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34개국 중 수학 1위, 읽기 1∼2위, 과학 2~4위, OECD 비회원국을 포함한 전체 65개국 중에서 수학 3~5위, 읽기 3∼5위, 과학 5~8위로 최상위 성취를 보였다.”

 

12월 3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총 65개국(OECD 회원 34개국, 비회원국 31개국)의 만 15세 학생 51만 명(한국은 5201명, 고등학교 140개교, 중학교 16개교 참가)을 대상으로 실시된 2012년 OECD 국제학업성취도 비교 평가(이하, PISA)에서 위와 같은 결과가 나왔다며 최상위권 성적 홍보에 열심이다.

 

                                     <이미지 출처 : 오마이뉴스에서>

 

이번 PISA 결과 발표를 보니 언젠가 ‘핀란드 1등 한국 2등’ 결과를 놓고 핀란드와 우리나라 교육당국자의 대화가 생각난다.

 

1985년 우열반 폐지, 경쟁은 필요 없다. 교실에서의 경쟁은 필요 없다. 협동이 살 길이다. 교실에서 협동을 위해 성적표에서가 사라지는 등수.

 

오늘은 못하지만 내일은 잘할 수도 있고, 수학은 못하지만 언어는 잘 할 수도 있는 건데, 몇 번의 시험으로 우열을 가리는 것이 학생 개인에게나 사회전체에게나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1971년 이후, 정권은 바뀌어도 결코 바뀌지 않았던 교육 원칙.

 

그 이유, 경쟁이 아닌 협동, 그것이 생존을 위해 더 필요한 방법,

학교에서 경쟁만을 배우고 협동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이 사회의 미래를 책임진다면, 과연 그 사회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요?

 

이러한 핀란드교육의 실험결과

 

1. 세계에서 가장 낮은 학생들간의 학업성취도 편차

2. OECD 주관 국제학업 성취도 평가 PISA 연속 1위.

 

세계 학력평가에서 핀란드 1위 한국 2위로 결과가 발표되자 한국 교육관계자는 핀란드 교육관계자들에게 말을 걸었다.

 

“허허, 근소한 차이로 우리가 졌습니다.

 

그러자 핀란드 교육관계자가 허허 웃으면 말했습니다.

 

“저희가 큰 차이로 앞섰습니다.

 

핀란드 학생들은 웃으면서 공부하지만 한국 학생들은 울면서 공부하지 않습니까?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이번 발표도 마찬가지다.

 

수학 1위, 읽기 1∼2위, 과학 2~4위...를 자랑만 할 일일까?

 

‘수학 관련 활동 참여’지수(수학공부시간, 방과 후, 경시대회 등과 직결)를 제외하고 수학에 대한 흥미도, 가치판단, 수학 불안감 등 7개 항목 모두 OECD 평균보다 훨씬 낮았다. 특히 수학에 대한 흥미(내적동기), 수학에 대한 가치인식(도구적 동기), 자신의 수학적 능력에 대한 믿음(자아효능감, 자아개념) 등 가장 핵심적인 정의요소는 최하위 수준을 보였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수학공부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수학공부에 대한 흥미와 목표의식은 매우 떨어지고 있음을 보인 것이다. 이번 성적표는 세계 최장시간 학습노동과 지나친 선행학습과 문제풀이위주의 학습의 결과다. 더구나, 지구촌에 유례없는 선행학습과 사교육이 가장 집중되어 있는 시기가 중3, 고1 시기다.

 

                                           <이미지 출처 : EBS에서>

 

세계 만 15세 학생들이 토론실에서, 실험실에서, 사회현장에서 호기심을 해소하고 배움의 즐거움을 누릴 시간에 우리나라 학생들은 야자교실, 학원, 독서실에서 문제집을 붙잡고 밤을 지새우고 있다. 성취도가 낮을 이유도, 흥미도가 높을 이유가 없다. 고등학생의 성취도는 좋게 나타나더라도 흥미와 동기에 커다란 문제를 보인다면 대학과 그 이후의 성취도는 좋게 나타나기 어렵다. 마라톤에 뛸 선수에게 100M 전력질주훈련만 시키고 있는 셈이다.

 

학습흥미 즉, ‘배움의 즐거움’은 우리나라 교육의 진전을 측정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잣대다. 이 기준으로 보면, 박근혜 정부의 꿈과 끼를 살리는 교육은 헛구호로 귀결될 공산이 크다. 최근에 발표한 정부의 ‘입시정책과 일반고역량강화방안’은 학생들에게 배움의 즐거움을 끌어내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성적경쟁의 강도를 더욱 높여 주기 안성맞춤이다. 모두의 성취감을 위한 핵심적인 ‘교육환경 개선책인 학급당 학생 수 공약’은 실종위기에 놓였다.

 

성취도와 흥미도와 같은 핵심적인 정의요소는 최하위 수준을 면치 못하면서 어떻게 꿈과 끼를 살리는 교육을 하겠다는 것인가? 박근혜정부가 진정으로 교육을 살리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PISA평가 결과에 대한 냉철한 판단과 함께 교육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기초학력진단평가 문제로 논쟁이 뜨겁다. 기초학력 진단평가란 ‘학기 초 학교 학습에 필요한 능력을 진단하는 평가로 읽기, 쓰기, 기초수학 영역의 기초학력 도달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평가’다. 국가수준 기초학력진단평가가 있기 전에는 초등학교 담임교사가 자신이 맡은 학급의 학생들 중 부진학생들을 파악하기 위해 쪽지시험이나 면접, 대화방식으로 진단평가를 해왔다.

기초학력진단평가는 2002년부터 전국단위 국가 수준으로 처음 시행, 올해는 3월 8일, 경남을 비롯한 경북, 대구 등 전국의 10개 시도교육청 산하, 초등학교 4~6학년, 중학교 1, 2학년을 대상으로 시행했다. 서울, 경기, 강원, 전남, 전북, 광주 등 6개 시도교육청은 교사별·학교별 자율 선택으로 치른다고 발표한 바 있다. 진보교육감들은 일제고사 선택권을 준 반면, 보수교육감들은 일제고사를 더 강하게 확대한 것이다.


3월 8일 전국에서 실시한 전국단위 학력평가는 원칙적으로 초등학교 4~6학년, 중학교 1, 2학년을 대상으로 시행하지만 초등학교 6학년의 경우 10개 교육청에서 모두 시행했다. 상당수의 시도교육청에서는 중2의 경우 기존 국, 수, 사, 과, 영 등 5개 과목에서 역사를 새로 넣어 6개 과목 시험을 치르는가 하면 충남교육청의 경우, 시험 대상이 아닌 초등학교 2학년과 중학교 3학년까지 진단평가를 실시해 논란을 빚고 있다.

기초학력진단평가란 담임교사나 교과담당교사가 자신이 가르칠 학생들의 읽기, 쓰기, 기초계산능력을 파악하기 위해 치르던 진단 평가였다. 원론적으로 기초학력진단 평가란 담당학급의 교과목의 수준을 확인, 학습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자료를 얻기 위해 실시하는 시험이다. 옛날에는 부진아 지도를 위해 담임교사가 학기 초 국어의 독해능력, 낱말 쓰기, 문장 쓰기와 수학의 경우 기초계산능력 여부를 진단, 연간 개별지도를 해 왔다.


담임교사나 교과담당교사가 해야 할 일을 왜 국가가 똑같은 문제로 같은 날 일제히 시행하는가? 2008년 9월, 당시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일제고사가 학력이 부진한 학생은 보충지도를 실시하고, 우수학생에게는 성취동기를 부여해 학교 교육을 내실화할 수 있다고 판단, 교과부가 주관해 전국단위로 일제히 시행하고 있다. 국가가 기초학력진단평가에 개입하게 된 이유는 6월과 12월에 치를 전국단위 학력고사의 성취도를 확인, 서열을 매기기 위해서다.

국가수준 기초학력진단평가에 대해 교육 전문가들 중에는 일제고사를 통해 지역·학교 간 학력 격차를 파악하고, 평가 결과를 교수 및 학습법 개발에 활용한다면 공교육의 질을 높이고 교육 경쟁력도 키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교조는 “진단평가를 핑계로 다수의 학교들이 0교시와 7교시를 강행하며 6월 전국일제고사를 대비하는 움직임까지 일고 있다”며 “교과부는 학교 교육과정을 파행으로 몰아가는 주범인 일제고사를 전면 폐기하고, 시도교육청은 일제고사 방식의 진단평가 강행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ㄱ' 초등학교의 경우 초등학교 6학년을 대상으로 아침 자율학습시간에 문제집을 풀이하거나 7교시까지 교과진도를 나가기를 강요하는 곳도 있다. 결국 학업성취도 평가에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교육과정을 파행적으로 운영 학생들의 건강은 물론 응시 과목인 ‘국, 수, 사, 과, 영’ 중심의 파행적인 시험문제풀이 중심의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의 경우 학업성취도 수준이 전국에서 하위였던 초등학교에서는 인성교육은 뒷전이고 0교시수업, 방과후와 주말 보충수업, 심지어는 방학까지 반납하고 문제풀이식수업을 강행, 학교별, 학급별, 개인별 경쟁을 유도하는 사례들이 많았다. 교육과정을 정상운영으로 학교교육을 정상화해야 할 교과부가 시험성적으로 전국의 학생들을 한 줄로 세워 무한경쟁을 유도, 교육파괴에 앞장서고 있다. 교과부는 지금부터라도 전국단위 학력진단평가는 물론 전국단위 학력성위도 평가를 포기해 공교육 정상화에 나서야 할 것이다.


- 이기사는 충남도청인터넷신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http://news.chungnam.net/news/articleView.html?idxno=79745)
위의 이미지들은 다음 검색에서 가져왔습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이미지 출처 :다음 검색에서>

교육자. 그는 누구인가?

교육자란 어떤 사람인가?


교사들은 ‘내가 지금과 같이 가르치면... 지금처럼 학교를 경영하고, 지금처럼 장학을 하면 피교육자들이 훌륭한 인격자로 성장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는 왜 이렇게 많은 지식을 가르쳐야 하는가?’, ‘제자들에게 열심히 문제풀이를 해주어 일류대학에 하나라도 더 보내는 게 교육자로서 할 일을 다 하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을까?

현행 교육과정이 길러내고자 하는 인간상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교육자는 과연 얼마나 될까?
고위공직자 청문회를 보면 교직에 평생 몸담았던 사람이라면 자괴감을 느끼게 된다. ‘왜 학교에서 우등생이었던 사람이.. 사회 지도층인사들이 저렇게 부정부패를 밥 먹듯이 할까?’

자회지도층 인사 중에는 왜 부도덕한 사람이 많은가?  

‘왜 학교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저렇게 이기적이고 파렴치한 사람이 많을까? 왜 병역기피, 탈세, 부동산투기, 위장전입, 이중국적소유자...들이 많을까?..., 일류대학을 나와 고위공직자나 재벌이 되면 도덕결핍증환자(?)가 되는 것일까?…. 그들은 분명히 학교에서 모범생이었고 우등생이었을텐데... 학교교육을 많이 받으면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했는데... 훌륭한 사람과 출세한 사람은 다른 사람일까...?’


교사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전공과목을 이수하고 자격증을 취득해 교단에서 자신이 전공한 교과서를 금과옥조로 가르치는 사람일까? 교사가 ‘교육에 대한 본질적민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나 자신이 가르치는 교과서에 기득권자의 논리, 자본의 논리인 이데올로기가 숨어 있지 않을까 고민해 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교사는 교과서만 잘 가르쳐야 하는 사람이어야 하는가? 내가 교사이니까, 내가 전공한 과목을... 교과서에 담긴 내용을... 학생들에게 주지시키는 것이 교사가 할 일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훌륭한 교사일까?

부모들은 학교교육이 제대로 된 인격자를 길러내고 있다고 믿는가? 

부모들은 어떤가? 자녀 교육에 대해, 학교 교육에 대해 얼마나 생각하고 고민했을까? 이 세상의 부모들 중에서도 ‘내 아이가 지금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을 그대로 배우면 어떤 인격자로 자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학교에만 보내면...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해 하면... 좋은 성적만 받으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을까? 아니면 내 아이만 일류대학에 갈 수 있다면.... 경쟁에서 이길 수만 있다면 어떤 인격자로 길러질 것인가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학교가 길러내고자 하는 인간상은 어떤 모습일까? 학교교육을 일컬어 의도적인 교육이라고 한다. 대통령령으로 ‘교육과정’이라는 걸 만들어 교과목을 정하고 내용을 담아 연간 시수를 정해 교육법이 규정한 목적을 달성하는 게 학교교육이다. 목표치에 도달한 정도를 성취도에 따라 우열을 매긴다. 교사들은 ‘성취도 평가를 잘 받은 학생이 교육의 목표를 달성했다고 믿고 있다.

내가 열심히 가르치면 나의 제자가 훌륭한 인격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교사... 자녀를 학교에만 맡겨 놓으면 바람직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학부모들... 이런 교사와 학부모의 믿음처럼 학교는 기대하는 인간을 길러내고 있는가?

자본주의 교육이 길러내고 있는 인간상은 어떤 모습인가?

교육이란 피교육자의 필요나 요구보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간을 양성한다. 봉건제 사회에서는 봉건제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간을...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자본주의가 필요로 하는 인간을... 사회주의에서는 사회주의가 필요로 하는 인간을... 그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양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가 원하는 인간상은 어떤 인간일까? 학교교육의 목표는 '홍익인간(홍익인간의 핵심은 '이타주의')의 이념' 아래 '지덕체를 겸비한 조화로운 인간 양성'(교육법 제1조)이다. 오늘날 한국교육이 이타주의적인 인간,  홍익인간을 길러내고 있는가? (계속)

- 이 기사는 '경남민족예술 예술 IN 예술 人(제 4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