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나 아이들이나 똑같습니다. 그러니까 아이들하고 치고 박고하지요.”

듣지 말아야할 소리를 듣고 말았다. 후배교사가 외동딸 결혼식 주례를 봐달라기에 오랜만에 갔던 고향(마산에서 30년을 살았으니 고향이나 다름없다)이다. 결혼식을 마치고 오랜만에 선생님들과 반가운 만남의 자리에서다.

 

자연스럽게 학교 얘기가 오가고 힘들어 하는 선생님들의 얘기 중에 나온 말이다. ‘선생님과 똑같은 아이...?’ 나는 물어보지 않아도 그게 무슨 뜻인지 안다. 교직을 일컬어 3D업종 중의 하나라고들 한다. 그만큼 교사노릇하기가 힘든게 요즈음 세태다.

 

교사되기가 참 어렵다. 교사가 좋아서라기보다 취업이 힘든 세상이다 보니 안정된 직장 중에 교직을 선호하는 추세다. 교사가 되려면 사범대학 혹은 교육대학에 가야 한다. 사범대학 또는 교육대학에 진학하려면 성적이 백분위95~96%정도는 되어야 한다. 고등학교 학급에서 손가락 꼽을 정도로 성적이 좋아야 맘이라도 먹을 수 있다.

 

사범대학이나 교대를 졸업하고 교원 자격증을 받았다고 해서 교사가 되는 게 아니다. 임용고시라는 관문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그렇지만, 대학에서도 한 눈을 팔다가는 임용고사를 통과하기란 하늘별 따기다. 제수는 기본(?)이요, 3수, 4수도 보통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발령을 받은 교사들이 학생들을 맡게 되면 무엇을 유능한 교사로 인정받고 아이들과 소통을 잘 할 수 있을까?

 

공부밖에 모르는 선생님, 좋은 선생님 되기 어렵다

 

요즈음 임용고시를 거쳐 발령받는 선생님들을 보면 다시 쳐다보인다. 어떻게 그 바늘구멍같은 임용고시를 거쳐 발령을 받았을까?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한 그들의 재주에 경탄과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런데 한발만 물러서서 보자. 이들은 공부벌레다. 조금이라도 한눈을 팔면 끝이다. 발령을 기대하기는 글렀다.

 

이렇게 공부벌레가 돼야 발령받을 수 있는 교사. 이런 교사들이 발령을 받고 만나는 학생들은 교사와 같은 범생이만 있는 게 아니다. 일반인문계학교나 실업계 학교에 발령을 받은 선생님들은 도저히 그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한 학급 35명정도의 고등학생 중 잘해야 서너명이 교사의 수업을 듣고 앉아 있는 교실....

 

 

타이르고 달래고 겁줘도 눈도 끔쩍하지 아이들... 아예 공부와는 담을 쌓은 아이들... 사흘이 멀다하고 사고나 치고 파출소에서 호출당하다보면 제물에 지쳐 떨어지고 만다. 그것도 그럴 것이 범생이로 살아 온 선생님들이 그들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런 현실을 두고 교과부가 내놓았던 ‘초·중등교사임용시험 개선방안’은 어떤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인증 취득해야 교원임용시험 응시 가능

2013년 9월 1일부터 초중등 교사 임용시험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시행하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인증(3급이상)'을 취득해야 한다.

 

◇'교직적성·인성검사' 실시 의무화

교원양성기관 재학기간 중 1~2회 이상의 '교직적성·인성검사' 실시를 의무화해 단계별 진로지도를 강화하고 그 결과를 교사자격증 취득을 위한 무시험검정 평가에 반영한다.

 

◇대학 교직과목 성적평가 기준 및 교직소양 학점 취득 상향

대학에서 교사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적용되는 교직과목에 대한 이수기준을 졸업평점 환산점수 100분의 75점 이상에서 100분의 80점 이상으로 높였다.

 

◇중등교원 임용시험, 교육학 객관식 시험 폐지

교육학적 소양 평가 약화 등을 해소하기 위해 1차에서 교육학은 논술, 전공과목은 서답형(기입형, 단답형, 서술형 등), 2차는 수업실연, 심충면접 등으로 시험방식으로 바꾼다는 방침이다.

 

이 정도면 신규교사들이 무너진 교실에서 학생들과 소통하고 교육을 살리는데 능력 있는 교사로 역할을 다할 수 있을까?

 

교과부가 올해부터 시행하는 ‘초·중등교사임용시험 개선방안’은 교사가 되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 책과 시름해야한다. 학생들을 이해하고 교육의 본질을 이해하는 기회란 기대할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교단에 서다 보면 지식이 모자라 가르치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 혹 부족한 부분은 EBS나 인터넷에서 얼마든지 좋은 자료를 구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선생님이 현실을 어떻게 이해하는가가 문제다. 책벌레가 된 선생님. 너도 열심히만 하면 선생님도 될 수 있다며 윽박지르고 선생님 못된 미완성인간이 학생이라는 사고방식에 젖어 있다면 소통은 끝이다.

 

훌륭한 교사는 아이들과 소통하고 그들에게 꿈을 심어줘야 한다. 전공과목도 소중하지만 내일의 주인공이 될 청소년들에게 민주의식, 역사의식, 권리의식, 사회의식을 가르쳐 주지 못한다면 어떻게 교사로서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 있을까? 교사가 바뀌지 않는 한 교육 살리기는 꿈이다. 정부가 교육을 살리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교사 임용제도부터 제대로 바꿔야 한다. 그것이 교육을 살리기를 앞당기는 길이다.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새 학기가 되기 바쁘게 학교마다 수학여행계획에 분주하다. 경제적인 여유가 생겼는지 학교마다 제주도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지로 선택하는 이유가 뭘까? 언젠가 제주도에 수학여행을 다녀온 학생에게 물었다.

 

“제주도 여행가서 뭘 배웠니?, 어떤 곳이 특별히 인상적이었니?”

“제주의 쪽빛바다와 올렛길, 정방폭포며 한라산의....!”

“그런 건 영상으로 봐도 다 있는데...! 왜 하필 돈 들여 아까운 시간 내 고생하면서 그기까지 가서 봐야하지?”

“그건...??? ”

 

제주에 다녀 온 학생이라면 당연히 4·3에 대한 얘기부터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관광객의 구경거리식의 여행이라니.....!

“혹시 제주도 여행 중에 4·3에 대해 들어 본 얘기라도 있느냐?”고 했더니

“4·3이 뭐예요?”하고 되물었다.

 

 

(가) 학교에서 배우고 익히며 학습한 내용을 현장학습을 통하여 확인하고 감상하는 산교육 경험을 갖는다.

(나) 사진과 지도로만 보던 아름다운 국토의 자연과 나날이 발전하는 국토의 참모습을 통하여 국토애를 갖는다.

(다) 조상들이 남긴 문화유산을 돌아보면서 우리의 긍지를 높이고 다른 고장들의 지리 풍속 등을 살피어 배움의 폭을 넓힌다.

(라) 질서를 지키고 인화 협동하는 공동생활을 통하여 상호간의 우정을 돈독히 하는 실제의 체험을 갖는다.

(마) 올바른 여행 자세와 방법을 익혀 문화시민으로서의 자질을 함양한다.

(바) 학창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을 마련하고 내일의 보람을 위해 희망적인 꿈을 키운다.

 

 

어떤 학교에서 계획한 수학여행 목적이다. 이 정도의 목적을 달성하는 수학여행이라면 교실에서 배우는 것 보다 백배 천배 낫다. 그런데 왜 제주도에 다녀와서 4·3도 모르고 돌아왔을까? ‘4·3제주항쟁’이 무엇인가?

 

 

 

제주도민의 3분의 일 혹은 3만명이 미군과 국군, 경찰의 총에 억울하게 숨져간 비극의 땅. 현기영의 ‘순이 삼촌’이나 이산하의 ‘한라산’이라는 시한편이라도 읽어보고 다녀 온 수학여행이라면 남다른 수학(修學)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역사의 아픔을 외면하고 제주도를 관광여행하고 다녀오는 수학여행, 과연 수학(修學)이라 할 수 있을까?

 

학교에서 수학여행을 하려면 학교운영위원회에 여행의 목적이나 일정, 경비 그리고 사전답사계획까지 구체적인 계획서를 제출해 통과시켜야 한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행사는 시행착오가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다. 그런데 소풍이며 수학여행이 연례행사처럼 반복되다 보면 목적 따로 행사 따로다. 시행 후 결과평가는 더더욱 없다.

 

소풍이나 수학여행만 이런 게 아니다. 계기수업은 또 어떤가? 학교에서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계기 수업은 없다. 일제식민지 잔재인 애국조례 때 교장이 몇마디 하는 게 계기교육(契機敎育)의 전부다. 수업시간이나 조·종례 시간에 전교조교사들이 몇마디 하면 신경을 곤두세운다.

 

 

 

수업시간에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3·1절이나 4·19, 혹은 5·16이나 5·18에 대해 물어보면 몰라도 너무 모른다. 학생들 잘못이 아니다. 시험 점수 몇 점으로 인생의 승패를 좌우하는 현실에서 그런 게 대술리 없다. 어떤 단체에서 통일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더니 "초·중·고생 40%는 통일 안 돼도 그만이라고 응답했다고 한다. 통일을 하면 북한이 가난하기 때문에 우리가 손해를 보기 때문이란다.

 

오늘의 내가 여기 살아 있다는 것은 우연일까? 내가 누리고 있는 자유, 내가 먹고 입고 문화적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선조들의 피와 땀의 결실이요, 노동과 투쟁의 댓가다. 역사의식이란 조상들에 대한 부채의식이요, 예의다. 살아 있음에 대한 감사함을 모르는 학생들에게 학문이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역사의식, 민주의식, 시민의식, 권리의식이 없는 인간을 양성하는 게 어떻게 민주시민교육인가? 교육을 받아도 나를 찾지 못하는 방랑자를 만드는 교육, 교육의 목적이 출세하고 재산을 늘리고 유명인사가 되기 위해서라면 그런 교육으로 어떻게 사람다운 사람을 길러낼 수 있는가?

 

 * 이미지 출처:다음이미지 검색에서 가져왔습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8.20 04:55



  <아래 모든 이미지 출처 : 다음검색에서>

교육과학기술부가 2009개정교육과정을 개정 고시한 내용이 이명박 정부의 개발주의, 자본 편향 논리의 이데올로기로 얼룩져 있다며 시민사회단체와 전교조가 반발하고 있다. 교육과정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야단일까? 2008년 금성출판사가 만든 교과서가 수구언론의 몰매를 맞고 사라졌던 사건을 예를 들어 교육과정이 왜 중요한 지 살펴보자.

“금성출판사에서 발행한 근현대사 교과서와 북한 역사교과서들을 비교·분석한 결과 금성출판사 교과서가 북한 교과서를 베꼈다”
“국민적 열망과 여러 정치세력들의 반대 속에 1948년 5월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세우기 위한 총선거가 실시됐다…친일파 처벌은 거의 이뤄지지 못했으며 민족정신에 토대를 둔 새로운 나라의 출발은 수포로 돌아갔다…”

한나라당 정두언의원이 교육과학기술위 국정감사를 위해 배포한 보도 자료에서 금성출판사를 비판한 글 중 일부다.


정두언의원은 “좌파세력들에 의해 만들어진 역사교과서의 편향이 우리 사회에 끼치는 폐해와 해악은 나라의 존망까지 위협할 정도이기 때문에 연내에 교과서 개정 절차를 밟아 당장 내년 역사교과서부터 새로운 내용을 반영해야 한다.

정두언 의원이 금성풀판사가 발행한 교과서를 비판한 이유는 금성출판사의 사관이 자신의 사관과 다르다는 이유 때문이다. 도대체 사관이 무엇이기에 현대사 교과서 문제가 ‘나라의 존망까지 위협할 정도’라며 길길이 뛰는 것일까?

과거에 일어났던 모든 사건은 역사가 되는가? 역사는 지나간 일(事件)을 모아둔 게 아니다. 지나가 일 중에서 후세 사람들이 알아서 도움이 될 수 있는 가치 있는 事實도 있고 별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쓰레기 같은 事實도 있다. 여기서 가치로운 事實이란 학자의 견해나 기준, 해석이 담겨 있기 마련이다. 모든 事實이 史實이 아닌 바에야 그걸 구별하기 위해 필요한 게 역사관(歷史觀)이라고도 하는 사관(史觀)이다.

‘역사가가 과거의 사실을 볼 때 역사가 자신의 고유의 입장, 과거의 사실 가운데서 어떤 사실을 선택할 때의 기준, 그것을 해석할 때의 해석 원리, 그 사실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는 가치관 등, 이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을 역사관이라고 정의하고 있다.(네이버 백과사전)

사실(事實)과 사실(史實)도 구별할 줄 모르는 학생들이 역사학자의 사관의 도움 없이는 어떤  事實이 중요한지 그게 史實이 되는지 구별하기 어렵다. 그래서 전문가의 눈으로 역사를 해석한 게 사관(史觀)이다. 그런데 사관이란 순수한 객관적 진실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서술한 학자의 가치관이나 이데올로기가 담겨 있어 어떤 사관에 따라 집필했는가에 따라 2세들의 역사관을 좌우하게 되는 것이다.


친일세력들이 역사교과서를 만들면 어떤 모습의 교과서가 나올까? 불교신자나 기독교인들이 현대사를 집필하면 어떤 모습일까? 유신세력들이 현대사를 집필하면 어떤 교과서가 될까? 뉴라이트 계열들이 만든 현대사는 어떤 모습일까?

뉴라이트계 사람들이 쓴 현대사가 어떤 모습일지 가상해보자. 뉴라이트계열의 학자는 <유관순>열사를 ‘체제를 부정한 불순분자’로 <김좌진>장군은 ‘체제를 부정한 악질 테러분자’로 <일제 강점기의 종군위안부>는 ‘자발적인 경제단체, 성매매업자’로 기술할 것이다.

불교나 기독교 신자는 부처님이나 하느님이 보호하사 우리나라가 부흥 발전한다는 결정론적 세계관으로 기술할 것이고, 유신세력의 잔당인 학자들은 10월 유신을 ‘한국적 민주주의’로 기술할 것이다.

경성제국대학 교수, 서울대학교 교수, 서울대학교 대학원장, 학술원 회장, 진단학회 이사장, 민족문화추진회 이사장, 국방부 전사편찬위원장,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문교부 장관 등을 역임한 이병도와 같은 실증주의(이완용의 후손으로 식민지사관의 학자) 사학자들은 역사를 어떻게 기술할까? 해방 후 우리나라 역사는 ‘일선동조론, 타율성론, 정체성론‘에 입각한 식민사관에 에 의한 역사를 기록했고 그 기준에 따라 만든 교과서를 학생들이 지금까지 배워 온 것이다.


실증주의로 위장한 식민사관학자들은 ‘한민족은 역사적으로 다른 나라에 지배당해 왔고 스스로 자립할 능력이 없는 정체된 민족으로서 일본의 한국 병합을 정당하다’는 사관을 가진 학파다. '일한동조론'(日韓同祖論), '동조동근론'(同祖同根論)을 바탕을 둔 사학자들이 만든 교과서로 배운 학생들은 역사를 어떻게 이해할까? 이들은 일본 제국 쇼와 천황의 한국 식민 지배가 한국의 산업화와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금과옥조로 믿고 있어 학생들일본 제국 쇼와 천황에게 일본의 시각에서 세상을 보게 만든다.

사관(史觀)을 무시하고 지엽적인 역사적 지식(事實)만 암기하는 역사공부는 멀쩡한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공부다. 노예들의 머릿속에 끊임없이 양방의 사고(思考)를 하도록 만들면 누가 이익이 되는 가? 노동자들의 머릿속에 자본가의 생각(價値觀)을 갖도록 하면 노동자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해방 후 실증주의 사학자들은 식민사관에 의한 역사적인 지식을 암기시켜 역사의식을 마비시켜왔다. 그들은 노동자들에게 영웅사관이나 식민사관의 역사를 암기시켜 현실감각을 마비시키고 친일세력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존경받는 풍토를 만드는데 기여해 왔다.

정두언을 비롯한 수구세력들은 왜 금성사가 만든 현대사 교과서를 못마땅해 하는가? 기득권 세력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은 노동자들이 똑똑해져 김진숙위원처럼 노동자의식과 역사의식, 권리의식을 가진 민주시민으로 나타나는 걸 가장 두려워한다. 전교조를 비롯한 시민단체나 양심적인 학자들을 친북세력으로 매도하는 이유가 그렇다. 자신의 과거가 부끄러운 세력들은 학생들이 객관적인 역사의식을 가지고 비판적인 안목과 민주시민의식을 갖춘다면 자신들의 설 공간이 없어지는 게 두려운 것이다.

 


역사교과서만 문제가 아니다. 2009교육과정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는 교과부를 보면 이성을 잃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교과부는 단 4개월 만에 초ㆍ중등 12년간의 교과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초·중학교 9년간의 교과서 개발을 6개월 만에 끝내려 하고 있다. 게다가 사회과 교육과정 개발진의 경우, 초등 지리 교육과정 개발에 교수 1명, 초등 일반사회 1명, 중학교 지리 1명, 중학교 일반사회 1명, 고교 경제 1명 식으로 각 영역별 1명씩으로 구성, 사실상 정상적인 교과 교육과정을 만들어 냈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수학과의 경우 공청회 일정을 학교 공문이나 홈페이지에 공지도 하지 않고, 교과 교육과정 개발에 참여한 관계자 몇 명만으로 도둑 공청회를 하였고, 역사과의 경우는 6월 29일 공지를 하고서 바로 다음날인 6월 30일 역사과 공청회를 열었다. 사회과의 경우는 초·중·고 12년간의 일반사회, 지리 영역뿐만 아니라, 고등학교 전문계 교과까지를 포함한 내용을 한꺼번에 몰아서 진행하기도 했다.

역사과에서는 현대사 비중을 축소하여, 역사학계의 반발을 샀고, 도덕과에서는 개념상 어불성설인 ‘녹색성장’ 교육을 강제하고, 다문화ㆍ세계시민교육 대신에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그동안 통일 교육을 했던 고 1 도덕 교과까지 폐지하였다. 사회과에서는 ‘자본 중시, 노동 천시’의 편향성을 강화하여 친자본적인 정권의 속셈을 노골화하고. 비판적 시각을 기르는 고1 사회 교과는 폐지하고 말았다.

20대 80사회, 부모의 사회·경제력이 자식들에게 대물림되는 현실에서 자본가와 기득권 세력 친일분자들의 시각을 정당화시키는 이데올로기 교육을 많이 주입한다고 훌륭한 사람이 되는가? 어차피 수능이라는 과정에서 교과서가 요구하는 정답을 말하지 않으면 이단자 취급을 받아야 하는 현실이지만 그런 교육으로 망가지는 아이들을 방치하고 침묵하는 게 양심적인 교사들이 할 일일까?

기득권 세력의 이데올로기가 담긴 교과서를 열심히만 가르치면 훌륭한 교사인가? 이런 현실을 두고 수구언론이나 기득권 세력들은 ‘교사는 공부나 열심히 가르치라’고 한다. 왜곡된 역사를 배워 평생을 노동자로 살아야할 제자들 머릿속에 자본가의 시각을 갖도록 만드는 게 올바른 교육일까? 이명박 정부의 개발주의, 자본 편향 논리를 정당화시켜 시장지상주의 가치관을 갖도록 만드는 교육은 삶을 황폐화 시키는 교육이다. 정두언 의원을 비롯한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들이 방정을 떠는 이유를 알만하지 않은가?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8.02 05:00



언젠가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여러분들이 가장 갖고 싶은 게 뭔가?“라고 물었던 일이 있다. 그 때 아이들의 대답 중 가장 갖고 싶어 하는 게 ‘돈이나 지위, 명예....’ 와 같은 것들이었다. 그런데 한 학생이 ‘권력이요!’ 하는 것이었다. 돈이나 사회적 지위보다 권력이 더 좋다는 이색적인 답변을 하는 학생에게 구체적으로 물어 봤다. ”권력을 왜 갖고 싶어 하지?“ 그랬더니 이 학생 대답이

“권력을 갖고 있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잖아요?”

‘어 이 녀석 봐라!’‘ 이 학생은 권력에 대한 개념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원론적으로 권력이란 ’남을 지배하여 강제로 복종시키는 힘‘ 또는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와 힘‘이라고 해석한다. 남의 행동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게 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힘이다. 그렇다 힘이 있으면 뭐든지 다 가질 수 있다.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그런데 이 힘을 양심적인 사람이 갖지 않고 나쁜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맡겨지면 문제는 심각하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공권력을 남용해 힘없는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현상을 자주 목격한다. 국회의원이 됐거나 지방자치단체장이 되어 자신이 가진 권력으로 부정을 저지르다가 적발돼 쇠고랑을 차는 모습도 본다. 교과서 진도에 쫓겨 더 깊이 얘기하지 못하고 ‘네 말이 맞다’하고 대충 얘기하다 넘어 갔지만 사람들은 누구든지 ‘돈이나 사회적 지위나 명예나 권력을 갖고 싶어 한다. 그 중에는 돈이나 지위나 명예보다도 권력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많다.

전제군주제 사회에서도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부모형제간에 피를 흘리는 모습을 역사를 통해 읽을 수 있다. 과거뿐만이 아니다. 현재도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그리고 광역단체장 선거를 앞두고 정파 간 또는 계파간의 대립과 갈등을 보면 순진한 서민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선거법을 어겨 구속되는 추태를 보이는 사람들을 보묜 ‘참 권력이 좋기는 좋은 거구나“ 하면서도 권력의 본질에 대해서는 잘 이해하지 못한다.

다들 선호하는 이 권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우리나라 헌법 제2항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못 박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권리란 어떤 것인가? 국어사전에는 권리를 해석하기를 ‘어떤 일을 행하거나 타인에 대하여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힘이나 자격’이라고 정의해 놓고 있다. 그런데 국민들은 이렇게 소중한 권리를 제대로 알고 행사하고 있을까?


민주주의 사회는 국민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권리를 제대로 행사할 때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다. 몇년 전 합천군수는 ‘새천년 생명의 숲’ 공원 명칭을 전두환 전 대통령의 호를 따서 ‘일해공원’이라고 바꿔 시민단체들의 반발을 샀던 있이 있다. 전두환이 누군가“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국민의 권력과 돈을 도둑질 해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인물이다. 광주에는 아직도 처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한이 그대로 남아 있고 그의 부하들이 쏜 총탄에 불구자가 되어 병원신세를 지고 있다. 이런 인간을 대통령을 했다는 이유로 국민의 세금으로 만든 공원의 이름을 ‘일해‘라고 하다니…….

권력은 소중한 줄 알면서 권리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주권자가 사는 사회에는 민주주의를 찾을 수 없다. 정치혼란은 물론 경제적 불평등 사교육비, 사회 양극화……. 이 모든 것은 주권행사를 제대로 못한 국민들에게 근본적인 책임이 있다. 돈이나 조직의 힘으로 또는 학연이나 혈연, 지연으로 권력을 장악하려는 음모는 용납해서는 안 된다.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면 그게 곧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다.

시험 준비를 위해 외운 지식이기에 졸업 후 모두 팽개쳐서는 안 된다. 권리의식이 실종된 주권자가 사는 나라에는 부정과 부패, 억압과 수탈, 빈곤의 대물림 등 모든 악의 근원이 여기서 나온다. 학벌, 지연, 형연과 같은 연고주의로부터 자유로워야 하겠지만 권력을 맡길 사람이 어떻게 살아 왔는지 얼마나 양심적인 사람인지 그걸 판단하지 못하고 행사해 버린 권리는 희망이 없는 사회양극화가 반복될 뿐이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