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이야기

by 참교육 2011. 4. 7.
반응형
'학교의 우등생이 사회의 열등생이다!'

많이 듣던 얘기지요? 왜 그럴까요?
저는 그 이유가 학교에서는 원칙만 가리치고 현실을 가르쳐 주지 않는... 그래서 그 원칙을 쓸 수 있는 능력(철학)이 없는 사람을 만들어 놓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말이 안통하는 노인을 꼰대라고 하지요?
학교에서 원칙만 배운 범생이(?)는 사회에서 늘푼수가 없는 꼰대가 되거든요. 
제가 이글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세지는 '어떻게 학생들에게 현실을 볼 수 있는 안목을 갖도록 하는냐?'
하는 의미를 전하고 싶었습니다만 역부족으로 몇가지 예만 들겠습니다.
이런사례를 가정이나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어 가면 자기의 세계관을 만들어 나갈 수 있지 않겠나 하는 기대를 해봅니다.

-사람과 자연-

 TV를 보다 보면 맛있는 음식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에 매기를 잡아 요리하는 장면도 나온다. 펄쩍펄쩍 뛰는 매기를 뜨거운 물에 집어넣는 장면과 뜨거운 물에 익어 허물어진 멋어진 매기의 모양을 그대로 찍어 방영하면서 설명하기도 한다.

TV를 보면 가끔 담배가 인체에 해롭다는 증명을 하기 위해 쥐에게 주사는 주어 죽어 가는 실험을 하는 장면이 그대로 방영되기도 한다. 사람 중심의 문화가 힘없는 생명체는 잔인하게 죽어도 좋은 존재로 비춰주고 있는 것이다.

 


 생명은 소중한 것이다. 하찮은 미물도 자연에서 더불어 살아갈 권리가 있는 것이다. 자연에는 사람만 살아 갈 수 없다. 자연이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곳이다. 힘이 있다고 마구잡이로 자연을 훼손하거나 힘없는 미물을 잔인하게 죽일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다. 실험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아이들이 그런 잔인한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도록 하는 상업주의가 밉다는 뜻이다. 

 눈을 크게 뜨고 하늘을 보자, 저것은 산이고 이것은 구름이다. 이것은 나무고 저건 집이다. 눈이라는 감각기관으로  인지되는 것은 가시적인 자연이다. 가시적인 것은 정상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인식할 수 있다. 사람이 인식할 수 있는 자연은 고정된 것이 아니고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서로 연관성과 법칙성을 가지고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인간중심의 문화 속에 살다보니 자연의 법칙이나 섭리에 대해서는 무심할 때가 많다, 생태계의 원리는 사람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더불어 공존하도록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자연 속에 존재하는 어떤 개체도 인간의 허욕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없다. 다만 자연의 섭리에 따라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다. 혼자서는 살아 갈 수 없는 존재라는 뜻이다. 나에게 이익 되는 것, 좋은 것만 골라서 하면서 사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나의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해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불이익을 줘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자연 속의 존재해 있는 각 개체도 존재의 의미와 가치가 각각 다르듯 사람도 개인의 능력이나 역할이란 같을 수 없다.

사람이 사는 공동체에서는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구성원의 합의를 전제로 한다. 특정한 기준에 의해 높은 가치를 매기는... 서열화 한다는 것은  일방의 이익을 위해 타방이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공동체의 구성원을 잘 생긴 순, 키가 큰 순으로 한 줄로 세우고, 노래를 잘하는 사람, 영어를 잘하는 사람 순으로 한 줄로 세운다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회에는 정치를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교육을 하는 사람 생산을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건축을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어떤 일이 더 '훌륭하다'든지 '가치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판단의 기준-

 자신을 위해 열심히 사는 사람을 일컬어 훌륭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다. 이웃이나 민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한 사람을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공동체 사회 속에서는 각 개인이 역할을 분담하면서 살아간다. 물론 어떤 일이 더 소중하고 덜 소중한 것이 있을 수 있지만 소중하지 못한 일이라고 해서 없어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중요성이란 사용가치로 따져 효용성의 유무에 따라 가치가 매겨진다. 효용성이란 희소성과 무관하지 않다. 자연은 유한한데 인간의 욕망이 무한하기 때문에 희소성문제가 대두하게 된다. 모든 사람들이 서로 갖고 싶어하는 것 즉 희소성으로 인해 가치가 매겨지는 것은 공평하다. 예를 들면 금이나 석유는 돌이나 물보다 희소성으로 가치 차이가 난다. 그러나 이렇게 자연의 희소성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의 기준에 의한 희소성으로 사람들이 가치를 매긴다.

-서열을 매긴다는 것-

 매화가 세상에서 가장 예쁜 꽃, 다음이 장미, 그 다음이 백합... 이런 식으로 서열을 매긴다는 것은 주관적인 판단이다. 판검사는 가장 좋은 직업, 그 다음은 의사, 약사... 이런 식으로 서열을 매긴다는 것도 어떤 기준에 의해 가치 지워진 것이다. 농사를 짓는 일이 장사를 하는 일보다 덜 중요하다는 것은 기준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오늘날 한국의 농민들은 열심히 일해도 가구당 평균부채가 수천만원에 이르고 있다. 의사들 중에는 연봉이 몇억원 이상이 되는 사람도 있다. 농민들은 일할수록 가난해 지는 이유는 농민이 하는 일이 가치 없는 일이기 때문일까? 모든 사람이 의사나 판검사가 되기 위해 몸부림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의사나 판검사가 못된 사람은 주눅들고 열등의식에 젖어 살수밖에 없다.

-좋은 옷 입은 사람이 훌륭한 사람?-

몇년 참 이상한 모습이 TV를 통해 보도됐던 일이 있다. TV화면에 비친 국회의원들이 이성을 잃고 명패를 던지고 고함을 지르는 장면이 그대로 보도 됐다. 이유인 즉 유시민이라는 사람이 보선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는데 넥타이를 매지 않고 등원해 국회의원의 품위를 떨어뜨렸기 때문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물론 국민의 대표로 일하는 분이 품위 있는 행동거지란 지켜져야 한다.많은 사람을 만나야 하고 예의바른 행동을 해야하고...

그런데 정장(?)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먼저 당선된 의원들이 '국회를 모독했다'는 것이다. "야 이 ××야! 국회를 뭘로 알아!" 명패가 날아가고 퇴장하는 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 모습을 TV로 지켜보면서 '저런 국회의원들의 눈에는 농사를 짓기 위해 흙투성이 작업복을 입은 사람이나 잠바차림의 장사꾼은 뭘로 보일까?' 씁쓰레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외모로 사람의 가치는 매기는 것은 잘한 일일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