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정책2015.01.23 07:01


「우열반을 편성해 어려운 환경 아이들의 자존심을 짓밟으면서 미래의 승자들을 따로 키우는 것은, 외부자 시선으로 볼 때 반교육적 아동학대다. 우리가 이런 잔혹 행위를 당연시하는 이유는 능력·능률이라는 이름의 체질화된 이데올로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 래디앙>

 

한겨레신문에 기고한 노르웨이 오슬로대학교수 박노자의 능력이라는 이름의 허구라는 글에 나오는 얘기다. 우리나라는 그의 말처럼 이러한 능력주의가 대다수가 스트레스, 열등감, 자책을 안고 불안 속에서 떨어야 하는 사회는 단기수익을 더 올릴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침몰하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문제는 이러한 이데올로기가 반성은커녕 날이 갈수록 더 심각해지고 있으니 우리사회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을까?

 

학교의 우등생이 사회 열등생이라는 말이 있다. 학교에서 우등생으로 인정받는 요소 즉 지능이란 한사람의 전체적인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문제해결능력, 학업 성취도와 별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지능과 같은 뜻으로 알려져 있는 학습 능력, 학업 성취력이 사회적 성공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학교는 어떤가? 입학한지 1년이 지나면 지능검사를 실시해 우리아이가 우등생인지 열등생인지 낙인을 찍는다. IQ100이 안되니까 저능아라느니 130이니까 천재라는 등....

 

교육의 오만은 멀쩡한 아이에게 낙인을 찍어 평생을 문제아로 만든다. 받아쓰기 점수가 100점을 받으면 우등생이요, 70점을 받으면 부진아라는 낙인을 찍어 순진한 아이의 가슴에 상처를 주기 시작한다. 일제고사에서 점수를 매겨 1등에서 꼴찌를 만들고, 우열반을 편성해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낙인찍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1등과 2등의 몇 점 차이가 암기력인지, 문제해결능력인지 혹은 수리력인지 그런 분석 따위에는 관심이 없이 오직 1등은 좋은 것이요, 2등이나 3등은 무조건 나쁘고 부끄럽다는 식이다.

 

학교교육 정말 이대로 좋은가? 일정한 연령이 되면 취학 통지서를 보내 같은 교실에 3~40명씩 넣고 똑같은 교과서로 가르쳐 누가 더 많이 암기하고 있는가의 여부를 가리는 교육.... 수십 년 전부터 학교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시행해 오고 있는 교육과정(敎育課程)이다. 생각해 보자. 사람이란 개별차가 있다는 건 교육학의 기초 상식이다. 발달의 단계도 다 같을 수 없고 개성이나 소질, 취미도 각양각색이다. 공장에서 각 부품을 조립하여 하나의 완제품을 만들어내는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사람을 만들어 내는 것을 교육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오만이요, 무례다.

 

 

제도교육을 많이 받으면 훌륭한 사람, 인격적으로 존경 받는 사람이 되는가? 아마 이 질문에 반드시 그렇다고 답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저 유명대학, 일류대학을 나오고 학위를 몇 개씩 가진 이름만 대면 아는 정치계 모모씨, 경제계 학계의 모모씨는 존경받는 인물인가? 그들이 사회정의와 인류평화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가? 부정과 비리를 척결하고 인류공영에 기여하고 있는가? 그런 사람들이 사회에서 존경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학교교육이 인격까지 바꿔놓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그렇다면 학교교육이 지향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교육목표야 지정의(知情意)를 갖춘 인격도야 운운하지만 학교에는 수백년동안 사람의 가치를 서열매기는 일에 매몰돼 왔다.

 

패일언하고 그런 방식으로 배운 지식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고 치자. 그렇게 길러진 아이들이 어떻게 세상을 이해하고 적응하고 있을까? 지식은 있어도 판단력이 없는 인간, 자신의 전공분야만 금과옥조로 아는 기능적인 인간을 양성하는 학교교육은 교육의 실패다. 유신교육을 받은 세대들만 권력의 방패막이가 되는 게 아니다. 개성과 소질을 무시하고 인류대학 졸업장이 필요한 사람들을 교육시키는 학교에 어떻게 창의적인 인간, 인격적인 인간 양성이 가능하겠는가?

 

교육이 상품이 된 학교, 시합 전 승부가 결정난 교육실패를 언제까지 강건너 불구경하듯 하고 있어야 할까? 마치 뻐꾸기의 탁란처럼 국민의 세금으로 키워놓은 지성인(?)이 사회공헌은 뒷전이요, 개인의 치부를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간양성을 하고 있다면 그런 교육을 계속해야 될까? 개인을 출세시켜주는 것이 교육의 목적인 학교에 어떻게 인격적인 인간을 길러낼 수 있겠는가?

 

◆.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전자 책을 구매할 수 있는 사이트입니다 

 

 

교보문고
http://digital.kyobobook.co.kr/digital/ebook/ebookDetail.ink?selectedLargeCategory=001&barcode=4808994502151&orderClick=LEA&Kc=

예스24
http://www.yes24.com/24/Goods/9265789?Acode=101

알라딘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899450215

북큐브
http://www.bookcube.com/detail.asp?book_num=130900032

오디언
http://www.audien.com/index.htm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식민지시대 교사경력은 자랑일까, 흉일까? 식민지시대 교사는 동족의 제자들에게 황국신민화를 가르치던 부끄러운 사람이다. 유신시대 교직에 근무했던 사람은 어떤가? 유신시대 교사는 제자들에게 유신헌법을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가르친 부끄러운 과거를 간직하고 있다.

 

1972년 10월 17일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통일주체국민회의가 대통령 선거 및 최고 의결기관으로, 국회의원 정수(定數)의 1/3을 대통령의 추천으로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하고, 국회의 국정감사권을 없앴으며, 지방의회를 폐지하는 유신헌법을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헌법이라니...

 

당시 박정희정부는 사회 교과서를 비롯한 윤리 교과서 등에 민주주의를 말살한 헌법을 ‘한국적 민주주의’가 분단 현실에서 가장 이상적인 헌법이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치도록 강요했다. 유신시대 양심적인 교사는 유신헌법을 어떻게 제자들에게 가르쳐야 하는가? 유신헌법은 분단된 현실에서 가장 이상적인 헌법이라고 가르치는 게 훌륭한 교사인가? 유신헌법을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가르친 교사가 훗날 제자들을 만나면 뭐라고 변명할 것인가?

 

 

불과 수년 전까지만해도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에는 식민지시대 청소년들에게 학도병 지원을 강요하고 여학생들에게 정신대 지원을 선동하던 문인들의 작품이 실린 교과서에 버젓이 실려 있었다. 그런 교과서를 가르치면서 친일 문인들의 훌륭함도 함께 가르친 교사는 훌륭한 교사인가?

 

현재 학생들의 교육지침서인 교육과정은 어떤가? 초중등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는 흠결이 없는 완벽한 교재인가?

 

교사들은 교과서를 가르치는 사람인가 아니면 교육을 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시험점수를 잘 받도록 시헌 기술자는 만들어 주는 사람인가? 잘못된 교육과정으로 사랑하는 제자가 피해를 보고 있다면 고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야 하는가? 아니면 그런 건 교사의 권한 밖이라고 침묵하는 게 옳은가?

 

학교는 지금 난장판을 방불케 한다. 선행학습으로 학원에서 공부하고 학교에서 잠을 자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왕따며 학교 폭력이 난무해 학부모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가 겁이 난다고 한다. 교실은 이미 시비를 가리고 선악을 분병하고 더불어 사는 지혜를 가르치는 교육을 하는 곳이 아니라 시험문제를 풀이하는 학원으로 바뀐 지 오래다.

 

 

이런 현실 앞에 교사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학교가 이 지경인데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체념하고 적당히 시간만 때우고 앉아 있는 게 옳은가? 아니면 수업하기가 힘드니까 점수를 모아 승진을 준비하는 게 옳은가? 그렇게 세월이 지나면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연수가 차면 명예퇴직으로 교단을 떠나는 게 옳은가? 아니면 무너진 교육을 살리기 위해 권력과 맞서 싸우다 해직까지 당하는 불이익도 불사하면 싸우는 게 옳은가?

 

교육은 국민 모두가 누려야 할 보편적인 권리다. 이러한 국민의 기본권을 상품이라며 시장판에 던진 신자유주의를 운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교육이 상품이 되고 일류대학 입학이 교육의 목표가 된 학교에 몸담고 있는 교사가 설 곳은 어디인가?

 

 

 

무너진 학교 그것이 현실이니까 어쩔 수 없이 그 현실을 받아들이며 살자는 현실주의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이런 현실에서 내만 편하고 출세하는 게 현명한 길이라고 가르치는 일보다 점수를 모아 교감, 교장으로 혹은 교육 관료로 승진하는 길을 택할 것인가?

 

무너진 교육현장을 방관하는 교사와 점수나 모아 승진이나 꿈꾸는 교사, 불의한 현실에 맞서 모순된 교육을 바꿔보자는 교사 중 어떤 교사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교육자인가? 무너진 학교, 교육 없는 교실에서 침묵하는 교사는 선한 양치기일까?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