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경선후보자의 교육관'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2.11.15 일류대학이 교육목표가 된 나라에서 훌륭한 교사란...? (10)
  2. 2012.07.21 독립된 인격체로 보지 않는 부모의 자녀관이 문제다 (18)


 

 

전교조는 학생들의 교육에는 관심이 없고 정치활동만 일삼으며 북한 앞잡이 양성 교육을 하고 있다.

 

 전교조를 비방하는 극우세력들의 시각이다. 

 

뉴라이트를 비롯한 수구세력들이 진보성향의 단체에 색깔 칠을 하는 ‘빨갱이 논리’야 대꾸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지만 ‘전교조 교사가 왜 정치적이냐?’는 억지논리에는 할 말이 많다.

 

학교폭력이 난무하고 학생이 교사에게 주먹질도 불사하는 무너진 교육현장을 보고 그 모든 책임을 전교조 교사들에게 뒤집어씌우는 게 맞는 말일까? 오늘날 우리교육이 이 지경이 된 모든 책임이 전교조 교사 때문일까?

 

유신정권 시절, ‘유신헌법을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가르치라는 교과서를 제자들에게 어떻게 가르치는 교사가 훌륭한 교사일까?

 

#. 1 교과서대로 유신헌법이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열심히 가르치는 교사

 

#. 2 어쩔 수 없이 가르치기는 하지만 객관적인 교과서를 만들어 줄 것을 교과부에 요구하는 교사

 

#. 3 유신헌법은 박정희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악법이라고 가르치고 이에 동조하는 교원들이 단합해 정치투쟁에 나선다.

 

전교조를 비방하는 극우세력들은 #.1의 교사들이 가장 훌륭한 교사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유신헌법이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박정희의 장기집권을 위한 시나리오라는 것이 밝혀진 후 #. 1의 교사가 과연 훌륭한 교사로 존경 받을 수 있을까? 황국신민화가 우리의 살길이라고 가르는 교사는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우리국민을 일본의 노예로 사는 게 옳다고 가르쳤다.

 

해방 후 학생들은 ‘일제의 한국지배를 정당화’하는 식민사관의 관점에서 저술한 역사교과서를 배웠다. 해방 후 서울대 문리대 교수와 문교부 장관을 지낸 이병도와 그 아류들이 만든 식민사학에 근거한 교과서가 국정 교과서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과서를 암기해 우수한 성적을 받도록 하는 교사는 훌륭한 교사인가?

 

교육의 중립성이 보장되지 않는 학교에서는 교육다운 교육이 불가능하다.

일류대학이 교육 목표가 된 학교에서 철학도 신념도 없이 진학을 위한 문제풀이에만 열심인 교사는 정말 훌륭한 교육자일까?

 

 

오는 대선에 출마한 후보 중 한사람은 ‘이과와 문과의 통합교육’을 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민주의식도 역사의식도 없는 정치인, 자연의 섭리와 법칙을 무시하고 돈이 가장 소중한 가치로 아는 과학자.... 의술은 능하지만 인간에 대한 애정도 없는 의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의 유혹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그래서 ‘이과와 문과의 통합교육’을 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겟지만 그것이 근본적인 교육을 바꿀 대안이 아니라는 걸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오늘날 지식인들의 타락을 보면서 사랑이 없는 지식인이 세상을 얼마나 삭막하게 만들고 있는가를 뼈저리게 느끼곤 한다. 교육이 목적가치가 아닌 수단가치로 키워 놓은 인간은 어떤 모습일까? 일류대학을 나오고 첨단의 기술로 세상을 선도하는 정치인, 과학자, 의사, 종교인, 교사, 예술가...

 

사람보다는 지위가, 양심보다 돈이, 철학보다는 현실에 안주하고 타협하는 계산적이고 이기적인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과연 살만한 세상일까?

 

교사가 왜 정치적이냐고요?

 

교과서는 교사가 바꿀 수 없다. 교과서가 국정제로 할 것인지 검인정제로 할 것인지, 자유발행제로 할 것인지는 정치인들이 결정한다. 권력지향적인 정치교과서, 민주의식이나 역사의식이 소거된 사회교과서, 자본의 시각에서 노동을 천시하는 경제 교과서를 교사들이 바꿀 수는 없다.

 

교사의 정치적인 중립을 보장해 유신헌법은 악법이라고 가르칠 수 있도록 보장해 주는 것은 정치만이 해결해 줄 수 있다. 그래서 노동조합이 필요하고 교원단체의 영향력이 필요한 것이다. 가장 정치적인 교사야 말로 가장 교육자다운 교육자가 아닐까?

 

정치는 정치인들이 하고 가르치는 교사는 교과서만 가르치라는 것은 기득권논리다. 노동자는 노동만 하고, 정치는 정치인들이 하고 노동은 노동자들이 하고 학생은 배우기만 하라는 논리는 민중의 저항을 거세하려는 기득권 세력들의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공부 잘하는 몇몇 제자를 출세시켜주기 위해 시험문제풀이에 몰두하는 교사보다 모든 제자들이 살아 갈 세상을 상식이 통하는 세상,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대접받는 세상, 정의가 강같이 흐르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안위를 무릅쓰고 투쟁하는 교사야 말로 진정 아름다운 교육자가 아닐까?

 

-이미지 출처 다음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초·중·고등학교 방학이 시작됐다. 학교마다 차이는 있지만 다음 주 중에는 대부분의 초·중등학교가 방학에 들어간다. 기간은 한 달 정도의 방학이지만 아이들에게는 방학이 없다. 초등학생들은 지금까지 다니던 영수학원을 비롯해 피아노학원, 미술학원, 태권도 학원...에 다녀야 하고 수능을 앞둔 고등학생들은 이름만 방학이지 방학이 없다.

 

“학생은 성적, 학부모는 사교육비, 교사는 무너진 교권 때문에 불행하다”

 

오죽했으면 대선경선후보 중의 한사람은 이런 한탄까지 했을까? 학생들이 행복한 학교를 만들 수는 없을까? 오늘날 한국의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은 보장되지 않는 내일의 행복을 위해 모든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저당 잡혀 있다. 어이없게도 이런 현실을 어린이나 청소년 그리고 모든 학부모들은 당연시 하고 있다.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들의 교육관은 어떤가?

 

‘지면 죽는다!’

이 땅의 부모들은 마치 군사훈련의 구호 같은 결사항전(?)의 신념으로 아이들을 키운다. 우리네 부모들은 자기의 자식을 남들보다 더 잘 먹이고 더 잘 입히고, 국어도 영어도 잘하고, 체육도, 미술도 피아노도... 잘해야 하는 만능 인간이 되기를 바란다. 백점만 받으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내 한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게 우리네 극성 엄마들의 지극한 자녀 사랑이다.

 

 

 

국어도 잘하고 수학도, 영어도 잘하고 체육, 음악, 미술에 통달하면 얼마나 좋을까? 성격도 좋고 생기기도 잘 생기고 사회성도 있으면 더 좋지. 어쩌다 보면 가끔 그런 학생이 있다. 그러나 어떤 분야에 재능이 있으면 다른 쪽에는 다소 뒤떨어지는 게 보통사람이다. 그런데 엄마의 욕심은 그게 아니다. 모든 걸 다 잘하는 슈퍼맨이 되기를 바란다.

 

‘내 자식은 남에게 뒤지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내 자식만 잘된다면..... 자기 자식이 잘 되는 걸 마다할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만은 요즈음 어머니들은 남에게 지고는 못산다. 태어나서 돌도 채 지나지 않은, 아니 태어나기 전 태아교육부터 지극정성이다. ‘남보다 뒤지면 안돼!...’ 영어도 잘하고 피아노 정도는 어릴 때부터 배워야 돼! 태권도 정도의 호신술은 당연하지... 아니 웅변도 가르쳐야 호연지기를 익히고... 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다. 그래서 방학이 되면 미술학원, 피아노학원, 영어학원, 수학학원...은 성황이다. 그렇게 하는 게 부모로서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한다.

 

우리 부모들은 자녀관은 어떤가?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는 자기 자식을 독립된 인격체로 보기보다 ‘우리 가문을 빛낼 사람, 내가 못다 이룬 꿈을 실현시켜줄 사람...’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한 인격체로서의 존재로 인정하기보다 나의 분신으로, 우리집안의 구성원으로 본다. 개인의 능력이나 가능성을 찾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해 주는 안내자로서의 부모가 아니라 남에게 뒤지는 걸 용납하지 못한다.

 

밥을 먹을 수 있도록 가르쳐 주는 게 아니라 밥을 먹여주면서 키우는 아이. 해서 될 일과 하면 안 되는 일을 가르쳐 주기보다는 아이가 하자는 대로 다 해주면서 키운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생활습관이 아니라, 나만 좋으면 상대방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독불장군으로 키운다. 이러한 부모의 가정교육은 먹고 입고 선택하는 것조차 본인이 아니라 부모의 취향대로 이루어지고 스스로 결정하고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다.

 

자녀를 독립된 인격체로 보지 않는 부모의 자녀관이 문제다

 

'다 너를 위해서다' 이런 어버이의 사랑(?)이 몸집은 다 자랐지만 '나 밖에 모르는 청소년으로 자라게 한다. 민주의식도 경제관념도 없는 어른 아이로 자라는 청소년. 어쩌다 우리 아이들이 이 지경이 됐을까? 어린이 집이나 유치원도 부모의 취향대로, 옷의 색깔이나 간식이며 반찬까지 자식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취향대로 부모가 골라주고 입혀주고, 먹여서 자난다. 부모의 조언이나 간섭 없이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마마보이로 자라게 되는 거시다.

 

이러한 자녀 양육방식은 대학학비는 물론 용돈이며 결혼비용까지 부모가 감당하는가 하면 결혼 후에도 생활비를 부모가 마련해 주기도 한다. 성인이 된 후에도 주택마련이며 손자, 손녀까지 양육해 주는 게 부모가 해야 하는 자식 사랑인 줄 아는 사람도 많다. 마지막에는 퇴직금까지 자식의 사업자금으로 내주고 늙고 병든 몸으로 믿었던 자식에게 배신감을 느끼면서 노후를 불행하게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원죄는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에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모들은 구조적인 모순을 개선해 내 아이만이 아닌 모든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 생각을 하기보다 눈 앞의 이익, 근시안적인 자식 사랑에 매몰돼 내 자식도 남의 자식도 모두가 불행한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다.

 

'내자식만 출세하고 성공하면...'

어느 부모치고 그런 마음이 없을리 있을까만은 '세상의 공기가 다 더렵혀져도 우리집 방문 만 닫아놓으면 된다'는 식의 이기심을 버리지 않는 한 우리 아이뿐만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다 불행하다. 이제 내 자식은 '나의 분신이요 내가 못이룬 꿈을 대신 이뤄줄 사람'이 아니라 자식을 하나의 인격체로서 볼 줄 아는 성숙한 자녀관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것이 내 아이만 아닌 모든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지름길이다.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