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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정치

이런 연극 보면 왜 분노가 치밀어 오를까?

by 참교육 2014.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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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엊그제 대전 드림아트홀에서 ‘낙타가 사는 아주 작은 방’ 공연을 보고 소화불량증에 걸려 있습니다.

 

굶기를 밥먹듯이 한던 아이가 우연히 최고급 식당에 가서 평생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최고급 고기를 포식하고 난 심경이랄까? 상놈의 주린 배에 기름끼 잔뜩 낀 고급 음식을 갑자기 포식했으니 배가 멀쩡하면 오히려 이상하겠지요. 

 

세상은 자기 수준만큼 보인다고 했던가요? 연극이라고 다르겠습니까? 부끄럽게도 아래 글은 제 수준입니다. 귀한 작품에 누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낙타가 사는 아주 작은 방’의 줄거리는 입니다.

 

 

어느 날 대한민국 최고의 건축가 이대준은 경찰서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소매치기를 하다가 걸렸다는 아버지를 데리고 가라는 전화다. 오래 전에 헤어진 아버지를 집으로 데려 온 그는, 자신이 만든 방에 아버지를 가둔다. 그리고 끔찍하던 과거의 기억을 하나하나 더듬어 나가기 시작한다.

 

대준은 곱사덩이로 태어났다. 대분의 어머니는 그런 그를 낳고 우울증을 앓다가 자살했다. 대준의 아버지는 아내를 잃은 슬픔에 어린 대준을 학대하고, 대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겼다. 대준은 자신이 초로기 치매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대준의 아버지는 그런 대준과 함께 살아야 함을 알고 대준의 집에 드나드는 타투이스트에게 대준의 상처를 알리고 방문을 부탁한다. 타투이스트는 대준의 집으로 와서 대준의 등에 문신을 새겨 넣는다. 엄마의 빨간 구두가 대준의 불룩한 등에 새겨진다.

 

 

‘낙타가 사는 아주 작은 방’을 만든 사람들을 보면 정미진작가의 작품을 정우순 나무어시티 대표와 나무어시티 공연교육팀장으로 있는 남명옥씨가 연출을 맡는다. 남철역의 조중석, 대준역의 성용수 타투이스트역의 남명옥, 여자역의 지선경... 등 쟁쟁한 인물들이 함께 나서서 만든 작품이다. 그밖에도 기획과 조연출, 무대, 그림, 음악, 조명 의상 영상...등 수많은 사람들의 땀이 모여 완성된 작품임을 재론할 여지가 없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나는 이 작품을 보면서 꼭 집어 이렇가 할 수 없는 분노와 같은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세상에 대한 분노와 예술의 진정한 가치가 묵살 당하고 있는 현실.. 그리고 이들이 지키고자 하는 세상이 만들고자 하는 세상이 무엇인가에 대한 안타까움과 분노 그리고 연극에 대한 열정... 이런 복합적인 감정이 뒤엉킨....

 

 

1991년 어느 날이었다. 평생 처음, 손목에는 수갑이 채워진 채 벚꽃이 만발한 가로수 길을 경찰호송차에 실려 가고 있었다. 교육문제를 상담하자며 찾아간 교사들을 경남 교육감이 교육동지이자 후배들인 교사들을 고발해 업무방해죄로 잡혀 갔다가 몇몇 지도부 선생님들을 묶어 가는 길이었다. 나의 문제가 아닌 우리 아이의 문제, 내 자식이 아닌 우리 모두의 아들 딸 문제를 도저히 이대로는 둘 수 없다며 항의하는 교사들이 죄인이 되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짐승처럼 끌려 가고 있었다.

 

닥치고 교과서나 가르치라는 교육부의 지시를 거부했다는 괘심 죄다. 정작 70이 넘은 어머님과 아내 그리고 아들딸을 팽개친 가장에게 차라리 가족 학대 죄라도 적용했다면 그렇게 서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해직된 지 1년여 내 가족의 생계를 팽개치면서까지 해직을 감수해야 했던 그 아픔이 '낙타가 사는 작은 방‘에 오버랩 되면서 사회의 모순과  분노가 치밀어 올라 내가 연극에 등장하는 어머니가 되고 대준이가 되어 아픈 상처를 후벼파고 들어왔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필자는 이 연극에 출연하는 배우들이며 연출가들이 얼마나 유명한 사람들인지 잘 모른다. 그런 자질도 소양도 안목도 없다. 그러나 홍보물을 통해 본 그들이 예사 배우들이 아니라는 것만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그들이 살아 온 수많은 작품이며 이력이 ‘낙타가 사는 아주 작은 방’을 무대에 올리기 까지 얼마나 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견디며 여기까지 왔을까하는 짐작할 수 있었 뿐이었다.

 

왜 주인공인 대준이... 아니 왜 우리는 꼽추(낙타)가 되어 살아야 하는가? 아니 꼽추가 되지 않고서는 살아 갈 수 없는 현실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는가? 피해자는 운명으로 혹의 죄의식으로 우울증에 걸리고 자살하는 비극을 만나야 하지만 정작 이런 현실을 만든 가해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꼽추를 낳았다는 죄 아닌 죄의식과 꼽추라는 형태로 표현된 세상의 모순은 고스란히 대준의 가족 몫이었다. 피해자는 운명론자가 되고 가해자는 존경받고 당당하게 법과 정의를 말하고 있지 않은가?

 

 

아내를 잃은 분풀이를 꼽추인 아들에게 하는 아버지나 꼽추를 낳은 어머니가 죄의식에 쌓여 우울증으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나 꼽추 등에 어머니의 한쪽 하이힐을 새기며 운명처럼 살아야 하는 꼽추의 삶은 다른 사람 아닌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모습이요, 바로 나 자신이다. 배우들의 열연에 가슴이 먹먹해 눈시울이 뜨거워진 이유는 나의 지난 삶이 이들을 통해 반추되었기 때문이리라.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했다. 교육운동을 한다는 이유로 한쪽 벽만 보고 살다가 허윤기목사님의 안내로 만난 예술의 세계. 그 세계에는 교육이라는 색안경으로 비춰진 세상과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속에도 아픔과 분노와 모순과 고통이 있었고 이를 온 몸으로 거부하며 살아가는 깨어 있는 분들의 양심이 연극이라는 형식을 빌어 밟힐수록 웃는 민들레로 피어나고 있었다.

 

 

막장 드라마가 판을 치고 있다. 몸짱, 얼짱을 부추기고, 외모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상업주의가 공중파를 타고 안방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 대학을 나온 사람이나 전문 지식인들까지 텔레비전 화면 앞에 앉으면 바보가 된다. ‘드라마 보는 재미로 사는 주부들...’ 그리고 그 속에 숨은 신데렐라 콤플렉스와 상업주의가 순진한 시청자들에게 신데렐라 증후군이라는 병균을 퍼뜨리고 있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게 교육이지만 남에게 이겨 일등이 교육이요, 시합 전에 승부가 뻔한 경쟁을 교육이라고 우기는 신자유주의처럼 텔레비전은 국민정신을 좀먹는 고칠 수 없는 암 덩어리가 된지 오래다. 군력의 시녀가 된 예술은 정조며 넋까지 팔아먹고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서민들의 정신세계를 황폐화시키고 있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연극계든, 영화계든 음악계... 등이 질식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예술이 삶이 된 분들의 투혼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낙타가 사는 작은 방’과 같은 수준 높은 연극을 볼 수 있도록 수고해 주신 모든 분들께 고마운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낙타가 사는 아주 작은 방'은 4월 9일부터 13일까지(평일 오후 8시-주말은 4시) 대전시 드림아트홀에서 공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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