어려우니까 학생의 교과 성적이 좋으면 ‘가가가...’로 교과점수가 나쁘면 ‘다다다...’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평가조차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만 그걸 관심 있게 지켜보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오직 100점이냐, 90점이냐, 1등이냐, 2등이냐? 그것만이 관심의 대상입니다.


‘점수가 나쁘면 인성도 나쁘다?’ 정말 그럴까요? 아마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그 반대라고 하는 학생들이 더 많을지 모르겠습니다. 하긴 그런 행동발달이라는 평가는 관심의 대상도 아니었기에 지금은 사라지고 없습니다만 성적만능주의는 점수를 교육, 혹은 인성을 포함한 교육의 결과라고 단정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학교폭력이 발생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원숭이나 늑대가 사람을 키우면 사람이 될까요? 원숭이가 될까요? 실제로 프랑스의 아비뇽동굴에서 발견된 늑대소년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전혀 사람의 행동을 하지 않는 늑대였습니다. 잃어버린 아이가 늑대 젖을 먹고 사람이 아닌 늑대화된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다워지는 것을 사회학에서는 ‘사회화’라고 합니다.

사회화는 어디서 이루어지는가?

사람이 사람다워지는 교육, 즉 사회화는 어디서 이루어질까요? 물론 가정과 학교와 그리고 사회에서 학습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사회화가 가정과 학교, 그리고 사회에서 정말 이루어지고 있을까요? 물론 학교에서는 의도적인 교육 즉 커리큘럼을 통해서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교육을 하는 곳이요, 가정과 사회는 의도적인 교육기관이 아니라 무의도적인 교육을 하는 곳이라고 보는 게 옳습니다.


오늘날 가정에서 교육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요? 물론 경제력이 있고 부모의 교육관에 따라 양질의 가정교육이 가능한 가정도 없지 않습니다. 그런데 학교와 학원 그리고 새벽같이 학교에 가 밤늦게라야 돌아오는 가정에서 교육이 가능하다고 믿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교육은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학교에만 다니면 사람다운 사람,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게지요. 100점만 받으면 인성도 좋아지고 출세(?)도 하고....

결론적으로 말하면 학교교육은 교육법이나 학교교육목표를 달성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상급학교진학을 위한 점수따기 경쟁장이 된 지 오래입니다. 교육이 없는 학교! 그런 학교에 학교폭력이며 왕따가 나오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더불어 사는법을 가르쳐 주지 않고 상대방이 무너져야 내가 살아남는 승자제일주의 교육현장에 어떻게 건강한 아이들이 자랄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사회는 어떨까요? 오늘날 우리사회는 교육이 아니라 건강한 아이들을 황폐화시키는 장이 된 지 오랩니다. 멀리 볼 것도 없이 학교 앞 문방구나 만화방을 한번 보십시오. PC방이며 공공기관 그 어디에 내일의 주인공이 될 학생들을 배려하고 안내하는 그런 교육의 장이 마련해 둔 곳이 있습니까? 교육적인 환경을 갖추고 있는 곳을 찾아 볼 수 있습니까? 돈만 벌 수 있다면 아이들을 돈벌이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상업주의의가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계속)


이 기사는 충남도청인터넷신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http://news.chungnam.net/news/articleView.html?idxno=76141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