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혹시 자기 주변에 특별한 이해관계도 없이 미운사람이 있나요?”

 

수업에 들어가 학생들에게 잠도 깨울 겸 생뚱맞은 질문을 했더니 상당수의 학생들이 그런 사람이 있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자신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누굴까?”

라고 다시 물었다.

 

“자기 자신이요”

 

상당수의 학생들이 자기가 자기 자신을 가장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심리학자들의 설명을 빌리면 특별한 이해관계도 없이 ‘괜히 미운 사람’이란 ‘자기 자신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람, 즉 자신의 약점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을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 자기 자신이라는 답은 옳지 않다.

소크라테스는 ‘네 자신을 알라’고 설파했지만 세상에서 진정 ‘나’를 알고 살아가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자의식’은 언제 생길까?

 

자기 자신에 대하여 아는 일 즉 ‘자의식, 혹은 ’자아의식‘이란 ‘유년기에는 형성되지 않는다’고 한다. R.데카르트는 자의식을 ‘자신을 가치 있는 것으로서 의식하는 것으로 자각(自覺)이라고 풀이했다. 참다운 자기인식을 바탕으로 하여 자기가 놓인 상황 가운데에 적절한 태도를 결정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자의식은 ‘자각’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

‘인생이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목적 없는 행동은 없다. 그런데 정작 내가 왜 사는지 묻는다면 선뜻 자신 있게 ‘이거다’라고 답할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 같다.

 

목적 없이 사는 인생...? 평생을 교단에서 학생들과 함께 살아오면서 늘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학교는 왜 철학을 가르치지 않을까?’ 나는 누군지? 왜 사는지? 인생이란 무엇이며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교육이란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만 가르치는 게 아니다. 시비를 가리고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 즉 판단력은 살아가는데 지식보다 훨씬 더 필요할 때가 많다.

 

 

 

 

학교폭력문제로 세상이 시끄럽다. 폭력문제를 거론하면 학교의 교육부재를 탓한다. 학교만 교육이 없을까? 정작 살아가는 데 필요한 식습관이며 생활습관 같은 기본적인 생활훈련은 가정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태어나기 바쁘게 학원에서 학원으로 내몰리는 아이들.... 부모와 눈 맞추고 대화할 시간조차 없는 아이들이 어떻게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교육이란 가정과 사회와 학교가 함께 했을 때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학교에만 맡겨 놓으면.. 텔레비전이며 영화며 게임이 폭력적이고 아이들을 돈벌이의 대상으로 생각하느 상업주의가 만연하는 사회에서... 학교에서는 인성교육을 포기하고 경쟁 교육, 시험문제풀이에 혼신의 힘을 쏱고 잇는데 어떻게 교육교육다운 교육이 가능한가?

   

가정 교육의 핵심은 기초생활교육이다. 기본적인 생활 습관은 학교에서 하는 교육이 아니다.  엄마가 자녀들에게 가르쳐야할 가장 소중한 교육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걸 깨우쳐 주는 일이다. 영어 학원에 미술하원에 태권도 학원에 보내지 않으면 마치 큰일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부모님들... 어린아이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영어 단어 한 두 개보다 사랑이 더 필요하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는 걸 배우지 않은 아이들이 어떻게 내 부모, 내 친구, 내 이웃을 소중하다는 걸 알 수 있겠는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는걸 아는 아이들은 친구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왕따를 시키지 않는다. 학교교육이 무너졌다고 한탄하기 전에 부모님들부터 가정에서 내 아이의 기초교육, 생활교육에 관심을 갖고 지도하는 게 필요하다. 진정으로 내 자녀를 사랑한다면 100점보다 건강한 몸과 건강한 생각부터 갖도록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가져왔습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3.19 22:55



‘나’는 누군가?  R.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했다.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능력, 기억할 수 있는 능력(대상화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자의식도 선악에 대한 판단도 불가능하다. 동물에게는 없는 이러한 자의식은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에 가능하다. 사람에게 자의식이 없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

자(기)의식(自己意識, self-consciousness)이란 ‘자기를 (돌이켜) 인식할 수 있는 의식을 말한다. 이러한 능력은 ‘대상으로 기억된 이전의 상태와 지금의 상태가 다르다’는 것을 아는... 동물에게는 없는 인간에게만 있는 능력이다. 이러한 자의식이 없는 동물에게는 외계의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인간은 자의식이 있기에 사회화를 통해 ‘선악에 대한 개념’을 갖게 되고, ‘해야 될 것과 해서는 안 될 것’을 분별하게 된다. 그러나 사회화 기관인 가정이나 학교가 개인의 의식화를 방기하거나 상업주의로 변질돼 피교육자를 의식화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구성원이 의식화되면 피해를 볼 세력들이 의도적으로 의식화를 방해해 왔다고해야 옳을 것이다. 불행하기도 의식화 기회를 놓친 피교육자는 성인이 된 후에도 주관이나 소신이 없이 살아가야만 한다.


‘이것은 흰색이고 저것은 검은 색’이라는 현상에 대한 인식은 가능하지만 평등의식이나 민주의식, 역사의식 같은 의식이 없이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 사회의 구성원인 개인이 민주의식이 없다면 그 사회는 민주사회가 아니다.

노동자의식이 없는 노동의 예를 들어 보자. 노동자가 자신의노동력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면서 사주(社主)의 은혜를 입고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노동자가 아니라 노예다. 같은 노동을 하면서도 ‘노동자의식’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한 사람은 노동자요 다른 사람은 노예가 되는 것이다.

 

사립학교에 근무하면서 그런 선생님을 보았다. 전교조가 결성되는 과정에서 노동자 의식이 없는 교사는 재단측에, 사학을 민주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교사들은 사학개혁을 주장하는 전교조 쪽으로 양분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이런 예는 수없이 많다.

평등의식이 없는 사람, 사회의식, 민주의식, 역사의식이 없는 사람, 환경의식이 없는 사람. 그런 사람으로 구성된 직장이나 단체에서는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이렇게 구성원에게 '의식이 없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불행한 일이지만 가정사회, 직장사회, 국가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의 민주화는 국가 구성원 누구나 바라는 일이다. 그러나 국민 중의 상당 수는 제도적인 민주화가 국가의 민주화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것만으로 민주주의는 실현되기 어렵다. 최근 전두환의 고향 합천에서는  ‘새천년 생명의 숲’ 공원 이름을 전두환의 호를 따 ‘일해공원’으로 바꿔 시민단체들과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공원 이름을 '일해'라고 바꾼 이유는 합천군수의 얄팍한 정치적인 술수겠지만 ‘전사모’라는 사람들에게는 역사의식을 찾아 보기 어렵다. '일해공원이냐 아니면 새천년 생명의 숲이냐?'의 공원 이름을 놓고 벌이는 힘싸움은 우리사회가 아직도 민주사회로서 뿌리가 내리기 어렵다는 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역대 선거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을 자주 볼 수 있다.

독재정권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민주의식이 없는 시민들로 구성된 사회에 민주주의를 기대할 수 없다. 학생의 두발에 가위질을 하는 교사나 지식을 주입해 일류대학에 입학시키는 것이 교사의 임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이러한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학교교육은 ‘전인 교육‘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전인교육이 아니라 상급학교 진학이 목표가 돼 있다. 인간을 사회적인 존재라면서 개인적인 존재로 키우는 학교에 어떻게 제대로 된 교육이 가능하겠는가? 주객이 전도된 학교나 평등의식이 없는 구성원이 모인 가정. 우리사회의 민주주화가 지지부진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한 때 수구언론이 전교조 교사들이 학생들을 의식화시킨다며 색깔을 칠했던 일이 있다.

교육이란 의식화하는 일인데 의식화하는 교사가 빨갱이라면 수구언론은 국가보안법의 처벌 대상이 되는데 고발은커녕 지금도 기회만 있으면 색깔 칠이다. ‘의식이 없는 사람!’ 교육이 피교육자를 의식화시키지 못하거나 사회적인 존재로 양성하지 못하는 한, 인간해방도 민주주의도 기대할 수 없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2.14 07:51



사람을 일컬어 ‘그 사람 참 사람 됨됨이가 됐다, 혹은 ‘사람답다’고 할 때 ‘사람답다’는 것은 ‘사회적 존재로서 바르게 행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에 대한 눈 뜸’이라고 하는 의식이 형성됨으로써 개인적인 존재로서의 행동이 아니라 사회적 존재로서의 행동을 하고 있다는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자의식’을 ‘외계의 의식과 대립하여, 자아가 자기를 느끼고, 생각하고, 의지(意志)하고, 행위하는 다양한 작용을 통일하는 자기동일적(自己同一的)인 주체로서 의식하는 것을 말한다.’고 정의 하고 있다. 사회적인 존재로서 인간이 개인적인 존재로서의 본능적인 행동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는 불행한 사회다.


오늘날 학교폭력을 비롯한 왕따가 그렇고 블루칼라 범죄에서 그런 모습을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R.데카르트는 ‘자신을 가치 있는 것으로서 의식하는 자의식은 자각(自覺)이다.’라고 명쾌하게 정의 내리고 있다. 자각 없이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이들이 주체적인 자의식을 가지고 살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곧 교육이요, 공교육이 담당해야할 몫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선하게 태어났느냐? 아니면 악하게 태어났느냐를 놓고 성선설과 성악설의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선하게 태어났든, 아니면 악하게 태어났든, 사람으로 태어난 한 개체를 개인적 존재가 아닌 사회적 존재로 키우는 것. 그것이 곧 교육이 할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공교육의 위기‘니 ’교육이 무너졌다’는 말은 교육이 감당할 기능 즉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키우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자의식은 ‘나는 누구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살아 있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바르게 산다는 것, 정직하고 진실하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이며 종교란 무엇인가? 신이란, 저 세상이란 과연 존재하는가? 등에 대한 자각이다.자의식 즉 자각이란 자신이 누구며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기준을 알고 그 기준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만 좋으면... 내게 이익만 된다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본능적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수준이다. 감각적이고 주관적이고 본능적인 존재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인간적인 존재로서 질 낮은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자의식’에 눈뜬 사람들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자각한 사람, 자의식을 가진 사람의 모습이란 자신과 상대방에 대해 정직한 사람이다. 성실한 생활인이요 겸손한 사람을 말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에게 고통을 주거나 피해를 주지 않는 사람이다. 해서 될 말 과 하면 안 되는 말을 구별할 수 있는 사람, 나설 때와 물러 설 때를 아는 사람, 자신의 말과 행동과 생각을 뒤돌아보는 것. 그래서 나의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곧 자각이다.

잘잘못을 반성하고 뉘우치지 못하는 사람은 사회적인 존재로서 온전한 자각을 못한 사람이다. 무엇보다 불의를 미워하고 정의를 위해 자신을 내던질 수 있는 사람. 그란 사람이 사회적 존재로서 자각한 사람, 자의식을 가진 사람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성숙한 사회란 이런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다.

주관적인 사람보다 객관적인 사람, 폐쇄인 사람보다 합리적인 사람, 이기적인 사람보다 이타적인 사람, 타인의 인격을 존중하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들이 사는 사회는 얼마나 살맛나는 사회일까?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어린 학생들까지 돈벌이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사회는 살맛 없는 세상이다. 자각하지 못한 사람, 그런 사람들이 자의식을 찾아 나갈 때 우리사회는 훨씬 더 성숙한 사회로 탈바꿈 할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