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정치2014.02.08 07:00


시장에 간 아내가 어둠이 깔리고 있는데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늙은이 둘이서 사는 집에 아내가 어디 나갔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걱정부터 합니다.

 

“우리 이렇게 살다 한사람이 먼저 죽으면 혼자서 어떻게 살지...?”

 

가끔 이런 얘길 꺼냈다가 아내에게 쓸데없는 얘길 한다고 핀잔을 받기도 합니다. 실제로 두 사람이 있다 한사람이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면 세상이 텅 빈 것 같습니다. 평소 내게 살갑게 대하지도 않은 아내가 하루 이틀 집을 비우다 돌아오면 반가워 하는 모습을 보면 아내도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사진설명 : 며칠 전 세종시 동면 달전응암리에 있는 오색농장에 갔다가 만난 비닐 하우스에 핀 복숭아 꽃>

 

가끔 있는 일이지만 오늘도 아내가 대전 유성 장에 간다더니 늦고 있습니다. 배꼽시계가 식사시간을 알립니다. 밥솥을 보니 전기 코드가 빠져 있고 솥 안에는 혼자 먹기는 많고 둘이 먹을 밥은 좀 모자라는 밥이 남아 있었습니다.

 

나는 식은 밥을 먹고 아내 밥을 해 놓아야겠다는 기특한(?) 생각에 전기밥솥에 밥을 그릇에 들어내고 바가지를 들고 다용도실에 있는 쌀을 꺼냈습니다. 그냥 쌀을 씻으려고 하다가 곁에 보니 잡곡 팩에 흑미 같은 게 보였습니다. ‘이왕이면 맛있게 해줘야지...’ 하는 마음에서 흑미도 한줌 집어넣었습니다.

 

밥을 앉혀놓고 식은 밥을 혼자 먹었습니다. 아내가 없으면 반찬을 찾아 먹을 생각도 않고 눈에 보이는 대로 김치나 멸치가 있으면 꺼내 먹습니다. 우리 세대들은 남자가 부엌에 나가면 모자라는 사람쯤 취급당하며 살아왔습니다. 아내도 그런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편입니다. 어쩌다 아내가 시장에 가면 설거지나 방청소 정도를 해주면 그게 남자의 역할을 다한 줄 알고 삽니다.

 

같은 밥이라도 혼자서 먹는 밥은 맛도 모릅니다. 배가 고프니까 허기를 때우는 시간입니다. 칭찬을 받기 위해 설거지까지 해놓고 컴퓨터 앞에 다시 앉았습니다. 제 생활이 늘 이렇습니다. 밥만 먹으면 컴퓨터 앞에 앉았거나 자전거를 타고 금강변을 달리기도 하고 아내 심부름으로 슈퍼나 은행에 다녀오는 게 요즈음의 일과입니다.

 

컴퓨터를 하고 있는데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시장에 다니다 보니 늦었다고 밥을 좀 해 놓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밥을 해놓았으니 늦지 말고 오라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고 하던 일을 계속했습니다. 컴퓨터에 빠져 시간가는 줄 모르는 새 아내가 돌아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부엌에서 아내의 비명소리가 들렸습니다.

 

“왜 밥에다 결명자를 넣었어요?”

 

나는 깜짝 놀라 부엌으로 쫓아 나갔습니다.

 

“결명자라니... 나는 흑민 줄 알았는데...”

 

“아니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그렇지, 흑미와 결명자 구별도 못해요?!”

 

“그럴 리가 없는데.... 나는 분명히 흑미를 넣는다고 넣었는데....”

 

                             <세상에서 처음 먹어 본 결명자 차를 끓인 숭늉입니다>

 

쌀을 꺼낼 때만 해도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기도 했지만 다용도실에 불을 켜지 않았기 때문에 차를 끓이려고 잡곡 팩에 둔 결명자를 확인하지 않고 집어넣은 게 화근이 됐던 것입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모처럼 아내에게 칭찬이라도 들을 줄 알고 한 일이 핀잔만 잔득 듣고 말았습니다.

 

“이 밥 혼자서 다 먹어욧!”

 

“그러지 뭐, 해로울 것도 없는데...”

 

지은 죄가 있어 밥솥을 열고 숫가락으로 한 입 떠 넣었습니다. 아~니 이게 웬일입니까? 독자 여러분은 “결명자 밥맛, 상상이 되십니까?” 세상에서 처음 맛 본 결명자 밥맛....!!!

 

아내가 볼까봐 뱉지도 못하고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그 쓴 결명자 밥 한 입 그대로 삼켰습니다.

 

심하게 잔소리를 들을 줄 알았는데 그게 끝이었습니다.

 

이튿날 점심시간에 결명자 밥이 숭늉이 되어 나왔습니다.

결명자 밥은 그렇지만 결명자 밥으로 만든 숭늉은 그런대로 먹을 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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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지음/생각비행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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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흐!~ 선생님!~ 그러게 미리 미리 부엌일도 배워두셔야죠.
    커피 안마시고 있기 다행입니다. 아마 그랬으면 모니터에 뿜을 뻔 했습니다. ^.^

    결명자차 그거 하부차라고도 하는 위장에 무지 좋은 거랍니다. ^.^
    숭늉으로 만들어서 드시면 건강에 좋지 않을까요?

    좋은 하루 되십시오.

    2014.02.08 07:1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ㅎㅎㅎㅎ
    그래도 못먹는 건 아니니...다행입니더...

    .이젠 부엌일도 좀 배우셔야죠

    사모님 의지 하는 것 보다...조금은 해결하시면 사모님도 편안해진답니다.ㅎㅎㅎ

    웃고 가요.

    2014.02.08 07:1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결명자 밥..상상이 안되네요. ^^

    2014.02.08 07:17 [ ADDR : EDIT/ DEL : REPLY ]
  4. 해바라기

    결명자! 큰 실수를 하셨군요.
    그래도 아내를 돕는다는 사랑이 정감있게 다가옵니다.
    숭늉으로 딱 좋으네요. 멋진 하루 되세요.^^

    2014.02.08 07:19 [ ADDR : EDIT/ DEL : REPLY ]
  5. 오랜만에 선생님의 소소한 일상
    잼있게 보고 갑니다.

    ㅎㅎ
    근데, 넘 웃음이 났어요.
    늘 건강하세요.~~

    2014.02.08 07:32 [ ADDR : EDIT/ DEL : REPLY ]
  6. 아이고 도와주다 되레 방해만 한 꼴이 되고 말았네요...ㅎㅎ..
    실수 좀 하면 어때서요,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이 전달되니 글로 지켜보는 저도 흐믓합니다.

    2014.02.08 07:3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7. 알콩달콩 사는 모습이 그림같아요~
    주말 잘 보내세요~

    2014.02.08 08:0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8. 강춘

    그래요.
    이렇게 사람사는 얘기, 얼마나 구수하고 좋습니까?
    그냥 정치하는 놈들 얘기 열나게 미워하시지 말고....ㅋㅋㅋ

    2014.02.08 09:22 [ ADDR : EDIT/ DEL : REPLY ]
  9. ㅋ 잘 한다고 한 게 이런...덕분에 눈이 더 밝아지겠습니다.

    2014.02.08 10:1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0. 결명자에 뿜었습니다 ^^ 늘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2014.02.08 10:4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1. 바람부는언덕

    그 맛이 정말 궁금합니다..
    상상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 지내요..
    기분 좋은 하루가 될 것 같습니다, 덕분에요..
    ^^

    2014.02.08 11:10 [ ADDR : EDIT/ DEL : REPLY ]
  12. 오주르디

    저도 얼마전 사고 쳤습니다. 대형 사고지요.
    아내가 늦겠다며사골 한번 끓여달라고 해서
    솥을 불에 올려 놓았습니다.
    그때 전화 한 통.... 앞 동에 사는 친굽니다.
    한잔 하자며 나오라고 하더군요.
    점퍼 입고 그대로 나갔지요.
    그후 두 시간 지난 뒤 아내 전화.
    "다 탔어요... 사골이 검정 숯이 됐어요."

    2014.02.08 11:16 [ ADDR : EDIT/ DEL : REPLY ]
  13. 선생님 아내 분과 참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십니다. 두 건강하게 사세요. 저는 한 번씩 설거지도 하고, 밥도 합니다. 아내 생일상은 꼭 제 손으로 차려줍니다. 올해는 17번째 차릴 것 같습니다, 결국 부부가 함께 오래 오래 건강하게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합니다. 아내에게 항상 고맙다는 말만 합니다.

    2014.02.08 12:08 [ ADDR : EDIT/ DEL : REPLY ]
  14. 정말 부엌일도 평소에 좀 해봐야할거 같아요.ㅎ

    2014.02.08 13:0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5. 하하하 ..
    선생님에게도 이런면이 있었을줄이야...
    그래도 마음이 중요한거겠죠..
    저도 사실 구별 못할텐데.. 즐거운 주말 되세요^^

    2014.02.08 15:5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6. 마음이 중요한거겠죠~ ㅎㅎ
    노력이 필요하겠는데요~ ^^

    2014.02.08 16:1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7. 우리들 세상이야기

    안녕하세요.
    방문해 주셔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기 바라며 편안한 밤 되십시요.

    2014.02.08 20:27 [ ADDR : EDIT/ DEL : REPLY ]
  18. ㅋㅋㅋ 결명자밥이라 ㅎ 처음 들어보는 음식이에요
    아내 분과 행복하게 사시는 모습 보기 좋습니다
    참교육도 이런 가정의 행복에서 많은 영향을 받겠지요

    2014.02.09 09:4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9. 이 글은 2월 11일 충청투데이 따블뉴스면에 게재됩니다. 늘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2014.02.10 09:23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