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발로 서고자 하나 넘어지고 마네.
가늘고 고와 아마도 어려울 것 같으니,
손바닥 위에서나 보아야겠네.’


중국 송나라 때의 대표적 시인 소동파(蘇東坡 ;1037 ~ 1101)가 전족(纏足)을 한 여인의 자태를 아름답게 표현한 시구다.

한걸음 떼어 놓고 한숨 한 번 쉬고
두 걸음 떼어놓고 눈물 가득 흐르네
비한 방울에 슬픈 눈물 한 줄기
바람 한 바탕에 긴 한숨 한 번


관한경(關漢卿)이 지은 「규슈의 원한」의 한 대목이다.

같은 사안을 두고 한 사람은 예찬을... 한사람은 비애로 표현한 전족(纏足).

여성이라는 이유로 덧씌워졌던 성차별. 그 질곡의 역사를 살펴보자.

전족(纏足)이란 무슨 뜻일까? 사전을 찾아보니 ‘완전한 발이라는 뜻으로, 양발을 완전히 구비함을 이르는 말’ 혹은 ‘앞발(네발짐승의 앞쪽 두 발)’이라고 풀이해 놓고 있다.

백과사전을 찾아 봤더니 ‘중국에서 여자의 발을 인위적으로 작게 하기 위하여 헝겊으로 묶던 풍습’이라고 풀이했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중국인들이 경영하는 식당에서 작은 발로 마치 오리처럼 뒤뚱뒤뚱 걷던 체격 좋은 중국여인을 보곤 했다. 세월이 한참 흐른 후에야 그게 전족(纏足)이며 조선의 3종지도나 칠거지악처럼 남존여비시대의 남성들이 저질렀던 폭력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전족의 역사를 보자. 옛날 중국에서는 여자 아이가 3세~4세가 되면, 목면으로 발의 옆과 셋째, 넷째 및 새끼 발가락을 안쪽으로 굽어지게 단단히 감아 버린다. 그런 후 그 발에 맞는 가죽신을 신겨 놓는다. 이렇게 하면 어른이 되어서도 발가락이 자라지 않아 어른이 되어도 발의 크기가 10Cm 정도로 빨리 뛰거나 걷지 못해 지팡이를 짚고 아장아장 걸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런 여인의 발을 전족(纏足), 춘순(春笋) 또는 금련(金蓮)이라고도 했다.

당나라 시대만 해도 중국에는 전족을 하는 풍습이 없었는데, 당이 무너진 후 오대십국 시대부터 전족이라는 풍습이 생겨나 청나라 말기까지 계속되었다고 하니, 자그마치 여성에 대한 폭력은 무려 9백년동안이나 지속된 셈이다.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질곡의 삶을 살아야 했던 세월. 중국여성들은 왜 이렇게 전족을 하고 살았을까? 여성들에게 전족을 한 이유는 일부다처 사회에서 여성이 도망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 시작됐다는 설이 있다. 또 남성들이 염증 투성이인 여인의 발에서 풍기는 냄새가 흥분제와 같은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전족을 한 여성은 성기 주면의 근육이 발달하게 해서 남성들에게 쾌감을 주었기 때문에 이런 악습이 오랜 세월동안 계속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송대에서 청대에 이르는 중국에는 전족을 하지 않는 여자는 시집을 가기가 거의 불가능했고, 시집을 어렵게 가도 남편으로부터 무시와 냉대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냉대를 받을 정도였다니 남성들의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해 여성에게 가해졌던 폭력치고는 이 보다 더 잔인할 수가 없다.

성차별의 역사는 중국에서만 있었던 게 아니다. 서양에서 마녀의 역사가 그렇고 기독교에서는 남자의 갈비뼈에서 여성이 탄생하는 이변을 낳기도 한다. 불교에서는 여성은 남자보다 업장이 두텁다하여 비구보다 비구니가 더 많은 고행을 겪어야 성불한다는 계율을 만들어 놓기도 했다.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1908년 3월 8일, 미국 방직공장 여성노동자 1만 5천여명은 뉴욕 룻저스 광장에 모여 ‘여성에게도 선거권을 달라’ ‘노조결성의 자유를 보장하라’ ‘임금 인상하라’ ‘10시간 노동 보장하고 작업환경을 개선하라’ 외치며 무장한 군대에 맞서 싸운 지 104주년을 맞는 날이다.

여성의 고위공직자가 10년새 5배로 증가했다고들 야단이다. 매맞는 남자 얘기가 있는가 하면 여존남비라는 말도 들린다. 페미니스트의 활약으로 성차별이 사라진 사회가 돼 남성들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법적으로 남녀차별을 없애고 고위 공직에 여성 정치인이 몇 명 더 나왔다고 여성 해방이 완성된 사회인가?

아직도 직장에서 여성이란 커피 심부름이나 하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있는 가 하면 성별에 따른 연봉차가 그대로 남아 있는 회사도 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승진에 차별받는가 하면 매춘이 공공연하게 남아 있다. 술을 선전할 때나 신차 모델 선전에 미모의 여성이 상품이 되는 현실... 여성이 직장에서 꽃이 되어야 하고 성이 상품이 되는 사회에는 진정한 여성 해방이 가능할까?

 -  위의 이미지들은 다음 검색에서 가져왔습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한나라당 의원의 나경원의원이 경남여성지도자협의회 행사에 참석해 “1등 신붓감 예쁜 여선생, 2등 못생긴 여선생, 3등 이혼한 여선생, 4등 애 딸린 여선생”이라 발언해 물의를 빚고 있지만 성이 상품화된 사회에서 진정한 남녀평등이 가능할까?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고 헌법에 보장되어 있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는 국가라고 단정할 수 없다. 한 때는 남녀 차별을 없애는 것이 평등이라고 생각하고 여성이 남장을 하고 담배를 피우거나 남성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여성이 남성다워 지는 것이 남녀평등일까?


우리나라처럼 남존여비가 지배하던 유교전통사회의 유습을 깨고 이정도의 여권을 신장한 나라도 많지 않을 것이다. 정부기구에 여성부를 신설하고 진보적인 정당이나 시민단체 집행부 선거에서 여성 러닝메이트가 있어야 출마하는 명문조항까지 신설해 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난 11일 스위스 제네바 소재 세계경제포럼 (WEF)이 발표한 ‘2008 세계 성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1백 30개국 가운데 한국은 108위로 꼴찌를 겨우 면했다는 보고다. 왜 헌법에 보장된 남녀평등이 세계최하위라는 부끄러운 꼬리표를 떼어내지 못할까?

여성들이 원하는 진짜 남녀평등이란 뭘까? 그게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돌이켜 보면 남녀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선각자들의 노력은 눈물겹다. 여성운동을 하던 여성들 중에는 평등사회를 앞당기기 위해서 남자처럼 담배를 피우고, 남자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기도 하고, 운동화에 머리 스타일까지 남자처럼 하는 게 평등을 실현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아버지의 성이 아니라 김이000, 최박000... 하는 식으로 부모의 성을 모두 함께 쓰겠다는 사람까지 나오기도 했다.

여성운동의 결과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매맞는 남자’, ‘간큰 남자’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될 만큼 기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들로 구성된 사회조차도 남자가 장(長)이 건재하고 고위직에서 여성의 진출은 미미한 상태다. 가정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높아진다든가 여성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당선을 기대하지 말라는 말 정도로 남녀평등이 실현되는 게 아니다. 또 세계 인권대회를 열고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과 같은 법적인 보장을 하다고 진정한 남녀평등이 실현된다고도 보기 어렵다.

진정한 남녀평등이 실현되는 사회란 어떤 모습일까? 남녀평등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그 사회의 구성원들의 ‘평등의식’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독재권력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주권자인 국민들에게는 권리는 없고 의무만 강조된다. 마찬가지로 ‘1가구 1~2자녀'로 자라난 세대들은 평등의식이 아니라 ‘독불장군’으로 길러지기 쉽다. ‘남녀 구별없이’가 자칫 남녀가 ‘서로 다른’이 아니라 남녀가 ‘똑같은’으로 평등을 이해하며 자라게 된다.

진정한 평등이란 ‘똑같은’이 아니라 ‘서로 다름’에서 가능하다. 즉 남녀평등이란 '남녀가 인간으로서 평등해야 한다'는 ‘'양성평등(gender equality)'으로 이해해야 한다. ’남녀가 생물학적 특성에 있어서는 다를 수 있지만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본질적 특성에 있어서는 남녀가 평등 하다‘는 뜻으로 이해할 때 실질적인 평등이 가능하다. 현실적으로 성역할에서 전통이나 고정관념 그리고 사회적인 여건의 차이로 평등의식을 바르게 이해하는 사람들은 많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또한 가정환경이나 입시위주교육으로 보상적 평등관보다 보수주의적 평등관이나 자유주의적 평등관을 갖기 쉽다.

남녀평등이 실현되는 사회는 평등의식과 함께 어떤 사회체제인가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미스 코리아와 같은 성차별이 존재하고 매춘이 허용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평등의식이 자리잡기란 쉽지 않다. 외모가 인격보다 중시되고 남편 잘만나 계층상승을 꿈꾸는 신델레라 콤플렉스가가능한 자본주의에서는 남녀평등이 실현되기 어렵다. 평등은 모든 사람이 선천적이나 후천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음을 인정될 때 남자도 여자도 평등하게 대접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개인간의 차이를 무시하고 모든 사람을 절대적 기준에 의해서 평등하게 대우하겠다는 것은 평등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절대빈곤은 남녀평등을 어렵게 만든다. 가난은 비굴한 인간을 키울 뿐 주체적이고 건강한 인간이 자라는 풍토를 만들지 못한다. 성을 상품화하고 인간의 가치가 경제적인 소득의 차이나 외모, 또는 학력과 같은 조건으로 서열화된 사회에서는 평등이 발붙일 자리가 없다. 남녀평등이란 여자가 남자다워진다거나 남자가 여성다워지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남녀평등이란 ‘여성이 여성다움을 갖추는 것, 그래서 개인의 자아실현과 남녀간의 상호존중이 이루어질 때 가능한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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