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정치2016.07.25 06:48


방학이 시작되기도 전에 40도 가까운 불볕더위다. 방학이 되어도 방학이 없는 아이들... 학원시간을 쪼개 겨우 가족 휴가를 떠나는게 우리네 서민들의 삶이다. 휴가라고 찾아가는 곳이라고 해야 북새통을 이루는 해수욕장이나 유명 계곡정도다. 가정의 추억을 남기는 것도 좋지만 고생도 추억이 될까? 이번 방학은 땀띠와 눈병을 얻어 오는 고통스런 방학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오붓하게 계획을 세워 체험 학습을 다녀오는 건 어떨까?    

마산에서 30년 가까이 살면서 가끔 가본 곳이다. 대구로 가다 버스 차창에 보이는 모습을 곁눈으로 지켜 보기도 하고 학교에 근무할 때 선생님들과 함께 다녀오기도 했던 곳이다. 같은 곳이지만 분위기나 안내자가 누군가에 따라  여행의 맛은 다른가 보다. 소풍처럼 풍광만 보고 돌아오는 여행이야 차라리 TV에서 전문 사진작가가 찍은 동영상이 훨씬 더 잘 보일수도 있지만 역사를 해설하는 그것도 어떤 시각에서 역사를 보는가의 여부에 따라 여행의 맛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창녕군이 주최하고 경남도민일보 자회사인 유한회사 '해딴에'가 주관한 '우포늪생태체험장과 창녕의 숨은 매력' 팸투어'에 갔다가 만난 창녕은 지금까지 수박겉핥기로 지나친 창녕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우리 팸투어 일행의 일정은 첫날이 17일 오전 교동·송현동 고분군을 시작으로 성씨고가, 18일 만옥정~석빙고~창녕시장~ 동삼층석탑~하씨고가 ~ 관룡사 ~ 옥천사터 순으로 탐방했다. 

장마면 유리에 위치한 지석묘는 청동기시대 대표적인 무덤으로 지석묘라 부르며 규모가 크거나 부장품이 많은 것은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고인돌은 네개의 받침돌을 세워 지상에 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한 덮개 돌을 올려놓는 탁자식과 땅 속에 무덤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 식이 있다. 이 잘 생긴 창녕 지석묘는 바둑판 식으로 7기의 고인돌이 북두칠성모양으로 무리지어 있었는데 지금은 파괴되어 2기만 남아 있다. 

팸투어 일행이 두번째로 찾은 곳은 교동·송현동 고분군이다.창녕 고분군은 창녕에서 밀양으로 가는 국도변에 위치한 5~6세기 경 가야 연맹을 이루는 나라 중 하나였던 비화가야(非火加耶) 왕들의 무덤으로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사적 제514호)이 있다. 송현동 고분은 목마산 기슭의 무덤으로 1지역과 2지역으로 나누어진다. 1지역은 목마산 기슭의 16기, 2지역은 20기정도가 있엇지만 지금은 대부분 논으로 변해 본래의 모습을 볼 수 없다고 한다.    

교동고분군은 화왕산 서쪽 기슭의 목마산성 아래에 있는 송현동 고분군과는 현풍으로 통하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서남쪽에 위치한 대형 고분군이다. 교동에는 왕릉이라고 불리는 대고분을 중심으로 주위에 대소 수십 기의 고분들이 모여 있었으나, 현재는 8기만이 남아 있고 그나마 봉토들의 파손이 심하다. 이 고분군은 1918년에서 1919년 사이 일본인에 의해 그 일부가 발굴, 조사되어 유물은 대부분 일본으로 옮겨가고 지금은 금봉관을 비롯하여 순금이식(純金耳飾) 등 각종 귀금속으로 된 장신구와 동, 철제의 무구, 토기 정도다. 놀라운 것은 창녕 송현동 15호분에서 1,500년 전 고대(古代) 순장(殉葬) 인골(人骨)이 발견돼 순장풍습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창녕 하면 억새태우기를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순수비를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창녕을 여행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망우정이다. 망우정이란 ‘근심을 잊고 살겠다.’는 뜻이 담긴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곽재우(郭再祐 1552~1617)장군이 만년을 보냈던 곳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곽재우장군은 의령에서 의병을 일으켜 함안, 연산, 창녕 등지에서 홍의장군으로 불리면서 많은 전공을 세웠다. 장군의 공적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이 고을 유림들이 뜻을 모안 1789년 정조 13년에 여기 높이 180Cm, 너비 70Cm의 유허비를 세워 의병장 곽재우의 전공을 기념비하고 있다.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역사적으로 권력을 놓고 암투를 벌여 파벌을 만들어 피를 흘리거나 당파를 지어 대립과 갈등을 빚어 왔다. 곽재우장군은 하사한 권력조차 거절하다 거절할 수 없어 맡았던 절도사를 1600년 봄에 병을 이유로 삼아 경상좌도병마절도사를 사직했는데 이 때문에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2년 동안 전라도 영암으로 유배되었고, 그 후 현풍 비슬산에 들어가 은둔생활을 하다가 1602년 영산현 남쪽 창암진(지금의 창녕군 도천면 우강리) 강가에 망우정(忘憂亭)을 짓고 기거하였다. 곽재우장군은 이 정자를 자신의 자손이 아닌 벽진이씨 이도순(李道純)에게 망우정을 물려주었는데, 그 후로 명칭이 여현정(餘賢亭)으로 바뀌었다.

관광지 치고 가장 매력없는곳이 박물관이나 공원이다. 공원이 매력없다는 뜻이 기껏해야 어느 지역에서 출토됐거나 발견된 석물 몇조각을 모아놓고 무슨 역사공원이니 하며 거창한 선전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창녕의 만옥정 공원은 그 성격부터가 다르다. 신라 진흥왕의 순수비 하면 창녕군 창녕읍 교상리에 가야의 일파 세력이 있었던 경상남도 창녕군 지역을 정복하고 561년에 세운 국보 33호 척경비다. 이 비에는 왕을 수행한 신하들의 명단이 직관, 직위, 소속의 순서대로 나열되어 창녕객사와 함께 만옥정공원 내에 있다.

창녕이 역사의 고향이라는 것은 징흥왕의 순수비뿐만 아니다. 살아 있는 아버지를 두고 왕이 된 사람.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 그는 아들의 나라 조선을 지키기 한치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소용돌이 치는 서양침략에 대비해 척화비를 세운다. 이 척화비는 신미양요가 일어났던 1871년에 처음 세워졌으며 비석에는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양이침범 비전즉화 주화매국.ㅡ해석:서양 오랑캐가 침범해 올 때 싸우지 않음은 곧 화친을 주장하는 것이며,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곧 나라를 파는 것이다)라는 글씨를 크게 새겨져 있다. 

이런 척화비에는 작은 글자로 '우리의 자손 만대에 경고하노라(戒我萬年子孫). 병인년에 만들고 신미년에 세우다(丙寅作 辛未立)'라는 글씨가 있다. 원래는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흥선 대원군의 명령하에 처음 만들어졌고 1871년 신미양요까지 겹치면서 두 번의 양요를 다시는 겪지 않는다는 뜻에서 또 조국을 침범하여 피해를 입힌 양놈들과는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흥선 대원군과 위정척사파 및 유림들의 확고한 입장과 강경책 등을 담아 지어졌다. 

척화비는 신미양요 이후 한양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 널리 세워지게 되었으나 흥선 대원군이 청나라로 납치되어 정치에서 실각되고 명성황후 민씨가 환궁하여 집권을 잡게되고 문호개방을 가속화하면서 명성황후의 명령에 따라 모두 철거되거나 매장되었다가 발굴해 이 만옥정 공원에 옮겨 놓았다. 

 만옥정 공원에는 근현역사의 보고다. 물론 해설사의 시각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우리 일행에게 해설해 준 김훤주기자의 해성은 여행의 진가를 더해주고 있다. 창녕이 고향이라는 점도 그렇지만 그의 해박한 역사지식은 듣는이로하여금 역사에 대한 안목을 넓혀 준다.     

방학이 되기 바쁘게 학원에서 학원으로 내몰리는 아이들... 이제 부모의 과욕으로 경쟁 교육에서 벗어나 창녕으로 가보세요. 역사를 알면 세상이 보입니다. 거기다 세상을 보는 안목까지 갖춘 해설사를 동반한다면 금상첨화겠지요. 근현대사가 숨쉬는 고장 창녕에서 여러분들의 자녀가 세상을 보는 암목을 키우는 보람 있는 방학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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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을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가족들의 아픔에 함께 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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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0.01.04 11:19



권영길의원이 대통령에 출마해 내건 공약 중의 하나가 ‘무상의료, 무상교육’이었다. 이 공약에 대한 주권자들의 반응은 냉정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니 ‘가능키나 한 일일까?’ 등 한쪽 귀로 듣고 한 쪽 귀로 흘리는 경향이었다. ‘무상교육, 무상의료’는 정말 불가능하기만 한 일일까?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선진국에서는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공부를 하겠다는 학생들은 얼마든지 무상교육으로 또 몸이 아프면 국가가 무상으로 의료를 해 주는 것이 당연한 일로 생각하고 있다.

삼성과 현대자동차의 3세들인 이재용과 정의선이 나란히 1조원 대 자산가가 됐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이 되어 40년동안 절약하고 또 절약하면서 살다가 퇴직하면 고작 1~억이 정도다. 그런데 1968년생인 이재용과 1970년생인 정의선이 어떻게 1조원대의 재산가가 될 수 있었을까?


<이랜드퇴출 박성수 구속 민주노총 1000인 중앙선봉대_청와대 대통령 면담 및 항의서한 전달하기 위해 도로에 누워 비정규직 철폐, 박성수 구속을 외치고 있다./노동과 세계>

이재용·정의선이 자신들의 능력이나 정당한 노력으로 그만한 재산을 축적했다면 축하하고 박수쳐줄 일이다. 정당한 노력의 대가를 시샘할 사람은 별로 없다. 문제는 그들의 자산축적 과정이 온갖 편법과 불법이 난무하는 범죄백화점을 방불케 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이른바 탈세와 세금포탈은 기본이고, 위증, 배임, 횡령, 특혜, 내부자거래, 범죄사실 은폐·축소, 증거인멸 등으로 불리기도 하고, 좀 점잖게 표현하면 ‘부의 대물림’이다.(‘아그리파’ 블로그에서)

국민은행에서 최근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상위 20%가 전체 개인금융자산의 71%를, 상위 5% 38%, 상위 1%가 19.4%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상위 5%의 사람들이 전체 38%의 금융자산을 소유하고 있고, 부동산은 더 심각해서 상위 10%의 점유비는 현재 90%를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총액으로 따지자면 100명중에 부자 5명이 우리나라 돈의 거의 반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땅과 집은 100명중에 10명이 90%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주택보급률은 105.9%지만 자가 점유율은 55.6%로 전 국민의 절반이 세입자다. 전체 1588만7000가구 가운데 무주택가구가 631만 가구로 전체의 39.7%를 차지하고 있다. '한 사람이 무려 1083채 집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1천7백만명이 셋방살이 떠돌고 있는 게 현실이다.

소득 양극화는 개인의 능력차 때문일까? 아니면 부자들에게 유리한 정책 때문일까? 한가지 예르 들어보자. 우리나라는 납세자와 담세자가 같은 직접세와 납세자와 담세자가 다른 간접세 비중이 각각 51.2%,48.8%로 미국의 7.3%의 7배에 달하는 수치다. 일본의 37.6%보다 높다. 다만 독일(58.6%)나 프랑스(58.8%)보다는 간접세 비중이 낮다. 직접세는 소득수준에 따라 누진적으로 세금을 내지만 간접세는 소득수준과 관계없이 똑같이 세금을 낸다. 삼성 이재용씨가 맥주 한 병을 마실 때 내는 세금과 서울역 노숙자가 맥주 한 병을 마실 때 같은 세금을 낸다는 뜻이다.

간접세를 직접세보다 높이며 ‘빈익빈 부익부’를 심화시킨다는 것은 상식이다. 빈부격차를 줄이고 소득의 양극화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간접세의 비중을 높이는 것은 물론 특별소비세, 이전 수지, 최저 임금, 사회보장비를 높여야 한다. 이와 함께 의무교육을 확대하고 국민주택 보급을 확대하는 것이 모든 국민이 골고루 잘 살게 하는 길이다. 소득재분배정책을 외면하고 부자들 세금이나 깎아주는 정부는 빈부격차를 확대할 뿐이다. 재분배는 외면하고 효율과 경쟁만 주장하는 정부는 부자 이익만 지켜준다. 구멍가게와 재벌이 운영하는 홈플러스 간의 경쟁이 가당키나 한 일일까?

경쟁과 효율을 무시하자는 말이 아니다. 과표기준을 못채워 세금을 안 내는 사람이 전체 근로소득자의 50%나 되는 게 우리나라다. 부잣집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부자가 되고 간난한 부모를 만났다는 이유만으로 자자손손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공평하지 못하다.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게 정치요, 경제제도다. 양반의 뼈에 등급을 매기는 골품제와 주인이 죽어서 필요한 하인이 있어야 한다는 이유로 생매장하던 순장제도가 없어졌다고 복지사회가 도래하는 건 아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평등해지자는 말이 아니다. 일한만큼 대접받는 사회. 그래서 사람이 사람대접 받는 사회를 만들 수는 없을까?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