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2013.09.24 07:06


‘불의에 분노하라’는 책을 쓴 스테판 에셀은 ‘무관심은 악’이라고 했다. 김대중 전대통령은 '불의를 보고 침묵하는 것중립이 아니라 악의 편을 돕는 것...'이라고 했다.

 

세상이 참 요지경이다.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인지 헷갈린다. 어린아이들이 들어도 웃을 뻔한 거짓말을 진실이라고 우기는 정치인이 있는가하면 경제며 교육이며 언론이며 종교까지 구석구석 썩어도 너무 썩었다. 더 기가 막히는 것은 이런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불의를 보고도 무관심하거나 분노할 줄 모른다는 사실이다.

 

 

텔레비전 연속극에 마취되고 야구며 축구에 얼이 빼앗긴 사람들, 얼짱이며 몸짱에 혹은 학벌에 혹은 돈에 이성을 잃은 사람들.... 나라가 잘못 되어 가고 있는데도 개인의 이익이나 안일만을 바라는 사람들, 돈이 눈이 먼 상인들은 사람이 돈으로 보이는지 남의 건강이나 생명에는 안중에도 없는 듯 불량식품을 만들어 예사로 판다.

 

나라를 지키던 군인이 백주 대낮에 총을 거꾸로 들고 주인의 권리를 도둑질한 반역자도 대통령이 됐다는 이유로 존경하고 대접받는 세상이다. 친일한 사람, 민주주의를 파괴한 사람, 심지어 시민을 학살한 사람까지 대통령을 지내고, 국민의 혈세로 경호까지 받고 있는 나라. 집권당이 자기네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권력기관을 동원해 표 도둑질을 해도 남의 일처럼 강거너 불구경하듯 하는 사람들...

 

맹자는 ‘불쌍하게 여길 줄 아는 마음(측은지심 惻隱之心)과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수오지심 羞惡之心)과 양보할 줄 아는 마음(사양지심 辭讓之心), 그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마음(시비지심 是非之心)은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타고 난다고 했는데.... 이제 불쌍한 사람을 보고도 측은해 하지 않고, 잘못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양보니 시비를 가르는 일에도 관심조차 없어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불의를 보고 분노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왜 그럴까?

 

째, 진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살기 바빠 발등에 떨어진 '먹고사는 일'이 급해 한 눈 팔 겨를이 없이 사는 사람들... 진실을 알려야 할 언론은 편파왜곡보도로 이런 사람들의 눈을 감기고 있다. 불의한 세상에 법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착하기만 한 사람, 순진한 사람... 이런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좋기만 할까?  

 

둘째, 진실은 알고 있어도 두려워서 나서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불의한 일인 줄 알고 있어도 '내가 나서서 달라질 게 뭔가?' 혹은 '괜히 앞섰다가 손해 볼 일을 왜 내가 왜 나서는가?'라며 꼬리를 사람이 이런 사람들이다. 보도연맹 사건을 비롯해 아픈 역사가 '나서면 죽는다', '찍히면 손해본다'는 기회주의 인간을 만든 것은 아닐까? 

 

셋째, 이해타산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나에게 이익이 되는 게 선'이라고 판단하는 사람들은 이해타산으로 세상을 본다. 눈앞에 보이는 것이 전부요, 이해타산이 판단의 기준이 돼 손해 볼 짓을 하면 바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철저하게 경제논리로 세상을 살아가기를 좋아한다. 오늘날 경쟁만능의 이기주의 교육은 이런 인간을 지속적으로 양산하고 있다.

 

넷째, 변화와 연관이라는 관점에서 세상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눈 앞에 보이는 현상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일수록 선입견이나 편견, 아집과 고정관념으로 세상을 보고 본질은 모르고 현상을 진실이라고 믿고 있다.

 

불의를 보고 분노할 줄 모르는 사람들...,

삶에 찌들려 앞뒤를 분멸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렇다 치고, 이해타산 때문에 불의를 보고도 침묵하거나 그들의 편에 서서 떡고물을 얻어먹겠다는 비열한 사람들로 인해 세상은 더더욱 삭막해지고 황폐해지고 있다.

 

사람들은 어떨 때 분노하는가?

보통 사람들은 자존심이나 명예 혹은 지위나 재산상의 손해를 입었다고 생각할 때 불같이 분노한다. 정치가 타락하거나 경제정책이 잘못돼 큰 손해를 보고 있어도 그런 것에는 너무나 관대(?)하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을 면치 못하는 사람들... 큰 손해에는 관대하면서 눈앞의 이익에는 한치의 양보도 할 줄 모르는 사람들로 인해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더 척박해지고 더 삭막한 세상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정의가 무너진 세상에 어떻게 사람답게 살 수 있을까? 

 

-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 10점
김용택 지음/생각비행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2.06.27 06:30


 

 

TV조선의 ‘최·박의 시사토크 판’을 보다가 토를 할 뻔 했다. ‘1987년 KAL기 폭파범 김현희’와 대담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저 사람이 115명의 죄 없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사람이라니...? 김현희를 몰라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그가 대담하는 자세가 마치 개선장군의 무용담 같은 자세였기 때문이다.

 

나는 종편이라면 아예 채널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MB 시각에서 제작되는 종편이라면 볼 게 뻔하다 판단 때문이다. 그런데 가입한 카페에서 보낸 메일을 보고 들어갔다가 그만 이런 낭패감을 맛보게 된 것이다.

 

맹자는 말하기를 사람이란 측은지심,수오지심,사양지심,시비지심과 같은 사단이나 인의예지신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의 도리를 하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분노하거나 양심을 속이고 법을 어기는 사람을 보면 의분을 느끼게 된다. 법은 이러한 사람들의 정서를 감안해 정의. 합목적성, 법적 안정성을 실현할 목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는 특정인의 행복이나 쾌락을 위해 다수가 희생하는 그런 사회가 아니다. 건강한 사회란 인정이 넘치는 사회,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똑똑한 사람, 부족한 사람...이 더불어 사는 세상이다. 그런데 남을 해코지를 하거나 사기를 치거나 폭력을 행사하거나 살인을 한 사람이 우대 받거나 특혜를 누리고 있다면 이는 법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친구를 배반하거나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노가 대접받는 사회는 썩은 사회다. 더구나 사람을 죽인 살인범이나 민주주의를 뒤엎은 쿠데타의 주역이 대접받는다는 건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동족의 가슴에 한을 맺히게 한 친일인사나 민주주의를 뒤엎은 쿠데타 주역, 그리고 백주 대낮에 백성을 총칼로 난도질한 살인범 괴수가 대접받고 큰 소리 치는 세상이 됐으니...

 

 

 

내란죄 및 반란죄 수괴 혐의로 사형선고까지 받기도 하고 수 천억 대 비자금 조성 협의로 벌금 28억 원을 선고받았던 전두환이 부활(?)하고 있다. 전두화의 모교인 대구공고에서는 만수무강을 기원하고 행사를 열고 고향에서는 일해공원을 세워 그를 추앙하고 국군의 동량을 길러내는 육국사관학교에서는 사열을 받는 등 영웅대접을 받고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전두환뿐만 아니다. 정부발표대로 믿는다면 승객 115명(한국승객 93명, 외국승객 2명, 승무원 20명)을 태운 KAL기를 폭파해 승객 전원을 숨지게 한 폭파범 김현희는 특사로 풀려났다. 그는 특사로 풀려나 "이젠 여자로 살고 싶다"며 25년째 이 땅에서 아들 딸 낳고 경호원의 보호를 받고 살고 있다니...

 

사람이 살다 보면 실수를 하기도 하고 죄를 짓기도 한다. 그런데 죄를 지은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기회가 오면 다시 그런 죄를 반복할 수 있다는 자세를 가진 사람이라면 피해자 가족들의 심정을 어떨까? 민족을 배신한 대가로 귀족 대접받고 사는 것도 모자라 2세까지 큰소리치고 쿠데타 주역의 딸이 대통령을 하겠다고 그 뒤를 줄을 서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115명의 목숨쯤이야...’라고 생각할까? TV조선에 출연한 폭파범 김현희의 자세는 부끄럽고 죄스러움임 아니라 전장에서 승리한 개선장군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다.

 

친일의 대가로 받은 땅을 되찾겠다고 소송을 하는 사람이 그렇고 광주시민을 학살한 사람이 영웅이 되고 115명의 목숨을 앗아간 폭파범이 개선장군이 되는 나라... 사법부의 심판을 받고 죄 값을 치르지 않았느냐고? 맞다 전두환도 김현희도 죄 값을 치른 게 맞다. 그런데 전두환, 노태우의 삶이 죗값을 치른 자의 모습인가? 제 3자인 나의 시각에서도 그런 느낌이 들었는데 피해자 가족들이야 오죽할까?

 

죄값...? 사법 판단...? 법이 존립해야 하는 목적이 뭔가? 정의의 실현이 아닌가? 이들이 국민이 낸 세금으로 경호를 받고 영웅 대접받고 사는 게 정의사회일까? 민족을 배신한 반역자, 살인자, 테러범, 쿠데타 세력이 존경받는 세상에 어떻게 민주주의를 말할 수 있는가? 이런 세상을 두고 양심을 말하고 법을 말하고 정의를 말할 수 있는가? 아이들 보기가 부끄럽다.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9.23 06:00



                                       <선플운동본부 홈페이지 켑쳐>

‘좋은 게 좋다.’
‘남의 말을 좋게 합시다.’
‘부정적으로 보지 말라’


이런 말은 얼핏 들으면 좋은 것 같지만 사실은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고 대충대충 적당히 살자는 주문이다. 이방원이 정몽주에게 읊어준 하여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가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 게 아닐까?

시비지심(是非之心)이란 ‘옳음과 그름을 가릴 줄 아는 마음’으로 맹자의 사단설(四端說 또는 성선설(性善說이라고도 함)에 나오는 말이다

‘선플운동’이 대통령 글에 선플달기를 하면 학생들의 봉사점수를 준다는 글을 읽다가 생각난 구절이다.



‘선플' 40개 달면 봉사활동 2시간 인정’한다는 학교의 방침에 따라 병원이나 양로원등에 봉사활동을 나가던 학생들이 컴퓨터에 앉아 댓글 달기에 열심이란다.


한상대 검찰총장 취임사에서 종북 좌익세력과의 전쟁을 선포한다는 내용의 기사에
“멋진 검찰 힘내세요. 우리나라를 잘 지켜주세요”

이 대통령 부부의 야구장 키스 사진 기사에 달린

“좋은 사랑하시길 바랍니다”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정말 인간적이고 아름답습니다.”

이런 댓글이 학생들의 봉사활동 점수로 인정받았다.


‘옳음과 그름을 가릴 줄 아는 마음’ 즉 시비지심이란 사물에 대한 인식의 지평이 넓어지면서 나타나는 가치관의 성숙이다.

그런데 시비지심을 가릴 줄 모르는 미성숙한 학생들에게 선플로 봉사점수를 받아 상급학교진학이나 대학에 가는데 유리한 인센티브를 준다는 게 이치에 맞을까?

전북 고창의 한 초등학교 교장이 지난해 봄에 한 학생이 시청각실에서
현 대통령을 ‘명박이’라 부르자 주먹으로 때리고 귀를 잡아당기며
“대한민국에서 꺼지라”고 말해 말썽이 되고 있다. 초등학생이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이 없다는 이유다.


초등학생이 이병박대통령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구별할 수 있는 판단 능력이 제대로 있을 리 없다.
주변 사람들이 한 말을 듣고 대통령 이름을 그냥 불렀다고 ‘대한민국에서 꺼져야할 만큼 중죄를 범했을까? 

이런 수준의 아이들에게 남의 글을 보고 선플을 달라면 어떤 글을 쓸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부끄러운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어짐의 극치이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은 옳음의 극치’이고, ‘사양하는 마음은 예절의 극치’이고,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은 지혜의 극치’라고 했다.

맹장의 <공손추편(公孫丑篇)〉[無惻隱之心 非人也 無羞惡之心 非人也 無辭讓之心 非人也 無是非之心 非人也. 惻隱之心 仁之端也 羞惡之心 義之端也 辭讓之心 禮之端也 是非之心 智之端也]에 나오는 얘기다.


시험문제를 풀이하는 학교.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점수따기로 전락한 학교에서 초중학생들이 측은지심이나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이라는 가치관이 확립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런 아이들에게 어떤 글에 선플을, 어떤 글에 악플을 달아야 하는 지 구별하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거기다 대통령 글에 선플을 달면 봉사활동점수라니....?

<선플운동본부 팝업창:이 팝업창에는 봉사활동점수주기가 근거없는 비방이라며 명예를 훼손이라고 적고 있다> 

말이란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라고 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말이다. 말하는 사람들의 의도를 숨기고 미사어귀로 상대방에게 하는 말은 진실성이 없는 말이기도 하지만 상황에 따라 이데올로기가 되기도 한다.

학교교훈이나 급훈으로 많이 인용되는 말 중에 ‘근면이니 성실, 정직’과 같은 말이 그렇다. 근면한 인간, 정직한 인간을 키운다는 데 무엇이 문제인가 라고 할지 모르지만 ‘근면하기만 한 사람’ ‘정직하기만 한 사람‘은 문제가 많다.

성실한 사람이 마피아 집단에서, 혹은 갱집단에서 살아간다면... 근면하기만 한 사람이 평생 노동자로 살아간다면.. 어떤 삶을 살까? 악플이란 사이버시대 견디기 어려운 인간 심성을 좀먹는 바이러스다. 블로그나 카페를 운영해 본 사람이라면 악플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다 안다.

그런 악플을 달지 말고 선플을 달자는데 반대할 사람이 있을 리 없다. 그러나 사회현상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 선플이라는 유혹은 객관적으로 세상을 볼 수 없게 만드는 마취제다.


‘악성(惡性) 댓글 또는 악성 리플(惡性reply, 악플)이란 상대방에게 모욕감이나 치욕감을 줄 목적으로 인터넷 상에서 상대방이 올린 글에 대한 비방이나 험담을 하는 악의적인 댓글을 말한다. 악플에 시달리다 목숨까지 끊는 사람이나 가족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선플운동을 쌍수로 환영해야겠지만 최근 학생들에게 ’대통령 글에 선플을 달면 봉사활동점수를 주겠다는 비교육적인 선플달기운동본부의 변절(?)에 네티즌들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선플달기운동본부 민병철 이사장(사)은 ‘악플 때문에 고통 받는 분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칭찬과 격려의 선플로 밝고 건전한 인터넷 문화를 만들자는 취지로 시작했다'고 하지만 미성숙한 어린 아이들에게 비판의식을 마비시키는 선플운동은 본의와 다르게 왜곡될 소지가 높다. 뒤가 깨끗지 못한 사람. 허물이 많은 사람들이 ‘좋은 게 좋다‘거나 ‘부정적으로 세상을 보지 말라’는 말을 좋아한다.

아무리 좋은 뜻으로 시작한 운동일지라도 권력의 비위를 맞추거나 철없는 청소년들에게 비판의식을 마비시키는 운동은 사회운동이 아니라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게 하는 이데올로기다. 선플운동본부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부끄러운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라는 맹자의 ‘사단설’을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