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억압을 정당화하는 장치다. 그러나 동시에 억압으로부터의 피난처이기도 하다. 종교적 고난은 현실적 고난의 표현인 동시에 현실적 고난에 대한 항의다. 종교는 억압받는 피조물들의 한숨이며, 심장 없는 세상의 심장이며, 영혼 없는 상황의 영혼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마르크스가 설파한 종교의 정의다. 세계 인구 84%가 믿는다는 종교. 각 종교단체에서 내놓은 부풀린 자료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약 70%인 27백만이 종교인이다. 이런 현실에서 학교는 기독교가 세운 학교, 불교가 세운 학교는 있지만, 일반 학교에서는 종교가 무엇인가에 대한 종교교육을 하지 않는다. 학교가 종교교육을 하지 않는 이유는 종교단체가 무서워 외면하는 것일까 아니면 종교교육을 할 교사가 없어서일까?
종교철학이 없이 경전만 읽으면 종교를 똑바로 이해할 수 있는가? 종교를 믿는 학생에게 예수가 신인가? 인간인가를 물어보라? 뭐라고 대답하는가? 마르크스가 정의한 것처럼 종교란 아편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신을 부정하지는 않는 무신론자 이반은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 "신이 없다면"이라는 조건설로 은근슬쩍 가리고...‘신이 없다고 믿지만 동시에 신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신이란 무엇인지, 종교란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학·박사 학위를 수십 개 가진 박학다식한 지식인이라도 철학이 없는 사람이라면 방황을 밥 먹듯이 하고 살 것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종교란 “초인간적 세계와 관련된 신념이나 의례 등으로 구성된 문화현상”이라고 풀이해 놓았다. 가르침을 의미하는 불교어인 ‘종교’는 일본 메이지 시대 서양의 ‘religion’의 번역어로 쓰이게 되면서 일반화된 단어이다. 신의 존재 여부조차 회의(懷疑)하지 못하고 만나는 신(神)은 마르크스나 리처드 도킨스처럼 만날 수도 있고 신부나 스님처럼 구도의 길을 걷는 사람도 있다.
<사관없는 역사, 신학없는 종교>
학교는 종교를 무엇이라고 가르칠까? 고등학교 ‘윤리와 사상’ 시간에 ‘동양과 한국윤리사상’이라는 단원에서는 한국윤리사상의 흐름이나 유교, 불교, 도교… 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서양윤리사상’ 단원에서 그리스도교 윤리사상에 대해 가르치고 있지만 신이란 무엇인지 종교란 무엇인지 말조차 붙이지 못한다. 종교철학을 전공한 교사들도 없지만 예수가 신인지 인간인지.. 천국이 있는지 없는지... 불교가 유신론인지 무신론인지..를 가르칠 ‘용기 있는 교사’(?)가 있기나 할까?
종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준이나 철학이 필요하다. 사관(史觀)이 없이 배우는 역사란 지식만 암기하는 것처럼, 현실에서 종교를 만나면 제대로 판단을 하지 못하고 신비주의에 빠지거나 가정이 파탄나는 사례를 종종 본다. 예수와 석가모니가, 공자가 언제 어느 나라에서 태어나 무슨 말을 남겼고… 이렇게 배운 지식 정도로는 종교가 무엇인지 그 종교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2015년인가? 터키를 여행하던 고교 자퇴생 김 모 군이 터키와 시리아의 접경 지역에서 행방불명됐다가 이슬람 수니파 원리주의 무장단체(IS)에 가입했다는 언론 보도로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사건이 있었다. 이 청년에게 제대로 도니 종교교육을 했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아니 알고 있었다면 IS에 가입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 청년뿐만 아니다. 살다 어려운 일을 만나면 종교를 찾고 종교관이 없는 사람이 종교에 빠지거나 가정이 파탄나는 비극적인 없을 것이다.
종교란 ‘억압을 정당화하는 장치’기도 하지만 동시에 ‘억압으로부터의 피난처’이기도 하다는 마르크스의 해석을 자구대로 신뢰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종교는 사회의 기존 질서를 간접으로 영속시키고 기존의 문명을 유지하도록 조장하는 이데올로기적인 기능은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헌법 제20조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지고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했을까?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정치는 종교로부터 자유로운가? 표(票)가 필요한 정치인 그리고 대통령을 위한 조찬기도회가 있는 한 종교는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도 없고 정치가 종교로부터 자유로울 수도 없다. 독재자 박정희를 위한 조찬기도회. 학살자 전두환을 위한 조찬기도회가 있고 아예 ‘권력을 위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다’는 성경구절이 있는 한 정경분리란 어쩌면 정치인을 위한 피난처 구실을 하지 않을까? 용기 있는 언론이라면 신에 대해 종교에 대해 특집이라도 한번 기획해 보시라? 그런 용기 있는 언론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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