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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편은 민주주의 아버지2

전두환은 죽었지만 학살자는 살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역사를 거꾸로 돌리고 있다 유신시대 괴물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고 있다. 학살자 전두환정권의 2인자 장세동이 어디에 숨어 살다가 제 시대를 만난 줄 알고 슬그머니 나타나 당당하게 기자들에게 “5.18 직전인 1980년 5월 15일, 당시 특전사 작전참모 직책으로 광주에 방문했다”고 말했다. 이름만 들어도 몸서리치는 악마들이 너도나도 제 세상을 만났다는 듯 완장까지 차고 나타나 큰소리치는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 회원 수만 80만명 전국 17개시도협의회와 233개시군구 협의회 그리고 3191개 읍면위원회까지 갖춘 거대조직인 ‘바르게살기협의회’는 이름만 들어도 소름끼치는 삼청교육대 후신이다. 삼청교육이란 명분하에 1981년 1월까지 끌려간 국민만도 무려 6만 755명. '교육' 현장에서 .. 2023. 5. 18.
오 광주여! 민주주의여.... 광주항쟁은 처음부터 ‘민주화운동’이니 ‘5·18광주항쟁’이라고 하지 않았다. 5·18이 재조명되었던 1996년, 대법원은 계엄군의 사실상의 국헌문란의 폭동행위로 간주했다. 심지어 지만원씨는 “북한이 600명의 특수부대를 침투시켜 광주를 점거하고 무장봉기를 일으켰으며 시위를 지휘하고 계엄군을 폭행했다”고 했다. 1980년 5월 광주에 언론은 없었다. 대다수 언론은 계엄군이 1980년 광주 시민들을 폭력 진압했을 때 현장을 제대로 기록하지 못하고 계엄사령부 등 당국 발표를 무비판적으로 받아썼다. 전두환 신군부는 모든 언론 매체에 계엄군의 검열이란 재갈을 물려 국민의 눈과 귀를 막기도 했지만 스스로 알아서 학살자의 비위를 맞췄다. 1980년 5·18광주항쟁은 1988년 제6공화국 출범 직후 국회에서 '무장 폭.. 2022.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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