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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6.23 가난은 축복인가 저주인가? (25)
  2. 2010.11.23 종교란 무엇인가?(종교관)
종교2011.06.23 06:45



성경을 읽다보면 참 헷갈린다. 마태복음 5장 3절에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쓰여 있는데 누가복음 6장 20절에는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기록했기 때문에 일 점 일획도 틀림이 없다는 고전적 성경(형성)관 즉 무오류설은 이 구절을 뭐라고 해석하는지 몰라도 ‘마음이 가난한자’와 ‘가난한자’는 뜻이 다르다.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생에서>

왜 이 성경구절이 생각났는가 하면 졸업식을 며칠 앞 둔 어느 날 한 여학생이 내게 찾아왔다. 말문을 열기도 전에 눈물부터 흘리면서 하는 말 “선생님. 저 등록 못했어요!” 이 말 한 마디를 해 놓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이었다. 대학에 합격하고도 등록을 못하는 제자를 보고 ‘가난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친구들은 하나같이 대학생활을 꿈꾸며 마음이 들떠 있는데 수시모집에 합격하고도 등록을 포기해야 하는 어린 마음이 어떠했을까?

그런데 왜 성서는 이런 가난을 두고 축복이라고 했을까? 예수님이 가난의 고통이 얼마나 처절한지 몰라서 비아냥거렸을 리도 없는데 말이다. 가난이란 사전적으로 ‘마땅히 있어야 할 무엇인가가 부족하고 결핍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렇다면 가난이란 '신체의 어느 부위를 잃었거나 돈이 없거나, 정신적으로는 머리가 나쁘다든지 의지가 약하거나,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하는 것‘ 등이 아닐까? 이렇게 해석하면 ’가난한자가 복이 있다‘는 말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에 가깝다.


그렇다면 왜 마태는 ‘심령이 가난하자’가 복이 있다고 하고 누가는 ‘가난한자는 복이 있다..’라고 했을까? 예수님같이 훌륭하신 분이 한 입으로 두 가지 말을 했을 리도 없는데 말이다. 신학자가 말하는 ‘가난한 자’와 ‘마음이 가난한자’의 차이를 성경을 최초로 기록한 누가의 ‘가난한 자’가 이를 참고로 후에 기록한 마태가 ‘부자들의 눈치를 살핀...’ 기독교와 세상의 타협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나는 여기서 성경의 무오류설이나 마태의 변절(?)을 따지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성경공부를 체계적으로 하지 못한 문외한의 판단으로는 성경에서 말하는 가난이란 '경제적이 부'에 무게 중심을 두고 한 말이 아니라 '무욕(無慾)과 무소유(無所有), 그리고 섬김과 나눔의 마음‘이 아닐까 나름대로 해석하고 싶다. ’마음이 배부른자‘는 사실이 사실로 보이지 않는다. 절대 빈곤에 맞닥뜨려 보지 않고 어떻게 가난한 자의 고통을 안다고 할 수 있는가?

가난을 보는 사람들의 시각도 가지각색이다. 고전적인 의미로 ‘가난은 나랏님도 못막는다.’거나 ‘부자는 하늘이 내려준 축복이다’는 운명론적 해석이 있는가하면 오늘날의 가난은 ‘개인의 노력보다 사회적인 정책이나 제도가 만든 결과’로 보는 이도 있다. 사실 일할 의욕이 없거나 일거리가 있어도 게을러서 가난해지는 ‘자초한 가난’이야 당연한 업보겠지만 일자리가 없거나 열심히 일해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야 개인에게만 책임을 지우는 것은 무리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 앞에서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을 두고 ‘죽을 용기가 있으면 무슨 잣인들 못하리...’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자살을 정당화하거나 교사(敎唆)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이들에게 희망을 앗아간 정책이나 제도가 밉다는 뜻이다. 희망이 보이는 데, 가능성이 있는데... 누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할까? 가난한 사람이라고 죽음의 공포나 희로애락을 모르겠는가? 그들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행복해질 권리도 있다.

꿈 많은 소녀에게 고통과 좌절감을 안겨주는 가난이 없는 사회를 만들 수는 없을까? 정직한 부자는 축복받아 당연하다. 그러나 오늘날의 가난은 부자들의 지나친 탐욕이나 그들과 손잡은 권력이 만든 결과다. 가난한 사람들이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 그것은 부자들이 만든 국부(國富)의 공적 못지않게 중요하고도 귀하다.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으로서 누려야할 최소한의 권리조차 앗아간다면 이런 사회에서 천국의 희망을 꿈꾸는 자는 과연 몇이나 될까? 각박한 세상에서 ‘가난한 사람은 천국이 저희 것’이 될 수 있는 세상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나만의 욕심일까?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인성교육자료2010.11.23 21:49


지난 2006년 8일 일이다. 전남 순천의 선암사 경내에서 태고종 총무원 쪽 승려와 선암사 쪽 승려들의 모습을 보는 국민들은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부처가 되겠다고 수도하는 분들이 죽봉으로 치도 때리고 막가파들이나 할 모습을 연출한 것이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폭행을 하게 했을까? 이날 몸싸움 과정에서 5명의 승려가 다쳐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직원과 26명의 승려가 경찰에 연행되는 추태를 보였다.


자비를 실천해야할 수행자가 이해관계 때문에 상대방에게 폭행을 가하는 저들이 ‘수도를 하는 사람들이 할 일인가?’ 의심이 간다. 싸움의 발단이란 게 총무원장이 누가 되느냐 주도권 다툼인데 막강한 재산이 걸려 있는 문제 때문이다.  

불교의 추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고려시대 불교의 번성과 타락상, 일제시대 친일불교, 해방 이후 이승만 정권의 ‘정화운동’과 비구 대처의 폭력적 종권다툼, 1980년 신군부에 의한 ‘10·27법란’과 군사정권에 순응했던 승려들….

        <선암사 승려들으 몸싸움-사진 SBS에서>

기독교는 어떤가? 기독교는 ‘사랑’과 용서’을 부르짖으면서도, 근대 세계사의 절반을 피로 물들이고 지금도 그 행위는 계속되고 있다. 서기 1096년부터 시작, 무려 200년동안 계속된 십자군 전쟁이 그렇고 이스람권 문화와 기독교 문화 간의 충돌은 지금도 피비린내 나는 살육과 보복이라는 전쟁이 그치지 않고 있다.

도대체 종교란 무엇인가? 종교문제를 말하려면 ‘신(神)이란 실제로 존재하느냐?’는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 BC. 6c 이후 그리이스의 자연철학 이래로 모든 철학의 가장 첫 물음은 ‘세상(만물)의 근원은 무엇인가?’였다. ‘물질과 정신 중 무엇이 근원적인가?’ 이것이 신학을 비롯한 철학의 근본문제요 사물을 보는 관점의 차이다. 이 질문에 대해 ‘물질은 정신과 관계없이 객관적으로 존재 한다‘고 보는 유물론과 ’물질은 정신이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관념론으로 나뉘어 진다. 유물론에서 보면 신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관념론에서는 신이 존재하는 것이다.  


유물철학에서는 신이란 ‘인간이 만들어 낸 존재‘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관념철학에서는 신이나 영혼은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유물론의 출발점은 어디인가? 스탈린은 ‘물질, 자연, 존재는 의식 외부에 독립하여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이고, 물질은 감각, 표상, 의식의 원천이므로, 물질이야말로 제 1차적인 것이다. 의식은 물질의 반영이고 존재의 반영이므로 2차적인 것이고 파생적인 것이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정신이나 영혼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관념론이 아니면 종교란 존재할 수가 없다. 기독교가 공산주의와 공존하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의 종교는 신과 인간이 공존하는 현세구복적인 종교였다면, 서양의 기독교는 내세 지향적이다. 불교가 ‘스스로 부처가 되기 위한 고행의 과정’이라면 기독교는 우주의 창조주요, 전지전능의 신을 믿고 따르는 유신론의 입장에 선다. 공통점이 있다면 불교에서는 제화갈라보살(과거불), 석가모니불(현세불), 미륵불(미래불)이 존재하는데 반해 기독교는 성부인 야훼와 성자인 예수와 성신인 성령이라는 절대적인 신이 있다는 정도의 차이일까? 아니 불교가 무소유의 사상이라면 기독교는 공유사상의 차이정도가 아닐까?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부처님이나 예수의 가르침을 배우고 따른다는 이들이 부처님과 예수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대승불교의 경전인 <반야바라밀다심경>에는 ‘색즉시공.공즉시색,일체유심조‘라고 말이 있다. ’색(空)과 공(空)이 다르지 않고 공과 색이 다르지 않아,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라는 것이다. 모든 것이 공(空)인데 소유를 버리면 부처가 될 수 있는데 서로 많이 가지려는 불자는 부처의 제자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가 지향하는 세계 천국은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공산주의의 이상과 닮았는데 공산주의는 기독교를 부인하고 기독교와는 전혀 다른 자본주의 세계에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결론적으로 외피는 불교니 기독교니 하는 다른 형식으로 남아 있지만 교의는 실종되고 없다. 무소유를 지향하고 보시를 통해 중생을 구제한다는 불교가 그 많은 재산을 두고 다툼을 벌이는 것은 불교사상과는 거리가 멀다. 마찬가지로 기독교 또한 ‘이 땅에 천국을 건설하라’는 가르침과는 거리가 먼 자본의 논리를 정당화하고 있으니 ‘교회 안에만 예수가 없다’는 주장이 나올 법도 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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