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자녀의 하루 평균 대화시간 35초.

혹시 오늘 하루 자녀에게 건넨 말이

“밥 먹어라”

“공부해라”

“학교 가야지” 등이 전부이지는 않으셨는지요?

마음을 열고 대화해 주세요. 꼭 안아주세요.」

 

 

안동 MBC 라디오에서 나오던 ‘대화’라는 캠페인 중 일부다. 대화가 단절된 부모와 자녀들...

 

요즈음 부모들은 자기의 자녀가 유치원이나 학교에만 보내면 교육이 된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기본적인 생활습관을 길러 주거나 민주적인 생활훈련부터 생각하는 게 아니라 태어나기 바쁘게 어린이집, 유치원, 영어학원, 피아노학원, 태권도 학원, 미술학원, 음악학원...으로 보내면 부모로서 책임이나 역할을 다 했다고 믿고 있는 부모들도 많다.

 

경쟁시대를 사는 부모들은 아이들이 놀면 불안하다. 이웃집 아이보다 뒤지는 건 두고 볼 수 없다는 부모들이 늘어나고 있다. 00네는 기러기 아빠까지 불사한다는데.... 00네는 원정출산도 마다하지 않는다는데... 00네집 아이는 영어발음을 잘하기 위해 혓바닥 수술도 했다는데....

 

극성 엄마, 치맛바람도 마다하지 않는 엄마들... 100점만 받으면... 일등만 하면.... 돈이 문제가 아니라 성적만 올라간다면... 영재학교에 보낼 수만 있다면, 특목고, 자사고.... 일류 대학에 가야해! 최고가 돼야 해!... 남보다 뒤지는 건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엄마들....

 

경쟁보다는 협동을 배우고, 맘껏 뛰어놀면서 각자가 특성을 찾아주는 교육은 불가능한 일일까? 자녀의 개성이나 소질이나 특기 같은 건 무시하고 서울대학을 나와야 해! 의사가 돼야 해! 판검사가 돼야 해! 하면 윽박지르는 엄마들은 없을까? 열심히 노력했는데... 최선을 다했는데 그래도 따라가지 못해 마음이 아픈데... 아버지 엄마가 어린 가슴에 상처를 주는 말을 하지는 않았을까?

 

 

극성 엄마들... 그런 엄마들일수록 자녀들이 학원이나 학교에서 무얼 배우고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학생, 교사, 학부모를 일컬어 교육의 3주체라고 한다. 교육의 주체란 교육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는 사람을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오늘을 사는 부모들은 학부모로서 해야 할 일을 방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안동 MBC라디오 캠페인문구에서 볼 수 있듯이 부모가 가정에서 자녀의 교육을 포기한 지 오래다. 아니 할 수 없도록 만들어 놓은 지 오래다. 이 나라에 사는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식을 낳아서 유아원, 유치원, 그리고 학원이나 학교에만 보내면 교육이 저절로 된다고 믿고 있다.

 

학교가 무너졌다고 한다. 학교가 무너졌다는 말은 ‘학교에서 교육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시험문제를 잘 풀어 상급학교 그것도 일류학교, 명문대학에 진학하는 게 목표가 됐기 때문이다. 가정에서는 부모들이 교육을 하지 못하고 학교에서 교사들은 시험문제풀이를 교육이라고 착각하고, 학생들은 방향감각을 잃고 있다면 학생들은 어디서 사람답게 사는 공부를 할 수 있을까 어른들은... 교육자들은... 부모들은 왜 이런 현실을 계속 모른 채 하고 방관만 하고 있어야 할까?

 

학부모가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아이들을 학교에만 보내면 부모로서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부모들... 교육의 주체라면서 학교에는 학부모들이 설 공간이 없다. 아이들을 학교에 맡겨 놓고 살기 바빠 선생님들을 찾아보지 못했다는 미안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학부모들... 자녀교육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하고 해법을 찾아내야겠지만 그런 풍토도 분위기도 학교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학부모들이 학교에서 할 일이 정말 없을까?

 

지금까지 교육당국은 물론이요, 지역 교육청이나 학교는 학부모교육을 제대로 한 일이 없다. 이렇다보니 학부모들은 학기 초 학부모 총회라는 모임에 잠간 얼굴만 내밀고 오면 그게 끝이다. 구경꾼이 된 학부모, 교육위기를 보는 학부모들은 한결같이 자신은 그런 일과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학부모가 교육의 한 주체라면서 학부모가 학교에서 할 일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운영위원회가 법제화되면서 학부모위원이나 지역위원으로 학교운영에 참가하는 학부모도 있다. 학교운영위원이 되면 학부모나 지역정서를 대표해야 하지만 여론수렴이나 결과를 공유하는 과정이 없다. 결국 개인의 성향이나 판단에 따라 의견을 발표하고 결정하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어쩌다 담임선생님의 부탁으로 아침 등교지도 봉사활동, 학급급식지도를 하거나 혹은 청소도움이를 하는 게 전부다. 그런데 최근 학교와 교육청 연수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얘기가 ‘교육공동체’에 대한 얘기다. ‘우리교육 2013년 가을호’에 소개 된 김정인 학부모는 ‘학교에 첫발 들여놓기’에서 학부모 참가기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지금까지 학부모는 학교에서 재정적 지원을 하는 활동에만 참여하거나 아이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할당된 일을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학부모가 되면서부터 학생, 교사라는 교육주체가 아닌, 학생, 교사, 학부모가 협력하여 교육혁신을 꾀하려는 노력을 시도했다. 학교총회주체도 학교측이 내놓은 안건을 형식적인 통관의례로 끝내지 않고 ‘행복한 학교, 학부모와 함께 합시다’라는 주제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김정인인 학부모처럼 학부모가 학교 교육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영역이나 역할은 허다하다. 학교도서관의 도서위원이 되어 도서관 도우미로 활동할 수도 있고, 학교급식 식자재에 대한 원산지 확인과 위생 상태를 점검하는 급식 모니터링을 할 수도 있다. 방과 후 수업의 교육 내실을 키울 수 있는 방과 후 모니터링, 교과 선정위원회, 교원평가위원회 등 학부모의 관심과 요구를 반영하기 위한 학교교육관련 위원회에 참가하는 길도 있다.

 

 

교육청에서 하는 상담교육의 도우미로 혹은 교복공동구매의 추진 위원으로, 정규수업시간에 논술수업 명예교사로, 토요 방과후활동 체험활동을 기획하고 전통놀이나 요리교실, 원예활동 등 노력하기에 따라 그 역할과 영역은 끝이 없다.

 

2013년 경기도에서는 학부모회 조례가 제정되었다. 학교운영위원회와 학부모회가 일체화되어 학부모의견을 수렴하는 민주적인 법제화 기구가 마련 된 것이다. 학부모가 학교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면 학교부모가 봉사자로서 역할뿐만 아니라 교육의 주체로서 역할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학부모회가 학년별, 학급별, 기능별로 조직되어 학부모의 의견을 수렴하고 학부모의 조직적인 재능기부가 가능하게 된다. 교육부는 2010년부터 ‘학부모 지원사업 공모’를 통해 재정을 지원하고 지원된 제정은 사교육비 경감과 학교교육 발전을 위한 모니터링, 공교육 내실화와 자녀교육지도를 위한 학부모 연수, 내 아이만 아닌 우리 아이들을 키우는 학부모자원 봉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학부모가 교육의 한 주체로서 참여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이름뿐인 임의기구인 학부모회를 의결기구로 바꿔야 한다. 학교가 처한 교육위기에 대한 학부모의 의견을 제시하고 결정할 수 있는 주체로서 학부모회. 그것은 ‘학부모회의 법제화’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를 위해 지역 교육청 단위에서는 조례를 만들 수도 있고 단위 학교에서는 학부모규약을 제정해 교육과정이나 학교운영에 대한 문제를 놓고 토론하고 결정할 수 있는 민주적인 학부모회로 탈바꿈해야 한다. 교육주체로서 학부모가 교육현장에 참여해 학교를 함께 가꿔가지 않는 한 위기의 학교, 무너진 교육을 살릴 수 없다. 학부모가 언제까지 교육위기를 강건너 불구경하듯 할 것인가?

 

- 이 기사는 '말고 향기롭게 201310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 10점
김용택 지음/생각비행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오늘부터 새 학기가 시작됩니다.

 

1학년에 처음 입학하는 입문기 초등학생들... 또 한 학년씩 올라가는 재학생들... 새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기대와 설래 임으로 다가 오곤 합니다. ‘올해는 우리 아이 담임이 어떤 사람이 될까? 남자선생님일까, 아니면 여선생님일까? 자상한 분일까, 아니면 무뚝뚝한 분일까? 이런 기대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학부모들도 한결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새 학기에는 새로운 맘으로 학교생활이 즐겁고 행복한 생활이 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학부모와 학생, 모두의 꿈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서 부모님들은 무슨 생각을 하실까요? 우리아이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 ?  일등짜리 아이...? 순종하는아이...? 똑똑한 아이....? 어떤 아이로 자라기를 바랄까요?

 

첫째, 점수와 학력을 혼동(混同)하지는 마십시오!

 

사람의 심리란 참 묘한 데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받아 오면 받아쓰기 점수 100점이 뭐 그리 대단해서 한번 경쟁에 매몰되기 시작하면 빠져나오기 어렵습니다. 00점만 받아오면.. 일등만하면... 이렇게 경쟁하다보면 멀쩡한 부모들이 자식바보가 되는 건 신간문젭니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는 걸 싫어하는 부모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공부란 무엇일까요?

 

시험을 칠 때마다 100점을 받는 아이.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 보십시오. 그 100점이라는 수치는 숫자로 표시된 성취수준으로 문제의 난이도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또 일등이라는 것도 상대적이어서 전체의 수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점수란 기억력이나 계산능력 혹은 지식, 이해, 태도 등과 같은 학습의 결과에 대한 평가를 나타내는 숫자에 불과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숫자로 표현되는 평가는 지적인 영역이지 정의적인 영역이나 체력이 아닙니다. 학생들의 점수는 지적인 능력과 정의적인 능력과 신체적인 능력을 총체적으로 표현한 평가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점수에 목매는 어머니들... 공부만 잘하면, 100점만 받아 오면 모든 게 용서되는 그런 사랑으로 아이들을 잘 못된 길로 이끌지는 말아야합니다.

 

 

 

결과를 중시하는 교육은 부모들로 하여금 사교육, 즉 선행학습을 시켜 학생들을 지적탐구에 대한 과정이나 호기심을 말살하는 교육위기의 주범이 되게 합니다. 경쟁교육은 정의적인 교육, 정서교육이나 신체적으로 건강한 생활습관을 빼앗아가는 주범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그래서 소질이나 특기도 망각하고 국어, 영어, 수학 점수로 서열을 매겨 교육을 황폐화시키는 병폐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제발 정답 좀 가르쳐 주지 마십시오!

 

우리교육의 맹점 중 가장 큰 오류는 결과만 중시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부모님들 과거 학창시절을 한번 떠 올려 보십시오, 2×1=2, 2×2=4, 2×3=6, 2×4=6.... 이렇게 구구단을 달달 외웠던 기억이 나지 않으세요? 2×1이 왜 2가 되는지, 2×2는 왜 4가 되는지 모르고 달달 외워서 답을 말하면 우수한 학생이 됐던 기억을 말입니다.

 

수학이란 개념을 이해해야 하는 대표적인 학문입니다. 2라는 건 개념이지 실체가 아닙니다. 그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과정이 중요합니다. 개념을 이해하는과정은 어렵지만 개념만 이해하면 그 뒤의 문제는 저절로 줄줄 풀립니다. 어디 수학만 그렇습니까? 사회과목 또한 암기과목이 아니라는 건 다 아는 얘깁니다.

 

원둘레를 구하는 방법은 ‘지름 X 3.14’라고 외웠지요? 만약 지름이 10cm라면 10X3.14=31.4라는 답이 나오지요. 답은 알지만 왜 그게 답이 됐는지 설명하라면 못하지요. 독일의 발도로프 교육방법이 생각납니다.

 

입문기 아이들은 야외로 데리고 나가 자기네들끼리 풀어놓는다더군요. 스스로 관찰하고 추론하고 대화를 통해 지식을 공유하고... 자연친화적인 관계, 자연과 인간의 관계, 사람과 사람의 관계, 그래서 스스로 자기를 발견하도록 놓아두는 교육.... 우리는 어떻습니까? 일정한 틀 안에 들어오지 않으면 문제아 취급하는 교육, 교칙이나 생활지도규정이라는 걸 만들고 교복이니 두발이니... 그런 틀을 만들어 놓고 그 틀 안에 들어오지 않으면 문제아가 되는.... 그런데 유럽의 선진국에서는 답이 아니라 과정을 중시하는.... 그런 교육을 한다지요?

 

 

결과란 과정의 결실입니다. 물론 정답이 좋긴 하지만 과정이 없는 결실은 있을 수 없습니다. 어느날의 행복을 위해 모든 날의 희생하는 삶이 어리석듯이 결과만 중시하는 교육은 올바른 교육이 아닙니다.

 

답을 가르쳐 주면 좋을 것 같지만 사실은 아이들에게 창의성을 말살하는 무서운 죄는 짓게 되는 셈이지요. 우리교육도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아직도 수학문제까지 외우는 입시생들을 보면 답만 가르쳐 주는 경쟁교육이 청소년들의 창의성을 말살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셋째, 학교교육에 함께 참여 하십시오!

 

학생과 학부모, 교사를 교육의 3주체라고 하지요? 아무리 우수한 교사라도 학생들이 선행학습으로 교사를 외면하면 좋은 교육이란 불가능합니다. 좋은 교육이란 지식만 주입해 일, 이등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이 자라오면서 가지고 있는 개성이나 장단점을 교사와 함께 고민하지 않는다면 교사의 할 일이란 지식주입밖에 할 수 없습니다.

 

한 학급 3~40명이 모여있는 학급에서 일일이 학생 개인의 성격이나 장단점을 발견해 안내하고 이끌어 주기란 교사의 역량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담임선생님과 혹은 교과담임과 만나 자녀의 희망과 기대 그리고 요구사항을 확실히 전해야 합니다. 담임선생님을 만나기 부끄럽다는 그런 얘기는 하지 마십시오. 교사란 학부모들이 세금을 내 고용한 일꾼입니다. 빈손으로 당당하게 가 만나 요구하고 상담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학교교육에 함께하시려면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하십시오. 학부모위원으로 참여해 학교급식이나 예산 그리고 운영에 관련된 모든 문제에 의견을 피력하고 학교를 바꿔나가는데 동참해야합니다. 학교는 이제 많이 열려 있습니다. 학부모들이 참여하지 않으므로 학교는 그 만큼 진보의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자녀가 귀하다면 학교매점에 아이들의 건강을 해치는 식품첨가물 투성이나 고카페인 상품을 판매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또 매일같이 먹는 학교급식의 식자재가 아이들의 건강을 해치거나 비만을 불러오는 식자재는 아닌지, 인체에 유해한 수입품이나 GMO식자재는 아닌지 학부모들이 지켜내야 합니다. 내가 낸 소중한 세금이 학교에서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지 예산 집행을 감시하는 건 이제 학교운영위원이 되어 학교를 바꿀 수 있는 건 학부모의 몫입니다.

 

개인의 삶이란 그 개인의 수준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학교의 수준도 그 학교의 구성원 즉 학생과 학부모, 교사의 주준을 능가하지 못합니다. 좋은 학교는 이제 구성원들이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성적에 매몰돼 우이아이만 일등이기를 바라는 학부모와 자기 제자 출세시켜주는 걸 좋은 교육이라고 착각하는 교사나 일류학교가 목표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모여 있는 학교는 어떤 학교가 될 것인지는 뻔합니다. 좋은 학교는 그 구성원들이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며칠 후면 새학기가 시작됩니다. 지금 학교에서는 인사이동으로 분위기가 뒤숭숭합니다. 다른 학교로 떠나는 사람, 다른 학교에서 발령이 난 사람.... 누가 어떤 학년을 맡을 지 어떤 업무분장을 담당하게 될 지... 물론 사립학교는 예외겠습니다만 공립에서는 2월 중순부터 새학기가 시작될 때까지 이런 분위기가 계속됩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어떤 선생님을 만나느냐에 따라 아이의 운명이 달라진다’고요. 선생님들의 성향이 너무나 각양각색이어서 처음 초등학교 입학이라도 하는 아이들의 부모님들은 예사로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닙니다.

학부모에 따라 선호하는 선생님도 다양합니다. 그러나 자기가 원한다고 원하는 선생님을 만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운명적으로 만나게 될 내 아이 선생님은 어떤 선생님이 좋을까요? 학부모들에 따라 남자선생님을 좋아하는 학부모도 있고 여자선생님을 좋아하는 학부모도 있습니다.

키가 큰 선생님, 키가 작은 선생님, 뚱뚱한 선생님, 날씬한 선생님, 젊은 선생님, 나이가 많은 선생님... 성격이 자상한 선생님, 무뚝뚝한 선생님.. 이런 선생님 중 우리 아이는 어떤 선생님이었으면 좋아할까요? 아이도 아이지만 학부모들이 더 설레고 기대가 큽니다.


젊은 선생님, 자상하고 학생들의 눈높이에서 차별 없이 아이들을 대하고 인정이 많은 선생님이 우리 아이 담임이 됐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원하는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고 바꿔 달랠 수도, 불평을 할 수도 없는 게 현실입니다.

교육이 상품이라는 데, 교육소비자들에게는 왜 선택권이 없을까라고 불평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운명처럼 만나는 선생님, 혹시 마음에 맞지 않으면 ‘올해는 참고 견디자, 내년에는 좋은 선생님을 만나겠지.....’ 이렇게 운명 탓으로 한해를 보내야 할까요?

선생님은 내가 세금을 내고 채용한 사람입니다


흔히들 학부모들은 말합니다. 담임선생님을 찾아가기가 부담스럽다고... 혹은 빈손으로 찾아가기가 부담스럽다고... 왜 그런 생각을 할까요? 분명한 사실은 당당하게 아이의 교육에 대한 의논하고 대화로 함께 아이를 교육하는 조력자로서의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내 자식을 담임에게 맡겨놓으면 잘 해주시겠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40명이 넘는 아이들, 아이들마다 개성이며 특기며 소질이며 취미며 건강상태도 제 각각인데 그런걸 혼자서 파악하기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까요?

담임 혼자서도 한 학기정도를 지내면 아이들의 대부분을 파악이냐 하겠지만 처음부터 학부모와 담임이 소통하고 협력한다면 훨씬 빠른 시일 안에 보다 잘 적응하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도와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위선도 가식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내 아이의 모든 것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감출 것도 없이 가장 상세하게 아이의 정보를 알려주도 믿을 수 있는 관계여야 합니다.


담임과의 소통, 이렇게 해보세요

.
첫째, 담임선생님은 가능한 한 빠른 시일 안에 면담하는 게 좋습니다. 당당하게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필요한 정보는 숨김없이 나눠 가져야 합니다. 면담 전에 내 아이의 특성이나 소질이나 건강문제 등 담임이 유의해야할 사항, 지도하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를 구체적으로 담임에게 알려줘야 합니다.

둘째, 가능한 한 담임과는 자주 만나야 합니다. 시간의 여유가 없거나 담임을 만나는 게 부담스럽다고 느낀다면 E-mail로 서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두는 게 좋습니다.


셋째, 지나치게 점수에 연연해서는 안 됩니다. 초등학생일수록 학부모들의 교육열이 지나쳐 점수를 성적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점수보다 정말 신경써야할 부분은 아이들이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지, 사회성이 원만한지, 지나치게 주관적이고 이기적으로 생활하는 건 아닌지... 원만한 성격으로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지의 여부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넷째, 지나친 과외 때문에 아이들이 부담을 갖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웃집 000는 영어학원에도 다니고 개인 교습을 받는다는데... 이렇게 아이들에게 부담스럽게 하는 것은 아이들이 공부에 취미를 잃고 공부에 싫증을 내게 할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적당한 독서와 건강을 위한 배려를 잊지 않도록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섯째, 기초생활습관에 관심을 갖고 지도해야 합니다. 하나 뿐이 아이, 자칫 ‘오냐오냐’ 하고 키우다 버릇없는 아이, 막무가내로 때 쓰고 안하무인격으로 성장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구별해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적당한 책임을 물어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할 것입니다.


여섯째, 무엇보다 중한 것은 자신이 소중하다는 것, 내 부모, 내 이웃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우쳐줘야합니다. 한 아들, 딸로 자란 아이들은 부모에게 늘 칭찬과 인정만 받고 자라 ‘내게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가치관으로 자라지 않도록 보살펴야 합니다.



팔이 안쪽으로 굽는다고 부모가 보기는 사랑의 눈으로, 주관적으로 아이들을 보기 쉽습니다. 담임선생님과 함께 아이를 위해 교육의 동지로서 서로 의논하고 대화로 만날 수 있다면 처음 기대했던 선생님이 아니더라도 아이에게 보람 있는 한 해를 보내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나친 치맛바람도, 지나친 기대도 금물입니다. 내 아이가 남보다 다른 특별한 아이, 영재가 아니라 보통아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부모님과 담임이 배려하는 만큼 우리아이는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을 것입니다.
 
위의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가져왔습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