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정책2014.09.26 06:28


경기도교육청의 학생들의 ‘9시 등교를 놓고 찬반논쟁이 그치지 않고 있다. 경기도 교육청이 ‘9시 등교를 시행하게 된 이유는 학생들이 인간으로서 기본권인 수면권과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 건강을 잃게 된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러한 취지에서 이재정교육감이 취임하자 말자 시행한 ’9시 등교를 놓고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이미지 출처 : 연합뉴스>

 

고생의 9시 등교문제를 놓고 일부 보수적인 신문은 진보교육감과 보수교육감의 논쟁거리로 몰아가는가 하면 심지어 교원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까지 문제가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9시 등교를 반대하는 이유가 뭘까? ‘하교 후 학원 갈 시간이 빠듯하다’, ‘맞벌이부부의 경우 아이를 학교에 등교시켜주고 가야하기 때문에 시간이 맞지 않다고 불편을 호소하는가 하면 늦게 등교하기 때문에 늦게 자 아침밥을 안 먹기는 마찬가지라고 불평하는 학부모도 있다.

 

현재 경기도에는 2,250여개 학교 중 93.6%9시 등교를 실시하고 있다, 학교 급별로 보면 초등학교는 98.2%, 중학교는 96.2%, 고등학교는 78%가 시행 중이다. 또 강원도는 이미 시행중이며 전라북도는 20153월 달부터 시행중이다. 이미 이전에 실시하고 있는 강원도와 전라도는 아무 문제도 없는데 경기도는 왜 말이 많을까? 9시 등교는 정말 나쁜 정책일까? 일부 수구언론들은 ‘9시 등교문제를 놓고 보수와 진보의 문제로 몰아가기도 하고 같은 교원단체인 전교조와 교총의 입장은 서로 다르다. 전교조는 9시 등교를 적극 환영 한다고 반기는 반면 교총은 9시 등교 시행 중단을 위한 법적 대응까지 예고하고 있다.

 

사실 경기도 교육감이 ‘9시 등교를 시행한 것은 충분한 사회적 공감과 소통의 시간 없이 너무 성급하게 시작한 면이 없지 않다. 아무리 새로운 정책이 좋다하더라도 비토세력이 있기 마련이다. 특히 사교육시장이 판을 치는 나라에서 학교의 등교시간은 그들의 이해관계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진보교육감의 대거 진출에 위기를 느낀 정부와 권력의 비위를 맞추며 공생해 오던 사이비교원단체의 경우 생존권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부의 진보 진보교육감 길들이기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경기도의 ‘9시등교는 이해관계가 걸린 단체와 수구언론의 먹잇감으로 안성맞춤이 아닐 수 없다. ‘사교육 활동 시간이 줄어들 것이다’. ‘어차피 습관이 되면 달라질 게 없다’, ‘수학능력고사는 840분에 1교시가 시작되는데 9시 등교가 정착된다면 생활 패턴이 달라져 수능체제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등 진보교육감 흠집 내기에서부터 학생들을 학교까지 태워다 주는 학생 전용 버스 업계 사람들의 수익에 피해를 입게 된다는 소리까지 공공연하게 나온다.

 

<이미지 출처 : 경기도 교육청>

 

정치계나 언론은 입만 열면 법과 원칙을 주장한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한참 자라는 청소년기에 45(4시간 자면 합격, 5시간 자면 낙오)이 정말 부모로서 또는 교육자로서 이대로 덮어둬도 좋은 정책인가? 새벽 2시에 잠들고 아침 6시에 기상해 아침도 먹지 않고 비몽사몽간에 등교해 보충수업에 1교시가 끝나기 바쁘게 매점으로 달려가 라면으로 허기를 때우는 학생들을 이대로 방치해도 좋은가를... 자기네들은 청소년시기 인간으로서 차마 할 수 없는 잔인한 삶을 강요해 온 그런 생활이 정말 좋기만 했는지를 묻고 싶다.

 

서울 대학을 나온 사위를 보지 말라는 농담이 있다. ‘서울대학을 입학하고 졸업할 정도로 공부를 했다면 몸 어느 구석이 성한 곳이 있겠는가라는 것이 그런 농담이 나온 이유다. 학교는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곳이지 경쟁을 통해 서열을 매기는 곳이 아니다. 열심히 공부를 하는 게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일류대학이 교육목적이 된 교육이 정말 교육적인가? 또 교육과정은 뒷전이 되고 수학문제까지 외워 1등만이 대접받는 공부가 정상적인 교육인가? 우수한 학생을 뽑아 고시나 공무원 시험 준비나 시키는 공부를 교육이라고 강변해도 좋는가?

 

정의는 세워야 하고 잘못은 고쳐야 한다. 바쁘고 급하다고 민주주의를 포기할 수는 없다. 교육이란 청소년들이 미래에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삶의 질이 걸린 문제다. 불편하다는 이유로 원칙을 포기하고 변칙으로 갈 수 없다는 예기다. 지금은 다소 힘들고 어렵더라도 원칙을 세우고 비뚤어진 길은 바르게 고쳐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야 할 세상이요, 지켜야할 정의다. 아무리 바빠도 바늘허리 매어서 못쓰지 않은가? 원칙 포기하라는 논쟁은 부끄럽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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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수업은 제대로 된 선생님도 없어서 잘 진행되지도 않아요.’

 

며칠 전 ‘철학을 가르치는 경기도 교육이 부럽다’는 글을 썼더니 ‘경기도 학생’이라는 네티즌의 댓글이다. ‘경기도 학생’의 지적을 받고 많이 생각했다.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를 간과(看過)했기 때문에 이런 댓글이 달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경기도는 전체 584교 중 현재 11교가 철학을 선택과목으로 개설하고 있다. 2학년은 7교, 3학년은 4교다. 나머지 252교는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 집중적으로 철학을 교육하고 있다. 경기도 도교육청은 앞으로 2013 교과 연수에서 60시간 철학 직무연수를 개설할 계획이다.

 

경기도 철학 교육, 정말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준비 없는 정책은 예산과 시간만 낭비할 뿐이다. ‘경기도 학생’의 지적처럼 교과서만 만들어 수업을 한다고 제대로 된 철학교육이 가능할까?

 

교육은 교과서로만 가능한 게 아니다. 교과서를 참고로 소양과 자질을 갖춘 교사가 있어야 하고 공부를 하겠다는 학생이 있어야 한다. 교육의 성패는 공부를 하겠다는 학생과 전문분야의 자질을 갖춘 교사, 여기다 교과서라는 매체가 제대로 갖춰졌을 때 교육의 효과는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이다.

 

‘교육은 교사의 수준을 능가할 수 없다’

 

맞는 말일까?

 

맞기도 하지만 틀리기도 한 말이다. 교사의 품성이나 능력, 혹은 자질이 어떤가에 따라 성공적인 교육이 가능할 수도 있지만 입시위주 교육에서는 아무리 능력이 있는 교사라도 교육다운 교육을 할 수 없다. 이럴 때 ‘교사의 수준’ 운운은 틀린 말이다. 같은 조건이라면 품성이나 능력 혹은 자질이 뛰어난 교사가 훌륭한 교육을 할 확률이 높다.

 

경기도 철학교육이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요건은...?

오늘날 학교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는 어떤 사람일까? 교육대학, 혹은 사범대학을 졸업해 임용고시라는 과정을 통과해 발령(사립은 임용고시 없이 재단에서 발령)을 받은 유능한 교사다. 청년실업문제가 사회문제가 된 나라에서 교사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교단에 설 수 있다.

 

훌륭한 교사란 어떤 교사일까?

 

입시위주의 학교에서 훌륭한 교사는 제자를 일류 대학에 하나라도 더 보내는 사람일까? 학창시절에 성적이 좋아 교육대학이나 사범대학에 진학해 임용고시를 통과한 교사가 학생들의 생활지도면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교직사회에서 인간관계도 좋은 교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철학을 가르치는 경기도 교육, 머리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발령을 받는 교사(?)가 철학을 잘 가르칠 수 있을까?

 

 

첫째, 철학이 없는 교사는 철학교육을 할 수 없다.

 

아무리 공부를 잘해 실력(?)이 있는 교사라고 하더라도 철학이 없으면 교육자로서 실격이다. 교사는 지식전달자가 아닌 교육자다. 상식적인 얘기지만 현재 교원양성과정을 살펴보면 성적이 좋은 사람이 교사로 발령받기 좋은 체제다.

 

교사는 교실에서 정해진 시간에 교과서를 전달하는 것으로 임무가 끝나는 게 아니다. 또 자신이 가르칠 전공과목만 꿰뚫고 있다고 훌륭한 교사가 되는 건 더더구나 아니다. 제자들에게 어떻게 사는 게 바르게 사는 것인지,.. 행복이란 무엇인지, 정치며 경제며, 역사며... 세상을 보는 나름대로의 식견과 안목이 없다면 철학교육을 하기 어렵다.

 

둘째, 사랑이 없는 교사는 지식전달자는 될 수 있어도 교육자가 되기는 어렵다

 

사람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교사로서 실격자다. 공부를 잘하기 때문에, 생김새가 예쁘고 좋은 옷을 입었기 때문에, 가정환경이 좋기 때문에... 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경외심과 사랑이 없다면 철학이 아니라 어떤 교과목도 제대로 가르치기 어렵다.

 

마치 일류대학을 나온 부모나 비록 무학자인 부모가 자식사랑에 다름이 없듯이 교사는 인간을 보는 시각에서 사랑의 눈으로 제자들을 대하는 마음이 전제될 때 제대로 된 교육이 가능하다.

 

경기도 철학교육이 성공하기 위한 전제조건

 

경기도 교육청 산하 중학교 584개교 중 11교가 철학을 선택과목으로 252교는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 나머지 학교는 다른 교과와 연계하여 ‘더불어 나누는 철학’를 가르치겠다고 한다. 어떤 학교는 사회교과와 어떤 학교는 역사교과와 또 다른 학교는 도덕, 과학, 수학‘’‘과 연계해 가르칠 예정이다.

 

중등교원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사범대학에서 4년간 공부해야한다. 그런데 경기도 교육청 산하에서는 60시간 연수로 제대로 된 철학교육을 할 수 있을까? 아무리 훌륭한 교육정책이라도 사전 충분한 여건을 갖추지 못한다면 성공할 수 없다. 모처럼 시작한 경기도 철학교육, 교사들의 충분한 연수로 학생들에게 삶을 가르치는 교육이 성공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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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경기도 교육청에서 전국 최초로 중학교 철학 교과서, '더불어 나누는 철학'을 개발, 내년부터 가르칠 수 있게 됐다. ‘구체적인 삶에서 학생들이 느끼는 문제를 다양한 관점에서 통찰하고 인성을 함양하며, 창의지성교육으로 비판적 사고력과 정의적 능력을 증진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철학교과서는 2013년부터 활용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고등학교에는 철학교과서가 없는 게 아니다. 그러나 '더불어 나누는 철학'은 기존의 철학과는 차원이 다르다. 경기도 교육청의 철학 교과서에는 ‘학교는 왜 다녀야하나요?’, ‘행복한 학교가 있긴 한가요?’, ‘잘난 친구를 보면 왜 미울까요?’, ‘어른처럼 사랑하면 안돼요?’, ‘가족은 꼭 화목해야 하나요?, ’게임이 꼭 나쁜가요?, ‘왜 사람 차별 하냐고요?’, 왜 태어났을까요?, 돈을 많이 벌고 싶어요!..... 와 같은 삶을 안내하는 책이다. 

 

경기도교육청(교육감. 김상곤) 산하 중학교에서 가르치겠다는  '더불어 나누는 철학'은 비록 필수교과는 아니지만 (1)제목과 그림 (2)잠깐, 들어 보아요! (3)쟁점이 뭘까요? (4)내 의견은 이래요! (5)철학자는 말합니다! (6)생각 실험실 (7)나도 철학자! 등 7단계의 학습전략을 담고 있어 기존의 형식적인 철학과는 다르다.

 

 

 

대학까지 졸업한 사람들에게 “철학이란 무엇인가?”라고 질문을 던지면 똑 부러지게 ‘철학은 이거다’라고 대답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교육학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철학이란 고대 희랍어의 ‘지식’(sophia)과 ‘사랑’(philos)의 두 단어가 결합해 이루어진 말...어쩌고 정도 대답할 것이다. 사전에 찾아봐도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정리해 오히려 더 아리송하게 한다.

 

철학하면 ‘인생’이 어떻고 ‘죽음’이 어떻고 하며 뭔가 모자라는 사람들이나 하는 공부쯤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다. 머리를 길게 기르고 수염도 깎지 않은 채 이상한 옷을 입고 도사연 한다든지 칸트가 어쩌고 데카르트가 어떻고...하는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늘어놓는 사람을 연상하게 된다.

 

철학이란 정말 그런 것일까?

철학이란 ‘나’는 누구인가? 사랑이 무엇인지, 인생이 무엇인지, 행복이란 무엇인지, 종교가 무엇인지, 역사란 무엇인지...에 대해 ‘나는 이렇게 본다’는 관(觀)이다. 자아관, 행복관, 종교관, 역사관... 이런 세상의 일들을 자기 시각에서 본 시각이요, 세계관(世界觀)이요, 다른 말로 철학이다.

 

글자를 안다든지, 문제를 풀이한다든지, 그림을 그린다든지, 달리기를 한다든지.. 하는 것은 지식이요, 기능이다. 국어, 영어, 수학과 같은 지식, 무엇을 만들고, 꾸미고, 연주하고... 이런 재능을 아무리 갖춘 사람이라도 주어(主語)가 빠지면 가치가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다. 내가 누군지, 왜 사는지, 행복한게 무엇인지... 이게 없다면 허수아비와 같은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세상이 온통 멘붕상태가 되는 이유가 뭘까? 돈의 노예가 되고, 인간이기를 포기한 잔인한 성폭력이며 묻지마 범죄가 판을 치는 이유가 뭘까? 내가 누군지 왜 사는지.. 목적이 없는 삶을 살다 지치고 절망한 사람이 하는 짓이다. 철학을 가르치지 않는데 어떻게 건강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 수 있겠는가?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나를 찾는 과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빠진 교육이란 빈 그릇에 귀중품을 담아 놓는 보물 상자나 진배없다. 무엇을 위해 쓸 것인지? 그것이 왜 필요한지, 목적도 없이 ‘남을 이기기 위해, 남보다 더 잘 살기 위해, 더 잘 먹고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더 고급차를 타고, 더 즐기기 위해... 사는 인생은 정말 행복할까?

 

경기도 교육감에게 큰 절이라도 하고 싶다. 이 땅에 수많은 교육자들... 일류대학출신자들, 교육과료와 교사들... 교육이 무너졌다고 난리를 치면서 왜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공자가 어쩌고 윤리가 어쩌고 하는 사람들, 일등만 만들면 학생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교육을 살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학교가 철학을 가르칠 때 가능한 일이다. 경기도뿐만 아니라 전국의 모든 중고등학교가 하루빨리 선택이 아닌 필수과목으로 철학을 가르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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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에 있는 A중학교에서 흡연자를 적발하기 위해 학부모들의 서면동의도 없이 반강제로 소변검사를 하고 있다. 이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흡연 습관을 바꾸기 위해 흡연검사를 해 여섯 차례 적발당한 학생에 대해 선도위원회에 회부하고 있다. A중학교는 경기도교육청으로부터 200만 원을 지원 받아 소변 검사를 통해 흡연을 적발하고 있다. 소변 흡수 막대 한 개 당 가격은 2000원이다.

 

학교에서는 ‘전에는 운동장에서 담배를 피우는 학생도 있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해 여러 방법 가운데 소변 검사를 생각하게 됐다’고 말하지만 전체 학부모의 서면 동의를 받지 않은데다 학생 소변을 사실상 반강제로 채취, 금연지도를 하고 있어 인권 침해 논란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부천교육청에서 지난 해 말과 올해 1월, 2차례에 걸쳐 이 학교의 흡연습관 바꾸지 학생지도 우수사례발표까지 진행해 다른 학교에도 시행하고 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소변 검사를 통한 흡연 적발 방법은 여주 A고등학교에서도 있었다. 이 학교 골프부 코치들이 흡연 여부를 조사한다면서 남학생은 물론 여학생들의 소변까지 받아오게 해 학부모들이 반발하고 있다. 이 학교에서는 “3월초 기숙사 생활 중 절대 금기사항인 흡연과 구타, 이성교제 등을 통제하기 위해 흡연검사 키트, 소변검사 등을 실시한다고 알렸고, 학부모들의 동의를 받아 문제가 안 된다”며 “소변검사가 학생들의 흡연율 감소에 효과가 있기 때문에 실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똑같은 일이라도 사람에 따라서는 분노하고 반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전혀 반응이 없는 사람도 있다. 박정희 정권 때 민주주의를 매장하겠다는 ‘유신헌법’을 만들기 위해 교사들에게까지 홍보를 하라고 가정방문을 강요했다. 어떤 교사들은 순순히 교육청의 지시를 따라 학부모들을 만나 설득했지만, 어떤 교사들은 학부모들을 만나 나라의 장래와 민주주의 앞날에 대해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인권 문제도 그렇다. 진보교육감 지역에서 학생인권 조례를 만든다고 했을 때 일부 교사와 학부모들은 “전교조와 좌파 교육감들은 「학생인권조례」라는 사탕발림으로 우리 아이들을 선동하고 있다”며 ‘사랑의 매’까지 금지시킨다면 선생님들의 정당한 훈육수단마저 빼앗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그런가 하면 일부교사와 학부모, 그리고 전교조와 같은 단체에서는 학생도 학생이기 이 전에 한 사람의 인격을 가진 존재로서 헌법이 보장하는 신체의 자유를 포함한 복장, 두발 등 용모에 있어서 자신의 개성을 실현할 권리를 허용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권의식이 없는 사람들은 사람을 제대로 키우기 위해서는 체벌을 포함한 어떤 수단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교육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권의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교육은 순치가 아니며 가치 내면화를 통한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기 때문에 폭력과 같은 방법으로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없으며 이는 교육이 아니라 순치라고 본다. 고로 인권의 존중이야말로 폭력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우선적인 가치로 보고 있다.

 

 

 

담배는 마약보다 더 해롭다. 그러나 지금까지 학교에서의 금연지도는 건강차원이 아니 도덕적인문제로 접근해 왔다. 담배를 피우는 학생은 ‘불량학생’으로 어떤 처벌도 불사한다는 게 학교의 방침이었다. 이러한 가치관에서 금연지도를 한다면 강제로 소변을 채취해서라도 흡연을 막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목적이 선하면 과정은 어떻게 돼도 좋다는 논리다. 금연을 위해서라면 학생들의 인권과 같은 것은 고려의 대상조차 되지 않았다.

 

백번 양보해 그런 방법으로 금연지도가 가능하다면 찬성하는 이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교육적인 지도가 아니다. 폭력문제를 포함한 흡연과 비행에 관한 모든 지도는 교육적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특히 흡연의 경우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라 건강차원에서 지도하는 게 옳다. 청소년의 경우 세포 조직이나 그 밖의 기관들이 아직 완전히 성숙하지 않은 단계에서 흡연하게 되면 성인들보다 3배나 위험하다고 한다. 담배가 청소년기에 해롭다는 이유로 인권을 유린하는 반교육은 학교가 할 일이 아니다. 학생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학교에 어떻게 교육이 가능하겠는가?

 

*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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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형식만 있고 내용이 없는 가짜가 판치는 세상

세상에는 가짜가 많다. 얼마나 가짜가 많았으면 ‘진짜’다, ‘정말’ 진짜다‘. 그래도 믿어주지 않으면 ‘진짜 진짜다...’라고 강조하는 말까지 나왔을까? 얼짱이 유행하다보니 얼굴을 뜯어 고친 가짜 미인도 있고 가짜 휘발유, 가짜 명품, 박사 가짜, 모창가수... 등 가짜가 판을 치고 있다.

개인 간의 불신이야 인격적인 문제로 넘어갈 수 있지만 공공기관이 가면을 쓰고 주인인 백성들을 기만할 때는 진짜 짜증난다. 남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못 잊어 추모하는 모임을 만들어 고향을 방문하기도 하지만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섭섭한 게 많다. 대통령이라고 모든 일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는 없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방과후 학교는  사교육비 문제 해결할 수 있나?

이해관계가 얽힌 민감한 문제들을 모든 사람들에게 다 만족하게 풀어주기를 기대했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당시의 노무현대통령은 유권자들의 절대적인 지지기반으로 사회전반에 만연한 구조적인 모순을 얼마든지 풀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분은 민주주의 외를 쓴 가짜 민주기구들을 많이 만들었다.


대표적인 게 교육문제다. 사교육비를 없앤다고 사교육업자를 학교에 불러 과외를 시키는 ‘방과 후 학교’를 만들어 학교를 시장에 맡긴 게 그렇다. 사교육이란 학벌이 만든 문제로 학벌없는 사회를 만들면 사교육은 저절로 줄어든다. 학교운영위원회도 그렇다. 학운위를 의결기구가 아닌 자문기구나 심의기구를 만들어 놓고 그것이 민주적으로 운영되리라고 기대한 것도 결정적인 실책이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교육혁신위원회를 만들어 본질적인문제를 풀어야 할 기구가 아니라 형식적인 기구를 만들곤 했다. 사회민주화를 위해 주민자치위원회라는 걸 만들고 그 위원회를 의결기구가 아닌 심의기구로 만들어 자치행정의 들러리를 만들기도 했던 게 그렇다.

학교운영위원회는 왜 의결기구가 아니라 자문기구 혹은 심의 기구인가?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사칭하고 내용은 전혀 볼 게 없는 껍데기 기구는 유권자에 대한 기만이요, 말잔치다. 그렇게 서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당선된 대통령이라면 적어도 민주주의의 원칙, 주권재민의 원칙이라도 세워놓았어야 옳았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고 껍데기만 있고 실속이 없는 기구를 많았다. 서울민국을 바꾸기 위해 지방분권위원회를 만들어 정부기구를 지방으로 분산하려다 토착세력에 밀려 실패하기도 했다. 민주주의는 이렇게 기본을 세우고 내용을 채워 가야 하지만 빈번히 저항세력에 밀려 실패를 거듭했던 경우가 종종 있었다.



경기도 교육청이 학교운영위원회를 법적인 기구를 만들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진보교육감의 학교 민주화를 위한 의지다. 학교운영위원회(이하 학운위)란 ‘학교운영의 자율성을 높이고, 지역의 실정과 특성에 맞는 창의적인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만든 기구다. 학운위를 효율적으로 운영함으로서 '특색 있는 학교, 민주적이고 투명한 학교'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학운위를 설립하게 된 이유다. 그러나 설립 초기 많은 학부모와 교사들이 관심을 갖고 참여해 학교를 민주화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제도적인 한계 때문에 설립취지를 살리지 못했다.


학교운영위원회는 학교운영의 자율성을 높이고, 지역의 실정과 특성에 맞는 창의적인 교육을 실현하고 있는가?

나도 그런 기대 때문에 학운위원으로 출마해 산적한 학교의 모순을 개선하려고 문제를 지적했다가 ‘문제교사’로 매도당해 교장에게 미움만 쌌던 일이 있다. 나뿐만 아니다. 당시 수많은 학부모와 진보적인 교사들이 학운위에 참여해 헌신적인 노력을 했지만 수적으로 열세이다 보니 결실을 맺지 못했다. 그런 수모를 당하면서도 ‘비공개적이고 폐쇄적인 학교 운영을 지양하고, 교육 소비자의 요구를 체계적으로 반영함으로써 개방적이고 투명한 학교를 만들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이 사진은 본문의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학운위는 법적인 기구다. 그러나 아무리 법적인 기구라 하더라도 의결기구가 아닐 때 할 수 있는 역할이란 들러리가 되기 십상이다. 학운위는 분명히 ‘교육법’이나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시·도의 의회에서 제정한 ‘학교운영위원회에 관한 조례’에 근거를 두고 있지만 태생적인 한계 때문에 학교운영을 민주적이고 투명하게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

학운위가 학교를 운영하기 위한 실질적인 권한을 가지지 못하고 학교장의 거수기 노릇을 해 온 이유가 뭘까? 물론 학운위원들의 권리의식이나 의식수준도 문제지만 사립학교는 자문기구, 공립학교는 심의기구라는 한계 때문이다. 또  학생들의 선택권조차 없는 사립중학교까지 공립은 심의기구, 사립은 자문기구라는 것은 사학을 비호하려는 세력들의 의지 때문이다.


경기교육청이 학부모회 학운위를 법제화하기 위해 공청회를 여는 등 민주주의를 향한 큰 걸음을 내딛고 있다. 경기도 교육청은 지난 16일 경기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에서 학부모, 교원, 학부모단체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가칭 학부모회 조례 제정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했다. 이날 공청회에서는 학부모의 권한과 공공적 책임, 배움공동체의 소통을 통한 진정한 교육문화 실현, 학부모회 운영의 자율성과 책임성 등을 담은 조례 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전국 최초의 경기도 교육청의 학교운영위원회 조례 제정, 성공할 수 있을까?

자문기구, 혹은 심의기구에 불과한 학운위. 현행 지자체가 만든 조례에 근거한 학운위는 ‘초중등교육법’이나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정신을 담아내기는 역부족이었다. 경기도 교육청이 이러한 형식적이고 내용이 없는 학운위를 제대로 된 학운위로 만들기 위해 전국 최초로 학부모 관련 조례를 제정하겠단다. 혁신학교를 설립해 학부모들의 관심과 기대를 모으고 있는 경기도 교육청이 이번에도 학운위를 통한 학교를 민주적이고 투명하게 바꿀 수 있을지 기대해 본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교육정책2011.03.29 22:59



‘교육은 상품이다’

7차교육과정의 핵심이 그렇다. 교육이 상품이란 뜻은 상품(교육)이 수요자인 학생(학부모)과 공급자인 학교(교과부)가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만나 거래가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상인이 장사를 잘하기 위해서는 수요자가 원하는 상품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파악해야 한다.

수요자인 학생(학부모)의 요구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견 수렴을 할 수 있는 기구가 바로 학교운영위원회다. 학교운영위원회란 수요자인 학생(학부모)과 공급자인 학교(교육부)가 만나 수요자가 원하는 상품(교육)에 대한 수요와 공급에 대해 논의 하는 장(場)이다.

부모가 시장에 가서 자녀가 만족하는 상품을 구입할 수 있는가? 무슨 색깔을 좋아하는지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모르고 부모가 구매해 놓으면 자녀들이 만족해 할까? 교육이라는 상품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학생대표가 학교운영위원회에 참가해 학생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게 필수적이다.


지금까지 학교운영위원회에는 당연직인 학교장과 교사대표 학부모대표, 지역인사가 참여하지만 학생대표는 참가할 수 없었다. 학교의 주인이 학생이라면서 학생대표가 참석하지 못하는 학교는 ‘학교 운영의 투명성과 민주성을 보장’하고 ‘학부모와 지역사회의 참여’를 통해 책임과 권한을 나눌 수 있을까?

지난 18일자로 개정된 초중등교육법시행령에는
국·공립학교에 두는 운영위원회는 학생의 학교생활에 밀접하게 관련된 사항을 심의하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학생 대표 등을 회의에 참석하게 하여 의견을 들을 수 있다”는 조항과 “국·공립학교에 두는 운영위원회는 국립학교의 경우에는 학칙으로, 공립학교의 경우에는 시·도의 조례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 대표가 학생의 학교생활에 관련된 사항에 관하여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운영위원회에 제안하게 할 수 있다”고 명문화하고 있다.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대표를 참석시키자면 가장 반대하는 사람은 학교장이다. 반대하는 이유는 하나같이 ‘아이들이 뭘 안다고...’라고 한다.

학생들은 교육의 한 주체다. 입만 열면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라던 주장이 이때만은 아닌 모양이다. 주인이 빠진 회의. 그런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진정 학생들이 원하는 교육이 가능하기나 할까?

“시설은 좋지만 비싼 수영장으로 갈 경우 함께 못가는 친구가 생길 것입니다.”
"하지만 꼭 한번 가보기를 원하는 수영장을 신청한 많은 어린이가 섭섭해 할 것 같습니다.”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대표가 참여하는 수원 영화초등학교의 운영위원회에 참가한 학생대표의 발언이다.

                                    <사진자료 : 경기도 교육청홈페이지에서>

수원 영화초등학교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체육과 교육과정에 있는 수영교육을 위해 전교생이 수영현장학습을 실시하게 되어 담당교사는 편의시설에 따라 가격차가 있는 2개의 장소에 대한 의견조사 결과를 제안 설명하자 학생대표가 한 발언이다.
수련회뿐만 아니다. 수학여행이며 교복이며 급식이며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해 결정에 참여한다는 것은 학교운영의 기본이다.

가정의 경우, 가족구성원이 참여해 가사를 논의하는 것이 민주적인 가정이다. 학교나 사회가 다를 리 없다. 특히 학생의 경우 학교란 민주주의를 배우는 도장이다. 학교장은 학생대표를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석시켜 민주적인 학교운영에 동참하게 하는 게 교육자의 참 모습이다.

학교장이 학생대표가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하기를 꺼려하는 진짜 이유가 뭘까? 혹시 투명하지 못한 학교운영이 제자들 앞에 드러나는 게 부끄러워서는 아닐까?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학생들이 민주적인 훈련을 받을 소중한 기회를 빼앗을 리 없다. 만에 하나 교육자가 제자들 앞에 부끄러운 행동을 한다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제자들 앞에 떳떳하다면 학교장이 먼저 학생들을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석시키기에 나서야 한다.

개정된 초중등교육법시행령은 학생들이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할 수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학교장의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대표를 참석시켜 민주적인 학교운영이 가능하게 됐다. 학교장의 의지로 부족하다면 학칙을 개정하거나 시·도의회에서 조례를 제정, 학생대표가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해 학생들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더 이상 ‘학교 운영의 자율성을 높이고, 지역의 실정과 특성에 맞는 창의적인 교육’을 하기 위해 설립된 학교운영위원회를 학교장의 들러리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학교가 학생이나 학부모들로부터 불신을 받지 않으려면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대표를 참여시켜 학교운영위원회를 살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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