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정치2015.01.25 07:12


    흔들리며 피는 꽃 / 도 종 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것도 순탄하지 못하 우여곡절과 파람만장을 사는 사회적인 존재로서의 한 인간은...?

 

극장을 자주 가지 않는 사람은 상영하는 영화가 어떤 것인지 찾는데도 서툴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라는 영화를 본다고 벼루다 뒤늦게 찾아 간 대전 CGV.... 님아는 이미 종영이 됐단다. 그냥 돌아가기도 섭섭해 본 영화... '국제시장'

 

영화의 줄거리는 덕수라는 개인의 삶이기도 하지만 파란만장한 우리 역사이기도 하다. 1950년 한국전쟁을 지나 부산으로 피란 온 ‘덕수’(황정민 분)의 다섯 식구, 전쟁 통에 헤어진 아버지를 대신해야 했던 ‘덕수’는 고모가 운영하는 부산 국제시장의 수입 잡화점 ‘꽃분이네’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꾸려 나간다.

 

 

모두가 어려웠던 그때 그 시절, 남동생의 대학교 입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이역만리 독일에 광부로 떠난 ‘덕수’는 그곳에서 첫사랑이자 평생의 동반자 ‘영자’(김윤진 분)를 만난다. 그는 가족의 삶의 터전이 되어버린 ‘꽃분이네’ 가게를 지키기 위해 ‘선장’이 되고 싶었던 오랜 꿈을 접고 다시 한번 전쟁이 한창이던 베트남으로 건너가 기술 근로자로 일하게 되고 월남전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 왔을 때는 이미 머리에 백발이 내린 인생을 끝자락에 서 있었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한 사람의 삶이란 개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국내외 정세라는 소용돌이 속에 연관되어 전개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이 영화는 주인공 덕수를 통해 우리역사를 그린 파란만장한 개인사다. 1950년 6월 동족상잔의 전쟁   이산가족의 비극 →  1960년대 파독광부와 간호사 파견 →  1970년 월남전쟁 →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이산가족 찾기....

 

드라마 속의 주인공 덕수는 나와 동연배다. 해방 전해인 1944년에 태어났으니 광복과 이승만독재시대와 4, 19혁명 그리고 5·16쿠데타 → 유신정권 →  부마항쟁 →   10. 18 →  12·12사태 → 광주민중항쟁 →  전두환, 노태우 정권 →  문민정부 →  다시 이병박, 박근혜정부로 이어지는 유신회기..... 

 

역사의 소용돌이 속을 헤매며 다닌 삶이 바로 그 시대를 살 산 나의 개인사이기도 하다. 나의 삶도 그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독재정권이 뿌린 유신정권의 탄생과 그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했던 교육권의 장악을 둘러싸고 권력에 맞섰던 전교조.... 아이들에게 삶을 가르쳐야 할 교사들이 독재권력과 맞서 투쟁의 첨병이 되어야 했던 아픔의 시절을 살았다. 

 

 

1600여명의 교사들이 집단 해고 당하는 교육대학살과 투옥 수배, 구속...으로 이어지는 소용돌이 속에서 수배자가 되고 전과자가 되어야 했던 나의 삶도 영화속의 주인공의 삶과 모양만 다른 시련의 역사였다. 생존을 위해 독일에서 광부라는 외화벌이에 나선 이땅의 젊은이들, 월남전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자유수호라는 이름으로 죽어 간 비극은 동족상장의 비극을 겪어야 했던 것은 약소국의 국민이라는 이유 때문이지만 교육을 살리겠다고 나섰던 교사들으 ㅣ명예회복은 언제쯤일까?  

 

드라마의 주인공은 고생 끝에 가정의 행복을 되찾았지만 독재권력과 맞섰던 전교조 교사들은 아직도 종북세력으로 매도당하며 노동조합법의 보호조차 받지 못하고 투쟁 중이다. 노동조합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참여했다가 명동단식농성장에서 만났던 도종환의 시... 그는 나보다 먼저 감옥에 갇혀 시로 우리들을 격려했던 지난날이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영화 속의 주인공은 행복한 가정을 되찾았지만 권력과 대치중인 전교조 교사들은 언제 명예회복과 합법노조로 인정받고 교실에서 맘껏 웃으며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을까? 개인사를 다룬 국제시장에 이어 전교조라는 단체사를 다룬 영화가 대중의 사랑을 받을 날은 언제쯤까?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의 꿈처럼 그렇게 흔들리면서 우리 교육도 꽃피울 수 있을까?

 

관련 기사 : 9명의 해직교사 쫓아내면 전교조를 살려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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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전교조 출범의 모태가 되기도 했던 한국 YMCA중등교육자협의회 창립총회, 앞쪽  제일 왼쪽이 필자>

 

<교육운동이 무엇인지 모르고 전교조에 가입하다>

 

전교조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의 교직생활은 승진을 꿈꾸다 교직생활을 마쳤을 것이다. 아니 교장으로 승진해 출세(?)한 교직을 마칠 뻔 했다. 그러나 그런 행운(?)은 오지 않았고 전교조와 만나면서 행복한 교직생활을 할 수 있었다.

 

나이가 존경의 대상일 수 없지만 우리 사회는 그게 통했다. 당시 30대 초반의 전교조 조합원인데 반해 내 나이 40중반이었으니까 고맙게도(?) 나이대접을 많이 해줬다. 경찰서 유치장에 갔을 때나 교도소에 들어가서도 나이 때문에 대접(?)을 받기도 했다.

 

나이 때문에 첫 번째 대접이 전교조 초대 지회장을 맡은 일이었다. 민주적인 단체에서 조직의 대표란 역할 분담이지만 당시 조직의 책임을 맡는 다는 것은 수배를 당하거나 구속의 대상이 되는 그런 자리다. 나이 때문에 거절할 수 없는 대접(?)... 그래서 고난의 행군(?)은 시작된다.

 

1989년 명동 단식농성 때의 일이다. 열기로 달아올라 숨쉬기도 힘든 8월 한 더위, 텐트로 그늘을 만들어 지탱하는 단식농성장은 백골단(전경)으로 둘러쌓여 전쟁을 방불케 했다. 움직이기만 하면 땀이 줄줄 흐르는 텐트 아래서 단식으로 지친 몸을 가누며 버티고 있던 농성장. 윤영규위원장을 비롯한 시·도 지부장 등 지도부가 대부분 구속되어 책임을 맡을 사람이 없었다.

 

위원장 권한대행을 맡는다는 것은 당연히 수배가 떨어지거나 구속될 게 뻔하니 스스로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그 자리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내가 위원장 권한대행이라는 어머어마한 벼락감투(?)를 쓰게 되었다.

 

 

 

<언론활동과 사회활동에 참여하면서...>

 

세상에 살다보면 억울하고 답답할 때가 많다. 털어놓고 한탄하고 싶어도 하소연할 때가 없을 때 찾는 게 언론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교육과 언론이 바뀌지 않는 한 세상을 달라지지 않는다고...’ 옳은 일을 하다가 억울하게 죄인 취급받고 손가락질 받을 때 하소연 할 곳이 언론뿐이다.

 

무너진 교실, 학생들의 점수 몇 점 더 올리는 것이 사람을 사람답게 키우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교육, 극우인사들이 만든 국정교과서로 반공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것이 교육자가 할 일이라며 ‘시키면 시키는 대로... ’ 가르치기를 강요받던 시절, 조중동을 비롯한 수구언론의 왜곡보도에 진저리를 쳐 본 사람들은 안다. 언론이 권력의 목소리를 내면 멀쩡한 사람도 빨갱이가 된다는 무서운 사실을...

 

5년간 해직 끝에 복직된 1994년부터 마산MBC 라디오광장에서 매 주 '교육이야기'에 15년간 고정 출연한다. 생방송으로 학교현장의 실태며 교육다운 교육이 무엇인지를... 잘나고 똑똑해서가 아니다. 전파를 통해 자신이 몸담고 있는 학교 얘기를 한다는 것은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요 주의 인물’이 되는 것이다.

 

악역을 담당할 사람이 필요했고 그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생방송과 함께 마산 MBC 부설, 시청자들이 만드는 ‘열려라 라디오’에서 진행자를 맡아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기도 했다.

 

누구나 가장 손쉽게 다가갈 수 있는 열려 있는 사이버 공간이 또 있다. ‘모든 시민은 기자’라는 오마이뉴스가 그런 공간이다. 학교현장의 모순을 오마이뉴스의 기자로서 학생인권이며 학교 운영위원회를 통한 좋은 학교 만들기, 민주적인 학교운영 등 교육실패를 알릴 수 있었다.

 

언론활동은 공중파와 사이버 언론뿐만 아니라 개인이 할 수 있는 공간이라면 어떤 매체도 불사했다. 개인 홈페이지(http://chamstory.com)를 운영하기도 하고 네이버와 다음, 엠파스 등에 카페를 열고 교육현실과 개혁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1989년 지역의 약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겠다는 ‘경남도민일보’의 창간 준비위원장을 맡아 창간활동에 참여하기도 하고 칼럼리스트로, 논설위원으로 교육의 문제점, 교육을 살리는 대안을 찾기도 했다.

 

 

 

<사회교육은 학교교육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져야...>

 

사람들은 말한다. ‘요즈음 아이들이 무섭다’고... 아이들이 그렇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아이들이란 가정이나 학교, 사회의 영향을 받으면서 자란다. 학교폭력도 예외가 아니다. 예술이라는 이름의 영화며 드라마는 아이들이 교육적으로 좋은 내용으로 채워지는가? 게임방이며 만화방이며 그런 게 청소년들에게 얼마나 교육적인 내용으로 채워져 있는가? 솔직히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학교와 집을 벗어나면 갈 곳이 없다.

 

노동자들이며 여성들의 재교육은 왜 못하는가? 연말이 되면 회계기간 안에 예산을 집행하려고 멀쩡한 도로를 뒤집고 또 뒤집으면서 왜 지자체는 그 흔한 청소년 교육사업이며 주부학교, 신부학교, 며느리학교, 시어머니학교는 못 하는가?

 

 지역에 따라 YMCA나 여성단체나 혹은 종교단체에서 하는 행사까지도 단골손님으로 참여해 교육을 살려야 나라가 산다고 주장하지만 체계적인 사회교육기관은 그 어디에도 없다.

 

청소년들에게 사회란 미래의 주인이 될 공간이기도 하지만 현실을 보고 듣고 배우는 교육의 장이다. 미력하지만 ‘그런 곳을 마들어 보자’고 겁도 없이 덤빈 게 당시에 정부에서 시작한 ‘주민 자치위원회’다. 학교운영위원회도 마찬가지지만 심의권은 있어도 의결권이 없는 무늬뿐인 민주주의. 나는 그 민주주의를 붙들고 참 많은 동네사람들과 부딪혔다.

 

왜 예산편성권도, 의결권도 없는 자치가 무슨 주민자치며 이런 노력이 민주주의로 위장시키는 들러리가 아니냐며 항의도 했지만 바르게살기 협의회, 새마을 운동과 같은 관변단체들이 점령(?)해 버린 주민자치위원회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스스로 뛰쳐나와 버리고 말았다....(계속)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교원단체/전교조2011.12.17 06:22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나는 이 글을 쓰기를 몇 번인가 망설였다.
혹시나 전교조에 대한 애정이 전교조를 음해하고 눈에 가시처럼 생각하는 수구세력들의 먹잇감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추운 날씨에 무려 20일 가까이 단식을 하고 있는 해직교사의 아픔을 보다 못해 누군가가 해야 할 쓴 소리를 마다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에 이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해직교사가 단식을 하고 있다. 그것도  자그마치 20일이 가까워온다. 상문고 해직사태로 아직도 복직을 못하고 있는 윤희찬교사에 대한 생계비지원을 중단한 지도부에 항의하기 위해서다.

전교조가 어떤 조직인가? 참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더불어 사는 삶을 소중히 여기는 인간상을 추구’하고 ‘민주주의의 완성과 생활화를 지향하는 교육을 실천하는..’ 단체다.

89년 5월, 권력의 탄압에 맞서 전국 10개 지역에서 발기인 1만 8000명 중 1만 5000명이 참가해 만든 조직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이다. 1519명의 교사들이 파면, 해임되고, 42명의 교사들이 구속당하는 교육 대학살에도 불구하고 전교조는 굴하지 않고 민족, 민주, 인간화교육을 위해 당당하게 선 자랑스런 조직이다.



전교조가 어떻게 만들어진 조직인데...  

전교조는 조합원이나 지도부만을 위한 조직이 아니다. 명동단식농성에서 대국민의 뜨거운 사랑과 5년 가까운 해직생활에 조합원과 비조합원이 보여준 성원은 전교조가 결코 정파적인 입장을 달리한다는 이유로 서로 다투고 할퀴고 할 조직일 수 없다는 것이다. 어쩌다 교원평가 반대투쟁이라는 권력의 미끼에 걸려 색깔 칠을 당하고 곤욕을 면치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건강한 시민과 대중조합원의 전교조에 대한 기대와 사랑을 식지 않고 있다.

정년퇴임을 한지 5년, 나는 이제 조합원도 아니요, 전교조 소식지 하나 전해주는 사람도 없는 과거 창립당시 명동단식농성장에서 위원장 권한대행을 잠시 지냈던... 그리고 전교조 감사위원장과 2, 3대 경남지부장을 지냈던 힘없는 늙은 교사다. 그래도 내가 숨쉬고 있는 동안은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이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블로그를 만들어 쓴소리 단소리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20일 가까운 단식 농성을 구경만 하고 있을 셈인가?  

내 목소리가 어떻게 전달되고 곡해되고 또 오해를 받을 수도 있고 전교조 없는 세상을 살고 싶어 하는 조중동을 비롯한 수구세력들의 먹잇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바 아니다. 그러나 어쩌랴! 사람이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벌써 20일 가까이 이 엄동설한에 농성을 하고 있는데.. 위원장을 맡고 있는 사람이 해결을 안 하고 있는 데... 침묵하고 있는 것은 미덕이 아니라는 걸 아는데...

나는 윤희찬이라는 선생님을 한 두 번 정도 만났을 뿐, 선생님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게 없다. 지나가는 소리로 정파간의 입장 차이 때문에 생계지원을 끊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정파가 무엇이기에 악질재벌이나 하는 짓거리를 생사고락을 함께한 동지에게 들이대다니... 4년 7개월동안 다섯식구의 가장이었던 내가 겪은 해직의 아픔을 알기에 윤희찬선생님의 문제를 주마간산으로 지켜볼 수 없었다.

 


나는 처음 윤선생님의 단식농성 소식을 듣고 전교조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믿기지 않았다. 잘못한 일이 있으면 징계를 할 일이지 그것도 조직이 결정한 일을 하다 해직까지 감수했는데 정파가 다르다고 생계비지원을 중단하다니... 전교조가 동지가 단식농성을 시작한지 20일이 가까워 오는데 나몰라라 할 수 있는지... 어떻게 독점재벌 기업인 한진중공업사장을 닮아 가고 있는 게 아닌지 생각하니 안타깝고 화가 치민다.

정파 간의 입장 차이가 사람의 목숨보다 소중한가?

정파가 의미 없다는 뜻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의 목숨보다 정파가 더 중요한가?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윤희찬선생님은 혼자 몸이 아니다. 가족이 있고 사랑하는 아이들의 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장이다. 그런 남도 아닌 동지의 생계비를 끊고 단식을 하고 있는데... 전교조가 어떤 단체인가? 교과부며 지역교육청을 상대로 산적한 교육문제를 대화로 혹은 투쟁으로 풀어나가야 할 조직이다. 이런 조직이 조합원의 문제 하나 해결 못해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니 이해가 가지 않는다.


가끔씩 전교조가 하는 일이 마뜩찮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완전무결한 조직이 있겠는가?' 하는 마음으로 할 말이 있어도 참고 지내왔다. 그러나 이번 일은 다르다. 비판을 마다하는 조직은 발전할 수 없다. 싫은 얘기를... 덮어둔다고 또 모른 채 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문제가 더 커지고 심각해지기 전에 풀건 풀어야 한다. 보다 못한 각 지역에서도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빠른 해결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내는 등 목소리를 내고 있다. 어쩌면 생각하기도 싫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늙은 퇴임교사만이 아닐 것이다. 장석웅위원장의 빠른 결단을 기대한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