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정치2014.09.16 06:28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다 길에서 강도를 만난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게 되자 버리고 가버렸다. 강도를 만나 죽어가는 사람이 길에 누워있는 사람 곁을 세 사람이 지나간다.

 

가장 먼저 이 길을 지나간 사람은 제사장이다. 제사장은 죽어가는 사람을 보자 모른 체하고 피해 지나갔다.

두 번째 이 길을 지나간 사람은 레위인이었다. 그도 제사장처럼 피해 지나가 버렸다.

 

세 번째 이 길을 지나가던 사마리아 사람은 그를 보고 불쌍하게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려갔다.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두 데나리온을 주면서 이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많이 들면 내가 돌아올 때 갚겠습니다.”

 

<이미지 출처 : 천지창조 블로그에서...>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 본 얘기다. 이 이야기는 어떤 율법교사가 예수가 어떤 사람인지 시험하기 위해 한 질문에서 나오는 얘기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해 두었느냐?”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네 대답이 옳다 가서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예수와 율법교사의 대화 내용이다. 율법교사는 예수께 다시 묻는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이 때 예수께서 대답한 내용이 앞에서 예를 든 그 유명한 강도 만난 사람이다.

 

이해를 돕기 위의 강도만난 사람을 본 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자.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 된 사람을 본 첫 번째 사람과 두 번째 사람은 제사장과 레위인이다. 요즈음 말로하면 성직자요 지식인이다. 당시 제사장과 레위인은 최고의 지도자요, 지식인이요, 기득권층이다. 사랑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이다. 이러한 제사장은 버려두면 죽고 말 강도만난 사람을 두고 가버렸다.

 

세 번째 강도만난 사람을 본 사람은 사마리아인이다. 유대인들은 평소 사마리아인을 마치 문둥병환자를 대하듯 했다. 유대인에게 참혹한 냉대를 받으면서 살아 온 사람들이 사마리아인들이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예루살렘 성전에조차 들어가지 못하게 학대하던 원수지간이다. 제사장도 레위인도 모른 체하고 버리고 간 강도만난 사람을 구해 준 이는 평소 학대받고 살아 온 사마리아인이다. 강도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라고 가르치는 종교,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기독교를 일컬어 사랑의 종교라고 한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처럼 하라는 게 기독교의 가르침이요, ‘원수를 위해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가르치고 있다. 예수는 그런 사랑을 실천한 분이다. 자신을 미워하고 저주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뿐인 목숨까지 내놓는 사랑.... 그래서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기독교는 어떤가? 물론 고통받는 사람, 도움이 필요한 사람 곁에서 그들에게 힘이 도어주고 사랑을 실천하는 문규헌, 문정현신부, 이태석신부...같은 분도 없지는 않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기독교는 갑이 된지 오래다. 성서의 공유사상과는 거리가 멀다. 자본주의정신, 철저하게 세상과 짝하며 그들의 편에서 세상의 열락에 빠져 이 세상에서 쾌락을 누리며 사는 게 축복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기독교가 타락한 것은 전적으로 양의 탈을 쓴 성직자들 때문이다. 말세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나 양들을 미혹한다는 성서의 예언대로 예수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며 미혹하고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예수님이 가르친 강도만난 사랑을 실천하는 사마리아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골방에서 주여, 주여...’ 하며 겉으로는 거룩한 체하고 실천 없는 공허한 기도로 날밤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천국과 지옥과 헌금을 강요하면서... 오늘 날 강도만난 사람을 외면하는 제사장과 레위인이 된 성직자는 하나같이 가짜다. 예수님이 가장 싫어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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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종교2012.07.23 06:30


 

정부가 다음 달 초 발표 예정인 세제개편안과 관련해 종교인 과세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이번 개편 안에 그동안 논란이 됐던 종교인과세문제도 최종 정리할 것이라고 한다. 종교인 과세를 놓고 찬반입장이 첨예하다.

 

종교인 과세 반대론자들은 ‘종교인에 대한 과세는 종교인은 근로자가 아닌 성직자라는 점과  세금을 공제한 돈으로 헌금한 이중과세이기 때문에 소득세가 맞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종교세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종교인들도 종교인이 기 이전에 국가의 구성원인 국민이고,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을 내야 하는데 종교인도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21일 KBS 1TV 심야토론에서 방영된 ‘종교인 과세,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의 토론을 재미있게 봤다. 이 토론에 참석한 사람은 종교인세 반대쪽에서 이억주 (한국교회언론회 대변인, 목사)와 문병호 (총신대 신학과 교수), 찬성쪽에서는 김광윤 (아주대 경영학부 교수)와 이진오 (더함공동체 교회 목사)가 참석했다.

 

토론의 주제가 ‘종교인과세’지만 주제에 비해 불교와 다른 종교는 제외하고 개신교로 한정했던 점이 아쉬웠다. 이왕 주제가 종교인 과세라면 종교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다양한 사람들까지를 포함한 모든 종교인들도 토론자 혹은 패널로 참석해 이 문제에 대한 심도 깊은 얘기를 나눴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날 토론의 핵심이 된 주제 중 종교인 과세반대 토론자의 입장을 보자.

 

첫째, 종교인은 성직자이기 때문에 세금을 수 없다...?

 

종교인이 성직자라는 것은 종교인들 끼리 통하는 말이다. 종교인들은 종교인이기 이전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민 개세주의’(모든 국민이 세금을 내야 한다는 주장)의 원칙에 따라 당연히 세금을 내야 하는 게 맞다. 개신교와 다르게 천주교에서는 신부와 수녀는 임금에 원천징수를 하고 받는다. 개신교 목사들 중에도 일부 양심적인 목사는 자발적으로 세금을 내고 있다. 또한 천주교에서 신부와 수녀 등 모든 천주교 사제는 1994년부터 천주교주교회의 결정에 따라 소득세를 내고 있다. 성직자는 세금을 낼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둘째, 성직자에게 과세하는 것은 이중과세라는 주장에 대해....

 

종교인은 봉사 직업이고, 신도들이 이미 과세한 뒤에 남은 돈을 헌금하는 것이기 때문에 종교인 과세는 이중과세라고 한다. 사회복지단체나 아동보호시설 혹은 시민단체에도 모두 소득신고를 한다. 공무원은 국민세금으로 월급을 받는다. 이것도 이중과세인가.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김광윤교수도 지적했듯이 목사들의 세금이 이중과세라면 운전기사를 고용해 임금을 주면 운전기사가 받은 임금에 대한 과세도 이중과세에 해당되는가?

 

세째, 목회자는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과세는 옳지 않다고 주장에 대해...

 

근로자란 무슨 뜻인가? 노동 혹은 근로라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물리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기능’으로 ‘사람이 생존·생활을 위하여 특정한 대상에게 육체적·정신적으로 행하는 활동’을 통 털어 노동이라고 한다. 선교활동이나 목회활동이 노동이 아니라는 생각은 언어에 대한 이해 부족이거나 아니면 성직(?)이 특수 활동이라는 것은 성직자이기 이전에 국가의 구성원인 국민이요, 모든 국민은 근로한 소득에 대해 당연히 조세의 의무를 져야한다.

 

넷째, 종교단체가 하는 수익사업에 대한 투명한 과세조차 거부할 것인가?

 

현재 종교계는 헌금을 거둘 뿐만 아니라 수익사업도 한다. "부동산 투자, 종교법인 학원들, 종교법인 병원, 종교법인 사회복지시설 등 엄청난 재산이 있어도 통계에는 잡히지 않고 있다. 이를 위해 하루빨리 ‘종교법인 법’을 제정, 수익에 대한 재정투명화를 실천해야 한다. 언제까지 종교단체의 수익사업까지 국가가 모른 채하고 특혜를 줄 것인가?

 

 

전 세계에서 종교인이 세금을 내지 않는 나라는 유일하게 한국뿐이다. 더구나 종교관련 법규가 없는 나라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뿐이다. 통계청의 인구센서스 조사를 보면, 한국의 기독교 신자는 860만 명으로 추산됐다. 십일조 규모가 개인당 월 10만원~15만원을 낸다는 계산을 하면 조 단위가 넘는 돈이 십일조로 나가는 상황이다.

 

헌금뿐만 아니라 종교계는 부동산 투자, 종교법인 학원들, 종교법인 병원, 종교법인 사회복지시설 등 수익사업으로 어마어마한 재산이 있지만 통계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종교법인 법이 제정되어야 하는 시급한 이유다. 국민평등권(헌법 11조)은 물론 납세의 의무(헌법 38조)까지 위반하는 종교인, 면세대상의 목회자도 있지만 연간 10억이 넘는 종교인에게 언제까지 과세 대상이 아니라고 모른 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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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을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가족들의 아픔에 함께 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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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종교2012.05.12 06:30


 

‘국내 최대의 불고 종단인 조계종 승려 8명이 호텔에서 억대 불법 도박을 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수도(修道) 하는 스님이 그것도 담배를 피워 물고 억대의 도박판을 벌이다니...?

 

‘지난 4월23일 저녁 8시부터 이튿날 아침 9시까지 전남 장성의 한 관광호텔 스위트룸에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13시간 동안 포커 도박판을 벌였다. 다음날 아침에 있을 백양사 전 방장 수산 스님의 49재에 참석하기 위해 모인 자리였다. <한겨레신문>’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 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의 3법인의 진리를 터득하는 스님들이... 중생을 계도해야할 스님들이 스스로 욕망을 끊지 못하고 도박판이라니 믿어지 않는다.

 

‘종교는 억압받는 피조물들의 한숨이며, 심장 없는 세상의 심장이며, 영혼 없는 상황의 영혼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Religion is the opium of the people.”) - 칼 마르크스-

 

마르크스는 왜 종교를 아편이라고 했을까? 학자들은 ‘쾌락을 주는 아편에 중독된 사람이 무기력해지듯이 종교라는 쾌락 또는 거짓 희망에 빠진 사람이 현실에서 지배 계급에 저항하지 않고 안주하게 된다’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마르크스의 지적처럼 종교는 아편일까? 아니면 죽음을 해결하는 구원일까? 종교 내부의 헤게모니 쟁탈전으로 갈등을 겪는 문제인지의 여부는 덮어두더라도 종교의 본질적인 기능은 무엇일까?  종교가 개인에게는 고통을 치유하는 기적이나 행복을 주기도 했지만 역사적으로 민중들에게는 전쟁과 억압의 고통을 더 많이 안겨 주었다.

 

자본주의와 종교는 공생할 수 있는가? 자본주의는 예수님이나 부처님의 가르침과는 코드가 맞지 않는다. 그런 종교가 자본주의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예수님은 폭력이 된 권력과 맞섰다가 십자가라는 잔인한 형벌로 처형됐지만 그분의 가르침과는 다른 길을 걸어 왔다. 불교 또한 전래 초부터 권력의 필요에 의해 혹은 권력의 비호를 받으며 성장해 왔다.

 

부처님이 승려들이 그레인저나 체어맨을 타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승려들이기 때문에 컴퓨터니 SNS까지 외면하고 탁발(托鉢)만 하고 살라는 말이 아니다. 오늘날 불교를 포함한 종교는 마음이 너무 부자이거나 재산이 많다.   

 

 

 

억대 연봉을 받는 목사나 천문학적인 재산을 가진 불교재단에게 면세 특혜를 베푸는 이유가 무엇일까? 억대연봉을 받는 목회자가 교회를 대물림하는 모습을 보면 그들이 진정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종교인지 의심이 든다. 물론 불의한 권력에 맞서 고난의 길을 걷는 종교지도자가 없는 게 아니다.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혼신의 힘을 쏟는 성직자나 자신의 건강조차 돌보지 않고 십자가의 길을 걷는 성직자도 없지 않다.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포커 도박판을 벌인 몇몇 승려들 때문에 불교 전체를 매도할 생각은 없다. 아직도 이땅에는 수많은 성직자와 신자들이 도움이 필요하는 사람에게 다가가 그들의 손발이 되기도 하고 그들과 아픔을 함께 하는 성직자도 많다.

 

자기희생의 살신성인을 실천하는 성직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가 다수의 국민들의 비난을 받는 이유가 뭘까? 난세를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종교지도자들이 심어놓은 씨앗... 그 열매가 부처나 예수를 닮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종교2012.03.05 07:00



오마이뉴스 기사를 보다가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이제까지 가톨릭이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해왔는데 이번에 수백 명이 내려오면 내려가 가톨릭과 맞장을 뜨겠다'

개신교 목사가 "기독교인이 가톨릭과 '맞장' 뜨겠다"는 제목의 기사 중 일부다.

기독교사회책임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서경석 목사 얘기다. 서경석, 그는 누구인가? 한 때 민청학련 사건으로 수감되기도 했으며 경제정의실천시민운동협의회 사무총장을 지내기도 했던 인물이다. 경력을 보니 화려하다.

- 프린스턴 신학교
- 서울고등학교
- 서울대학교 기계학학사
2003 ~ 시민단체 조선족의 친구들 공동대표
1999 ~ 서울세계NGO대회조직위원회 부위원장
1999 ~ 희망의 행진 99 진행본부장
1998 ~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상임집행위원장
1996 ~ 민주당 서울 양천갑지구당 위원장
1995 ~ 경제정의실천시민엽합 경제정의연구소장


1948년생. 시민운동, 거기다 선량이 되고 싶어 야당의 지구당 위원장을 맡기도 하고 그의 아버지는 서광호로 새문안교회에서 언더우드를 돕던 서경조 목사의 아들이다. 아버지 서광호는 세브란스 의전 2회로 졸업한 의사다. 격변기의 시대를 살아오면서 역사의 아이러니를 온 몸으로 체험한 세대다. 목사수업을 받으면서 십자군전쟁을 배우지 않았을 리도 없는데, 새삼스럽게 종교전쟁을 부추기는 천주교와 맞장을 뜨겠다니...?

예수님이 누군가?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처럼 하라’고 가르친 분이다.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면 그 보다 큰 사랑이 없다’고도 가르쳤다. 끝내는 자신의 몸을 제물로 바쳐 사랑을 실천한 예수님의 뜻을 실천하면서 양떼를 인도하는 사람...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는 신자들을 인도하는 사람이 목회자다.

불의를 보면 분노할 줄 알고 그 누구보다도 약자의 편에서야 할... 목자가 성직자다. 생뚱맞게 종교전쟁을 부추기는 얘기는 여기서 접자. 시민운동의 탈을 쓰고 민주투사로 가장한 얘기는 입에 담기조차 부끄럽다. 시민운동을 가장해 작은 예수님으로 위장했던 사람.... 기독교 식 흑백논리로 말하면 이런 목사는 죽으면 천국에 갈까 아니면 지옥에 갈까?


목사란 ‘예배를 인도하며 신도들에게 교의를 가르치는 성직자’라고 한다. 성직자라고 하면 생각나는 사람. 서경석 목사를 비롯해 조용기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 김진홍목사(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 전광훈목사(서울사랑제일교회 목사), 김지철 목사(소망교회 담임목사), 김홍도목사 (금란교회 동사목사)...와 같은 사람이 있다.

아프리카 수단, 가장 척박하고 빈곤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다 48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이태석 신부와 온몸으로 통일을 절규했던 문익환 목사, 한상령목사(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이현주목사(아동문학가)... 생각도 나고 문규현신부(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공동대표), 문정현신부(불평등한SOFA개정국민행동 상임대표 )를 비롯한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 소속 신부들도 생각 난다.

예수님은 한 분인데 왜 이렇게 극고 극의 다른 삶을 사는 성직자가 나올까? 말이 나왔으니 제주 강정마을의 예를 들어 보자.

성직자 중 어떤 분은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서야 한다고 핏발을 세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성직자는 강정마을의 평화를 위해 해군기지 건설은 한사코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제주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세운다는 것은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제주는 비극의 땅이다. 제주도민 3만명 혹은 8만명이... 그것도 국군과 경찰에 의해 어린아이에서 노인까지.... 억울하게 희생됐다는 4·3항쟁. 그 제주의 비극이 일어난 지 64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제 그 상흔이 아직 채 아물지도 않았는데 그 섬 제주에 4층 건물 크기의 탄약고 57개를 만들고 있다. 이지스 탄도미사일 시스템으로 중국을 포위하려는 미국과 항공모함이나 잠수함이 드나들 대형 해군기지를 건설하려는 계획과 강정 주민들의 평화를 지키려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 강정마을이다.
 

도대체 강정 마을의 해군기지 건설을 두고 찬반이 계속될까?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평화가 오는가, 전쟁의 위험이 닥치는가? 강정 마을의 해군기지 건설은 단순한 군사시설이 아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전진기지로 삼기 위해 필요한 시설이 강정마을 해군기지다.

제주에 미군기지가 들어서면 미국과 중국 양자 대립이 아니라 미·중·한국의 관계로 군사적인 대립관계가 형성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미국과 중국과의 대립에 한국의 강정이 양국의 이해관계의 중심에 서 한·미·일과 북·중·러 신냉전 대립구도를 만들 수 있는 뇌관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했던가? 미국의 동북아 전략의 촛점은 중국이다. 실제로 지난 해 11~12월 연이어 실시한 미·일 해상연합훈련, 육상자위대 훈련, 육해공 자위대 통합훈련 등도 모두 중국을 겨냥한 것이었다. 지난 해 1월부터는 한일군사협정 체결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고 한·미, 미·일 동맹으로 연결되는 미국 주도의 동맹체제를 한·미·일 ‘3국 안보 동맹체제’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전쟁을 원하는가? 평화를 원하는가? 성직자가 세계평화를 반대하고 일류의 종말을 앞당길  전쟁을 부추긴다면 믿을 사람이 있을까? 해군기지 건설이 한반도의 평화는 물론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성직자는 온 몸을 던저 막아야 한다. 그게 성직자의 길이요, 예수님의 뜻이 이땅에 이루어지게 한느 길이다. 평화롭게 사는 제주 도민에게 중국의 미사일이나 핵공격의 목표가 되도록 만들겠다는 성직자는 마귀들린 사람 아닐까?  

위의 이미지들은 다음 검색에서 가져왔습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종교2009.04.25 22:55



아내가 수녀 동생이 근무하는 병원에서 뇌수술을 받고 난 후 나는 개신교 신자에서 천주교로 개종했다. 아내를 쫓아 천주교에 나가면서 기절초풍(?)하게 놀랐던 일(신부님이 예수님 자리를 차지했다는 느낌 때문에...)이 있다. ‘영명축일’이라고 했던가? 영명축일이란 기독교인들이 ‘세례를 받을 때 세속의 이름과 달리 따로 영적인 이름을 받게 되는 기념일이다. 세례명이란 보통 성인의 이름을 따서 지어주는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남‘을 의미한다. 가톨릭 신자들은 세례를 받으면 누구나 세례명을 갖게 되며, 세례명은 ‘그 성인의 덕성을 본받고, 그분의 도움을 전구(轉求)하며, 일생동안 자신의 수호성인(守護聖人)으로 공경하고 보호를 받으며, 그분의 뜻을 기리도록 하기 위해 지어주는 이름이다.

본당 신부님 영명축일 때였던가? 개신교에서는 이러한 행사가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미사가 끝난 후 “지금부터 신부님 영명축일 행사를 하겠습니다.” 하고선 축가를 부르고 꽃다발을 전달하더니 행사 마지막에 “신부님께 물적 선물을 준비한 사람들은 앞으로 나오셔서 전달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회자의 안내가 있자 신부님은 강대상 위에 의자를 놓고 앉아 신자들이 가져온 봉투를 차례로 받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내가 기절초풍하게 놀랐다는 이유는 현금봉투를 받는 것도 놀랍지만 나이가 많은 신자들이 내미는 봉투를 높은 자리에서 젊은 신부님이 태연히 받고 있는 모습 때문이었다. 후에 신부님이 받은 봉투는 정말 좋은 일에 씌어 진다는 말을 듣고 다소 마음이 풀리기는 했지만 수십명의 신자들이 바치는 꽃다발도 아닌 현금을 받는 모습에 아연했던 것이다. 뒤에 안 일이지만 ‘세례 때 새로운 이름을 받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남’을 의미하는 것이라는데 이런 식의 행사가 ‘예수님의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남의 의미를 살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지워지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사회는 어느 한 분야라도 건강한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성직자들은 교회는 물론 우리사회가 이지경이 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라고 가르치고 있는 목회자는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이 땅에 하늘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개인만 도덕적인 인간이 되면 가능할까? 예수님은 분명히 가르치기를 ‘너희는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유순하라고 가르치셨다. ’제탓이오, 제탓이오, 제 큰 탓이옵니다‘는 순진한 신자들을 운명론으로 이끄는 이데올로기는 아닐까? 예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뤄지기 위해서는 운명론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불의를 보고 외면하지 말고 싸워서 승리하는...’ 삶이 필요하다고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목회자들은 신자들에게 ‘쉬지말고 기도하라’고 가르친다. 하느님은 그러나 우리가족의 건강이나 남편의 사업이 잘되게... 아들이 무슨 대학에 합격하게.... 병고에 시달리고 있는 가족의 쾌유를 비는.... 이런 기도를 원하실까? ‘너희가 구하기 전에 너희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다 알고 계신다고...’ 했는데 불의를 저지르는 정치인들을 위해 ‘조찬기도’를... 사랑의 하느님을 ‘공포의 하느님’으로, 가르치고 있는 건 아닐까? 이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구복기도가 아니라 하느님 뜻을 이 땅에 이루는 기도, 즉 ‘불의를 보고 참지 않게 하소서... 이웃의 고통을 함께 아파할 수 있게 하소서... 나의 이익을 위해 침묵하는 비겁함에서 이길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소서....’라고 기도해야 하지 않을까?

교회는 왜 타락하는가? 단언컨대 역사의식이 없이 ‘무오류설’을 가르치는 목회자가 있고 지옥을 강조하는 성직자가 있는 한 이 땅에 하느님 나라 건설은 꿈이다. 제정일치시대 세금제도인 ‘십일조’를 강조하기 위해 ‘하나님의 재산을 도둑질하지 말라’고 강조하는 성직자가 있고 교회를 ‘죄 세탁소’쯤 해석하는 목회자가 있는 한 이 땅의 천국건설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성직자들은 왜 성서를 왜곡하는가? 아직도 많은 목회자들은 성서해석을 성직자만이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아닐까?

모든 기록은 진실일까? 사실(事實)이 아닌 사실(史實)은 객관적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의식이 없는 사람들은 사실(史實)을 사실(事實)이라고 믿고 있다. 가치문제가 담겨진 모든 기록은 그렇다. 그래서 사관(史觀)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성서는 어떨까? 성서는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한 기록이기도 하지만 이스라엘의 역사다. 역사란 사관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다. 민중신학이나 해방신학은 이단이고 전통신학만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해석은 누구의 판단일까? 성서의 진위를 논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성서가 역사라면 역사 속의 기록을 전달하는 사람. 예수라는 분을 대중과 만나게 하고 제사를 집전하는 사람. 이런 직분을 맡은 성직자가 성서를 어떻게 가르치는가에 따라 종교의 교의(敎義)는 신자들에게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전달될 수 있다.

전쟁영화가 재미있는 이유는 전쟁에서 ‘죽음의 공포나 배고픔’과 같은 아픔은 증발되고 ‘스릴과 서스펜스’만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종교가 전쟁영화처럼 관념화 되면 교의(敎義)는 실종되고 형식만 남는다. 교의는 실종되고 형식만 남은 교회. 모든 집단이 그렇치만 과정은 필요 없고 결과만 평가되는 집단은 건강할 수 없다. 더구나 목자가 무지하거나 이기심에 눈이 어두워 양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지 못한다면 어떤 결과를 가져 올까? 오늘날 교회가 또 사회가 막가파식으로 치닫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가 성직자들의 책임은 아닐까?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의인 열 명만 있어도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오늘날 한국 교회의 성직자들은 몇 명이나 예수의 모습으로 살까?

(다음은 ‘내가 만난 기독교인’을 이어 쓰겠습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