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불교2018.05.24 06:30


가족 모두가 건강하고 아들들이 잘 커 줬으면 좋겠어요.”

아들이 00대학에 합격하기를 빌고 왔어요.”

통일이 되어 남북이 하나 되기를 빌었어요.”


<사진 " 부처님 오신 날 동학사 법회> 

어떤 기자가 삭가탄신일 절에 다녀오는 불자들을 인터뷰한 답변이다. 신중기도, 관음기도, 지장기도, 백일기도, 설판기도, 석불전 기도, 생일기도, 일일기도.... 기도의 종류가 많기도 하다. 절에 다니는 신자들 중에는 부처님께 빌면 소원성취 한다고 믿고 있는 신자들이 예상외로 많다. 사바세계에서 살다보니 사람의 능력으로 안 되는 일을 전능한 신에게 기원하는 것은 불교가 전래되기 전, 민간신앙에서부터였다.

사람들은 종교를 왜 믿을까? 죽음이 두려워서...? 내세에서 영원히 살기 위해...? 천국에 가기 위해서...? 착하게 살기 위해서...? 종교란 신이나 초자연적인 절대자 또는 힘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인간 생활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문화 체계이다. 그 대상교리행사의 차이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는데, 애니미즘 · 토테미즘 · 물신 숭배 따위의 초기적 신앙 형태를 비롯하여 샤머니즘이나 다신교·불교·기독교·이슬람교 따위의 세계 종교에 이르기까지 비제도적인 것과 제도적인 것이 있다.

엊그제는 불기 2562년 석가탄신일이었다. 불교란 고타마 붓다가 펼친 가르침이자 진리를 깨달아 부처(붓다 · 깨우친 사람)가 될 것이라는 것을 믿는 종교이다, 기독교가 절대자인 3위일체 신인 하느님을 믿어 내세에 영원히 살기 위해서... 와는 다르다. 불교의 궁극적이 목적은 기도가 아니라 깨달음(반야 · 보리)에 도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스스로 깨달아 부처가 되는 것이 목표다. 불교가 부처님께 빌면 소원을 성취하는 종교가 아니라 부처가 되기 위해 그의 가르침을 배워 실천함으로써 더 빨리 부처가 되기 위해 수도를 통해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기 인한 종교다.

불교가 전래되기 전 전통신앙은 인간의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보이지 않는 신을 믿고 복을 빌거나 어려움에서 구해주기를 기원하는 애니미즘 · 토테미즘 · 물신 숭배에서 비롯된다. 그래서일까? 원시시대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신에게 빌면 자비하신 신이 인간의 정성에 감동해 은총을 베풀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유한한 인간이 전능한 신에게 지성으로 구하면 얻을 수 있다는 기도= 종교라는 인식으로 굳어져 기독교든 불교든 대부분의 종교는 구복(求福) 혹은 기복신앙(祈福信仰)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 또 불교신도 중에는 부처님을 신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기독교는 삼위일체신인 전지전능한 3위일체의 하느님을 믿는 종교지만 불교는 신을 믿는 종교가 아니다.


<사진 : 속리산 법주사>

불교의 부처(붓다)는 신이 아니다. 불자들은 그의 가르침 즉 부처=이라고 인정하고 배워 실천하려고 노력하지만 부처가 인간의 기도를 들어주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신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 왜 불자들은 부처님께 빌면...’ 소원성취를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을까? 짐작컨대 불교나 기독교가 전래 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토착민의 정서에 영합하거나 부처님을 믿으면 소원을 성취할 수 있다는 인센티브를 포교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이 아닐까?

속리산 법주사에 가면 12억이라는 거금을 들여 높이 33m, 두께 132mm, 무게 150t, 3미크론의 두께의 황금 옷을 입힌 금의 무게만 해도 21300돈중( 80kg)의 거대한 미륵불이 서 있다. 법주사는 이 부처님이 녹이 슬고 색이 바래 100kg의 순금으로 개금불사를 다시 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 청동미륵대불은 높이가 12층 아파트와 같은 33m, 무게가 점보비행기와 맞먹는 160t으로 청동입상(立像)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라고 한다. 거대한 불상을 세워 그 앞에 가서 빌면 영험이 더 있는가?

싯다르타는 법(다르마)을 인정하였으나, 그 안에서의 총합적인 나(아트만)의 존재는 인정하지 않았으며, (무아) 오히려 영원한 나에게 집착하기 때문에 번뇌가 따른다고 하였다.(일체개고) 싯다르타는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고 망집을 단절한다면 일체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열반(니르바나)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내가 믿는 불교는 이런 싯다르타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종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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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정치2014.09.16 06:28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다 길에서 강도를 만난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게 되자 버리고 가버렸다. 강도를 만나 죽어가는 사람이 길에 누워있는 사람 곁을 세 사람이 지나간다.

 

가장 먼저 이 길을 지나간 사람은 제사장이다. 제사장은 죽어가는 사람을 보자 모른 체하고 피해 지나갔다.

두 번째 이 길을 지나간 사람은 레위인이었다. 그도 제사장처럼 피해 지나가 버렸다.

 

세 번째 이 길을 지나가던 사마리아 사람은 그를 보고 불쌍하게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려갔다.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두 데나리온을 주면서 이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많이 들면 내가 돌아올 때 갚겠습니다.”

 

<이미지 출처 : 천지창조 블로그에서...>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 본 얘기다. 이 이야기는 어떤 율법교사가 예수가 어떤 사람인지 시험하기 위해 한 질문에서 나오는 얘기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해 두었느냐?”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네 대답이 옳다 가서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예수와 율법교사의 대화 내용이다. 율법교사는 예수께 다시 묻는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이 때 예수께서 대답한 내용이 앞에서 예를 든 그 유명한 강도 만난 사람이다.

 

이해를 돕기 위의 강도만난 사람을 본 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자.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 된 사람을 본 첫 번째 사람과 두 번째 사람은 제사장과 레위인이다. 요즈음 말로하면 성직자요 지식인이다. 당시 제사장과 레위인은 최고의 지도자요, 지식인이요, 기득권층이다. 사랑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이다. 이러한 제사장은 버려두면 죽고 말 강도만난 사람을 두고 가버렸다.

 

세 번째 강도만난 사람을 본 사람은 사마리아인이다. 유대인들은 평소 사마리아인을 마치 문둥병환자를 대하듯 했다. 유대인에게 참혹한 냉대를 받으면서 살아 온 사람들이 사마리아인들이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예루살렘 성전에조차 들어가지 못하게 학대하던 원수지간이다. 제사장도 레위인도 모른 체하고 버리고 간 강도만난 사람을 구해 준 이는 평소 학대받고 살아 온 사마리아인이다. 강도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라고 가르치는 종교,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기독교를 일컬어 사랑의 종교라고 한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처럼 하라는 게 기독교의 가르침이요, ‘원수를 위해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가르치고 있다. 예수는 그런 사랑을 실천한 분이다. 자신을 미워하고 저주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뿐인 목숨까지 내놓는 사랑.... 그래서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기독교는 어떤가? 물론 고통받는 사람, 도움이 필요한 사람 곁에서 그들에게 힘이 도어주고 사랑을 실천하는 문규헌, 문정현신부, 이태석신부...같은 분도 없지는 않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기독교는 갑이 된지 오래다. 성서의 공유사상과는 거리가 멀다. 자본주의정신, 철저하게 세상과 짝하며 그들의 편에서 세상의 열락에 빠져 이 세상에서 쾌락을 누리며 사는 게 축복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기독교가 타락한 것은 전적으로 양의 탈을 쓴 성직자들 때문이다. 말세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나 양들을 미혹한다는 성서의 예언대로 예수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며 미혹하고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예수님이 가르친 강도만난 사랑을 실천하는 사마리아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골방에서 주여, 주여...’ 하며 겉으로는 거룩한 체하고 실천 없는 공허한 기도로 날밤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천국과 지옥과 헌금을 강요하면서... 오늘 날 강도만난 사람을 외면하는 제사장과 레위인이 된 성직자는 하나같이 가짜다. 예수님이 가장 싫어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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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종교2009.04.22 09:28



하느님은 어떤 분일까? 가톨릭(천주교), 기독교, 그리스정교회, 이슬람교...는 같은 야훼라는 신을 믿는 다른 종파들이다. 가톨릭이 종교개혁 후 갈라진 개신교만 해도 넉넉잡아 50개 종파가 넘을 것이다. 기독교는 왜 이렇게 종파가 많을까? 그 원인을 한마디로 말하라면 예수라는 분이 하느님인가 아닌가에 따라 나눠진 것이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를 하느님으로 믿는 기독교 신자들은 같은 하느님을 믿고 있는 것일까?

                                           <사진 자료 : 오마이뉴스에서>

뉴스위크지가 미 중앙정보국(CIA)과 세계 각국 통계자료를 기초로 해 작성한 종교분포를 보면 세계 인구 64억5300만명 중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그리스도교인은 21억3300만명이다. 아마 확실한 통계치는 알 수 없지만 그리스도교도 2억 수천만명 중 ‘같은 하느님’은 믿는 신자는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왜 그럴까? 중학교 1학년 때 우연히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내가 만난 하느님의 경우의 예를 들어 보자.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나의 신관(神觀)에 따라 하느님은 같은 분이 아니었다. 다른 신자들은 어떨까?

친구 따라 간 교회. 그 교회가 천주굔지, 그리스도굔지 또 그리스도교라면 예수교 장로교인지 기독교장로교인지, 감리굔지, 제7일 안식교인지 알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알리도 없었다. 목사님을 통해 가끔씩 들은 하느님은 어떨 때는 ‘야훼하느님’이라 했다가 어떨 때는 ‘성자(예수) 하느님‘이라 했다가 어떨 때는 ’성령 하느님‘이라고 표현해 어떤 분인 진짜 하느님인지 알 리가 없었다.

중학교 1학년이 교회에서 처음 만난 하느님은 ‘전지전능하고 우주를 창조하신 무서운 하느님이었다.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지만 전능하시기 때문에 하늘이나 땅이나 땅 속 어디에 있는 사람의 마음 속 생각까지 샅샅이 알고 계시는 분이라고 알았다. 그런데 궁금한 건 ‘전능하신 하느님이시라면 왜 가난하고 병들고 억울한 사람들을 그냥 두실까?‘ 또 ’어떤 사람들은 귀하게 또 어떤 사람들은 천하고 힘들게 살아가도록 버려두실까?’ 그런 생각이 어렴풋이 들긴 했지만 그런 것은 다 ’하느님의 뜻‘이니 사람이 간여할 일이 아니라는 성경 말씀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중학생 수준의 필자의 신관(神觀)만 그런 게 아니었다. 오늘날 수십년 교회에 다니는 교인들 치고 똑같은 신관을 가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어떤 신자는 ‘권위의 하느님을, 또 어떤 분은 공포의 하느님을, 또 어떤 신자는 사랑과 자비의 하느님’으로 알고 믿고 있다. 3위 일체에 대한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는 신자는 몇이나 될까? 사실 신자들 중에는 어떤 분은 야훼를, 어떤 분은 예수를 하느님이라 믿는다. 같은 교회에 나가면서도 어떤 사람은 전통적인 다신교수준인가 하면 신자들 중에는 민중신학이나 해방신학에 근거한 신자들도 없지 않다.

하느님의 모습뿐만 아니다. 신자들의 기도도 가지각색이다. 어떤 신자는 하느님을 ‘우는 아이가 젖 준다’는 우리 속담처럼 내가 필요한 것을 부지런히 빌기만(祈福)하면 다 들어주신다고 믿고 있는 사람이 있다. 이런 기복적인 혹은 구복적인 신앙을 가지 신자들은 신앙의 대상만 바뀌었지 천지신명에게 빌던 전통 신앙과 전혀 다른 게 없다. 입시철이 되면 수능시험에 ‘내 아들, 딸이 합격하게 해 달라(다른 집 아들딸이야 떨어지든 말든...)고 기도하는 신자가 있는가 하면 자녀들의 취업을 위해 철야기도도 마다하지 않는다.

하느님이 어떤 분(神觀)인가에 따라 종교의 본질에 얼마나 접근했는지의 여부가 결정된다. 도올 김용옥 교수가 요한복음 강의에서 "구약 성경을 믿는 것은 성황당을 믿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라고 말해, 기독교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일이 있다. 나는 이 논쟁에 말려들 수준의 성서학자도 아니거니와 그럴 생각도 없다. 그러나 평신도의 눈에 비친 구약의 하느님과 신약의 하느님은 전혀 다른 분이다. 복수의 하느님. 형식과 권위의 하느님인가 아니면 사랑의 하느님, 자비의 하느님인가에 따라 ‘하느님의 뜻(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세우는...)’이 달라진다.

역사에 가정이 없다고 하지만 만약 토마스 뮌쯔가 승리하고 마르틴 루터가 죽임을 당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오늘날 기독교가 살아남은 이유는 신의 뜻을 저버렸기 때문에 가능한 얘기가 아닐까? 기독교와 자본주의는 코드가 맞을 수 없다. 자본주의가 변질했든지 아니면 기독교가 변질해야 공존이 가능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자본주의와 기독교의 공존은 기독교의 변질 즉 정교분리가 아니라 정교공존을 하고 있는 셈이다. 예수님은 분명히 밝혔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것을... 이러한 명제는 오늘날 부자교회들의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이 예수의 정신을 부정하고 있다는 것을..... (다음은 ‘내가 만난 성직자’로 이어가겠습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