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미디어2018.02.26 06:30


흐르지 않는 물이 썩는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개인도 그렇지만 단체나 국가도 비판을 용납하지 않으면 부패하기 마련이다. 사회가 복잡하고 이해관계로 얽히다보니 판단능력이 부족한 언론 소비자들은 쉬 피해자가 되고 이를 이용한 권력이나 자본은 반사이익을 노리고 안하무인격으로 피해자들을 양산하고 있다독재 권력은 이렇게 권언유착으로 언론소비자들을 기만해 왔던 것이다.



자본에 예속된 언론은 독자들을 대상화 한다. SNS시대 언론... 공중파든 인쇄매체든 오늘날 대부분의 언론은 독자적인 생존권을 갖지 못한다. 당연히 정부의 지원을 받거나 자본의 힘으로 살아남는다.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는 고용주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 고용주의 눈 밖에 나고서야 살아남을 도리가 없다. 당연히 언론도 권력의 눈치 자본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권력의 입맛에 맞는 기사, 자본의 입맛에 맞는 기사를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삶은 개구리 증후군(Boiled frog syndrome)이라는 말이 있다. 개구리를 갑자기 뜨거운 물에 집어넣으면 빠져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지만, 온도가 낮은 물에 넣고 점차 가열하면 위기상황에 처한 것을 모르고 있다가 결국 죽고 만다는 현상을 뜻하는 말이다. 오랫동안 계속된 편안함에 안주해 현실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상실하게 된다. 결국 언론소비자들은 자신이 언론에 길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채 서서히 언론이 원하는 인간으로 길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모든 권력은 착한가? 모든 언론은 진실한가언론은 공정한가진실을 보도 하는가역사적으로 깨어 있는 지식인들은 고난의 길을 걸어 왔다. 불이익을 감수하고 심지어는 목숨까지 내놓아야 했다. 언론이 권력과 자본에 맞서 진실보도를 하는 언론은 살아남기 어렵다. 최근 내부자와 1987에서 볼 수 있듯이 독재권력 하에서 국민들은 어떻게 피해자가 되고 어떻게 언론에 의해 길들여지는지를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순진한 국민들은 개구리증후군처럼 언론에 길들여져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언론의 소비자 길들이기... 개구리 증후군은 누워서 떡먹기다. 3S정책에서 볼 수 있듯이 언론은 맘만 먹으면 언론소비자들을 길들이기는 얼마든지 언론이 원하는 인간을 ㅗ만들 능력을 가지고 있다. 겉으로는 공정보도니 진실보도 운운하면서 그 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취제를 섞어 소비자들의 이성을 잃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같은 주제의 다른 내용을 담고 있는 오피니언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가 있다. 어디 그뿐인가? 공중파의 드라마나 연속극은 소비자들을 중독 시키기까지 하고 있지 않은가?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비이커에서 뛰어 올라 안전한 곳으로 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태평하게 앉아 죽어가는 개구리처럼 언론 소비자들은 그렇게 마취되고 병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삶은 개구리 증후군을 용이하게 해 주는 프리미엄이 또 있다. 박근혜정권시절 한국사국정교과서를 시도 했던 이유에서 볼 수 있듯이 유신시대 즐겨 사용하던 국정교과서는 유신교육을 한국적민주주의라고 속여 국민들의 가치관을 뒤바꿔놓았다. 교과서가 금과옥조가 된 학교 현실에서는 이렇게 피교육자들의 가치관을 병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불의한 정권은 교육을 통해 주권자를 판단미숙아로 만들고 그 토양위에 권력의 목소리, 자본의 목소리를 담고 있는 것이다.

지금 한국에는 일본의 야쿠자집단을 방불케 하는 언론집단이 있다. 대한민국 국민 중 단 한 사람도 기레기나 찌라시의 피해를 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 겉으로는 언론이라는 가명을 쓰고 있지만 사실은 권력과 야합해 언론소비자들을 등쳐먹고 있는 수탈자들이다. ‘조중동매종편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권력의 편에서 혹은 자본의 편에서 소비자들을 마취시키는 이들은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가짜 뉴스를 만들고 보도 자료나 받아 옮기며 불량광고로 소비자들을 병들게 하는 기레기와 치라시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언론소비자들은 피해자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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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2.10.19 15:15


 

10월 9일 오전 7시. 병실에서 침대에 실려 수술실로 갔다. 고개를 돌려보니 나와 같이 수술실에 대기하고 있는 환자가 10여명이 족히 돼 보인다. 이름과 수술부위 등 간단한 질문 몇가지를 묻고 난 후 수술침대는 내의니와 관계없이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었다.

 

몸은 내몸이지만 이제부터는 내 몸의 주인의 집도의다. "편안하게 한 숨 주무시고 나면 됩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른다. 60Kg도 안되는 내 작은 몸뚱이 속에 어떻게 그런 끔찍한 고통이 숨어 있었는지... 세상으 모든 통증을 내 작은 몸속으로 찾아와 짓이겨놓는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는데 곁에서 흔들어 깨운다.

 

 

 

그 고통의 시간이 10분이었는지 한시간이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겨우 정신이 들었을 때는 마취가 깨는 순간이었고 다시 무통주사를 달 때까지 순간이었겠지만 본인은 그 고통의 순간이 몇 달 보더 더 길고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다시 병실로 돌아 온 시간은 오후 3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정확하게 8시간여 동안 내 몸은 내가 알고 있는 나는 아니었지만 내 몸은 알고 있었다. 고통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있었던 사실이 없어진게 아니었다.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해야 나를 찾기라도 한다는듯 무서운 몸의 공격이 시작됐다. 눈을 감으면 찾아오는 환상,환각,환시,환청.... 내 몸은 나를 잠시라도 그냥두지 않았다. 무통주사를 달고 가슴에 진통제를 붙이고, 진통제를 주입하고... 그래도 고통은 잠시라도 나를 떠나지 않았다.

 

침대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꼬박 4일 반 나절을 그렇게 있어야 했다. 내 몸을 집도의가 더 걱정을 했다. 고통이 수술전과 어떻냐는 등... 그러나 수술의 통증인지 수술 전부터 괴롭히던 통증이었는지는 침대에서 내려와 걸어봐야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등뼈가 있는 부위 20여Cm를 찢고 5개 보조뼈를 세우기 위해 20개의 쇠조각이 낸 몸속에 들어왔다. 평생 남의 몸이 내 몸이 되는 것이다. 나이도 많은데다가 피를 많이 흘려 남의 피까지 3통이나 주입하고서야 겨우 몇자국씩 발검음을 옮길 수 있었다. 아직 정확하게 확인을 할 수는 없지만 다행히 수술 전 달고 다니던 고통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정상적인 상태로 회복하기 위해서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내게 필요하겠지만 내 건강을 내가 지키지 못한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면 옛날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저의 건강을 걱정해주시고 기도해 주신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건강이 회복되는대로 보다 좋은 글로 여러분의 사랑에 보답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0.09.12 16:13



“살려주세요! 살려 주세요! 누구 없어요? 살려 주세요!...”
‘뼈를 깎는 아픔’이란 말을 하며 살면서도 그 아픔이 얼마나 큰지 가늠하지 못했다. 척추 협착증 수술도중 마취가 풀려(각성) 수술 중에 고통을 느끼게 된 것이다. 생살을 찢어도 아픈데 뼈를 깎고 있는데 마취가 풀렸으니 그 고통이 오죽했을까? 뼈를 깎는 고통이 어느 정돈지는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는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아마 내가 태어나 70년 가까이 살면서 당한 모든 고통을 합한 고통보다도 더 큰 고통이라고 해야 할까?
“살려 주세요!”를 외치며 몸부림을 친시간이 몇 분이었는지 몇 시간이었는지 수술을 받고 있는 환자인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혼신의 힘을 다해 몸부림을 쳤지만 그게 소리로 되어 나왔는지 입술만 움직였는지 아니면 몸부림을 쳤는지 알 수가 없다. 마취과 의사가 정확하게 밝히지 않은 한 환자에게는 ‘고통의 순간’만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오죽했으면 ‘이 고통을 나에게 준 사람에게 반드시 복수를 하고 말 것이다.’라는 생각까지 했을까?
죽어도 잊을 수 없는 시간. 2010년 8월 16일 수술실에 들어 간 오전 8시부터 수술을 마치고 입원실로 돌아 온 오후 4시. 2시간이면 끝난다던 수술시간이 회복시간 1시간을 빼고 무려 7시간동안 나는 수술실에서 척추 협착증 수술을 받았다. 회진을 온 의사에게
“수술도중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왜 환자가 그토록 고통을 느껴야합니까?”
아내와 환우들이 수술도 잘됐고 하니
“그만 그 일은 잊어버리시오.” 간곡히 당부했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아~ 수술도중 잠간 마취가 풀렸던 모양인데 그걸 환자가 알 리가 없는데...?”
이게 끝이다.
내가 꿈을 꾼게 아니다. 분명히 나는 죽어도 잊을 수 없는 고통을 당한 것이다. 집도 의사의 태도에 더 화가 났다. 환자는 의사가 아무렇게 해도 좋은 대상인가? 분명히 실정법에는 인권이라는 게 있고 환자에게는 예외일 수 없다. 더구나 돈을 내고 내 생명을 그들에게 잠시 위탁한 것이다. 그렇다면 마취 의사의 실수로 환자가 고통을 당한 것은 환자의 일방적 인내심만 강요하고 넘어갈 문제인가?
평생 꿈을 꾸지 않는 내가 잠이 안든 시간은 악몽에 시달렸다.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마취의사를 만나야겠다. 그러나 그건 마음뿐 혼자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몸. ‘내가 혼자 조금이라도 걸을 수 있다면 노동조합을 찾아가 상담(노동조합에 찾아 간 일화는 다시 기록으로 남기겠다)이라도 해 봐야겠다.’ ‘아니 소비자 보호원 같은 곳이나 의사협회 같은 곳은 이런 경우 대답을 안 해 줄까?’ 별별 생각을 다해 봤다.
이틀인가 지나 중간 결산서가 나왔는데 마취 특진료까지 붙어 있다고 했다. ‘사람을 죽이다 말아놓고 특진료라?’ 괘심한 생각에 마취 담당 의사를 만나야겠다고 했더니 마취과 전공의가 찾아왔다.
내가 겪은 고통을 얘기했더니
‘통증조절에 실패했다’고 인정했다. 마취과 책임자를 봐야겠다고 했는데 전공의가 와서 변명 같은 소리를 늘어놓다니 ‘정보공개청구를 하든지 어떤 방법으로도 이일을 그냥 넘기지 않겠다고 했다. 이야기가 이쯤 되니까? 수간호사가 찾아와 ‘얼마나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이 드느냐?’며 위로하고 사과했다. 나의 요구는 단호했다. ’책임자가 와서 사실 확인을 하지 않으면 이 일을 그냥 넘기지 않겠다.‘고 분명히 못 박았다.
내가 대전에 있는 이 C병원을 찾게 된 것 사연은 이렇다. 30년 가까이 아픈 허리를 수술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는 지난 1월경부터 걸음을 걸으면 왼쪽 다리가 저리기 시작했다. Y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중에도 걸으면 저리던 왼쪽 다리가 가만있어도 저리기 시작했다. ‘이러다 잠도 못자고 통증을 느껴야 하는게 아닐까?’ 겁이 났다. 서울 Y병원에서 3차병원을 가야겠다고 진료기록을 받아 온 이유도 그렇다. 대전에 U병원이 척추수술을 잘한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 갔다. U 병원장은 나의 MRI 사진을 보더니 디스크는 깨끗한데 1,2번과 34번 척추가 휘어 그 사이에 있는 신경을 눌러 허리가 아프기 때문에 수술을 하지 않고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냥두면 다리병신일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병원에서 수술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수술비가 얼마냐고 물어봤다. 수술비는 ‘기본이 40만원이고 수술 후 MRI사진을 다시 찍어야 하기 때문에 그 이상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환자들은 ’돈이 문제가 아니다. 사람이 살고 봐야지...’ 이렇게 된다. 수술비야 어떻게 되겠지 우선 수술을 하자. 그렇게 마음먹고 간호부장인가 하는 사람의 설명을 들으면서 뭐가 좀 미심쩍다는 생각을 들었다. 의사의 진단도 진지한 면보다 사무적이고 간호부장의 설명도 너무나 사무적이고 딱딱했다. 이왈 온 김에 큰 병원에 다시한번 가보자 하고 찾은 곳이 C병원이었다.
이 C병원 척추전문의는 인상부터가 그랬지만 MRI사진을 보면서 참으로 진지하게 대해줬다. 환자는 의사의 말 한마디 태도 하나하나가 신경이 쓰이기 마련이다. 아~ 이 의사는 다르다. 여기서 해야겠다. 그래서 결정하고 이 병원에서 수술을 했던 것이다. 내 까다로운 성격 때문에 벌받는 것인가? 내가 무슨 전생에 죄가 많아, 대장암 수술을 받은 지 1년이 조금 넘었는데 또 7시간이나 사경을 헤매는 대수술을 받아야 하는지... 그런데 아내의 말처럼 잊어야 하는데 잊혀지지가 않으니...
수술한 지 일주일 지난 아침. 마취를 담당의사 L씨가 찾아왔다. 나는 감정을 억누르고 어떻게 사람을 그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일주일이 지나도록 찾아오지도 안했느냐며 힐란(詰難)했다. 내 수술을 마치고 해외에 나가는 바람에 찾아오지 못했다는 등 구차스런 변명(?)을 하면서 사실이 어떠했는지 얘기해 달라고 했다. 수술 중 마취가 풀리면 마취학을 전공한 당신이 더 잘 알지 않으냐면서 ‘살려달라고 그렇고 애원했다. 뼈를 깎는 소린지 쇠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었다...’ 라고 고통의 순간을 설명했다.
“마취를 담당한 의사로서 환자에게 고통을 준 점 깊이 사과드립니다.”
인간이란 참 묘하다. 그렇게 죽어도 잊지 못하겠다며 벼르던 감정이 담당의사가 자존심도 팽개치고 정중하게 머리를 숙이는 데는 더 이상 모르쇠를 할 수 없었다. “사과의 뜻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겠습니다.” ‘의사들은 자신의 과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불문율 같은 금기를 깨고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사과한다? 그렇다. 지금 시비를 더 가려 얻을 게 뭔가? 감정이 풀렸다. 오히려 ‘지금까지 벼르다가 그렇게 하고 말걸 왜?“라며 아내가 불만이다.
살면서 참 별난 일도 다 겪는다. 좋은 일하고 욕먹기도 하고 억울한 일, 슬픈 일, 기쁜 일... 특진료를 빼고 비보험을 보험으로 돌리고.... 담당의사의 정중한 사과... 그걸로 끝났다. 이제 30년 가까이 달고 다니던 통증이 허리에 사라졌다. 지금은 수술 중 멍들고 짓눌린 곳이 걸으면 아파 불편하지만 분명히 고통에서 해방된 것이다. 수술을 잘못해 염증으로 몇 달째 고생하는 병실의 환자를 보고 불안해했던 기억도 수술 중 잊을 수 없는 고통도 이제는 잊어야겠지. 차고 있는 보조대를 풀면 이제 날아다닐 것 같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