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아버지가 전쟁놀이를 하고 있다. 아들이 총을 들고 아버지를 향해 “팡팡...”하고 쏘면 아버지는 아들의 총에 맞아 넘어져 죽는 시늉을 한다. 이런 모습은 우리 가정 어디에서나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아버지를 총을 쏴 죽이는 아들, 아들의 총에 맞아 죽어가는 흉내를 내는 아버지....

 

 

북유럽의 경우에는 평화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아예 나라에서 장난감 무기를 제조 판매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어린아이에게 살상무기로 살인을 하는 훈련(?)을 하도록 허용하는 정부나 그런 장난감을 사주는 부모들도 있다.

 

장난감뿐만 아니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폭력 앞에 무방비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 시중에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볼 수 있는 게 현실이다. 휴먼 서바이벌, 가창력, 창의력, 재능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교육라는 이름으로 어린이들에게 무방비상태로 침투하고 있는 비디오 테이프나 CD 중에는 몸서리치는 경쟁과 살상, 증오와 살인의 서바이벌을 주제로 한 영화들까지 앞 다투어 등장하고 있다.

 

학교에 근무할 때 일이다. 수능이 끝난 고 3교실에는 수업이 어렵다. 그래서 좋은 영화를 몇 번 보여줬던 일이 있다. 어느날 수업에 들어갔더니 “선생님, 오늘은 저희들이 가져 온 CD를 보면 안 될까요?”한다.

 

학생의 제안에 내용도 모르고 그렇게 하자며 허락했던 게 화근이었다. 학생들이 가져온 영호를 보다가 나는 너무 놀라 보고 있던 영화를 중지시켰던 일이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영화는 2000년에 제작 시중에 상영돼 인기(?)를 누렸던 ‘배틀로얄’이라는 일본 영화였다.

 

이 영화는 ‘심각해지는 학급붕괴와 범죄에 노출된 청소년들에게 이런 혼란상을 극복할 수 있는 강력한 생존 능력의 소유자로 만들어 준다는 명분으로 제작된 영화다. 영화의 줄거리는 '신세기교육개혁법(BR법)'이 공표되면서 시작된다. 전국의 중학교 3학년 중에서 매년 한 학급을 행동범위가 제한된 일반인이 없는 장소에 이동하여 한 사람씩 지도와 일정의 음식, 그리고 여러 가지 무기 중 한가지씩을 나눠 주고, 마지막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서로 죽이게 한다는 법률이다.

 

제한시간 3일 동안, 위법 행위에 구애 받지 않고 서로를 죽이되, 규칙을 어길 경우에는 특수 목걸이가 폭파하여 목숨을 잃게 된다. 수학여행을 위장하여 무인도에 도착한 학생들은 마치 게임처럼 진행되는 상황에 경악하지만, 생존을 위해 결국 서로의 목숨을 빼앗기 시작해 마지막 한사람이 남을 때까지 친구를 모조리 죽여야만 살아남는 살인게임이다.

 

 

이런 영화를 만든 일본인들의 정신 상태도 문제지만 이런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해 준 문화체육관광부는 왜 이런 영화를 수입허가 해줬을까? 배틀로얄뿐만 아니다. 2008년에 제작, 수입된 데스 레이스, 10억(2009), 토너먼트(2009), 헝거 게임(2012)도 내용이 비슷하다. 청소년들이 이런 영화에 심취했을 때 어떤 심성을 가진 인간으로 성장할 것인지 생각해 봤을까?

 

이런 분위기 때문일까? 근래에는 초중고생들의 병영체험 캠프가 유행이다. 방학 때만 되면 가정이나 학교에서 아이들의 인내심을 키워 강인한 사람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의도로 군부대나 민간단체에서 하는 병영체험 캠프가 성황이다. 지난 7월 19일, 충남 태안 해병대 체험훈련장에 집단 입소한 공주사대부고 학생들 중 다섯명의 학생들이 사망한 사건 후 다소 주춤하긴 했지만 아직도 병영체험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강행하고 있는 것이다.

 

병영체험이 정말 교육적으로 필요한 행사일까? 병영체험교육이란 ‘애국심 고취’와 ‘건전한 통일·안보관 확립’ 혹은 ‘극기’, ‘체력단련’, ‘리더십 형성’이라는 명분으로 교육청과 학교, 그리고 부모가 함께 만든 행사다. 시행부대에서는 “학생들의 올바른 국가관 확립을 위한 시책”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초등학생이나 청소년들에게 이런 훈련이 과연 교육적이거나 건전한 통일관에 도움이 되기나 할까?

 

병영체험에 참여하는 대상은 어린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다. 군복을 입고 약간의 장비를 갖추고 참여하는 이들 학생들에게 하는 교육이란 어떤 내용일까? 주최하는 군에서는 지금까지 쉽게 접해 보지 못한 장비를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하자며 총검술, 각개전투 등 ‘재미있고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고 홍보하고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안보의식 및 건전한 국가관을 배양을 위한다면서 천안함 홍보동영상을 보여주기도 하고 전투기와 소총, 대포와 장갑차아 같은 군장비나 살상무기 체험을 시키기도 한다.

 

어떤 병영체험단체에서는 '특공무술 시범, 장비견학, 레펠(하강훈련) 등 공수지상 훈련, 야간행군, 낙하산 끌기, 화생방, 나라사랑 프로그램(태극기 그리기, 애국가 4절 쓰기 등), 은거 훈련'까지 받게 하고 있다. 페인트 총탄이지만 소총으로 사격훈련까지 하는 병영체험도 있다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어린 초등학생이 군복을 입고 군모나 방독면을 쓰고 총검술을 익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초등학생들이 군교관의 지시에 따라 ‘단결’과 ‘애국’을 외치면서 하는 극기 훈련이 정말 교육적일까? 군에서 일방적으로 만든 군 관련 홍보물을 정신훈련이라는 이름으로 상영해 어떤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가? 또 한가지 놀라운 사실은 군대에서 혹은 민간단체가 주관해 운영하고 있는 이 병영체험은 ‘사실보도’는 할 수 있어도 비평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군사기밀도 아니면서 언론통제까지 받는 병영체험을 꼭 받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유신정권시절 학교에서는 교련이라는 교과목이 있었다. 군복을 입은 교련교사들이 어린 여학생까지 연병장(운동장을 교련시간에는 그렇게 불렀다)에 집합시켜 제식훈련이며 방독면, 응급처치 훈련까지 시켰는가 하면, 경진대회를 열어 우수하교를 선정 표창하기도 했다. 군사정권이 끝나고 교련과목은 학교에서 사라졌지만 이제 교련대신 병영체험이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는 것이다.

 

 

진보정의당 정진후 의원이 최근 5년간 병영체험캠프 운영 현황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최근 5년간(2009∼2013학년도) 병영체험캠프에 참여한 학교는 총 1,375개교로, 참여한 학생 수는 20만 7,434명으로 나타났다. 연도별로 보면 병영체험캠프에 참여한 학교가 84개교(2009학년도)에서 515개교(2012학년도)로 6.1배(431개교) 증가했고, 참여한 학생은 16,947명(2009학년도)에서 67,129명(2012학년도)로 4배(50,182명)나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병영체험 캠프에 참여한 초·중·고등학생들은 유격훈련, 군장체험, 행군 등과 같이 일반 군인들이 군대에서 받는 훈련을 고스란히 재현해온 것이다. 재향군인회에서 실시하는 ‘나라사랑 병영 종합체험학습’과 군부대에서 실시하는 ‘나라사랑 현장견학’프로그램에는 유격훈련이나 행군, 제식훈련 등이 포함돼 있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와 같은 재향군인회의 ‘나라사랑 병영 종합체험학습’과 군부대에서 실시하는 ‘나라사랑 현장견학’프로그램을 교육부, 교육청 등 교육당국에서 일선 학교에 공문을 보내 참가를 권유해 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중 ‘나라사랑 병영 종합체험학습’의 경우, 지난 2년 동안 초등학생 3,973명, 중학생 1,629명 고등학생 874명 등 참여 학생이 무려 6천5백여 명에 이르렀다. 학생들에게 평화교육은 못할망정 군사교육을 시켜 어떤 인간을 만들겠다는 것인가?

 

군사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폭력’을 숭상하는 ‘군사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명령을 따르는 복종을 강요하는 군사문화는 합리적 판단과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마비시킨다. 군사문화는 군대의 가치와 원리가 병영을 벗어나 민간사회에 침투해 국가주의를 강요하고 개인의 판단이나 의사는 배제된 채 집단성과 충성만을 요구하게 된다. 폭력에 순종하는 가치관을 키워 줄 병영체험교육은 중단해야 한다. 평화보다는 전쟁을 지향하는 가치관을 심어 어떻게 민주적인 인간을 양성하겠다는 것인가?

 

< 이기사는 '맑고 향기롭게 11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 이미지 출처 : 오마이 뉴스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 10점
김용택 지음/생각비행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3.03.14 07:00


                                                      <자료출처 : MBC드라마 '더킹투하츠'>

 

 

재하 : 본격적으로 전쟁이 시작되면 피해액은 얼마나 되는거죠?

 

육군 사령관 : 개전 하루만에 군인은 20만, 수도권 시민은 150만이 죽거나 다칠 겁니다. 일주일이면 군 병력은 최소 100만, 민간인은 500만 명이 죽거나 다치구요.

 

피해액은 최소 1000억 달러, 피해 복구 비용은 3000억 달러. 이게 다 94년 기준입니다. 현재면 두 배 이상 늘어납니다. 그래도 뭐, 한미 연합군이 끝까지 밀어붙이면 이길 순 있겠죠.

 

근데 그 쪽도 가만 있진 않을거기 때문에.. 남북이 둘 다 6, 70년대 수준으로 떨어질 거구요. 마흔살 이하 남자는 거의 다 죽는다고 보시면 됩니다. 민족의 공멸이죠.

 

MBC드라마 '더킹투하츠'에 나오는 얘기다.

 

실제 전쟁이 일어났던 한국 전쟁 이후 남북한의 시대상황을 도표로나마 살펴보고, 피해정도는 어느 정도였는지 보자.

 

 

 

                                                             <자료출처 : 통일부>

 

위의 표를 보면 남한의 인구는 약 2000만 명, 북한의 인구는 약 1000만 명으로 총 3000만 명으로 볼 수 있다. 남북한 군인 피해는 260만 명, 민간인피해는 250만 명으로 약 총 인구의 1/6이 피해를 보았다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 피난민과 전쟁피해자, 전쟁고아의 수치까지 합치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보았었다고 볼 수 있다.

 

물적 피해에 관해 살펴보면

 

북한

 

1949년 대비 광업생산력의 80%, 공업생산력의 60%, 농업생산력의 78% 감소. 금속제품,전기제품,건설재,어업 부문 생산량 60~90% 감소. 민가 60만 채, 학교 5만 개, 병원 1만 개 파괴.

 

남한

 

전재민의 수 200여만 명, 인구의 20~25%가 굶주림에 직면함. 농업생산 27%, 국민총생산 14%감소. 공장 900개, 가옥 60만 채, 교통시설, 공공시설 상당수 파괴. (출처: 네이버 지식사전 (한국전쟁)

 

위의 표 자료는 6.25전쟁 60주년 사업위원회와 네이버 지식백과(한국전쟁)에서 참고한 자료를 통일부 홈페이지가 계시한 자료다.

 

이 자료들은 북한이 핵실험이 성공하기 전 자료다. 만에 하나 북한이 핵무기를 남북간 전쟁에 사용했다면 어느정도일까?

 

 

                                                        <이미지 출처 : 뉴시스>

 

요즈음 MBC방송을 비롯한 공중파 뉴스를 보면 한반도에 전쟁이 곧 터지기라도 할 것 같은 위기의식을 부추기고 있다. 연평도가 공격의 1순위라는 둥, 북한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가는 곳이 어디라는 둥....

 

뉴스 시간마다 북한의 전쟁도발과 만약의 경우...를 예를 들어 보도하고 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공중파방송의 방정스런 보도와 북한의 저주섞인 협박에도 우리 국민들은 전혀 동요가 없다. 코밑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계최강국인 미국과 첨단무기로 중무장한 한미연합군의 ‘키 리졸브’ 훈련에 북한은 어떤 기분일까? 

 

정부조직법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상황에서 국민의 여론을 통한 압박용이라고 믿기 때문일까? 아니면 살기바빠 뉴스 따위에는 관심도 없기 때문일까? 박정희정권을 비롯한 군사정권이 워낙 써먹던 김빠진 협박(?)이 효력을 상실한 때문일까?

 

실제로 남북간의 전쟁이 발발하면....

 

실제로 전쟁이 일어나면 '더킹투하츠'에 나오는 정도가 아니다.

지금 북한에는 미사일을 비롯한 핵을 보유하고 있고 남한에는 핵보다 무서운 핵발전소가 전국 구석구석에 28기나 있다. 아니 핵보다 더 무서운 도시가스가 거미줄처럼 지하에 매설돼 있다. 미사일로 남한의 어느 도시가 멀쩡할 수 있는가?

 

이런 현실에서 전쟁이 가능하겠는가?

 

전쟁을 부추기는 세력들... 국방부 관계자는 북한이 도발하면 북한의 지도부까지 타격하겠다고 큰소리다. 그러나 전쟁이 발발하면 국방부는 멀쩡하다고 믿을 수 있는가? 남한의 어떤 사람이 북한의 미사일공격이나 핵공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모든 평화는 선이요, 모든 전쟁은 악이다.

 

전쟁은 전쟁게임을 즐겨하던 세대들의 스릴이나 맛보는 낭만(?)이 아니다. 솔직히 말해 전쟁이 일어나면 죽는 게 낫다. 병신이 되거나 방사능 오염으로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평생 안고 치료도 제대로 못하고 살아 있다는 것은 결코 축복이 아니다.

 

전쟁을 부추기는 세력, 한반도의 전쟁으로 군산복합체가 치부를 하고, 미국이나 일본이 경제 불황에서 벗어날지는 몰라도 우리민족은 영원한 공멸이다. 전쟁을 능가할 그 어떤 이데올로기도 기만이요 저주다.

 

 

안녕하세요?

불친님들과 구독자님들 덕분에 제가 운영하는 '김용택의 참교육이야기'

사단법인 한국블로그산업협회(KBBA)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 방송통신위원회, 한국인터넷진흥원, 서울시가 후원하는 제 4회 2013 대한민국 블로그 어워드 개인부문에 문화/예술 부문 Top100으로 선정되었습니다.

투표는 3월 11일부터 31일까지 심사 및 투표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옆의 주소로 가셔서 투표 부탁드립니다.    http://snsawards.com/iblog/vote2012_01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3.02.18 07:00


 

수구언론 '알아서 기는' 태도 안바뀌면…박 당선인 '국민이 행복한 세상' 어림 없어

 

군복무를 했던 사람이라면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 있다. '높은 사람'이 방문하면 상사로부터 자주 듣던 '알아서 해!' 라는 말이다. '높은 사람'의 비위를 건드려 지적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엄포다. 개인이 눈치 없이 지적받는 일을 했다가는 전체 부대원이 견디기 어려운 단체기합을 받아야 하는 곤욕을 치러야 했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제5공화국 시절 〈말〉이라는 잡지가 있었다. 모든 언론이 알아서 기던 시절, 모든 언론은 '보도지침'이라는 권력의 지시를 받아쓰기 했다. 권력은 입맛에 맞는 기사만 주문했고 언론은 이 '지엄한 명'을 거역하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보도지침이 곧 편집지침이 됐다. 이 시절, 말지는 겁도 없이 보도지침을 폭로하는 용맹(?)을 과시했다.

 

'알아서 기면 서로 편하고 말지처럼 권력에 저항하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이 군사정권이 가르쳐 준 교훈이었다. 문민정부를 거치면서 권력의 비위 맞추기에 재미를 붙인 언론들은 군사정권이 지난 현재까지도 보도지침의 추억(?)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손쉽게 살아남을 수 있는 길…, 그 후 대부분 언론사들은 '보도지침 없이도 알아서 기는 지혜(?)'를 터득했으니 그것이 곧 오늘날 수구언론의 생존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군사정권의 망령은 언론뿐만 아니다. 우리 사회는 이 '알아서 기는 세력'과 '저항 세력'이 화해할 수 없는 보수와 진보라는 또 다른 이름의 삼팔선을 만들어 놓았다. 해방 후 우리 사회에는 이 두 세력 간의 대립과 갈등은 그칠 날이 없었다. 노동단체는 권력의 의지대로 움직이며 권력의 목소리를 대변해 온 한국노총과 같은 단체가 있는가 하면 불의한 권력에 저항해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해 온 민주노총과 같은 단체도 있다.

 

 

노동단체뿐만 아니다. 뉴라이트나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와 같은 관변단체도 있고, 참여연대나 경제정의실천협의회와 같은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단체도 있다. 학부모 단체도 학사모와 같은 권력지향적인 단체가 있는가 하면 참교육학부모회와 같은 학생의 소리, 학부모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민주적인 단체도 있다. 교원단체도 교장의 목소리, 교과부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한국교총과 교원의 소리, 학생의 권익을 주장하는 전교조와 같은 단체도 있다.

 

언론도 한겨레, 경향신문이나 경남도민일보 같은 비판적인 언론이 있는가 하면 조중동이나 종편같이 권력의 의지를 받아쓰기하는 언론도 있다.

 

선거철만 되면 어김없이 빨갱이라는 유령이 등장한다. 수구세력, 친권력세력들의 빨갱이 타령이야 이제 선거용이라는 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지만 '언론의 알아서 기기'는 우리사회를 부패와 타락으로 몰아가는 암적인 존재가 됐다. 겉으로는 진실보도니 정론직필이라면서 그들은 정보가 부족한 언론 소비자들을 청맹과니로 만들고 있다. 조중동을 비롯한 수구언론과 친권력 세력들의 '보도지침'의 향수를 잊지 못하고 있다.

 

   

모든 국민이 꿈을 이루고 행복하게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이 박근혜 당선인의 약속이다. 권력의 소리를 대변해 약자의 눈과 귀를 막고 보편적 가치조차 부정하는 언론을 두고서는 국민이 행복한 나라가 가능할까? 언론에 대한 불신, 권력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언론의 편파적이고 권력지향적인 받아쓰기 자세를 바꿔야 한다.

 

민주화된 선진사회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수구언론의 '알아서 기는' 보도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모든 국민이 행복한 세상이란 어림도 없다.

 

- 이기사는 경남도민일보독자권익위원칼럼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405435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2.07.27 06:30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도종환 시인의 시를 교과서에서 빼지 않도록 결정한 것을 계기로, 향후 우리 문학이 이룬 성취를 우리 사회가 스스로 폄훼하거나 부정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조선일보 국제부 김태훈 차장이 ‘도종환의 詩만 흔들렸나’(2012.07.25)라는 글의 일부다. 김차장은 도종환 시도 교과서에 그대로 뒀으니 서정주를 비롯한 친일작가들의 작품도 이제 교과서에 다시 올리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옳은 일을 보면 함께 기뻐하고 불의를 보면 미워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왜 나쁜 짓을 한 사람을 두둔하지 못해 안달일까? 일제시대 일본이 우리에게 얼마나 못할 짓을 했는지 몰라서 그럴까? 민족을 배신하기도 하고 독립투사들에게 차마 못할 짓을 한 친일인사들을 왜 두둔하려할까?

 

해방이 됐으면 당연히 일제시대 친일인사들에 대한 단죄를 내리고 다시는 그런 불행한 일이 없도록 경계하는 것이 후손들이 해야할 도리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친일인사를 두둔하고 그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불순분자 취급을 하거나 색깔 칠을 마다하지 않았을까?

 

 

 

 

조선일보가 민족을 배신한 친일인사나 군사독재정권을 두둔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조선일보는 왜 부패와 불의를 일삼는 재벌이나 백주에 광주시민을 학살한 사람과 유신을 찬양한 인사들까지 두둔 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시가 좋으니까 도종환이든 서정주든 교과서에 실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가르치자고...? 그렇다면 성폭력범이 쓴 시도 교과서에 싣고 살인범이 쓴 작품도 글만 좋으면 교과서에 실어도 좋은가? 서정주시가 어느 정도인지 보자.

 

(중략)

그럼 결론은 우리의 몸뚱이를 어디에다가 던져야 할 것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젊은 벗이여,

 

네 나이는 인제야 스무 살이다. 명년에는 스무한 살.........

"징병제의 발표가 있는 후로 사실 나는 많이 생각하여 왔습니다.

 

늘 부족한 자기를 채찍질하여 이제 와서야 간신히 마음의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내일이라도 용약 출전할 각오가 섰습니다......."

 

(중략)

우리의 몸뚱이를 어디에다가 던질까? 벗이여. 그것은 말하지 않는 네가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서정주의 ‘스무 살 된 벗에게’ 중 일부다.

 

 

도저히 조선 사람이 쓴 글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글이다.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나이 스무 살 된 아이에게 총알받이가 되라고 침략전쟁에 내몰 수 있는가?

 

처음으로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이 나라 역사와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 이여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

 

새맑은 나라의 새로운 햇빛처럼 님은 온갖 불의와 혼란의 어둠을 씻고 참된 자유와 평화의 번영을 마련하셨나니

 

(중략)

이 겨레의 모든 선현들의 찬양과

시간과 공간의 영원한 찬양과

하늘의 찬양이 두루 님께로 오시나이다....

 

전두환 56세 생일을 축하는 서정주의 축시다.

 

 

광주시민을 학살한 살인자를 위해 만수무강을 비는 후안무치한 작가의 작품을 교과서에 실어서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가르치자고...? 서정주뿐만 아니다. 이광수, 최남선을 비롯해 모윤숙, 정비석.. 등등 이름만 들으면 다 아는 이런 친일작가의 작품도 다시 교과서에 싣자고....?

 

 

 

조선일보가 친일작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이명박 대통령이 참신한 인물을 두고 도덕적으로 흠결이 있는 인사들을 참모로 등용하겠다는 것은 약점이 있는 사람을 등용해 자신의 투명하지 못한 행적을 비호해주기를 바라서가 아닐까? 그렇다면 조선일보는 친일인사를 두둔하는 이유는 과거 자기네들의 과거 친일행적을 정당화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불편부당(不偏不黨)과 정의옹호(正義擁護)를 실천 하겠다는 조선일보.

 

사시(社是)는 이렇게 걸어두고 왜 기사는 한결같이 왜곡보도를 일삼고 불의를 옹호하는가? 부정과 부패재벌 편들기도 모자라 친일인사의 작품까지 교과서에 실어 아이들이 어떤 인간을 만들겠다는 것인가?

 

태생적인 한계? 일제시대 민족을 배신한 원죄를 비롯해 친일, 친독재, 친재벌의 수치스런 역사를 속죄하지는 못할망정 청소년들에게 독립투사가 아니라 변절자와 친일인사를 존경하도록 만들겠다니... 이제와서 친일인사의 작품까지 청소년들에게 가르치겠다는 파렴치한 시도는 그쳐야 하지 않을까?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2.02.04 07:00


 


‘도둑놈’을 ‘도둑님’이라고 이름을 바꾸면 도둑이 존경의 대상이 되는가? 한나라당이 당명을 새누리당이라고 바꾼다고 한다. 한나라당은 ‘쇄신과 개혁의지를 국민과 공감할 새로운 당명을 찾기 위해 지난 1월 27일부터 국민대상 당명공모를 시작’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개정하기로 의결했다.

한나라당은 ‘대한민국, 갈등을 넘어 국민이 화합되고 하나되는 새로운 세상, 국민의 염원을 대신하겠다’는 뜻으로 이 당명을 확정, 13일 전국위원회에 상정하기로 했다.  당명에 담긴 뜻은 새로움의 ‘새’와 나라의 또 다른 순우리말, 나라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진 ‘누리’가 합쳐진 새로운 나라, 새로운 세상을 뜻하는 ‘새누리당’이라고 한다.

누굴 위해 당명을 바꾸나? 유권자? 자신들이 한 일이 부끄러워...?


얼굴을 성형한다고 사람이 다른 사람이 되는 게 아니다. 한나라당의 비대위가 재창당 의지로 전문과 10대 과제, 24개 정책으로 이뤄진 정강·정책 개정안을 보면 ‘큰 시장, 작은 정부’가 아니라 ‘작지만 강한 정부’다. 이런 정강을 두고 '공정경쟁' 내지 '경제정의' 어쩌고 하면 지나가던 소가 들어도 웃을 일이다.


중생이라는 말이 있다. 기독교에서는 ‘원죄 때문에 죽었던 영이 예수를 믿음으로 해서 영적으로 다시 새사람’이 된다는 뜻으로 삶의 방향을 360도 회전하는 것을 뜻한다. 한나라당이 중생이 가능할까? 솔직히 말해 한나라당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린 이유는 경제가 어려운 서민들을 위해 꾸린 게 아니다. 집권당으로서 정치를 잘못해 오는 총선에서 실권을 할 위기에 대비해 만든 게 비상대책위원회다.

옛말에 ‘성을 간다’는 말이 있다. 조상을 부정하겠다는 것은 가문의 수치다. 당명을 바꾼다는 게 그렇다. 얼마나 한나라당이 서민들로부터 지탄이 대상이 되어 왔으면 이름까지 바꾸려고 할까? 네티즌들이 만든 한나라당의 별명을 보면 100가지도 넘는다. 딴나라당, 쑈당, 성희롱당, 차떼기당, 대리투표당, 골프당, 성추행당, 군미필당, 매국노당, 탈세당, 부동산투기당, 강부자당... 등 끝이 없다.

사람의 됨됨이는 그 사람이 살아 온 이력을 보면 안다. 당도 마찬가지다. 한나라당은 어느날 갑자기 땅에서 떨어진 게 아니다. 3·15에 의해 부정당한 이승만의 자유당에서부터 시작돼 권력을 도둑질한 쿠데타와 유신후예들의 공화당, 그리고 광주시민을 학살한 후안무치한 민주정의당, 이들당과 야합해 만든 민자당, 신한국당이 오늘날 한나라당의 전신 아닌가? 한나라당 이 국민들 편에 서겠다고 발버둥을 치지만 그들의 발버둥은 그들이 살아남기 위한 집권 야망극에 다름 아니다.


한나라당이 정말 거듭나고 싶다면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꾸는 꼼수부터 버려야 한다. 시혜복지가 아니라 보편적인 복지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정당이라고 정강에 삽입해야 한다. 한미 FTA 전면폐지, 남북관계 개선, 친일종미에서 벗어나 독립국가로서 의연한 다자외교를 선언해야 한다. 학벌폐지, 재벌개혁, 부자증세를 공약하지 못한다면 선거에서 살아남기 위한 꼼수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솔직히 한나라당의 개혁이란 죽었다 깨나도 불가능한 일이다. 말로는 친서민이니 개혁이니 하지만 그것은 어떻게 서민들을 속일까 어떻게 하면 선거에서 이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게 관건이다. 그들이 서민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은 그들이 살아 온 길. 그들의 채택하고 집행해 온 정책이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역사적으로 친일에서 유신이며, 친독재, 친재벌의 기둥으로 세운 집을 어떻게 바꿀 수 있다는 말인가?

한나라당은 서민을 기만하는 꼼수는 이제 그쳐야 한다. 군사정권, 유신정권, 학살정권이 저지른 죄만해도 당한 서민들의 고통을 필설로 다할 수 없는데 또 다시 ‘작지만 강한 정부’니 하며 정책이며 당면 바꾸고 있다. 한나라당은 죽었다 깨어나도 서민을 위한 정당이 될 수없다. 차라리 속죄하는 마음에서 유권자들 앞에 석고대죄(石膏待罪)하는 길을 찾는 게 동정이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2.01.16 07:00



나는 지난 13일. 동아일보 사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전교조 간부가 변절을...?’

 


그런데 그날 전교조 홈페이지에는 ‘동아일보의 치졸한 보도에 분노한다’는 보도 자료를 냈다.

‘아니..? 어떻게 된거야? 어제는 동아일보 사설에서 전교조 간부가 조직의 입장과 다른 말을 해 동아일보가 칭찬을 하더니....

 

                                                         <이미지 출처 : 다음검색에서>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동아일보는 1월 13일자 전교조 간부 “인권조례로 학생보호 어렵다”는 사설에서 전교조 생활지도국장이 「“학생인권조례는 학생 간 인권침해로부터 학생을 보호하기 어렵고, 학생에 의한 교사 인권 침해를 막는 데도 역부족”이라고 진단」했다며 ‘학생생활 문제를 담당하는 간부가 전교조의 공식 방침과는 다른 의견을 용기 있게 제기’했다는 보도를 한바 있다.

동아일보의 이런 보도에 대해 전교조는 ‘동아일보의 치졸한 보도에 분노 한다’며 기사를 쓴 동아일보 기자는 자신이 참교육실천대회 참가자라 속이고 참석했다가 프로그램 진행자에게 발각되어 관련 자료집을 회수 당하고 행사장에서 쫓겨났으며 학생생활국장과는 대화를 나눈 적도 없다’며 ‘동아일보의 치졸한 보도태도에 대해 분노를 금할 수 없다’는 보도 자료를 냈다.


전교조의 억울함은 보도 자료에서 구체적으로 이어졌다. 사건의 내용은 전교조 학생생활국장이 발표문을 통해 ‘학생인권조례는 학교폭력을 해결하는 여러 가지 대안 중 하나이지 유일한 대안은 아니라고 이야기했을 뿐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한 것이 아니다’며 기자와 인터뷰를 하지도 않고 기사를 썼다는 것이다. 전교조는 ‘동아일보는 언론으로서의 기본적인 윤리조차 상실하고 있으며 오직 전교조를 음해하고 학생인권조례를 훼손하기 위해 골몰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전교조와 동아일보는 오랜 세월동안 앙숙의 관계였다. 학교폭력에 대한 시각의 차이도 극과 극이다. 전교조는 ‘학생인권조례를 통한 학생의 인권존중과 경쟁이 아닌 인성교육을 통해 풀어야 한다’고 보는 반면 동아일보는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면 교사를 가해자로 몰아세우고 그들의 손발을 묶어 놓는 조치’라며 우려하고 있다.
동아일보뿐만 아니다.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적인 교원단체인 교총조차도 학생인권조례는 ‘인권의 탈을 쓴 반인권적인 조례요, 학교붕괴조례’라며 학생들을 망치고 나라의 미래를 망치는 학생인권조례를 절대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동아일보는 자사를 민족지라고 소개한다. 동아일보는 진정 민족주의 철학을 실천했는가? 1920년 ‘민주주의 지지’, ‘문화주의 제창’이라는 사시를 내걸고 창간한 신문이 동아일보다. 일제시대 베를린 올림픽 때 ‘일장기 말살사건’을 두고 동아일보는 애국을 말한다. 

일장기 말살사건은 동아일보의 입장이 아니라 당시 이길용기자 개인이 한 일이라는 건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동아일보가 얼마나 반민족 친일신문이었는가는 최근 법원이 사주 김성수가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 및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는 판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승만, 독재를 미화하고 박정희와 전두환 노태우에 이르는 유신정권, 군사정권을 지지 미화한 신문! 자사의 이익을 위해 독자들의 눈과 귀를 막아왔던 신문. 선정적인 기사(2006 "클릭해, 다 보여줄게")까지 마다않는 신문이 민족지인가? 동아일보는  ‘민족주의’ ‘민주주의’ ‘문화주의’라는 사시에 부끄럽지 않게 책임 있는 답변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8.03 05:00



학교가 양성하고자 하는 인간은 어떤 모습의 인간상일까?

오마이뉴스에 가끔 글을 쓸 때의 일이다. 
사립학교문제나 학교의 잘못된 관행을 지적하는 글을 쓰면 가장 댓글이 많이 달렸던 얘기가 “선생노릇이나 똑 바로 해!” 라는 소리였다.

‘어떻게 하면 선생 노릇 똑바로 하는 것일까?’
비사범계 출신인 내게 피부색깔처럼 따라 다녔던 나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선생 노릇 똑 바로 하는 것일까’였다. 
처음에는 나는“많은 지식을 학생들에게 전달해 주는 것!...‘ 여기 저기 참고서를 보고 교과서와 관련된 정보는 일일이 메모해 두었다가 수업시간에 자료로 활용하고...
그게 교사가 해야 할 일 중 가장 중요한 일인줄 알았다.

                                                        <이미지출처 : 교육희망에서>

학교 교훈 중에서 가장 흔한 교훈이 ‘근면, 정직, 성실‘이다. ’근면하기만 한 사람. 정직하기만하거나 성실하기만한 사람‘을 학교가 길러 내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될까? 오래 전에 본 뉴스 중에 잊혀 지지 않은 기사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교육인적자원부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공동으로 만든 `차세대 고교 경제교과서 모델'이 반(反) 노동 정서를 반영했다는 비난이 일자 책자 인쇄를 돌연 중단했다’는 뉴스였고 또 하나는 11살인 초등학교 여학생이 때리고 맞는 '체벌카페'를 운영하다 적발된 사건이었다.

‘전경련‘이 어떤 단체인가? 1961년 1월 '경제계의 대동단결과 경제건설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민간인들로 구성'된 단체다. 창립 당시 13명이던 이 단체는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연건평 5만975㎡의 회관에 회원만 해도 무려 470개 회사(2000년 말 현재)에 달하는 국내 최대의 경제단체다. 전경련이 왜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바보가 아니라면 대부분이 노동자가 될 우리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처지와 전혀 무관한 자본의 생각을 갖게 하기 위해서다.

수업시간에 노동자의 권익이나 노동 3권에 대해 예를 들거나 비판의식을 갖게 하기 위해 얘기해줄 때가 있다. 그럴라치면 어김없이 손을 들고 항의하듯이 자본의 시각에서 반박하는 학생이 있다. 이런 학생들은 조선이나 중앙, 아니면 동아일보 신문을 보고 있는 학생이 대부분이다.

‘노동자 의식을 거세한 인간 양성'

이게 자본이 길러 주기를 바라는 인간상이다. 교육부가 어떤 의도에서 이런 일을 하려고 시도했는지 모르지만 ‘몸은 노예인데 생각은 주인의 머리를 가진…. ‘ 그런 인간을 양성하겟다는 것은 민주시민을 양성하기를 포기한 반교육적 교육포기 선언이다. 


정직하기만 한 사람, 근면하기만 한 사람…. 이런 교훈은 주로 독재정권이나 군사정권시절 학교가 자본이 원하는 인간을 양성하기 위한 교훈이다. 어떻게 11살인 초등학교 여학생이 ‘나중에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노예 계약서까지 작성해 가학적인 체벌 행위를 즐길 수 있을까? 이 여학생은 선천적으로 비뚤어진 생각을 가지고 태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천사와 같은 순진한 어린 아이가 이런 놀이에 빠진 것은 성장하면서 주변에서 듣고 배운 사회교육의 결과다. ‘폭력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여학생에게 돌을 던질 사람은 과연 누군가?

잘못된 정책이나 제도를 두고 ‘선생노릇 똑바로 하는 게 어떻게 하는 것일까?
친일세력의 후예들이 만들어 준 국정 교과서를 열심히 가르쳐 주면 훌륭한 교사인가? 불의한 세상에 정직하고 성실하게 키워 주면 훌륭한 인물, 행복한 민주시민이 되는가? 오염투성이 먹거리조차 구별 못하는 정직하기만 한 사람은 자신의 건강조차 지키기 어렵다. 머리 속에 아무리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도 환경의식이 없는 인간은 자신의 건강을 지켜내기 어렵다. 민주의식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도 민주시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질높은 삶을 살기 어렵다.   

오늘날 학교가 길러야 할 인간상은 ‘품행이 방정하여...’ 모범상을 받는 학생이 아니다. ‘골든 벨을 울려라’라는 TV프로그램에서 스타가 된 학생은 더더욱 아니다. 노동자의식을 가진 건강한 노동자, 내가 누리는 작은 자유도 결코 우연이 아니라 선배들의 피땀으로 일구어 낸 소중한 가치라는 부채의식(역사의식)을 가진 인간. 비판능력과 민주의식을 가진 건전한 민주시민, 권리의식과 평등의식을 가진 그런 인간을 양성해야 하는 것이다. ‘머리는 있어도 생각이 없는 사람'을 길러 자신이 불행하다는 것조차 모르는 불행한 인간을 양성하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교육정책2011.03.21 23:15



이 글은 2011년 '우리교육' 봄호에도 실려 있습니다.


<교원의 중립성인가 교육의 중립성인가>

“예수 믿고 구원 받아야 한다. 예수 믿으면 천당 가고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단다.”

기독교 신자인 교사가 수업 시간에 이런 얘기를 학생들에게 할 수 있을까? 아마 그런 얘기를 한다면 “선생님이 좀 이상하게 된 게 아닐까”하거나 아니면 “선생님 어떻게 수업시간에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습니까?”라고 항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교사가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개인적인 얘기, 특정종교를 전교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한나라당성향이라고 해도
“한나라당이 정권을 재창출해야 나라 살림살이가 좋아지고 국민들이 편히 살 수 있단다.”라고 할 수 있을까? 만일 민주노동당 성향의 교사가

“민주노동당은 사회복지 부분에서 다른 당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약자를 배려하는 정당이므로 민주노동당에 투표하는 것이 서민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고 말 할 수 없다.


민주노동당에 후원금을 낸 전교조 교사를 두고 ‘교원의 정치적 중립을 위배했다’며 정부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소속 교사 134명을 파면·해임키로 하고 징계를 진행하고 있다. 정부는 “교사들이 특정 정당에 당비를 냈거나 후원금을 낸 사실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를 위반한 중대한 위법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조치에 대해 전교조는 ‘교사는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교사이기 전에 헌법의 보호를 받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으로서 개인적으로 얼마든지 정치적인 의사표현을 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교원의 정치적 중립이 공적인 업무수행이 아닌 교사 개인의 정치적인 성향에 따른 권리행사인가의 여부는 사법부의 최종적인 판단이 가리겠지만 교육현장에서 교육의 정치적 중립은 지켜지고 있었는가에 대한 의문은 그대로 남는다. 지금도 그렇지만 해방 후 정부는 권력의 의지에 의해 교육권을 장악하고 피교육자를 권력이 요구하는 인간을 양성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교원의 정치적 중립은 엄정하게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개인으로서 교사는 국민으로서 기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역사적으로 ‘교원의 정치적 중립’이나 ‘교육의 정치적 중립’이 보장되었던 일이 있었던가. 교원의 정치적 중립이나 교육의 정치적 중립이 보장되지 못할 때 누가 피해자가 되는가? 필자는 38년 6개월 동안 교직에 종사하면서 교원의 정치적 중립이 얼마나 참혹하게 무너져 왔으며 교육의 정치적 중립이 훼손되어 왔는가에 대한 교직자로서 겪어야 했던 갈등과 고민을 이 글을 통해 밝히고자 한다.

 


<정치란 무엇인가?>

교육의 중립성을 말하기 전 우선 정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개념정의부터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개념과 용어의 대한 명확한 진단 없이는 시비에 대한 논쟁이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자칫 용어와 개념에 대한 정의를 잘못 내림으로서 중요한 결정에 씻을 수 없는 과오를 남길 수도 있다. ‘정치란 무엇이며 정치와 교육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에 대한 정의를 먼저 내리는 것이 논의를 명확히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시카고대학 교수인 데이비드 이스턴은 ‘
정치란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고 정의한다. 예일대학 교수요, 미국정치학회 회장을 지낸 라스웰은 정치란 ‘누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무엇을 갖느냐’는 결정하는 행위라고 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정치란 ‘희소가치를 배분하는 행위’다. 여기서 희소가치란 ‘드물기 때문에 인정되는 가치’로 돈이나 지위, 명예...와 같은 것을 일컫는다. ‘드물기 때문에 누구나 선호하는 가치를 배분하는 일’이 정치라면 정치가 중립적이지 못할 때 교육은 어떤 영향을 받게 되는가? 중립적이지 못한 교육을 받은 피교육자는 커서 ‘노동자가 될 사람에게 자본가의 생각을 갖게...’ 하는 등 개인에게 순기능이 아니라 역기능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시대별 교육의 중립성이 훼손당해 온 사례>

식민지시대 교육은 어떠했을까? 식민지시대 교육은 교육이 정치의 시녀 노릇을 했다. 식민지 교육은 식민지 백성을 일본 사람, 즉 황국신민으로 만드는데 목적이 있었다. 해방 조국에서는 민주시민을 만드는데 교육을 했을까? 제국주의 시대에는 제국주의에 복무하는 인간을, 독재정권은 독재정권을 정당화하고 미화하는 교육을 했다. 교육이 자본에 예속될 경우 노동자는 자본가의 의식을 갖는 노동자를 양성해 낸다. 교육이 권력에 예속돼 교육의 중립성을 훼손한 사례다.

이승만정권시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이승만이 영웅이요, 독립운동가로, 미국은 천사의 나라,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나라로 배웠다. 통일은 북진통일이 유일한 통일 방법이요, ‘찬탁은 매국이요, 반탁은 애국’이라고 배웠다. 교과서를 통해 최남선, 이광수를 비롯한 친일 문인들의 작품을 읽으며 그들이 위대한 문학에 감동하기도 했다.


6·25사변을 겪은 후 북한은 동족이 아니고 철천지원수요, 적이었다. 국가가 체제에 반하는 사상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이승만정권의 반공교육은 동족을 적으로 만드는 반통일교육이요. 그런 교육으로 정권을 비호하는 세력을 키워 민주주주의 발전과 통일을 방해세력으로 독재정권을 비호하고 정권유지의 배후세력으로 키워놓았다.

교육권이 없는 교사는 교육의 중심에서 배제된 방관자가 되어 오직 교과서만 전달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독재정권은 피교육자로 하여금 비판의식을 제거한 인간을 양성하기 위해 자신들이 선택한 지식이 가장 가치 있는 지식으로 주입하기 위해 국정교과서를 편찬한다.

권력과 자본, 언론이 유착해 만든 교과서, 여기다 종교까지 가세해 권력의 편에 서면 교육은 권력의 시녀가 될 수밖에 없다. 박정희나 전두환과 같이 불의한 방법으로 권력을 쟁취한 세력들은 그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를 지지하는 세력을 키우고 반공 이데올로기, 새마을이데올로기로 집권을 연장하고 국민들의 눈을 감기는 교육을 해왔다. 불의한 권력의 교육권 장악은 교육의 중립성을 파괴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피교육자에게 돌아가게 했던 것이다.

 


<박정희가 만든 교육 이데올로기>

박정희정권 때 군복무를 마치고 첫 발령을 받은 1969년. 시골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학급.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이 흑판 옆에 붙어 학생들을 압도 하고 있었다. 흑판 위에는 박정희대통령 사진과 함께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 합니다’라는 국기에 대한 맹세와 급훈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일 띄고 태어난 사람. 조국의 영광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치려는 사람들을 키우는 교육. 그 조국이 개인 이나라 박정희의 정권연장을 위해 필요한 조국이라면 피교육자는 뭐가 되는가?
‘공산주의와 대결할 수 있는 실력의 배양에 전력을 다 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이상적인 인간형이요, 국가의 필요에 의해 개인이 길들여지는 교육’을 이상적인 교육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미술시간이면 어김없이 북한의 남침야욕을 나타내는 마귀의 손이 남한을 웅켜쥐는 모습의 포스터를 그리고 반공표어를 만들어 환경 정리를 하고..., 윤리교과서는 온통 가짜 김일성의 가계며 친인척을 폄훼(貶毁)하는 내용으로 도배질 하고..., 가난에서 해방시켜준다는 명분으로 개인의 행복이 아니라 국가가 필요한 인간을 만드는 교육. 당시의 교사는 국가를 위해 언제든지 희생할 수 있는 인간. 극단적인 민족주의 인간을 길러낼 역사적 사명(?)을 띠고 교단에 서야했다.


<12·12사태와 5·18광주민중항쟁 후 전두환 시대의 교육>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시대를 거치는 동안 교육은 얼마나 황폐화되어 갔을까? 광주시민을 학살한 주범이 민주정의당을 만들의 민주와 정의사회를 만들겠다는 코미디에서 볼 수 있듯이 정치군인이 만든 교과서는 양심적인 교사들이 곳곳에서 저항한다. 우리는 여기서 왜 이들은 왜 국정교과서가 필요했는지 이해할 수가 있다. 박정희 시대는 5·16쿠데타를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한 ‘애국적인 결단’으로, 유신헌법을 ‘한국적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필연적인 과정’으로 기술해 이데올로기 교육을 시켜왔다.


민주주의에서 비판이 거세당하면 그 사회는 썩는다. 마찬가지로 사관이 없는 역사교육은 역사교육으로서 기능을 감당하기 어렵다. 역사 교과서에 불의한 권력의 의지나 이데올로기가 담겨 있다면 교사는 본의 아니게 아이들 앞에 공범자가 된다. 전교조가 출범 후 한 때 ‘전교조 교사는 6·25는 남침이 아니라 북침이라고 가르치고 있다’며 붉은 색칠을 당했던 일이 있다. 6·25를 놓고 남침설, 북침설, 유도설이 있다는 사례조차 들지 못하는 단세포적인 흑백논리가 교실을 암흑으로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교육은 사관을 가르치지 않는다. 영웅사관, 식민지 사관의 범주에서 한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한 역사교육. 현대사는 거두절미당하고 고대사에서 근대사는 원인, 경과, 결과를 앵무새처럼 암기해야 했던 학생들..., 해방과정에서 역사청산을 못한 잘 못 궨 단추가 이렇게 시대를 초월해 흑백논리가 지배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자라서 노동자가 될 아이들에게 왜 영웅사관의 역사를 가르쳐야 하는가? 일제가 조선 사람에게 황은에 감사하는 인간을 만들듯, 평생 노동자로 살아야할 제자에게 자본가의 의식을 갖도록 가르치는 것이 제대로 된 교육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일본의 은혜로 우리나라가 근대화’됐다는 식민사관을 비판하지 못하는 교육. 민중사관은 빨갱이들이 주장하는 역사관이므로 입에 담기조차 불경스러운 사관이어야 하는가? 교과서의 국정을 문제 삼으면 ‘국정이면 국정이지 검인정이나 자유발행제가 무슨 사친가?’, 민족사관’을 말하면 ‘빨갱이 물이 들어서...’ 학생들을 세뇌시킨다고 윽박질렀다. 수학능력고사가 방어막이라는 자신감 때문일까? 정부가 대부분의 교과서를 검인정제로 바꾸긴 했지만 교사들의 아직도 교과서 논쟁에는 구경꾼일 뿐이다.

박정희와 전두환시대를 거치면서 교사들은 ‘국정교과서’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갖는 사람들이 없었다. 교육의 한 주체인 교사들의 ‘국정교과서’에 대해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독재권력이 만들어 놓은 교사양성과정에서 찾아야 한다. 박정희 정권시대는 국민교육헌장에 충실한 교과서 편집방침이나, 전두환 정권시절 도덕교육에 맞춰진 편집방침은 모두 국정교과서라는 제도가 뒷받침 되었기에 가능했던 얘기다.

<교육의 중립성이 보장되지 못하면...>

교사가 ‘교육권 의식’이 없다면 어떻게 되는가?

가르치라는 것만 가르치면 어떤 인간을 양성하는가? 국정정교과서를 가르치는 학교의 교사는 자신의 자질과 무관하게 국가가 원하는 인간을 양성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배우는 교과서. 즉 교육과정은 교육부의 교육과정 편수관이 정부가 요구하는 정체성에 맞게 만든다. 국정교과서란 그들이 자신들이 필요하다고 골라 담은 지식을 묶은 책이다.

 


영어, 수학과 같은 도구교과는 몰라도 윤리나 국사처럼 이념이 담긴 교과서가 국정이 된다는 것은 독재정권이 필요로 하는 인간을 양성할 수밖에 없다. 이승만 정권시대 교과서가 친일 인사들의 작품으로 채워 진 이유가 그렇고 박정희정권이 유신헌법을 한국적민주주의로, 전두환정권이 광주항쟁에 침묵하도록 만든 현대사 교과서가 그렇다. 불의 한 정권이 자신의 정당성을 홍보하기 위해 서술한 내용을 담은 교과서가 국정교과서였던 것이다. 교사가 국정 교과서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이나 이데올로기를 모르고 가르친다는 것은 권력의 하수인이요, 허수아비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교육의 질은 교원의 질을 능가하지 못한다’고 했던가? 맞는 얘긴가? 일선학교 교사들뿐만 아니라 학부모들이 금과옥조로 믿고 있는 이 말. 그것은 원론적으로는 맞는 얘기지만 교육위기의 책임을 교원들에게 전가하기 위해 정부가 끊임없이 국민들을 세뇌시켜왔던 이데올로기이기도 하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가격이란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룰 때 정해지며, 수요가 공급보다 많으면 가격이 오르고 공급이 수요보다 많으면 가격이 내려간다는 이론이다.

이 말은 ‘다른 조건이 불변일 때...’에 맞는 말이다. 만약 공급자가 상품생산을 독점해 공급량을 조절할 수 있다면 공급의 법칙은 맞지 않다.

교육의 질은 교원의 질을 능가하지 못한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입시위주의 교육으로 교실이 지식전달의 장이 됐을 때 교원의 자질은 피교육자인 학생들에게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일류대학 입학이 교육의 목표가 된 학교에서는 ‘교육의 질은 교원의 질을 능가하지 못한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유신헌법의 홍보사가 된 교사>

“오늘은 오전 수업을 마치고 오후에는 가정방문을 하겠습니다. 교육청에서 공문이 내려와 이번 주 안으로 전 학부모님들 가정을 방문해 유신헌법에 대한 홍보를 하라는 지시가 와 있습니다. 나가시기 전, 반드시 회람하는 공문을 숙지하시고 홍보물을 꼭 지참하시고 나가시기 바랍니다.”

1972년. 교사의 정체성도 교육의 방향감각도 제대로 잡지 못하던 신임교사시절. 그러니까 교사발령을 받은 지 이제 겨우 3년차다. 아직도 초보교사의 딱지를 떼지 못하던 시절. 누구나 그랬던 것처럼 교육청이나 교장선생님의 지시가 법이요, 그것을 어긴다는 것은 초보교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즈음 교무회의에서 교무부장의 말이다. 직원회의도 비상회의로 소집해 열렸다. 수업 단축 같은 건 문제가 될 수 없다. 교육과정은 교육청의 지시가 떨어지면 언제든지 바꿀 수 있고 실제로 그런 사례가 수없이 많았다. 퍽하면 반공궐기대회에 학생들을 동원하고 행사가 있을 때 학생들은 단골손님이 돼야 했다. 교육과정을 어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하긴 지금도 학교는 교육과정 따로 교육 따로다.

유신헌법이 얼마나 좋은지 혹은 나쁜지 조차 읽어 번 일도 필요도 없었지만 판단능력조차 제대로 없었던 교사들은 그렇게 유신헌법의 홍보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한다’

유신시대나 군사정권시절 교육을 받은 교사들은 교육청의 지시가 좋은건지 혹은 나쁜건지, 설사 나쁘다고 알고 있어도 저항할 방법이 없었다. 행사에 동원되는 일이 법을 어기는 반민주주의요, 역사를 거스르는 일이라고 생각했더라도 당시의 교사들이 할 수 있는 저항이란 속으로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불평할 정도가 전부였다.

<독재정권이 뒤집어 놓은 교육>

물건을 훔치는 자는 용서할 수 있어도 사상을 도둑질한 죄인은 용서받을 수 없다. 이승만을 비롯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 독재정권과 군사정권은 교과서를 통해 2세 국민들의 사상을 바꿔놓은 장본인이다. 경제재를 훔친 것은 변제를 하거나 용서할 수는 있어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남의 생각을 갖도록 마취시키는 이데올로기 교육은 범죄 중의 중범죄다. 노예들에게 주인의 생각을 갖도록 하는 교육. 불의한 권력을 정당화시키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 범죄행위다.

중·고교의 국사교과서는 현대사를 별로 다루지 않는다. 고대사와 중세사 그리고 근대사에 비해 현대사는 비중적다. 국사교과서가 필수가 아니라 선택으로 바꾸는 등 현대사를 기피했던 이유가 뭘까? 이유는 해방정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부수립 과정에서 친일세력잔재청산을 못한 정부는 교육에서도 그 한계가 드러냈다. 희소가치를 배분해야할 권력이 객관적인 입장에 서지 못하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쓰인다면 그 결과는 심각하다.

친일세력이나 독재정권, 혹은 군사정권이 2세 교육을 통해 역사를 침묵하거나 비판을 거세하는 행위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다. 이승만정권시대 교과서가 친일인사들의 작품으로 덧칠하거나 유신악법을 한국적 민주주의로 포장해 정당화시키는 것은 중립적이어야 할 교사들로 하여금 위법한 행위를 강요하는 행위다. 공적인 업무수행에 누구보다도 객관적인 입장에 서야할 교사가 권력의 의지에 따라 왜곡된 지식을 주입한다는 것은 교육이 아닌 순치다.

이승만 정권 때 친일문인들의 작품으로 뒤범벅이 된 교과서가 그렇고 박정희 정권이 군사쿠데타를 혁명으로 위장해 혁명공약이라며 학생들에게 주입한 것이 그렇다. 공무원의 정치중립이 법적으로 보장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사는 교과서를 통하여 학생들에게 군사정권의 집권을 정당화하는 내용을 가르쳤다. 국사의 현대사 단원이나 윤리교과서에는 ‘우리 몸에 맞는 한국적민주주의’가 유신헌법이라며 유신헌법의 당위성을 주입시켰다. 이승만 정권 때는 이승만이, 박정희정권 때는 박정희가, 전두환, 노태우 정권 때는 전두환, 노태우가 한일을 교사가 홍보하는 권력의 나팔수가 되기를 강요했던 것이다.

<교과서가 왜곡됐을 때 교사가 할 일은...?>

교과서가 중립적이지 못할 때, 교육이 중립적이지 못할 때, 교사는 무엇인가? 교과서 편성권은 교사의 권한 밖이요, 세월이 지나면 다 좋아질 것이며... 몰라도 좋은 일일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교과서 속에 담긴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 모르고 가르치라는 것만 가르치는 교사는 유능한 교사인가? 철학이 없는 교사, 지식만 주입하는 교사는 제자들 앞에 부끄러운 교사다. 역사란 방관자에게 침묵할 자유는 줄지 몰라도 피해자의 고통을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가르치라는 것만 가르치는 교사는 교과서 수준의 제자들 이상을 기러내지 못한다. 지식전달이 교사의 임무로 아는 교사는 교과서 속에 담긴 이데올로기를 알 필요도 없고 알아서 덕이 될게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이들을 사랑하는 교사라면 권력이 쳐놓은 덫을 과감하게 거부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비판을 거부하는 사회. 시비를 가리거나 바른 말하는 사람은 직장에서 승진이며 출세를 포기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한 번 낙인찍히면 영원히 ‘몹쓸 사람’이 되고 다시는 그 직장사회에서 공생하기 어려운 관계에 놓이게 된다. 개인의 비판이나 저항을 용인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집단을 만들어 목소리를 내는 방법밖에 없다. 전교조가 탄생하게 된 이유가 그렇다.

교사들의 집단 저항은 그들로 하여금 신속히 그리고 예외 없이 파면이나 해직 등 중징계에 나선다. 이들이 국민들로부터 정당성이라도 인정이라도 받는 날에는 그들이 지켜 온 기득권은 무너지고 말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작용한 것이다. 예상했던 대로 15백여명의 교사들은 끝내 항복을 거부하고 권력에 맞섰다 교단에서 쫓겨난다. 이들이 거리에서 교육민주화 혹은 사회민주화의 기폭제가 될 것을 예측하지 못한 권력은 복직을 시키지만 이미 전교조교사들은 그들이 해야 할 역사적 사명을 상당부분 이뤄낸 후였다.

<7차교육과정이 지향하는 인간상>

교육과정이란 교육 현장에서 교사와 경영자들의 행동방향을 좌우하는 문서다. 학교교육을 하기 위해서 헌법과 같은 존재로 교육내용을 통제할 뿐만 아니라,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문건이기도 하다. 교육의 방향은 헌법이 있고 교육기본법과 초·중등교육법,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있지만 피교육자인 학생과 학부모에게 구체적이고 결정적인영향을 미치는 것은 교육과정이다.

교육과정이 확정되기 까지는 이해관계의 당사자인 교육의 주체, 즉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교사들의 의견이 존중되고 반영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교육과정은 교육학자들과 관료들이 중심이 되어 초안을 만들고 형식적인 여론수렴과정을 거쳐 확정해 왔다. 중요한 의견수렴기구가 되어야 할 교원단체조차 배제당하고 독선적인 절차를 거쳐 확정하기를 계속해 왔던 것이다.


7차교육과정이 확정되는 과정이 그랬고 2014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하게 될 교과교육과정의 주요개정방향 토론회(2011.1.13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대회의실)에도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비밀스런 과정을 거쳤다. 시작 2시간 전에 교육부가 마려한 내용을 기자들에게 알려줄 정도로 쉬쉬하면서 비판적인 개인이나 단체를 배제시킨 채 제한된 사람들만 참석했다. 학부모들 또한 특정 단체와 모니터 요원만 개별 초청할 정도였다.


<교육의 중립은 교육의 포기다?>

한해 탈학교 학생이 10만명을 육박하고 있다. 일류대학이 교육의 목표가 된 학교에는 근본적인 대책은 없고 무한경쟁만 가속도를 내고 있다. 교육법도 교육과정도 무시된 학교에는 일류대학을 위한 무한경쟁에 지친 학생과 교사 학부모의 고통만 쌓여가고 있다. 교육을 살려야 한다고 것이 이구동성이다. 옳은 얘기다. 그런데 교육을 진짜 살리는 길은 무엇일까?

교원들의 정당 후원금을 내면 교육의 중정치적 중립성 위배라 하고, 시국선언을 하면 좌편향이라고 한다. 교육의 중립성은 가능한 얘길까? '교육이 목표로 하는 인간상'의 구현은 교육이 특정한 입장에 설 때 비로소 가능하다. 군국주의 교육인가? 평화주의 교육인가? 봉건주의 교육인가? 민주주의 교육인가? 보수인가? 진보인가?에 따라 교육의 방향이 달라진다. 이러한 관점에서 입장의 포기를 뜻하는 중립성이란 교육의 포기다.

진정한 의미의 교육의 중립성은 권력의 지배에서 배제되었을 때 가능한 얘기다. 교육 내용의 중립성과 함께 제도상의(교육행정, 예산의 독립 등) 독립이나 교사의 중립성이 먼저 보장되어야 한다. 교육이 교사의 인격적인 활동이라고 볼 때 교사의 가치관과 인간성이 교육의 질을 결정함에도 불구하고 현재 시행되고 있는 교원 임용고시제와 같은 교원채용제도는 교육의 내용에서 뿐만아니라 교사를 권력의 지배하에 두려는 권력의 의지로 볼 수밖에 없다.

교육이 피교육자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고 장래를 결정하는 행위라면 피교육자의 인간적인 성장을 최고의 원칙으로 하는 인간교육 즉 민주 교육에 충실하는 것이 권력의 지배로 부터 벗어난 진정한 교육의 중립성을 지켜는 길이다.


교육과정이 2014년부터 또 바뀐다. 교육과정이 바뀔 때마다 교사들은 교육과정이 의도하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학부모들도 마찬가지다. 형식적으로 설명회를 거치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러나 몇 명의 교수들이 공청회에 참석하고 전달하는 형식으로 하는 설명회로는 개정의 진의가 전달 될 수가 없다. 결국 교사들은 바뀐 교과서에 따라 만들어진 교과서만 가르치는 맹종하는 교사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7차교육과정의 핵심은 ‘교육이 상품’이라는 사실이다. 상품은 고급상품과 저급상품이 있다. 고급상품은 부자들이, 싸구려상품은 가난한 사람들이 구매한다. 일류대학이 교육의 목표가 된 나라에서 교육이 상품이 되면 부모의 사회경제적인 지위를 대물림하는 합법적인 장치라는 걸 알 만한사람들은 다 안다. 시합 전 승패가 결정 난 게임은 공정한 게임이 아니다. 개정과정이 비밀스럽게 진행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학교는 어떤 인간을 양성하고 있을까? 우리나라 교육이 기대하는 인간상은 '홍익인간(홍익인간의 핵심은 '이타주의')의 이념' 아래 '지덕체를 겸비한 조화로운 인간의 양성'(교육법 제1조)이다. 그렇다면 학교가 길러내고자 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은 어떤 사람일까? 통계를 내보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학교의 교훈이나 급훈은 '근면한 사람' '정직한 사람' 또는 '성실한 사람'이다.

정직, 근면, 성실한 인간이 학교가 길러낼 이상적 인간인가? 인간이 사회적 존재인데 개인만 도덕적이기를 바라거나 완벽하기를 바라는 교육은 옳은 교육이 아니다. 타락한 사회, 부도덕한 사회에서 '착하기만 하다거나 정직하기만 한 사람을 키우는 것은 민주적인 교육이 아니다. 불의한 사회에서 개인이 성실하기만 하거나 정직하기만 한 사람, 착하기만 한 사람은 필연적으로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다.

착하기만한 사람이 범죄 집단에라도 소속되어 있다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아니면 노동자가 됐다면 어떤 모습의 사람이 될까? 착한 사람과 진실한 사람은 다르다. 학교가 착하기만 한 사람을 길러낸다는 것은 피교육자가 성인이 된 후 살아갈 환경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력한 존재, 손해를 보면서도 문제제기조차 못하고 감수하는 그런 무력한 인간을 길러내겠다는 것이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