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병들고 있다. 겉으로는 멀쩡한 것 같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허우대만 멀쩡하다. 아니 멀쩡한 곳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마음이 횡폐해지고 있다. 겉으로는 화려한 메이커 제품을 입고 좋은 음식, 건장한 외모에 어디 내놔도 빠질 것 없는 하려한 모습이다. 


<이미지 출처 : 한국경제>


그런데 조금만 신경을 써서 들어다 보면 그게 아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안경 잡이다. 유전적인 요인이지는 몰라도 대부분 근시에다 하나같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닌다. 시간만 나면 스마트폰을 길을 가면서도 손에 놓지 못하는 게임 삼매경이다. 문자를 밭거나 친구들과 체팅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학교를 마치기 바쁘게 학원을 몇개씩이나 다니느라 어른들 보다 더 바쁘게 사는게 우리나라 어린이와 청소년들이다. 얼굴을 들여다 보면 여학생들은 하나같이 입술연지에 엷은 화장을 했다. 화사하게 꽃처럼 피어나 모습을 그대로 두면 더 예쁜 얼굴에 왜 화장을 했을까? 


이런 모습은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닌것 같다. 필자가 2001년 경남도민일보 논설위원으로 글을 쓸 때부터 이런 현상이 사회문제가 됐던 일이 있다. 자본이 만든 상암주의 광고가 아이들의 세계에 침투해 얼짱뭄짱문화를 만들고 그것도 부족해 화장까지 하게 만들어 놓았다.


문화란 한 사회내의 일부구성원 들에 의해 공유되고 있는 하위문화가 있는가 하면 한 사회의 지배적인 문화나 체제를 부정하고 적대시하는 반문화도 있다. 고급문화도 있고 저질문화도 있고 주류문하도 있고 하류문화도 있다.


문화가 사회변화에 따른 반영이 아니라 자본의 논리를 반영한 상업주의문화에 점령당하면 소비자들은 건강을 해치고 문회를 왜곡해 호도하는 심각한 피해를 입게 된다. 오늘날 어린이들의 세계를 파고 들어 건강한 문화를 병들게 하는 반문화가 그렇다. 


그것은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게 없다. 교육자들은 이런 현상을 사회변회에 따른 당연한 현상으로 맏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왜곡된 문화, 상업주의에 마취된 문화를 바로 잡아 고치고 바꿔야 한다. 아이들을 병들게 하는 자본의 논리. 상업주의 논리를 유행아라는 이름으로 마음을 병들게 하는 문화는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어린이 문화, 이대로 안된다


2001년 10월 08일 월요일


바람직하지 못한 어린이 문화가 사회문제화 되고 있다. 초등학생들이 여린 피부에 화장품을 바르고, 염색으로 멋을 부리는가 하면 생일 파티에 PC방.노래방까지 이어지는 그릇된 문화가 팽배하고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문방구에서 화장품이나 매니큐어.립글로스.파우더를 구입하는 여학생이 늘고 있다고 한다. 마산의 한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의 절반 이상이 눈썹 정리를 하고, 머리카락도 갈색.노란색.브릿지를 넣어 멋을 부린다는 보도는 충격적이다. 이러한 잘못된 어린이들의 문화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어린이들의 잘못된 문화는 전적으로 어른들의 책임이다. 순수하고 밝게 자라야 할 어린이들이 상업주의 문화와 어른들의 허영심으로 병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생일날 PC방이나 노래방.오락실까지 보내야 자녀의 기가 살아날 것이라는 부모의 잘못된 생각도 문제다. 이러한 어린이들의 그릇된 문화는 어른들의 잘못된 자식사랑과 상업주의 문화가 만들어 놓은 결과다. 시청률을 높이려는 무분별한 상업주의 방송이 어린이들의 허영심과 과소비문화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경남도교육청은 “최근 초등학생들 사이에 연예인과 어른을 모방한 머리염색과 얼굴화장이 유행처럼 퍼져나가면서 불량화장품 사용으로 얼굴에 손상을 입고 빨강.노랑 등 머리염색으로 학습분위기를 저해하는 등 교육적 부작용이 없지 않았다”며 “강제보다 어린이 스스로 자율적인 판단으로 자제를 하도록 지도방침을 세웠다”고 밝혔다. 경남도교육청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바람직한 대책을 제시한 것은 시의적절하다. 또한 획일적인 통제와 단속을 지시하지 않고 민주적으로 토론해 아이들 스스로가 잘못을 찾아 고쳐나갈 수 있도록 한 조처는 참으로 잘한 일이다.


도교육청의 이러한 대응은 지금까지 획일적이고 지시일변도의 방식에서 학생 스스로가 잘 못을 고쳐나갈 수 있도록 한 조처로 크게 환영한다. 이러한 교육이 일회성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도록 미디어 교육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뿐만 아니라 문제의 원인이 어디 있는지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함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바람직한 어린이 문화의 정착을 위해서는 학부모들의 협조없이는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어른들이 모범을 보이지 않고는 아이들의 건강한 문화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옛날 썼던 글을 여기 올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2001년 10월 08일 (바로가기▶) '어린이 문화, 이대로 안된다'라는 주제로 쓴 경남도민일보 사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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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을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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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처방전으로 호전되지 않는 병을 약의 단위만 높인다고 병세를 잡을 수 있는가? 원인진단이 잘못되면 백약이 무효다. 아무리 폭력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좋다는 온갖 처방을 다했지만 줄어들 기색은 보이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한다’

잠언에 있는 말씀이다.

 

지혜로운 자는 실수를 하면 그 원인을 분석해서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지만 어리석은 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뜻일게다.

 

학교폭력이 그렇다. 원인진단을 잘못해놓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수위만 높인다고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심산유곡에 핀 꽃과 도시 도로변에 핀 꽃은 색깔부터가 다르다.

 

등산을 해 본 경험이 있는 분들은 안다. 심산유곡에 핀 꽃. 도시 도로에 장식용으로 심어 놓은 꽃과 같은 꽃인데 색깔이 다르다는 걸... 왜 같은 꽃의 색깔이 다를까?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를 들으며 자라는 꽃과 도시의 온갖 매연과 소음을 들으면서 자라는 꽃이 같은 색깔로 피어날 리 없다.

 

사람은 어떨까? 건강한 어머니와 온갖 잔병치레를 하는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다르다. 건강에 어머니의 몸에서 계획적인 태교를 받고 자라 교육적인 환경에서 고이 자란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는 지능부터 다르다는 걸 생물학자들의 연구결과로 밝혀진바 있다.

 

모유가 아니라 소젖을 비닐젖꼭지를 빨며 자라는 아이들... 걸음마를 겨우 시작한 아이는 휴대폰 전자파를 안고 자란다. 전자레인지에 데워진 음식이 아이 건강에 얼마나 좋은지 장난감의 환경호르몬이 얼마나 심각한지, 과자의 색소며 방부제가 얼마나 아이 건강을 해치고 있는지 엄마는 잘 모르고 키운다.

 

폭력게임에 중독되는 아이들....

 

학교 앞 문방구를 지나다 보면 유치원에 겨우 다닐까 말까한 아이가 혼자서 게임기 앞에 앉아 게임에 열심이다. 무슨 게임을 하고 있는가 봤더니 상대방을 죽이는 게임이다. 부지런히 키보드를 두들겨 적군을 죽이는 재미에 폭 빠졌다. 집에서는 아빠와 총놀이를 즐긴다.

 

“빵!” 아빠나 엄마가 총에 맞아 죽는 시늉을 한다. 사람을 죽이는 끔찍한 총이 놀이기구라는 이름으로 장남감이 된다. 아빠와 엄마를 죽이는 훈련을 시키고 있는 것일까? 어떻게 사람을 죽이는 총이 놀이 기구가 되는가? 아빠가 죽은 채 스러지면 좋아서 박수를 치는 가족들....

 

아이들이 자라는 환경은 교육적인가?

 

눈만 뜨면 시도 때도 없이 켜놓는 텔레비전. 아이들이 어른들이 부르는 노래와 유희에 쉽게 길들여진다. 노래 가사에 담긴 내용이 어떤 것인지 알지도 못하고 온갖 국적불명의 춤과 언어에 오염되어 가는 아이들... "이 프로그램은 15세 이상 관람가입니다. 15세 미만의 청소년이나 어린이는 부모의 지도 아래 시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걸 가려서 보여주는 부모는 몇이나 될까?

 

잔인한 내용, 불륜, 폭력... 눈으로 귀로 듣고 배우고 익혀 체화된 아이들... 초등학생 5명 중 1명은 인터넷 등을 통해 음란물을 본 경험이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국내 웹하드·P2P 사이트 등에서 연간 약 420만 개의 아동 포르노가 다운로드 되는 것으로 추정한다.’(중앙일보)

 

시청률을 높인다는 이유로 폭력물이든 음란한 내용이든 안방으로 파고 든 상업주의가 무방비상태로 아이들에게 노출되어 있다. 건강한 문화가 아니라 먹고 즐기고 노래하고 춤추고... 노동과 땀의 소중함을 모르고 향락문화에 길들여지는 아이들은 건강한 정신문화를 배울 기회를 상실하고 만다.(계속)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 1 경찰이 변심한 애인을 총을 쏴 죽였다.

 

#. 2 폭도가 술에 취해 길 가는 사람을 ‘묻지 마 살인’을 계속하고 있어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경찰이 폭도를 사살했다.

 

 

 

똑같이 경찰이 총으로 사람을 죽였는데 하나는 폭력이요, 하나는 권력의 행사다.

 

위의 예문에서 #.1은 폭력’이다.

 

폭력이란 무엇인가?

 

겉으로 보기는 경찰이 총으로 사람을 죽였다. 그런데 하나는 폭력이요, 하나는 권력이다. 여기서 경찰이 가지고 있는 총이나 폭도가 가지고 있는 총은 다같은 폭력의 도구다. 그런데 왜 경찰이 가지고 있는 총은 공포를 느끼지 않으나 폭도가 가지고 있는 총은 공포를 느끼는가?

 

 

권력과 폭력은 어떻게 다른가?

 

변심한 애인을 살해한 경찰의 행위는 불법한 행위요, 폭도를 살해한 경찰의 행위는 적법한 행위요, 똑같은 총이라는 도구지만 ‘행사의 정당성’ 여부에 따라 하나는 권력이 되고 하나는 폭력이 되는 것이다.

 

권력이란 무엇인가?

 

권력이란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힘’이라고 정의한다. 다른 사람을 자신 생각(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게 하는 힘이다.

 

적법한 힘인가 아니면 불법한 힘인가의 의부에 따라 권력으로 또는 폭력이로 보이기도 하는 (현상)것이다.

 

 

사람들 중에는 현상과 본질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 블로그에 끊임없이 악플을 다는 단골손님이 있다. 내가 학교폭력문제를 포스팅하면 그 사람의 눈에는 교사 편을 든다고 ‘참교육을 한다는 사람이 어떻게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하고 무능한 교사 편을 드는냐?’고 입에 거품을 문다.

 

이 사람은 문제의 현상과 본질을 구별하지 못하는 근시안적 사고의 한계를 갖고 있다. 이 사람의 눈에는 학교폭력의 현상만을 보일뿐, 본질이 보이지 않는다. 본질을 모르고 현상을 전체로 착각하고 있다. 학교폭력문제를 현상인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로만 보기 때문에 폭력이 발생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폭력이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고통이나 피해를 주는 줘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본질, 즉 원인은 복잡하고 다양하다. 예를 들어 학교가 인권교육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 원인 중의 하나다. 인권의식이 있다면 ‘내가 소중하듯 남도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원인 즉 돈이 사람보다 소중하다는 가치관이 청소년들로 하여금 올곧은 가치관을 갖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다.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안방극장의 드라마가 폭력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든지, 영화나 만화 또는 게임이 청소년들의 정서나 가치관형성에 폭력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도 원인의 하나다.

 

 

입시위주의 교육, 빈부격차문제로 인간 가정파괴, 교사들이 관심과 지도의 부재, 교우관계, 환경적인 요인.. 등등 끝이 없다. 이런 문제를 놓고 교사에게만 책임 있다든지 가해자게만 책임을 묻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한계다.

 

내 블로그에 악플을 다는 사람은 그 사람 개인의 인격이요 시각의 한계지만 교육정책을 입안하고 교육과정을 짜는 사람들이 그런 시각을 가진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최근 학교폭력을 근절한다면서 교사에게 사법권을 줘야한다느니, 폭력 가해자의 이력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해 졸업 후 10년간 불이익을 주게 한다든지...하며 법적인 처벌위주의 강경책으로 나가고 있다.

 

이런 근절책이 해결에 도움만 된다면 적절한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반대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교과부가 내놓은 근절책은 연목구어(緣木求魚)다. 산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잡겠다는 것은 어리석음의 극치다. 현상과 본질을 구별하는 못하는 수준이하의 시각으로는 폭력은커녕 희생자만 늘어날 뿐이다.

 

* 위의 이미지는 다음 검색에서 가져왔습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