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가 시작된 지 한달 반이 훌쩍 지났다. 학생이나 학부모, 교사 모두는 새 학기를 맞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분주하다. 꿈에 부푸는 새 학기, 당연히 기대와 설레임으로 들뜨기 마련인 학부모들은 마냥 즐겁지만 않다. 학부모 총회나 학급학부모회에 참여하면 찬조금을 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이다. 지금까지 의무교육기간인 초·중학교에서조차 학부모들의 불법 찬조금 모금은 당연시 되었고, 학기 초 학급에 필요한 비품을 마련하고, 각종 학교행사에 재정지원도 관행으로 계속되어 왔기 때문이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를 비롯한 시민단체에서는 지금까지 관행적으로 이루어져 온 학교 행사 지원비, 보직교사 회식비, 스승의 날 선물비, 학교운영위원회 회식비와 같은 불법 찬조금을 근절하기 위해 ‘촌지·불법찬조금 근절로 건강한 학교문화를 만들자’는 기자회견을 열고 켐페인을 벌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전남과 광주 등 민선 교육감 지역에서는 촌지와 불법찬조금 근절을 위한 특별감찰을 연중 실시키로 하는 등 해묵은 학교의 악습을 퇴치하기 위한 운동에 나서고 있다.

 

 


불법찬조금이란 ‘학교운영위원회 당선 사례금, 자녀의 학생회 임원 당선 사례금, 반별?학년별?자생단체별로 조성하는 강제 할당 회비...’ 등이다. 아이를 학교에 맡겨 놨다는 죄 아닌 죄 때문에 공공연하게 계속되어 온 학교장과 각 단체임원, 특히 학부모회 임원을 대상으로 십시일반 조성하는 회비, 음성으로 진행되는 각종 향응제공 행사, 스승의 날 선물비 등과 같은 불법찬조금은 교육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 아이에게 특혜를 바라는 불법 뒷거래이다. 대부분의 학부모는 불법찬조금 조성 방법, 조성과정과 금액, 사용처가 은폐되었을 뿐 여전히 만연해 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지금까지 진보교육감들의 노력으로 숨어있던 납품과 계약비리, 인사승진 관련 금품거래 등의 비리가 적발된 것은 투명한 학교 문화 정착을 위한 노력으로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학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불법찬조금 근절에 대해서는 근본 대책이 수립되지 않고 있는 게 작금의 학교 현실이다. 또한 학교운영위원회를 통과하면 불법이 합법으로 둔갑하는 학교발전기금 제도 또한 학부모에게 부담을 지우는 강제모금이 아닐 수 없다.

국가권익위원회 발표한 2011년 자료에 따르면, ‘학교발전기금은 ? 지역간?학교간 교육여건 격차를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 ? 자녀가 재학 중인 학부모를 대상으로 불법 모금사례 상존 ? 이해관계자에 의한 리베이트 성격의 기부금품 접수사례 발생 ? 학교에서 직접 기금을 접수하고 있어 불법 조성행위 근절 곤란’함을 지적하고 있다. 학부모들은 공교육비뿐만 아니라 천정부지로 치솟는 사교육비 부담, 여기다 불법찬조금과 학교발전기금까지 부담해야 하는 이중의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치권은 앞다투어 학부모의 교육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공약을 발표하고 있지만, 은밀히 진행되는 불법찬조금과 합법적인 명목으로 조성하는 학교발전기금이 폐지되지 않는다면 학부모들의 불만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학교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고, 학교 참여 의지를 무산시키는 불법찬조금의 원천적 근절되어야 하며 학교발전기금 제도는 폐지되어 마땅하다.


이를 위해 교과부는 교육감, 학교장, 교감, 행정실장과 학부모에 대한 지도감독을 강화하고 학교예결산(안) 및 집행내역을 학교홈페이지 등에 구체적으로 공개하고 학교운영위원회 예결산 심의를 강화하는 등 구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불법찬조금 근절과 학교발전기금 폐지를 위해서 학부모들은 학부모총회와 학교 방문 시 돈봉투를 건네는 일이 없어야 함은 물론 교사 향응접대비, 야간자율학습 감독비, 모의고사 감독수고비 조성에 응하지 않아야 한다.

 

 

 

투명한 학교, 건강한 학교문화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 아이 특혜를 받아야 하겠다는 이기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야 하겠지만 불법찬조금 요구를 당당히 거부하고 위법성을 지적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 없이는 공공연한 비밀로 계속되고 잇는 해묵은 과제, 청산해야할 악습을 떨쳐 버릴 수 없다.

투명한 학교, 건강한 학교문화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학부모와 교사 그리고 교장과 교육청이 함께 나서지 않는 한 건강한 학교를 기대하기 어렵다. 불법과 비리로 얼룩진 학교에서 어떻게 내 자녀가 건강한 교육을 받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가져왔습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2.04 23:54



 해마다 연말이 되면 구세군 남비가 예외 없이 등장한다. 구세군의 자선남비는 연말이 되면 등장하는 불우이웃을 돕기 심벌처럼 됐다. 구세군은 산업혁명 후기증상으로 실업자와 빈민들이 넘치고 정신적 타락과 알콜중독, 윤락 등의 사회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탄생했다.

구세군을 창시한 윌리암 뿌드 목사는 교회가 존재할 이유가 없어지는 현실을 보고 '3S 운동
Soup(슾 : 국의 뜻), Soap(소프 : 비누의 뜻), Salvation(샐베이션 : 구원의 뜻)의 영어 첫 글자'으로 시작됐다.

'따뜻한 국으로 몸을 지탱케 하고, 비누로 더러움(죄, 무지, 미자립, 가난의 습관 등)을 깨끗이 씻어 내어 스스로 건전한 사회인이 되게 하자'는 뜻이란다. 

                                                   <사진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연말연시가 되면 불우이웃을 돕자는 운동이 정부나 각 단체에서 앞다투어 시작한다. 사랑의 열매를 팔아 성금을 모으고 텔레비전에서는 불우이웃을 돕자는 캠페인과 성금 모으기가 바쁘다. 지난 2009년에는 국방성금으로 모은 돈이 미군에게 액자를 사주는데 2억9백만원이, 국군을 위한 장갑을 사는데는 4800만원이 지급돼 논란을 빚기도 했다. 아직도 관공서에서는 국방성금 뿐만 아니라 불우이웃돕기를 비롯한 성금이 준조세형식으로 모으다가 눈총을 받기도 하고 언론에서는 해가 갈수록 '추운 연말 연시'라며 세상 인심을 개탄하기도 한다.

옛날에는 '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한다'고 했다. 이런 말은 지배이데올로기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게으런자가 만든 가난을 탓하는 말이었으리라. 그러나 오늘날의 가난은 따지고 보면 개인의 게으름이나 무능력보다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이 낳은 결과로 해석해야 옳다. 이러헌 '소외'나 '빈곤'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거나 동정심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옳지 못하다.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에 의해 나타난 빈부격차나 소외는 국가가 해결 해야 할 몫이다. 근본적인 원인을 두고 개인의 동정심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국가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고통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당장 시급한 배고픔은 이웃의 자선이 절실한 경우도 없지 않다. 그러나 연례행사처럼 혹은 재벌총수나 기관단체의 장의 얼굴내기식의 성금기탁은 보기 식상하다.    

나는 자선을 좋아하지 않는다.
해마다 홍수나 태풍이 지나가면 방송국이나 신문사에서 연례행사처럼 성금을 모은다. 성금의 종류도 다양하다.
수재민 돕기 성금, 천안함 유족돕기 성금, 숭례문 복원 국민성금, 방위성금, 사랑의 열매 국민성금....
연말이 되면 불우이웃돕기 성금에다 국군장병성금모금까지...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의 끝도 없는 구제를 계속해야 연명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 구제는 대안이 아니다. 내가 자선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자선이라고 다 좋은 것일까?

첫째는 자선을 베풀므로써 자신의 과오를 면제받았다는 자기 만족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탈세를 하거나 독과점 경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가난하게 만들어 놓고 눈꼽만큼의 생색을 내는 자선으로 면죄부를 받는 것은 구제의 대상을 우롱하는 일이다.

둘째는 자선은 자선의 대상자들에게 자력갱생의 기회의 의욕을 잃게 만드는 마취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당장 끼니를 잇지 못하는 사람이나 한계상황에 처한 사람이야 예외일 수도 있지만 이런 경우에도 국가가 제도적인 차원에서 사회보장이 이루어져야 옳다. 그러나 재기 가능한 사람에게 시혜차원의 구제는 생명을 연장시켜주는 은혜가 될 지 모르지만 재기의 의욕을 상실케 하는  마취제가 될 수도 있다.

수탈이 존재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부익부, 빈익빈'은 필연이다. 이러한 모순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회보장제도가 필요하다.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으로 나타난 가난이나 재해는 자선이나 집합주의 복지가 아니라 생활권(사회권)으로서 삶의 질을 보장해주는 보편주의 복지로 해결할 일이다. 진정한 사회보장은 구걸자에게 시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대안으로 자립할 수 있는 제도적인 보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운 좋은 자선가를 찾아 방황하는 구걸자를 재생산하는 자선은 진정한 의미의 자선이 아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