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친님.. 안녕하세요?

어제에 이어 오늘도 '학교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원인을 분석해 보니...' 마지막 결론을 써야 할 차롄데 어제 세종시로 이사하는 바람에 차분히 글을 쓸 분위기가 아니네요

대신 계간지 '우리교육  2012 가을호'에 기고했던 '퇴임한 교사, 나는 왜 교단을 떠나지 못하는가?'를 3회에 걸쳐 나눠서 올리겠습니다.  '학교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원인을 분석해 보니...' 마지막 정리는 집이 정리되는대로 다시 마무리 하겠습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아직도 교사다.

퇴임한지 6년이나 됐는데 사람들은 나를 아직도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전직이 교사였기 때문이 아니라 나는 아직도 현직이다. 학교가 싫어 방황하는 아이들에게 만남의 공간을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에서 뜻을 같이 하는 선생님들과 제자가 힘을 합해 보리학교(사단법인 창원 가온누리센터)라는 대안학교를 설립,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퇴임한 선생님들 중에는 참 다양한 노후생활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환경운동을 하던 어떤 선생님은 생태학교를 운영하면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가 하면 어떤 선생님은 평생을 쌓아 온 노하우를 살려 자신이 전공한 분야를 후배들과 나눔의 자리를 마련, 그들과 함께 하기도 한다.

 

‘점수에만 열을 올리는 애들을 가르치느라 '진정한 교육'이라는 것은 할 수 없는 '무너진 교실'이라 교사는 허탈하다 하십니까?

 

그렇다면 그 점수조차 아무런 관심이 없는 아이들이 그득한 교실은 어찌해야 할까요?

지식이든 삶의 지혜이든 배울 생각은 전혀 없고, 오로지 놀 생각만 있는 아이들. 삶의 지혜나 도리 같은 것을 이야기하면 비웃기 바쁘고, 하다못해 교과지식 하나라도 가르치려 하면 이런 거 왜 배우냐며 빈정거리는 애들을 앞에 놓고 있노라면 '진정한 교육'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사치입니다.

 

점수에 목숨 걸고 점수 때문에라도 하나라도 더 들으려 집중하는 애들을 가르쳐봤으면 좋겠습니다.’

 

며칠 전 필자가 운영하는 블로그(참교육이야기)에 12년 전 오마이뉴스에 썼던 ‘무너지는 교실, 교사는 허탈하다’는 글을 올렸더니 ‘어느 교사’라는 네티즌의 쓴 댓글이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점수 때문이라도 좋으니 공부하고 싶은 아이 한 번 가르치는 게 소원’이라고 까지 했을까? 12년 전의 필자가 썼던 글을 보자.

 

 

 

상황 1. 씨×! 학교 안 다니면 그만 아닙니까?

 

책가방도 버려 둔 채 달아나는 학생을 따라 가 보지만 붙잡아 교실에 앉혀놔도 마음이 떠난 아이를 잡아 둘 재간이 없다. 20평도 안 되는 교실에 앉아 있는 학생과 교사와의 거리는 끝간데없이 멀어만 진다.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학생들의 수업태도를 보면서 "힘들어서 못해 먹겠다"는 푸념을 하는 교사들이 늘어간다.... 최근 서울의 ㅁ중 김모교사(31·여)는 지난달 말 5교시 수업시간에 잠자는 학생을 깨웠다가 봉변을 당했다.

 

여러 번 채근한 뒤에야 고개를 겨우 든 남학생은 한동안 대꾸도 하지 않다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씨…』하고 내뱉더니 책상을 차고 일어났다. 한참 꾸지람을 들은 학생은 『교실 뒤쪽에 서 있으라』는 말에 벽과 문을 잇달아 발로 차면서 수업을 방해했다.(2000년 6월 "무너지는 교실, 좌절하는 교사!" 중 일부)’

 

그 때부터 12년이 지난 오늘날의 교실은 어떤 모습일까?

 

‘상황 2. 수업 시작 벨이 울리면 교사는 교과서와 수업 재료를 챙겨들고 교실로 향한다. 하지만 골마루엔 아직도 장난치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넘친다. 벨이 울렸는데도 교실에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장난 삼매경'에 빠지면 그럴 수도 있겠지 하며 교실 문을 연다.

 

책상 위를 뛰어 다니는 아이, 사물함 위에 드러누워 자는 아이, 교탁 주변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숨바꼭질 하는 아이. 참으로 다양한 아이들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창문이 꽁꽁 닫혀 먼지가 자욱한 가운데 선풍기와 에어컨으로 교실 열기를 식혀낸다.(2012년 7월 12일 경남도민일보 '사천 중학교 '멘붕 스쿨' 어떡하지...?'에서)’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학교는 왜 달라지는 게 없을까? 아니 달라지기는커녕 학교폭력이며 수업을 포기하고 방황하는 학생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더 흉폭화, 조직화, 저연령화, 여학생화, 사이버화... 하고 있다.

 

<교육을 할 것인가? 승진을 할 것인가?>

 

나도 처음에는 그랬다. 발령을 받아 교단에 서면 교사인 내가 할 일은 교직원들 간에 인간관계가 좋고 교장선생님 뜻에 따라 교과서를 잘 가르치는 사람이 훌륭한 교사라고 생각했다. 여기에 아이들을 편애하지 않고 인간적으로 대하면 금상첨화라고...

 

 

교사는 그렇게만 살면 될까? 가끔은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어른이 됐을 때 행복해 할까?’ ‘이렇게 가르치는 게 교사로서 책무를 다 하는 것일까?’, 시험문제 풀이로 날밤을 세면서 ‘교사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기는 할까? 교사는 교과서나 잘 가르쳐 몇 명이라도 더 일류대학에 더 입학시켜주는 것으로 교사의 책무가 끝나는 것일까?

 

교육과정이 왜 수요자중심인지 그런 교육과정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면 교육법에 명시한 교육목표를 도달하게 할 수 있는지, 전국단위일제를 치르면 정말 교육과정이 지향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지...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기 위해 그들과 대화하고 소통하고 안내자 구실을 하는데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지... 공문서를 얼마나 잘 처리해 윗사람(?)에게 잘 보이는 게 교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착각하고 있지나 않는지...?

 

수업시간이 힘들고 지치면 원인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 해결책을 찾기보다 세상을 탓하고 아이들의 도덕성을 탓하지는 않았는지... 그래서 점수를 계산해 승진을 꿈꾸는 교사는 아닌지... 교육을 살리겠다는 의지나 무너진 교실을 온몸으로 바꿔보겠다는 생각보다 승진이라는 탈출구를 찾겠다는 교사들이 있고 아이들 편에서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교장, 교감선생님 눈에 잘 보이는 게 교육자로서 바람직한 삶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교사, 그는 누구인가?>

 

토대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고 했던가? 나도 유신헌법과 12·12 그리고 5·18과 같은 역사의 변혁기를 겪지 않았다면 아이들에게 교과서나 가르치고 교직을 마칠 번했다. 그러나 운 좋게도(?) 그런 변혁기를 겪으며 초등학교에서 중등학교로, 사립에서 공립학교로 실업계에서 인문계로 근무하며 교육의 모순을 경험하면서 교육모순과 사회모순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부끄럽게도 교과서가 국정인지 검인정인지 자유발행제가 있는지 조차 모르는 철부지(?)교사가 고등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만나게 된다. 1979년 마산여자상업고등학교. 학급당 70명에 가까운, 주당 35시간 내외의 수업, 윤리, 사회, 역사, 세계사, 국사, 문서사무까지...

 

그것도 낮에 수업이 끝나면 산업체 특별학급 수업까지 감당해야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유신헌법이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기술한 교과서며, 미국을 신대륙의 발견이라고 쓴 세계사 교과서, 북한을 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윤리교과서를 가르치면서도 그게 잘하는 일인지 부끄러운 일인지조차 구별하지 못하던 부끄러운 교사시절을 보냈다.

 

‘5.18광주민중항쟁’이 북괴 특수부대의 공작이라는 언론의 보도를 보다가 광주시민을 학살하는 비디오를 보고 분노하기도 하고, 네루가 쓴 ‘세계사 편력’과 같은 책을 만나면서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된다. 북한은 동족이 아니라 악마의 상징으로 가르치던 교사가 황석영의 ‘죽음을 너어 시대의 어둠을 너머’와 같은 책을 만나면서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교사로 살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계속)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확하게 16년 전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이 교단일기를 지금 읽어봐도 이곳이 교육하는 곳인지 의문이 든다.

종이쳐도 들어오지 않는 아이들.... 교사가 훈계를 하면 눈을 희번득이며 반항하고 여선생님에게 농담인지 성희롱인지 모를 말(?)도 마다 하지 않는 아이들....

 

부모들을 만나면 졸업이라도 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교육이 없는 교실.... 이런 학교를 보고도 침묵하는 교사와 지도감독을 한다는 교육청의 장학사와 교육장 그리고 교육감은 무슨 생각을 할까?

 

과거사가 아니다. 현재 진행형이다, 아니 과거보다 훨씬 더 처절하다.  여기다 한 수 더 떠서 실업계학교는 인문계진학을 못한 아이들이 가는 곳.  그래서 진학을 위해 보충수업도  하고 6~70%가 대학에 간다.

 

돈만 내면 한글 독해능력이 없어도 4칙 계산조차 못해도 대학생이 되는 나라.... 

그런 졸업장이 있으면 대졸 학력으로 월급을 더 많이 받고, 더 좋은 직장, 더 좋은 신부감을 얻을 수 있는 이상한 나라.... 그런 학교는 지금도 그대로다. 이 교단일기를 읽으면 정치인, 교육자, 학부모들은 어떤 생각이 들까? 

 

 

- 현00의 용감 무쌍기-  96. 9. 3 (화) 

 

"학교가 재미 없어 못다니겠습니다."

 

9월 2일 말도 없이 결석을 하고 이튿날 학교에 왔기에 급장에게 선생님 좀 보자고 했더니 교무실에 못 오겠단다.

 

아침 조례 시간에 교실에 가서 종례를 마치고 리고 나와

"왜 결석했느냐?" 했더니, "학교가 재미가 없어 못 다니겠습니다"
하는 것이였다.

 

너무나 어이가 없어 "그럼 학교 안다니면 뭘 할래? " 했더니 "돈벌랍니다."하고 서슴없이 대답한다.

 

"학교에도 적응 못하면서....... 그리고 돈도 머리를 써야 잘 번다는 것을 모르느냐?"

 

"저는 돈을 벌어 봐서 잘 압니다."

 

"돈이 그렇게 소중하냐."

 

"솔직이 돈만 있으면 안될게 뭐 있습니까 ?"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돈을 열심히 벌어도 하루아침에 병원비로 다 쓸수도 있지 않느냐?"

 

"양심이나 신뢰, 그리고 경험 같은 것도 소중한 재산이 되지 않느냐?."

 

내 말에는 이미 귀 기울이지 않고 있었다.

 

"교실에 가서 있거라 나중에 다시 이야기 해 보자." 했더니 교실로 가서 급우들에게

 

"내년에 보자!" 하며 가방을 챙겨 서서히 사라졌단다.

 

"간 큰 남자"인지 "겁 없는 남자인지?"


          -인문계 바람 난 000 -

 

남고등학교에 전학 시켜 달라고 어머니를 졸라 학교에 상담을 하러 왔던 일이 있었다.
그 후 잊은 줄 알고 있었는데 어머니와 다시 상담을 하러 왔다.


" 창원 남고에서 받아 주기로 했으니 전학을 보내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안되는 일이지만 교장 선생님께 상의해서 9월 3일 까지 연락 해 주겠다고 해놓고 잊고 지냈다.

 

9월 3일 교감 선생님이 학부형과 약속을 했다며 결과를 학부형께 연락해 주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결과는 교무 주임이 남고에 교무 주임에게 전화하고 없었던 일로 하자는 이야기로 끝났다. 그러나 김00 문제는 끝나지 않고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김00란 친구가 전학을 못 가 잔뜩 부풀어 있는 성회에게 "야 ! 전학 간다드니 어떻게 된거야 ? "  좋지 못한 반응으로 나타난 성회의 모습을 보고 평소 한가락 잘나가던 00 주먹이 날아 간 것이다.


일촉즉발의 화약고에 불을 붙여 준 꼴이 됐으니 효과야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책가방을 챙겨 담임에게 말 한마디 없이 무단 이탈 한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밤 11시가 되어 성회 어머니에게서 전화 왔다. 아이가 귀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울화통이 터질 일이다. 이틑 날 입술이 터진 성회가 책가방을 챙겨 교무실로 나타났고 담임은 무력한 구경꾼이 되야 했다.

 

"상업계산 선생님이 무서워 학교에 다니지 못하겠습니다."

 

9월  일 반 학생 7명이 집단 결석한 사건이 벌어졌다. 급장 이야기가 "선생님, 오늘 상업계산 시험 치는데 선생님이 무서워 아이들이 결석한 것 같습니다."하는 것이었다.
잠시후 허00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우리 상식이가 상업계산 시험 친다는데 선생님이 무서워 학교에 안갈라 캅니다."


"신문에 보니까 상업계산은 앞으로 안 배워도 된다 카던데예!"

 

상업계산 과목은 교육이 현실을 따라 가지 못하는 문화 지체현상이라는 것은 지적되어 온지 오래다. 그러나  학부형의 입에서 "선생님, 상업계산은 그렇게 아이들이 공포심을 가지면서 까지 공부해야할 과목이 아니잖아요"하는 노골적인 반발을 살 만큼 왔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어째됐건 이 사건은 엉뚱하게 비화되고 교무실에서 "이놈!", "저놈"으로 목청을 돋우는 사건으로 비화됐던 것이다. 교감에게 결석이 7명인데 상업계산 서생님이 무서워 결석했다는 이야기가 학생부 선생님이 듣고 이사람 저사람에게 비화되면서 '1학년 3반 선생 이새끼 두고 보자'로 되고 평소 감정이 좋지 못한(지난 1학기말 고사때 교무주임이 나의 채점 확인 문제로 무안을 줬고 나는 같은 교사끼리 실수를 부하 딲아 세우듯이 무안을 준 그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질문에 고분고분한 대답이 나오지 않았고 그래서 교무실에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게 된 것이고 교감으로 나기 위해서는 1 秀를 받아야 하는 그는 사람을 시켜 화해하자는 제스츄어를 보내고 있고, 나는 아직도 성이 풀리지 않아  "이새끼 너 잘났으면 교감 발령 나 봐라!"하고 버티고 있는 중이고....

 

이튿날 장기 결석 하던 두학생을 빼고 5명과 나머지 5명이 복학생 지00의 생일 파티를 해 준다고 1인당 5천원씩을 내고 용지 못에 모여 술과 음식을 사서 먹고 노래 부르며 축하해 준 것까지는 좋았는데 5명이 11시가 넘어 여관으로 가서 더 먹고 마시다 늦잠을 자게 되고 이튿날 집단 결석을 하게 된 것이다.

 

오토바이를 안사 주면 학교에 안 다니겠습니다.

 

-부급장 김00의 반항기-

 

며칠 전 오토바이 운전 면허 시험을 친다고 김00이 결석을 한 일이 있었다.
그 후 어느날 지00이의 생일 축하를 해 준다고 어울려 여관에서 자고는 그 길로 계속 학교에 무단결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에게 연락했더니 오토바이를 안 사주면 학교에 안가겠다고 가출했다는 것이다.
학교에 와서 자퇴를 하고 너 맘대로 취직을 하여 돈 벌어서 오토바이를 사라고 친구들을 시켜 데려 오라고 해서 이 버릇없는 놈을 싫건 혼내주고 달래어 학교에 나오라고 약속까지 받았다.

 

같이 학교에 왔던 어머니가 내가 상담하는 동안 자리를 피했다가 다시 만나자고 신신 당부를 했더니 내가 수업 들어가고 없는 사이 집으로 가버렸다.


차비도 없다고 하는 아이를 차비까지 줘서 수업 마치고 이튿날 학교 오기로 약속 하고 집으로 보냈는데 그 날 저녁 아버지가 다시 폭력을 행사, 가출해 버렸다는 것이다
어머니에게 전화로 화풀이하고 "당신 자식이니 당신 마음대로 하시오."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틀 후 김00이 어머니와 같이 학교에 나타났다.

 

오토바이를 연말에 사주는 조건으로 학교에 다니겠다고 어머니가 데리고 온 것이다.
"야 ! 이 나쁜놈아! 학교는 네가 다니고 싶으면 다니고 말고 싶으면 마느냐?"
화풀이르 싫건 하고 어머니를 보냈지만 뒷맛이 깨운하지는 않았다.

 

0고의 무법자들!  오! 하늘도 무심하시지.

 

 

김00 (마산 0고 1학년3반, 복학생)
주00(삼진 00고 1학년)- Tel. 71.0389
유00(00고 2학년)
김00(00고 2학년)
김00(마산 0고 1학년 2반)- Tel. 71.2951
박00(마산 0고 1학년 10반)

 

이상 6명 중 00, 00, 00는 1996년 10월 26일 저녁 6시경 진동에서 모여 마산에서 놀 것을 의논하고 마산에 넘어 와 00, 00, 00이와 합류한다.
이들은 만나자 말자 창동 소재 하양까망 커피솦에서 1차 모의하고 오렌지 소주방으로 가서 여학생 3명을 데려다 놓고 3만원어치 소주와 맥주를 마신다.

 

이들은 창동에 있는 노래방으로 몰려가 8천원 상당을 지불하고 1시간여 동안 즐긴다.
이것도 부족하여 이들은 연흥 극장 앞 샤가 나이트에서 6만원 상당을 지불하고 신을 푼다.


이들은 다시 자리를 옮겨 호프집에서 5만원 상당의 생맥주를 마시고 새벽 3시가 되어서야 여자와 함께 여관으로 직행 여관비 5만원을 지불하고 라면을 사서 끌여 먹고 유00과 김00는 한일 전산 학생(은하)과 혼숙을 한다.
이튿날 12시가 되어서야 이 무법자 악당들은 여관을 나선다.
......................................
........................................


김00 학생을 퇴학 시켜야 하는 건데, 그러나 이렇게 끍어 지도하다 보면 남을 아이들이 몇일까?


이 악당을 덮어두어야 한다?
부모를 만나서 상담을 하기로 하고 일단 토요일마다 담임 집에 전화하  걸로 당분간 넘기자.


그러나 두 주일 동안 전화가 오지 않자. 성이 났다.
" 야! 김00 왜 전화 않했어?"
"잊어 먹었습니다."


"뭐라고? 선생님은 47명을 하나라도 잘못될까 걱정인데 네놈은 하나뿐인 담임과의 약속을 잊어 먹어?"


괘심한 생각은 다음주에는 꼭 약속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믿고 참기로 했다.
그러나 다음주 밤 10시가 가까이 돼도 전화는 오지 않았다. 화가 난 나는 전화를 먼저 걸어 호통을 치려고 전화하는 순간 00 아버지의 거만스런 목소리에 확 비위가 상한다.
대단히 달갑지 않는 투로 바빠서 만날 시간이 없었단다.


'누군 할 일이 없어 밤늦게 학생 집에 전화하고 있는 줄 아는가?'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성질을 억누르고 "00가 타락하여 걷잡을 수 없을 때 그때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점잖게 전화를 끊고도 뒤틀린 비위는 풀리지 않는다.

 

오토바이 사달라고 가출했던 김00
                             기어코 오토바이 사고를 내다.(1996. 11. 25 )

 

오토바이를 안 사주면 학교에 안가겠다고 가출했던 부급장 김00이 같은 반 천00과 지난 16일 토요일 오토바이를 합승하고 가다 티코 승용차와 충돌하여 김00은 3주 진단이, 그리고 운전을 하던 천00은 6주 진단을 요하는 부상을 입고 창원 세광 병원에 입원했다.
'꼴 좋다!' 얼굴에 수십 바늘씩 꿰매고 마스크를 하고 있는 모습이라니.......


오토바이 안사주면 학교 안다니겠다고 어름장을 놓던 허00는 충격(?)을 받았을까?

11월 18일 이유 없이 가출한 지00

 

11월 18일 아침 늦잠을 자고 학교에 간다고 간 후에 행방이 묘연하다고 울상을 하는 00이 엄마를 보고 가엾은 생각이 들어 알아 본 즉 어머니라는 사람이 00이가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하니까 30만원을 예금통장을 만들어 주고 현금카드까지 만들어 줬다나...
'아이를 가출하라고 준비까지 해주다니.'


참 한심하다, 한심해 !

 

   지00의 무단 가출기
                                     - 학교가 오기 싫어 가출한 00이 -

 

부모도 친구도 아무도 모르게 학교에 오던 길에 증발(?)한 지00은 12일간이나 소식을 몰라 전전긍긍하다가 어렵게 친구의 연락을 받고 되돌아 온 것이다.
지00은 어머니가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하니까 현금 통장에 20만원을 넣어 주고 현금카드가지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현금 카드에 3만원을 남기고 잡혀 와 쓴 경위서는 이렇다.


경 위 서

 

1996년 11월 일 늦잠을 자고 학교에 가다가 우연히 학교에 가기 싫어 들고 나온 사복으로 갈아입고, 진해 가는 버스를 타고 진해 바닷가에 나갔다.
바닷가에서 낚시하는 것을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녁이 되어 여관에 가서 잠을 자고 그 다음날에도 하루종일 그 여관에서 잠을 잤습니다.
3일째 되는 날은 00라는 실고 2학년 친구를 만나 그 아이의 생일이라고 해서 00이 집에서 잤습니다.

 

00이 집에서 생일 파티를 하고 00이 집에서 잤습니다.
다음날 그 00라는 선배를 만나 그의 집에서 할 일 없이 보냈습니다.
00 선배는 낮에는 회사를 가고 저녁에는 야간학교를 다니기 때문에 혼자서 집에 있었습니다.


할 일이 없어서 오락실에 가고 음식 사먹으러 갔습니다. 이렇게 할 일 없이 3일을 보내고 4일째는 저녁에 선배들이 와서 같이 술을 마시기도 하고 이렇게 5일을 보내고 토요일은 선배와 같이 자취하는 친구들과 당구치기도 하고 술도 마셨습니다.
술을 마시면서 선배가 일요일에는 집에 들어가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일요일에는 선배가 약속이 있어서 오후 7시에 들어온다면서 약속을 하고 나갔습니다. 나도 할 일이 없어서 00를 만나러 갔습니다. 00를 만나 당구도 치고 이야기도 하고 잃게 시간을 보내고 7시가 되어 선배와 약속이 생각났습니다. 하지만 저는 집에 들어가기가 싫었습니다. 그래서 선배 자취방에 가지 않고 00 집에서 하루 밤을 보냈습니다. 아침 7시에 나와서 목욕탕을 갔습니다. 목욕탕에서 4시까지 잠을 잤습니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서 점심을 사 먹고 오락실에 갔습니다. 오락실에서 2시간을 있다가 6시가 되어서 친구를 만났습니다. 친구를 만나 당구를 치고 있는데 춘호가 저의 어머니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선생님 저는 그냥 하루 학교 가기 싫어서 안 간 것이 순간 나쁜 생각이 들어서 그대로 집에 들어가지 않은 것뿐입니다.


'집에 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순간 겁도 나고 해서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오셔서 집에 들어 갔습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열병을 앓고 난 아이처럼 어머니와 함께 나타난 지00은 본인 보다 어머니가 더 미안해 하급 아이들에게 빵을 한봉지씩 돌리고 난 후에야 안심을 하셨는지 집으로 돌아 가셨다.
제발 잘 부탁한다는 겸연쩍은 표정도 함께 남겨 두고........


학교로 돌아 온 탕자는 일단 그대로 수업을 시키지 않는다. 교칙에는 가출 후 돌아 온 학생에게는 가출의 일 수에 따라 징계이 양도 달라진다.
담임으로서도 돌아 온 탕자(?)에게 주의만 주고 그대로 수업을 받게 할수 없어 지도과로 넘긴다. 복도에 꿀어 앉아 일주일간 반성문을 쓰고 있는 00이의 옆을 지나치면 내가 죄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박00의 학교 탈출기

 

 

 00아! 학교가 그렇게 싫은 것은 너의 죄만이 아니란다.

박00이가 특별히 기억에 남게 된 것은 학기초의 폭력 사건 때문이다.
같은반 천00이와 2반 학생이 박00이와 다투다 머리를 다쳐 양쪽 부모를 불러 수습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박00이 어머니가 처음에는 학교에 와서 "아이들끼리 싸움을 한 것을 문제삼을 수 있느냐?" 면서 병원비만 물어내고 끝나는 것으로 하기로 합의를 해 주는 듯 하였다.

그러나 이튿날 다시 학교에 나와서는 마음이 달라진것 갔았다.


그 후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천00이와 2반 학생이 병원비를 제외하고 각 2백만원씩을 요구하다가 100만으로 배상하기로 낙착을 받다나?


참 기가 막혔다.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되지만 같은 반 친구끼리 돈을 받아 입을 딲다니...
박00이를 볼 때마다 곱지 않은 눈으로 늘 보아 왔는데 그 후 알고 보니 그 어머니는 노름에 손을 대고 그 돈을 아버지도 모르게 챙겼던 모양이고.....

 

결국은 가정 파탄으로 이혼을 하고 박00이는 가출을 일삼다가 결국에는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11월 말경 부터 계속해서 출석 보다 결석을 더 많이 하더니 교실에 앉아 있는 그를 보고 면담을 하자면서 종아리로 회초리를 몇 대 때리고 닥달을 했다. 아버지를 불러 상담을 하려고 호출을 해놓고 꿇어 않혀 놨더니 도망을 가는 것이었다.


씨름부가 있기에 따라가 붙잡아 와서 복도에 벌받고 있던 학생에게 지키라고 맡겨두고 수업을 마치고 나왔더니 도망을 가고 없었다.

 

잠시 후 아버지가 나타났지만 속수 무책으로 담임에게 미안하다는 말만하고 돌아갔다.
그가 가출을 끝내고 학교에 다시 다닐런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그리고 그 후에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


방학이 되고 그렇게 학교에 연락 좀 해달라는 담임의 부탁도 00이 아버지는 들었는지
답답한 담임이 전화를 했드니 오토바이 사고를 내서 창원의 한마음 병원에 입원중이란다.


담임의 역할이 어디까지여야 하는지 이런 경우는 병원을 찾는 것이 바보스런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청소년의 장래를 위해서라면 교사의 자존심 정도야 무시당해도 좋다. 대신 00이와 같이 아이들이 열병에서 치유만 될 수 있다면.......

 

박00의 결석 사유

 

어머니와 아버지가 싸워서 어머니가 집을 나갔습니다.
어머니가 집에 연락도 안 합니다. 그때부터 아버지께서 퇴근이 조금씩 늦어졌습니다.
나는 아버지를 기다리다가 잠을 자곤 했습니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서 학교에 조금씩 늦었습니다. 아버지, 누나가 깨워 주고 가지만 너무 일찍 깨워 주기 때문에 다시 잠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학교는 점점 가기 싫어지고 지각도 요즘에는 자주 하게 되었습니다.

 

결석한 날도 늦잠을 자고 일어나니 4시였습니다. 선생님한테 전화하려 했는데 시간이 이렇게 되어서 분명히 전화를 하면 꾸중을 들을걸 알고 일부러 전화를 안 했습니다.
그래서 심심해서 밖에 돌아 다녔습니다.  오락실도 가고 그냥 빈둥빈둥 거리에 돌아 다녔습니다.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주시면 다시는 결석 안 하겠습니다.

 

조기 방학하는 송0, 마00

 

1학년 동안 가장 애를 먹인 기억에 남는 악당(?)이 송0 마00이다.
송0은 아버지가 가출하여 다른 살림을 하고 있는 듯 어머니가 시어머니를 모시고 직장에 다니고 있는 것 같았다.


직장에 다니면서 늦게 귀가하여 사춘기에 접어든 송0은 학교에 간다고 나와 노래방이며 당구장을 전전하며 놀기도 하고 집에서 학비를 준다고 받아 유흥비로 방탕하는 학생이다.


방학 며칠 전에 조기방학을 하기 일수이고 종례 전 하교, 몸이 아프다고 조퇴를 맡아 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끝내는 어머니조차도 2학년 책값을 대신 내준다고 담임에게 내달라고 하고는 소식이 없다.

 

마00은 한술 더 뜨는 학생이다.
끝없는 거짓말로 사람을 대하는 태도 또한 거만하고 불손하다.
부모님이 다 계시면서 부모도 00이에게는 손을 들고 있는 모양이다.


학교 등교를 하다가 중간에 노래방이며 친구 집으로 또는 노래방으로 끝없는 방탕자로 마치 송0이와 경쟁이라도 할 것 같이 지긋지긋하게 애를 먹인다.
온통 출석부가 걸레 조각 같이 되도록 만들어 놓았다.

보충 수업에 멍드는 아이들

 

이 학교에 발령 받고 두 번째 보충 수업이라는 것을 했다. 여름방학에 며칠, 그리고 겨울 방학에 며칠씩. 참으로 참담한 심정은 두 번 모두 마찬가지였다.
처음 시작할 때 한 학급당 45명 정도 배정한 아이들이 보충 수업이 한 일주일 정도 지나고 나면 학급당15-8명 정도로 줄어든다.


상업학교에서 보충 수업이란 것을 정말 해야 하는 것인가? 교사나 교장, 교감을 위해서 하는 건지?
교장 교감은 보충 수업을 하지 않고 보충 수업을 하는 (최고 수당이 많은) 교사 분만큼 수당을 받는다.


실업계 고등학교와 인문계 고등학교의 차이는 무엇인가?


 

수능 1달 남겨놓고 맡은 담임(1998. 10. 3 -토-)


2년 전에 나의 인생에 마지막 담임을 맡는 줄 알았는데 다시 학급담임이라는 것을 또 맡게 될 줄이야....

 

지난 8월 말 병 휴직으로 담임 배정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교감선생님이 농담삼아 정00 선생님의 일본 유학 후임에 '선생님이 맡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이 농담인 줄 알았다.
"농담이라도 그런 말씀 마이소!" 하고 끝난 일이었는데 지난 9월 28일 정식으로 요청했고 거절을 못해 맡을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교 3학년을 수능시험을 1달 남짓 남겨 놓고 맡을 사람이 누군가?
출석부 통계며 생활 기록부를 비롯한 입시 원서 등 짐 보따리를 맡았다. 일이 문제가 아니다 학생들과는 담임으로서의 역할도 안 된다. 학생들은 담임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이런 저런 고민으로 심기가 편치 않는데 9월 29일 새로 오신 국사 선생님을 소개하면서 후임 담임 소개를 하지 않는 것이었다. 정식으로 소개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3학년 담임 이취임 연회에서 인사까지 했는데, 하루가 급한 상황에서 의아해 하는 사람들은 학년주임뿐이 아니었다.


교감 선생님은 결재가 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어떤 선생님은 농담 반 진담 반 "자격 미달 아니냐" 고 한다.

 

가까스레 10월 1일 종례에 발표가 있고 2일 종례 때 학생들에게 인사를 하러 갔더니 대부분 도망 가 버리고 10명도 안되는 학생들이 청소도 않고 집으로 가려던 중이었다.
출석부에는 전 담임이 떠나고 지각, 결석, 무단 조퇴 등 말이 아니다.


염려했던 그대로다. 그래도 아이들을 단속하고 내가 할 수 있는대로 하자는 생각을 했는데, 내가 무슨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단 말인가? 실의와 자포자기가 앞선다.

 

다시 맡게 된 담임 (98. 10. 9.-금-)

 

추석 연휴관계로 실직적인 담임 역할은 오늘부터 맡게된 셈이다.

군림하지 않고 저들의 신뢰를 빠른 시일 안에 받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무시당하지 않고 "우리 선생님의 자리"를 빠른 시일 안에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벌써 5-6명이 취업을 하고 학교를 떠난 상황이다. 남아 있는 학생들에게 저희들을 도와 주는 안내자. 그리고 상담자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접근해 들어가자.
지난 2일 종례를 들어갔을 때 7-8명의 학생들만이 교실을 개판으로 만들오 놓은 상태에서 교실을 떠나려는 상태에서 인사를 했던 일! 당번에게 임무를 맡기고 제3 강조를 했지만 도망 가버리고 말았다. 분명하게 是非를 가리고 책임을 묻는 일에서부터 잘잘못을 가리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앞으로 잘해갈 것을 당부했다.

 

"결석하지 말자." "자신의 잘못으로 남이 피해를 보는 것은 대단히 나쁜 일이다." "책임감이 재산이다." 첫 시간부터 자는 학생, 문제지를 보지 않고 답을 적는 학생들에게 내 이야기가 먹혀 들어갈까?


지난달 출석부를 처량하게 적고 있는 나를 놀린다. "수습교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어쩌고...
"교장을 해도 될 나이에 출석부, 그것도 남의 출석부를 정리해야 합니까?" 나의 말에 농담의 분위기가 싹 깨졌다.

 

통제되지 않는 학생(98. 10. 16.-금-)


며칠 전에 전 담임으로부터 편지가 왔다.
생소한 일본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는 이야기며 정말 제자들과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거듭 거듭 강조했다. 정말 어려운 담임을 맡았지만 통제되지 않은 학생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 대부분 착한 학생들은 "너희들이 협조해라"는 이야기에 잘 따른다. 


그러나 몇몇은 종례를 마치고 가라고 사정하다시피 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불이익을 주겠다는 협박(?)을 해도 牛耳讀經이다.

 

도망치는 아이들(1998. 10. 27-화-)

 

아침에는 지율학습 시간에 10여명씩 지각을 한다.
결석이 2-3명에다 조퇴를 시켜달라는 학생이 5-6명 정도....
단골로 도망가는 학생들이 5-6명씩이나 된다. 담임의 공갈에 겁 많은 학생들은 조퇴를 가겠단다. 핑개도 가지가지...

 

어떤 아이는 몸이 아프다. 머리가 아프다, 배탈이 났다, 피부과에 가야한다, 친구와 약속이 있다, 운전면허 시험을 친다.....  그래도 핑개가 없으면 도망가 버린다.
선생님들끼리 농담을 한다. "내일 학교 와서 담임을 어떻게 볼려고 도망을 갈까?" 어떤 선생님이 말하면 "우리학교 아이들에게는 내일이 있습니까?"하고는 웃는다.

 

 

끝없 튀고 싶은 김00(1998. 12. 13-일-)


교실에 신발을 신고 앉아 있다. 신발을 신고 있으면 신발에 뭍은 먼지에 친구가 병에 걸릴 위험이 있으니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좋지 않으냐고 했더니 그 다음날은 신발은 신지는 않고 벗어서 발 옆에 두고 앉아 있다. 다시 한번 경고하는데 다음에 다시 신발을 교실에 가져오면 압수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약속을 받았으나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다.

 

신발을 압수한다고 말하고 교무실에 보름정도 뒀다가 가져가라고 했더니 싫다고 한다 얼마 후에 보니 지난번 보다 더 좋은 구두를 신고 다녔다.

'아버지의 골을 빼는 놈!'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 후에도 '나는 선생님도 갋지 못하는 아이다'라는 것을 끝없이 과시하기 위해서 도전에 도전을 했지만 '민주주의에서는 특권은 용납 안 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느라고 끝없는 신경전을 벌여야 했다.


아이들과 싸우느라 정신 없는 날의 연속이다.
담임일지를 적을 시간도 없다.

 

-이성을 잃은 대학들-

 

드디어 대학의 학생 쟁탈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나 보다!
며칠 전에는 00 대학에서 버스 4대가 학생들을 태우려 왔다.
박물관 견학이란다.

 

대학 안의 교실에 옹기 몇 점을 모아놓고 박물관이라는 이름을 붙인 발상이...
캠퍼스를 건설하기 위해 산을 수십만평이나 깎아 거대한 전문대학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그린벨트(사실여부는 확인한바 없지만, 산 속에 이렇게 산을 깎을 수 있다면 아마...)를 해제할 수 있는 능력이라면 배경이 단단한 대단한 재력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사실 00건설이라는 이재단이 부산의 주택공사는 대부분 독점하고 있다나?


학교를 선전하는 한 교수는 자랑처럼 선전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건강한 사람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TV에 수천만원을 들여 광고까지 내고 학생들을 동원하여 안내역을 맡기고....

 

점심대신 그 많은 학생들에게 우유와 빵을 제공하고 인솔교사에게 몇만원씩의 점심값을 주고.....

 

00 대학뿐이 아니다. 3학년을 담임을 중간에 맡고 수첩이며 시계며, 수시로 찾아와 점심을 대접하고.... 이 돈들이 다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1996년. 마산여자상업고등학교에 근무하다 전교조관련으로 해직됐다 5년만인

1994년 울산방어진에 있는 중학교에 발령을 받았습니다.

 

연고지에 복직이 원칙이지만 전교조 경남지부장을 맡았던 죄(?)로 연고지가 아닌 울산 방어진에 보복성(?)을 복직 발령을 받았다가 그 다음 해 부임한 실업계 학교 이야기입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당시 썼던 교단일기를 여기 2회에 걸쳐 나눠 올립니다.

 

 

 

16년이 지난 얘깁니다.

 

16년 전에 썼던 교단일기를 보면서 ‘이 글을 공개할 것인가?’를 한참 망서렸습니다. 생각 끝에 공개하는 게 옳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사례를 공개함으로써 학부모들이 자녀들의 학교생활을 이해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학교위기의 실체를 알려 교육위기에 대한 담론이 현실문제로 제기됐으면 하는 마음에서입니다.

 

교육자는 물론 학부모들도 함께 만들어 놓은 이 교실의 참담한 현실을 꺼내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여기 내놓습니다.

 

16년 전 교실이 이 지경이었으니 오늘의 교실은 어떤 모양일지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실업계학교의 교실... 노무현대통령 때였던가? 교육혁신위원회 경남지역 간담회자리에서 ‘실업계 학교가 얼마나 심각한지 교실에 한 번 가본 일이 있는가?’라고 질의를 했더니 혁신위원 중의 한 사람이 '실업계학교문제의 심각성은 이미 다 알고 있다. 그런데 '실업계과목 선생님들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길이 없어 그대로 둘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듣고 아연해했던 일이 있습니다. '선생님들을 위해 죽은 학교를 덮어 둔다니...'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래 교단일기를 보시면 이해가 조금은 되실 것입니다.

 

교 단 일 기(1) ....이게 공부하는 학교인가?

 

1996. 3. 3 (일)

00상고로 전보발령을 받아 첫 출근을 했다.

 

전교조관련으로 해직됐다가 94년 복직했던 울산의 00 중학교에서처럼 왁짜한 교무실분위기와 흡사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100명에 가까운 교사를 두 칸 교실을 튀워 교무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평균 연령이 60이 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연세 많은 선생님들도 많았고 70명이 넘는 교무실은 말 그대로 '와글와글'한 그런 곳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교재 연구다, 연수다' 하는 말은 어부성설(語不成說)일 것 같다.

 

뒤에 안 일이지만 이곳에서는 교재 연구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된다(?). 아니 교재 연구를 할 필요가 없는 곳(?)이다. 이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중학교 학급의 하위 5%의 학생들이 모인 곳이니 교재연구를 하는 수고는 안 해도(?) 된다는 것이다.

 

1학년 담임에 3학년 정치경제, 2학년 사회문화, 1학년 국민윤리, 사무 분장은 폐 휴지 수집 처리 담당이라........ 이것이 고등학교 그것도 새로 전입 온 교사가 맡은 업무 분장이다.

 

인문계 학교에서는 담임을 서로 하려고 교장에게 뇌물(?)을 상납한다는데 나이가 오십을 넘은 사람에게 담임을 맡겼다. '평생동안 담임을 맡을 기회가 몇 번 더 있으랴 '싶어서 '조용히 그리고 최선을 다해야지' 하는 심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필자의 막내 아들(고 3학년) 말로는 실업계 학교에서 담임을 맡으면 파출소에 쫓아다니기 바쁘다던가? 중학교 반 성적의 80-90%가 모인 집단이라면 어련할까, 그러나 저들이 부적응하고 반항하는 대는 상당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들의 세계로 가자. 그리고 내인생의 몇번 밖에 남지 않는 기회를 최선을 다해 달려가자.

첫 출근하는 날 칠원면에서 이00군과, 김00양의 결혼 주례를 봐 주고 정신 없는 하루를 보냈다. 신랑 신부가 7박 8일의 신혼 여행을 간단다. 그것도 호주라던가?

 

대한 통운에 다니는 신랑과 보건소에 근무하는 신부의 수준(경제적 능력이긴 하지만)으로는 좀 무리는 아닐지? 요즘 젊은이들이란 자신에 대해서는 참 너그럽고도 여유롭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서 여행을 다니다 보면 남이 보지 않는 낯선 곳이면 싸구려 식당을 찿는 우리 세대와는 생각부터가 다른가 보다.

 

1994. 4. 6 (토)

 

00고 부임 한달이 되었다. 담임 일 보랴! 폐휴지 분류하여 처리하랴! 보충수업에 교재연구에 정신 없는 나날이다. 천태영-유기정학 중 폭행, 무기정학 받다. 김00-가출

신00-금품 갈취로 파출소에서 연락 옴. 김00, 김00 오늘 가출......

1학년 3반 ! 참 한심하다.

 

"교사가 무능해서 그렇다"는 농담 아닌 농담을 해 놓고 기가 차서 웃는다.

도대체 이런 학교가 어디 있담?

"공부 못하는 새끼들이 그렇지. 그런 새끼들, 인간 안될 놈은 잘라 버려야 해. 그래야 2학년 담임에게 욕을 먹지 않지."

 

문제아를 보는 교사들의 시각이다.

자르면(?) 그들이 가는 곳이 어디일까?

과연 이들의 타락과 부도덕은 개인의 자질에만 책임이 있는 것인가?

 

4.28일(일)

 

아침에 출근하면 오늘은 또 누가 결석했는가 그것부터 걱정이다.

강00 김00국을 비롯해서 벌써 3명이 퇴학을 당했다.

이름이 자퇴이지 그들은 학교에 복학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아도 틀린 말이 아니다.

김00은 신00의 괴롭힘에 스스로 손을 들고, 이제 신00은 착하고 기가 보드라운 조00을 비롯한 학급의 밥(?)을 대상으로 즐기다가 김00 학생의 얼굴에 칼자국을 내고 경위서를 쓰다 뺑소니를 치고 가출하고 말았다.

 

가출 후 학교 주변을 배회하면서 등교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금품을 갈취하고 오락실을 같이 가자고 협박하는 등 참으로 기가 찬 인생을 살고 있다.

부모도 담임도 퇴학 절차만 기다리고 있다.

 

김00, 김00 !

얌전하고 착실하게만 보였던 그들이 어느 날 무단 결석.

가출하여 오락실, 만화방을 전전하다가 남의 아파트 지하실에서 며칠 밤을 자고 돈이 떨어지자 집에 나타나 개선 장군이 되어 그동안 부모님께 졸라도 도저히 사 주지 않던 지갑이며 벨트를 사서 싱글벙글이다.

 

가출 경위서

 

일시 1996년 4월 6일 제1학년 3반 김00

4월 6일 우리는 성안 백화점 앞에서 모이도록 했다.

00이와 00이는 사복을 입고 오고 나는 교복을 입고 왔다.

나는 그날 우리집 식구가 다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집으로 들어가 사복을 갈아 입고 나왔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나서 밖으로 나와 우리는 길을 걸었다.

길을 걷다가 오락실로 들어갔다. 오락실에서 300원을 쓰고 우리는 버스를 타고 합 성동으로 갔다. 합성동에서 진영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진영에 있는 오락실에서 오락 200원을 하고 노래방 300원을 쓰고 당구장에 갔다.

 

당구장에서 나와서 라면을 먹으러 갔다.

우리는 온누리 아파트 지하실에서 잠을 잤다.

 

4월 7일

그 다음날 새벽 5시에 목욕탕(2000원)에 갔다.

우리는 목욕탕에서 잠을 자다가 목욕을 하고 나왔다.목욕을 하고 오락실에 오락 500 원을 하고 라면 1000원을 먹고 나서 당구장에 가서 당구를 쳤다. 당구장에서 텔레비 전을 보고 마산으로 왔다.

 

마산을 와서 합성동에서 걸어 다녔다. 걸어다니다가 주차장 오락실에 가서 600원을 쓰고 만화방에 갔다.

만화책을 5권 빌려 보니까 1000원이 들었다. 만화책을 조금 보다가 나는 잠이 와서 혼자 조금 잤다. 자다가 일어나서 만화책을 다보고 나왔다.

 

그리고 합성동을 돌아다니다가 보니 배가 고파서 라면(1000원)을 먹으러 갔다.

그리고 차가 끊어지기 전에 진영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진영으로 와서 다시 아파 트 지하실에서 잠을 잤다.

 

4월 8일

 

아침에 일어나서 할 짓도 없어서 그냥 이런 저런 이야기나 하고 시간을 보냈다.

4월 9일

아침에 일어나서 라면(1000원)을 사먹고 오락실로 갔다. 오락실에서 확실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1500원을 쓴 것 갔다. 오락실을 갔다가 나와서 노래방에 갔다. 나는 노 래방비 3000원을 내고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나왔다.

 

우리는 나와서 슈퍼마캩에 가서 우유(300원)와 과자(200원)을 사들고 지하실로 가 서 우유와 빵과 과자를 먹고 잠을 잤다.

 

4월 10일

이제는 돈도 다 떨어지고 해서 아침밥은 간단히 빵과 우유를 사먹고 마산으로 넘어 왔다. 그래서 일단은 합성동에서 버스를 타고 양덕동으로 와서 오락실에서 오락

(2000원)을 하고 있는데 친구가 왔다. 그래서 우리는 친구한테 끌려 집으로 돌아 왔다.

그리고 하루 이틀 등교 후 이제는 부모와 숨박꼭질을 하면서 애를 태운다.

 

빌고 달래고, 선생이 주책 없이(?) 저희 집에 찾아가 사정을 해 보기도 했지만 잠시 둘이서 의논하고 내일부터 학교 다닐 것을 의논하겠다는 말을 믿고 기다렸더니 그 길로 뺑소니 치고 담임은 닭 쫒던 개 지붕 처다 보기로 헛다리 짚고(?) 되돌아오기도 하고......

 

납치극(?)에 온 식구 밤잠 설치고...

1학년 9반 담임 선생님이 폭력 문제를 인터뷰 하겠다는 K, B, S P,D가 있다고 우리반 학생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에 중학교에 입학했다가 학교 폭력에 희생자가 되어 학교를 포기하고 검정 고시로 입학한 우리반 급장을 소개하기로 했다.

 

그 부모님은 슈퍼마켙을 운영하면서 입학 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지극 정성으로 등하교를 시키고 도시락을 가져오는 등 지극한 부성애에 감동하고 있던 차에 그들을 소개하기로 하고 의향을 타진 했드니 이제 겨우 그 악몽을 잊으려 하니 다시 꺼내 말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씨 착하고 여자 같이 얌전한 조광준 학생을 대타로 데리고 가기로 하고 방송국에 갔다 왔는데, 일은 그날 저녁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12시 반이 됐을 때, 조00의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방송국에 출연해 학교 폭력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방해하려는 폭력배에 납치를 당했는지 00이가 집에 들어오지 않는 다는 것이다.

00이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남의 집에서 자고 오거나 문제를 일으킨 일이 없다는 것이다.

선생님이 그런 일을 저질렀으니 책임지라는 투였다.

 

밤새도록 온 식구가 잠도 재대로 못 자고 아침도 거르고 학교에 갔다.

등교하는 학생마다 00이를 봤느냐 묻기도 하고 동분서주, 교실에 왔다 교무실에 왔다가 좌불안석으로 헤매다 최00와 2반 학생이 00이를 보고 찾아오는 중이라는 소식을 들은 것은 8명이 결석한 교실을 멍청하게 지켜 보다 못해 수업을 2시간 마치고 나왔을 때의 일이다.

00이 아버지가 옆에 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빰부터 올려붙이고는 사연을 들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게도 문제는 00이가 아니고 00이 아버지였다.

 

집에 조금만 늦게 들어오면 밧다를 치는 아버지의 폭력에 놀다 늦은 00이는 겁을 먹고 남의 아파트 계단에서 쭈그려 자고 학교 앞에 서성이다 친구에게 목격되어 끌려 온 것이다.

 

1996 5. 1

 

지난 주에는 김0이가 가출을 했다.

하루도 집에 늦게 돌아 온 일이 없는 아이인데 신00이 부르러 왔다가 데려다 주러 나간 후 행방 불명 됐다는 것이다.

경찰서에 행방 불명 신고를 하고 며칠을 밥도 먹지 못하고 잠도 못 잤다며 부부가 학교에 왔다.

 

학교 생활에서 전혀 문제가 없던 아이가 왠일일까

5일 후 어이없게도 중국 집에서 짜장면을 배달하고 고생고생 하다가 몸살이 나서 누워 있다가 집으로 연락이 온 것이다.

김00과 김00의 어머니가 아들의 손을 잡고 학교에 왔다.

자퇴를 시키기 위해서이다.

자퇴를 시키는 이유는 올해는 저희들 뜻(?)대로 놀다가 내년에 반성이나 후회를 할때 재 입학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통상 자퇴 학생의 경우 거의 90%이상은 고등학교의 진학이 끝이 난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러한 00이나 00이의 심리적인 면을 고려하여 명퇴를 시키겠다고 윽박 질렀다. 그러나 끝내 그들은 학교에 다닐 의사를 포기하고 돌아갔다.

 

교사의 역량의 한계를 느끼면서 눈물을 흘리는 부모들의 아픔을 헤아려 보았다.

화가난 나는 돌아가는 그들의 뒤통수에다 큰 소리를 쳤다

"야 이 나쁜 놈 00들아!

너희놈들이 어른이 되어 새끼들을 키울때 너희들이 심은 씨앗을 거두지 않을 것 같으냐?"

나의 목소리만 공허하게 되돌아 왔다.

 

5.2 (금)

 

신00이 구속됐단다.

금품 갈취에 죄질이 나쁜 학생 4명이 함께....

내 기분이 이런데 부모의 심정는 어떨까?

시험을 끝내고 극장에 갔다. 영화 제목은 화이널 디시젼(Final decision)이란다.

이 영화를 담당 계원이 사전 감상하고 교육적인 차원에서 담당 교사에게 안내나 홍보를 한일이 없다.

 

그냥 며칠 전 교무실 흑판에 시험 마지막날 영화 관람."제목은 화이널 디시젼. 연흥 극장. 관람료 2000원, 각 담임 선생님 많은 협조 바랍니다."

그것이 전부다. 담임 선생님은 학생들이 대부분 영화를 보지 않고 집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하여 거듭 강조하지만 학생들은 그런 수준 낮은(?) 영화 관람에는 별 흥미가 없고 그들은 벌써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일찍 도망가기에 급급이다.

 

내용은 비행기 납치 테러범이 알라 신을 섬기는 아랍인이고 비행기 승객을 구하는 용감한 천사는 미국인 군인이다.

아랍인이 테러를 할 수 밖에 없는 배경을 무시한채 승객을 죽이기도 하고 미국의 대통령을 협박하는 잔인한 인물로 등장하고 죽을 각오를 한 거룩한(?) 구출 작전은 끝내 성공하고 납치범은 일망 타진 한다는 내용이다.

 

영화 관람이라는 교육은 이렇다.

학생을 인솔한 교사는 적당히 영화를 한편 보고 극장이 주는 인솔비로 막걸리 한잔씩을

걸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면 끝이다.

이튿날 학생들에게 영화 내용에 대한 지도를 하는 교사는 거의 없다. 설마 있다고 하드라도 그 영화에 대한 올바른 관점에서 평론할 수 있는 시각이 된 교사는 흔치 않는 것이다.

영화 관람이란 이름의 시청각 교육은 교육이 아닌 교육으로 수십년 동안 관행으로 실시되면서 문제제기를 한 교사도 없고 교장이나 교감 또한 관심 밖의 일이다.

 

청소년이 보아도 좋은 내용인지 사전에 충분한 지도 교사의 검토도 없이 이루어지 시청각 교육이 이제 교육적인 차원에서 검토되고 지도되어야 할 때가 되었다.

왜냐하면 폭력물과 음란 물을 비롯한 상업주의 이데올로기가 내포된 갖 종류의 영상 매체가 범람하고 이에 대한 청소년들의 무방비 상태에서 오는 피해 또한 엄청난 것이다.

 

영화뿐만 아니라 범람하는 V, T, R. 그리고 각종 T, V의 드라마 또한 순수한 청소년들 앞에 무방비 상태로 침투하여 청소년들을 병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나 텔레비전의 프로그램의 내용에 대한 교육적인 지도는 가정이나 학교교육을 통하여 의도적으로 지도를 시도한 일이 없다.

 

"학교에서 열등생이 사회에서 우등생" 이라는 비아양은 학교 교육이 원론 만 가르치고 현실을 가르치지 않았던 교육의 한계성을 이제는 교실 개혁의 차원에서 적절하게 지도를 시도해야 할 단계에 왔다고 생각된다.

대부분의 프로그램의 내용이 폭력성이나 음란성을 담고 있는데 대하여 가정이나 학교가 비판의식이 부족한 청소년들에게 무분별하게 감각적으로 수용하게 하는 데서 오는 비교육적인 심각성에 대하여 검토하고 분석하여 교육적인 차원에서 배려되어야 한다.

현상과 본질은 다르다.

 

문제는 '청소년들에게 어떻게 현상이 본질의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가르칠 것인가 이것이 문제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주객이 전도 된 문제가 너무나 많다.

 

세상을 경험한 사람들은 진실과 허위에 대하여 식별할 수있는 분별력이 있다.

그러나 우리의 순수한 청소년들은 문화라는 이름으로 나타나는 괴물들에 대하여 신선하고 호기심에 찬 눈으로 그들과 만나 영향을 받고 나름대로 가치관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5. 4일(토)

임00, 김00 풍진.

00 병결, 신00 구속, 김00, 김00 자퇴서 처리 대기 중으로 장기 결석. 김0 행방 불명으로 실종 신고 중. 52명 중 7명 결석.

1996. 5. 11.

5월 6일 신00, 김00, 김00 자퇴 처리

 

00이가 구속된 다음 날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구속된 00이가 직업란에 무직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재학 증명서를 떼오면 구속 적부심을 신청하겠다는 것이다.

내가 재빨리 자퇴서를 처리한 것은 00이가 명퇴를 받으면 후일 복학을 못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서둘러 처리한 것이었는데 일이 꼬인 것이다.

 

5월 7일 00이 엄마가 자퇴를 하기 위해 도장을 가지고 학교에 와서 울먹였다.

아들의 친구를 보는 엄마의 마음이 어떨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며칠간 말미를 줄테니 다시 설득해 보라고 얘기했더니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란 인사를 열 두번도 더하고 돌아갔다.

 

월요일0날 전화가 와서 자퇴 처리를 하란다.

아들과 얼마만한 '신경전을 벌였을까' '그 어머니는 자기 아들이 저렇게 학교를 가지 않으려는 이유를 아들의 도덕성에서 찾을 것이 아닌가?

온갖 저질 수입 문화와 상업주의 텔레비전의 저질문화 등 아들이 비판의식 없이 수용한 문화의 희생자임을 모른다.

 

이튿날은 결석이 아무도 없는 기록을 세운다고 기대를 하고 학교에 갔다.

그러나 00이가 또 결석을 했다.

집에 전화를 했더니 학교에 갔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 아이들을 어쩌라 말인가? 참으로 대책이 없는 일이다.

저녁에 다시 전화를 했더니 학교에 간다고 부모를 속이고 놀다가 집에 돌아와 있었다.

전화통에 대고 싫건 욕을 해 댔다.

 

전화를 끊었더니 자기 엄마가 전화를 해서 저녁에 식사라도 같이 하잔다.

교사의 인격은 부모의 그릇된 사랑의 표현으로 또 한번 난도질을 당한다.

월요일 날 꼭 학교에 데리고 갈테니 용서해 달라는 것이다.

 

성이 나서 맘대로 하라고 하고 끊었더니 이튿날 아들을 데리고 봉투를 들고 왔다.

잘 봐 달라는 표현이 이런 식이라면 누구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성을 내어 봉투를 되돌려 주고 0를 잘 타이를 테니 가시라고 해도 복도에서 서성이다가 교실에 갔다 오니 돌아가고 없었다.

 

내 아들이 다른 아이들 보다 특별 대접을 받기를 바라는 모정이 나쁘지만 않다고 하드라도 물질로 특혜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은 아무리 좋게 이야기해도 건강한 생각은 아니다.

그 보다도 선의의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물질을 요구하는 부담으로 받아 들여졌다면 나의 행동에는 문제가 없었는지 반성해 봐야 할 문제다.

 

1996. 5. 13

 

3학년 5반 교실에 수업을 들어갔다.

정치 경제 시간에는 나름대로 학생들이 흥미를 가지고 있었고 그런 대로 자부심도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5분이 지나도 분위기는 가라앉지 않고 계속 잡담과 엎드려 자는 학생이 3분의 일이나 되었다.

 

이때 화장실에 보내 달라고 나온 학생의 주머니에서 담배가 나왔다.

"내가 선량한 학생을 문제 학생으로 본다면 내가 죄를 짓는 것이다."

그런 말을 하고 주머니를 뒤져보니 아니나 다를까 담배와 라이터가 나왔다.

 

화장실에 가는 것이 아니라 담배를 피우러 가는 것이다.

담배를 압수하고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지난 시간에 담임에게 이야기하고 자리를 바꾸라고 이야기 해 둔 두 사람이 계속하여 잡담으로 수업을 방해(?) 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불러내어 등짝을 두대씩 갈기고 수업을 하려다 고개를 쳐다보니 수업 시간 마다 단골로 자고 있는 방송반장 김00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이성을 잃었다.

몇 대를 갈기고 앞에 앉은 문제아(?)의 책상을 발로 차는 순간 그 학생이 교실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참으로 황당하고 어이없는 허탈감을 느끼며 수업을 중단하고 교실 밖으로 나오는 순간 30년 교직 생활에서 처음으로 참담함을 느꼈다.

나중에 교무실에 불러 "야 ! 나는 두 달 반이나 참았는데 너는 한 순간도 못 참느냐?"하고 넘어 갔다.

학생과에 넘겼을 때 불이익을 당하는 모습을 생각하고 교권이란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들에게 관용이란 것도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었다.

학원 폭력 그 끈질긴 뿌리여!

 

내일 덕유 연수원에 입소관계로 오전 수업을 마치고 종례를 하고 교무실로 오니 김00 학생이 따라와 "선생님 저 내일 연수원에 못 가겠습니다"

하는 것이었다.

 

이유는 "짜증이 나서 그렇다는 것이다."

힘센(?) 학생이 도시락을 사 오라고 한다는 것이다.

약한 학생(그들의 표현은 '밥')들은 그렇게 금품 갈취(그들은 '빌린다'고 하지만)를 비롯한 온갖 방법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더구나 놀란 것은 김00과 김00이 얘들의 괴롭힘에 이기지 못하고 자퇴를 했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어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담임은 허수아비가 아니었는가?

 

말할 수 없는 자책과 배신감에 그들이 곁에 있다면 죽지 않을 정도로 두들겨 주고 싶은 심정이다.

화가 풀리지 않아 집에 돌아와 그들의 부모에게 화풀이를 했다.

며칠 후엔 또 봉투를 들고 찾아오지 않을까 몰라.

급장의 자퇴원 사건

 

1996년 5월 일

 

급장이 찾아와 면담을 하자고 한다.

5월 일 수학 시간에 수학 선생님에게 "급장이란 놈이 이것도 못해 !"

하면서 못이 박힌 판자 막대로 몆 대 맞았단다.

 

자존심이 상한 대다 옛날 급우에게 맞은 악몽이 되살아나 가슴이 뛰어 학교를 다닐 수 없단다. 혼자서 검정 고시 준비를 하여 대학을 다니겠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달래고 ..담임과 서너 차례 면담을 하고 주변에 계시는 선생님들이 달래고 법석을 떨었다.

 

고집은 끝내 꺾이지 않고 학교

를 포기하겠다는 힘 겨루기가 부자간에 자존심을 놓고 겨루다 열흘이 지난 6월 9일에야 겨우 아들의 판정패로 끝났다.

3일 후 다시 찾아 온 급장이 "선생님 양호실에 누워야겠습니다."

깜짝 놀라 왜냐고 물었더니 " 수학 선생님은 저의 인사도 받지 않고 수학 시간에 다시 무안을 준다"는 것이다.

 

고심 끝에 수학 선생님과 면담을 하고 '교권의 문제냐 무관심으로 돌릴 것인가' 고민하다 자조 섞인 웃음으로 이야기를 끝냈다.

15,000 - 20,000의 금품 횡령의 내용

 

- 천방지축

5월 일 차00이 급장과 함께 찾아와 "선생님 우리 반 최00가 저의 전화카드를 빌려가서 주지 않습니다. 좀 찾아 주십시오" 하는 것이었다.

평소 늘 "남의 피해를 주는 어떤 행동도 하지 말라고 밥먹듯이 타일렀는데 어찌 이런 일이......."

 

최00 학생을 불러 남에게 빌린 어떤 종류의 금품이나 가해를 적어라고 몰아 부쳤다

 

경 위 서

 

제 1학년 3반 46번

성명 : 최 00

1. 일시 : 1996. 6. 3.

2. 장소

3. 내용 : 돈은 빌린 날짜는 잘 모르겠습니다. 돈을 빌린 아이들은 00, 00,000, 00, 그리고 잘 기억이 안 납니다. 그리고 벨트를 바꾸었습니다. 이름은 잘 모릅니다. 돈을 빌리고 벨트를 바꾼 이유는 돈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잘 모르지만 돈을 빌린 아이들 이름을 잘 모르겠습니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돈은 대강 1,5000원-20,000원 정도인데 확실히 잘 모르겠습니다.

옷- 00, 티를 3일 빌리고 내 티와 바지를 주었다.

 

지갑-이00이 지갑과 내지갑을 바꾸었다.

밸트-송00 벨트와 내 벨트를 바꾸었다.

카드- 00이 한테서 토요일 전화카드를 빌리고, 00이 한테도 빌렸다.

톡력-지난 토요일 김00이르 때리고 00이하고 장난을 치고 있는데, 차00이가 모르고 내 입을 쳐서 00의 얼굴 등을 때렸다.

채00-수련회때 맞고 학교로 와서 내가 웃으면서 말을 건네니 좀 건방져서 욕을 하고 겁을 주었다.

 

이00-축구 시간에 축구를 하는데 혼자 공을 차고 해서 처음에 웃고 말았으나, 내가 패스를 하라고 하니까 들은 척도 안 해서 그냥 얼굴을 때렸다.

권00-장소 미상, 얼굴을 2대 내지 1대 때렸다.

홍00-청소시간에 청소를 안 해서 때렸다.

 

권00-장난으로 때림

김00-나를 쳐다 봐서 얼굴을 때림

정00, 권00이 하고 싸움을 할 때 내가 00를 때림.

현금-라00-2,500, 김00-2,000, 김00-100, 김00-1,000, 김00-1,000,

김00-? 김00-1,500, 이00-500, 이00-1,000, 이001;000,

정00-200, 조00-2,000, 이00-?, 김00-?, 김00-?, 차00-2,000,

추00-1,000, 송00-2,000, 이00-?, 김00-?, 박00-?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렇게 强調하고 있을 동안 최00는 선생님의 이야기는 한쪽 귀로 들어 넘기고 제 하고 싶은 일 다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손도 대지 못하고 어머니를 불러 경위서를 보여드렸더니 어머니도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문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학교에 오시면서 가져 온 음료수를 선생님들에게 일부 나눠 드리고 몇 개 남은 것을 뒷자리에 그냥 두고 이튿날 출근하여 남은 몆 개를 다른 선생님들에게 나눠 드리다 봉투 한 개가 튀어 나왔다

 

10만원이 든 봉투다.

어쩌자는 것인가? 이튿날 최00를 불러 지도과에 넘겨 징계를 의뢰했다.

7일간의 유기 정학이 떨어 졌다.

봉투를 돌려주고 부모와 이 학생의 장래에 대하여 진지하게 논의할 시간을 만들어야겠다.

00 어머니의 '비뚤어진 자식 사랑'

 

지독하게 학교 다니기 싫어하는 송00는 하루가 멀다 않고 등교 도중에 오락실이나 친구 집에서 지각이나 무단결석을 하기 일 수였다.

성이나 집에다 잔소리 같은 전화를 자주 했다.

그것이 어머니에게는 무엇을(?) 바라는 담임의 성화로 보였는가 보다.

 

무단결석을 3일이나 하고 학교에 데리고 온 어머니는 예외 없이 음료수를 들고 왔고 성이 난 나는 아이를 데려 가라고 짜증을 부렸고, 수업에 들어갔다 나온 나는 서랍을 열다가 봉투를 발견하고 2십만원이나 든 봉투를 확인하고 다시 전화로 '그럴수가 있느냐'라고 항의하고

10여일이 그대로 돌려 줄 기회가 없어 그대로 지났다.

 

그 후 공납금과 보충 수업비를 내지 못해 독촉을 하는 과정에서 2만 1천1백원만 가져오면 공납금을 주겠다고 했더니 그 돈을 가져 온 것이다.

서무실에서 공납금을 맞춰주고 영수증을 찾아 00에게 주면서 어머니에게 "꼭 전해라" 는 말을 잊지 않았다.

 

문제를 해결하고 퇴근 하는 그날의 발걸음은 훨씬 가벼웠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우리 교육이 어쩌다 이지경이 됐는지 참으로 암담한 생각은 떨쳐버릴 수 없었다.

여름 방학이 지나고 2학기 가 되어서 00이는 다시 예의 그 농땡이 기질이 재발했는지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친구와 어울려 가출을 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내용을 알아보니 어머니가 자기 아들 통장을 만들어 주고 그 통장으로 스쿨 뱅킹 구좌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 구좌에 있는 돈을 챙겨 친구와 같이 가출하여 신나게 하고 싶은 일, 갖고 싶은 것을 사고 다녔던 것이다.

 

학교 친구를 통하여 겨우 겨우 찾아 놓고 학교를 다니지 않겠다는 것을 설득 설득을 하여 이틀 동안 학교에 나왔는데 상업계산 시험을 친다고 (상업계산 선생님이 학기초에 호랑이를(?) 잡았단다.) 결석을 하고 말았다.

 

이주일 동안 학교 간다고 가방을 들고 노래방이며 비디오방으로 전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훈이 엄마와 약속을 하고 시내 다방에서 만났다.

담임에게 면목이 없어 하는 것과 학교에 대한 공포를 해소 해 줘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해줬다.

이튿날부터 학교에 나왔다.

 

얼마 동안 또 조용히 다닐지 지켜 볼 일이다. (계속)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