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만능주의'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2.08.24 묻지 마 범죄, 급증하는 이유 왜? (15)
  2. 2012.01.23 학교가 기르겠다는 ‘이상적인 인간상’은...? (18)
정치2012.08.24 06:30


 

 

묻지 마 범죄가 급증해 시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지난 18일 의정부지하철 역에서 39세 남성이 자신을 기분 나쁘게 쳐다봤다는 이유로 흉기를 휘둘러 8명이 다치는 참사가 있어났다. 지난 21일에는 .”서모씨는(42) 주부 이모(37·여)씨를 성폭행하려다 실패하자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22일 저녁 퇴사문제로 앙심을 품고 있던 김모씨(30세)는 퇴근길 서울 여의도 한복판에서 흉기를 휘둘렀는가 하면 울산에서도 슈퍼마켇주인을 찌르는 범죄가 일어났다.

 

묻지 마 범죄는 우연히 나타나는 현상일까?

 

'우연은 없다.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과학이 밝혀내지 못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어떤 철학책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학교 폭력도 그렇지만 최근 급증하고 있는 묻지마 범죄 또한 우연히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자연현상뿐만 아니라 사회현상도 마찬가지다 

 

전통사회가 무너지면서 우리사회가 수천년을 살아 오면서 믿고 지켜오던 신뢰와 가치관이 서서히 무너져왔다. 공동체 의식이 무너진 자리에는 막가파식 힘의 논리와  돈이라는 괴물이 모든 가치를 좌우하는 지배자로 군림해 인간의 사고와 판단을 좌우하는 시대로 바뀌어가고 있다.

 

'무전유죄'니 과정은 무시하고 결과만 중시하는 풍토며 겉으로는 법과 도덕을 말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 법이라는 게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잣대가 아니라 힘 있는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어 져 있다는 것이 드러나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게 됐다. 

 

사람이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어떻게 처신할까?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반응이 다르게 나타나겠지만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책임을 사회에 돌려 적대감을 무차별 대중에게 돌리는 비정상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도 나타나게 된다. 자신의 처지가 사회나 이웃의 잘못으로 자신이 피해자라는 생각을 하게 된 사람이 아무런 이유 없이 길가는 사람을 무차별 살상하는 범죄자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한해 자살자 수가 12174명, 하루 평균 34명꼴이다

 

우리나라 자살자 수는 사상 최대인 1만2천174명으로 하루 평균 34명꼴이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인구로 표준화한 인구 10만명당 자살사망률은 24.0명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노숙자 수는 2009년 2월 현재 5,463명이나 된다. 자살하는 사람의 자살원인이야 각양각색이겠지만 사회양극화나 복지 그리고 더불어 사는 문화가 실종된 사회에서 희망을 잃은 사람들이 선택한 돌출행동이 아닐까?

 

 

한해 76,489명, 하루 210명이 학교를 떠나고 있다

 

하루 평균 210명의 초·중·고교생이 학교를 떠난다. 한국교육개발원의 교육통계 시스템에 따르면, 2011년 한 해 동안 학업을 그만둔 초·중·고교생의 숫자는 7만6489명이다. 고등학생의 경우 2008년부터 학업중단자의 수가 꾸준히 늘어 2011년에는 3만8787명이 학교를 떠났다. 초·중·고교 전체 학생 중 학교를 떠난 학생 수는 하루에 210명. 고등학교를 다니다 학교를 그만 둔 청소년은 하루 평균 106명꼴이다.

 

이 아이들이 어디로 갈까? 나쁜 놈들은 거리로 내 몰거나 문제아 딱찌를 붙여 저들끼리 살도록 내몰면 해결되는 문제 일까? 학교야 위 클레스를 만들고 위스쿨을 만들어 문제아(?)를 수용하면 그만이지만 이들이 사회로 쏱아져 나오면 그들이 갈 곳은 어디일까?

 

학교를 떠난 청소년, 이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지낼까? 학교를 떠난 청소년 중에는 부모의 배려로 대안학교를 선택하거나 검정고시를 통해 상급학교 진학하는 학생도 있다. 그러나 가정이 무너진 청소년들은 갈 곳이 없다. 또래들과 어울려 거리를 방황하다 배가 고프거나 용돈이 궁하면 남의 물건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게임방에서 혹은 비디오 방에서 배운다는 뭘까? 한번 마음을 잘못먹고 범죄의 유혹에라도 빠져 보호감호처분이라도 받아 전과 낙인이라도 찍히면 그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고만고만한 전과자와 만나 교도소를 들락거리고 결국 이들이 가는 길은 뻔하다. 이렇게 양산되는 예비 범죄자 중 묻지마 범죄자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학교는 예비 범죄자를 양산하고 있지는 않은가?

 

지난 3월부터 학교폭력 가해자가 발각되면 학교폭력자치위원회의결을 거쳐 학생생활기록부에 전과사실을 기록으로 남기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이 기록 중에는 초등학생까지 기록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학생생활기록부에 전과사실이 기록되면 대학진학은 물론 취업에 까지 불이익을 주겠다는 처벌백계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교과부는 한 발 물러서 학교의 자율에 맡기기로 했다고 하지만 학교가 어떻게 처신 할 것인지는 불문가지(不問可知))다. 결국 장난삼아 했든, 나쁜 아이들 꼬임에 빠져 저질렀든, 폭력 가해자는 교육적인 방법이 아닌 처벌 만능주의의 덧에 걸려 반성의 기회조차 빼앗기도 전과자가 되고 마는 것이다. 

 

모든 폭력 가해자가 다 범죄자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연간 2만4천 800명이라는 학생들이 학교생활기록부에 낙인을 찍는 전과자가 되고 있다. 학교는 교육을 하는 곳이지 처벌을 하는 곳이 아니다. 물론 학교에서 하는 처벌은 교육적인 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학교는 인간성에 대한 믿음과 변화의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면 학교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

 

 

 

학교란 가능성을 믿고 인내하며 가치내면화를 위한 변화를 모색하는 교육을 하는 곳이다. 문제아가 있으면 적발해 퇴학을 시키거나 법적인 처벌을 하도록 사법당국에 인계한다면 학교가 할 일이 무엇인가? 학교가 문제아를 골라 처벌만 일삼는다면 학교가 존재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가끔 학교는 교육이라는 본연의 임무보다 선량한 학생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교육이라는 방법을 포기하고 문제의 학생을 징계를 하거나 퇴학처리 하기를 좋아 한다.

 

실의와 좌절, 자포자기에 빠진 사람들이 갈 곳은 어디인가?

 

올해 우리나라 명목기준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2만3천159달러 내외가 될 것으로 한다. 2015년이 되면 국민소득이 3만불 시대가 될 것이라는 기대로 차 있다. 우리 돈으로 7200만원, 가구당 평균소득이 7200만원이 된다는 말이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2만3천159달러시대, 2015년이 되면 국민소득 3만불시대(가구당 7200만원)시대가 열린다고 한다. 국민소득 2만 3천불시대 생계조차 이어가기 어려운 소외계층, 학교폭력으로 학생부에 폭력전과자가 된 청소년, 학교가 싫어 학교를 떠나 방황하는 청소년....

 

원칙과 도덕이 무너진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풍토를 두고, 경쟁만능주의 일등만 살아남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아무리 곳곳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해도 묻지 마 범죄자를 사전에 막을 방법은 없다. 극한 상황에서 퇴로가 차단된 사람들, 희망을 앗아간 사회에서 묻지 마 범죄는 어쩌면 필연이 아닐까?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교육정책2012.01.23 06:57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여성들이 원하는 신랑감 조건의 평균은 '연 소득 4348만원, 자산 1억9193만원, 키 177.51cm'. 신부감 조건의 평균은 '연 소득 3161만원, 자산 1억7193만원, 키 163.63cm'.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대한민국 2030 미혼남녀 결혼 인식‘에 관한 연구조사 보고서에 나오는 자료다.

사람 됨됨이나 인격이 아니라 소득이나 키가 신랑, 신부감의 선택조건이라니 씁쓰레 하다. 조건이 붙은 사랑은 가짜라던데... 저런 조건이 충족되면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갈 수 있을까? 텔레비전의 영향 때문일까? 얼짱, 몸짱문화가 젊은이들의 우상이 된 지 오래다. 학교가 길러내겠다는 이상적인 인간상은 어떤 모습일까?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새에서>

우리나라 교육기본법 제 2조는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완성하고... 인류공영의 이상 실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학교는 분명히 얼짱이나 몸짱이 존경받는 사람이 아니라 민주시민으로서 자질을 갖춘 자주적인 인간,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 이바지하는 ‘홍익인간’을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보고 있다.

학교가 정말 이타적인 인간, 홍익인간을 길러내고 있을까? 천만에 말씀이다. 오늘날 출세(?)를 했다는 사람, 사회지도층 인사들을 보면 분명히 학교가 길러내겠다는 인간상은 아니다. 아니 이타적인 인간이 아니라 오히려 ‘나에게 이익이 되는 게 선이요. 승자지상주의 가치관의 인간’, 이기적인 인간을 길러내고 있다고 보아야 옳지 않을까?

향락과 퇴폐적인 문화가 지배하는 자본주의 이전의 인간적이고 순수성이 남아 있던 시대의 사람들은 어떤 사람을 이상적인 인간으로 생각했을까? 우리조상들이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여겼던 사람은 몸짱이나 얼짱도 아니요, 반드시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도 아니었다. 옛사람들의 이상적인 인간상은 ‘신언서판(身言書判)’ 네 가지 조건을 갖춘 인간이었다. 신수(身)와 말씨(言), 문필(書)과 판단력(判)을 기준으로 사람 됨됨이를 구별했다.


신(身)이란 사람의 풍채와 용모를 뜻하는 말이다. 신은 사람을 처음 대했을 때 첫째 평가기준이 되는 것으로, 아무리 신분이 높고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라도 몸가짐이 바르지 못한 사람은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말이다. 오늘날처럼 소신 없이 내게 이익이 되는 일이면 신의도 헌신짝처럼 버리고 배신을 밥 먹듯이 하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둘째, 언(言)이란 사람의 언변을 이르는 말이다. 이 역시 사람을 처음 대했을 때 아무리 뜻이 깊고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라도 말에 조리가 없고, 말이 분명하지 못했을 경우,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뜻이다.

셋째, 서(書)는 글씨(필적)를 가리키는 말이다. 예로부터 글씨는 그 사람의 됨됨이를 말해 주는 것이라 하여 매우 중요시하였다. 그래서 인물을 평가하는데, 글씨는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였으며, 글씨에 능하지 못한 사람은 그만큼 평가를 받지 못했던 것이다.

넷째, 판(判)이란 사람의 문리(文理), 곧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아는 판단력을 뜻하는 말이다. 사람이 아무리 체모(體貌)가 뛰어나고, 말을 잘하고, 글씨에 능해도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아는 능력이 없으면, 그 인물됨이 출중할 수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성현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은 표현의 차이는 없었을지 몰라도 궁극적인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자는 '군자'를 가장 인상적인 사람을 군자라고 보았다. 군자란 ‘학문적으로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걸어야할 길을 찾는 사람, 도덕적으로는 원만한 인격을 이룬 사람’을 말한다. 군자는 자기의 입장보다는 남의 입장을 먼저 고려할 줄 알고, 자기의 심성 계발과 인격도야에 부단히 노력하고 인덕(仁德)을 갖추고  도(道)를 품어 행하여 사회에 기여하는 자세를 지닌 사람을 말한다.

기독교의 이상적 인간상도 그렇다.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고 타인의 구원을 위해 희생과 봉사를 할 수 있는 헌신적인 인간이 이상적인 인간으로 보았다. 불교의 이상적 인간은 진리를 깨달아 붓다처럼, 사법인(四法印)과 사정제(四聖諦)를 통해 진리를 깨달아 지혜와 자비를 누리는 사람을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보았다. 비록 표현을 달랐지만 오늘날처럼 얼짱, 몸짱도 아니요 돈이나 사회적 지위가 사람됨됨이의 기준이 되지는 않았다. 


자신의 생각은 없고 남의 생각으로 사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돈많은 사람, 잘생긴 사람,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이상적인 사람으로 생각하는 사회. 얼짱이나 몸짱처럼 외모로 사람 됨됨이를 판단하는 사고방식은 건강한 사람의 생각이 아니다.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자식이 신의도 분별력도 없는 이기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인간이 되기를 원하는 부모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신념도 철학도 헌신짝처럼 팽개치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고 존경받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학교는 어떤 인간을 길러내고 있는가?  자주적인 생활능력을 갖춘 사람? 민주시민으로서 자질을 갖춘 합리적인 사람?  민주의식과 역사의식을 갖춘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시민? 불의를 보고 분노할 줄 아는 정의롭고 용기 있는시민.....을 길러내고 있는가? 


새해 아침에 생각해 보는 이상적인 인간상이 공허해 보이는 이유는 그런 사회가 요원하기 때문만 일까? 윤동주님의 서시가 생각나는 새해 아침에.....

민족의 대명절 설날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소원하시는 일 모두 이루십시오.
새해에는 여러분의 가정에 화평과 사랑이 넘치시기를 기원합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