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하면 용감하다했던가? 내가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참 고약한 사람을 만났다. 전생에 무슨 악연인지 몰라도 내가 쓴 글마다 찾아와 악플을 남긴다. 자신의 부족한 글에 비판을 해주는 이웃이 있다는 건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지만 이 사람은 그런 게 아니다. 아예 맘먹고 비난을 하려고 작정을 하고 찾아온다. 제대로 된 비판이 아니라 온통 악의적인 비난일색이다.

블로그 이름이 '참교육'이라니까 '너는 전교조다', '전교조는 빨갱이다.', ' 빨갱이는 악의 축이다.'... 이런 식이다. 내가 전교조 조합원이니까 공존의 대상이아닌 제거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사사건건 '너는 죽일 놈'이다. 

악플을 다는 사람을 만나면 짜증이 나야할 텐데 이 사람은 그런 수준조차 못 된다. 교육학을 전공했거나 교직경험이 있었던 사람 같지도 않다. 그렇다고 순수하게 교육에 대한 애정도 아니고 교사들에 대한 무슨 증오심 같은 감정풀이 같기도 하다. 



악플의 주인공이 말하는 것처럼 무능한 교사들 때문에 교육이 이 지경이 됐고 학교폭력의 1차적인 책임도 교사들에 있을까?    

세상에 어떤 부모치고 자식에게 더 좋은 걸 먹이고 더 좋은 옷을 입히고 싶지 않겠는가? 마찬가지로 교실에서 초롱초롱한 눈망울,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만나면 고의로 아이들에게 적당히 가르치겠다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사람은 교육자도 아니다. 물론 40만명 가까운 교사들 중에는 별별 사람이 다 있다. 교육자로서의 ‘저건 좀 아니다’ 싶은 사람도 있고, 또 승진을 위해 아이들이 뒷전인 사람도 있다. 부모들 중에서도 자식에게 못할 짓을 하는 사람이 있듯이 교사들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는 게 현실이다.

부끄러운 얘기를 해야겠다. 나는 경제학을 전공해 일반사회교사자격증을 받아 실업계 사립 고등학교에 근무했던 일이 있다. 초등학교에 10년간 근무하다 이동했기 때문에 교실이 낯선 곳은 아니었지만 급별 차이와 실업계 학교라는 특색을 몰라 한참동안 적응하는데 힘들었다. 교과목도 일반사회가 아닌 윤리와 문서사무라는 과목을 맡았다. 윤리교과가 독립하기 전에는 사회과 교사가 담당했다. 여기다 상과 과목인 문서사무까지....


내가 처음 맡았던 국민윤리라는 과목. 아마 고등학교를 다녀본 사람이라면 고등학교 윤리교과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기억할 것이다. 개인윤리, 사회윤리, 국가윤리라는 빛 좋은 단원과는 달리 기업이나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간을 길러내는 과목. 동족에 적개심을 갖게 해 통일에 대한 염원이 아니라 분단을 고착화하는 이데올로기로 채워져 있던 교과서가 국민윤리다.

박정희 정권 말기, 유신헌법이 시행되면서 윤리라는 과목은 거의 광기를 담은 국민 세뇌용이었다. 왜 공납금을 내고 이런 내용의 반공인간을 길러내야 했는지 학생들을 알 도리가 없었다.

어떤 교사가 이런 교실의 현장을 두고 감히 유신헌법이 ‘한국적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저항할 수 있을까? 당시 아이들에게 차마 이렇게 거짓말을 가르칠 수는 없다고 판단한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기껏 전교조라는 조직을 만들어 집단자살이라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교육 관료나 교육학자, 교장선생님들은 말했다. ‘왜 선생들이 가르치라는 공부나 가르치지 않고 왜 정치를 하려고 하느냐?’고 힐란(詰難)했다. 오늘날 빨갱이 딱지를 붙이고 사는 전교조의 역사가 그렇다.


윤리교과에 얽힌 부끄러운 과거뿐만 아니다. 경제학을 전공한 교사에게 지리나 세계사를 가르치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는 지리는... 세계사는 못 가르치겠습니다.”라고 할 수 있을까? 어찌 교과목뿐일까? 교과서 내용에는 교사들의 철학이나 세계관이란 없다. 권력이 필요해 선택한 지식이 금과옥조다. 반공궐기대회에 동원되고 유신헙법이 한국적민주주의라고 가르쳐야했던 교사는 과연 무능한 사람일까?

의사의 처방에 항의하는 환자가 없듯이 교사가 양심에 따라 교육할 수 있는 게 교권이다. 교권이 없는 교사는 학생들에게 또 학부모들에게 부끄러운 교과부의 꼭두각시다. 교육의 중립성이란 전교조가 민주노동당에 후원금을 낼 수 있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양심에 따라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교사들은 무능하다? 정말 그럴까?
학교폭력을 조기에 발견해 교육적으로 이끌어 줘야하는 책임..? 
당연히 교사가 할 일이다. 그런데 학교폭력이 발생하게 만드는 원인은 두고 교사들의 책임만 묻고 입건하고 구속하면 해결되는가? 교사들에게 책임을 물어 해결되는 학교폭력이라면 백번 천번 구속해야 한다. 

무너진 교육, 교사들의 무능 때문이라면 그런 교사는 교단에서 축출해야한다. 
중병에 걸린 환자에게 해열제로 병을 고치겠다는 것은 돌파리 의사다.
마찬가지로 백약이 무효인 환자에게 같은 약만 처방하는 의사의 지시를 믿고 계속 투약만 강요하는 교사는 무능하다. 이런처방을 계속하면 병을 고칠 수 있다고 믿는 교장이나 교육관료도 무능하고 이런 처방을 계속하는 교과부는 더더욱 무능하고 파렴치하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2.02.01 07:00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지식인은 흔해도 양심적인 지식인은 찾기 어려운 사회. 양심적인 지식인은 있어도 정의로운 지식인은 찾기 어려운 사회, 양심적이고 정의로운 지식인은 더더욱 찾아보기 어려운 사회가 한국사회다. 경찰이나 검찰이 있으나 약자의 권익을 보호해 주지 못하고 사법부조차 정의를 외면하는 사회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막가파 사회다. 

‘부러진 화살’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느낀 생각이다.

2011년 OECD교육지표에 의하면 우리나라 25세부터 34세까지 인구 중에서 대학졸업이상 인구비율(고등교육 이수율)이 63%(약 456만 명)다. 

이 연령계층의 OECD국가들의 평균 고등교육 이수율이 37%로 대학교육비부담이 거의 없는 핀란드가 39%, 스웨덴 42%에 비교하면 우리나라 교육수준은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섧을 정도의 수준이다.

대학졸업장이 있어야 살아남는 사회구조 때문일까? 이 정도 지식인들이 사는 사회라면 당연히 민주주의가 정착되고, 합리적이고 비판이 허용되는 사회, 정의와 법, 그리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 근접해야 하지 않을까?



현실은 어떤가? 광주시민을 학살한 전직 대통령이 법의 보호를 받고, 주권을 도둑질한 쿠데타의 딸이 대권후보의 유망주로 건재하고 있다. 시비를 가리는 사람, 비판적인 사람은 문제아로 찍혀 직장에서 살아남기조차 어렵다. 학연, 혈연, 지연과 같은 ‘연고주의’는 청산은커녕 우리사회에서 더더욱 견고하게 뿌리내리고 있다.

바른 말을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승진에서 불이익을 당하고, 평생동안  ‘문제아’로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하는 사회, 그 꼬리표가 신형 연좌제가 되어 왕따당하면서 살아야 하는 풍토에서는 양심적인 지식인이 설 곳이란 없다.

어쩌다 우리사회가 이지경이 됐을까?

공부깨나 하는 사람들은 SKY를 나와 판검사나 의사, 언론인이 되고 재벌회사, 고급공무원으로 취업해 기득권 세력으로 편입된다. 살아남기 위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하고  사람의 인격을 생김새나 입은 옷, 사는 집, 타고 다니는 승용차 얼짱, 몸짱 순으로 서열화 하고 있다.


나라를 사랑한 것이 죄가 되어 천덕꾸러기가 되고, 자자손손 빨갱이 딱지를 붙이고 살아야 하는 사회가 대한민국이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 더불어 사는 사회가 아니라 지배와 복종의 관계가 되는 사회, 부자와 가난한 사람, 공무원과 시민이 더불어 살아야 하는 사회가 아니라 서민은 출세를 하다 못한 ‘낙오자’로 무시당하면서 살아야 하는 사회가 됐다.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사람의 가치를 결정한느 사회. 공과 사가 구별되지 않는 사회는 지위가 곧 계급이다. 가난하다는 것이 죄가 되는 사회에서는 자식이나 거족에게조차 무시당하면서 살아야 하는 비애를 부자들이 알기나 할까?
사람이 사회적 지위나 돈, 추택의 크기. 명품 옷과 생김새로 서열화되는 것도 모자라 서울, 부산, 대구, 광주.. 이런 식으로 지역까지 서열화된 사회에 살고 있다. 아니 그런 사회가 대물림되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옳은 건 옳다하고 틀린 건 틀렸다’고 말하면 불순분자가 되고, 가난하다는 게 죄가 되는 사회는 더불어 사는 사회가 아니다. 약자가 살아남기 위해 비굴해야 하고 눈치를 봐야하고 타협해야 한다. 타협을 잘하는 사람이 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유명한 사람이 되어 존경받는 사회는 살만한 가치가 있는 사회인가?



시합 전에 승자가 결정된 경쟁으로 서열을 합리화해 놓고 연고주의가 능력이 되어 패거리를 만들고 공범자가 되어 양심조차 포기해야 살아남는다는 것을 배우면서 살아야 하는 사회는 불행한 사회다.

힘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비판적인 지식인, 합리적인 사람, 이성적인 사람이 살아남을 공간이 있을까? 막가파사회에서 죄를 세탁해주는 종교가 있고, 양심을 파는 지식인들, 사이비 언론인들이 있어 그들은 날이 갈수록 더더욱 살기 좋은 사회가 아닐까?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2.01.14 07:00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이성(理性)이 실종된 사회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막가파 사회다. 돈이 없다는 이유로, 가난하다는 이유로 왕따당하고 소외당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인격이 아니라 얼짱, 몸짱이 대접받고 얼마나 고급 옷을 입었느냐에 따라 사람대접을 달리하는 세상은 미개한 사회다.

가난한 사람들은 왜 생겨났을까? 게을러서...? 운명 때문에...? 옛날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은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못 배우고 못나서... 팔자가 기구하게 태어나서... 그래서 가난을 숙명으로 생각하며 살던 때가 있었다. 최소한 농경사회에는 그런 논리가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 아니 오늘날에는 매일같이 놀면서도 여유 있게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죽으라고 일해도 가난을 면치 못하고 사는 사람도 있다.

 


열심히 일하는데 가난한 이유가 뭘까? 운명? 팔자소관? 계급사회에서는 노예들은 열심히 일해 주인에게 다 바치고 정작 자신은 굶주리며 살았다, 그들은 그게 운명이라고 알고 있었고 그런 삶을 불평없이 살았다. 전제군주사회, 계급사회에는 사람들은 그것은 하늘의 뜻이요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양반의 피를 타고 났기에 피를 속일 수 없다며 주어진 운명을 한탄하며 살아온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 금융자본주의의 사회는 어떨까? 오늘날 가난을 운명처럼 달고 사는 사람도 양반의 피, 상놈의 피가 다르게 타고 태어났기 때문일까? 부모를 잘못만나서일까? 뼈 빠지게 일해 자식들 공부시키고 나면 가난과 병든 몸을 안고 고통의 세월을 보내다 죽어가야 하는 사람들...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혹은 부모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가난을 대물림 받아야 하는 사람들...

 


선천적으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에게 너는 운명이니까 가난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가? 국가가 존재해야할 이유가 무엇일까? 그런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조정하고 배려하기 위해서다. 정의니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 못 배우고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국가가 필요하고 정치가 필요한 것이다. 힘이 지배하는 사회에는 국가가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평생 벌어서 집 한 채도 없이 셋방살이로 전전하며 운명으로 살아갈까?  자식 공부시키느라 평생 고생하고 정작 자신은 가난과 병든 몸으로 홀대받고 살까? 유럽의 선진국이라는 나라들.. 핀란드를 비롯해 덴마크며 독일이며 프랑스 같은 나라의 사람들도 그렇게 살까?

‘무상교육, 무상의료’ 아마 이런 얘기하면 빨갱이들이 하는 소리라고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왜 같은 사람 사는 나란데 그 나라는 공부를 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무료로 할 수 있고 우리는 자녀 교육비 때문에 평생을 허리한번 펴지 못하고 살아야 할까? 아니 평생 집한 채 마련하기 위해 먹을 것, 입을 것 못먹고, 못입고 살아야 할까?



 

 


이 지구상에는 땅은 모두 국가의 소유로 건물 값만 내면 평생 살아갈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해 주는 나라도 있고 자식 공부시키느라 걱정할 필요도 없는 나라도 있고 아프면 무료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나라도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공부도할 수 있고 과외며 보충수업도 없고 얼마든지 싫건 잠도 자고 하고 싶은 취미생활도 할 수 있는 나라도 있다.

노후 생계가 어려워 휴지통을 뒤지며 살지 않아도 최소한의 굶주리며 살지 않아도 되는 사회, 몸이 아파도 병원비가 두려워 고통의 세월을 보내지 않는 불행한 노인들이 없는 나라도 있다.

빈부격차는 왜 생기는가? 재벌의 아들은 재벌이 되고 노동자나 농부의 아들은 평생을 가난을 운명처럼 달고 살아야 하는가? 완전한 평등 사회란 없다. 그러나 국가가 어떤 경제정책을 펴는가? 어떤 제도를 도입하는가에 따라 우리나라처럼 수백배 수천배 차이가 나는 빈부격차를 대물림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도 있다.

좋은 사회냐 아니면 나쁜 사회냐의 차이는 ‘기회균등’이 얼마나 보장되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 경기를 하는데 부자 아들이라는 이유로 노동자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특혜를 주면 그런 경기는 하나마나다. 여기다 사회적 가치 즉 희소가치를 누가 유리하게 배분받을 수 있느냐를 법으로 만들어 놓으며 그런 경기는 경기도 하기 전에 승패가 결정난 게임이다.

 


지본주의 사회에서 국가는 얼마든지 공정한 사회, 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도 있고 반대로 차등사회, 빈부격차를 대물림시킬 수도 있다. 이름하여 소득 재분배정책 혹은 복지정책이다. 소득재분배정책이란 사회보험, 사회복지서비스와 조세, 공공부조가 있으며, 연금과 의료보험, 기초노령연금과 같은 공공부조도 있다.

돈에 대해 민감한 사람도 신문의 경제면을 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어려우니까, 그런 문제는 전문가나 정치인들이 알아서 해 줄 테니 서민들은 몰라도 될까? 4대보험이라고 일컬어지는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에 대해서는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기관이 특정한 목적의 달성을 위해 국민 개개인에게 징수하는 조세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소득재분배정책 중 조세에 대해서만 제대로 알아도 가난을 운명처럼 생각하거나 대물림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유럽의 선진국 즉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는 나라에는 직접세의 비중이 높지만 우리나라와 같은 세계적으로 빈부격차가 두 번째 가라면 섧은 나라는 상품에 세금을 붙이는 간접세의 비중이 높다. 간접세의 비중이 크다는 것은 가난한 사람과 부자가 똑같은 세금을 내고 있다는 뜻이다. 빈부격차가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국가는 이런 사실을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다. 모르는 게 약이 아니다. 국가은 모르는 사람에게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줘야한다. 그러기 위해 의무교육기간을 두는 게 아닌가? 덧셈과 뺄셈만 가르치면 교육의 의무가 끝나는가?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가르치지 않은 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열등의식과 운명을 배우는 학교에 어떻게 희망을 찾을 수 있는가? 내가 낸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 지 가르쳐 주지 않는 교육은 우민화교육이다.

정치와 도덕과 윤리와 법이 있어야 하는 이유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네가 죽어야 내가 살 수 있고 나의 희생으로 네가 행복해지는 사회는 공정한 사회도 건강한 사회도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하다는 건 불편한 게 아니라 죄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현실이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가난하면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에게까지 무시당하는 세상에 가난은 결코 미덕도 청렴도 아니다.

새끼 소 한마리에 단돈 1만원밖에 안하는데 쇠고기 값이 비싼 이유가 무엇일가? 유통구조가 잘못되면 소비자가 피해를 보는 게 상품이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재벌이나 의사 판검사 출신들이 만든 정당이 노동자나 농민들을 위한 법을 만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재분배정책을  추진할까? 부자정당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정책을 도입하거나 부자들에게 상속세율을 높이는 법을 만들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그런데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들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정당을 지지할까?     

국가의 주인을 국민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깨어나지 않는 국민들... 강자의 논리, 지배이데올로기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백성들이 사는 나라는 주객이 전도된 사회다. 주인이 노예로 사는 나라...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는 진리를 믿지 못하고 세월만 지나면 다 좋아질 것이라는 운명론자들이 사는 사회는 병든 사회다. 깨어나지 않는 백성이 사는 사회에는 부자들의 노예만 득실거릴 뿐이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2.01.05 06:30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김정일이 서거한 후 KBS의 보도 태도를 보면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든다.

‘잘 죽었다’는 정도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좀 더 흉악한 인간인가를 홍보할 수 있을까? 더 악마와 같은 존재로 보이게 할 수 있을까?’그런 보도 태도다. 마치 ‘여기가 평양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로 며칠동안 하루 종일 김정일에 대한 보도뿐이었다.

“3대 세습이 뭐야? 세계에서도 저런 나라가 어디 있어? 백성들을 굶어 죽는데 어떻게 김정일 혼자만 저렇게 호화생활을 할 수가 있어?”

뉴스를 보고 있던 아내가 하는 말이다.

“잘 모르면서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 하지 마시오”

“모르긴 뭘 몰라요? 며칠 전 KBS ‘긴급입수 김정일, 숨겨진 과거’를 보니 백성들은 굶어 죽어 가는데 코냑 값만 1년에 65만~80만 달러를 쓰고 세계 각국에 여러 채의 별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던데 그게 잘하는 일이오?”

“글쎄요. 세습이 잘하는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으나 북한 나름의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고 봐주면 안 될까? 그리고 북한사람들이 굶어 죽는다는 얘기나 코냑 값이 몇만 달러라는 게 사실이겠어요? 설마 그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북한을 적으로 생각하는 시각에서 보면 사실보다 더 부풀려 보도할 수 있지 않겠어요?”

북한 이야기만 나오면 김정일 성토로 목청을 높이던 아내다. KBS 특집방송을 보고 화가 잔뜩 나 있었던 모양이다.

“KBS보도를 보니 김정일은 자신의 70번째 생일파티에 1천만 달러(약 110억원)를 투입해 호화잔치를 했다는데... 그런데 북한 사람들 옷 입고 다니는걸 봐요! 우리나라 60년대 사람들이 입던 옷 같잖아요?”

“허 ~ 그러면 북한 사람이 굶어 죽는 걸 보고 있는 게 인도주의란 말이요? 옷이란 자본주의 시각에서 보면 사람의 가치나 신분을 나타내는 기준이 되기도 하지만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의복을 우리처럼 그런 기준에서 보는 게 아니랍니다. 그리고.... ”

“당신은 북한에 가면 환영 받을테니 북한으로 가시오!”


이쯤 되면 대화 끝이다. 더 이상 계속하면 싸움이 될 것 같아 입을 다물고 말았다. 
북한 얘기가 나오기만 하면 아내와 나는 적대관계가 된다. 아내는 북한을 성토하고 나는 변명해주는... 그래서 결론은 “당신은 북한에 가서 살아라”다.

아내만의 시각이 아니다. 조중동이나 찌라시 방송을 들으면 북한의 적이요, 그쪽을 조금만 좋게 말하면 빨갱이요 상종 못할 종북주의자가 된다. 하긴 국가보안법이 시퍼렇게 살아 있으니 북한을 좋게 표현하거나 북한관련 책을 보면 ‘이적찬양고무죄’로 처벌의 대상이 되니 입 다물고 살 수밖에 없다.

내가 좋아하는 블로그 중에 나꼼수를 좋아한다는 블로거가 있다. 그분은 자신블로그에서 주진우 기자가 ‘김정일 서거’라는 말을 썼다고 ‘’실망했다‘고 기사를 썼다. 우리 속담에 ‘"며느리가 미우면 발뒤꿈치가 계란 같다고 구박한다."고 했던가? 조중동을 접하고 반공교육을 받은 세대들은 북한이 잘 되면 배가 아프거나 좋은 점을 두고 못 본다. 동족이 적이 되고 지질이도 못살고 굶어 죽는 모습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지.... 그래놓고 통일을 하자는 얘긴 왜 할까? 


나는 성격상 궁금한 게 있으면 참지 못한다. 누구나 비슷한 경험을 했겠지만 나도 처음 성경을 읽고 참으로 신비한 경험을 했다. 예수님이라는 분. 그분이 사람인지 신인지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성경을 몇번씩이나 읽다가 의문이 풀리지 않아 결국은 서양사, 서양 철학사, 종교사, 민중신학, 해방신학까지 읽고서야 겨우 감을 잡았다. 결국 ‘예수는 없다’, ‘만들어진 신’이라는 비판적인 책까지 섭렵(?)하고서야 예수님이 어떤 존재인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북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고등학교에서 특히 유신시절 국민윤리를 가르치면서 북한에 좋은 점이라고는 없는 그래서 증오하고 적대감을 갖도록 하는 책이 맘에 안 들어 진짜 북한은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했다. 나는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고등학교에서 윤리, 세계사, 역사, 지리, 정치, 일반사회, 사회문화... 를 가르치다 보니 세계 사상사니 종교사니 유물론이며 마르크스 철학까지 기웃거려야 했다.

통일이나 북한문제도 마찬가지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북한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을 적으로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북한 관련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일제시대부터 분단과정이며 6·25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부루스커밍스를 읽고 송건호, 강만길, 마찌니 평전, 프랑스 파뇽과 루이저린저를 읽었다. 역사를 가르치는데 이데올로기조차 이해하지 못 하고서는 사실(事實)과 사실(史實)도 구별할 줄 모르는 제자들을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특히 사상에 대한 문제, 사회주의니 공산주의가 어떻게 태어났으며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개념을 윤리 교과서처럼 가르칠 수 없었다.

 


나의 독서욕은 금서도 가리지 않았다. 대학교수연구실에 가면 버젓이 꽂혀 있는 책, 현대 조선사며 북한의 역사책을 왜 고등학교 교사는 읽으면 안 되는가? 북한의 주사철학이며 마르크스 철학에 빠지기도 하고 북한의 역사(고대사에서 현대사에 이르기까지)며 유물론까지 정신없이 읽었다. 그 후 기회가 있어 평양과 개성 백두산까지 갔다 올 수 있었지만 북한에 대한 궁금증은 완전히 가지지 않았다. 내가 고민하고 읽고 느끼고 경험한 일들을 종합해 보면 나름대로의 사회주의나 북한이 어떤 나라라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런 나는 왜 아내에게 종북주의자요, 북한에 가서 살라는 얘기를 들어야 하는가? 

양심의 자유는 허용되는 나라에 사상의 자유가 없다. 형법이 있는데 왜 국가보안법이 필요한가?  분단의 현실에서는 내가 알고 있는 걸 말해도 안 되고 말할 수도 없다. 내가 알고 있는 걸 말하면 ‘수상한 사람, 빨갱이, 종북주의자, 좌빨이 된다. 나는 이글을 써 블로그에 올려지는 순간 수많은 알바들의 공격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한 집에서 수십년을 함께 살아 온 아내도 내말을 믿어주려 하지 않는데 누구를 욕할 수 있겠는가?

나꼼수를 좋아하다 주진우기자에게 ‘김정일 서거’라는 말을 듣고 실망했다는 글에 댓글을 달았다가 호된 꾸중(?)을 들었다. ‘서울 안 가본 사람이 이긴다’고 했던가? 최소한 이성이나 논리가 아니라 마취된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사회는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도 마찬가지다. 그 틀을 깨고 통일로 성큼 다가 갈 날은 언제쯤일까?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몇 년 전 마산 YMCA 시민사업위원회 ‘아침논단’에 강의를 했던 일이 있다. 강의가 끝나고 질의 응답시간에 참가했던 사람 중 한 분이 ‘선생님은 근본주의자’라고 해 웃었던 일이 있다.

근본주의란 ‘성서의 완전한 무오류성과 육체를 가진 예수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 동정녀 탄생, 부활, 대속(구속행위) 등 그리스도교의 근본으로 강조’한 신앙을 일컫는 말이다.

에둘러 말하면 기독교인으로서가 아니라 내기 살아 온 삶이 늘푼수 없이 원칙밖에 모르고 고지식하게 살아 왔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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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나 학교에서 가르쳐 준 대로 사는 사람은 도덕적인 사람, 근본주의자와 같은 삶을 살게 마련이다. 원칙주의자나 근본주의자는 학교에서 말하는 범생이, 고지식한 사람을 일컫는다. 범생이는 칭찬이 아니라 ‘모범생의 낮춤말’이다. 학교에서 모범생이 사회에서 열등생이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학교가 길러낸 범생이는 늘푼수도 없고 민주적이지도 못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경계해야할 인간형은 선입견이나 편견, 아집, 흑백논리, 고정관념, 표리부동...과 같은 비민주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이다. 학교가 길러낸 범생이는 이런 이중인격의 소유자를 길러내는 것은 아닐까?


‘군대갔다오면 사람 된다’는 말이 있다. “철딱서니 없이 망나니 같은 아들이 군대 갔다 오더니 사람 됐더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듣는 얘기다. 여기서 ‘사람이 됐다’는 뜻은 사람으로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도리나 예의를 지킨다는 뜻이다. 왜 그런 얘기가 나올까?

군대에서 인성교육을 잘했다는 뜻인가? 사실은 군 생활에서 고생을 해보니 부모의 심정도 알고 나이도 두서너 살 더 먹어 철이 들었다는 얘긴데, 군대가 사람 만드는 곳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군대생활을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힘 앞에 복종하거나 알아서 기는 폭력에 길들여진 인간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군대만 그럴까? 학교는 어떤가? 학교는 피교육자로 하여금 가치 내면화를 통해 바람직한 인간을 키워내는 곳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아직도 학생들이 등교하는 교문에는 군대 위병소를 방불케 하는 군기(?)가 시퍼렇게 살아 있다.

교문에는 복장이나 두발이 교칙을 위반했거나 지각생을 단속하는 곳으로 서슬 퍼렇게 남아 있다. 똑같은 옷을 입히고 똑같은 교과서로 똑같은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학교. 교칙을 정하고 위반하면 체벌이나 벌점으로 규제하고 규칙을 자주 위반하면 문제아로 취급하는 학교는 민주적인 학교도 행복을 배우는 학교도 아니다.

교는 규칙을 잘 지키는 학생을 모범생이라고 한다. 학교가 기르고자 하는 인간상, 도덕적인 사람 은 어떤 모습일까? 학생들을 통제하고 단속하는 규칙이니 윤리니 하는 규범이란 무엇일까? 도덕(道德, morality)이란 원래 ‘자연환경의 특성에 순응하고 각기 그 집단과 더불어 생활하여 온 인간이 한 구성원으로서 살아간 방식과 습속’이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도덕은 ‘구성원들이 양심, 사회적 여론, 관습 따위에 비추어 스스로 마땅히 지켜야 할 행동 준칙이나 규범’이 됐다. 이러한 도덕은 ‘계급사회의 성립과 함께 정치지배의 유력한 수단’으로 ‘법이 국가권력을 지배하고, 도덕이 보편적 원리를 지배하는 영역’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학교는 왜 ‘행복한 개인’ 보다 ‘도덕적인 인간’을 양성하는가? 사전에서 풀이한 것처럼 도덕적인 사람은 내가 아닌 사회구성원으로서 ‘인간 상호 관계’나 ‘규범’을 잘 지키는 인간. 즉 피교육자들로 하여금 ‘도덕적인 인간’을 길러내는 곳이 됐다. 도덕이란 개인의 삶을 윤택하게 하거나 행복하게 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다. 도덕이나 법은 통치계급이 자기네들이 필요해 만든 ‘질서’라는 것을 유지하기 위해 민중들에게 강제규범으로 만들어놓은 이데올로기다.

도덕이나 법이 없었던 사회는 구성원들이 살기 위험한 곳이었을까?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법을 모르고 산다. ‘법이 없으면 법망을 피해 사람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어쩔 것인가?’라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법이 문제가 아니라 제도가 문제다. 돈이나 재화가 사람의 인격보다 소중한 사회에서는 도덕이나 법망을 피해 얼마든지 나쁜 짓을 할 수 있다. 그런 식의 법이라면 법전을 사람 수보다 더 많이 만들어도 법을 어기는 사람이 안 나오라는 보장이 없다.


학교가 기르고자 하는 인간상은 ‘정직한 인간’, ‘성실한 인간’, ‘근면한 인간’ 상이다. 정직, 성실, 근면이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실천할 덕목이 아니다. 학교는 개인이 행복한 삶을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나 사회가 필요한 인간을 길러내고 있는 것이다. 학교가 진정 인격적인 인간, 행복한 삶을 살아 갈 수 있는 안내자역할을 하겠다면 통제와 단속으로 길들이는 강압적인 교육을 중단해야한다. 학교가 ‘행복한 인간, 정의롭고 민주적인 인간’을 길러내지 못하고 통제와 단속으로 복종을 길들이고 있다는 것은 국가나 자본이 필요한 인간을 길러 내고 있다는 증거다.


로마시대 도덕은 ‘법과 정의’였고, 박정희, 전두환 군사정권시대 도덕은 ‘법과 질서’였다. 오늘날 억울한 일을 당해 시위라도 벌이면 경찰은 어김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처벌하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법과 질서란 개인의 행복을 위한 덕목이 아니라 지배집단이 피지배자인 민중을 통치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수단이다. 인도의 카스트제도나 신라시대 골품제며 두품제가 그렇고 봉건제 사회의 반상제도가 그렇다.

조선시대는 삼강오륜이 도덕이요,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왕의 충성스러운 신민을 길러내기 위한 질서와 복종이 도덕이다. 역대 독재정권이나 군사정권은 질서가 도덕이다. 학교가 왜 교칙을 강조하고 통제와 단속으로 학생들을 지도하는 지 알만하지 않은가? ‘학교는 불행한가?’의 저자 전성은씨는
‘질서는 복종’이라고 정의한다. 자유보다 질서를 강요하는 학교는 민주주의 학교가 아니다. 자율보다 질서를 강조하는 정부는 민주정부가 아니라 독재정부다. 통제와 단속이 아닌 자율과 인격을 존중하는 학교, 사랑과 평등을 가르치지 않는 학교에는 인격적인 인간양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