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2011.11.02 06:27




‘봉행 대학입학 수능 100일기도’, ‘대한불교 조계종 제 5교구 본사 법주사’

속리산 법주사 입구에 적힌 플랙카드다.

단풍놀이 한 번 못가보고 보낸 가을이 아쉬워 아내와 함께 철지난 속리산을 찾았다가 보아서는 안될 것을 보고 말았다. 법주사 입구에 왜 이런 플랙카드가 붙어 있을까? 부처님께 100일기도를 하면 성적이 나쁜 아이가 좋아진다는 말일까?

부처님에게 그런 영험이 있다고 치자. 수능이란 일정점수 이상을 받는 학생을 기준으로 커트라인을 정해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학생은 낙방시킨다. 부처님이 기도하는 부모의 정성을 생각해 열심히 공부한 학생을 낙방시킨다는 뜻인가?

3법인 4성제는 부처님이 가르쳐주신 계율이 아니던가?
그 동안 계율도 바뀌었나?


다리를 건너 일주문을 지나니 게그 맨 이수근의 ‘대한불교 조계종 신도증’이 사진과 함께 크다랗게 신도증이 게시판에 붙어 있다. 이수근같이 유명한(?) 사람도 불교신자니까 당신도 불교를 믿으라는 뜻인가? 전교를 위해 유명인사(?)를 동원하는 것까지 까탈 부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속세를 떠난 사원에서조차 속세의 상업주의 흉내를 내다니....!!!


보다 놀란 것은 경내를 들어서는 순간 내눈에 들어 온 거대한 불상 때문이었다. 
말로만 듣고 사진으로 보던 거대한 불상이 법주사를 찾아 온 사람들을 위압적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거대한 불상이...’ 크기도 크려니와 금 옷을 입고 있다는 불상에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거대한 불상....!
이 불상은 12억이라는 거금을 들여 2002년 완공된 미륵불이다. 법주사 미륵대불은 신라 혜공왕 12년인 776년 진표율사가 금동으로 조성 했으나 조선시대에 들어와 경복궁을 중수할 때 출조 자금으로 쓰기 위해 '대원군'에 의해 몰수 되었다가 1939년에 다시 불상복원 작업을 시작하여 25년 만인 1964년에 33m 크기의 시멘트 재질 대불이 완성됐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허물어지고 초라하게 보여 1990년 월탄스님과 사부대중이 힘을 모아 시멘트로 된 불상을 헐고 '청동으로 된 미륵불'을 세우게 됐단다.



법주사 입구 마당에 세워진 청동미륵불은 높이 33m, 두께 1천32mm, 무게 150t이나 된다. 법주사 입구에 서 있는 청동미륵불의 위용에 눌려 국보 팔상전, 보물 원통보전, 국보 석연지, 보물 법주사 괘불을 비롯한 대웅전의 모습이 초라하기 짝이 없다.

이 미륵불은 2002년 개금공사(금으로 옷을 입히는 공사)를 위해 3미크론의 두께의 황금 옷을 입히는데 소요된 금의 무게만 해도 2만 1300돈중( 80kg)이나 들었다, 개금공사비만 12억원이 들었다고 하니 그 위용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런데 그것마저 녹이 슬고 색이 변해버려 100kg의 순금으로 개금불사를 다시 한다니....


청동미륵대불은 높이가 12층 아파트와 같은 33m, 무게가 점보비행기와 맞먹는 1백60t으로 청동입상(立像)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란다.
사람들이 불사를 찾는 이유가 뭘까? 물론 신자들의 경우야 다르겠지만 사바세계를 사는 속인들이야 이날만이라도 부처님 자비로 속세의  근심을 잊고 행복한 하루를 보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 아닐가? 그러나 가난한 속인들이 만난 법주사의 거대한 금동 미륵불로 주눅이 들어 마음의 상처나 받지는 않을까?



단풍조차 지고 난 법주사에는 찾는 이들의 가슴 따뜻한 부처님의 자비와 조상들의 지혜로운 모습을 보기보다 불사를 위해 기와를 팔고 있는 스님의 모습에서 거대한 미륵불의 모습에서 가난하고 추운 사람들은 가슴 속으로 속세의 겨울을 재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미륵불은 석가모니불이 입멸한 뒤 56억 7천만년이 되는 때에 다시 사바세계에 출현 하신다고 한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의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약 8억 5천만 명이 ‘심각한 기아상태' 및 ‘만성적 영양실조'에 처해 있다고 한다. 천원이면 북한 어린이가 1주일 양식을 구할 수 있다는데... 이런 현실을 두고 미륵불이 다시 오셔서 12억이나 들여 만든 자신의 모습을 보고 뭐라고 하실까?



부처님의 자비어린 배려이실까?
뒤늦게 찾은 관광객을 위해 남겨 놓은 몇그루의 단풍은 손님에 대한 예의였을까? 부처님의 자비로움일까?


돌아 오는 길에 자화상을 5분에 완성해 주는 거리의 화가를 만났다.
초등학생을 그리고 있었는데 너무나 똑같아 나도 한 번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정말 5분...!
제 얼굴이 도화지 위에 옮겨 앉았습니다.
그런데 제 얼굴을 보고 아내는 전혀 닮지 않았다고 합니다. 주름살도 없어지고 인물도 실물보다 훨씬 예쁘게(?) 그렸기 때문일까요?

불친님들은 어떻습니까? 상단의 제 사진과 이 그림이 전혀 닮지 않았습니까? 
 


법주사에서 망친 기분을 제 얼굴을 젊게 그려 준 화가의 덕분에 웃으면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이제는 늙어서 지팡이를 짚어야 서 있을 수 있는 '정 5품 소나무를 만났다. 들어갈 때도 봤지만 돌아오는 길에 힘겹게 서 있는 늙은 소나무를 두고 올 수 없어서 사진을 찍었다.

법주사를 다녀 오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띠는 보물..?
수령 600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정이품 소나무는 1962년 12월23일천연기념물 제 103호로 지정된 문화재로 높이 15m, 가슴둘레 4.5m, 가지의 길이는 동쪽 10.3m, 서쪽 9.6m, 북쪽10m의 노거수이다.

1464년에 신병으로 고통받던 세조가 온양온천과 속리산을 찾아 치료를 할 때 이 나무 아래 이르러 타고가던 연이 나뭇가지에 걸릴 것을 염려하여 연 걸린다라고 하자 신기하게도 늘어졌던 나뭇가지가 스스로 하늘을 향하여 올라가서 무사히 통과하도록 하였다니... 

세조가 서울로 돌아갈 때는 마침 쏟아지는 쏘나기를 이 나무 아래서 피할 수 있었다고 하니... 세조임금은 하도 신기하고 기특하여 나무에 대하여 전무후무하게도 벼슬을 내렸다는 전설이 깃든 나무이다.

혼자 서 있기고 어렵지만 한쪽은 대수술까지 받았다니... 사람이나 나무나 나이를 속이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인성교육자료2010.11.23 21:49


지난 2006년 8일 일이다. 전남 순천의 선암사 경내에서 태고종 총무원 쪽 승려와 선암사 쪽 승려들의 모습을 보는 국민들은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부처가 되겠다고 수도하는 분들이 죽봉으로 치도 때리고 막가파들이나 할 모습을 연출한 것이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폭행을 하게 했을까? 이날 몸싸움 과정에서 5명의 승려가 다쳐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직원과 26명의 승려가 경찰에 연행되는 추태를 보였다.


자비를 실천해야할 수행자가 이해관계 때문에 상대방에게 폭행을 가하는 저들이 ‘수도를 하는 사람들이 할 일인가?’ 의심이 간다. 싸움의 발단이란 게 총무원장이 누가 되느냐 주도권 다툼인데 막강한 재산이 걸려 있는 문제 때문이다.  

불교의 추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고려시대 불교의 번성과 타락상, 일제시대 친일불교, 해방 이후 이승만 정권의 ‘정화운동’과 비구 대처의 폭력적 종권다툼, 1980년 신군부에 의한 ‘10·27법란’과 군사정권에 순응했던 승려들….

        <선암사 승려들으 몸싸움-사진 SBS에서>

기독교는 어떤가? 기독교는 ‘사랑’과 용서’을 부르짖으면서도, 근대 세계사의 절반을 피로 물들이고 지금도 그 행위는 계속되고 있다. 서기 1096년부터 시작, 무려 200년동안 계속된 십자군 전쟁이 그렇고 이스람권 문화와 기독교 문화 간의 충돌은 지금도 피비린내 나는 살육과 보복이라는 전쟁이 그치지 않고 있다.

도대체 종교란 무엇인가? 종교문제를 말하려면 ‘신(神)이란 실제로 존재하느냐?’는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 BC. 6c 이후 그리이스의 자연철학 이래로 모든 철학의 가장 첫 물음은 ‘세상(만물)의 근원은 무엇인가?’였다. ‘물질과 정신 중 무엇이 근원적인가?’ 이것이 신학을 비롯한 철학의 근본문제요 사물을 보는 관점의 차이다. 이 질문에 대해 ‘물질은 정신과 관계없이 객관적으로 존재 한다‘고 보는 유물론과 ’물질은 정신이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관념론으로 나뉘어 진다. 유물론에서 보면 신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관념론에서는 신이 존재하는 것이다.  


유물철학에서는 신이란 ‘인간이 만들어 낸 존재‘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관념철학에서는 신이나 영혼은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유물론의 출발점은 어디인가? 스탈린은 ‘물질, 자연, 존재는 의식 외부에 독립하여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이고, 물질은 감각, 표상, 의식의 원천이므로, 물질이야말로 제 1차적인 것이다. 의식은 물질의 반영이고 존재의 반영이므로 2차적인 것이고 파생적인 것이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정신이나 영혼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관념론이 아니면 종교란 존재할 수가 없다. 기독교가 공산주의와 공존하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의 종교는 신과 인간이 공존하는 현세구복적인 종교였다면, 서양의 기독교는 내세 지향적이다. 불교가 ‘스스로 부처가 되기 위한 고행의 과정’이라면 기독교는 우주의 창조주요, 전지전능의 신을 믿고 따르는 유신론의 입장에 선다. 공통점이 있다면 불교에서는 제화갈라보살(과거불), 석가모니불(현세불), 미륵불(미래불)이 존재하는데 반해 기독교는 성부인 야훼와 성자인 예수와 성신인 성령이라는 절대적인 신이 있다는 정도의 차이일까? 아니 불교가 무소유의 사상이라면 기독교는 공유사상의 차이정도가 아닐까?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부처님이나 예수의 가르침을 배우고 따른다는 이들이 부처님과 예수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대승불교의 경전인 <반야바라밀다심경>에는 ‘색즉시공.공즉시색,일체유심조‘라고 말이 있다. ’색(空)과 공(空)이 다르지 않고 공과 색이 다르지 않아,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라는 것이다. 모든 것이 공(空)인데 소유를 버리면 부처가 될 수 있는데 서로 많이 가지려는 불자는 부처의 제자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가 지향하는 세계 천국은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공산주의의 이상과 닮았는데 공산주의는 기독교를 부인하고 기독교와는 전혀 다른 자본주의 세계에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결론적으로 외피는 불교니 기독교니 하는 다른 형식으로 남아 있지만 교의는 실종되고 없다. 무소유를 지향하고 보시를 통해 중생을 구제한다는 불교가 그 많은 재산을 두고 다툼을 벌이는 것은 불교사상과는 거리가 멀다. 마찬가지로 기독교 또한 ‘이 땅에 천국을 건설하라’는 가르침과는 거리가 먼 자본의 논리를 정당화하고 있으니 ‘교회 안에만 예수가 없다’는 주장이 나올 법도 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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