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학생에게 들었던 말이 싫지 않았던 이유
“선생님 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교육위원 출마 등록을 마치고 종례시간에 학생들에게 사실을 알리자 진지하게 듣고 있던 학생 중 한 명이 한 말이다. 출마한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될 금기어(禁忌語). 그것도 고 3학생 정도면 해서 될 말인지 하면 안 되는 말인지 정도는 분별할 수 있는 나이인데 그런 말을 한다는게 무슨 뜻일까?
"아, 재미없어, 이거 왜 해, X같네". "공무원이 나랏돈 받고 뭐 하는 거냐, 자격이 있냐, 여기 있는 이유가 뭐냐"
지난달 18일 교내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서울 서이초 교사가 학생에게 들었다는 막말이다. 교육자치 시대가 열리면서 처음에는 교육위원들이 교황식 선거방식으로 교육감을 뽑기도 하고 그 뒤 학교운영위원회의 대의원 간접선거로, 다시 운영위원 전원의 간접선거로 선출하기도 했다. 2007년 정년퇴임을 몇 달 앞두고 순진하게도 교육위원을 하겠다고 출마 결심을 하고 방학이 되면 선구지역을 유세하던 때의 일이다.
종례시간에 제자가 내게 한 말.... “선생님 떨어졌으면 좋겠습니다”는 말과 서이초 교사가 학생에게 들었다는 "아, 재미없어, 이거 왜 해, X같네". "공무원이 나랏돈 받고 뭐 하는 거냐, 자격이 있냐, 여기 있는 이유가 뭐냐" ...이 말의 차이는 무엇일까? 나는 학생이 내게 한 말이 듣기 싫지가 않았다. 그러나 서이초 교사는 학생에게 들은 이런 말과 학부모의 막말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 그리고 교사와 학부모와의 관계는 ‘신뢰’가 생명이다. 신뢰가 무너지면 교육이란 불가능하다. “라떼는 말이야~”라고 할지 모르지만 1969년 내가 초임 발령을 받았을 때만 해도 교사의 말은 곧 법이요 진리였다. 말할 것도 없이 교사는 지역사회에서 학생이나 학부모들로부터 절대적인 신뢰를 받았다. 그런데 학교는 언제부터 교육은 뒷전이며 시험점수로 일류학교 여부가 가려지고 수능을 준비하는 학교로 바뀌기 시작했다.
견디지 못한 선생님들은 1989년 무너진 교육을 방치할 수 없다며 4만여명의 교사들이 전국 교직원 노동조합을 결성해 가입했다. 당시 대통령 노태우는 대국민 담화로 교원의 노조결성은 불법임을 선언하고 탈퇴서를 제출하지 않은 교사 1527명을 한꺼번에 파면 또는 직권면직시켰다. 노태우가 각 시도교육청이나 학교에 보낸 공문서를 보면 이 시대를 살지 않았던 사람들은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빨갱이교사 식별법...“촌지를 받지 않는 교사, 지나치게 열심히 가르치려는 교사, 반 학생들에게 자율성, 창의성을 높이려 하는 교사, 직원회의에서 원리 원칙을 따지며 발언하는 교사, 아이들한테 인기 많은 교사, 형폄이 어려운 학생들과 상담을 많이 하는 교사, 반 학생들에게 자율성, 창의성을 높이려는 교사, 학급문집이나 학급신문을 내는 교사….”이런 교사들을 첮아내 해직시켰던 것이다. 이런 교사를 교단에서 내쫓으면 어떤 교사가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가?
내가 교육위원으로 출마한 것도 돈이나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물론 초기 교육위원은 무보수 명예직이었다. 학교가 입시교육이 아니라 교육을 하는 학교로 바뀔 수만 있다면... 그런 간절함이 푼수도 알지 못하고 순진하게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시기는 했지만 그런 염원이 어디 나 혼자만의 소망이었겠는가? 5년 후 복직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원상회복이 아니라 자존심 상하게도 신규채용형식이었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지식만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다. 스스로 모범적인 삶을 보여주지 못하고 나는 ‘바담풍’ 하더라도 너희들은 ‘바람 풍’이라고 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교사를 학생들이 어떻게 신뢰하겠는가? 탈퇴각서를 쓰지 못한 교사들이 그런 교육자적인 양심이었지만 신의니 무실역생이 어떻게 병든 사회에서 먹혀 들어갈 수 있었겠는가? 보다 더 가슴 아픈 사연은 탈퇴각서를 쓰고 교단에 남아 있었던 교사들의 심정은 어떠했겠는가?
“저는 훈장을 받지 않겠습니다” 퇴임을 몇 달 앞두고 교무부장이 내게 찾아와 ‘공적 조서’를 작성하란다. 공적조서를 교무부가 아니라 퇴임교사가 자화자찬서를 작성하라니... 어쩔 수 없어 무너진 교육을 한 교직생활이 부끄러워 훈장을 포기하겠다고 했더니 그런 공적조서로는 포기가 안되니 ‘개인사정’으로 받을 수 없다고 씨라고 했다. 교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존심을 짓밟는 형식주의에 화가 났지만 그렇게 쓰지 않으면 훈장증은 발행하지 않지만 훈장대장에는 발행된 것으로 남아 있다고 해서 ‘개인사정’으로 훈장을 받지 않은 최초의 교사가 됐다.
서이초 교사 자살사건 후 지금 교사들은 체감온도 40도가 넘는 시멘트 바닥에 앉아 교권회복을 외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가 눈에 가시였던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가려운 곳을 끍어주는 교사들이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겨우 6개 학교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위해 평소 같으면 ‘교사들의 집단행동’ 징계 운운하겠지만 수구세력과 친일세력 그리고 변절한 기독교 세력들은 교사들의 목소리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들은 정말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서이초 교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믿고 있는가? 교육이 무너져 일어난 교권추락을 학생인권조례를 페지하고 교권만 강조하면 학교가 교육하는 곳으로 바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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