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날 아침 늙은 교사의 기도

 

- 김용택 -

 

한반도 남단

대한민국

2012년 11월 8일

이 땅에 태어난 남녀학생

66만 8522명이 1191개교 고사장에서

수학능력고사 치르는 날

 

이날

대한민국의

모든 아버지 어머니

시민, 군인....

아니

비행기도 자동차도 휴대폰도

디지털 카메라, 엠피스리(MP3), 전자사전, 라디오도

이 땅에 사는 모든 잡귀조차

숨죽이며 죄인 되는 날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는 이유 그 하나만으로

군대에서도 사라진 체벌에 인권유린조차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제갈 물려 살던

착하기만 한 아이들을 서열 매기는 날

 

오늘

양심을 팽개친 지식인도

교육자라는 이름의 공범자도

죄인이 된다

 

이 땅의 어머니는

혹은 절에서 혹은 교회에서

더러는 시험장 교문을 붙들고 오열한다

 

오늘을 위해 20년의 세월을 저당 잡혀 살아온

착하디 착하기만 한 청소년들이여

2012년 오늘

이 땅에 태어났다는 그 원죄를 벗고

고통의 세월, 억압의 세월....

그 한을 오엠아르 카드에 후회 없이 담아

기도하는 가족품으로 가세요

 

앞으로

모든 날은 웃으며 사는 날이 되기를

2012년 11월

수능 보는 날 아침

수험생들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늙은 교사는 죄인이 되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이 시는 필자가 쓴 ‘김용택의 참교육이야기 사랑으로 되살아나는 교육을 꿈꾸다’(생각비행) 책, 첫 페이지에 나오는 부끄러운 교사의 양심 고백이요, 참회의 기도문입니다. 2013년 11월 7일 오늘 다시 수능을 치르는 수험생을 바라보는 늙은 교사는 지금도 똑같은 마음입니다.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 10점
김용택 지음/생각비행

 

 

오늘 2014년 11월 7일.

다시 수학능력고사라는 이라는 이름의 전국의 수험생을 한 줄로 세우는 날입니다. 그 고통의 날들로 채워진 지난 날의 힘겨움이 오늘 자신이 닦은 실력을 아낌없이 발휘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다시 기도합니다.

 

우리도 언제쯤이면 도종환 시인이 꿈꾸는 핀란드 학생들처럼 웃으며 공부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요? 도종환 시인의 ‘북해를 바라보며 그는 울었다’는 시를 여기 올려 둡니다.

마음 조리는 부모님들의 기도가 이루어지는 하루가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이미지 출처 : 한겨레신문>

 

북해를 바라보며 그는 울었다

- 도종환 -

차고 푸른 수평선을 끌고 바람과 물결의

경계를 넘어가는 북해를 바라보며 그는 울었다

 

내일 학교 가는 날이라고 하면

신난다고 소리치는 볼 붉은 꼬마 아이들 바라보다

그의 눈동자에는 북해의 물방울이 날아와 고이곤 했다

 

폭 빠져서 놀 줄 알아야 집중력이 생긴다고 믿어

몇 시간씩 놀아도 부모가 조용히 해주고

바람과 눈 속에서 실컷 놀고 들어와야

차분한 아이가 된다고 믿는 부모들을 보며

배우고 싶은 내용을 자기들이 자유롭게 정하는데도

교실 가득한 생각의 나무를 보며

그는 피요르드처럼 희고 환하게 웃었다

 

아는 걸 다시 배우는 게 아니라

모르는 걸 배우는 게 공부이며

열의의 속도는 아이마다 다르므로

배워야 할 목표도 책상마다 다르고

아이들의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거나 늦으면

학습목표를 개인별로 다시 정하는 나라

 

변성기가 오기 전까지는 시험도 없고

잘했어, 아주 잘했어. 아주아주 잘했어

이 세 가지 평가밖에 없는 나라

 

친구는 내가 싸워 이겨야 할 사람이 아니라

서로 협력해서 과제를 함께 해결해야 할 멘토이고

경쟁은 내가 어제의 나하고 하는 거라고 믿는 나라

 

나라에서는 뒤처지는 아이가 생기지 않게 하는 게

교육이 해야 할 가장 큰일이라 믿으며

공부하는 시간은 우리 절반도 안 되는데

세계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보며

그는 입꼬리 한쪽이 위로 올라가곤 했다

 

가르치는 일은 돈으로 사고파는 상품이 아니므로

언제든지 나랏돈으로 교육을 시켜주는 나라

 

청소년에 관련된 제도는 차돌멩이 같은 청소년들에게

꼭 물어보고 고치는 나라

 

여자아이는 활달하고 사내 녀석들은 차분하며

인격적으로 만날 줄 아는 젊은이로

길러내는 어른들 보며 그는 눈물이 핑 돌았다

 

학교가 작은 우주라고 믿는 부모와

머리칼에서 반짝이는 은빛이

눈에서도 반짝이는 아이들 보며

우리나라 아이들을 생각하며

마침내 그는 울었다

 

흐린 하늘이 그의 눈물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경계를 출렁이다가도 합의를 이루어낸 북해도

갈등이 진정된 짙푸른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이들의

가슴도 진눈깨비에 젖고 있었다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 10점
김용택 지음/생각비행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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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13.11.07 07:17 [ ADDR : EDIT/ DEL : REPLY ]
    • 예, 책이 나온 게 2013년이니까 지난해 수능 때 썼던 글이랍니다.
      연도를 그대로 올렸답니다.
      지적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2013.11.07 07:31 신고 [ ADDR : EDIT/ DEL ]
  2. 해바라기

    수능날 부모못지 않게 기도 하는 교사들의 심정을 알듯합니다.
    학생들 오늘 시험 잘 보라고 저도 기도 드려 봅니다.
    좋은 하루 여세요.^^

    2013.11.07 07:20 [ ADDR : EDIT/ DEL : REPLY ]
  3. 대한민국의 아들 딸들아 수능이 전부가 아니란다.
    모두 다 백점이면 좋으련만
    백점 못 받은 친구들의 속마음까지 헤아리는 수능이었으면 좋겠구나.
    수능은 꿈을 이루는 게 아니라
    그저 허황된 교육제도를 확인하는 절차라는 거 잊지 말거라.
    수능이 없어도 세상 그 어떤 보배 보다 값진 우리 아들 딸들이다.

    2013.11.07 08:0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늙은 교사의 기도는
    책에서 읽었지요.
    모두가 죄인 되는 날...
    갑자기 서글퍼집니다.

    2013.11.07 08:1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5. 모든 수험생이 시험을 잘 보길 선배의 마음으로 빕니다.

    2013.11.07 08:28 [ ADDR : EDIT/ DEL : REPLY ]
  6. 잘했어, 아주 잘했어, 아주 아주 잘했어
    세가지 평가밖에 없는 나라
    그런 나라를 꿈꿔보는 아침입니다

    2013.11.07 09:02 [ ADDR : EDIT/ DEL : REPLY ]
  7. 선생님 책에서 읽고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오늘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게 시험을 치러기를 바랍니다

    2013.11.07 09:10 [ ADDR : EDIT/ DEL : REPLY ]
  8. 오늘이 수능날이었군요.
    사람을 한줄로 세우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세상인지라
    이상한 줄도 모르고 넘어가는 날이었군요.
    어른이 되어서는 덕담 한마디 빼고는 해줄 말이 없는 날이었어요.
    수능수험생 여러분들의 건승을 빕니다.

    2013.11.07 09:1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9. 아마도 이 땅에 그런 분위기의 교육상황은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대안이 나오긴 해도 그게 다수로 얼마나 넓혀질까 의문이거든요.
    다만... 아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공부를, 선택할 수 있는 길이라도 많이 열렸슴 좋겠어요.

    2013.11.07 09:26 [ ADDR : EDIT/ DEL : REPLY ]
  10. 마음이 짠해지는 시네요ㅠ 휴~
    어쨌든 수능은 잘 봐야하니 일단은 모든 수험생들 화이팅^^

    2013.11.07 10:11 [ ADDR : EDIT/ DEL : REPLY ]
  11. 미소맘

    올해 재수한 둘째가 수능을 보러 갔습니다.
    아이들이 건강하고 아름답고 행복한 사람으로 자라날 수 있는
    참다운 교육이 이루어지는 날이 돌아오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너무 크게 대비되는 두 나라의 교육 현실을 시로 읽고 울었습니다.

    2013.11.07 11:01 [ ADDR : EDIT/ DEL : REPLY ]
  12.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참교육님의 마음이 오늘 따라 제게도 가슴깊이 전해져 옵니다.
    자신의 심정들은 모두 죽여가면서 깨알같은 질문에 자꾸만 머리를 쥐어뜯고
    어디선가 교실 한 구석에서 몸부림치며 울고 있을 우리 학생들이
    너무도 가련해 보입니다.

    오래전 우리 아들이 수능고시를 무사히 치루고 친구들과 함께 집에 와서 하는 말이
    시험지를 보는 순간 자기는 죽고 싶었다는 말에 이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그동안에도 저는 해마다 이맘때가 오면 학무모님을 불러다가 식사를 대접하며
    대학진로와 학생들의 장래에 대하여 많은 상담을 하였지요.

    기도를 하고 격려를 주며 위로를 하면서 자녀들에게 제발 좀 꿈을 심어주라며 관심을 가지라면서...

    오늘 하루도 해버나이스 데이하세요^^

    2013.11.07 11:05 [ ADDR : EDIT/ DEL : REPLY ]
  13. 모두들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으면 좋겠네요^^
    응원합니다~

    2013.11.07 11:0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4. 이게 아닌데...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아이들...참 마음 아픕니다.
    오늘 시험 끝나고 웃는 아이들도 있을테고
    우는 아이들도 있을텐데...
    좌절하고 절망하는 아이들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2013.11.07 11:10 [ ADDR : EDIT/ DEL : REPLY ]
  15. 하루를 위해 몇 년을 공부한 날 같은 수능일입니다.
    일찍 안타까운 소식도 접했고요.
    모두가 희망하는 그런 날, 그런 나라가 되어야 할 텐데 싶습니다.

    2013.11.07 13:23 [ ADDR : EDIT/ DEL : REPLY ]
  16. 모두들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013.11.07 14:1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7. 씁쓸하네요...
    그래도 좋은 결과를 거두어야 하겠죠.
    단, 최선의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2013.11.07 14:4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8. 두 분의 시가..모든 것을 다 말해주시네요..울컥 했습니다..좋은 시, 잘 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

    2013.11.07 21:58 [ ADDR : EDIT/ DEL : REPLY ]
  19. 올해도 이렇게 예년과 똑같이 수능시험이 지나가네요..ㅠㅠ

    2013.11.08 02:5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