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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관련자료/교단일기

“학교생활이 너무 힘들어요!”

by 참교육 2010.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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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숙아(가명), 너 어머니께 학교생활이 너무 힘든 다고 했었니?”
“예”
“뭐가 힘든지 선생님과 얘기 좀 하자”
희숙이 어머니로부터 ‘기숙사생활이 너무 힘들어 아이가 자퇴를 하고 싶다’는 전화를 받고 상담실에서 희숙이와 마주 앉았다.
“아침 여섯시 반에 일어나 운동장 열 바퀴를 도는 게 죽기보다 싫어요”
“그래? 많이 힘들겠구나. 중학교 때는 몇 시에 일어났는데?”
“일곱시 반이요”
“다른 인문계 고등학교는 몇 시까지 학교에 오는지 아느냐?”
“여덟시나 여덟 시 반에요”
“내가 알기로는 인문계 학교는 8시부터 자율학습이 시작되니까 늦어도 일곱시 전에 일어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


올해 개교한 공립 기숙형 대안학교인 태봉고에서 기숙사생활이 힘들어 자퇴하고 싶다는 학생과 만나 상담을 하고 있다.
“왜 학교에서 기상시간을 여섯시로 정해 놓았을까? 요즈음 청소년들은 야행성(?)이라서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게 습관이 된 것 같더구나. 잘못된 습관이란 살아가는 데 평생 바꾸기 힘든거란다.
선생님의 딸(정희-가명) 얘기 한 번 들어 볼래? 지금은 초등학교 교사가 됐지만 우리 아이는 몸이 허약해서 초등학교 때부터 아침에 일어나는 걸 너무 힘들어했단다.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아침마다 깨워야 일어나는 게 버릇이 됐지. 딸의 잠버릇 때문에 가끔 부부싸움까지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결국 대학생이 되고 나서도 혼자서 일어나지 못하고,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학교에 다니다가 결혼을 하고 초등학교 교사가 된 지금에도 아침에 일어나는 걸 너무 힘들어 하며 살고 있단다. 잠버릇을 비롯한 잘못된 버릇이란 이렇게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고칠 수 없는 습관으로 굳어진단다. 특히 나쁜 버릇은 말이다. 그래도 늦잠을 자고 싶으냐?”
“그래도...”
맞는 얘긴 맞는 얘긴데 뭔가 좀 손해를 보는 것 같고 억울하다는 표정이다.
“힘 드는 건 맞지. 어른도 그런데, 한창 잠이 많은 청소년기에는 더더구나 힘들지. 교육이란 뭘까? 교육이란 자신을 바르게 세우는 일이야. 스스로에게 규칙을 정하고 그것을 습관화 하는 것, 생활화하는 거야.”
“학교급식을 왜 하는지 아니? 학교급식은 집에서 먹을 게 없어서가 아니란다. 방부제와 농약, 그리고 인스턴트식품으로 범벅이 된 식단은 입에는 즐겁지만 몸에는 해로운 음식이지 않니? 그런 음식에 길들여지면 건강을 잃게 되는 게지. 학교급식의 목적이 잘못 길들여지기 쉬운 입맛을 고치기 위해서란다.”
“그건 알고 있어요.”
“그래. 기상시간도 마찬가지야. 희숙이에게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무한정 자유가 주어진다면 감당할 수 있을까? 해야 할 일은 하고 하지 말아야할 일은 하지 않을 판단과 결단력이 있을까? 사람이란 개인적인 존재이기도 하지만 사회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때로는 하고 싶지 않을 일도 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단다. 절제할 수 없는 자유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어.”
대안학교인 태봉고등학교에 입학하면 뭐든지 학생들이 하고 싶은 데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싱럽이나 인문계 학교 그러니까 지금까지 학교는 학생들이 지켜야할 생활지도 규정을 학생도 참여하지 않은 채 학교에서 일방적으로 정해 놓고 ‘지키지 않으면 벌을 받는..’ 그런 지도방식이었다. 그런데 태봉고등학교에서는 학생 스스로 교칙을 만들고 그 교칙을 지키도록 약속을 했다. 그런 과정에서 규칙이란 왜 필요하고 왜 지켜야 하는지 또 잘못된 규칙은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주는지 깨닫고 공동체 회의에서 규칙을 바꿔 스스로 행복한 학교를 만들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희숙이는 이정도의 약속이나 규칙도 지키기 어려워 부모님께 응석을 부렸던 모양이다. 희숙이뿐만 아니다. 담배를 피우고 무단이탈하고 늦잠을 자고... 끊임없이 자신과 싸움에서 나약해지는 자신에게 패배하는 생활에 벗어나지 못하는 학생들. 이제 통제와 단속이라는 타율이 아니라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가치내면화의 교육을 하자는 것이다. 대안학교가 시도하는 교육의 이념은 스스로 자신과 싸움에서 자기를 찾아가는 배우고 가르치는 학교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는 지금까지 어떻게 생활지도를 해 왔는가? 가치내면화를 통한 행동의 변화가 아니라 타율과 복종이라는 군대식 통제와 단속으로 규제하고 주입식 교육, 상급학교진학을 위한 입시위주교육에 주력해 왔다. 말로는 민주주의를 말하고 인권을 말하면서 민주주의를 배우는 학교에는 인권도 민주주의도 찾아보기 어렵다. 타율과 복종이 지배하는 학교, 성적지상주의 학교에는 교육은 없고 일류대학을 위한 준비과정으로서 '효율과 경쟁이 살 길'이라는 구호만 난무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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