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과 착하기만 한 사람은 다르다
권력이나 자본에 이용당하지 않고 주체적인 삶을 고 살 수 있을까. 남들이 만들어 놓은 지식, 남들이 만들어 놓은 과학에 무임 승차해 살다보니 정작 자신의 존재가치조차 잊어버리고 주객이 전도되는 웃지 못할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가치혼란의 시대. 서구문물의 무분별한 유입은 우리사회의 가치관을 비롯한 문화를 송두리째 폐기처분하는 공황기가 도래한다.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혹은 선진국이라는 이데올로기로 자본주의는 그렇게 서민들의 세계를 멘붕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 가짜가 진짜처럼 행세해야 살아남는 세상
멘붕이라는 말이 유행된 지 오래다. ‘정신이 허물어져 버린 상황’… 이런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은 살맛 나는 세상일까? 정치, 경제, 사회문화가 온통 멘붕사태다. 원칙과 현실 사이의 괴리현상은 애꿎은 서민들만 구경꾼으로 만들어 놓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나 공화주의는 법전에는 있지만 현실에서는 찾기 힘든… 그래서 상업주의가 만든 세상은 소비자에게 엄청난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금융자본주의 혹은 신자유주의로 진화하면서 세상은 온통 자본의 천국이 됐다. 이런 분위기에서 전통문화나 질서란 폐기해야 할 가치관이 되고 감각주의, 향락문화가 만연하면서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어 놓는다. 여기다 자본이 만든 상업주의 가치관은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로 판단하는… 내게 이익이 되는 게 선이 되는 막가파 세상으로 바꿔놓았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사는 사회는 불행한 사회다. 작은 정부가 마치 복지사회라도 되는 것처럼 선전하는 권력은 자본과 손잡고 약자들이 숨 쉴 틈조차 주지 않는 신자유주의시대를 이끌어 가고 있다. 이익이 되는 게 선이요, 소비가 선이라는 자본의 논리는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고 내게 이익이 되는 것이 선이라는 가치관을 만들어 놓는다.
정치사도 그렇지만 개인도 가끔은 운명을 바꿔놓을 행운(?)을 만나기도 한다. 89년 민주화의 바람은 서민들에게 세상을 볼 수 있는 안목을 열어주는 행운을 선사한다. 이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비록 경제적으로는 넉넉하지는 못했지만 정신적인 풍요의 시대를 경험하게 된다. 유신정권의 억압은 학문과 사상의 암흑시대를 만들어 놓았지만 유신정권의 붕괴는 학문과 사상의 면에서 자유의 시대를 만끽하게 된다.
리영희, 강만길 선생님을 비롯한 양심적인 지식인과 언론인들이 열어놓은 세상. 지적 갈등에 목말라하던 국민들은 이런 분위기에서 편승해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는 철학을 만나게 된다. 철학에세이며 철학의 기초이론 등 철학관련 서적을 읽으며 독재정권에서 학교가 왜 철학을 가르치지 않는가 깨닫게 됐다.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민주주의에서 독재권력이 주권자를 농하는 권력에 현실에 분노하며 책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우리시대의 철학(1, 2), 강좌철학(1, 2), 세계철학사(1, 2, 3), 변증법적 지평의 확대, 모순과 실천의 변증법, 철학과 세계관의 역사, 모순과 실천의 변증법, 철학사 비판, 조선철학사 연구, 변증법적 지평의 확대, 세계관의 역사, 인식론, 역사철학연습, 사람됨의 철학(1, 2)… 들 이런 책들은 사회과학 서점이며 어디서든지 쉽게 구할 수 있었다.
■ 산다고 다 같은 삶이 아니다
소크라테스나 플러톤 칸트… 가 철학의 전부라고 배웠던 학교 공부는 이런 책들 앞에 여지 없이 그 정체가 탄로 나고 만다. 철학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난 사람들은 세상을 보는 안목이며,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인지… 깨닫기 시작했다. 철학자의 이름을 암기하는 것. 그들이 한 말 몇 마디를 다른 철학자와 구별할 수 있는가만 가르쳐 윤리시험문제로 제시될 뿐, 세상을 눈뜨게 해 주지는 못했던 학교공부. 현상과 본질이 다르다는 것과 옳고 그른 것은 무엇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을 깨우치게 하지 못하는 학교는 그렇게 순진한 학생들을 우민화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학교는 윤리교과서를 통해 헤겔의 변증법이 마치 정반합이 전부라고 가르친다. 당연히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이니 사적 유물론이 무엇인지, 아니 그런 불순한 용어가 입에서 나오는 것조차 금기시했다. 자본주의는 그렇게 피교육자로 하여금 현상이 물질의 전부라고 인식하게 만들어 놓는다. 이 정도의 수준으로 자본주의 세상에 살아간다는 것은 소비자들로 하여금 상업주의 먹잇감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학교가 왜 ‘정직, 근면, 성실’을 교훈으로 삼는지, 노동자로 살아갈 제자들에게 왜 근로기준법 하나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을까? 교육의 중립성을 말한다. 그런데 왜 학교는 학생들에게 자본의 논리를 가르치는가? 근면하지만 비판의식이 없는 사람, 착하고 성실하기만 한 노동자가 노동의식을 가진 건강한 노동자가 될 수는 없다.
교과서 속에 포함된 자본의 논리, 정권의 논리를 숨겨 두고 교육의 중립성 운운하는 것은 새빨간 거짓이다. 자본에 순종적인 인간을 길러내면서... 자본주의가 만드는 세상에 순응하는 인간을 길러내면서 어떻게 학교가 교육하는 곳이 될 수 없다. 친일정부가 원하는 세상은 일제강점기의 선조들의 참담한 삶을 감추고 근대화를 시켜준 은인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국정교과서를 통해 2세 국민을 우민화시키겠다는 것은 역사에 죄를 짓는 행위다. 주권자들의 권력을 농단하는 권력의 만행은 언제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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