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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정책2013. 7. 6. 07:00


역사공부를 10년이 상하고도 내가 누군지, 나라는 존재가... 내 부모가.. 선조들이 얼마나 소중한 분인지 알지 못하고 우리고장, 우리역사, 우리문화가 소중한지 모른다면 그런 역사는 가짜다.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서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첫째, 역사공부는 ‘나’를 찾는데서 시작해야 한다.

 

내가 알아서 앞으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역사적 지식이란 무용지물이다. 사실(史實)을 통해 지혜를 얻지 못한다면 역사공부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런데 지금까지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공부란 내가 소외된 역사, 양반중심의 역사, 서울중심의 역사...를 배우고 있다. 내가 소외된 그런 역사를 교과서대로, 하나라도 더 많이 외워야 좋은 점수를 받는 게 역사공부의 목적이 되어 있는 것이다.

 

 

현재의 내가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지식, 또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 나를 찾는 작업... 그것이 역사공부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가족의 역사, 우리고장의 역사부터 배워야 한다. 내가 빠지고 내 가족, 우리고장과 무관한

역사에 애정이나 관심이 있을 리 없다.

 

내가 실종된 역사, 고대사부터 현대사까지 샅샅이 공부했지만 시험이 끝나면 기억에 남는 게 없다면 그런 역사적 지식이란 시험용일 뿐이다. 역사가 암기과목으로 부담을 주는 과목이 아니라 나의 정체성, 우리 가족에 대한 사랑, 민족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역사공부를 다하고서도 역사의식이 없는 사람을 길러냈다면 그런 역사공부는 실패한 교육이다.

 

둘째, 제대로 된 역사 교육은 사관(史觀)부터 가르쳐야 한다.

 

똑같은 사건을 다른 모습으로 비춘 대표적인 사례를 보자.

 

1135년에 일어난 ‘서경천도운동’의 경우, 과거 학생들이 배우던 교과서에는 ‘서경천도운동’을 ‘승려 묘청 등이 금국정벌론과 서경천도론이 개경 귀족들의 방해로 무산되자 서경(西京)에서 국호를 대위(大爲), 연호를 천개(天開), 군호(軍號)를 천견충의군(天遣忠義軍)이라 하여 대위국(大爲國)을 선언하고 일으킨 반란이다.’라고 기록했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의 독립 운동가이자 민족주의 사학의 선구자인 단재 신채호선생은 ‘서경천도운동’을 두고 '조선역사상 1천년래 제1대 사건'이라 했다.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의 실상은 ‘낭가(郎家)와 불교 양가 대 유교의 싸움이며, 진취 사상 대 보수 사상의 싸움이니, 묘청은 전자의 대표요 김부식은 후자의 대표였던 것이다. 묘청이 패하고 김부식이 이겼음으로 조선사가 사대적, 보수적, 속박적 사상인 유교 사상에 정복되고 말았다.’고 해석하고 있다.

 

왜 똑같은 사건이 하나는 ‘난(亂)으로 또 하나는 ’일천내 일대사건‘으로 달리 보게 되었는가? 그것은 한마디로 역사를 어떤 안경으로 보는가하는 사관(史觀)의 차이다. 같은 물이라도 그것을 담는 그릇의 모양에 따라 형태가 다르게 보이듯 역사도 마찬가지다. 우리역사에는 수많은 민중의 봉기가 있었다. 양반들이 기록한 역사는 민주의 봉기를 난(亂(난))으로 기록한다. 봉기가 난으로 기록된 역사는 양반중심의 사관에 의한 기록이요, 민초들이 일으킨 난(亂(난))일뿐이지만 민중사관의 입장에서 보면 민초들의 권리 찾기요, 민중들이 삶을 이어가기 위한 생존투쟁이다.

 

 

사관이란 역사를 해석하는 기준이다. 전문가의 시각에서 사실(事實)의 해석이 곧 사관이다. 서경으로 서울을 옮기는 일 하나를 두고 한쪽에서는 ‘난’으로 다른 한쪽에서는 ‘1천년내 일대사건’으로 보이는 게 사관(史觀)이다. 이렇게 역사란 황국신민화라는 식민사관도 있고 왕이나 귀족이 역사창조의 주인이라는 왕조사관도 있다. 민중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보는 민중사관도 있고 민족주의사관, 유물사관 불교사관, 기독교사관... 등 다양하다.

 

실제로 우리역사에 임금님의 역사, 양반의 역사는 있지만 서민의 역사, 민초들의 역사는 없다. 서울의 역사는 있어도 내가 태어나고 자란 지역사는 없다. 왕의 생각, 양반의 생각을 나의 생각으로 만드는 역사란 나를 위한 역사공부가 아니라 이데올로기로서의 역사일 뿐이다.

 

골품제의 경우를 보자.

골품제란 ‘공복(公服)의 빛깔, 착용할 수 있는 옷감의 종류, 관(冠)의 재질, 요대(腰帶) 및 신발의 재질, 수레에 사용하는 장식품의 종류, 일상생활의 용기까지도 골품에 따라 차등 있게 구분하였다는 것까지 자세하게 배운다. 그러나 내 부모의 역사 우리고장의 역사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더구나 우리가 살고 또 앞으로 살아 갈 사회는 계급 없는 평등사회인지 부모의경제력으로 사회적 지위가 대물림되는 양극화가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과거의 사실(史實)을 통해 오늘의 현실을 해석해 내는 일.. 그것은 제대로 된 사관을 배울 때 가능한 얘기다. 서경천도운동을 배우면서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을 가르치지 못하고 골품제를 가르치면서 오늘날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사회양극화를 연계해서 가르치지 못한다면 그런 역사를 배울 필요가 있을까? 역사를 단순히 과거에 있었던 사실(事實)로 파지(把持)의 대상이라면 그런 지식이란 시험 점수를 높게 받을 때나 필요할 뿐이다. 내일의 주인공인 청소년들에게 사관 없는 이데올로기로서의 역사를 가르치는 역사교육은 이제 그쳐야 한다.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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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말 역사의 중요성은 큽니다
    자신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무엇하나 정체성을 가질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장마철 건강하시고요 선생님

    2013.07.06 08:1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맞습니다. 역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라는 역사관부터 제대로 가르치고, 배워야 합니다.

    2013.07.06 08:18 [ ADDR : EDIT/ DEL : REPLY ]
  3. 스스로 찾는 일도 중요하지만...
    제도적으로 찾아주는 일도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잘 보고가요

    2013.07.06 08:3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오늘도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비 피해 없으시기 바라고 늘 평안하십시요..^^

    2013.07.06 09:21 [ ADDR : EDIT/ DEL : REPLY ]
  5. 큰바다로

    역사공부 ,,
    정말 중요 하지요,,참교육님 !! 좋은 주말 되세요^^

    2013.07.06 09:34 [ ADDR : EDIT/ DEL : REPLY ]
  6. 자아를 찾는 데서부터 시작된다는 부분에서 크게 공감이 갑니다. 국사가 단순 암기 과목으로 인식되어 있어 졸립고 따분했던 학창시절이 떠오르는군요. ㅠㅠ

    2013.07.06 11:2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7. 이해하면서 배울순 없는 역사공부 이지만..
    흐름을 이해하면 보다 쉬워지기도 하죠^^

    2013.07.06 13:2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8. 덕분에 좋은글 너무너무 잘 보고 갑니다~
    행복하고 즐건 하루 되시길 바래요~

    2013.07.06 16:2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9. 서경천도 운동은 나중에 금나라를 끌어 들여 고려를 전복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묘청이 내놓은 여러 예언들을 비롯해 많은 것이 '사이비'의 성격을 띠고 있어서 더 문제였죠. 사실 묘청이 뜨기 시작했던 건 서경파의 노력과 인종의 이해관계가 일치했기 때문이지요. 결국, 이 문제로 전쟁이 발발하고, 초반 압도하던 전황이 서경에 불리하게 돌아가자 바로 묘청을 대표로 내세웠던 서경파가 묘청을 바로 숙청했지요. 즉, 그저 얼굴마담이었을 뿐입니다.

    김부식을 탓하고자 한다면, 자신의 자존심을 위해서 쓸데없는 고집을 부렸다는 점에서 찾아야겠죠. 서경 공방전이 벌어지던 상황에서 윤언이를 견제하느라 전쟁이 길어졌다는 것을 비롯한 여러 측면에서 말입니다.

    단재 신채호는 한국 민족주의 사학의 시조로 아주 훌륭한 분이지만, 신채호의 주장이 다 맞는 건 아닙니다. 무엇이든 비판적으로 봐야 하는 법입니다. 게다가 기록을 아무리 살펴봐도 묘청의 난은 민중을 위한 그 무엇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묘청이 누렸던 호화로운 삶이나 묘청이 짓게 했던 어마어마한 규모의 궁궐만 해도 충분히 알 수 있어요.

    2013.07.06 20:3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대단하십니다.
      즈라더님이 어떤 분인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저와는 역사인식에 부분적으로는 차이가 있지만 역사를 보는 안목이 놀랍습니다.

      2013.07.07 05:57 신고 [ ADDR : EDIT/ DEL ]
    • 과찬이십니다.

      그건 그렇고, 부처의 나라, 공자의 나라 운운하는 저 문장은
      신채호의 명언 가운데에서도 최고인 것 같습니다. -_-b

      2013.07.07 06:35 신고 [ ADDR : EDIT/ DEL ]
  10. 사관, 그리고 나와 관련된 역사 ...
    저의 삶을 제대로 한번 되돌아보고 해석해 봐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13.07.06 21:10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