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길'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4.10.14 기도(祈禱)는 주술(呪術)이 아니다 (12)
  2. 2014.08.18 예수님보다 교황에 더 열광하는 교인들...왜? (12)
종교2014.10.14 06:30


'기도(祈禱) 많이 해 주세요'... 교회에서 혹은 성당에서 목사님이나 신부님들이 강조하는 말이 기도다. 기도한 무엇일까? 국어사전을 보면 기도란 신이나 절대적 존재에게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기를 빎. 또는 그 의식이라고 풀이해 놓았다. 그렇다면 돈을 많이 벌게 해주세요’, ‘우리학교에서 전교 1등 하게 해 주세요?’, 또는 미워하는 사람에게 벌을 내려 주십시오....’ 이런 기도도 들어 주실까?

 

성경에는 기도하라는 말이 참 많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5:44)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태복음 77~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를 향 하느님의 뜻이니라.(데살로니카 전서 5:16-18) 때문일까?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21:22)....

 

성서에 나오는 기도하라는 가르침의 전체적인 맥락을 보면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구하라는 말이 아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다. ‘네 원수를 사랑하라’,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처럼 하라혹은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면 그보다 더 큰 사람이 없느니라.’...와 같은 가르침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님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구하라고 하지 않았다.

 

사람이 물에 빠져 죽어 가는데 무릎을 꿇고 하느님 저 사람을 살려 주십시오.’라는 것은 기도가 아니다 진정한 기도는 위험을 무릅쓰고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내는 일이다. 그것이 진정한 기도다. 성서에서 기도를 강조한 뜻은 교회나 집에 앉아 기도문이나 외울 것이 아니나 사랑을 실천하라는 뜻이다. 초대교회는 오늘날처럼 거대한 매머드교회에 수천명의 교인들이 목사의 설교를 듣고 주여...주여... 외치고 아멘을 거듭하는 그런 풍경이 아니었다. 기독교인이라는 것이 들키는 날엔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해야 하는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지하나 다락방에 모여 각오를 다지는 결의가 곧 기도였다.

 

<이미지 출처 : 미디어스>

 

일주일 내내 세상에서 온갖 나쁜 짓을 다하면서 죄를 짓고 살다가 일요일 날 교회에 잠간 나가 내 죄를 씻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면 속죄가 되고 천국에 갈 수 있는가?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 새벽에 교회에 나가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고 다시 죄를 짓고 용서를 빌고 또 짓고 용서를 빌고 이렇게 반복하면 속죄가 되는가? 주변에서는 가난으로 고통 받고 살아가는 이웃이 많은데 더 많은 돈을 벌어 부자가 되도록 기도하는 기독교인들... 자신의 부가 하느님의 축복이라고 감사하는 사람들... 나의 말과 행동으로 이웃이 상처받든 말든 나를 기독인외 되도록 한 것이 하느님의 축복이라고 감사할 일인가?

 

이런 모습을 보면 기독교가 언제부터 구복신앙이 됐는지 이해가 안 된다. 아마 항상 가톨릭교회에서는 성당 주변에 심지가의 길이라는 걸 만들어 놓고 그 길을 걷도록 권장하는 교회도 있다. 아마 그 길을 걸으면서 예수님의 가신 길을 가겠다는 결의를 하라는 뜻이겠지만 그 길을 걷는 것이 십자가의 길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도에 대해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직접 가르쳐 준 기도가 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온 세상이 아버지를 하느님으로 받들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듯이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주기도문이라고 하는 기도는 번역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지만 원문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 핵심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하라는 기도다. 다시 말하면 이땅에 천국이 이루어지도록 실실천하라는 명령이다. 이런 기도를 하라고 가르친 예수님의 뜻이 무엇일까? 지난 해 세계 인구는 713천만명이다. 이 가운데 기독교인(모든 교파 포함)의 수는 2354백만 명이다.

 

전체 인구의 약 3분의 1이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인이다. 이들이 이 땅이 천국을 만들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면 지금쯤 이땅은 어떻게 됐을까? 주문(呪文)이 아니라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실천을 하고 있다면 지금쯤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이 이렇게 됐을까?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2:26)’ 기도는 주문이 아닌 실천이다. 주기도문을 주문처럼 외우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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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정치2014.08.18 06:30


저 사람들 누굴 위해 저렇게 모였을까? 다 자신을 위해서 아닐까요

TV에 나온 시복식 중계현장을 보면서 아내가 혼자말처럼 한 말이다. “....???” 박정희의 고향 구미사람답게 늘 나를 보면 왜 그렇게 세상을 삐딱하게 부정적으로만 보느냐고 핀잔을 주던 사람이다. 박근혜가 당선되고부터 남편인 필자보다 더 반골이 된 아내..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종교가 뭔가?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생겨난 게 종교다. 그것이 신이 나타나 내가 하느님이다라고 했건, 필요에 의해 인간이 만들었건..그래서 생겨난게 종교다. 종교란 죽은 후의 세계, 사후세계가 있는가? 혹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가?하는 문제를 두고 나타난 것임에는 틀림없다.

 

<이미지 출처 : 연합뉴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다. 서로들 내가 믿는 신이 진짜고 절대적이라고 한다. 심지어 한 뿌리에서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수천년을 두고 서로 죽고 죽이는 살육과 전쟁이 그치지 않고 있다. 그것도 교조의 가르침이 사랑이라면서... 종교의 시대가 가고 인간의 시대가 도래 했지만 아직도 인간은 여전히 신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교황신드롬이 나라를 휩쓸고 있다. 심지어 공영방송이라는 KBS는 특정종교시복식을 중계방송까지 마다않는 해프닝을 연출하기도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 어떤 신문기자의 표현처럼 그는 한국에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임에 틀림없다. 세월호 참사로 특별법제정을 요구하는 희생자의 30여일의 단식을 보고 있는 국민들은 이 땅에 구세주라도 나타나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를 기대하는 심정이다.

 

교황이란 누구인가? 교황은 로마의 주교이자 로마 가톨릭교회의 영적 지도자이며 바티칸 시국의 국가원수이다. 한국에서 교황’(敎皇)이라고 번역되는 라틴어 파파’(papa)는 본래 백성을 하느님께로 이끌어 감화시키는 자라는 의미의 교화황’(敎化皇)이었는데, 이는 1614년 이수광의 저서 지봉유설에서 마테오 리치 신부가 쓴 천주실의를 소개하면서 구라파(유럽)의 풍속은 임금을 교화황이라고 하는데 결혼을 하지 않으므로 후손이 없고 어진 이를 선택하여 임금으로 세운다.”는 글에서 비롯한 것이다.[위키백과사전 참조]

 

<이미지 출처 : 헤럴드 POP>

 

성서에 따르면, 내가 천국열쇠를 네게 주노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내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라.( 마태복음 16:19) 예수님에게서 천국의 열쇠를 받은 사람... 그가 베드로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인 시몬에게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마태 16,18)라고 말하였다. 교황은 바로 이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다. 카톨릭 창시 이래 2천 년 동안 총 265명의 교황이 있었으며, 현재 교황 프란치스코는 제266대 교황이다.

 

                                              

프란치스코교황은 왜 존경과 사랑을 받는가? 프란치스코교황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태생이다. 한 때, 화공학자와 나이트클럽 경비원으로 잠시 일하다가 신학교에 입학하여 신학생이 되었다. 1969년에 그는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1998년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 2001년에 추기경, 2013228일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스스로 교황직을 사임한 후에 소집된 콘클라베에서 다수의 표를 얻어 같은 해 313일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가 역대교황보다 특별히 존경받는 이유는 권위를 내세우며 섬김을 받는 교황이 아니라, 솔선수범해서 가난하고 약한자들을 위하고, 청빈과 겸손함을 실천하는 보통사람들의 교황이라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말하면 사랑이다. ‘이웃 사랑하기는 네 몸처럼 하라는 말씀의 이웃이란 옆집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도움을 받지 않으면 생존이 위태로운 사람을 뜻한다. 그런 사람들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고 가르친게 예수님이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누구든지 나에게서 떠나지 않고 내가 그와 함께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예수님은 사랑이다. 미국사람들이 노래처럼 부르는 그런 사랑해가 아니라 예수님처럼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이웃을 위해 나눠주고 더 나눠줄게 없어 자신의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주는 사랑... 그게 예수님의 사랑이요, 그런 사랑을 실천하라는 게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 가는 사람이 걷는 길이 십사가의 길이요, 그 길을 가지 않은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고 단호하게 가르친다.

 

<이미지 출처 : 머니투데이>

 

오늘을 사는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이러한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을까? 물론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오늘날 교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떠나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이웃을 위해 나눔의 삶을 실천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기복, 혹은 구복신앙으로 흐르고 세상에서 물질적인 축복을 하느님의 사랑으로 왜곡해 더 많이 가지고 싶어 안달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솔직히 말해 기독교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종교로 변질됐다. 오늘날 대형교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추악한 모습은 십자가의 길을 걷는 종교인이라 보기 어렵다. 특히 일제강점기시대부터 해방 후 권력의 주변에서 벌이고 있는 기독인들의 추태는 예수님을 팔아먹는 가룟유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예수는 없고 돈과 권력과 세상의 부귀영화를 쫓는 사람들이 예수를 팔아 호의호식하고 약자의 숨통을 조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기독교인 수는 전체 인구의 25%가 된다고 한다. 4명 중 한 명이 기독교인이라는 말이다. 세계70억 인구 중 기독교인 수가 229245만명으로 약 3분의 1이 기독교인이라고 보면 이 사람들이 예수의 길, 심자가의 길을 걷는 다면 이 세상은 예수님이 가르친 이 땅이 천국이 돼도 벌써 되고 남았다.

 

이번 프란체스코 교황의 시복식 행사에 참여한 사람 수가 무려 100만명이라고 한다. 물론 그들이 모두 기독교인은 아니겠지만 이들이 진정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사람들이라면 세월호 특별법도, 제주강정해군기지도, 밀양송전탑문제도, 지금도 노동자들이 주인되는 세상을 위해 혹은 단식을 하고 혹은 투쟁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세상이 댔을 것이다. 더구나 이명박, 박근혜대통령이 기독교인이라니... 불가능할 게 없다. 박근혜율리아나는 예수처럼 살고 있을까? 가난한 자의 숨통을 조이고 부자들편에 서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있는 자... 아닌가?

 

가난한 자의 하느님, 고야와 과부와 병든자와 고통받는 자, 그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처럼 하라는 가르침을 쫒지 않는 자를 어떻게 기독교인이란 할 수 있는가? 우리는 프란체스코교황이 세계인들로부터 존경 받는 이유는 그가 역대교황보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더 많이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예수님은 교황이 아니라 그의 가르침을 가장 성실하게 따르며 실천하는 사람을 가장 훌륭한 사람이라 인정할 것이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 하니라십자가를 거부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 어떻게 예수님의 제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